<울산강령토론회 참관기>
이행강령, 대체권력을 둘러싼 치열한 대립과 아쉬움
지난 4월 10일, 사회주의 당건설운동 전면화를 위한 3차 공동토론회가 울산에서 열렸다. 40여명 정도가 참여하여 4시간여 동안 토론이 진행되었다.
최대강령과 이행강령
이번 토론 주제는 강령이었는데 핵심적으로 최대강령과 최소강령, 그리고 이행 강령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사노련 최영익 동지는 최대강령이 우리 운동의 근본적 요구라는 점이 분명하지만 이것을 제기한다고 해서 노동계급이 바로 이 요구를 자신의 요구로 받아들이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행강령이 함께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현실에서 당장 제기되는 요구들 중에서 반동화된 쇠퇴기 자본주의가 수용 가능한 수준을 뛰어넘는 급진적인 요구들(가령 “기업의 회계장부 공개”, “비정규직 완전 철폐”)을 이행강령으로 제기함으로써 최대강령에입각한 혁명의 필요성을 노동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다리를 설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준비모임 박성인 동지는 최대강령과 최소강령, 혹은 최대강령과 이행강령과 같은 구분은 무의미하며 대중의 의식은 단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의 강령 속에서 최대강령적 요소와 실천적 강령이 함께 담겨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최영익 동지는 실천적 강령이 최대강령과 섞여서 제기될 때 대중들이 순수하게 혁명적 강령과 당면의 실천 강령을 혼동함으로써 최대강령의 혁명적 성격이 희석화될 위험성 및 당면의 실천강령도 애매모호해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어느 무소속 활동가는 사노준이 이행강령의 문제의식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고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의 문제로 제기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합치할 수 있는 지점이 있어 보인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아래로부터 세워가는 노동자 권력
다음으로 대체권력의 문제와 관련하여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에 대해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박성인 동지는 대체권력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는 상황과 조건에 따라 달라질 것이며 중요한 것은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점에서 베네수엘라 차베스 혁명은 21세기 사회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시도로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최영익 동지는 대체권력의 형성은 노동자계급이 아래로부터 단결투쟁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스스로 획득해 나가는 과정이 핵심이라고 지적하면서, 한국 사회에서도 전평 투쟁이나 87년 노동자 투쟁의 과정에서 한계가 있기는 했지만 이러한 맹아들이 표출되기도 했다고 제기하였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차베스가 21세기 사회주의 등의 미사여구로 대중의 지지와 신뢰를 얻고 있지만, 결코 대안적 권력일 수 없으며 타도의 대상이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 군대와 경찰 등 부르주아 권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용할 뿐이며,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결합’시키려 하는 점에서 대안이 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더 많은 선진활동가들과 함께
강령의 구체적 내용과 관련해서는 토론이 많이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준비모임이 제기한 ‘농업주권 사수’, ‘보편적 인권’, ‘생태주의’ 요구가 계급적이지 못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있었다. 다른 한 참가자는 서로의 조직이 가진 한계와 약점을 인정하면서 서로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더욱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강령의 구체적 조항들이 논의가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서로간의 비판만 이어지는 것 같아 아쉬웠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토론회가 몇 차례 이어지면서 각 조직의 고민과 입장을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었다는 면에서 유의미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여전히 토론회가 새로운 노동자당 건설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을 갈구하는 선진 노동자들에게 명확한 길을 보여주는 토론회이지는 못하다는 반성적 평가가 남는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남은 두 번의 토론회가 좀 더 많은 선진 활동가들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장이 되길 희망한다.
창원 교사 노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