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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어디로 : 4호_2차 세계대전 이후 번영기의 원인
 사노련  | 2009·08·08 15:14 | HIT : 2,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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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노련에서 발행한 <사회주의자> 4호에 실린 글입니다.)

    [기획번역]

    2차 세계대전 이후 번영기의 원인*

    - <국제공산주의흐름> 내부 논쟁 -

    <국제공산주의흐름>(ICC)

    2005년 봄 <국제공산주의흐름>(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 붐의 기초가 되는 원인에 초점을 맞춘 내부 논쟁을 시작했다.1) 이 시기는 세계경제가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던 전반적 성장률을 달성하면서 자본주의 쇠퇴의 역사에서 뚜렷한 예외의 시기로 남아있다.2)

    이 논쟁의 주요 쟁점들은 전쟁이 야기한 파괴가 어떤 방식으로든지 1918년과 1945년 이후 전후 경제부흥에 원인이 되었는가라는 핵심문제를 중심으로 하면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일반적으로 전쟁경제가 작동한 경제적 역할에 관한 것으로 이미 <국제공산주의흐름> 내에서 제기되어 왔었다. 물론 이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국제공산주의흐름>의 여러 가지 텍스트 사이의 모순을 드러나게 했다. 논쟁이 진행됨에 따라 다음과 같은 점이 분명해졌다. 몇몇이 주장하듯이 만일 (전쟁 이후 재건이 기존 자본주의 경제영역 내에서 전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전쟁이 야기한 파괴가 새로운 시장을 열게 했다고 말할 수 없다면, 이는 다시 훨씬 더 큰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1945년 이후 전후 경제부흥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일관성 있는 설명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논쟁이 아직 진행 중이고 서로 다른 입장들이 지금까지 제기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산주의 좌파’ 입장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 사이에 논쟁을 고무시킨다는 관점을 가지고 <국제공산주의흐름> 밖의 동지들에게 논쟁의 개요를 충분히 명료하게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후 경제부흥 앞뒤의 사건들이 순수한 학문적 관심에 입각한 주제에 대한 논쟁으로는 예외적 성격을 지닌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들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역사적으로 제한된 성격, 자본주의 쇠퇴로의 진입 그리고 현재 위기의 해결 불가능한 본질을 맑스주의적으로 이해하는 핵심으로 나아가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말로 그 문제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전망에 대한 주요한 객관적 기초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1. 논쟁의 맥락 : 우리들 분석의 몇 가지 모순

    자본주의 쇠퇴에서 전쟁의 경제적 함의에 대한 논쟁은 <국제공산주의흐름>에게 새로운 것이 아니며, 실제로 특히 ‘공산주의 좌파’가 노동자운동에서 이미 제기했었다. 「자본주의의 쇠퇴」3)라는 우리의 팸플릿에서 쇠퇴기의 전쟁이 촉발시킨 파괴가, 특히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의 파괴가 전후 재건에 기반을 둔 시장을 창조함으로써 자본주의 생산의 출구를 열 수 있었다는 생각을 발전시킨 바 있다.

    “… 외부 출구는 급속하게 축소되었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는 ‘삶의 공간’에서의 빠른 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파괴와 무기생산이라는 일시적 완화제에 의존해야만 했다” (5부 : 1914-18 전쟁의 전환점)

    “재건의 눈으로 대량파괴를 통하여, 자본주의는 출구를 발견할 새로운 문제를 위한 위험하고 잠정적이지만 효과적인 방법을 발견했다. 1차 대전 동안 파괴의 양은 “충분하지” 않았다. … 1929년에 세계자본주의는 다시 위기에 빠졌다. 교훈에서 우리가 배우듯이 2차 세계대전의 파괴의 양은 훨씬 강력했고 확대되었다. … 2차 세계대전은 기존 산업능력을 체계적으로 파괴할 의식적 목적을 처음으로 가진 전쟁이었다. 전쟁 후 유럽과 일본의 ‘번영’은 이에 전쟁이 끝날 때까지 예견되었다. (마샬 플랜 등) (6부 : “전쟁-재건의 순환”)

    이와 비슷한 생각은 <국제공산주의흐름>의 다른 텍스트(주로 이론지인 『국제평론』)에 나타날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좌파의 선배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1934년 『빌랑(대차대조표)』에 실린 글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뒤따른 살육은 ‘현란한’ 전망을 열어제끼면서 자본주의 생산을 위한 엄청난 출구를 형성했다. … 전쟁이 자본주의 생산을 위한 거대한 출구인 반면 ‘평화 시기’에는 군사주의가 그렇다. 즉 전쟁준비에 포함되는 모든 활동은 금융자본이 통제하는 생산의 기본적 영역의 잉여가치를 실현시킨다.” (『빌랑』 11호, 1934, “고뇌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와 순환” 『국제평론』 103호에 재수록)

    『자본주의 쇠퇴』가 출간되기 전과 후에 쓴 <국제공산주의흐름>의 다른 텍스트는 쇠퇴기 전쟁의 역할에 대한 매우 다른 분석을 발전시켰는데, 그것은 <프랑스좌익공산주의>의 1945년 대회의 보고서로 되돌아간다. 전쟁은 “그 가능성이 존재하고 폭력적 방법으로만 열릴 수 있는 시기에 미래의 발전의 가능성을 여는, 자본주의의 필수불가결한 수단이었다. 같은 방식으로 발전의 모든 가능성을 역사적으로 소진한 자본주의 세계의 몰락을, 미래발전에 대한 어떠한 가능성도 열지 못하고 생산력을 심연으로 몰아넣고 끊임없이 파괴에 파괴를 쌓는 몰락을, 현대 전쟁과 제국주의 전쟁에서 찾는다.”

