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제21차 임시 대의원대회 참관기
‘비지니스 프렌들리(친기업)’를 외치며 노골적으로 노동자 죽이기에 나선 이명박 정부의 출범에 온통 언론의 조명이 쏠려 있던 그 날, 양평 산골짜기 한켠에서 08년 임단투 요구안과 투쟁전술을 결정하는 금속노조 제21차 임시 대의원대회가 열렸다.
특단의 조치를 요구하는 긴박한 정세
정갑득 위원장의 개회사, 이명박 당선자에게 이미 무시당한 이석행 위원장의 연대사에서 마지막으로 채택된 결의문까지 긴박한 정세에 맞는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 함이 강조되었다. 채택된 결의문은, “이명박 정권은 ‘분배보다는 성장’을 모토로 강력한 노동통제 속에서 자본에 유리한 노동조건을 강제하려 준비하고 있다. 또한 ‘협조적인 노사관계’를 목표로 전투적인 노동운동을 무력화시키려 획책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비정규직을 양산하면서 사회양극화를 더욱 더 확산시켜 나가려 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엄중하기 때문에 올해 금속노조의 중앙교섭 성사와 요구안 관철은 만반의 준비와 결사적인 투쟁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가자! 노동해방>은 금속노조 대의원대회가 누구나 공감하는 긴박한 정세임에도 불구하고 정세를 돌파할 구체적 계획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대의원대회가 긴박한 정세를 돌파할 구체적 계획과 특단의 결의를 이끌어내야 할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앙상한 대의원대회 결과
대의원대회 안건은 1)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 합의 관련 건 2) 기아차지부 직가입 중단, 직가입 조합원 처리에 관한 건 3) 2008년 임단투 방침 확정 건 4) 민주노총 파견 중앙위원 대의원 선출 건 5) 4월9일 국회의원 총선거 금속노조 정치연대방침 관련 건 6) 올바른 1사1조직 추진 관련 건 7) 결의문 채택 순으로 토론되었다. 이중 현장대의원 10명 이상의 발의로 만든 안건이 5개이다. 현장발의안은 금속노조의 규율과 활동기풍을 잡기 위한 1, 2, 6번 안들과 긴박한 정세에 대응하기 위한 3, 5번 안으로 집약된다.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안이 없겠지만 긴박한 정세에 따른 금속노조의 08년 투쟁을 결정할 중앙교섭 요구안 과 투쟁전술 확정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러나 중앙교섭 요구안의 ⑷ 비정규직 처우개선 항의 수정동의안1 [고용, 근속 및 단협(제반합의사항) 등을 승계한다.(통과 - 원안에 추가)]과 수정동의안2 [원청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실질적 사용자이며 교섭요구 등에 성실히 응해야 한다.(통과 - 원안에 추가)]를 제외한 모든 안들이 부결되었다.
부결보다 더 무서운 것
처음부터 첨예하게 대립되었던 1)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 합의 관련 건을 다룰 때, 의장을 비롯한 많은 대의원들이 안건1)의 조기종결을 요구하며 들이댄 근거가 “가장 중요한 08년 요구안과 투쟁전술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렇게 중요하다고 했던 3) 2008년 임단투 방침 확정 건에 가서는 충분한 토론과 투쟁의지를 집중시키기 보다는 속전속결로 안 처리를 진행했다. 08년 중앙교섭 요구안 중 특히 중요했던 ⑴ 노동시간단축 및 교대제 개선에 대해 금속노조 내부 --완성차 4사와 부품사지회간 -- 의 견해차가 오해를 넘어 분열로 나갈 기미까지 있었음에도 충분히 논쟁하고 설득하기보다 간단한 표결로 종결해버린 것은 정갑득 의장의 의도 없이는 불가능하다. 부결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오해와 분열을 낳을 수 있는 불충분한 토론과 논쟁이다.
요구안의 차이는 노선의 차이다
3)안 질의․응답 시간에 정갑득 위원장은 “요구안을 가볍게 가져가고 싶다”고 했다. 이어 “중앙교섭만 할 수 있다면 금속노조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 중앙교섭을 위해선 완성차 4사가 관건이다”고 피력했다. 수정동의안을 제출한 현장대의원들은 완성차 4사가 관건이라는 점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으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시간단축 및 교대제개선 실행위원회>를 10월까지 구성”, “중소영세사업장 및 납품사에 대해 올바른 대책 마련” 등 언제, 얼마만큼 단축할지, 어떤 올바른 대책인지 모호함으로 가득 찬 요구안이 아니라 금속노동자 총단결을 위한 분명한 계급적 요구안 -- 5대 수정요구안.〈가자! 노동해방〉주간연속2교대 투쟁 특별호 참조 -- 을 갖고 현장을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구안을 둘러싼 의견 대립은 어제 오늘의 아니다. 07년 임단투 요구안 확정 대의원대회에서도 반복되었던 문제다. 이는 정갑득 집행부와 현장발의 대의원간의 화해하기 어려운 정치노선, 투쟁노선의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 산별노조 중앙교섭 성사를 위해선 어떤 것도 양보할 수 있다는 산별관료의 정치노선이 모호한 요구안으로, 금속노동자의 현장투쟁을 이끌기 위해선 계급적 요구가 필요하다는 현장발의 대의원의 정치노선이 5대 요구안으로 대립되는 것이다. 이 대립은 해소됨 없이 지속될 것이다. 오직 계급투쟁의 승패 여부에 따라 부침을 반복할 것이다.
