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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어디로 : 3호_세계대공황의 역사 (1929년과 2008년)
 정책위  | 2009·07·27 01:04 | HIT : 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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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호60_세계대공황(1929와2008).hwp (56.0 KB), Down : 316
  • (사노련에서 발행한 <사회주의자> 3호에 실린 글입니다.)

    [기획번역]

    세계대공황의 역사 (1929년과 2008년)
    자본주의는 우리를 또 다른 세계대재앙으로 데려가고 있는가?

    김형선1)

    들어가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니 올 여름 전까지만 해도 경제 ‘전문가들’이든 정치인들이든 모두 1930년대의 대공황 같은 공황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들은 국제적, 일국적 규제 덕분에 ‘검은 목요일’(1929년 10월 24일 주식시장 붕괴) 같은 금융재앙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그들은 세계경제는 1920년대에 비해 오늘날 훨씬 더 건전하기 때문에 어떤 금융혼란도 더 이상 [1929년 대공황과] 비슷한 규모로 경제를 망쳐놓을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1997년에 동남아를 휩쓸고, 1998년에 러시아와 수많은 미국 투기펀드를 강타2)했으며, 이른바 ‘닷컴’ 거품이 2001년에 갑작스럽게 꺼져버린 뒤 결국엔 세계의 모든 개별 주식시장을 강타한 금융 쓰나미는 신경 쓰지 마라.” 매번 [자본주의] 체제의 투기적인 빙고 게임 기계는 살아남았고, 심지어는 그 전보다 더 높은 금융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해줬다. 그랬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별 생각 없이 [위기에 대한] 사전 경고들을 무시해 버렸다.

    이런 위기는 파괴적인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세계 인구 상당수의 생활수준과 노동조건을 떨어뜨렸다. 부유한 나라들에서도 그랬으며, 가난한 나라들에서는 훨씬 더 그랬다. 하지만 그런 건 자본주의 옹호자들한테는 별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그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던 공황이 지금 우리 눈앞에 와 있다. 일자리를 줄이고, 공장 문을 닫으며, 노동시간을 단축한다는 선언이 날마다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렇게 공황은 이미 우리를 강타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현대판 ‘1930년대 대공황’의 전야에 있다는 걸 뜻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 적어도 아직까지는 확정적으로 답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두 공황의 규모를 비교하는 것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올 9월 이후 주식시장은 나선형을 그리며 가라앉아 왔다. 자본가계급을 구제하기 위해 더 많은 공적 자금을 제공할 때 잠깐씩 중단되긴 했지만 말이다. 비록 1929년처럼 단 하루의 ‘검은 목요일’이 촉발시킨 것은 아니지만, 이 나선형은 이미 일련의 모든 하루짜리 소규모 충돌을 포함하고 있다. 정말로 런던 FTSE 100 지수3)가 10월에만 4일이나 5~7% 떨어졌는데, 이것은 1929년 ‘검은 목요일’에 월스트리트 다우존스 지수가 9% 떨어진 것과 비교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주가 하락을 보면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주식시장은 도쿄와 홍콩 주식시장인데, 지난해에 비해 30~65% 사이를 오가고 있다. 이와 비교해 볼 때, 1929년 12월까지의 12개월 정도를 보면, 뉴욕 다우존스 주가 지수는 40% 떨어졌다. 비록 하락은 그 뒤 2년 동안 훨씬 더 극적이었지만 말이다.

    누군가가 현재의 위기를 측정하기 위해 주가 폭락을 기준으로 사용한다면, 그건 1929년 주가 폭락에 비견할 만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태를 훨씬 더 위험스럽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주식시장에서 발생한 계속되는 붕괴가 기폭제가 아니라 전년도에 펼쳐진 금융 공황의 결과라는 데 있다.

    1929년에 공황이 세계 금융부문을 결국 무너뜨리는 데는 2년이 더 걸렸다. 거대 경제부문들이 주식시장 붕괴로부터 직접 타격을 받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이 충격은 1931년까지는 신용을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완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런 완충장치가 없다. 신용 위기의 결과로 금융기관들이 입은 손실이 너무 커서, 지금까지 모든 부유한 나라들이 엄청난 구제금융 정책을 펼쳐 왔는데도, 실물 경제에 대출해 주는, 그들의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다.

    금융 손실의 전체 규모는 너무 커서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지금까지, 서방 은행들은 주택 부문에서만 4500억 파운드쯤을 날렸다. IMF는 다가올 몇 달 동안 또 다른 3800억 파운드의 주택 빚이 날아갈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이건 단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왜냐하면 금융기관들은 막대한 양의 신용증권을 쌓아올렸는데, 그 대부분은 지금 거의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 금융권은 주택, 신용카드 대출에서부터 파산한 기업에 대한 대출과 투기꾼들에 대한 대출까지 포함해서 6조 파운드 가치의 신용 관련 ‘자산’을 날려야만 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세계 전체가 1년 동안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가치의 1/5 정도가 허공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현재의 위기 가운데 눈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일 뿐이다. 다른 해골이 언제 또 튀어나와 사태를 더 험악하게 만들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모든 자본주의 공황은 독특한 면들이 있었고, 사회에 특수한 영향을 미쳐 왔다. 비록 이 공황은 시작부터 1929년 대공황에 비해 훨씬 더 큰 비중을 갖는 것 같지만, 체제에 훨씬 빠르게 흡수될지도 모른다(비록 이 공황이 거대한 재앙을 동반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때에도 그 공황은 1929년 대공황보다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훨씬 더 재앙적인 형태를 취할지 모른다. 이런저런 형태로 예측하려는 모든 시도는 쓸데없게 될 것이다. 오직 미래만이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비록 이 공황이 결국 1929년 대공황만큼 재앙적인 결과(대공황의 직접적 산물인 2차 대전만큼 재앙적인 결과) 없이 체제에 흡수되더라도, 우리는 경제 회복이란 곧 다음 번 공황으로 나아가는 첫 단계일 뿐인 그런 구제불능의 [자본주의] 체제에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특수한 면들을 넘어서면, 모든 자본주의 공황은 결국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똑같은 메카니즘으로부터 나온다. 바로 이 측면에서, 그리고 이 측면에서만 현재 공황에 처한 우리는 1929년 대공황의 교훈을 적절히 배울 수 있다.