    <국제공산주의흐름>의 제3차 대회4)에서 채택한 역사적 경로에 대한 보고서는 <프랑스좌익공산주의>의 텍스트의 구절을 명료하게 언급하고 있다. 1988년5)에 발간한 「자본주의 쇠퇴에서 전쟁, 군사주의, 그리고 제국주의 몰락」이라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두 차례 세계대전과 같이 모든 전쟁을 특징하는 것은 그 이전 시기의 전쟁과 달리 생산력 발전에서의 진보를 전혀 허용하지 않았으며 (그들이 촉발한 끔찍한 살육은 말할 것도 없고) 전쟁이 일어난 나라들의 피를 말리는 대량파괴라는 결과만을 가져왔다.”

    2. 논쟁의 틀

    이 문제가 중요한 것은 혁명조직의 보편적인 정치 틀에 이론적 기초와 일관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프롤레타리아트를 부르주아지와 그 똘마니들로부터 분리하는 계급노선들(국제주의, 노동조합의 반노동계급적 본질, 의회선거에의 참여 불가능성 등)과는 성격이 다르다. 논쟁 중에 제기된 서로 다른 분석들은 모두가 <국제공산주의흐름>의 기본입장에 포함된 원칙들과 전적으로 일치한다.6)

    『자본주의 쇠퇴』에 포함된 몇몇 사상에 대한 비판은 그 팸플릿을 쓸 때 그리고 그 이후 <국제공산주의흐름>이 사용한 똑같은 방법과 일반적 분석틀로 수행되었다.7)

    (1) <국제공산주의흐름>은 자본주의가 더 이상 그 체제를 맹렬히 공격하는 이겨내기 어려운 모순들로부터 피할 수 없다는 사실에 기초하여, 1차 세계대전이 새로운 “전쟁과 혁명의 시대”를 열었다고 코민테른의 인식과 같이 한다.

    (2) 전 시기에 걸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동학을 분석할 때에는, 국가나 기업 같은 자본주의의 상이한 부문이 아니라 총체로서의 세계자본주의를 연구함으로써 시작해야 한다. 총체로서의 자본주의는 그것의 부분을 이해하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이는 맑스가 󰡔자본론󰡕 1권에서 “순수하게 우연적 요소의 일반적 분석을 벗어나기 위해 상업세계를 단일한 국가로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자본의 재생산을 연구할 때 사용한 방법이었다.

    (3) 자본주의의 찬양자들이 포장하는 것과는 달리, 자본주의적 생산은 그것의 성장에 필수적인 시장들을 자동적으로 그리고 원하는 대로 창출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하나의 비자본주의적 세계 속에서 전개되었고 자신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시장들도 그 안에서 발견했다. 그러나 자신의 생산관계들을 전 세계로 확장하여 세계시장을 단일화함으로써, 자본주의는, 19세기에만 해도 여전히 그것의 굉장한 확장을 가능하게 했던 그 시장들의 포화의 문턱에 도달했다. 게다가 자본이 자신의 잉여가치의 실현이 가능한 시장들을 찾는데 있어 어려움이 증대됨에 따라 이윤율의 하락 압력이 강화된다. 이러한 압력은 생산수단의 가치와 그것을 운용하는 노동 가치 사이의 비율의 지속적인 상승을 통해 행사된다. 처음에는 단지 하나의 경향으로서 작용하던 이윤율의 하락은, 그러나 점점 더 유력해져서, 자본축적과정과, 그와 더불어 전체 체계의 기능성에 있어서 일종의 부가적인 족쇄로 된다. (<국제공산주의흐름> 강령)

    (4) 맑스의 작업에 대한 비판적 평가에 기초하여, 총체로서의 자본주의를 충실하게 하는 것은 전 자본주의 경제(“해외시장”), 즉 상품교환을 실행하지만 아직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채택하지 않은 경제와의 상품교환에 의존한다는 테제를 발전시키는 일이 로자 룩셈부르크에게 주어졌다.

    “실제 생활에서 총자본의 축적을 위한 실제 조건은 개별자본과 단순재생산을 위해 널리 행해지는 조건과는 매우 다르다. 그 문제는 다음과 같이 제기된다. 즉, 잉여가치의 증가하는 부분이 자본가에 의해 소비되지 않고 생산의 확장에 사용된다면, 사회적 재생산의 형식은 무엇인가? 불변자본의 대체를 위한 공제 이후의 사회적 생산물이 노동자와 자본가의 소비에 의해 흡수될 수 없다면 무엇이 남는가? 노동자와 자본가가 스스로 총생산물을 실현시킬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의 주요 국면이다. 그들은 항상 소모될 불변자본의 부분, 그리고 소비될 잉여가치의 부분인 가변자본만을 실현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그들은 생산이 이전의 규모로 갱신될 수 있음을 단순히 보증할 뿐이다. 노동자와 자본가는 자본화되는 잉여가치의 부분을 실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축적을 목적으로 한 잉여가치의 실현은 노동자와 자본가만으로 구성된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된다.” (로자 룩셈부르크, 『자본의 축적』, “자본의 재생산과 그 사회적 배경”) <국제공산주의흐름>은 이러한 입장을 본질적으로 채택했다. 하지만 룩셈부르크의 경제 분석을 비판하는 다른 입장들이 <국제공산주의흐름> 내부에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며, 이는 특히 이 논쟁에서 한 가지 입장으로 보게 될 것이다. 룩셈부르크의 경제 분석은 그 당대에도 반대에 부딪쳤는데, 자본주의가 점증하는 파국으로 운명지워지지 않는다는 개량주의적 흐름들로부터 만이 아니다. 설명이 룩셈부르크와는 다르지만 자본주의가 역사적으로 퇴화하는 생산양식이라고 생각한 혁명적 흐름, 특히 레닌과 판네쿡으로부터도 비판받았다.

