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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어디로 : 3호_자본주의의 총체적 위기에 맞서는 세계프롤레타리아트와 공산주의자의 과제
 정책위  | 2009·07·27 00:55 | HIT : 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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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노련에서 발행한 <사회주의자> 3호에 실린 글입니다.)

    [시론]

    자본주의의 총체적 위기에 맞서는 세계프롤레타리아트와 공산주의자의 과제

    오세철

    1. 몇 가지 근본적 문제들

    여기저기서 “경제위기”를 외치고 있다. 이른바 “좌파”나 “우파” 모두 마찬가지다. 심지어 미국의 전 연방은행 총재인 앨런 그린스펀도 지금의 경제위기가 100년 만에 처음 보는 위기라고 실토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 정책을 쥐고 흔드는 그가 말이다. 맑스를 말하는 사람들도 “경제위기”라는 말을 부르주아지와 다른 입장에서 말하지만 여전히 “공황”이라는 “경제적” 의미로만 접근하고 있다. 그들의 입에서는 위기 때마다 공황론이 쏟아져 나오고 이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의 당위성에 대한 주장으로 끝을 맺는다. 어떻게 보면 부르주아 경제평론가의 경기변동론이나 좌파경제평론가의 주기적 공황론이나 반복되는 담론의 틀 속에서는 동일하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위기를 ‘경제위기’가 아닌 ‘자본주의의 위기’로 규정해야 한다. 그렇게 볼 때만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생산양식의 전망을 생각하게 되고, 자본주의 모순을 역사적으로 문명사적으로 인식하는 총체적 인식의 틀, 다시 말하여 진정한 맑스주의의 틀로 이해하게 될 수 있다. 이는 모든 문제의 근원을 자본주의의 법칙으로 보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자본과 자본의 대리인인 자본가를 구분해야 한다. 이른바 지금의 자본주의의 위기가 정치 지도자들의 ‘잘못된 관리’나 상업인들의 ‘투기’, 그리고 은행가들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심지어 이를 시장의 탐욕, 탈세 천국 그리고 신자유주의 탓이라고 돌리는 좌파들도 많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이른바 사회주의를 자처하는 세력까지도 “신자유주의 반대”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여 모든 문서와 집회의 구호에 ‘신자유주의 반대’를 끼워 넣고 있다. 그러나 지금 자본주의의 위기는 이들의 행동이나 도덕성 그리고 정책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자본주의 법칙을 이용했을 뿐이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재앙은 자본주의 법칙이기 때문에 재앙의 극복도 그 법칙을 파괴하고 넘어서는 공산주의 법칙으로 가능하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기본적 문제의식과 틀을 지니고 있다.

    첫째, 자본주의 위기를 말할 때 맑스의 역사유물론에 입각한 역사인식의 틀을 기반으로 봉건제 이후의 자본주의 역사를 상승기와 쇠퇴기로 크게 구분한다. 이는 자본주의의 발전 단계에 따른 시기구분과 연관되며 일반 공황론을 넘어서는 자본주의 쇠퇴론에 근거한다.

    둘째, 자본주의 위기극복에 대한 세계 부르주아지의 유일한 대안은 역사적으로 전쟁과 파시즘이었고, 이를 저지하려는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유일한 길은 혁명과 사회주의(공산주의)였다는 세계사적 인식에 근거한다.

    셋째,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과학적 이론은 잉여가치의 추출과 그 실현과정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고, 잉여가치 추출의 과정에서는 이윤율 저하의 법칙이 그리고 잉여가치 실현의 과정에서는 시장 포화의 한계법칙이 위기의 기본이 된다. 이 두 가지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틀이 요구된다. 지금의 위기는 잉여가치 실현의 막다른 골목임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넷째, 자본주의의 위기에 맞서는 세계 노동계급과 사회주의자들의 운동은 줄곧 전쟁으로 향하는 부르주아지에 맞서 사회주의 혁명을 통한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이었음을 혁명의 역사의 틀 속에서 이해하고, 이러한 계급투쟁의 역사를 객관주의(생산력주의)와 주관주의(주체주의)의 변증법적 결합으로 인식한다.

    다섯째, 혁명적 사회주의와 비타협적 노동계급의 투쟁을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억압하고 혁명의 역사를 파괴한 반혁명세력인 스탈린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모두 자본주의의 두 얼굴이라는 자본주의 분석틀을 기본으로 한다.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철저한 토대분석 없이 자본주의의 위기를 다룰 수 없으며 앞으로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전망할 수도 없다.