    자본가들을 위한 복지 국가

    1930년대의 사건들을 살펴보기 전에, 현 공황의 몇 가지 측면들을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자본가 국가들이 자신들의 체제를 구제하는 데에서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자본가 국가의 정책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이 측면에서, 파이낸셜 타임즈4)나 이코노미스트5) 같은 거대 자본의 대변자들은 요즘 신나게 떠들어대고 있다. 얼마 전까지, 이 신문들은 자본에 대한 어떤 형태의 국가 규제도 반대했다. 그들은 규제란 불필요한 ‘관료적 조치’이며, 기업한테는 ‘견딜 수 없는’ 짐이라고 낙인찍었다. 사실, 거대 은행들의 전반적인 예금 인출 사태가 두려워 이른바 ‘국유화’란 포장 아래 노던 록의 빚을 정부가 떠맡았을 때에도, 이 신문들 대부분은 은행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현 영국 재무장관] 달링의 ‘위장된 사회주의’에 맞서 반란의 깃발을 올렸다.6)

    하지만 오늘날 그 신문들은 뭐라고 떠들어대고 있는가? 그들은 이제 [현 영국 총리] 브라운의 ‘지도력’을, 즉 은행에 대한 그의 전반적인 지원을 칭송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은행의 탐욕 때문에 현재의 공황이 발생했는데도 말이다.

    영국 ‘5대’ 은행 중 두 군데의 최대 주주가 되는 등 정부가 공적 자금을 낭비했다는 사실은 이제 이 신문들한테 더 이상 ‘위장된 사회주의’가 아니다. 그런 국가 개입은 갑자기 정부의 필수 임무처럼 돼 버렸다.

    물론 그런 명백한 이중 잣대는 별로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역할은 자본가계급의 돈줄로 기능하는 것이고, 또 항상 그래왔기 때문이다. 정부 조달 형태든, 민간자본 유치 계약 형태든, 세금 인센티브 또는 다른 정부 보조금 형태든 관계없이 정부가 운영하는 공적 자금은 자본가들이 이윤을 벌어들이는 데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자본가들이 정부의 간섭을 반대하는 이유는 정부로부터 훨씬 더 많은 적선을(‘더 적은’ 적선이 아니라) 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가계급이 정부 안에 있는 자기 정치인들한테서 자본주의 체제를 구제하길 기대하는 것은 전적으로 일관성이 있다.

    사실, 자본가 신문들이 영국 브라운 정부와 미국 부시 정부의 행정에 그렇게 만족해하는 것은 정확히 오늘날의 공황과 1929년 대공황을 비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가 발간한, 세계 경제에 관한 최근 부록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1929년 대공황 때] 체제를 구제하기 위해 최초로 대규모 조치를 취하는 데까지는 월스트리트의 ‘검은 목요일’ 이후 3년 넘게 걸렸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과거의 수동성과 비교해 볼 때, 영국 달링 재무장관이 거의 즉각 조치를 취한 것에 대해 감사히 평가한다. 이런 조치는 영국 정부가 공황 같은 게 있다는 걸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오래 전에 취해진 것이다. 이 언론의 암묵적 주장에 따르면, 이런 정부 조치 덕분에 현재의 공황은 1929년 공황과 크게 다르며, 훨씬 덜 파괴적일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 주식시장에서 나타나는 혼란을 끝내기 위한 정부의 구제 조치가 아주 제한적인 성과만 남기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구제조치가 실제로 사태의 악화를 막을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자본가들을 위한 복지 국가가 세계 노동자계급에게 엄청난 부담을 지울 것이라는 점이다. 머지않아 자본가계급과 그 정치인들은 이런 구제금융의 결과로 더 부풀어 오를 국가 부채를 전적으로 노동자계급한테 떠넘기려 할 것이다.

    이것은 온갖 종류의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인플레든, 공공부문의 일자리 감축과 임금 삭감이든, 사회예산의 축소든, 간접적인 세금 인상이든 또는 훨씬 더 무책임한 공공 기반시설 확충이든 관계없이, 무엇보다도 공황 자체에 따른 직접적인 사회적 희생을 요구할 것이다. 모든 은행 계좌의 일정 비율을 강제로 동결시키는 것처럼 훨씬 더 극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물론 있다.

    자본가들한테 충성하는 사람들

    이 세상의 부시, 브라운과 달링 일당이 금융계를 구제한 것은 그들이 자본가계급한테 전적으로 충성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 거대 기업의 대리인들은[자본가정부 관료들은] 노동자계급한테는 아무 것도 주지 않는다. 대신 거짓말만 하고 사기를 칠 뿐이다. 그들은 자본가들의 이윤이 여전히 부풀어 오르고 있을 때일지라도 위기의 조짐을 많이 보여 온 경제를 건전하다고 하면서 항상 노동자들을 속여 왔다. 그리고 또한 체제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들한테 있다며 새빨간 거짓말을 해 왔다!

    2007년 3월에 최초의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때 주택을 담보로 한 투기적인 신용 거품이 미국 모기지 대출자들[주택담보 대출자들] 사이에서 최초로 희생자를 냈던 것이다. 하지만 공식 입장은 모든 게 최고라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규제받은, 그리고 규제받지 않은 단기금융시장에서 팔린 신용증권의 가치가 미국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전세계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투기꾼들은 은행들이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는 산더미 같은 신용증권이, 주택 거품이 터지면 곧바로 쓰레기로 바뀔 것임을 알아챘다. 그래서 은행 주식이 마찬가지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2007년 8월에, 최초로, 두 개의 주요 은행(하나는 영국 은행이고 다른 하나는 프랑스 은행이다)이 미국 주택 신용거품에 노출돼 크게 손해를 입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각각의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 다음 노던 록의 ‘국유화’ 말고도 나머지 금융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일련의 ‘국유화’ 조치가 이루어졌다. 그러는 동안, 전세계에 걸쳐 신용 기관과 금융 기관들은 자신들의 손실을 측정하면서, 가능한 한 최대로 그걸 감추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식 모토는 줄곧 “영국 경제의 기초”는 건강하다는 것이었다. 전세계에 걸쳐, 모든 정부는 똑같은 거짓말을 퍼뜨렸다. 마치 자신들의 코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말 한 마디로 간단히 없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해 가을에, 건설노동자들이 영국 곳곳에서 짤려 나가기 시작했다. 건설 장비와 물품들을 생산하는 공장들이 폐쇄됐다. 번화가에서 판매가 잘 되고 있다는 낙관적인 공식 통계가 나오고 있었지만, 작은 소매점들의 일부도 문을 닫았다. [돈을 내지 못해] 집과 상점들을 압류당하는 숫자가 늘어났다. 소규모 기업의 파산도 늘어났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임시직 노동자들의 실업 때문에 실업률은 부분적으로 감춰졌지만, 그래도 올라갔다. 하지만 이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브라운[영국 총리]과 달링[영국 재무장관]은 ‘영국 경제의 기초는 건전하다’고 줄기차게 떠들어댔다.

