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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어디로 : 3호_1930년대 대공황과 계급투쟁, 그 유산
 정책위  | 2009·07·27 01:05 | HIT : 5,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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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노련에서 발행한 <사회주의자> 3호에 실린 글입니다.)

    [역사탐구]

    1930년대 대공황과 계급투쟁, 그 유산

    남궁 원

    1. 문제의식

    2008년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 전 세계적인 자본주의(공황)위기로 나아가고 있는 지금 시대야말로, 이른바 ‘현실사회주의 몰락’ 이후 낡은 고집으로 여기던 혁명의 문제가 다시 떠오른 것이 아닐까? 그래서 혁명의 문제설정은, 자본주의 위기1)를 단순히 경기순환상의 문제로 보지 않고, 자본주의 체계 자체의 역사적 쇠퇴 경향과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을 제기하는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 레닌, 트로츠키 같은 혁명주의자들이 그랬다. 이들은 자본주의 위기에 제국주의 전쟁의 필연성과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제시하면서 개량주의 노선과 단절했다. 그리고 불가능하다고 여기던 혁명을 꿈꾸고 시도했다.

    그러나 여기서 상투적인 문구는 피하자. 프롤레타리아트가 더 이상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비참한 조건 아래서 살 수 없기 때문에 혁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착취와 소외는 노예제, 봉건제, 19세기 자본주의에서도 이미 존재했다. 봉건제 사회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시점에, 우리는 혁명계급-부르주아지의 출현을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발전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충돌 속에서, 혁명이 중요한 이유는 혁명계급-프롤레타리아트가 그 계급적 의무를 수행하지 않거나,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실현하지 못하면 계급의 공멸이라는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파시즘의 대두, 자본주의 경제 질서에 근본적 회의를 던진 세계경제대공황, 5천만 명의 인명이 학살된 제2차 세계대전은 분명 파국의 시대였다. 세계대공황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경제적 군사적 투쟁인 2차 세계대전을 낳았고, 그 결과로 대공황은 해소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최대 희생자는 프롤레타리아트였다!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적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마르크스의 언급은 바로 이런 맥락일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 붕괴는 대중이 ‘지적으로’ 공산주의(communism)를 알기 전에 객관적으로 혁명의 ‘필요성’을 낳는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자본주의 경제 붕괴는 혁명을 향한 가장 큰 동기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중의 좌익화와 함께, 공산주의자에게 20세기 전반부는 ‘전쟁이냐 혁명이냐’의 시대였고, 1929년 대공황은 분명 20세기 역사의 전환점이었다. 그리고 “경제 붕괴가 없었다면 확실히 히틀러도 없었을 것이고, 거의 확실히 루스벨트도 없었을 것”(에릭 홉스봄, 1997)이다.

    오늘 우리의 눈앞에 벌어지는 현상은, 20세기 전반부 세계대공황 (1929~1933) 같은 대재앙이 재현될 가능성을 그 어느 때보다 높게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역사는 반복되는가? 물론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위기도 동일한 형태로 반복되지는 않는다. 프롤레타리아 투쟁, 혁명운동 세력의 투쟁 또한 동일한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1930년대 대공황의 역사를 검토하는 것은 단순히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1920~30년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패배라는 역사 속에서, 스탈린주의로 점철된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를 재검토하는 것이어야 한다.2) 그래서 다시금 혁명의 문제를, ‘세계혁명’의 과제를, 이론적 정치적 교훈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 역사가 종말을 고하는 지금, ‘국제적 사회주의 세계화’ 투쟁을 사고해야 한다.

    이러한 전체적인 문제의식 속에서, 세계대공황 시기의 자본축적과 그를 둘러싼 프롤레타리아 투쟁, 공산주의 운동의 흐름과 특징을 살피고, 미국의 대공황시기 노동자 투쟁을 중심으로 교훈을 얻고자 한다.

    2. 1929년 대공황과 포드주의 (대량생산체계)

    근대적 기계공업이 시작되고, 세계 시장이 형성된 1820년대 이래 세계자본주의 체제는, 생산과 시장의 급팽창으로 인한 과잉생산 공황과 다시 시장의 축소 ․ 생산력의 파괴에 의한 경기회복이 되풀이됐다.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공황3)은 계속 진행됐다. 그러나 1929년 미국 증시의 붕괴로 시작된 대공황은 19세기 ․ 20세기 초 공황에 비교해 더욱 커다란 규모의 공황이었다. 그동안 세계가 경험했던 경제적 위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1929년 대공황은 미국에서 유럽, 라틴아메리카, 동아시아, 아프리카로 급속하게 퍼져 나갔다.

