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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어디로 : 노해연-29호] 서로 다른 계급, 서로 다른 투쟁형태
 정책위  | 2008·05·29 07:45 | HIT : 2,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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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로 다른 계급, 서로 다른 투쟁형태 어떤 투쟁방식을 채택할 것인가?

      서로 다른 계급은 서로 다른 요구를 내건다. 자본가들은 ‘임금삭감과 자유로운 해고’를 내건다. 노동자들은 ‘임금인상과 모든 형태의 해고철폐’를 내건다. 이 두 계급 사이에서 동요하는 중간계급, 가령 상점이나 농지 등을 소유하고 있기에 노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동자를 착취해 먹고사는 자본가도 아닌 상점 주인이나 소농민과 같은 사람들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상인 보호나 농업보조금 지급’과 같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요구를 내건다. 그러나 각각의 서로 다른 계급이 단지 투쟁요구에서만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삶이 놓여 있는 서로 다른 객관적 토대는 ‘투쟁형태’에서도 확연한 구별을 낳는다.

    자본가들의 투쟁형태
      그 숫자로는 말 그대로 한줌도 되지 않는 자본가들이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투쟁수단은 그 숫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강력하다. 우선 이들은 이백년 이상 축적되어온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다. 좀 더 멀리 추적한다면 이 이데올로기는 수천 년 동안 이어온 모든 지배계급 이데올로기를 응축하고 있다. 이처럼 오랫동안 갈고 다듬어진 세련된 이데올로기는 노동자들과 민중의 의식을 세뇌하고 통제하는 우선적인 수단으로 작동한다. 여기에 제반 이데올로기 기구들을 장악하여 활용하는 것이 덧붙여진다. 신문, 방송 등의 수단만이 아니라 공식 교육제도 자체가 사실상 자본가의 이데올로기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자본가들의 투쟁수단이 얼마나 강력한지 가늠할 수 있다. 개별 자본가의 경우에도, 스스로 언론사 사주이거나 학교 이사장인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더라도 다양한 끈들, 가령 광고주로서의 압력이나 지역유지 모임과 같은 인맥을 동원해서 여론 조작을 일삼는다.
      이데올로기적 수단과 함께 정치적 수단도 있다. 노동부, 경찰, 검찰, 관료행정기구 일반이 사실상 자본가들을 대변한다. 이들은 경제 살리기, 사회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투쟁을 진압하며, 눈엣 가시인 투사들을 공격한다. 또한 국회라는 입법기구도 있다. 이 기구는 이러한 정치적 탄압을 법률적으로 제도화하면서 합법화한다. 이런 정치적 수단은 개별 자본가의 수준에서는 용역깡패나 경비, 노조 파괴자로 구성된 특별 노무관리팀 등의 사조직 형태로 가동된다.  
      반드시 빼서는 안 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자본가들이 소유한 기계나 설비, 작업장 등의 생산수단이다. 자본가들은 응급한 시기에는 직장폐쇄 등의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강하게 공격할 수 있다. 일상적으로도 자본가들은 작업통제나 해고, 징계 등의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통제하려 한다.
      이상의 것들을 종합할 때, 자본가들이 갖고 있는 투쟁수단은 강력하며 그들이 취하는 투쟁형태 또한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경제적 수단을 망라한 총체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자본가들은 숫자로는 대단히 보잘것없지만 이런 강력한 수단들을 장악하고 있기에 포악하며, 필요한 상황에서는 노동자와 한판 붙는 것을 결코 겁내지 않는다. 개별적 수준에서건, 교육, 언론, 악법, 정부기구를 동원한 총체적 수준에서건 그들은 자본주의의 결정적인 진지들을 총동원해 전투에 나선다는 특징을 갖는다. 숫자로는 전혀 보잘것없기에 이들은 전체로서의 자본가계급이 조직해 놓은 기구들, 다시 말해 자본가들을 위해 만들어지고 기능하고 있는 갖가지 결정적인 기구들을 동원하는 형태의 투쟁에 의지한다.
