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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어디로 : 노해연-26호] 부동산투기 억제정책
 정책위  | 2008·05·14 12:20 | HIT :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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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해연_26호]_부동산투기_억제정책.hwp (24.0 KB), Down : 586
  • 부동산투기 억제정책, 어떻게 볼 것인가?


      최근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가격을 안정화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천명하고 있다. 실제로 여러 세금정책이 제시되면서, 강남을 비롯한 주요 부동산 투기지역에서 부동산 가격 폭등 흐름이 꺾이고 있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은 조치를 바탕으로, 정부는 돈의 흐름을 은행과 기업으로 돌려 침체되고 있는 경제를 구출할 수 있다는 야심찬 계획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실제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결정적 조치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것이 과연 침체된 경제를 회복시키는 결정적인 조치가 될 수 있을까?

    토지공개념과 자본가의 소유권
      노태우 정부가 등장했을 때, 토지공개념이라는 표어가 천명된 바 있었다. 불행하게도 토지공개념이라는 표어는 등장과 함께 가진자들의 강력한 반격을 맞게 되었고, 몇 가지 사소한 유명무실한 조치들이 시행된 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토지공개념이 등장한 것은 대단히 오래된 일이다.
      사실 인류가 등장했을 때, 그리고 원시공동체가 존속했던 수천 년 이상 동안 토지공개념이란 규정은 전혀 불필요했다. 왜냐하면 그 누구에게나 토지는 자연이 무상으로 제공한, 함께 공유해야 할 공동재산으로 자연스럽게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감히 토지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었고, 토지를 개인의 재산으로 매매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토지는 마치 공기나 바닷물처럼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공동체적 생산체제가 붕괴하면서 사적 재산 개념이 등장하고, 일부 특권층이 공동재산인 토지를 강제로 접수함으로써 비로소 토지는 사적 재산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최초의 행위로 볼 때, 이것은 분명 과거 공동체 성원들에 대한 ‘강도, 강탈’이었다. 그 뒤 결국 토지는 돈을 주고 팔고 사는 개인 재산으로 변화했다. 그렇다면 이처럼 돈을 주고 구매한 토지는 ‘개인의 재산’으로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인가? 만일 그것이 정당하다면, 도둑질한 물건을 돈을 주고 구입한 구매자가 ‘이것은 나의 개인 재산’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정당할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법률조차도 도둑질한 물건에 대해서는 원래 실소유자에게만 소유권을 인정하고 있다. 아무리 비싼 돈을 주고 구입했더라도, 장물에 대한 소유권은 절대 인정되지 않는다. 토지 또한 마찬가지다. 원래 사회 구성원 전체의 공동 소유물이었던 이 토지는 그 이후 수천 번 소유자가 바뀌었더라도 반드시 원래의 소유자, 즉 사회 전체에게 돌아가야 할 그런 재산이다. 바로 이를 반영하는 토지공개념만이 진정한 ‘공개념’이며, 그 점에 비춰보면 단지 ‘과세정책’에만 초점을 맞출 뿐 토지에 대한 개인적 소유를 완전히 인정했던 노태우 정부의 ‘토지공개념’은 사실상 완전히 가짜였던 셈이다.