    정부에 있는 거대 자본의 대리인들은 어떤 조건에서 공황이 왔다는 걸 인정하는가? 간단하다. 정부가 대규모 구제방안을 논의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자신들이 섬기는 자본가 주인들의 이윤이 침해당할 위협에 처해 있을 때다. 공적 자금을 그런 규모로 낭비하는 것에 대해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국민들에게 설명하려면, 긴급 상황이라는 점을 인정받아야 한다. 영국의 거대 은행들이 모호한 신용거래에 개입해서 수십억 파운드를 잃었다는 게 드러난 다음인 올 초여름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 그 다음에, 그리고 그 다음에만, 달링은 공황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의 경기침체 이후 가장 심각하며, 1930년대 대공황 이해 가장 심각한 공황이라고.

    금융 - 자본의 구속 아래 태어나다

    그때까지 자신들이 입은 손실 때문에 은행들은 더 많은 자금이 필요했지만, 그걸 빌리기는 어려웠다. 적어도 상당히 높은 이자를 지불하지 않으면 자금을 빌릴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더 이상 전과 같은 규모로 돈을 빌려줄 수도 없었고, 그러려고도 하지 않았다.  경제 전체가 붕괴 위협에 처하게 됐다.

    갑자기 재앙이 몰려왔다. 오랫동안 지나치게 부풀어 오른 거품은 실물경제의 실상을 감추어왔다. 그것은 해마다 GDP 수치를 끌어올렸다. 그래서 경제가 계속 성장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비록 이런 성장이 자본가들의 이윤만을 증가시켰으며, 세계 인구의 압도적 다수한테는 삶의 질을 하락시켰을 뿐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금융 거품의 광기가 폭로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실물경제의 약점을 전면에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그걸 더욱 심각하게 만들 위험이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고 왜 이 금융 거품이 발전했는가?

    금융권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자본주의 자체의 고유한 한계를 보여준다. 이 체제에서 자본가들은 자금이 없으면 어떤 생산 활동도 떠맡지 않는다. 그런데 모든 이용가능한 자본은 대부분 생산에 종사하지 않는, 한 줌의 갑부들이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게다가 자본가가 사업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자금이 아주 크기에 대개의 경우, 어떤 자본가 개인도 혼자서는 필요한 투자금을 제공할 수 없다.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신용이 모든 자본가들로 하여금 생산에 개입하든 그렇지 않든 관계없이 노동자계급을 착취해 돈을 벌어들일 수 있게 하면서 자본주의 경제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마비를 막는 데에서 필수적 역할을 했다.

    물론 보다 최근에 신용은 인구 대다수의 실질소득이 줄어들어, 시장이 작아지는 문제를 자본가들이 극복할 수 있는 수단도 되고 있다. 방문 대출7)은 말할 것도 없고, 모기지, HP 론, 신용카드, 당좌 대월8) 같은 신용 장치들이 없었더라면 많은 회사들이(많은 산업까지는 아닐지라도) 오래 전에 파산했을 것이다.

    신용은 항상 돈을 빌려주는 기관이 미래의 수입을(미래의 이윤이든 미래의 임금이든) 예상해 이윤을 창출하려고 한다는 걸 뜻한다. 그러나 이 불합리한 체제에서는 어떤 미래의 수입도 안정적으로 보장받지 못한다. 그러는 한 신용은 항상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자본가들은 그런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고, 자신들의 부가 장기 대출에 묶이는 걸 피한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자기 자본을 증식시키길 원한다면(그런데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실제로 관심을 쏟는 유일한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노동자계급을 착취해 돈을 벌기 위해, 비록 간접적일지라도 어떤 형태로든 생산 영역에 투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단기적으로 돈을 빌려줌으로써 그렇게 한다.

    그래서 특히 1970년대 초반에 통화와 경제가 붕괴한 다음, 세계에는 이른바 막대한 양의 ‘유동 자본’, 즉 단기 대출을 통해 떼돈을 벌려는 자금이 흘러넘쳤다. 이렇게 막대한 자금이 흘러넘쳐 금융활동이 크게 증가했다. 투기 자금의 숫자와 다양성이 폭발하면서, 금융산업은 과도하게 팽창했다. 위험은 줄이되, 이익은 가능한 한 훨씬 더 많이 남길 수 있게 만들어, 부자들이 금융 투기를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끼게 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새로운 상품들이 발명됐다.

    물론 자본주의가 경제를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조직하려 했다면, 투자가 필요한 생산적 기업에 이용 가능한 자본을 공급하는, 하나의 단일한 은행만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자본가들한테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줄 뿐이다. 그래서 ‘효율성’은 시장이, 다시 말해 금융 기관들 사이의 피튀기는 경쟁이 제공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자본가의 투자는 어느 정도라도 합리적이기 위해 필요한 ‘계획성’보다는 ‘투기성’이 항상 강하다. 자본가한테 중요한 것은 자기 자본이 어떤 경제활동에 사용됐는가가 아니다. 자신이 투자했던 것을 처음에 지불했던 비용보다 높은 가격으로 팔아 이윤을 남길 수 있는가만 중요하다.

    당연하게도, 이런 미친 기초 위에서 미친 금융 제도가 발전해왔다. 금융 자체가 이런 광란의 노골적인 사례다. 자기 자본을 실물 경제에 투자하길 꺼리는 자본가들의 주저함을 벌충하기 위해, 은행들은 자신들이 실제로 갖고 있는 자금보다 훨씬 더 많은 규모를 빌려줄 수 있도록, 그래서 효과적으로 위조 지폐를 합법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허락받고 있다.

    물론 은행들은 BIS(국제결제은행)라는 국제 기구가 규정한 특정 규칙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BIS가 뭔지는 그 역사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건 원래 1930년대 대공황 국면에서 금융체제에 약간의 합리성을 도입하기 위해 세계 중앙은행들 간의 협력 기구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BIS가 출범한 지 1년도 안 돼 재앙적인 금융 위기가 터졌다. BIS의 효율성과 그 규제란 고작 그런 것이다! 오늘날 영국에서, BIS 규칙에 따르면 은행은 자신의 핵심 자산 가치(주식, 장기 채권, 예금 등)에 비해 12배까지 대출할 수 있다.

    탐욕의 나라

    다른 모든 금융기관처럼, 은행은 지난 20년 동안 엄청나게 성장한 수많은 시장에서 기능하고 있다. 주식시장은 기업의 주식이 사고 팔리는 시장 가운데 가장 덜 복잡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10년 간 되풀이돼온 주식시장의 붕괴가 보여주듯이, 여기서도 투기 광풍이 수조 파운드의 가치를 지닌 주식을 단지 하루 아침에 쓸어가 버릴 수 있다.