    (5) 제국주의 현상은 발전된 국가들이 전 자본주의 시장으로 나아갈 필요성으로부터 도출되었다. “제국주의는 아직도 비자본주의 환경에 남아 있는 것에 대한 경쟁적 투쟁을 하는 자본축적의 정치적 표현이다” (󰡔자본의 축적』, “보호관세와 축적”)

    (6) 자본주의 외적 출구의 역사적으로 제한된 성격은 자본주의 쇠퇴의 경제적 기초를 구성한다. 1차 세계대전은 이러한 모순의 표현이다. 세계가 일단 강대국 사이에 분할되고 나자 식민지 소유라는 점에서 최악으로 밀린 강대국들은 군사적으로 세계를 재분할하려는 시도 외에 선택할 게 없었다. 쇠퇴기에 접어든 자본주의는 체제를 괴롭히는 모순이 견디기 어렵게 되었음을 드러냈다.

    (7) 국가자본주의는 쇠퇴기에 부르주아지가 1929년에 일어났던 것의 되풀이를 피하기 위해 위기로 처박히는 것을 막으려고, 즉 가장 잔인한 표출을 줄이려고 다양한 완화제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8) 쇠퇴기에 신용은 부르주아지가 자본주의 외적 시장의 부족을 메꾸려는 본질적 수단이다. 점점 통제 불가능한 세계 부채의 누적, 상이한 자본주의 부문의 점증하는 지불 불가능성, 그리고 세계 경제의 심각한 불안정의 위협은 신용에 대한 한계의 결과이자 표현이다.

    (9) 경제적 수준에서 자본주의 쇠퇴의 전형적 표현은 비생산적 비용의 발전이다. 이는 생산력 발전이 자본주의의 견디기 어려운 모순에 의해 점점 저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것들은 제국주의적 긴장의 전 세계적인 격화에 직면한 군사비(무기, 군사작전), 최종적으로 계급투쟁을 다루는 역할을 하는 억압의 힘을 유지하고 채비하는데 쏟는 비용, 포화된 시장에 팔기 위한 상업적 투쟁의 무기로서의 광고 등이다. 경제적 관점으로 볼 때 이러한 비용은 자본에게는 순수한 손실이다.

    3. 논쟁으로부터 나타난 입장들

    <국제공산주의흐름> 내에는, 우리의 정치적 강령과 일치하지만, 자본주의 위기의 경제적 기초에 대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여러 가지 공헌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진 입장이 있다.8) 이 입장은 위기의 근원이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라는 맑스가 지적한 또 다른 모순에 있다고 본다. 자본주의가 이윤율이 충분히 높은 한 자동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자신의 시장을 확장한다고 상상하는 개념(특히 보르디가주의자들과 평의회주의자들이 견지하는)을 거부하지만, 자본주의 기본모순이 시장의 한계(위기가 스스로 표출되는 형식)에 있지 않고 생산의 확대에 대한 장벽에 있음을 강조한다.

    이 입장의 핵심 논지는 시장 포화와 이윤율 하락에 관련하여 다른 조직들과 벌인 논쟁에서 (이에 관련된 입장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드러났다.9)

    이 논쟁에서 나타난 다른 입장들은 아래 소개하겠지만 모두 로자 룩셈부르크의 분석에 기반하고 있고, 충분한 자본주의 외적 시장의 부족이 자본주의의 위기와 쇠퇴에서 중심적 역할을 한다고 본다.

    「자본주의의 쇠퇴」 팸플릿에 포함되어 있는 특정한 모순에 대한 우리 조직 내에서 발전된 비판은 (특히 전후 재건은 자본주의 체제 밖에 있는 시장의 부족을 어떤 방식으로든 상쇄함으로써 축적을 지속시킬 수 있었다는) 그 텍스트의 기본적 분석틀을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그 입장은 분석들을 지속하는데 하나의 발전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전쟁경제와 국가자본주의’라는 제목을 단) 첫 번째 입장은 (이른바 재건을 설명하는데 몇몇 영역에서 철저함이 부족하고 마샬 플랜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우리 팸플릿의 특정 측면을 비판하지만, 기본적으로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번영이 2차 세계 대전에 따른 제국주의적 관계의 지구적 맥락과 영구적인 전쟁 경제의 확립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에 근거하고 있다.

    다른 두 입장은 「자본주의의 쇠퇴」 팸플릿의 전후 부흥 분석에 더욱 비판적이다. 이들 중 첫 번째 입장은 (‘비자본주의 시장과 부채’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이미 이전에 <국제공산주의흐름>이 분석한 두 가지 요인들을 심도 있게 평가하고 있다.10) 이 두 요인들은 전후 부흥의 번영을 설명하는데 충분하다고 간주된다.

    두 번째 입장은 (‘케인즈주의-포드주의적 국가자본주의’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쇠퇴에 관하여 우리 팸플릿과 같은, 세계적 규모의 축적요구를 고려할 때 1914년에 시장이 상대적 포화에 이르렀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여 1945년 이후 체제가 생산성에서의 거대한 성과(포드주의)를 이윤, 국가세입, 실질임금이라는 세 축으로 분배(케인즈주의)하는 것에 기초한 국가자본주의의 변종을 도입했다는 생각을 발전시킨다.

    이 글은 이상의 세 가지 입장을 간략하게 개괄할 것이다.11) 이어지는 글들에서는 논쟁 중에 나타나게 될 또 다른 입장이나 이들 입장들을 더욱 발전시킨 글들을 실을 것이다.

    4. 전쟁경제와 국가자본주의

    이 입장의 출발점은 1945년 <프랑스좌익공산주의>(GCF)에 의해 이미 명료하게 제시되었다. <프랑스좌익공산주의>는 1914년까지 상승기 동안 확장에 필요한 영역을 자본주의에 제공했던 비자본주의 시장이 더 이상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고 여겼다.