    대공황은 자본주의 세계의 모든 나라들을 휩쓸며, 자본주의 경제의 모든 측면(공업, 농업, 신용, 금융제도 등)을 뒤흔들었다. 대다수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수천 개의 은행이 파산했다. 실업자는 미국에서 1,600만 명, 독일 550만 명, 영국 300만 명, 일본 280만 명, 프랑스 230만 명, 헝가리 80만 명이 발생했다. 전 세계에 실업자는 5천만 명이 생겨났다. (<그림2> 참조) 미국에서는 100만 호의 농장이 부채 때문에 강제로 경매되었다.

    1929년 대공황의 전개 특징을 보면,

    첫째, 자본주의 스스로가 생산력을 파괴했다. 공황 전의 최고점(1929)에서 공황 시기의 최저점(1932)에 이르기까지 공업생산은 미국의 46.2%를 필두로 전 세계적으로 약 30%가 저하되었고 특히 철 ․ 석탄 ․ 기계 등 생산수단 생산부분의 생산 감소가 격심하였다. 주요 공업부문은 모두 1908~09년 이전 수준으로 후퇴되었으며 세계의 무역은 65%나 감소되었다. 자본주의는 생산물 재고를 줄여 이윤저하를 막기 위해, 막대한 양의 상품을 스스로 폐기시켰다. 각국이 공황을 회복하는 시기는 다른데, 일본은 1933년, 영국은 1935년, 독일은 1936년, 미국,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에 가서야 회복이 되었다. (<그림1> 참조)

    둘째, 사상 최대의 농업공황이 세계의 모든 농업국 ․ 반(半)농업국을 습격하였다. 밀의 도매가격이 70%나 폭락하였고, 면화 ․ 사탕 ․ 커피 ․ 양모의 가격저하도 50%에 이르렀다. 농축산물은 대량으로 폐기되었고 중농 ․ 빈농의 몰락이 촉진되었다.

    셋째, 사상 초유의 신용공황, 통화위기가 일어났다. 독일의 다름쉬타트 은행 등 대은행을 중심으로 신용공황이 발생해, 남미, 동구제국의 화폐공황으로 발전하고, 1931년 영국에서 국제수지의 파탄이 일어났다. 뒤이어 1933년 미국에서 은행공황이 발생, 금본위체제가 전 세계적으로 붕괴되었다.

    <그림1>4) 산업생산지수 (1929=100)

    <그림2> 주요국의 실업률

    여기서 대공황 전개 이후를 이해하기 위해, 지배계급 내의 전략적 논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세기 말 이래 모든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노조운동과 사회민주당의 대두로 표현된 노동자계급의 조직화와 정치세력화가 고양되었고, 이는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 그 절정에 이르렀다. 제1차 세계대전은 계급모순을 더욱 격화시켰고, 그 와중에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것이다. 러시아 혁명의 성공은 전 세계 혁명운동을 고무시켰고, 1918년 독일 혁명, 1919년 헝가리 혁명 등으로 선진 자본주의를 뒤흔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 상황에 대해 지배세력 내부에서는 낡은 질서를 비판하며,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개혁의 요구가 등장했다.

    1920년대 지배계급 내부의 전략 논쟁은 두 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새로 탄생한 노동자국가인 소련을 인정할 것인가? 봉쇄할 것인가? 둘째, 제1차 세계대전 중의 전시경제처럼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는 것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전쟁 전의 자유주의 국가로 돌아갈 것인가가 문제였다. 이 쟁점을 둘러싸고 전쟁 전의 구체제로 돌아가자는 ‘반동주의자’와 변화된 현실을 인정하고 자본주의를 개혁하자는 ‘진보주의자’들 간에 대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에서 진보주의자를 대표하는 주자가 바로 케인즈(J. M. Keynes)였다.

    1929년 세계대공황은 자유주의 질서의 최후 붕괴였고, 하나의 전환점으로 작용한다. 1920년에 정치 지배집단이 구체제의 질서를 완강하게 고수한 반면, 자본가들은 이미 새로운 질서를 적극 모색하기 시작했다. 테일러주의(과학적 관리)와 결합된 포드주의(대량생산체계) 확산은 러시아혁명에 맞선 새로운 대응을 의미한다. 자본가계급의 이 새로운 시도는 노동자계급의 힘을 인정하는 한편, 대량생산과정에서 발생한 노동의 소외와 불만을 대량소비과정에 노동자를 포섭함으로써, 내구 소비재를 중심으로 한 시장을 확장시켰다. (박승호, 2004)

    그렇다면 노동자계급에게 포드주의는 무엇이었나?