완성차 4사와 부품사의 계급 분절이 오해를 낳고, 분열로 이어진다
현장발의 수정동의안의 패배와 금속노조 원안의 승리는 금속노조 내부 분절의 소산이기도 하다. 한일이화, 덕양산업, 대원강업 등 대부분의 부품사 지회는 현자․기아차 지부의 주간연속2교대 전환에 따라 심각한 구조조정으로 내몰리고 이에 따라 정리해고 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부품사 지회는 주간연속2교대가 현자․기아차 지부의 집단이기주의라는 생각까지 가지고 있다. 한 대의원은 “현자지부 요구안을 금속노조 요구안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니냐?” 는 항의성 질문까지 했다. 정갑득 위원장은 “주간연속2교대 요구안 만들었다가 부품사 문제로 포기했다”고 고백까지 했다. 주야맞교대 사업장 전체를 주간연속2교대로 바꿔야 할 금속노조가 자기 역할을 포기한 것이다.
또 다른 부품사 대의원이 윤해모 현자지부장에게 대놓고 지부교섭에서 주간연속2교대 요구안 가지고 들어갈거냐고 질문한 것은 08년도에는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윤해모 지부장은 단호하게 “작년 25명의 사망자 중 18명이 심혈관계로 사망했다. 더 이상 죽으며 일할 수 없다”며 주간연속2교대를 지부 교섭안으로 가져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품사 대의원이 염려하는 것만큼 대폭적인 물량축소가 없을 거라며 안심시키려 했다. 하지만 부품사 대의원 중 어느 누구도 안심하지 못했다. 완성차 4사와 부품사간의 분열의 강이 깊어질 뿐이었다.
금속활동가들 정신 바짝 차려야
5대 수정요구안이 부결된 대의원대회 결과 금속노조는 수세에 처하게 될 것이다. 노동시간단축과 주간연속2교대제 쟁취 투쟁은 현자․기아차 지부로 한정되게 됐다. 지금 조합원의 정치적 상태라면 지지받기는커녕 반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미 한국노총 금속노련이 주간연속2교대제 반대 성명을 냈다. 금속노조 소속 부품사 자본도 현자․기아차의 노동시간단축 및 주간연속2교대제 투쟁에 적극적으로 반대할 예정이다. ‘귀족노조’, ‘집단이기주의’ 공세에 자유로울 수 없는 현자․기아차 지부는 이전보다 더 큰 압박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주간연속2교대 전환과 연동된 고용, 임금, 노동조건, 비정규직, 부품사 문제 등을 현자․기아차 지부 독단적으로 처리하게 된 점이다. 금속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에 기초한 해결책보다 기업지부의 이해관계에 의해 처리될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현자․기아차 지부 대의원 대회에서 5대 수정요구안이 관철되지 않는다면 부르주아 언론에서 유포하고 있는 임금과 생산성 맞바꾸기 수준의 주간연속2교대로 귀결될 것이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노동자계급의 인간다운 삶의 일보전진이 아니라 자본의 노동통제 강화로 노동자의 삶은 파괴될 것이다.
3월에 지부 대의원대회가 예정되어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 다시 노동시간단축 및 주간연속2교대 쟁취투쟁을 조직하자. 금속노조에서 패배한 수정요구안을 현장에서부터 전면적으로 선동하고 조직하자!
정원현
부품사 선진활동가들에게
모든 부품사 동지들이 심야노동 철폐에 동의하며 장기적 주간연속2교대로 가는 것 찬성한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하는 기본 취지도 알겠습니다. 주간연속2교대 투쟁을 준비할 시간, 여력이 없었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더 반문해야 합니다. 현자-기아지부가 주간연속2교대제 실시하는 순간부로 동지들이 걱정하는 사태가 현실화 되는 겁니다. 부품사 동지의 의도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현자-기아지부의 주간연속2교대 투쟁이 동지들의 생존권에 직접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속노조에서 주간연속2교대 전환에 따른 완성차 4사, 부품사, 비정규직의 공동요구안을 만들고 그 기조로 투쟁하자는 5대 수정요구안이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현자-기아의 주간연속2교대 투쟁과 함께 할 방향을 모색해야 합니다. 요구안 확정 때 부품사, 비정규직 요구안을 포함시키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부품사 지회도 지역지부 대대, 지회의 사업장 교섭에서 주간연속2교대를 다루고 투쟁으로 돌파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5대 수정요구안
1. 모든 금속사업장은 일자리 창출, 건강권 확보를 위해 1일 8시간, 주 40시간의 실질노동시간을 2009년 1월 1일부터 실시한다. (법적노동시간이 아니라 실질노동시간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2. 현행 주야2교대로 가동되는 모든 금속사업장은 야간노동 철폐,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창출을 위해 주간연속2교대를 2009년 1월 1일부터 전면 시작한다.
3. 모든 금속사업장은 노동시간단축과 관련 노동강도 강화, 외주화, 전환배치, 정리해고, 상시야간조 도입 등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되는 조치를 일체 할 수 없다.
4. 모든 금속사업장은 노동시간단축과 함께 완전월급제로 생활임금을 보장하여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한다.
5. 모든 금속사업장은 노동시간단축으로 창출된 일자리를 기존 비정규직부터 우선 정규직화해서 정규직으로 충원한다. 그래도 남는 비정규직은 전원 원청 직고용으로 전환한다. 그리고 정규직이 되어 빠져나간 기존 비정규직의 일자리에 들어오는 신규 노동자들도 원청 직고용으로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