    여섯째, 세계혁명을 위한 세계프롤레타리아트와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의 전략은 위와 같은 인식의 틀 위에서 혁명의 주체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을 스스로 건설하는 것이며 그 주체와 함께 세계혁명의 방향과 강령을 만들어 나가는 공산주의자들의 조직인 혁명당을 건설하는 길이다. 이 두 조직 건설의 역사적 과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 두 조직의 실천이 변증법적으로 결합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위기는 공산주의의 실현으로 탈바꿈된다.

    2. 자본주의와 계급투쟁의 역사 - 1848년부터 2008년까지

    2.1 역사발전에서 쇠퇴의 의미 그리고 자본주의의 위기

    모든 생산양식의 쇠퇴에서, 다시 말하여 노예제의 쇠퇴와 봉건제의 쇠퇴 모두에서 공통되는 네 가지 쇠퇴의 현상이 있다.

    첫째, 낡은 사회를 지배한 이념적 형식들의 해체, 둘째, 지배계급 분파들 사이의 전쟁의 발전, 셋째, 계급투쟁의 격화와 발전, 그리고 넷째 국가기구의 강화를 들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도 생산력의 불충분한 발전은 역사적 의미로 죽음의 막다른 골목을 나타낸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노예제나 봉건제와 근본적으로 다른 특성들도 지니고 있다. 첫째로 자본주의의 부정이자 그 극복을 구성하는 체제는 착취체제가 아니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그것이 극복하게 될 그 사회 내에서 자라지 않는 역사상 최초의 체제이다. 즉 지배계급의 이윤의 직접적 원천인 프롤레타리아트는 지배계급의 권력을 전적으로 파괴하지 않고서는 그 자신의 역사적 기회를 진전시킬 수 없다. 자본주의는 전 세계의 생산을 지구 전체를 통합하는 하나의 회로 속에 편입시킨 최초의 체제이기 때문에 한 나라에서의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쇠퇴가 그전보다 더 분명하고 더 폭력적인 쇠퇴가 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의 쇠퇴와 위기는 독립적이지만 상호의존적이다. 따라서 쇠퇴에 대한 인식은 위기의 순간(보기를 들어 1929년 대공황)과 그 위기를 지금의 자본주의가 겪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1914년 이래 쇠퇴의 상태에 있음과 자본주의가 자랑하는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굉장한 성장률이 사실은 자체 재생산의 조건창출이 점점 더 불가능해진 자본주의 체제가 죽음의 고통을 숨긴 것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1848년 맑스가 『공산주의 선언』을 내고 60여년은 자본주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자유경쟁 자본주의였기 때문에 사회주의(공산주의)혁명의 즉각적 필요성을 주장한 것은 지나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1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전쟁을 통해서 생산력을 유지하려는 몸부림으로서 전쟁인가 사회주의 혁명인가의 기초였다.

    지금까지 자본주의 역사에서 위기에 따른 입장들이 제기되어 왔다. 하나는 파국론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에 달해 어느 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져 새로운 천년왕국이 올 것이라는 묵시록이나 극단적인 무정부주의가 자본주의의 억압과 착취 밑에서 신음하는 무산자들을 미몽에 빠뜨렸고 그러한 비과학적 태도에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어 있다. 또 하나는 부르주아지가 내뱉는 낙관론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스스로 그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장치를 내장하고 있고 투기를 근절시키면 경제는 잘 운영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위의 두 가지 입장보다 더욱 세련되고 지배적인 입장은 자본주의의 위기를 ‘순환적 위기’로 규정하고 조용히 참고 기다리면 비바람이 그치고 순탄한 항해를 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특히 이러한 세 번째 입장이 이른바 ‘사회주의 진영’에까지 파고 들어와 계급투쟁을 희석시키고 ‘건강한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작동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19세기 자본주의에서 일어났던 광경이며 20세기와 21세기 자본주의 위기에 더 이상 적용할 수 없는 논리가 되어버렸다. 이는 상승기에 있고 무한히 확장되는 19세기 자본주의의 위기였고 맑스도 『공산주의 선언』에서 이 위기를 과잉생산의 전염병으로 불렀다. 그런데 과잉생산의 경향은 기아, 가난, 실업을 가져왔지만 상품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은 상품, 너무 많은 산업, 너무 많은 자원 때문이었다. 또 하나의 자본주의 위기의 원인은 경쟁을 통해 무정부체제로 끌고 가는 자본주의의 기능인데 새로운 임노동과 상품을 찾아 새로운 지역을 정복함으로써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확장하고 심화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19세기는 위기의 순간을 건강한 심장이 뛰는 것으로 이해했다.

