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투쟁 - 현장의 요구를 전면에 내걸자!
최근 정부는 50여 개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매각대금 63조원으로 일자리 창출과 경기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전체 공공부문 노동자의 3분의 1 수준인 7만8천명을 감원하겠다고 한다. 실업자 양산계획을 세워놓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하니, 미친 정부라고 비난받는 것도 당연하다.
공기업 인력감축은 이미 진행 중이다. 2010년까지 정원의 10%를 줄인다는 도시철도에서는 매표소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서울지하철은 한술 더 떠, 2010년까지 20%를 감원하겠다고 한다. 계속 정원규모를 줄여 마치 현원이 정원을 초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수작까지 부려 놓았다.
철도에서는 지난 19일부터 주요 역사에서 1인시위, 천막농성이 전개되고 있다. 전기시설 외주화, 역무인화를 통해 일자리를 줄이려는 공사 측의 시도에 맞서기 위해서다. 공사는 유지보수업무 대부분을 외주화하고 매표업무를 생략할 것이라고 공언하면서 고용불안을 심화시키고 있다. 공무원노동자들 역시 퇴출제와 연금개악이라는 방식으로 공격받고 있다.
공격의 관제탑
이러한 공격은 각 공기업·공공기관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공공부문 노동자의 고용과 노동조건에 관한 통제권을 쥐고 있는 것은 기획재정부다. 이들이 짜놓은 예산안 틀 속에서 공기업들은 인원감축, 비정규직·외주화, 실질임금 삭감 등의 공격을 가한다.
<2008년도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지침>이 그 점을 잘 보여준다. 이 <지침>은 온통 ‘예산절감’, ‘성과지향’, ‘경영효율’ 등의 구호로 가득 차 있으며, ‘인력증원은 최대한 억제’한다고 못박았다. 게다가 “2008년도 총인건비 예산은 2007년도 총인건비 예산의 3% 이내에서 증액하여 편성한다.”고 규정했다. 공공부문 노동자의 임금인상률을 물가인상 수준에도 못 미치게 함으로써 실질임금을 삭감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경영평가 결과에 따라 예산 할당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공기업 사장들은 자신의 ‘경영성과’를 높이기 위해 비용절감과 인원감축에 목을 맨다. 이런 식으로 정부는 공기업들을 민간자본가들에게 매각하기 용이한 ‘탐나는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 피해가 그대로 공기업 노동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민영화 공세의 실체
결국 민영화 공세의 실체란, 거듭 이야기하듯이 매각과 소유권·경영권 이전에 있지 않다. 민영화라는 형식을 통해서 노동자에 대한 착취의 강도를 한층 더 높이고, 이를 통해 자본가들의 돈주머니를 채워주는 것이 그 핵심이다. 그리고 이 점은 설사 매각·민영화가 유보되더라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그 방향을 알려준다. 철도의 1인승무, 역무인화, 외주화 등의 구조조정 공세, 도시철도와 지하철의 상시퇴출제도와 전환배치, 분사·자회사를 통한 인원감축, 퇴출제와 연금개악 등 바로 지금 현장을 덮치고 있는 공격을 받아치고 분쇄하는 것, 바로 그것이 민영화 저지투쟁의 핵심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의 일부 상층 지도부들은 이러한 현장의 절박한 요구를 추상적인 ‘사회공공성 강화’로 덮어버리거나, 매각 철회 그 자체로 국한시키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 이런 경향은 투쟁의 진정한 표적을 흐릿하게 만들 위험이 크다. 현장의 선진활동가들이 앞장서서 이 점을 바로잡아야 한다.
감원계획에 맞서 공세적으로 제기하는 적정인력충원, 외주화·비정규직화 계획 전면 철회, 실질임금 삭감시도에 맞선 과감한 임금인상 등 현장의 요구를 전면에 내걸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올해 공공부문 투쟁의 실제 동력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정부에 맞선 공동투쟁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공공부문 노동자에 대한 공격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기획재정부, 결국은 이명박 정부다. 모든 공공부문 투쟁은 결국 노동자 착취강화를 강제하는 기획재정부 예산지침을 무력화시키는 투쟁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더 나아가 필수유지업무제도를 강제하며 이 모든 사태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자본가 살리기 정책을 분쇄하지 않는다면, 절대 노동자에게 평화란 없을 것이다.
이러한 투쟁은 한 사업장만의 힘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공공부문 감원계획에 맞선 투쟁을 자기 사업장 안에서만 풀려고 하면 절대 답이 안 나온다. 오히려 각개격파 당할 뿐이다. 그러나 착취강화의 관제탑인 정부와 기획재정부에 맞선 정치적 투쟁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반드시 공동투쟁의 대열에서 모이게 될 것이다. ‘정치총파업’이라는 전망 아래 단결투쟁을 준비할 때에만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실제적인 전진의 통로를 찾을 수 있다.
관료적 일정 맞추기를 넘어서자!
이때 중요한 것은 정치총파업 준비를 관료적인 일정 맞추기로 바꿔치지 않는 것이다. ‘6말 7초’까지 미룬다고 투쟁역량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내일 당장 총파업’을 외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는가?
‘현재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이 그 출발점이다. 도시철도와 지하철의 강제 전환배치와 인원감축에 맞선 투쟁, 철도의 외주화에 맞선 투쟁이 진정한 ‘민영화 저지투쟁’의 출발점이자 그 내용이다. 노동조합 지도부들은 이 현장투쟁들을 반드시 사수하고 연대투쟁으로 발전시킴으로써 ‘민영화 저지투쟁’의 의지가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선진활동가들은 한편으로는 지도부들이 이 투쟁을 잘 할 수 있도록 압력을 넣는 것과 나란히, 무엇보다도 ‘현장의 요구를 전면에 내건 아래로부터의 투쟁’, ‘공식 절차에 얽매이지 않는 자발적인 연대투쟁’을 가장 선두에서 적극적으로 조직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이러한 투쟁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조직해 가는가에 따라,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한 정치총파업을 얼마나 빠르게 현실화시킬 수 있을 것인지 결정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치총파업의 힘을 끌어모으기 위한 당장의 투쟁에 얼마나 충실하게 복무할 것인가이다!
오연홍
5월 24일 공공부문 민영화 반대 집회가 보여준 것
지난 5월 24일에 열린 공공부문 민영화 반대 집회에는 교사, 궤도, 발전, 공무원, 병원, 사회보험 등 전국에서 3만 명 이상의 많은 노동자들이 참가하여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체감하고 있는 위기의 정도를 보여주었다. 이미 많은 현장에 몰아닥치고 있는 구조조정에 지금부터 곧바로 맞서야 할 필요성을 현장노동자들이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철도만 하더라도 근래에 보기 드문 6천명의 인원이 서울역집회에 참여하여 열기를 보여주었다. 그만큼 현장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현장의 요구를 자신 있게 내건 투쟁계획이 필요했다
이에 반해 지도부들은 조합원의 열기를 모아낼 충분한 자신감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들은 공공부문 노동자의 공통 요구인 고용보장과 인력충원, 물가폭등을 따라잡는 과감한 임금인상을 자신 있게 내거는 대신 사회공공성이라는 추상적인 언사 뒤로 숨었다. 현장노동자들이 기대했던 구체적인 투쟁계획과 지침은 찾을 수 없었다. 24일 집회에서 현장노동자들이 원했던 것, 그리고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만들어가야 할 것은 다름 아니라 ‘이미 현장에서 가해지고 있는 공격에 맞서 제대로 싸울 의지와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