    채권 시장은 이 시장에서 사고 팔리는 증권들 대부분이 특정 회사들과 뚜렷한 연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주식시장과 비슷하다. 채권과 주식 사이의 유일한 차이는 회사의 이윤에 따라 달라지는 주식 배당금과 달리, 채권이 대개 고정된 수입을 제공한다는 점에 있다. 게다가 주식 투자는 기간 제한이 없는 반면, 채권은 고정된 날짜에 상환받는 걸로 돼 있다. 채권은 자주 주식보다 ‘안전하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채권 시장은 공황기에 훨씬 더 피 튀기는 투기의 목표가 된다. 그건 정확히 아주 많은 주식 투기꾼들이 주식시장의 혼란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채권 시장으로 자기 자금을 돌리기 때문이다!

    잠재적으로 훨씬 더 휘발성이 강한 것은, 이른바 ‘단기금융시장’(money market)이다. 여기서는 돈이 ‘단기’로(하룻밤에서부터 3개월까지) 대출된다. 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채무 증서다. 그것은 단기 대출에 대해 투기꾼들이 작성한 차용증서다. 주식, 채권 시장에서와 달리, 이 대출의 실제 사용은 알려져 있지 않다. 예를 들어 노던 록은 단기로 돈을 빌려와 장기 모기지 대출금의 대부분으로 충당하기 위해 단기금융시장을 이용했다. 하지만 노던 록에 돈을 빌려준 사람들은 (대출받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모기지 납입 금액을 감당할 수 있는지는 말할 것도 없고) 이 모기지의 뒤에 있는 집들의 실제 가치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 유동 자본의 막대한 양은 단기금융시장에서 하루 단위로 운용된다. 정확히 이 자본이 단기 투자와 일확 천금을 노리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시 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채무 증서의 등락에 기초한 광적인 투기를 부채질했다.

    이 시장은 주식, 채권 시장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단기금융시장 대출은 오직 얼마간의 자산(그건 거래 가능한 금융자산일 수도 있다)을 담보로 맡기는 대출자들만이 얻을 수 있다. 만약 돈을 빌린 사람들이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하면, 돈을 빌려준 기관은 담보물을 나눠 갖는다. 하지만 만약 이걸로도 그들이 빚진 걸 다 갚을 수 없는 경우,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이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금융 감독 기관한테 충분히 심사받은 기관들만이 단기금융시장에 돈을 빌려줄 수 있다. 하지만 1980년대의 금융 규제 완화 이후, 훨씬 더 많은 기관들이 단기금융시장 진입을 허가받았다.

    예를 들어, 거대 회사들이 자기가 고용하는 노동자들한테 임금으로 주든 자기한테 납품하는 공급업자에게 대금으로 지불하든 그 돈이 필요하기 전까지, 자신들이 갖고 있는 현금을 이윤을 늘리기 위해 단기금융시장에 빌려주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가장 큰 회사들이 이 시장에서 돈을 빌리는 것도 흔히 있는 일이다.

    단기금융시장은 특히 서로 다른 세 가지 측면에서 은행들한테 필수적이다. 이 시장을 통해 은행은 다음과 같은 메커니즘을 얻는다. 우선 단기로 자금을 빌려 장기로 대출해 주는 걸 반복함으로써 다른 금융투기꾼들과 함께 대출 부담을 나눈다. 다음으로 새로운 대출에 필요한 값싼 돈을 얻을 수 있다. 셋째, BIS[국제결제은행]의 자기 자본 비율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자신들의 회계장부에서 다시 균형을 맞출 수 있다. 이는 은행들이 날마다 막바지에 해야 하는 것이다.9) 단기금융시장이 얼어붙는 것 또는 (같은 얘기지만) 이 시장에서 대출 이자율이 갑작스럽게 올라가는 것은 은행들이 불가피하게 막대한 손실을 입거나 파산할 가능성을 초래한다.

    자신들의 자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자본가들의 영원한 두려움 때문에 단기금융시장에서 입는 손실로부터 자기 자본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양한 메카니즘이 만들어졌다. 따라서 회사들은 단기금융시장에서 채무증서의 가치가 하락하거나 대출자가 연체할 위험에 맞서 보험을 제공하는 일을 특화시켰다. 그런 보험을 제공하는 것은 공황기에는 위험한 사업일 수 있다. 이 점은 세계에서 가장 큰 보험 회사인 AIG(아메리칸 인터내셔널 그룹)의 최근 실패에서 드러났다. AIG는 파산했는데, 그건 정확히 지금은 사라져 버린 리먼 브라더스 은행이 짊어진 막대한 양의 부채에 대해 보증 보험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은행들은 단기로 빌려주는 것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한편, 자신들의 대출 상품을 투자자들한테 좀 더 안전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려고 여러 수법을 만들어냈다. 이런 수법들 가운데 하나는, 오늘날 은행 손실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서, 장기 대출을 쪼개서 채권으로 묶은 다음, 채권 시장에 다시 파는 것이다. 마치 수퍼마켓이 품질이 별로 안 좋은 사과를 더 나은 사과와 묶어서 전체를 약간 낮은 가격으로 파는 것과 똑같이, 은행들은 위험한 채무를 더 나은 채무와 섞어 하나의 채무증권으로 만든 다음, 그걸 최고의 채무증권으로 판매한다.

    이런 종이 쪼가리 뒤에 실제로 무엇이 있는지를 알 길이 없는데, 누가 ‘이게 최고다’라는 말에 의문을 제기하겠는가? 특히 이름난 회사들이 그런 채권을 발행하고, 지난 7년 정도 그랬듯이 그런 채권을 사고팔아 고수익을 얻을 수 있을 때는 특히 더 그렇다. 물론 이것의 아이러니는 대부분의 주요 은행들이 자기들의 경쟁사, 특히 미국 은행들이 발행한 그런 채권을 엄청나게 사들여 자기 꾀에 빠졌다는 것이다.

    수천조 원에 이르는 은행들의 자동 도박기

    자본가들한테 기업 손실에 맞서 자신들을 보호할 방법을 제공하기 위해서 또 다른 형태의 금융시장이 지난 시기에 발전해 오늘날 천문학적 규모에 이르렀다.

    이름이 시사하듯이, 이른바 ‘파생’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특별한 제조품, 금융상품 등의 가치로부터 자기 가치가 파생돼 나오는 증서다. ‘파생’ 상품의 판매자는 이 제품의 가치가 특정한 방식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사실에 돈을 건다. 반면 구입하는 사람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에 돈을 건다.(또는 자신이 주목하는 바에 따라 거꾸로 할 수도 있다.)