      토지에 대한 개인 소유는 부당하다는 사실은 자본주의 초창기에 부르주아 경제학자들도 인정했던 바였다. 애덤 스미스를 비롯한 당시의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노동가치설로부터 사적 소유권의 정당성을 끌어내려 했다. 물론 이것은 상당히 모순적인 이론이었다. 만일 모든 소유는 오직 노동의 결과물인 경우에만 승인될 수 있다면, 노동하는 사람들을 쥐어짜서 벌어들이는 모든 소유는 그 정당성을 승인받을 수 없게 된다. 한마디로 자본과 이윤의 정당성이 근본적으로 의문시된다. 따라서 당시의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노동가치설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고 모두 삼천포로 도망쳐버렸거나 아니면 혼동과 모순 속으로 빠져들었다. 자본가들의 이익을 대표했던 그들로서는 그것을 피할 수 없었다. ‘자본의 이윤’이라는 장벽 앞에서 그들은 과학적 양심을 내팽개쳤던 것이다. 그 이후 부르주아 경제학은 초기의 과학적 흔적조차 잃어버리고 오직 자본가들의 이윤 획득을 정당화하고 이윤을 축적하는 데 기여하는 도구로만 존재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초기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노동가치설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일관되게 관철하려 노력했던 영역이 있었다면 다름 아닌 토지 분야였다. 봉건지주들과 맞서 지배권을 쟁취함으로써 농노들을 노동자로 변화시키고자 했고, 정치권력의 주인공이 되고자 했던 당시 자본가들은 지주의 물질적 토대였던 토지소유를 공격해야만 했다. 자본 축적이라는 관점에서도 초기 자본주의는 토지소유를 반대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토지에 자본을 투자하기 위해서는 자본가들이 토지 소유자인 지주들에게 지대를 납부해야만 했다. 또한 기껏 토지를 개발해도 그 성과들(가령 토지 개량이나 농로나 수로 개발)은 계약기간이 끝나면 지주의 수중에 고스란히 돌아갔다. 이것은 농업 분야에서 자본 축적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애물이었다. 이런 자본가들의 이해를 대변해서 당시의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토지공개념’을 제창했다. 당시의 토지공개념의 의미는 간단명료했다. 토지는 인간의 노동이 개입되지 않은 자연의 선물이므로 누구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토지 분야에 국한되었던 이런 공개념에서조차도 자본가들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결국 후퇴했고, 오히려 이제 그들은 토지 소유에 대한 가장 강력한 옹호자로 변신했다.
      하나의 이유는 만일 토지공개념이 옳다면, 자본에 대해서도 공개념을 적용하자는 주장도 충분히 옳기 때문이었다. 만일 자기 노동을 통해 만들어내지 않았기에 토지를 개인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옳지 않다면, 타인(노동자들)의 노동을 착취해 계속 증식시켜온 자본에 대해 자본가들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이 자본(공장 등의 생산수단)이 정녕 노동자들의 공동노동의 결과물이라면, 그 소유권은 응당 노동자에게 있어야 한다.’ 단, 이 경우 노동자들은 개인적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선 이것은 해당 작업장 전체 노동자들의 공동노동의 산물이며, 다음으로는 이 작업장을 ‘역사적’으로 거쳐간 모든 노동자들의 공동노동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결국 ‘토지공개념’이 옳다면, ‘자본(생산수단)공개념’도 옳은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자본주의 경제질서와 절대 양립할 수 없다. 결국 자본에 대한 소유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자본가들은 토지공개념에서 후퇴하고, 이것에 철저하게 반대해야만 했던 것이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이제 토지의 주요 소유자들은 더 이상 봉건지주가 아니라 자본가들 자신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토지는 자본의 주요한 투자 영역으로 재편되었고, 많은 자본가들이 부동산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획득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토지공개념은 자본가들 자신을 겨냥하는 것이며, 당연히 그들은 이에 적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수시로 ‘부동산 투기 억제’라는 말들이 정부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일까? 왜 상당수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부동산 투자를 통한 이윤 획득’에 대해서는 한사코 비판하려는 것일까? 