    “지금의 역사적 시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쇠퇴기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부르주아지는 첫 번째 제국주의 전쟁 이전에 생산의 확장을 통해서만 살았고 살 수 있었으나, 더 이상 이러한 확장을 실현시킬 수 없는 역사적 시점에 도달했다. (…) 오늘날 세계 생산을 흡수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쓸모없고 멀리 떨어진 국가들 그리고 비자본주의 세계의 보잘 것 없는 유적을 제쳐놓고 나면, 부르주아지는 스스로가 세계의 주인임을 발견한다. 자본주의 체제를 위한 새로운 시장으로 봉사할 수 있는 어떤 비자본주의 시장도 더 이상 그 앞에 없다. 그래서 그 정점은 바로 쇠퇴가 시작된 그 시점이었다.”12)

    1914년 이후의 경제사는 이러한 근본적 문제―이미 제국주의 강대국들에게 분할되었고 그 시장이 잉여가치 전체를 흡수할 능력이 안 되는 세계에서 자본주의 경제가 생산한 잉여가치를 어떻게 계속해서 축적할 것인가―를 극복하기 위하여 각기 다른 국가들에서 각기 다른 순간에 자본가 계급이 펼친 노력들의 역사다. 그리고 제국주의 강대국들은 더 이상 그들의 경쟁국들을 희생시키지 않고는 확장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의 전쟁이 끝나자마자 다음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전쟁 경제는 자본주의 사회의 영구적인 생활방식이 되었다.

    “전쟁 생산은 경제적 문제를 푸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국가가 피착취 계급에 대항하여 스스로를 방어하고 힘으로 착취를 유지하며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을 희생시켜 경제적 지위를 유지하고 확장할 필요성이야말로 전쟁 생산의 기원이다. (…) 그래서 전쟁 생산은 산업 생산의 핵심이 되었고 사회의 주요 경제 분야가 되었다.”13)

    전후 재건 시기는 이러한 역사에서 특유한 순간이다.

    1945년의 세계가 가졌던 세 가지 경제적 특징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첫째, 자본주의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미국의 엄청난 경제적·군사적 우세가 있었다. 미국 혼자서 세계 생산의 절반을 담당했고 세계 금 보유의 거의 80%를 차지했다. 미국은 교전국 가운데 유일하게 생산설비가 전쟁으로 손상되지 않았다. 그래서 국민총생산이 1940년과 1945년 사이에 두 배가 되었다. 미국은 식민지 확장 시기 동안 대영제국이 축적한 모든 자본을 흡수하였으며, 덧붙여 프랑스 제국이 축적한 자본의 우량 부분까지 흡수하였다.

    둘째, 서구 세계의 지배계급 사이에는, 스탈린주의자들 그리고 자신들의 경쟁자인 러시아 블록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사회적 봉기를 피하려면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점에 대한 예리한 자각이 있었다. 그래서 전쟁경제는 우리의 <프랑스좌익공산주의> 선배들이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한 새로운 측면―부르주아지 특히 서구 블록의 부르주아지가 1940년대 재건기가 시작될 때 시행한 다양한 사회적 배당들(보건, 실업수당, 연금 등)―을 통합했다.

    셋째,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각기 다른 국민경제들이 전제정치로 나아가는 경향을 보여주었던 국가자본주의는 이제 국가 사이의 경제 관계를 결정하는 제국주의 블록들의 구조―미국 블록은 브레튼우즈 체제, 러시아 블록은 코메콘―속으로 갇혔다.

    재건 시기 동안 국가자본주의는 질적인 수준에서 진화했다. 국민경제에서 국가가 차지하는 부분이 우세해졌다.14) 이른바 ‘자유주의’의 3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국가 지출은 선진국들 GNP의 30~60%를 차지한다.

    이 같은 국가의 새로운 비중은 양질전화를 나타냈다. 국가는 더 이상 그저 지배계급의 ‘집행위원회’가 아니었다. 국가는 가장 거대한 고용주였고 가장 거대한 시장이었다. 보기를 들어 미국에서 펜타곤은 (민간부문과 군사부문을 합쳐 3~400만을 고용하면서) 나라 전체에서 주요 고용주가 되었다. 이처럼 국가는 경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기존 시장을 철저하게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브레튼우즈 틀의 출범은 과거보다는 세련되고 덜 허약한 신용제도를 구축할 수 있게 했다. 발전된 소비자 신용과 미국 블록이 세운 IMF, 세계은행, GATT 같은 경제기구들은 재정위기와 은행위기들을 피할 수 있게 했다.

    미국의 엄청난 경제적 우세 때문에 미국의 부르주아지는 러시아 블록을 상대로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무한정 지출할 수 있었으며, 한국과 베트남에서 두 번의 피투성이 값비싼 전쟁을 치러냈다. 마샬플랜과 해외투자는 폐허가 된 유럽과 아시아―특히 한국과 일본―경제를 재건하도록 재정을 공급했다. 그러나 이러한 엄청난 노력―자본주의의 ‘고전적’ 작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쇠퇴를 특징짓는 제국주의 대결에 의해 결정된―은 미국 경제를 황폐화하면서 끝을 맺었다. 1958년 미국의 국제수지는 이미 적자였고, 1970년 미국은 세계 금보유의 겨우 16%만을 차지했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모든 측면에서 수렁에 빠졌고, 세계는 위기에 빠져들어 오늘날까지 그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5. 비자본주의 시장과 부채

    전후 호황기는, 자본주의 상승기에 비견할 만한 방식으로 생산력을 전혀 발전시키지 못했으며, 잉여가치의 엄청난 낭비로 특징지어지는데 이는 생산력 발전이 가로막히고 있다는 징표이며, 자본주의 체제의 쇠퇴를 보여주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이루어진 재건은 겨우 몇 년 동안 지속된 번영기를 열었다. 그동안, 1차 대전 발발 이전처럼, 비자본주의 시장에 대한 판매가 자본주의 축적을 위한 필수적인 출구의 일부를 이루었다. 세계가 이미 강대 공업국 사이에서 분할되었지만, 아직 세계는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지배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비자본주의 시장의 흡수 능력은 공업국들이 생산한 상품의 총량에 비하면 불충분했다. 따라서 1929년 공황이라는 과잉생산 암초 앞에서 전후 회복은 빠르게 무너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재건은 자본주의 상승기의 최상의 경제지표들을 뛰어넘으면서 전혀 다른 시기를 열었다. 20년이 넘게 지속된 성장은, 특히 최대한 폭넓게 일반화된 조립라인의 완성(포드주의)과 생산의 자동화에 따른, 자본주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성 성과에 기반했다.