    20세기는 1차 세계대전을 정점으로 이러한 상승기의 자본주의가 마감을 하고 전 지구가 임노동과 상품의 생산관계로 확장되었다. 이 시기의 자본주의를 1919년 코민테른은 “전쟁인가 혁명인가”의 시기로 규정하였다. 한편으로는 세계시장의 쟁탈과 통제를 위한 제국주의 전쟁으로 나아갔으며, 다른 한편으로 과잉생산경향은 19세기와 달리 세계경제를 불안정과 파괴의 반영구적인 위기로 종속시키는 만성적인 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모순은 2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20~30%의 실업자를 만든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인 1차 세계대전과 1929년 세계대공황을 가져다주었다. 이는 한 쪽에 경제의 국가화를 통한 (국가)자본주의(이른바 “사회주의국가들”)와 다른 쪽에 사적 부르주아지와 국가 관료주의가 결합한 자유주의 국가를 형성시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자본주의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 포함)는 25년 동안 재건과 부채증가에 힘입어 예외적인 번영을 했으며 정부관료, 노조지도자, 경제학자, 자칭 “맑스주의자들”까지 자본주의가 결정적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했다고 호언장담하게 되었다.

    그러나 1967년 파운드화의 평가 절하, 1971년 달러위기, 1973년의 오일쇼크, 1974~75년의 경기 후퇴, 1979년 인플레이션 위기, 1982년 부채위기, 1987년 월스트리트 위기, 1989년 경기후퇴, 1992~93년 새로운 경기후퇴로 인한 유럽통화의 혼란, 1997년 아시아의 ‘호랑이’와 ‘용’의 위기, 2001년 미국의 ‘신경제’의 위기, 2005년 서브프라임 위기, 2008년 리먼브라더스 등 금융위기, 2009년 대공황에 버금가는 총체적 위기로 해체와 파국에 직면해 있다.

    2.2 기아와 전쟁, 생태적 재앙을 낳는 야만의 체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총체적 위기가 쇠퇴기의 마지막 단계인 해체 단계에 들어섰음은 인류의 파멸이라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 확인될 수 있다. 잉여가치의 생산과 실현에서 이윤율 하락과 시장포화로 임계점에 다다랐음은 이미 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주의 분석으로 확인된 것이지만, 지금은 야만으로서의 자본주의와 문명으로서의 사회주의(공산주의)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첫째, 자본주의 체제는 임금노예도 먹여 살릴 수 없는 체제로 나아가고 있다. 세계에서 매일 굶주림으로 10만 명이 죽어가고 있고 10세 미만 어린이는 매 5초마다 죽는다. 8억 4천 2백만 명이 만성적인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으며 60억 인구 중 20억이 식품비 인상으로 매일매일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

    둘째,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는 경제번영의 환상을 유지할 수 없는 체제다. 인도와 중국의 경제기적은 환상임이 드러났으며, 중국에서는 2008년 상반기에 2천만 명이 해고되었고 6만 7천 개의 회사가 파산했다.

    셋째, 생태적 재앙이 예상되고 있다. 지구의 온난화를 보면 지구의 평균온도는 1896년 이래 0.6% 증가했고, 20세기는 북반구에서 지난 천 년 동안 그 이전보다 가장 심각한 온난화를 보이고 있다. 눈 덮인 지역도 1960년 말 이래 10% 감소했으며, 북극빙하의 두께는 40% 감소했다. 평균해수면은 20세기 동안 10~20% 상승했는데 이러한 해수면 상승은 지난 3천 년보다 10배 증가한 것이다. 또한 90년 동안 지구에 대한 약탈은 남벌, 토양침식, 오염(공기, 수질), 화학방사물질의 살포, 동식물의 파괴, 전염병의 폭발 등으로 나타나 생태적 재앙은 종합적이고 지구적 형태로 구성되어 예측할 수 없다.

    이는 사회주의(공산주의)의 물질적 기초마저도 파괴하고 있는 것이어서 지구와 인간을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한다는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다. 여기에 자본주의적 인간형의 재생산은 사회주의적 인간을 형성시키는데 지속적 장애물로 남아 있어서 객체와 주체를 모두 파괴당하고 있다.