    포드주의는 자본주의 노동과정에서 노동자집단의 숙련을 박탈하려는 시도였다. 기존의 숙련공-비숙련공이라는 구분을 대신하여, 구상을 담당하는 기술자와 실행에 종사하는 단순 기능공이라는 집합체가 나타났다. 또한 생산관리가 대폭적으로 경영자 측으로 넘어가면서 관리직 계층이 출현하였다. 기존의 노동자의 숙련은 ‘과학적 관리’라는 방법을 통해서 기술자에게로 체계화되었고, 노동자 집단의 노동은 이제 감시와 통제 아래 놓인 단순기능노동으로 축소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한층 진전시킨 것이 포드주의적 노동과정이다. 이는 체계화된 숙련의 자동기계시스템으로의 통합, 그리고 이 기계시스템에 의존한 일관생산으로 특징지어진다. 이제 기계시스템은 노동의 주체성을 완전히 박탈하면서, 노동자의 ‘주인’으로 등장한다. 포드주의적 생산방식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원리의 결합에 의해 테일러주의를 심화 ․ 완성시켰다.

    첫째, 노동과정의 여러 부분들이 컨베이어 장치와 운전 장치의 체계에 의해 통합되면서, 일관생산 공정이 가능해진다. 이 일관생산 공정은 이동하기에 무겁거나 어려운, 혹은 작업하기에 위험한 자재를 이동시키는 데 드는 시간을 감소시키고, 작업 중인 재료가 일직선으로 흐르는 ‘흐름공정’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부품규격의 표준화를 수반하였고, 제반의 산업에까지 일관생산 작업을 침투시켰다.

    둘째, 노동자는 이제 한 직무에 고정되고, 노동자의 배치는 완전히 기계체계의 성격에 의해 결정된다. 또한 기계체계의 획일적 운동이 전제 집단의 작업리듬을 결정하기 때문에, 개별노동자는 자신의 작업리듬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이러한 노동조직 양식은 노동자의 직무자율성을 완전히 박탈하고, 노동자의 개별적 태업을 불가능하게 한다. 노동자는 몇 가지 기본동작을 단순히 반복하는 식으로 단순화된다.

    노동의 극도의 단순화와 단순노동의 일관생산 공정 결합은 노동자를 생산과정 체계로 완전히 종속시킨다. 노동의 자본에로의 실질적 포섭을 완성하는 의미다.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 판매와 더불어 법적 ․ 형식적으로만 자본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이제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능력조차 박탈당함으로써, 자본에 실질적으로 종속된 것이다. 이는 작업장 권력관계에 커다란 변화를 의미했다. 노동자들의 숙련의 박탈은 작업장 권력의 토대를 붕괴시켰다. (국제정치연구회, 2000)

    포드주의 생산체계는 1920년대 초반 미국 자동차산업에 급속히 확산되었고, 이는 생산성의 상승과 더불어 과잉생산의 문제를 낳았다. 포드주의 축적체계는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이후 선진자본주의 국가에 확산됐다.

    3. 대공황 시기 노동자투쟁과 코민테른

    노동자투쟁

    대공황 시기의 특징은 파업투쟁의 고양과 실업자 투쟁의 격화로 나타났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대중의 좌경화는 더 한층 진척되었으며 공산당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지지도 역시 크게 증가하였다. 이와 동시에 몰락하는 소시민층을 대중적 기반으로 하는 파시즘운동 역시 급속도로 성장하였다.

    먼저 노동자 투쟁을 보자.