그것은 공장이나 작업장과 같은 실물자본에 대한 투자는 노동자의 공짜 노동을 갈취할지라도 국가의 부를 증대시키기는 하지만, 부동산에 대한 투자는 이 국가의 부를 끊임없이 빨아들이기만 할 뿐 덧붙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가령 부동산가격이 열 배 이상 뛰더라도 사회적으로 증가한 부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또한 모든 자본이 부동산에 대한 투자에만 집중되면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경제 발전은 전혀 없을 것이며, 사회는 뒤로 후퇴할 것이다. 그렇기에 자본주의 경제 전체를 관장하는 정부와 자본주의 경제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부동산 투자’ 만큼은 예외 조항을 적용하면서 ‘투기’라고 낙인찍고, 자본투자 영역에서 가급적 배제하거나 제한하려 애쓰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들의 주장처럼 부동산 투자는 ‘투기’에 불과하다면, 마찬가지로 비판받아야 할 자본 투자의 범위가 대단히 넓어지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의 발전 추세다. 주식 투기는 그 단적인 예다. 주식 거래소에서 주식가격이 갑자기 몇 배 이상 뛴다고 하더라도, 실제 경제가 그만큼 전진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공장의 규모와 시설, 기술력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처럼 실물자산은 그대로이지만, 주식가격은 수시로 널뛰기를 하며 이 널뛰기로부터 일부 투자자들은 막대한 이익을 남기고 일부는 손해를 본다. 이것도 부동산 투기와 마찬가지로 투기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자본주의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주식회사제도를 지탱하는 주식거래가 투기로 비판받을 수 있다면, 이것은 자본주의 경제 자체의 정당성을 의문시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다음이 분명해진다. 초기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제창했고 지금도 일부 학자들은 동의하고 있는 최소한의 진보적 정책인 토지공개념조차도 자본주의 경제 하에서는 결코 관철될 수 없다. 그런 이상, ‘부동산 투기 억제 정책’은 말 그대로 ‘약간의 억제 정책’에 불과한 대단히 소심하며, 또한 그 실효성이 대단히 의문시되는 껍데기 조치에 머무를 수 있을 따름이다. 이윤을 찾아 이리저리 배회하는 자본가들은 돈만 된다면 부동산 투자라는 영역을 결코 피하지 않으며, 세금정책은 단지 그들의 투자를 약간 위축시킬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식투자 등에서 과열 조짐이 보이고 거품현상이 발생하면, 이것을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부동산 투자 진흥 정책으로 빠르게 돌아설 것이 분명하다. 현 정부가 자본가들의 이윤을 보장해주는 정부이며, 그들의 이익과 결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것 말고는 경제가 작동할 수 있는 다른 길은 알지 못하는 그런 정부인 이상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는 것은 헛된 꿈을 꾸는 것에 불과하다.

    이른바 경기부양정책의 허상
      객관적 진실이 그렇기에 최근의 부동산 투기 억제정책은 전체 노동대중을 위한 정책이라고 볼 수 없다. 진짜 의도는 따로 있다. 그것은 침체되고 있는 내수경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특단의 조치다. 정부 경제부처의 계산은 대충 이런 것이다. “부동산 경기 과열을 차단하면, 투자처를 찾는 돈은 부동산에서 벗어나 은행과 같은 금융시장이나 주식시장에 몰릴 것이다. 그러면 돈은 자연스럽게 기업으로 흘러들어가 투자의 재원으로 이용될 것이다. 그리하여 투자가 활성화되면 경기는 자연스럽게 회복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바보스런 진단이다. 우선 부동산 경기 과열은 경기침체의 결과이지 결코 원인이 아니다. 내수시장 침체와 세계경쟁의 격화에 따라 기업들이 효과적인 자본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생산 확대를 꺼리면서 은행에는 돈이 남아돌게 되었고 주식시장도 침체되었다. 그러자 적절한 수익처를 찾지 못하는 돈들이 부동산 시장으로 몰려들었고, 이것이 부동산 가격 폭등의 원인이었다. 이 상황에서 부동산 투기 억제정책을 강하게 집행한다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 것인가? 물론 돈은 정부의 희망대로 은행이나 주식시장에 몰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본가들이 적절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은행에 몰린 돈을 투자할 대상을 은행은 찾기 힘들다. 