      그러므로 노동자계급은 자본가들의 이데올로기를 능가하는 노동자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하고, 이 이데올로기를 널리 전파할 수 있는 수단들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정치적, 경제적으로 자본가가 보유한 진지들을 무너뜨리고 노동자의 진지를 구축하는 투쟁을 통해서만 비로소 자본가들을 능가하는 강력한 힘을 쟁취할 수 있다.

    중간계급의 투쟁형태
      상인이나 소농민의 생활 조건은 어떠한가? 이들은 홀로 혹은 작은 가족단위로 생산하거나 판매한다. 이처럼 생존방식이 개별적이므로 그들의 투쟁형태도 분산되고 개별적인 양상을 취한다. 물론 농민단체나 상인단체를 통해 공동의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상당히 어렵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작업장단위로 함께 모여 일상적으로 노동하는 노동자들과 달리 평상시에 서로 흩어져 생활하므로, 이들이 조직되고 단결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조직’을 통해 투쟁하더라도 노동자들에 비한다면 이들의 투쟁력은 취약하다. 이는 군대와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적으로 함께 모여 훈련하고 생활하는 부대와 비교할 때 서로 개별적으로 생활하다 특정한 시점에서야 소집되어 모이는 부대는 전투력과 팀웍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이 갖는 분산적 성격의 일부일 뿐이다. 노동자와 비교할 때 가장 중요한 차이는 이들은 ‘서로 경쟁하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이다. 한 동네의 상점 주인들을 떠올려보라. 이들은 좁은 동네에서 서로 고객을 유치하려 다투는 경쟁자로 살아간다. 농민들의 중상층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좁은 농산물시장을 두고 서로 경쟁하는 위치에 서 있다. 이런 객관적 조건 하에 있으므로 이들은 집단적 성격보다 개별적이고 분산적인 성격을 강하게 드러내며, 조직적으로 단결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이고 예외적이며 제한적인 양상을 드러낸다.
      그런데 중간계급에는 이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 중간계급의 주축으로 떠오르고 있는 부분은 형식적으로는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피고용인인 경우도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중간계급의 속성을 강하게 띠는 도시계층이다. 이들은 지식, 기술, 업무상의 우위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 안정된 수입을 얻으며, 이들의 생활조건은 상당 부분 부르주아적이다. 가령 상층 기술자, 관리자, 상층 사무행정 공무원직, 교수, 약사가 그 예가 될 것이다. 이들 또한 서로 경쟁하는 위치에 있으며 단결의 조건은 상당히 취약하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 모든 중간계급들은 농지나 가게 등의 생산수단, 교환수단을 소유하고 있거나 아니면 자본주의 하에서 어느 정도 안정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에서 동요하는 특징을 갖는다. 그렇기에 이들의 투쟁방식은 전투적이기보다는 상당히 타협적이며, 오직 중간계급의 최하층, 가령 농촌의 가난한 소(小)농민들이나 도시의 말단 기술자들, 하급 지식인들이 어느 정도의 전투성을 보일 수 있다.