    1929~1932년 사이 주요 15개국에서 약 19,000건의 파업이 발생했으며, 850만 명이 참가했다. 파업은 영국에서 1,468건, 미국 2,700건, 프랑스 3,601건, 독일 1,304건, 체코슬로바키아 688건, 일본 6,889건, 중국 1,333건, 인도 480건이 발생했다. 파업은 임금인하 반대, 해고반대, 실업구제와 사회보장을 요구하는 국제적인 투쟁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광부, 섬유노동자, 철도노동자의 파업이 중요했는데, 많은 파업이 경찰과 격렬한 충돌을 일으켰다. 경찰이 노동자의 파업을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가혹한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공황에 따른 자본의 재구조화는 농민, 자영업자의 필연적인 몰락을 낳았고, 광범위한 실업자군을 형성시켰다. 이들은 자발적인 실업자 조직을 건설하고, 노동자와 함께 투쟁에 참가했다. 대공황기간 중 비전투적인 사회민주주의자가 자본주의 국가의 거의 모든 노동조합을 지배하고 있던 상황에서, 좌익세력은 실업자 대중 투쟁에 최선을 다하였다. 영국에서는 전국실업노동자운동이 기아행진, 시위를 진행하였고, 이 투쟁은 국제적으로도 주목받았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실업자협의회가 전국적 시위와 투쟁을 조직했다. 1930년 3월에는 약 112만 명의 실업노동자가 시위를 벌였다. 프랑스, 벨기에, 폴란드, 아르헨티나, 칠레, 일본, 중국에서도 실업자 투쟁이 전개되었다.

    한편, 1930년대 세계대공황 시기 노동자들은 새로운 투쟁형태를 창출했는데, 현장(공장)점거 파업투쟁이다. 연좌파업(sit-down strike)이라고도 한다. 현장점거 파업투쟁은 이론에 의해 발명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실천적 필요에 의해 자생적으로 발생했다.

    1930년대 대공황시기 실업은 일반화되고 지속적이었기에 직장을 가진 일부의 특권자들과 실업대중들 간에 일종의 계급 적대가 발생할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임금삭감에 대항한 일상적인 파업은 불가능해졌다. 왜냐하면 파업자들에 의해 텅 빈 작업장은 작업장 밖에 있는 대중들에 의해 즉시 채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더 나쁜 노동조건에 대한 작업거부는 작업장 점거와 결합해 파업을 파괴하기 위한 대체근로를 원천봉쇄할 필요가 있었다. 이로써 파업은 더욱 견고한 형태로 발전하였다. 이전의 파업형태에서 개인들로 이루어진 노동 공동체는 작업장을 떠나면 해체되어버렸다. 즉 노동자들은 거리와 집으로 흩어져버렸고,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은 느슨한 개개인들로 분리되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모든 대규모 파업은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이 회합하기 위해 사용할 거리와 회의실을 둘러싸고 이루어진 경찰과의 계속적인 투쟁을 동반했다. 연좌파업은 작업장이라는 적당한 장소에 모일 수 있는 권리를 얻음으로써, 노동자들이 집회장소를 두고 골치를 썩을 필요에서 해방시켜줬다. 동시에 이러한 파업은 파업파괴자들이 파업자들의 장소에 침입하기가 불가능하게 됨으로써 참으로 효율적인 것이 되었다.

    물론, 작업장을 점거한 연좌파업은 완강한 투쟁을 필요로 하였다. 작업장의 소유자로서 자본가들은 파업자들에 의한 현장점거를 그들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법률적 주장을 통해, 그들은 경찰에 노동자들을 밖으로 내보낼 것을 요청했다. 법률적 논리에 맞서 파업은 투쟁형태로 지속되었고 발전해갔다. (세계노동사, 1993; 국제노동운동사, 1994; 안톤판네쿡, 2005; 코민테른과 세계혁명, 1986)