따라서 은행들은 돈이 은행으로 몰리는 것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돈이 몰려도 이 돈을 빌려가서 적정 이자를 가져다줄 기업들이 대단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는 한, 결과는 그렇지 않아도 낮은 이자율을 더 낮추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상황이 이렇다면 은행에 돈을 맡길 사람들은 대단히 드물 것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빠져나온 돈은 결국 주식시장으로 몰릴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부의 계산대로라면 주식가격이 폭등해서 기업들이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하지만 생산을 대폭 확대해도 적절하게 판매할 시장이 부족한 상태라면 기업들은 투자에 적극적일 수 없다. 따라서 결국 생산분야의 충분한 확대 없이 단지 주식가격만이 폭등하는 거품현상이 일어날 뿐일 것이다. 이 폭등은 적절한 투자처가 없이 떠도는 돈들을 일정 기간 주식시장으로 대거 끌어당길 것이며, 이런 식으로 주식시장은 계속 화끈 달아오를 것이다. 하지만 주식가격이 아무리 올라가도 그것이 공장과 작업장의 성장과 생산량 증대를 동반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아무런 발전도 달성할 수 없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생산에 확대투자하지 않고서도 자기 소유의 주식가격이 대폭 인상됨으로써 엄청난 불로소득을 챙길 것이다. 일부 투자자들도 상당한 이득을 남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도 잠깐 동안이다. 비누방울처럼 솟아오른 주식가격은 실제 기업의 실물자산 가치와 괴리되어 결국 터질 수밖에 없다. 피해는 오직 사회가 치러야 한다. 거품현상에 따른 모순 때문에 사회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무려 10년 이상 주식시장 거품 붕괴 후유증에 시달렸던 일본의 모습은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마지막 남은 계산은 ‘해외자본 유치’와 관련된 것이다. 주식시장이 폭등하면 시세 차익을 노리면서 해외자본이 한국 주식시장에 대거 유입될 것이다. 이것은 일정 기간 주식가격 폭등을 뒷받침할 것이 분명하다. 또한 이렇게 유입된 달러를 바탕으로 정부의 외환보유고는 폭발적으로 증대할 것이다. 그러나 거품이 터지기 시작할 조짐이 보이면, 해외자본은 모두 썰물처럼 한꺼번에 빠져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외환보유고는 단 며칠 만에 텅텅 비게 될 것이며, 환율은 급작스럽게 높아져 원화의 안정성도 의문시될 것이다. 경제는 수직 추락할 것이다. 이것이 브라질과 멕시코 등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결국 부동산 투자 억제와 경기부양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성과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아무런 실효를 거둘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단지 거품현상을 촉진하고 갑작스런 경제 붕괴의 효과를 극적으로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실제 해결책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어떤 해결책이 필요한가?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은 사실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경기침체의 원인은 무엇인가? 무엇이 자본가들의 투자욕구를 제한하고 있는가? 부동산 투기에 원인이 있지 않다는 점은 이미 설명되었다. 부동산 투기는 단지 결과였을 뿐이다.
      원인은 생산과 소비 사이의 거대한 부조화에 있다. 자본주의 경제는 이윤을 위한 생산체제다.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을 최소화하되, 노동자들이 만들어내는 생산량은 노동강도 증대와 효율화를 통해 최대화하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의 운영원리다. 개별 자본가는 물론 이런 운영원리를 적용해 일정 기간 동안 상당한 이익을 남길 수 있고,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전체로서 자본가들을 볼 때도 이것은 진실인가? 아니다. 정반대다. 이런 운영원리는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반면 노동자의 소비량은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계속 축소시킨다. 그렇다고 자본가들이 모든 것을 소비할 수는 없다. 자본가의 목적은 소비가 아니라 판매를 통해 이윤을 실현함으로써 달성하는 자본 축적이다. 따라서 생산량과 소비량 사이의 간극이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이 간극은 IMF 이후 경제회복이라는 이름으로 대량해고와 비정규직 도입을 통해 노동자의 소비량은 대폭 줄여왔던 반면, 노동강도 증대와 효율화 등을 통해 노동자의 생산량은 대폭 늘려왔던 상황에서 비약적으로 커졌다. 바로 이것이 끝도 없이 추락하는 내수경기 하락과 내수투자 침체의 원인이다. 생산해도 판로가 좁으므로 기업들이 내수투자를 꺼리는 것이다.