      중간계급의 이런 특징을 정치적으로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이 소위 시민단체들이다. 시민단체들은 노동과 자본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지점, 가령 해고나 임금문제에서는 침묵하려 하며 그 대신 환경문제나 여성문제와 같은 상대적으로 계급적 성격이 잘 드러나지 않는 영역에 똬리를 튼다. 이 시민단체들은 노동자와 자본가가 충돌할 때, 중간계급의 속성 그대로 ‘원만한 타협과 대화를 통한 해결’을 주문한다. 물론 이것은 자본가계급의 이익과 대부분 일치한다. 왜냐하면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 그리고 노동자가 파업투쟁과 같은 강력한 무기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은 이 사회에서는 결국 자본가의 기득권을 용납하는 것과 하등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고유한 투쟁방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자계급의 고유한 투쟁방식인 집단적 투쟁과 비교할 때, 개별적 투쟁이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가령 1인 시위, 가두 퍼포먼스, 부르주아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고안된 갖가지 기발한 프로젝트(나체시위, 삭발시위, 단식 등), 개별 성명서 발표 같은 것들이 그 부류에 해당된다. 이것은 열정과 분노를 내포하고 있을지라도, 그럼에도 순전히 개인적 차원의 의지와 힘을 표현할 뿐이다. 그 형식상 아무리 처절할지라도, 이것은 개인의 헌신과 열정을 반영할 뿐 집단의 힘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또한 이들만큼 선거에서의 한 표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세력도 없다. 선거는 집단성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으며, 원자화된 개인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제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이들은 자기들도 그다지 꿀릴 것이 없다고 느낀다. 그것도 그럴 것이 투표수에서 그들은 자본가들보다는 훨씬 더 많으며, 노동자와 비교할 때도 여기서는 개별화된 약점이 그다지 부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다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에 비해 더 많은 교육을 받고, 교육, 언론, 출판 등 사회 각계에 널리 포진해 있기에,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상당히 유리한 기회들을 갖고 있다. 돈과 학벌, 경력, 시간적 여유에서도 그들은 유리한 지위를 누린다. 이것은 명망성이나 학력, 경력, 돈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르주아 선거제도에서 그들이 선전 선동 수단의 측면에서나 후보자의 측면에서 돋보일 수 있음을 뜻한다. 한마디로 이들의 영향력은 선거제도에서 상당히 발휘될 수 있으며, 바로 이것을 바탕으로 그들은 노동자들을 현혹시켜 중간계급의 정책(소위 시민단체의 정책)에 표를 던지도록 만들고, 또한 자본가들을 압박해 여러 떡고물을 얻어낼 수 있다. 그들이 부르주아 의회주의 선거제도를 신주단지 모시듯이 하고, 결정적이고도 유일한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도 다 이런 객관적인 상황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는 중간계급의 고유한 특징, 즉 분산되어 원자화된 개별자로 존재하는 특징을 그들의 투쟁형태가 반영하는 것이다. 그들로서는 어차피 개별적 힘이 주요 동력이므로 이 개별적 힘을 동원하고 과시하는 데 적합한 투쟁방식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단식, 할복 등의 형태는 이 중간계급적 투쟁형태의 가장 극단적이고 처절한 표현이다. 그러나 노동자에게는 사정이 다르다. 노동자의 경우에는 개인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집단이 발휘하는 힘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노동자는 소규모의 개별적 투쟁형태가 아니라 철저하게 집단적 투쟁방식을 통해서만 자기 힘을 발휘할 수 있고, 전진할 수 있다.
      물론 문제를 너무 단순하고 기계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비록 개별적 형태이기는 하지만 집단의 힘을 끌어내기 위해 개별 인자가 발휘하는 헌신과 열정, 결단을 반영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현장노동자들 다수의 집단적 힘을 끌어내려 분투하고 있는 과정에서, 선두에 선 인자들의 결단과 결의를 보여주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취하는 개별적 투쟁이 있다. 해고자들의 텐트농성이나 현장활동가의 농성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또한 아직 집단의 힘을 조직할 수 없는 과정에서, 미친 듯이 가해지는 자본가들의 공격에 맞선 저항과 분노의 표현도 있다. 노동자투사의 분신이나 단식투쟁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집단적 분노와 저항의지를 적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채택하는 투쟁이지만 단지 그 외양에서만 중간계급의 투쟁방식과 비슷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파업 출정식에서 간부들이 삭발을 하는 경우가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비록 그 형식에서는 중간계급의 투쟁형식과 혼재되어 보이지만, 그 내용에서는 단지 집단적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선도적으로 펼치는 보조적 저항형태라는 점에서 중간계급의 투쟁형식과는 명백히 구별된다. 단, 그럼에도 노동자계급은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집단적 투쟁을 일구는 데 집중해야 하며, 개별적 투쟁도 오직 이 집단적 투쟁을 조직하는 일시적 수단으로 철저하게 종속되어야 한다.