    그러나 상품을 생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장에서 그 상품을 위한 출구를 발견해야 한다. 자본주의가 생산한 상품의 판매는 낡아빠진 생산수단과 노동력(노동자의 임금)을 다시 새롭게 하는데 기능한다. 그래서 자본의 단순재생산―즉 생산수단과 소비의 증가 없는―을 보장한다. 그러나 [상품판매는] 또한 무기소모로부터 자본가들의 부양까지 나아가 앞으로 우리가 이야기할 수많은 다른 비용을 포함하는 비생산적 지출을 충당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수지균형을 넘어선다면 자본의 축적에도 공헌할 수 있다.

    매년 자본주의가 달성한 판매 가운데 자본축적에 공헌할 수 있고 실질적 충실화에 참여하는 부분은 필연적으로 제한적인데, 이는 모든 필요비용을 충당하고 남은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이것은 매년 생산된 부의 아주 작은 부분을 나타내며,15) 비자본주의 시장과의 (국내 또는 대외) 교역을 통해 실현되는 판매에 본질적으로 상응한다.16) (합법적이든 아니든 비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약탈은 제쳐둔다고 하면) 이것이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사실상 유일한 길이다. 즉 맑스가 말한 바와 같이 “자본의 가치증식을 허용하지 않는”, “자본가들이 자신들 사이에 교환하고 스스로의 생산을 소비하는” 위치에 놓이는 것이 아닌 길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다수 인민이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상품들을 위한 수요의 부족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모국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삶의 평균 필요량을 지불하기 위해, 해외 시장에서 이러한 수요를 찾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겠는가? 이는 구체적인 자본주의 상호관계에서 잉여생산물이, 그 스스로 자본으로 재전환되지 않는 한, 그 소유자가 소비를 위해 제공할 수 없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결국 자본가들이 스스로 교환하고 소비해야만 한다고 말한다면,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총체적 본질을 시야에서 놓치는 것이며, 또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총체적 본질은] 자본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가치를 확장하는 문제라는 사실 또한 잊는 것이다.”17)

    자본주의가 쇠퇴기로 접어들면서 비자본주의 시장은 점점 더 불충분한 경향이 있다. 하지만 비자본주의 시장은 단순히 사라지지 않았으며, 상승기 때 그런 것처럼 그들의 생존능력은 산업의 발전에 달려 있었다. 즉 비자본주의 시장은 자본주의가 생산한 점증하는 상품량을 점점 더 흡수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는 과잉생산이며, 그와 더불어 (자본주의가 이러한 상황에 대한 완화제로서 신용을 사용할 수 없는 한) 생산이 부분적으로 파괴되는 것이다. 그러나 비자본주의 시장이 점점 희소해질수록 신용이라는 완화제는 점점 갚을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래서 전후 시기의 성장을 위한 지불 가능한 출구는, 비자본주의 시장이 공급 모두를 흡수할 수 없음을 전제로 하고, 아직 존재했던 비자본주의 시장을 활용하는 것과 부채를 사용하는 것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다. 다른 어떤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에도 (다시 한 번 비자본주의적 부에 대한 약탈을 제외한다면) 자본주의가 확장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 결과, 전후 호황은 이미 결코 갚을 수 없고 자본주의의 머리위에 걸린 ‘다모클레스(Damocles)의 칼’*인 현재의 부채 덩어리를 형성하는데 작은 공헌을 했다.

    전후 시기의 또 다른 특징은 경제에서의 비생산적 지출의 중요함이다. 비생산적 지출은 1940년대 말부터 대부분의 공업국에서 상당하게 증가한 국가 지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국가자본주의를 향한 역사적 경향의 결과였다. 특히 세계대전 이후 높은 수준을 유지한 경제에서의 군사주의와 가공적 수요를 촉진시키는 데 목표를 둔 케인즈주의 정책의 효과다. 만일 상품 또는 서비스가 비생산적이라면, 그 사용가치는 자본의 단순 또는 확대재생산에 참여함으로써 생산과정에18) 통합되는 것을 더 이상 할 수 없음을 뜻한다. 또한 우리는 자본주의 내에서의 수요와 관련되지만 단순 또는 확대재생산에 불필요한 지출도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는 특히 생산성 증가에 근접하는 비율로 임금인상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즉, 몇몇 범주의 노동자들이 몇몇 나라에서 케인즈주의 교리를 적용하면서 “혜택을 입은” 경우였다.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엄밀히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실업자에게 끔찍한 수당을 지급하는 것 또는 국가의 비생산적 지출과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지구적 자본의 가치증식에 공헌할 수 없는 자본의 낭비다. 다른 말로 비생산적 지출에 포함된 자본은 그것이 무엇일지라도 쓸모없는 것이다.