    2.3 야만인가, 사회주의인가?

    자본주의의 억압과 착취에 맞선 계급투쟁의 역사는 항상적이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제1인터내셔널은 상승기 자본주의의 능력 때문에, 제2인터내셔널은 혁명주의의 포기와 민족주의 때문에, 그리고 코민테른은 사회주의 혁명을 포기한 스탈린주의의 반혁명 때문에 실패했다. 특히 1930년대 이후의 반혁명세력은 (국가)자본주의의 본질을 호도하면서 ‘사회주의’를 참칭하였고 결국 세계자본주의 체제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양 진영의 대립을 위장하면서 세계의 노동자계급을 억압, 착취해왔다.

    더구나 1989년 동구블록과 스탈린체제의 몰락이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명백한 승리”, “계급투쟁의 종말” 그리고 심지어 노동계급 자체의 종말이라고 떠드는 부르주아지의 캠페인은 프롤레타리아트를 그 의식과 전투성 수준에서 심각하게 후퇴하도록 만들었다.

    1990년대 동안 노동계급은 투쟁을 전적으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시기의 투쟁 기관이었던 노동조합에 대적할 폭이나 의식 그리고 능력을 지니지 못했다. 2003년까지는 그렇지 못했지만 1989년 이래 프롤레타리아트가 다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서의 연금삭감 반대투쟁이 전기가 되었다. 노동자의 투쟁은 대부분 중심국가에 영향을 주었는데 미국 (2005년 보잉과 뉴욕교통), 독일 (2004년 다임러와 오펠, 2006년 봄 의사, 2007년 봄 독일 텔레콤), 영국 (2005년 8월 런던공항), 프랑스(2006년 CPE 반대투쟁)가 있고 주변부 국가들로는 두바이(2006년 봄 건설노동자), 방글라데시(2006년 봄 방직노동자), 이집트(2007년 봄, 방직노동자), 이집트(2007년 봄, 방직운수 및 기타 노동자)의 투쟁이 있다.

    2006년 이후 2008년까지 벌어진 세계의 계급투쟁은 이집트, 두바이, 알제리, 베네수엘라, 페루, 터키, 그리스, 핀란드, 불가리아, 헝가리, 러시아, 이태리,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등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으며, 2009년부터 심화되는 대공황과 자본주의의 위기에 맞선 노동계급의 투쟁은 수세적으로 시작되지만 처절한 공세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계급투쟁의 새로운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40년의 위기와 노동계급의 생활조건에 대한 공격, 특히 실업과 불안정 노동의 증가는 미래가 좋아질 것이라는 환상을 날려버렸다.

    둘째, 점점 야만의 형식을 취하는 군사갈등의 영구화뿐만 아니라 환경파괴에 대한 가시적 위협은 사회적 근본변혁의 필요성을 불러일으킨다. ‘반자본운동’과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슬로건은 근본변혁을 빗나가게 하려는 부르주아지가 숨긴 항체다.

    셋째, 스탈린주의와 20년 전 그 몰락 이후의 캠페인이 만든 외상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고 있다. 지금 노동의 삶을 시작하는 새로운 세대는 “공산주의의 죽음”에 대한 거대한 캠페인이 벌어졌을 때 어린이였다.

    그런데 40년 동안 세계자본주의는 엄청난 부채를 짊어짐으로써 재앙을 피해왔다. 자본주의에서 부채는 마약중독자에게 마약이나 다름없다. 그 마약을 소련 같은 (국가)자본주의가 사용했건 미국 같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사용했건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부채의 결과는 지불 가능한 시장을 찾지 못하고 결국 전 세계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것은 또한 전 세계 노동자의 가난,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생태적 재앙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자본주의는 끝나가고 있는가? 그렇다. 그것은 갑작스런 파멸이 아니라 지금까지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서서히 끝나는 마지막 단계, 체계적 몰락의 단계이다.

    우리는 150년 전의 ‘전쟁인가 혁명인가’의 화두를 진지하게 꺼내들고 다시 한 번 ‘야만인가 사회주의인가’를 말하는 역사적, 문명적 인식과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과 혁명적 실천을 준비해야 한다. 이는 혁명적 맑스주의 원칙에 올바르게 전 사회주의자들의 통일과 단결을 의미한다.

    화폐, 상품, 시장, 임노동, 교환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를 넘어서서 자유로운 개인의 연합이 살아 숨 쉬는 노동해방 사회 건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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