      반면 1인 시위나 간부 농성, 위원장 단식 등을 주요하고도 결정적이며 중요한 투쟁방식으로 간주하면서 노동자의 고유한 집단적 투쟁인 파업과 같은 투쟁을 꺼리는 노조관료들의 모습은 중간계급적 요소의 표현으로 명확히 비판해야 한다. 파업과 같은 집단적 투쟁이 야기하는 격렬한 충돌을 두려워하면서 이를 회피하기 위해 그들이 노동운동 속으로 수입하는 그런 투쟁형식은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전투성 대신 중간계급의 소심한 투쟁을 뒤따르면서 투쟁을 방기하는 전형적인 투쟁회피주의의 반영물에 불과하다. 그것은 노동대중 자신의 의식과 투쟁력, 결단을 고양시키는 대신, 소수 상층부 관료의 명망성을 유지하고 투쟁을 했다는 생색을 내는 데 급급한 기만적 작태로 준엄하게 비판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아직 지식인의 개별적 근성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사람들 혹은 이러한 중간계급 지식인의 정서와 심리에 감염된 소수 노동자들이 보이는 중간계급적 일탈에 대해서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노동자들의 집단적 단결과 투쟁력을 끌어내기 위해 분투하고 바로 이 집단적 힘에 가장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는 대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소수 인자의 선도적 투쟁에 과도한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은 노동자의 집단적 힘 대신 개인의 영웅적 투쟁에 집착한다. 이들의 투쟁은 겉으로는 대단히 헌신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노동대중의 결집과 각성을 발전시키는 데 힘을 집중시키는 대신 소수 개별자들이 가진 힘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객관적으로 노동자의 고유한 집단적 투쟁력을 발전시키는 데 충분히 기여할 수 없게 된다. 심지어는 극좌적 실천으로 집단적 단결의 구심이 될 수 있는 인자들을 노동대중의 본류로부터 떼어내는 실책을 범하기도 한다. 이것은 중간계급적 정서와 분위기, 투쟁형식을 노동자계급 속으로 수입하려는 행동이라고 준엄히 경고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무엇이 중간계급적 일탈이고, 무엇이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촉진하기 위한 선도적인 실천인가를 구별해내기란 대단히 어렵다. 이는 현장에 포진한 진지한 노동자투사들만이 제대로 구별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별의 잣대는 객관적으로 아주 명확하다. 노동대중의 집단적 힘을 끌어낸다는 전제 아래 진지한 실천을 전개하고 있는가, 아니면 개인 혹은 소규모 집단의 영웅적인 행동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가는 일차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훌륭한 잣대일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투쟁형태
      노동자의 투쟁형태 중 일상 시기에 가장 고유한 투쟁방식이며, 또한 언제 어떤 시기든 노동자투쟁이 더 멀리 전진하는 데 디딤돌이 되는 기본 투쟁방식은 다름 아니라 파업이다. 이 파업을 분석한다면 우리는 노동자계급다운 투쟁형태의 본질에 대해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
      파업이 노동자투쟁의 대표적 투쟁형식으로 부각된 것은 전적으로 노동자가 발 딛고 있는 생활조건에서 비롯된다. 자본가와 달리 노동자들은 생산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중간계급처럼 특별한 기술이나 지식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노동자들은 개별적으로 생산하지 않으며, 전체로서 집단을 구성해서 일한다. 하나의 부품이나 공정은 부서 노동자들 전체의 협동을 통해 생산된다. 더 나아가서 어느 정도 완성된 제품은 전체 부서들의 협동, 즉 전체 작업장 차원의 협동을 통해서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노동자들의 저항은 개별적 방식으로는 전혀 승산이 없다. 가령 개별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고 사장에게 대들면 노동자는 간단히 잘린다. 혼자 작업을 거부하더라도, 그 영향력은 거의 없다. 언제든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실업자들이 공장 밖에 줄서 있으며, 때로는 각성되지 못한 동료들이 간단히 그의 공백을 메워버리기 때문이다. 개별적 투쟁형식은 사실상 완전한 패배를 뜻한다.