    케인즈주의가 대량 산업 생산을 위한 판매처를 발견하는 데 즉각적인 해법을 제공할 수 있는 내부 시장을 만든 것은 자본주의 상승기의 번영으로 영원히 돌아갈 것 같은 환상을 주었다. 그러나 이 시장은 자본의 가치증식을 위한 필요로부터 전적으로 단절되었기 때문에, 자본의 중요한 부문을 불모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지속할 수 없는 매우 예외적인 요인들―비생산적 지출을 충당하면서도 축적을 지속하기 위한 잉여를 창출하는 데 충분할 만큼 노동생산성의 지속적 성장, 이러한 잉여를 실현시킬 수 있는 (비자본주의 시장이든 부채의 결과이든) 지불가능한 시장의 존재―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

    “영광스런 30년”의 노동생산성과 비교할만한 노동생산성의 성장은 그 이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비자본주의 시장의 전적인 소진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이미 거대해진 세계부채를 새롭게 늘림으로써 경제에 다시 힘을 불어넣을 가능성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사실은 스스로를 되풀이하는 번영시기가 불가능함을 보이고 있다.

    「자본주의 쇠퇴」에 포함된 분석과 달리, 재건시장은 전후 번영을 설명할 수 있는 요인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생산 기구의 회복은 스스로 비자본주의 시장을 구성하지도 않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대부분 미국에 이미 축적된 부가 재건이 필요한 국가들로 이전된 결과였다. 왜냐하면 그를 위한 금융지원이 미국 재무부가 기여한 마샬 플랜으로부터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에 이은 짧은 번영기를 설명할 수 있는 재건 시장은 없다. 이는 ‘전쟁-재건/번영’ 도식이,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현실에 경험적으로 부합하긴 하지만, 자본주의를 충실화할 수 있는 재건시장이 존재한다는 점을 경제법칙에 포함시킬 수 없는 이유다.

    6. 케인즈주의-포드주의 국가자본주의

    전후 호황 뒤에서 추동하는 힘에 대한 우리의 분석은 다음과 같은 주요 요인들에 대한 일련의 객관적 관찰에 기원을 두고 있다.

    자본주의 상승기 동안 1인당 세계생산19)과 산업성장률은 계속해서 성장하여 1차 세계대전 직전에 최고점에 이르렀다. 이 순간 자본주의에 확장의 공간을 공급했던 시장은 국제적 규모에서 축적의 필요에 비교할 때 포화에 다다랐다. 이는 두 번의 세계전쟁, 사상 최대의 과잉생산 위기 (1929-1933), 그리고 생산력 성장에 대한 대대적인 제동―산업생산과 1인당 세계생산 둘 다 1913년과 1945년 사이에 절반으로 떨어졌는데 각각 1년에 2.8%와 0.9%로 감소했다―을 포함한 쇠퇴기의 시작이었다.

    이는 자본주의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공할 성장국면으로 나아가는 것을 어떤 식으로도 막지 못했다. 산업생산은 2배 이상으로, 1인당 세계생산은 3배로 (각각 1년에 5.2%와 2.9%로) 뛰었다. 이 성장률은 상승기 동안 보다 높았을 뿐만 아니라, 실질임금은 4배 이상 더욱 빨리 성장했다. (1853년에서 1913년까지의 긴 시간에 2배 이상 넘기 어려웠던 실질임금이 4배 이상 상승했다!)

    어떻게 이러한 ‘기적’이 일어났는가?

    - 남겨진 비자본주의 수요를 통한 것은 아니었다. 비자본주의 수요는 1914년에 이미 불충분했고 그 이후 더 줄어들었다.20)

    - 국가부채나 재정적자를 통한 것도 아니었다. 국가부채와 재정적자는 전후 시기 동안 매우 급격하게 줄어들었다.21)

    - 신용을 통한 것도 아니었다. 신용은 위기의 재도래 이후에야 현격하게 성장했다.22)

    - 전쟁경제를 통한 것도 아니었다. 전쟁경제는 비생산적이다. 가장 군사화된 국가들이 최악이었는데, 그 역도 마찬가지였다.

    - 마샬 플랜을 통한 것도 아니었다. 마샬 플랜의 영향은 그 범위와 기간에서 제한적이었다.23)

    - 전쟁의 파괴를 통한 것도 아니었다. 1차 세계대전에 따른 파괴는 어떤 번영도 만들어 내지 않았다.24)

    - 경제에서의 국가 비중의 확대를 통한 것도 아니었다. 두 세계대전 사이에 경제에서의 국가 비중이 두 배 이상 커졌지만 이러한 효과를 갖지 못했다.25) 1960년 경제에서의 국가 비중은 19%로 1937년의 21%보다 낮으며, 또한 국가부문은 비생산적 지출을 상당 부분 포함하고 있다.

    그 ‘기적’과 그에 대한 설명은 다른 곳에 놓여 있다. (a) 경제는 전쟁말기에 소진되었다. (b) 모든 경제주체의 구매력은 최저수준이었다. (c) 모든 경제주체는 심각한 부채를 지고 있었다. (d) 미국이 획득한 엄청난 힘은 비생산적 세계경제에 기초했고, 그것을 되돌리는 데에는 커다란 어려움이 있었다. (e) 그럼에도 기적은 점점 더 많은 잉여가치가 비생산적인 지출로 불모화되는데도 일어났다.