    ‘파생’ 상품은 처음에 나름의 필요 때문에 나왔다. 19세기 미국에서 대농들한테 밀 가격 하락에 대한 보험을 제공함으로써, 미래를 예견하면서 투자할 수 있게 하려고 파생 상품이 발명됐다. 추수가 이루어지기 훨씬 전에, 농부들은 투자자들을 찾아야만 했다. 그런 투자자들은 대개 밀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데 돈을 걸 준비가 돼 있는 은행가들이었다. 만약 가격이 떨어지면, 투자자는 농부들의 손실을 보상했다. 반대로 가격이 오르면, 투자자는 농부들의 예상치 않은 소득을 자기 것으로 챙겼다.

    오늘날, ‘파생’ 상품은 환율의 변화나 상품 가격의 등락을 비롯해 모든 형태에 대한 보험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파생’ 상품의 80%는 한 형태로든 다른 형태로든 신용과 관련이 있다. 이자율 변화에 대한 보험을 제공하든지, 대출자의 연체에 대한 보험을 제공하든지, 아니면 채무 증서나 채권 거래에서 발생한 손실에 대한 보험을 제공하든지 등등.

    파생 시장은 다양한 이유로 막대한 유동자본을 끌어당긴다. 첫 번째 이유는 1980년대 이래, 대개의 거래가 ‘장외에서’ 이루어져 어떤 제도적 통제도 피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는 투기꾼들이 자신들의 판돈 중 작은 일부만을 현금 형태의 보증금으로 제공한다는 것이다(그건 대개 그들의 총 판돈 가운데 약 10% 정도밖에 안 된다). 그 결과 도박에서 이겨서 얻는 것이 보증금보다 훨씬 클 수 있다. 물론 반대로 도박에서 지면 손실이 보증금보다 몇 배나 클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파생’ 시장은 투기로 떼돈을 벌 수 있는 이상적 장소다. 그 투기에 따르는 위험을 소화할 수 있는 위를 가진 사람들한테는 말이다. 그래서 악명 높은 ‘헤지 펀드’ 같은 투기 펀드 회사들이 그렇게나 많이 ‘파생’ 시장을 운영한다. 마찬가지로, ‘파생’ 상품을 미친 듯이 거래하는 투기적 속성 때문에, 어디에서 가치를 끌어내는가는 완전히 감춰진다. 가령, 서로 다른 회사들이 연체하는 것에 대해 보험을 드는 ‘파생’ 상품은 관련 회사의 건전성 정도에 따라 다른 가격으로 거래돼야 한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왜냐하면 회사들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 보험에 들어 있는 것은 특별한 채무 증서다. 어떤 금융기관이든지 해당 기업들을 위해 그런 증서를 발행할 수 있다. 그 시스템의 불투명함 때문에 아무도 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적어도 보상이 높은 한에서는 말이다.

    은행들은 이렇게 크게 부풀려진 금융 거품의 주요 수혜자들이며, 그렇게 거품을 키운 1등 공신들이다. 특히 은행들은 규제를 피해가기 위해 나온 융자 제도를 엄청나게 이용했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했듯이 채무를 다시 묶어 팔면 은행은 채무 증서를 채권으로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걸 자신의 핵심 자본으로 포함시킬 수 있다.(그것은 대부분의 채무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은행은 또한 자신들의 대출 매니지먼트의 일부를 특별한 종류의 ‘독립’ 자회사로 바꿀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그 자회사의 부채는 은행의 대차대조표에 포함되지 않는다. 게다가 은행은 실제 부채 규모와 관계없이, 보험에만 들어 놓으면 어떤 채무 증서든 부채에서 제외할 수 있다.

    이 어떤 것도 불법이 아니다. 은행 감독기구는 은행들이 규제 시스템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걸 매우 잘 안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자본가들과 회사들이 이윤을 늘리려고 빠져나가는 걸 규제가 언제 막으려 한 적이 있는가? 무엇보다도 감독자들과 은행가들은 서로 같은 사회적 환경에서 잘 어울리는 사이다. 왜 감독자들이 자기 친구들을 해치려 하겠는가? 사실, 최근 은행들의 손실이 드러낸 것은 정확히 그들의 거대한 사기였다. 그리고 공황과 관계 없이, 사기는 계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서술된 금융 기법은 위험한 채무의 증가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게 결코 아니다. 지금도 그렇다. 정반대다. 왜냐하면 사실 그건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들이 보호받을 것이라는 인상을 심어줌으로써 금융투기꾼들을 방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악성 채무가 금융 시스템과 단기금융시장을 혼란시켰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아주 그렇기 때문에 지난 십여 년 넘게 해마다 모든 영국 은행들은 자신들의 대차대조표에서 악성 채무에 대해 준비해 왔다. 그들 스스로도 자기 자신의 신용 장치를 실제로는 믿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채무증서의 가격은 약세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채무 불이행 문제가 있으면 보험을 탈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래서 금융 투기꾼들은 그들이 사고 파는 것의 실체를 꿰뚫어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점점 더 허구적이게 된 시스템을 계속 떠받쳤다.

    그렇지만 고통을 위협하는 신호가 점점 더 눈에 띄게 됐다. 특히 파생 시장의 총액은 투기적인 신용 거품이 얼마나 엄청난 규모로 커져가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해주었다. IMF는 1997년에 규제되지 않는, 신용 관련 파생상품의 가상 총가치가 이 지구가 1년 동안 산출하는 총량의 가치보다 2.5배나 많다고 평가했다. 10년 뒤인 2007년 말에, 이 규모는 전세계 산출량의 11배로 뛰었다. 물론 이런 증가에는 커다란 투기적 요소가 있었다. 하지만 세계의 부채가 10년 사이에 세계 산출량에 비해 4~5배 증가했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런 곤경에 직면한 가구라면 누구나 개인적 파산으로 직행하고 있다는 걸 안다. 세계 자본가계급도 그랬다. 도처에서 경고는 결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윤이 계속 흘러나오는데, 위기라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그래서 투기용 회전목마는 계속 돌아갔다.



    신용에서 은행으로

    현재의 공황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사건들의 연쇄사슬을 간단히 기억해 보자. 단기금융시장에서 거래된 많은 신용증서 뒤에 있는 대출은 평가 기관들이 주장한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할 것이라는 깨달음이 2007년 3월 이후 더디게나마 이루어졌다. 그 결과 미국 모기지와 관련된 일부 신용증서의 가치는 붕괴했다. 미국 부동산 및 부동산 전체와 연결된 모든 것이 의심받으면서 눈덩이 효과가 발생했다. 그래서 눈덩이는 눈사태가 됐다. 이 눈사태는 한 가지 형태든 아니면 다른 형태든 부동산을 다루는 기관들이 발행한 신용증서들을 삼켜버렸다. 그 다음에는 모든 신용 증서들을 삼켜버렸다.