    대공황시 주요 투쟁 흐름

    1930년 10월 독일 베를린 13만 명의 금속노동자 파업

    1930년 9월 헝가리 10만 명의 노동자 시위

    1930년 인도 반제국주의 봉기, 혁명적 자치기관 설립 시도

    1930년 인도차이나 반제국주의 반란

    1930년 미국, 독일, 폴란드, 영국, 프랑스 등 국제 실업반대투쟁 동시 개최

    1930년 미국 125만 명 실업자대회 후 전국실업자위원회 조직

    1931년 미국 ‘아사(餓死)반대’ 슬로건 아래 광산노동자 파업

    1931년 스페인 노동자 총파업과 군주제 타도 봉기

    1931년 칠레 노동자 봉기를 통한 소비에트 권력 수립 시도

    1932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의류노동자 15만 명 파업

            <재향군인 노동자연맹> 2만 5천명 전쟁상여금 워싱턴 행진투쟁

            미니애폴리스 대중파업

    1932년 폴란드 광산노동자 총파업과 농민의 무장봉기

    1932년 체코슬로바키아 광산노동자 총파업

    1932년 독일 1,100건의 노동자 파업

    1933년 루마니아 철도노동자 파업 투쟁

    1934년 스페인 2만 명의 스페인 광부 봉기

    1934년 미국 항만노동자 20여만 명 총파업

    코민테른

    대공황의 격동적인 대중투쟁 시기에, 전 세계 공산주의 운동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이하 코민테른)5) 주도하에 진행되었다. 이 시기 코민테른은 레닌 사후 권력을 장악한 스탈린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 시기 스탈린은 1928년에 중화학 공업화와 농업 집단화를 강행하기 위해 사회주의 건설 노선상의 ‘대전환’을 단행하였으며, 이러한 정책이 시행되는 과정에서 특히 농촌을 중심으로 계급투쟁이 엄청나게 격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코민테른은 ‘사회주의 조국론’을 제창한 스탈린 노선에 의해 지배된다.

    그러면 1930년 대공황 시기 코민테른의 대응은 어떠했는가?

    1929년 대공황 시기가 문턱에 서 있는 중대한 시기에, 코민테른은 1928년 6차 대회에서 ‘사회파시즘 전술론’을 채택한다. 유럽의 공산당들은 전면적인 계급투쟁을 준비하는 ‘계급 대 계급 전술’을 기본전술로 채택한 가운데, 사회민주주의를 ‘사회파시즘'으로 규정하면서, 우익 사회주의자들을 주적(主敵)으로 규정했다. 전 세계 공산당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공격하는 데 주력해야 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제휴를 거부했다. (크리스 하먼, 2004)

    1935년 코민테른 제7차 대회는 코민테른의 그 이전의 노선인 ‘계급 대 계급 전술'이 폐기되고 디미트로프가 제안한 노동자통일전선에 기초한 전면적인 반파시즘-반전 ‘인민전선 전술’을 채택한다.

    이러한 코민테른의 전술결의는, '스탈린주의 관점'에서 당면한 혁명을 6차대회에서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7차대회에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으로 규정하는 것이었다.

    코민테른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국제적 지도부로 발전해 가기보다는 소련의 대외노선을 타국 혁명세력들에게 관철시키는 소련 공산당의 국제부로 전락해갔다.6)

    4. 30년대 공황 탈출과 무기생산, 2차 세계대전

    1929년 몰락 이후 1934~35년부터 가시화된 세계경제에서의 회복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전례 없는 특수한 성격을 가진다. 이 회복은 수출되지 않는 생산, 즉 군무장의 결과이다. 그것은 독일, 일본, 러시아 그리고 일정 정도 영국과 같은 특정 나라들의 맹렬한 재무장의 결과였다.

    무기경제는 자본주의 내에서 모순의 이러한 두 가지 수준들에 동시에 작용한다. 그것은 생산을 위한 비록 일시적이나마 새로운 출구를 제공함으로써 시장의 축소에 작용한다. 이 출구는 군수품이 거의 모든 생산 영역에 관계되기 때문에 (히틀러의 고속도로 건설 같은 공공사업계획, 뉴딜정책 아래 이루어진 도시계획에 의해 제공된 시장들과는 달리) 경제의 훨씬 더 많은 부문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또한 점점 더 강력하고 정교한 무기의 필요성은 자본집중이 최고조에 달한 선진산업을 특히 자극하기 때문이다.

    1929년의 자본주의 위기는 순전히 경제적 수준에서, 쇠퇴하는 자본주의의가 극복할 수 없는 모순이 처음으로 노골적으로 표출된 것이었다. 1929년의 위기는 자본주의 상승기의 순환적 위기와 마찬가지로 과잉생산의 위기였다. 그러나 상승기의 순환적 위기와 달리, 1929년의 위기는 새로운 성장을 위한 지속적인 근거를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개방함으로써 해결될 수 없었다. 그 위기는 새로운 축적의 순환에 불을 지피기 위하여 잉여가치를 실현할 자본주의의 필요에 비례하는, 비자본주의 시장의 포화상태로 향하는 지구적인 경향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1930년대 동안 경제상황의 미미한 개선은 사실 경제를 통제하고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계전쟁에서 군수생산의 필요를 충족시키도록 그 경제를 변형시키기 위한 국가자본주의 조치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조치들은 자본주의가 이겨낼 수 없는 모순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기는커녕 당분간 자본주의 모순을 미루어 놓는 것뿐이었다. (오세철, 2007; 국제공산주의 흐름, 2007)