      따라서 오히려 검토해야 할 문제는 IMF 시절보다 더 심각하다는 내수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가 그럭저럭 지탱하고 있는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다. 최근 일시적으로 약간 상승하고 있는 국제경기, 특히 인접한 중국에서 아직까지는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거대한 시장이 내수시장 축소를 어느 정도 상쇄하고 있는 요인이다. 한국에서는 판매될 수 없는 것이 해외에서 판매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수 위축의 주범인 강도 높은 노동자 착취는 제품 가격을 낮춤으로써 이런 세계시장의 틈새를 파고드는 데서는 도움이 된다. 따라서 해외수출에 주로 의존하는 독점대기업들은 막대한 흑자에 비명을 지르고 있는 반면, 내수시장에 의존하는 중소기업들은 파산과 불황의 늪에 더욱 깊숙이 빨려들고 있는 상반되는 두 현상은 마치 동전의 앞뒷면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인 셈이다. 이런 현상은 계속 심화될 것인가? 파산하는 내수 중심의 중소기업들과 계속 성장할 수출 중심의 대기업들로의 분화는 당분간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 쪼그라드는 한 바퀴와 팽창하는 다른 한 바퀴로 달리는 두 발 자전거의 위태로운 곡예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이것은 노동운동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내수 중소기업들과 비정규직들은 더욱 열악한 상황과 마주칠 것이다. 거대한 실업의 압력 속에서 이들은 신음할 것이다. 반면 수출 중심의 독점대기업 노동자들은 일정 기간 동안 약간의 개선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제경기가 조금만 악화되어도 한국경제는 심각하게 비틀거릴 것이다. IMF 시절에는 그나마 버팀목이 될 수 있었던 내수 경제마저도 거의 붕괴된 현 상황에서 한국자본주의가 세계자본주의의 위기라는 거대한 재앙과 마주친다면 그 결과는 더욱 엄청난 것이 될 것이다. 독점대기업들도 위기의 블랙홀에 빨려들어, 독점대기업 노동자들 역시 대량해고 및 임금삭감과 마주칠 것이다. 이것은 당시보다 훨씬 커다란 위기가 한국을 덮칠 것임을 예고한다. 파산한 내수 중소기업들에서 계속 쏟아져 나오는 실업자들의 저항에 정리해고에 맞선 독점대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이 한데 맞물려 파산의 위험 앞에서 더욱 악랄해지는 자본가들과 거세게 맞붙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자본가들은 아무런 대책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경제 붕괴와 함께 거대한 고통을 겪는 노동자들을 완전 방치하면서, 과잉 생산물과 과잉 자본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처분되는 것만을 지켜볼 뿐일 것이다. 기껏해야 허리띠를 다시 조이자고 외치면서, 국민의 세금을 파산하는 대자본가들과 은행을 살리는 데 공짜로 퍼부으라고 요구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절대 탈출구가 아니다. 이것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며, 경제를 운영할 능력이 없는 자본가들에게 노동자의 세금으로 뻔뻔스럽게 산소호흡기를 달아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탈출구는 어디에 있는가? 생산과 소비를 조화롭게 만드는 계획화된 사회가 탈출구다. 그리고 그것의 기초는 생산자이자 소비자인 노동자들이 자신을 위해 경제를 운영하는 사회, 즉 이윤을 위한 착취체제를 생산자 전체의 공동 이익을 위한 생산 체제로 바꾸는 데 있다. 이런 해결책으로 전진하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의 생산능력 증대는 항상 해고와 비정규직화, 노동강도 증대로 이어질 뿐이며, 거듭해서 거대한 공황만을 불러올 뿐이다. 게다가 공황의 불행의 결과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노동자들 자신이 짊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생산에 대한 결정권에 있어서는 노동자들의 개입을 전면 금지하는 자본가들이지만, 불황과 공황에 따른 경제 파탄의 책임에 있어서는 노동자들에게 전적으로 전가하면서 비겁하게 도망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경제위기라는 제단에 먹잇감으로 내던져져 가난과 실업에 신음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부당한 결과는 당연히 거부해야 한다. 노동자는 노무현 정부의 헛된 경기 부양책에 맞서, 진정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신의 대안을 당당히 제시하면서 힘을 모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대안은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에 대한 철저한 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근본적으로 제출되어야 하며, 또한 단호한 투쟁을 통해 행동으로 집행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의 강령을 마련하고 투쟁의 힘을 결집하는 것이 그 전제 조건이다.
      노무현 정부의 경기 부양책은 자본주의 위기가 주변을 배회하고 있음을 무엇보다 명백하게 보여준다. 그들은 위기의 냄새를 맡고 초조해하면서 발버둥치고 있다. 만일 상황이 그렇다면, 우리 노동자들 또한 생존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권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 대비해야만 한다. 점차 다가오고 있는 자본주의의 위기로부터 우리 노동자들의 운명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자의 대안을 조직해 나가야만 한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오직 자본가들에게만 위기여야 한다. 반면 노동자들에게는 전진과 해방을 향한 기회여야만 한다. 왜냐하면 책임은 바로 그들 자본가들에게 전적으로 있으며, 책임을 추궁해야 하는 사람은 다름 아니라 노동을 통해 세상을 밀어가고 있는 우리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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