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면한 비정규투쟁전선, 구체성이 생명이다!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파견허용업종을 대폭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이명박 정권의 비정규법 개정안이 4월 국회에 올라온다. 양 노총의 반발을 의식한 한나라당은 은근슬쩍 ‘법 적용 4년 유예’론을 들고 나왔지만, 이건 정부안보다 한술 더 떠 사용기간을 6년으로 늘리자는 사기술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진영은 또다시 국회를 중심으로 한 대응과 이슈파이팅에 머물러 있다. 비정규법 개악저지와 최저임금투쟁, 경제위기 대응투쟁을 하나의 전선으로 묶어세우자는 유의미한 제안도 나오고 있지만, 이 역시 구체적 방안이 뚜렷하지 않다.
대중투쟁과 저항을 만드는 것이 핵심
전체 850만 비정규직 중 2년 이상 근속을 채우는 노동자들의 숫자는 채 30%를 넘지 못한다. 즉, 현행법상 2년 이상 무기계약 전환대상이 되는 비정규직은 그나마 상위레벨에 속한 이들이다. 절반 이상의 비정규직이 1년 근속조차 채우지 못하고 짤려나간다.
그럼 왜 정부는 이토록 기간연장을 목놓아 외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그나마 상위레벨에 있는 노동자들이 더 밑바닥으로 떨어질 때 저항에 나설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가장 밑바닥 노동자들이 아니라 밑바닥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이 가장 역동적인 투쟁을 만들어왔음을 보아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이명박 정권은 그러한 저항을 차단하기 위해, 아니 2년이라도 연기시키기 위해 기간연장에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 맞선 대응방안 또한 명쾌하다. 저항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 저항은 반드시 비정규악법 기간연장에 맞선 것일 이유가 없다. 당장의 해고에 맞선 저항, 임금삭감·구조조정에 맞선 저항,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조직해내는 것이다. 법을 손질해도 저항이 중단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저들은 법 개악을 중단할 것이다. 아니, 대중투쟁과 저항이 올라온다면 법이 개악된다 할지라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어떻게 하나의 전선으로 묶을 것인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지만 무작정 꿰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현실의 생생한 구체성을 획득해야만 각각의 투쟁전선을 결합시킬 수 있다. 억지로 묶으려 하기보다 각각의 구체적인 투쟁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투쟁주체들 스스로 인식하도록 조직함으로써 각각의 전선을 확장시키는 방식이 훨씬 구체적이다.
지난 3월 5일 정리해고 통보서를 받은 쌍용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평균근속은 8~11년이다. 정리해고 위협 앞에 서 있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비슷하다. 즉, 사용기간이 2년이냐 4년이냐와 무관하게 장기근속 비정규직들이 공황으로 인해 짤려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투쟁전선에서 “비정규직 보호의 핵심은 기간연장이 아니라 당장의 해고를 중단시키는 것”이라는 선동과 조직화가 가능하지 않은가!
이번에는 최저임금투쟁을 살펴보자. 기존 최저임금투쟁의 핵심 주력대오는 노조로 조직된 청소용역 노동자들로서, 상대적으로 계약갱신이 반복적으로 이뤄진 층에 속한다. 그러나 최저임금선에 걸려있는 노동자 전체를 보았을 때, 대다수는 임금이 너무 낮아서 사업장 이동이 잦다. 다시 말해 저임금으로 인해 1년도 못 채우고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여기서도 “비정규직 보호? 우선 임금부터 올려라! 배고파서 못살겠다!”는 얘기가 가능하다.
아울러 해고와 임금삭감은 노동자들의 소비능력을 극도로 낮추기 때문에 소비위축으로 인한 공황을 더욱 심화시킨다. “경제위기 극복? 그럼 우선 해고부터 중단하라!”
의원나리들이 아니라 더 낮은 곳으로!
기존 국회 중심 대응이 가진 한계는 ‘법 자체에 매몰되는 경향’이다. 오로지 법안통과 저지에만 몰두해 왔다는 뜻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의 근원이 비정규악법에 있는가? 비정규악법만 없어지면 고통의 일부라도 해소되는가? 고통의 근원은 비정규직 제도 자체가 노동자들 스스로 단결하기 매우 어렵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에 놓여 있다. 투쟁과 저항의 권리만 있다면 자본의 공격은 되받아칠 수 있는데 그럴 권리가 박탈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망은 국회가 아니라 더 낮은 곳에서 찾아야 한다. 해고 중단과 임금삭감·구조조정 중단, 경제위기 책임전가 반대의 논리를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전파하고, 스스로 단결해 싸워야 한다고 호소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비정규악법 기간 연장한다고? 우리는 악법이 어떻게 되건 밑바닥 노동자들을 조직해서 싸우겠다!” 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대중투쟁과 저항이라면, 바로 그 영역에서 승부수를 띄워야 하지 않겠는가!
오민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