    지금까지는 시장 변동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다양한 보험 장치들이 어느 정도 작동했다. 하지만 사태가 곧바로 너무 심각해져서 채무증권을 보증할 책임이 있는 기관들조차 곧바로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나아갔다. 대부분은 고객들의 채무 불이행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채무 파생상품을 이용했다. 이 기관들은 신용 등급이 낮아졌을 때, 자신들의 파생상품을 보증하기 위해 추가로 막대한 양의 담보물을 낼 것을 요구받았다. 그런데 사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그런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1600억 파운드가 넘는 파생상품에 계약한 AIG가 무너졌다. 미 재무부가 AIG에 510억 파운드를 막바지에 투입하지 않았다면, AIG는 무너졌을 것이다. 다른 수많은 금융기관들도 같이 침몰했을 것이다. AIG는 금융 부문에서 너무 크고, 너무 중요했기 때문에 무너지게 가만 놔둘 수 없었다. 그래서 구제받았던 것이다. AIG 구제가 단기적으로는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AIG의 실패는 금융 보험 시스템이 위기 전개에 대처할 수 없었고, 대처하지 못했다는 실질적 근거다. 그리고 이것은 채무 시장의 악화를 가속화시켰다.

    이 초기에 단기금융시장에서 역설적인 일이 벌어졌다. 일부 채무 증서의 가치가 하락한 것은 그걸 갖고 있던 사람들이 잠재적 손실을 두려워하고, 그걸 제거하길 원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 채무와 관련된 것에는 누구도 새롭게 투자하길 원치 않았다. 채무 패키지의 불투명함은 이전 시기에 밑바탕에 있던 위험의 실제 수준을 감춤으로써 그토록 기적을 일으켰으나, 아마도 아주 건전할 수 있던 수많은 채무 증권까지 포함해 모든 채무증권에 대해 시장 투기꾼들이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 마케팅 기법의 복잡함은 그들이 계획했던 것과 정반대 결과를 낳았다. 채무 시장은 사실상 정지 상태가 됐다. 수많은 채무 증권들이 쓸모없어졌다. 원래 가치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도 그걸 헐값으로도 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 은행들은 다른 데보다도 훨씬 더 엄청난 양의 미국 주택 부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더 타격받았다. 특히 최대의 미국 서브프라임 대출 기관은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과 달리, 미국 은행이 아니라 영국 은행이었다. 바로 홍콩상하이은행(HSBC)이 그것인데, 홍콩상하이은행은 2003년에 90억 파운드로 미국의 하우스홀드[서브프라임 대출업체]를 인수한 바 있다.

    거대 영국 은행들은 딜레마 상황에 빠졌다. 자신들의 회계장부에서 수십억 파운드의 자산이 날아가 버려 핵심 자본이 취약해졌다. 자기자본비율이 압박당했으며, 대출능력은 축소됐다. 하지만 그때는 단기금융시장도 이미 어느 정도 얼어붙어 버렸다. 그 결과 은행들이 대출 포트폴리오10)를 줄이는 게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은행들은 자기자본비율을 충족하고, 장기 대출에 자금을 보충하기 위해 하룻밤 또는 단기로 돈을 꾸는 데 예전보다도 훨씬 더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단기금융시장은 은행한테 필요한 현금을 제공할 수 없었다. 특히 은행이 그 대가로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담보물이 대개 쓸모가 없어진 채무 증서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영국 중앙은행은 개입해서 스스로를 특별한 신용 제도를 가진 단기금융시장으로 대체할 것을 지시받았다. 하지만 이런 특별 신용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정부는 은행들이 정부의 은행 규제를 무시할 권한도 준 셈이 됐다. 그래서 전체 시스템이 새로운 위험을 겪을 가능성이 더 커져버렸다.

    이런 특별 신용제도를 통해 은행에 대출된 2000억 파운드가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은행이 손실을 훨씬 높게 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훨씬 안 좋은 것은, 은행조차 자기들의 최종 손실이 얼마나 되는지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행은 대출을 줄였을 뿐만 아니라 사태가 심각하게 악화되는 걸 대비해 현금을 붙들어두기 시작했다. 은행이 새로운 현금을 확보하려면 투자자들을 새로 모집하거나 자기 사업의 일부를 팔아야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은행이 이윤을 늘리기 위해 수년 동안 전체 경비를 줄여온 터라 팔 것이 별로 없었다. 투자자로부터 현금을 확보하려고 해도, 투자자들은 가격이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미래가 불투명한 주식을 잘 사려 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때때로 너무 나빠, 몇몇 은행들은 훨씬 안 좋아진 상태에서 그런 시도를 그만두었다. 거의 파산 상태에 이른 RBS[스코틀랜드 왕립은행]가 그런 사례다.

    다른 은행들은 이른바 ‘국부 펀드’로, 즉 주로 석유 생산국에 기초를 두고 국가가 운영하는 투자 펀드로 방향을 돌림으로써 그런 위험을 피하려 했다. 가령 [영국 4대 은행 중 하나인] 바클레이는 [페르시아 만 연안의 산유국인] 카타르에서 재정을 차입했다. 심지어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한테 구걸하는 것까지 고려했다. 분노한 주주들이 그런 움직임을 막았던 것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영국에서 사실인 것은 전 세계에서도 사실이다. 결국 1년 전에 노던 록이 그랬던 것처럼, 투기 사슬의 가장 약한 고리가 끊어졌다. 가장 약하다는 것은 비록 반드시 가장 작은 것은 아니지만, 단기금융시장에 가장 많이 의존한다는 것을 뜻했다. 무너진 기업 가운데, 메릴린치는 1조 1000억 파운드에 이르는 부자들의 자금을 관리해 최대의 자산 관리업체 가운데 하나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큰 증권 회사였다.(이것은 메릴린치가 대부분의 다른 은행들이 그랬던 것처럼 중개 기관을 통하기보다, 직접 주식시장에 개입했다는 걸 뜻한다.) 와코비아는 총자산 규모로 볼 때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금융기관이었다. 리먼 브라더스는 네 번째로 큰 미국 투자은행이었다. 워싱턴 뮤추얼(와뮤)은 여섯 번째로 큰 은행이었다.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는 HBOS[핼리팩스 뱅크 오브 스코틀랜드]가 영국에서 최대 모기지 대출업체였으며, 4위 은행이었다. 포르티스[벨기에-네덜란드 합작 금융그룹]는 유로화를 쓰는 지역에서 4위 은행이었다. 히포 부동산은 독일의 최대 모기지 대출업체였으며, 지방 자치 단체에 가장 많이 대출해준 기업이었다.[여기서 거론되는 기업은 이미 파산했거나 파산설이 끊이지 않는 기업이다.]