    실제로는, 이 미스테리는 우리가 생산성에서의 성과가 갖는 함의에 대한 맑스의 분석26)과 쇠퇴기에 국가자본주의의 발전에 대한 공산주의 좌파의 공헌을 결합시킨다면 더 이상 진짜 미스테리가 아니다. 이 시기는 다음과 같이 특징지을 수 있다.

    a) 자본주의 전체 역사에서 결코 볼 수 없었던 생산성에서의 성과들, 조립라인 생산의 일반화와 관리에 기초한 성과들(포드주의).

    b) 실질임금의 괄목한 상승, 완전고용,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배당으로 구성된 간접임금의 구축. 더구나 이러한 상승이 최고점에 이른 국가들이 가장 최선의 성과를 거두었고 그 역도 마찬가지였다.

    c) 국가의 경제 전반에 대한 관장 그리고 자본/노동관계에 대한 매우 높은 수준의 개입27)

    d) 이 모든 케인즈주의 정책들은 OECD, GATT, IMF, 세계은행 등을 통해 어느 정도 국제적 수준에서 조직된 것이었다.

    e) 마지막으로, 다른 시기와 다르게 전후 호황은 선진경제에 중심을 둔 성장이 특징이었다. (즉 OECD 국가들과 나머지 국가들 사이의 교환은 비교적 적었다.) 그리고 실질임금의 매우 높은 상승과 완전고용에도 불구하고 저임금 경제로의 생산거점 이동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세계화와 생산거점 이동은 1980년대부터 특히 1990년대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그래서 생산성에서의 성과가 이윤·세금·임금이라는 세 부분으로 분배되는 것을 강제적이고 비율적으로 보증함으로써, 케인즈주의-포드주의 국가자본주의는 원가 하락에 따른 상품과 서비스의 조절된 공급(포드주의)과 생산성 상승에 연동되어 점증하는 지불 가능한 수요(케인즈주의) 사이에서 축적 순환을 완결할 수 있었다. 이처럼 시장은 보증되었지만, 이윤율이 새롭게 하락하면서 위기가 다시 나타났다. 생산성에서 포드주의적 상승이 소진됨에 따라, 이윤율은 1960년대 말과 1982년 사이에 절반으로 떨어졌다.28) 자본 이윤율의 현격한 저하는 1980년대에 들어서서 탈규제화된 국가자본주의를 선호하게 되면서 그전의 전후 정책이 해체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정책전환은 임금 압박의 결과로 이윤율의 극적인 재정립을 가져왔지만, 그로 인한 지불가능한 수요의 하락은 축적율과 성장률을 낮은 수위로 끌어내렸다.29) 그로부터 생산성 상승에서의 구조적 취약성 때문에 자본주의는 이윤상승을 보증하기 위해 임금과 노동조건에 압력을 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지불 가능한 시장을 더욱 감소시켰다. 이들은 다음의 뿌리가 되고 있다.

    a) 만성적 과잉생산능력과 과잉생산

    b) 줄어든 수요를 일시적으로 완화하기 위한 점점 더 광적인 부채 사용

    c) 값싼 노동력을 찾아가는 생산거점 이동

    d) 최대한의 수출을 위한 세계화

    e) 더 이상 확장의 출구가 없는 자본의 투기적 투자로부터 유래되는 항상적인 금융 불안정

    오늘날 성장률은 두 세계전쟁 사이의 수준으로 떨어졌고, 전후 시기의 부활은 이제 불가능하다. 자본주의는 점점 더 야만으로 가라앉을 운명이다.

    여기서 충분히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분석의 뿌리와 함의를 앞으로 더 발전시킬 것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기능과 한계를 더 넓고 일관성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분석의 일정 부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30)

    7. 국제운동에 공개된 논쟁

    󰡔빌랑󰡕(대차대조표) 또는 <프랑스좌익공산주의>(GCF) 선배들처럼, 우리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31)의 담지자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조직 내부에서 벌어지는 논쟁들이 우리 조직 밖에서 오는 비판적이고 건설적인 공헌으로부터 이득을 얻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공헌을 환영하고 우리들의 집합적 성찰에 고려할 것이라는 이유이다.

    번역 : 오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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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Internal debate: the causes of the post-1945 economic boom", 『International Review』(국제평론), 2008, 2nd Quater, 12-18쪽

    1) 이 시기는 때로는 프랑스에서 “영광의 30년”으로 부른다. 이 표현은 1945년에 세운 프랑스 정부의 계획위원회에서 쟝 모네 밑에서 일했던 경제학자 쟝푸라스티에(Jean Fourastié)의 책 제목과 같다.

    2) 1950년과 1973년 사이에 세계의 1인당 국민총생산은 매년 3% 정도 증가했다. 반면 1870년과 1913년 사이의 증가율은 1.3%였다. (Angus Maddison, “L'économie mondiale”, OECD, 201, p.284)

    3) <국제공산주의흐름>이 논문집으로 1981년에 출간했다.

    4) <국제공산주의흐름> 3차 대회, 『국제평론』 18호, 1979

    5) 『국제평론』 52호

    6) 1차 세계대전을 발발하게 한 상황에 대해 이론적 설명이 혁명진영 내에서 다름에도 불구하고 코민테른은 1차 세계대전이 완전히 새로운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과 계급투쟁에 심대한 정치적 함의를 지니고 있음을 인식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국제평론』 123호에 실린 “쇠퇴의 이론”을 보라.

    7) 『국제평론』에 실린 “자본주의 쇠퇴에 대한 이해”의 연재물, 특히 56호에 실린 논문과 부채의 비중을 다룬 <국제공산주의흐름>의 8차 대회 결의문(『국제평론』 59호, 1989)에 잘 나타나 있다.

    8) 이 소수 의견은 우리 조직 내에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지금 이를 방어하는 동지들은 이미 그들이 <국제공산주의흐름>에 가입할 때 이러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우리 조직의 대회나 이론적 정련화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이는 (시장포화론이든 이윤율저하론이든) 경제위기에 대한 분석을 조직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두지 않도록 한 <국제공산주의흐름>의 결정이 적절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9) 『국제평론』 127호와 128호에 실린 “자본주의 쇠퇴기 전쟁에 관한 <공산주의노동자조직>(CWO)에 대한 답변”을 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우리가 살펴볼 것이지만 현재 벌어지는 논쟁에서 이 입장과 아래에 제시한 “케인즈주의-포드주의 국가자본주의” 사이에는 일정한 공통점이 존재한다. 이 두 입장은 “영광의 30년” 시기의 번성의 한 요인으로 자본주의 생산관계 내의 내부시장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이윤율 저하를 일으키는 모순의 산물로 이 시기의 종말을 분석하고 있다.