    세계대공황의 폭풍이 지나간 후에도 1930년대 자본주의는 고정자본의 만성적 과잉, 만성적 산업예비군의 존속으로 경기상승이 곤란했다. 일시적으로 무기생산을 통한 경기회복은 있었지만, 시장쟁탈을 위해서 각국에서 관세장벽을 높이고 환율시세를 절하하였던 것이 세계시장을 한층 더 좁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1937년에는 다시금 새로운 공황이 발생하였다. 1937년의 공황은 산업의 번영 뒤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불경기와 어느 정도 호황 뒤에 발발했다. 이후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경제군사화를 강행해 전쟁의 길을 걸어가면서, 공황을 모면했다. 미국은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으로 공황을 회피하려 했으나, 1937년 공황을 다시 맞게 된다. 미국이 1930년대 침체에서 확실히 벗어난 것은 제2차 대전 발발과 군수생산의 본격화에 의한 것이다.

    5. 대공황 이후 케인즈주의, 파시즘, 스탈린주의

    대공황은 경제적 자유주의를 종식하고, 세계를 적대적인 경제 ․ 통화 블록들로 분열시켰다. 또한 대공황 이후 세 가지 ‘정치적 프로젝트’들이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났다. 국제경제 차원에서는 자유주의 붕괴와 극단적인 민족주의 반응으로 보호주의 정책으로 전환하였다.

    첫째, 대공황은 시장경제의 자동조절 기능만으로는 극복될 수 없음을 보여줬다. 국가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을 시도한 일종의 개혁된 (뉴딜형) 자본주의의 길이 등장했다. 이후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로 알려진 이 길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포드주의적 축적체제로 정착했다.

    둘째, 파시즘으로의 길이다. 대공황은 파시즘을 세계적 위험으로 바꾸어 놓았다. 파시즘은 사회주의의 도전에 대한 자본주의 세계의 대응이었다. 자본주의는 과중한 착취 상황 아래 사회주의자들에게 재갈을 물리고 무력화하기 위해 민족혁명으로 대응했다.

    셋째,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했지만 노동자권력이 파괴되고 난 이후 세계혁명에 실패한 프롤레타리아의 역사는, (일국사회주의에 기반한 혁명은) 결국 소련식 국가자본주의 길로 들어섰다.

    6. 노동자계급과 미국의 뉴딜정책

    대공황으로 미국의 노사관계는 혁명적 변화를 경험하였다. 193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노사관계는 자본 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상태였다. 법체계 또한 노동자에게 매우 불리한 것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 대공황은 미국 노동운동을 결정적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대공황 때문에 실업이 급증하고 임금이 하락했으며 노동조건이 악화되자 노동자계급 사이에 자본주의 체제 전반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다.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궁핍화, 불만 고조와 노자간 갈등 격화 등이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위협으로 작용됐다. 1930년대 미국 노동자계급의 산별노조 건설투쟁은 새로운 계급질서를 현실화시킨 추동력이었다. ‘뉴딜(New Deal)’을 약속한 루스벨트의 대통령 당선, 1935년의 ‘와그너법(Wagner Act)’7) 제정과 루스벨트 행정부의 노동정책들을 강제한 것은 산별노조(CIO)로 조직된 노동자계급의 대공세였다.

    특히 1936년 12월 20일, 노동자들은 미시간 주 플린트에 있는 제너럴모터스(GM)의 피셔 차체 1공장과 2공장을 점거했다. 1937년 3월 12일 GM은 백기를 들고 전미자동차노조연합(UAW)과 협약을 체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건은 실업률이 높고 노동조직이 취약했던 시기에 미국의 대량생산 산업에서 노조조직화의 봇물을 터뜨린 잇따른 파업의 시작이었다.8) (<그림3> 참조) 이 투쟁 이후 산별노조(CIO)에 의한 조직화가 폭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산별노조(CIO) 안에는 상당수의 공산주의자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 후반부터 조직의 관료화 경향을 나타내고 있었다. 노동자들의 작업장에 기반을 둔 투쟁은 ‘단체교섭의 정착’과 함께 지도부가 하부의 투쟁을 억제하기 시작했고, 조직은 관료화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노조 지도자들은 혁명적 계급의식을 갖고 있었다기보다는 조직화의 수단으로서 실용적인 관점에서 산별노조에 접근했다.