    …그리고 더 넓은 경제로

    가장 약한 기업이 쓰러지는 것도, 살아남은 은행들에 새로운 자금을 수혈해 자본을 재구성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프로그램도 공황의 전개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드러났다. 왜냐하면 그 사이에 또 하나의 새로운 요소가 작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건 주식시장이다.

    그때까지 신용 위기로 자기 주식이 실제 영향을 받은 유일한 산업은 금융, 건설 그리고 부동산이었다. 그때까지도 영국 RBS 같은 몇 가지 예외가 있었지만, 아직 재앙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9월 말에 주식시장은 훨씬 더 변덕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신용불황의 큰 재앙 속에서, 리먼 브라더스가 첫 번째로 무너졌다. 다른 기업들처럼 자금 보충이 어려웠기 때문이 아니라 월스트리트와 런던 주식시장에서 그 주식들을 미친 듯이 팔아댔기 때문이다. 곧이어 모든 산업이 타격받았다. 예를 들어 제네럴일렉트릭(GE)11)이나 GM처럼 금융업과 관계가 없는 우량 기업들도 그랬다.

    사실, 이건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전 몇 주 동안 벌어진 사태들의 거의 자동적인 결과였기 때문이다. 9월 20일, 미국의 한 단기금융시장 펀드는(단기금융시장에 투기함으로써 투자자들에게 이윤을 보장해주는 투자 펀드 회사는) 고객 돈의 97%만을 돌려줄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그런 펀드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보통 15~20% 정도의 연수익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들의 원금 일부까지 잃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것은 모든 단기금융시장 펀드에서 예금 인출 사태를 촉발했다. 단 하루만에 540억 파운드가 미국의 이런 펀드들로부터 빠져나갔다. 똑같은 과정이 대부분 신용 관련 파생 상품에 도박을 건 헤지 펀드들한테도 타격을 미쳤다. 9월 마지막 주에, 다른 250억 파운드가 미국 헤지 펀드들로부터 빠져나갔다.

    이런 자본 탈출은 펀드 매니저가 자신들의 투기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새로운 자금원을 찾게 만들었다. 단기금융시장에서 빌리는 게 불가능하거나 적어도 터무니없이 비쌌기 때문에 그들은 손에 있는 자산은 무엇이든(특히 주식을) 팔아야 했다. 그래서 9월 말부터 주식을 팔려는 광란적 흐름이 월스트리트에 흘러넘쳤다. 이것은 다시 연쇄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주가가 떨어지자, 금융 기관들과 자본가들은 주식시장에서 작동하는 뮤추얼 펀드12)에서 자신들의 돈을 빼내가기 시작했다. 10월의 첫 두 주 동안에만, 400억 파운드가 미국의 이 펀드들로부터 철수했다. 그건 훨씬 더 큰 주식 매도의 물결을 낳았다.

    그때까지, 정부가 파산 직전에 있는 은행들에 경제적 지원을 할 것인가 여부는 더 이상 실제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수천의 투자자들이 자기 돈을 빼가고 있었고, 수백의 주식시장 투기꾼들이 파산의 위협으로부터 빠져나가기 위해 노력하느라 바빴다. 다른 수백의 투기꾼들은 자유 낙하하고 있던 시장에서 일확천금을 얻으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가장 천박한 형태의 자본주의 정글 법칙이 노골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그건 정치인들이 달콤하게 얘기한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수천억 파운드의 국가 보조금으로도 없어지는 게 아니다. 그래서 FTSE 100 주가 지수가 딱 3주 동안 24% 떨어졌다. 그 다음에는 비록 더 많은 주들이 올라가기보다는 떨어졌지만, 혼란스럽게 오르락내리락했다.

    얄궂게도 브라운이 영국 경제가 침체 상태에 들어갔다고 ‘공식’ 발표하기로 선택한 것이 이때였다. 사실 그건 전체 노동자계급이 이미 자기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을 밝힌 것일 뿐이다. 건설 관련 산업에서 이미 일자리를 잃은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나, 생계를 꾸려가고 빼앗길 위험에 맞서 싸우는 게 일상인 수십 만 주부들은 위기를 이미 알고 있었다. 전년도의 가파른 물가 상승 때문에 생활수준의 하락에 직면해야 했던 광범한 다수도 마찬가지였다.

    자본주의 빙고게임 기계가 다시 한 번 문제를 일으켰다. 이윤 증식을 향한 비이성적 광란이 금융권을 혼란에 빠뜨렸고, 이런 혼란이 지금은 실물 경제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많은 노동자계급 가구가 적절한 신용 대출을 받을 수 없어 파산하는 끔찍한 상황이다. 이미 건설 쪽은 한 동안 자금이 딸려 연기되고 있다. 홈리스들이 증가하고 있는데, 새 주택 분양률은 1990년대 초반의 주택 위기 때보다도 훨씬 더 낮다. 소기업들은 신용 지원을 목말라 하고 있다. 반면 크게 타격받지 않은 대기업들은 일자리를 줄이고 실질 임금을 깎으면서 공황을 대비하고 있다.

    영국의 거대 석유회사인 BP는 말할 것도 없고, 영국 통신(BT), 거대 제약회사인 글랙소, 통신회사인 캐이블 앤 와이어리스(Cable & Wireless) 같이 그렇게 돈을 잘 벌던 대기업들의 경우, 그들이 발표한 대로 수천 명을 짜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누가 믿겠는가? 그런데 이것은 이 자본주의 체제가 노동자들한테 내놓는 유일한 전망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시작일 것이다.

    대공황을 향해

    현재의 공황과 1930년대의 공황 사이에는 많은 차이점들이 있다. 하지만 두 공황을 낳은 환경에서는 놀라운 유사성이 있다.

    현재의 공황과 꼭 마찬가지로, 1929년 공황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오지 않았다. 이전 10년의 전반부에는 일련의 위기들이 있었다. 1921년 공황은 가장 선진적인 나라들에 영향을 미쳤다. 사실 1921년 공황은 1차 세계대전 동안의 전시 경제로부터 자본주의 경제가 야만적으로 돌변하는 방식이었다. 그런 다음 1923년부터 1926년 사이에 일련의 지역적 위기들이 뒤따랐다. 그리고 그건 다시 가장 선진적인 나라들을 타격했다. 하지만 독일을 예외로 하면, 그 위기들은 짧았고 어쨌든 산발적이었다.