      침착하고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노동자들은 본능적으로 그 점을 이해한다. 그들은 집단적인 투쟁형식을 계발해야만 생산을 멈추고 자본가들을 굴복시킬 수 있으며, 투사들을 보호할 수 있음을 직감한다. 이로부터 자연스럽게 등장한 방식이 파업이다. 사실 파업이 노동조합보다 더 먼저 등장했다. “한날 한시에 한꺼번에 기계를 멈춘다면 우리 노동자들도 저항할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 파업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파업은 일시적인 성격을 띠었고, 자본가들은 파업 물결이 지나가면 보복을 가하고 야금야금 투쟁의 성과를 도둑질해갔다. 그에 따라 노동자들은 일상적으로 자신을 조직하면서, 파업을 더 잘 준비하고 성과를 보호할 수 있는 영속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바로 이것이 노동조합 탄생의 이유였다. 노동조합은 파업이라는 ‘집단적 투쟁형식’을 조직적 수준에서 구현한 ‘집단적 조직형태’였다.
      물론 이 파업에서도 ‘선도적 실천’이 필요하다. 어떤 난관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집단적 파업을 조직하겠다는 결의를 가진 선진노동자들이 구심을 형성하지 않는다면, 파업은 대단히 힘들 것이다. 이 구심을 믿고 의지하면서 다수 노동자들이 파업대열로 결집하기 때문이다. 이런 결집은 투쟁의 경험이 거의 없고, 노동조합이라는 일상적 조직형태가 안정되지 않은 현장에서는 더더욱 그 구심들의 헌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이 ‘선도적 실천’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몇몇 소수만의 의지, 분노, 역량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중의 분위기와 정서를 심사숙고하는 가운데, 이것을 현실적으로 모아내기 위해 일시적 보조적으로 사용하는 수단이다. 만일 이것을 영구적이고 중심적인 수단으로 간주한다면, 그것은 철저히 오류다. 한마디로 선도적 실천이 겨냥하는 것은 적들이라기보다는 노동대중의 각성과 발전이다.
      그러나 이 측면도 보다 엄밀해져야 한다. 단지 노동대중의 객관적 요구를 소리 높여 격렬하게 외친다고 해서 그런 역할을 다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노동대중이 스스로 참여해서, 자기 투쟁으로 가져갈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투쟁을 조직해야 하며, 그것을 위해 일시적으로 불가피하다는 전제 아래서만 소수의 선도적인 투쟁은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선도적인 투쟁은 반드시 노동대중이 스스로 합류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준다는 확신 속에서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시야를 좀 더 확장해보자. 그러면 우리는 사업장이나 지역을 뛰어넘어 광범위한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거대한 파업을 떠올릴 수 있다. 이 경우 정지시키는 것은 단지 하나의 사업장이 아니라 사회 전체이며, 굴복시키는 것은 한 명의 사장이 아니라 전체 자본가계급이다. 단사별 파업에서도 그렇지만 이는 노동자들이 생산의 주체라는 객관적 토대로부터 자연스럽게 발휘되는 위력이다. 또한 이렇게 결집되는 사람은 수십만, 수백만, 수천만에 달할 수 있다. 정부를 동원한 자본가의 어떠한 물리적 탄압도, 직장폐쇄 위협도 이런 상황에서는 약발이 먹히기 힘들 것이다. 물론 자본가들도 모든 힘을 총동원해서 강하게 저항할 것이며, 이때 노동자계급은 더 멀리 전진해 근본적인 변혁을 달성해야만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집단적 힘을 결집하는 투쟁방식을 통해 노동자는 개별 사장이든 전체 자본가계급이든 능히 대적할 수 있으며, 바로 여기에 노동자의 진정한 힘의 원천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단결해서 투쟁하는 법을 배워버린 노동자들은 더 멀리 전진하고자 하며, 이렇게 노동운동은 위력적인 힘을 형성해나갈 수 있게 된다.