    한편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생산성에 타격을 입은 자본은, 포드주의 노동과정에 대한 저항을 봉쇄하고, 자본주의적으로 통합하는 방식으로 고생산성-고임금의 조절양식을 취했다.<그림4>에 보듯이 1935년 이후 임금이 지속 상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혁명적 세력과 운동에 대한 봉쇄, 노동자계급의 체제 내 포섭이라는 자본의 정치적 전략은 단체교섭을 ‘임금을 둘러싼 경제투쟁’으로 제한시켰다. 이후 산별노조의 단체교섭 제도화는 노무기구화, 국가기구화되어 체제 내로 통합되었다.

    <그림3> 전간기(戰間期) 미국의 노동조합조직률과 파업횟수

    <그림4> 주요 국가의 실질임금 (1929=100)

    7. 파시즘

    1933년 1월 선거로 집권한 독일 히틀러 정권이 수립됨으로써 유럽의 노동자운동은 노동자운동의 역사에서 가장 거대한 패배를 경험해야만 했다. 1934년 2월에는 독일에 이어 오스트리아에 파시즘 정권이 들어섰으며,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유혈적으로 진압되었다.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유럽의 발전한 나라에서 표출된 파시즘의 형태들이다.

    독일에서 ‘민족사회주의’(나찌즘)의 모든 정치적 실천과 사회사상은 경제체제의 특성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그 토대는 자본주의의 조직화였다. 비참하고 굴욕적이었던 전후 시기에 민족주의적 청년들은 민족사회주의당(National Socialist Party)에 열광했다. 민족사회주의(나찌)당은 초기에 쁘띠부르주아지, 농민 그리고 노동자 일부를 매혹시키기에 적합한 첨예한 반자본주의적 경제계획을 제시함으로써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민족사회주의당의 첨예한 민족주의는 독일의 굴욕에 대해 처절하게 저항하고, 베르사유 조약9)을 비난하며, 새로운 힘과 민족적 위대함을 구현하기 위한 투쟁을 호소함으로써 전체 부르주아지가 원하는 감정을 표현하였다. 1930년의 거대한 위기가 중간계급 대중들을 혼란에 빠뜨릴 때, 독일의 대자본은 투표를 통해 민족사회주의를 강력한 당으로 만들었다. 히틀러가 집권한 1933년부터, 군비생산이 강조되었다. 1936년부터 경제정책은 최우선 목표가 전쟁준비로 바뀌었고, 히틀러는 소련과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타파를 대외목표로 내걸었다.

    히틀러 체제의 결정적 붕괴는, 무엇보다도 무기생산 공장노동자들의 사보타지와 대중파업이었다. 전체주의화가 강화되면서 노동자들은 파시즘 체제에 협력하기를 거부했고 그것이 전선에 무기 공급을 어렵게 만들면서, 히틀러 체제의 패배가 결정되었다.

    8. 나오며

    자본주의는 자신의 ‘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초유의 대공황을 미국의 뉴딜정책과 독일 파시즘으로 돌파했다. 1917년 성립한 노동자권력은 또 다른 괴물인 국가자본주의로 변모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처음부터 일국자본주의가 아니라 세계자본주의이기 때문에, ‘세계혁명’을 통해 ‘세계사회주의’를 건설해야만 자본주의 체제를 타도할 수 있기 때문에, 세계공황이 바로 세계혁명의 큰 계기”라고, 그의 연구 후반부 계획에서 구상했다.

    우리는 패배한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역사에서, 이 잊혀진 ‘세계혁명’을 이제 불러내야 하지 않을까?

    <참고문헌>

    김성윤, 1986, 『코민테른과 세계혁명1,2』, 거름.

    김수행, 2006, 『자본주의 경제위기와 공황』, 비봉.

    국제공산주의흐름, 2009, 『자본주의의 쇠퇴』, 빛나는 전망.

    디트마르 로터문트, 2003, 『대공황의 세계적 충격』, 예지.

    마르크스, 2006, 『자본론Ⅲ-하』, 비봉.

    박승호, 2004, 『좌파현대자본주의론의 비판적 재구성』, 한울.

    에릭홉스봄, 1997, 『극단의 시대 : 20세기 역사』, 까치.

    오세철, 2008, 『좌익공산주의』, 빛나는 전망.

    안톤판네쿡, 2005, 『노동자평의회』, 빛나는 전망.

