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투쟁의 전진을 위하여
6월14일, ‘우여곡절 끝에’ 비정규직 관련 노동자대회가 열리게 되었다. 민주노총과 산별연맹의 관료적 지도부들은 이 대회를 6말7초 투쟁 중 하루를 장식해주는 ‘일정 짜맞추기’ 용도로 바라보았을 뿐이다. 애초부터 “아래로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노동자대회”의 가능성은 차단되었다.
비정규직투쟁이 극복할 시급한 과제 : 조합주의 한계 넘기
그러나 관료주의의 폐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탓하는 것만으로 관료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문제는 관료주의를 깰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중적 투쟁흐름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대다수 비정규노조들이 자기 사업장의 문제에 너무 몰입하면서 더 이상 단결과 연대가 확장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물론 비정규직노조운동의 조건과 처지가 너무나 열악하기 때문에, 자기 사업장 문제에 매몰되는 현상은 자본의 공격에 맞서 조직을 지키기 위해 벌어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열악하다는 이유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하지 못하면서, 대부분의 비정규노조들이 속속 ‘조합주의’의 포로가 되어가고 있다.
전체 운동의 발전 속에서 자기 문제의 해결 전망이 열린다는 관점보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자신의 문제만 해결되면 언제라도 타협할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가, 상당수 비정규노조들이 보여주고 있는 현주소이다. 게다가 비정규노조들의 열악한 상태로 인해 이러한 타협조차도 적지 않은 희생을 감수하며 투쟁을 전개해야만 가능하다.
노동계급 전체의 요구가 아니라 자기 문제 해결을 위한 타협을 향해, 그리고 전체 운동의 발전이 아니라 사업장의 좁은 이해관계 속으로 투쟁의 열망을 가두게 되니까, 각각의 비정규직 투쟁에 들어가는 노력과 희생에 비해 대중들이 활동가로 성장하는 속도와 숫자가 아직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패배의 경험으로부터 배우기
지난 10년간 밀려온 계급역관계를 냉정하게 바라보았을 때, 현재 확보하고 있는 비정규직 투쟁역량으로 대중적 열망에 입각한 요구를 쟁취하는 것은 매우 힘든 과제이다. 물론 때때로 승전보가 들려오긴 하지만, 대부분 실질적인 투쟁역량으로 쟁취했다기보다는 상대하는 자본이 각종 비리나 부도덕성 문제가 심각해서 노동자들에게 양보한 경우가 많다.
결국 냉정한 힘관계가 밀려있는 현실 속에서 대다수 비정규직 투쟁은 장기투쟁의 길을 걷게 된다. 자기 사업장 투쟁의 승리에만 과도하게 매몰되다보면, 투쟁의 장기화가 낳게 되는 생계문제 등 어려움 속에서 투쟁을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가 즐겨 부르는 노동가요의 “아흔아홉 번 패배할지라도 단 한번 승리를 위하여”라는 가사처럼, 민주노조운동은 승리보다 패배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워왔다. 패배로부터 제대로 배워야, 기회가 왔을 때 훨씬 멀리 전진할 수 있고, 승리도 쟁취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기억하는 주요한 비정규직 투쟁들의 다수가 - 한국통신계약직 투쟁, 캐리어 사내하청투쟁 등 - 사실은 ‘장렬한 패배’로 마무리된 투쟁들이다. 비정규직 투쟁은 이러한 패배로부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계급적 단결, 산업과 지역을 넘는 굳건한 연대투쟁, 비타협적 투쟁, 계급의식적 활동가들의 육성 같은 소중한 교훈을 끌어내왔다. 그리고 이런 교훈으로 무장하고, 새로운 대중적 분출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현장 속에서 조직화 작업들을 진행하며 성장해왔으며 그렇게 또 성장해가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 서게 되었을 때 현재 비정규직노조들 다수를 포획하고 있는 ‘조합주의’와의 투쟁이 가능해진다. 자신의 사업장 문제가 전체 비정규직, 나아가 전체 노동자의 문제와 어떻게 결합되어 있고, 다른 부문의 노동자투쟁이 우리 사업장 투쟁과 어떤 연관을 맺으며 발전하는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투쟁에 결합한 노동자들의 시야가 넓어지고 활동가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가령 지금 기름값 폭등에 따른 화물·덤프·레미콘 노동자들의 투쟁이나 공기업 민영화에 맞선 공공부문 노동자투쟁,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 정리해고나 노조 탄압에 맞선 비정규직,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의 투쟁은 모두 전체 노동자투쟁의 일부로서 서로 긴밀히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자본과 정권에 맞선 계급투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비정규직 투쟁은 가장 분명하게 노동자의 요구를 내걸고, 가장 폭넓게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를 추구하며, 가장 단호하게 자본과 정권에 맞서 싸우는 전체 노동자운동의 선진부대가 될 때만 제대로 전진할 수 있고, 새로운 돌파구도 찾을 수 있다.
계급의식적 활동가들의 네트워크 형성으로 출발하자!
현장별로, 지역별로, 그리고 전국적 차원에서 ‘조합주의’를 극복하려는 계급의식적 노동자투사들이 결집할 수 있다면, 활동가로서의 성장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우리의 투쟁은 패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어깨에 850만 비정규직, 1천5백만 노동자 전체의 생사가 걸려 있기에 밀어갈 수 있는 한계지점까지 투쟁을 밀어갈 것이다!”
“우리가 밀리면 전체 노동자가 밀린다! 비정규직 철폐! 구조조정 분쇄! 투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하더라도 여기서 승부를 봐야만 이명박의 가장 약한 고리에서 파열구가 날 것이다!”
“약한 고리에서 파열구가 나면 제2, 제3의 파열구가 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 파열구를 뚫고 1천5백만 노동자가 전진하는 속에서만 우리 투쟁의 전망이 놓여 있다!”
이러한 의식으로 무장한 노동자들이 현장별로, 지역별로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은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물론 활동가 네트워크가 당장 대중투쟁에 연료를 제공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아주 자그마한 계기점에 의해 대중투쟁이 다시 전진하기 시작하면 활동가 네트워크는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네트워크를 반드시 투쟁사업장 활동가들만으로 한정지을 이유는 없다. 계급의식적 활동가라면 어느 업종이냐 어느 지역이냐를 떠나, 더 나아가 비정규직 활동가냐 정규직 활동가냐를 떠나 함께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 운동의 발전 속에 우리 사업장 과제의 해결 전망이 놓여 있다는 점을 공유한다면, 투쟁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변화가 다른 사업장에도 연관을 맺고 발전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이는 6월14일! 이 대회가 갖고 있는 한계 뿐아니라 비정규직 투쟁이 갖고 있는 한계와 약점을 직시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출발점으로 비정규직철폐 노동자대회를 맞이하자!
오민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