    10) 비자본주의 시장의 보다 철저한 이용에 대한 생각은 이미 「자본주의의 쇠퇴」에 나타나 있다. 『국제평론』 56호에 실린 연재물 “자본주의 쇠퇴에 대한 이해”의 여섯 번째 논문에 잘 나타나 있다. 그 논문에서는 부채의 요인이 잘 개진되어 있다. 반면에 “재건시장”의 개념은 이들 논문들에서는 고려되지 않고 있다.

    11) 지면 부족으로 이 논문에서 제시할 수 없지만 세 가지 입장의 각각에는 서로 다른 뉘앙스들이 있어 왔다. 논쟁이 진전되면서 앞으로의 글들에서 자세히 표현될 것이다.

    12) 『국제주의』 1945년 1월, 1호 “국제상황에 대한 테제들”

    13) 『국제주의』 1945년 7월, “국제상황에 대한 보고서”

    14) 미국만을 보면 1930년에 국민총생산의 3%만을 차지한 연방 정부의 지출은 50년대와 60년대 동안 국민 총생산의 20% 정도로 증가했다.

    15) 보기를 들어 1830-1913년 사이에 비자본주의 시장에 대한 판매는 세계 생산의 연평균 2.3%를 나타냈다. (이 수치는 이 두 시기 사이의 지구적 생산의 전개를 고려하여 산출되었다. 출처:http://www.theworldeconomy.org/publications/worldeconomy/frenchpdf/MaddtabB18.pdf) 이것이 평균 수치라고 가정할 때 1차 세계대전 전의 경우 가장 강력한 성장을 보인 해들의 실재보다는 분명히 낮다.

    16) 이 점에서 무기의 경우 판매의 마지막 종착역이 생산적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 왕의 행복을 칭송하는 다모클레스를 왕좌에 앉히고 그 머리 위에 머리카락 하나로 칼을 매달아 왕의 신변의 위험을 가르친 고사에서 나온 말로, 매우 절박한 위험을 뜻하는 속담이다. (옮긴이)

    17) 『자본』 제3권 15장 “법, 과잉자본, 과잉인구의 내부 모순의 해설”

    18) 이 사실을 예시하기 위하여, 한편으로 무기, 광고, 노동조합 훈련 과목과 다른 한편으로 도구, 식품, 대학의 교과목, 의료 등 사이의 마지막 사용에서의 차이를 고려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19) 1820년과 1870년 사이에 매년 0.53%로부터 1870년과 1913년 사이에는 1.3%로 증가 (Angus Maddison, L'économie mondiale, OECD 284).

    세계 산업 생산의 평균 증가율 (W.W. Rostow, The World Economy, p662)

    1786-1820

    2.5%

    1820-1840

    2.9%

    1840-1870

    3.3%

    1870-1894

    3.3%

    1894-1913

    4.7%


    20) 선진국에서의 이러한 출구들의 내부 구매력은 자본주의 탄생에서 매우 중요한데 1914년 5%와 20%사이에 달했다가 1945년 2%와 12%사이에 머물렀다. (Peter Flora, State, Economy and Society in Western Europe 1815-1975, A Data handbook, Vol II, Campus, 1987). 제3 세계에 대한 접근에 관해서 보자면 중국, 동구권, 인도, 그리고 기타 저개발국의 세계시장으로부터의 철수에 의해 3분의 2가 절단되었다. 나머지 3분의 1과의 교역에서는 1952년과 1972년 사이에 절반으로 줄었다. (P Bairoch, Le Tiers-Monde dans l'impasse; 391-392)

    21) 이 수치들은 『국제평론』 114호에 실렸다.

    22) 이 수치들은 『국제평론』 121호에 실렸다.

    23) 마샬 플랜은 미국 경제에 매우 미미한 영향을 미쳤다. “2차 세계대전 후 … 생산 전체에 대한 미국 수출의 비율은 거의 무시할 정도로 하락했다. 마샬 플랜은 그 자체로 괄목할만한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Fritz Sternberg, “세기의 갈등” p.577, 프랑스판) 저자는 경제회복에 결정적이었던 것은 내부 시장이었다고 결론지었다.

    24) 사실과 논쟁은 『국제평론』 128호에 실린 우리의 논문에 실려 있다. 우리는 이 문제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왜냐하면 맑스의 견해와 동일하게 탈가치증식과 자본의 파괴는 축적의 순환을 가져오고 새로운 시장을 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자세한 연구는 이러한 요인이 영향력에서 비교적 취약하고 시간에서 제한적이고 유럽과 일본에 적용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했다.

    25) OECD 국가들의 국민총생산에서의 공공지출의 역할은 1913년과 1937년 사이에 9%에서 21%로 증가했다 (『국제평론』 114호 참조)

    26) 사실 생산성은 단순히 가치법칙의 또 다른 표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노동시간의 역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시기를 특징짓는 상대적 잉여가치 추출의 기반 위에 있다.

    27) OECD 국가들의 국민총생산에서의 공공지출의 역할은 1960년과 1980년 사이에 19%에서 45%로 증가하면서 배가 되었다. (『국제평론』 114호 참조)

    28) 『국제평론』 115, 121, 그리고 128호의 도표들

    29) 『국제평론』 121호와 동아시아의 성장에 대한 우리의 분석에 나타난 도표와 수치들

    30) 독자들은 수많은 사실적 요소들과 이론적 발전을 『국제평론』 114, 115, 121, 127, 128호에 실린 논문들과 동아시아 성장 분석에 대한 우리의 글에서 발견할 수 있다.

    31) <프랑스좌익공산주의>(GCF)가 말한 바와 같이 “어떤 그룹도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를 배타적으로 지니고 있지 않다.” 󰡔국제평론』 132호에 실린 “60년 전: 국제주의 혁명가들의 대회”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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