    양동휴 , 2005, 『1930년대 세계대공황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F.R.한센, 1989, 『자본주의 붕괴논쟁』, 과학과 사상사.

    비버리 J 실버, 2005, 『노동의힘 』, 그린비.

    트로츠키, 2003, 『사회혁명을 위한 이행기강령』, 풀무질.

    석탑편집부, 1993, 『세계노동운동사』, 석탑.

    크리스하먼, 2004, 『민중의 세계사』,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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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사용하는 자본주의 위기(crisis)는 1) 특수상황에서 나타나는 구체적 현실적 위기를 2) 반복되는 순환적 위기 또는 경기순환을, 3) 자본주의 체제의 단계적 변형이나 붕괴와 관련되는 위기로 정의된다. 이 역사적 위기 또는 구조적 위기는 자본주의를 타도하거나 변형시키는 결정적인 순간이기 때문에 순환적 위기를 넘어서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투쟁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김수행, 『자본주의 경제위기와 공황』, 비봉, 2006)

    2) 이와 관련된 이론적 작업은 오세철, 『좌익공산주의』, 빛나는 전망, 2008 참조

    3)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하기 전까지 공황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가) 19세기 전반부 : 1825년, 36년, 47년 3회에 걸쳐 공황이 발생했는데, 이 공황들은 그 당시 가장 선진국이었던 영국에서 일어났다. 이 시기 공황은 상업 ․ 신용부문에서 격심하게 일어났다.

       나) 19세기 중반부 : 1857년 공황은 영국뿐만 아니라 그 이외의 나라에서 동시적으로 발생했는데, 이 공황은 최초의 세계대공황이었다. 원인은 대대적인 철도건설과 연이은 생산기술의 진보, 미국의 남북전쟁 등 일련의 정치적 대사건으로 인한 시장 확대 등을 들 수 있다.

       다) 19세기 후반부 : 1873년 공황은 19세기 최대의 공황으로 영국 대신 독일과 미국에서 발생했는데, 기업도산, 생산저하, 가격하락 등이 첨예한 형태를 띠지는 않았지만, 광범한 소농민 경영을 파탄시켰다.

       라) 20세기 초 : 1900년, 1907년 공황은 심각한 상태로 러시아, 일본까지 포함했다. 1920~21년 미국, 일본, 영국에서 공황이 격렬하게 발생, 생산이 크게 저하됐다. (한센, 『자본주의 붕괴논쟁』, 과학과 사상사, 1989)

    4) 양동휴 편저, 『1930년대 세계대공황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5. 이하 그림 도표 출처는 같은 책.

    5) 인터내셔널은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명실상부한 국제적 지도부를 건설하는 문제로, 마르크스 조직사상에 있어서 최고의 조직형태다. 러시아 혁명 직후 레닌은 제3인터내셔널을 건설하는데, 코민테른의 위상은 “국제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봉기의 당”이며, “프롤레타리아 봉기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국제당”으로 규정하고 있다. 「규약」에서는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계급의 완전한 폐지와 공산주의 사회의 첫 번째 단계인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국제소비에트공화국을 수립하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혁명과 독일혁명을 둘러싼 1920년대 초기 코민테른 전략과 전술 테제 논쟁은 독일 좌파와 이탈리아 좌파의 분리로 이어진다. (오세철, 『좌익공산주의』, 빛나는전망, 2008 참조) 한편, 1929년 트로츠키는 코민테른에서 축출당하고, 제4인터내셔널을 창립한다. (트로츠키, 『사회혁명을 위한 이행기 강령』, 풀무질, 2003 참조)

    6) 소련과 부르주아 민주주의 나라들의 연합이 강화되고 있었던 1943년 6월, 코민테른 상임집행위원회가 급작스럽게 코민테른 해산을 결정하는데, 이는 코민테른이 소련의 대외정책에 철저히 종속되어 있음을 입증해 준다.

    7) 와그너법의 기본원칙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노동자는 노조결성여부를 선택할 권리를 가진다. (2)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교섭대표를 선택할 권리를 가진다. (3)이러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사용자들이 침해하는 것은 불가하다. (4)사용자는 노동자들의 교섭대표를 승인하고 교섭해야 한다.

    8) 비버리 J 실버, 『노동의 힘』, 그린비, 2005

    9)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후 연합국과 독일 사이에 체결된 조약이다. 이 조약으로 독일은 자신들의 영토 일부와 상당한 식민지를 상실하게 되었고 전쟁 배상금을 지불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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