      결국 강력한 힘을 동원해 사회를 자기 의지대로 끌어갈 수 있는 세력은 자본가계급이거나 노동자계급일 뿐이다. 중간계급은 중간에서 가엾게 동요하면서 쓸모없고 무기력한 평화만을 호소할 뿐이며, 기껏해야 개인 혹은 자그마한 소규모 집단의 힘만을 동원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노동자는 촘촘히 연결된 사회적 노동의 실을 따라 객관적으로 형성되는 거대한 집단적 잠재력을 갖고 있기에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강력한 진지를 갖고 있는 자본가들에 저항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아니 그들을 능가해 생산과 사회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떠오를 수 있다.
      노동자들은 자기 자신의 집단적 힘을 끌어냄으로써 천하무적의 세력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은 생산의 결정적 힘을, 그리고 사회의 압도적 다수자라는 힘을 동원할 수 있으며 이로부터 거대한 집단적 힘을 끌어내는 강력한 조직을 형성할 수 있는 반면, 자본가들은 거짓 선전과 기만, 억압, 탄압, 돈 말고는 동원할 수 있는 다른 힘이 없고 그들이 지금 동원하고 있는 언론, 정부, 용역깡패와 같은 기구의 힘은 당장 겉으로는 강력해 보이더라도 결국 한줌 착취자들을 반영할 뿐인 허약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여러 부분에서 잠재화되어 있을 뿐인 노동자의 집단적 투쟁력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결집 구심이 될 수 있고 흔들리지 않는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선진노동자 투사들의 적극적 실천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일상적인 현장투쟁과 연대의 구심으로 실천함으로써,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조직의 선진적 중핵이 될 선진노동자 정치조직을 건설함으로써 구체화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선진노동자들은 노동대중의 삶의 모든 단면들에 통달해야 하며, 노동대중의 힘을 집단적으로 벼려낼 수 있는 모든 계기들을 하나도 놓치지 말고 활용할 수 있어야만 한다. 아무리 힘들고 오래 걸리더라도 즉흥적인 개별적 분노와 영웅주의에 의지하는 대신 노동대중을 하나로 단결시키고 투쟁의 주인공으로 결집하기 위한 대중적 실천에 집중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단지 개인적 분노와 열망을 즉흥적으로 발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이것 말고는 노동자가 자기 힘을 온전히 발휘하고, 승리를 쟁취하며 노동해방을 향한 자신감과 의지를 키울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은 없다.
      노동자의 고유한 집단적 투쟁방식을 강화하자. 소심한 관료들의 1인 시위나 단식 등을 젖히고, 그리고 소수의 영웅적 투쟁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중간계급적 일탈을 경계하면서, 파업과 같은 노동자 자신의 진정 강력한 힘을 끈기 있게 조직하자. 노동자에게는 노동자다운 투쟁형태가 있고, 오직 이 집단적 방식을 통해서만 노동자는 비로소 자본가와 대적할 수 있고, 자신을 보호할 수 있으며, 노동해방으로 진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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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자본주의는 어디로  노해연-16호] 무엇이 백혈병 환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가 08·05·26
    23 자본주의는 어디로  노해연-26호] 부동산투기 억제정책 08·05·14
    22 자본주의는 어디로  노해연-31호] 탐욕과 학살의 자본가동맹에 맞서 단호한 J13 투쟁을 전개하자 08·05·14
    21 자본주의는 어디로  노해연-35호] 스포츠, 자본주의 그리고 노동자계급 08·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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