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노동자ㅣ명분이 없다, 투쟁하지 않을 명분이!
공기업 민영화를 둘러싼 최근 발표들은 외관상 전혀 일관성이 없었다. 6월 2일 <한겨레>는 “민영화로부터 확실하게 발을 빼는 방안이 청와대 주도로 구체화”되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6월 16일 <이데일리>에서는 이 보도가 뒤집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공기업 민영화와 관련, ‘시기 문제이지 하느냐 마느냐 문제는 아니다’라며 ‘작은 정부 큰 시장이 이명박 정부 모토인데 공기업 민영화 안하고 어떻게 작은 정부 큰 시장을 하느냐’고 말했다.”
19일에는 또 말이 바뀌었다. 한나라당 최경환 수석정책조정위원장과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언론에 나와 ‘가스, 전기, 수도, 의료보험 등 4대 부문에서 민영화 조치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더욱이 이번에는 당정 간에 이야기가 끝났다며, 상당히 그럴 듯한 인상을 풍겼다. 특별기자회견을 한 대통령 역시 이 방침을 재확인해줬다.
이 때문에 상당수 공기업 노동자들이 상황을 직시하는 데 혼란을 겪었다. 이제 민영화는 물 건너간 것 아니냐, 이런 상황에서 굳이 파업에 나설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더 나아가 민주노총이 추진하는 총파업 계획은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공기업 노동자들을 헷갈리게 만들어라!”
궁지에 몰린 이명박 정부는 탈출구를 찾으려 애쓰고 있다. 거리로 몰려나온 미조직 노동자들이 이명박 정책 일괄 반대를 외치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화물연대·건설기계 파업, 민주노총 총파업 등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정부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게다가 이명박 핵심 정책인 민영화에 맞서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크게 들고 일어난다면 이명박은 완전히 코너로 몰릴 것이다. 한나라당 최경환 역시 “[촛불투쟁이 확대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민영화 이야기를 꺼낼 시기는 아니다”라면서, 때를 노리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짐짓 양보하는 척 해야만 했다. 19일의 민영화 유보 발표가 바로 그것이었다. 물, 전기, 가스, 의료보험 등 서민생활과 직결된 부분에서 민영화를 유보한다고 말함으로써 두 가지 효과를 노렸다. 한 편으로는 ‘이대로는 못 살겠다’며 거리로 나온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떡고물을 던지는 것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투쟁 경험을 갖고 있는 조직 노동자들에게 떡고물을 던지는 것이다.
바뀐 게 뭐가 있나
겉모습과는 달리, 정부 방침은 일관되고 확고하다. 19일 기자회견을 하면서 이명박은 “오는 9월 정기국회가 열리면 법을 바꿀 것은 바꾸고 바꾸지 않아도 되는 것은 바꾸지 않으며 [민영화를] 차근차근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나라당 역시 “기본적으로 공기업을 민영화하거나 구조개혁을 해야 하는 정책임이 분명하다.”고 못 박았다.
같은 날 기획재정부도 “이번 조정으로 민영화 대상에서 빠졌다고 해도 해당 기관에 대한 구조조정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인력감축, 조직축소 등 구조조정 공격이 한층 더 강력해질 것임을 시사했다. 청와대 대변인 역시 “개혁과제[저들은 노동자 죽이기 정책을 개혁이라고 부른다]를 한꺼번에 밀고 나가는 것은 무리와 부담이 따르는 만큼, 전략적 우선순위를 정해 치밀하고 착실하게 추진하자는 것”이라고 그 방향을 명확하게 밝혔다.
민영화가 물 건너갔다는 판단은 완전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투쟁을 회피할 명분이 없다
거리로 나선 미조직 노동자들이 민영화 반대를 외치고 있다. 80%의 시민이 민영화를 거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민주노총이 무언가 해야 하지 않는가라고 그들은 묻는다. 민주노총 총파업에 대해서도 10%가 반대의사를 밝힌 반면 50% 이상이 지지의사를 표현했다. 모든 것이 뒤집히고 있다. 지금은 ‘투쟁에 나서지 않을 명분’이 없으며, ‘파업 거부의 정당성’이 없다!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조차 조직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지 않는다면, 곧바로 정부의 역공이 들어올 것이다. “거봐라, 저 노동자들은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배부른 귀족노동자들이다!”라고 말이다.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전면 투쟁을 주저할수록, 공기업 노동자들은 더욱더 불리한 처지로 내몰릴 것이다. 반대로 이명박은 시간을 벌고 위기를 극복하면서 한층 더 강력한 전투태세를 갖출 것이다.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둘 중 하나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더 늦기 전에 신속하게 투쟁을 준비해나갈 것인가, 아니면 한층 더 불리해진 조건에서 투쟁을 강요당할 것인가!
오연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