    이른바 “번영의 20년대” 시기는 노동생산성이 크게 증대하고 새로운 제조 산업(자동차, 라디오, 전자 소비제품 등)이 빠르게 발전한 1926년 말에야 실제로 시작됐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런 새로운 풍요를 모든 사람들이 나눈 건 아니었다.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공황 직전에 미국 가구의 60%가 최저 생계비보다 낮은 소득으로 살았다. 그런데도 미국 신용평가 기관의 창설자인 존 무디 같은 사람은 “새로운 시대는 전체 문명세계를 통해 모양을 갖춰나가고 있다…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대 기계 문명은 이제 스스로를 완벽하게 만드는 과정에 있다. 아마도 우리는 그 점을 이제 깨닫기 시작하고 있을 뿐이다”고 선언했다. 또는 반대로 말하면, 이 새로운 ‘과학적’ 산업은 어쨌든 자본주의가 새 장을 열었고, 과거의 나쁜 위기(공황)는 영원히 끝났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신기술 호황’의 전성기 동안, 즉 2001년 ‘닷컴 붕괴’가 그런 공문구들을 모두 끝장내기 전에 사용된 언어와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점을 누구나 알아챌 수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가 1920년대에 결코 건전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또 다른 흐름이 있다. 그건 투기다. 투기는 유명한 폰지 방식부터 플로리다에서 시작된 부동산 투기거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취했다. 폰지 방식13)은 그 이후 발명된 모든 수많은 방식의 선조인데, 가장 잘 속는 사람들한테 자신들의 돈을 쓰도록 꼬드기는 것이다. 플로리다에서는 개발된 습지들이 구획별로 나뉘어, 주말을 보낼 멋진 장소를 찾는 데 필사적이었던 북부 주들의 부유층들한테 천문학적 가격으로 팔렸다. 하지만 ‘번영의 20년대’에서 가장 굉장했던 투기 거품은 물론 월스트리트의 주식시장이었다.

    그 당시에는, 오늘날의 복잡한 투기 수단들 가운데 어떤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은행들은 주식시장 투기의 실상을 부자들한테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려고 속임수를 발명했다. 그들은 자기 고객들이 투기에 필요한 돈의 약 10~20%만을 갖고도 주식 거래를 계속하게 했다. 은행이 나머지 80-90%를 그들에게 빌려 줬다. 물론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이자율로 그랬다. 주가가 날마다 계속 올라가자, 이른바 이 ‘콜 론(call loan)’14)에 대한 담보물로 주식을 맡기는 일이 흔했다. 그래서 고객들은 자기들의 도박에 한 푼도 안 내도 됐다.

    그 결과 투기꾼들이 빠르게 늘어났다. 1929년에는 140만 명이 월스트리트에 투기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80%가 은행의 ‘콜 론’ 기능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것 자체는 4000만 가구가 넘는 인구에 비해 엄청난 숫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상당히 많은 소부르주아들이 자기 저축으로 모험을 했다는 걸 의미한다.

    이 투기 광풍 속에서, 수천의 회사들이 주식시장에서 돈을 벌겠다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갑자기 나타났다. 그리고 몇 달 안에 그 회사의 임원들은 돈을 갖고 주소도 남기지 않은 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런 다음, 그리고 오직 그때 가서야 주주들은 이 회사들이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았으며, 자기들의 주가를 높이기 위해 만든 화려한 광고 찌라시 말고는 어떤 형태로도 존재한 적이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좀 더 실체가 있던 회사들조차도 별로 마땅하지 않은 성공을 누렸다. RCA, 아메리카 방송사가 전형적인 사례였다. 1929년 9월, 그 주식의 가치는 21개월 만에 시장에서 6배나 뛰었다. 그리고 이 회사들은 주식 배당금으로 1센트도 지불하지 않았다. 사실 많은 회사들이 가장 부유한 소수의 대주주들한테만 주식배당금을 주고, 일반 주주들한테는 배당금을 주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주가가 계속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 자본금을 올릴 필요가 있을 때는 항상 구매자들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 사실 공황이 일어나기 전 20개월 동안, 주가는 평균 2배로 뛰었다.

    오늘날의 상황과 유사한 또 하나의 사실은 붕괴가 일어나기 전 2년 동안, 많은 회사들이 생산적 투자를 감축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시장에서 경쟁사의 주식을 재빨리 장악하기 위해 거대한 인수 합병에 자신들의 이윤을 투자하거나, 심지어는 노골적인 주식시장 투기에 이윤을 투자하는 게 더 이익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붕괴가 일어나기 전에 12개월 넘게, 비금융 투기자들에 대한 ‘콜 론’의 비율은 50~70%로 치솟았다. 그것은 크든 작든 많은 회사들이 주식시장에 투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그 회사들 대부분은 현금을 별로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임금이나 납품업자에게 대금을 지불하려고 옆으로 빼두었던 돈으로 투기했다. 최근에 그랬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말이다.

    마지막으로 주식시장이 특히 미국에서, 하지만 대부분의 유럽 나라들에서도 마찬가지로 붕괴하기 전 마지막 해에 산업 생산이 감축했다는 점을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서비스 가치가 계속 증가해 GDP가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감춰졌다. 그렇지만 실물경제는 주식시장 붕괴가 일어났을 때 이미 빨간 불이었다.



    미국 공황과 그 결과

    1929년 10월 24일 목요일 하루 전날은 많은 주식 값들이 떨어지는 우울한 날이었다. 주가 하락은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많은 투기꾼들을 걱정스럽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그래서 그 다음 날 아침, 수많은 주식들이 팔리려고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뜻밖에도 사려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래서 수년 동안 그런 적이 없었는데,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몇 시간 안에, 많은 투기꾼들이 ‘콜 론’에 대한 보증금으로 맡겨놓은 주식들의 가격이 부족해져 버렸다. 그들은 이제 담보물을 늘리든가 아니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주식을 판 뒤에 게임에서 철수하든가 둘 중 하나의 선택을 요구받았다. 대부분은 후자를 선택했다. 그러면서 주식 판매는 광적인 투매로 바뀌었다. 거대 은행들이 매수세를 만들려고 공동으로 노력했지만, 장이 마감할 즈음 주가는 9% 떨어졌다.

    그 뒤 며칠 간 주가는 좀 더 천천히이긴 하지만 계속 떨어졌다. 은행들은 추세를 돌리기 위한 어떤 시도도 포기해 버렸다. 그 다음 주 화요일까지 은행들은 자기 자신의 주식을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대규모 매도가 일어난 1주일 후에 주가는 20% 넘게 떨어졌다. 많은 거대 회사들이 자신들의 모든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주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뒤에 주가가 약간 올라 이틀 동안 유예 기간이 있었다. 하지만 11월 첫 주에 하향세가 다시 시작됐다. 그것은 1932년 여름까지 거의 계속됐다. 그때서야 1929년 수준의 20% 정도에서 바닥을 찍은 것이다.

    이런 공황에 단 하나의 원인만 있는 건 아니다. 그 붕괴는 아마 한두 달 전이나 뒤에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투기 거품이 점점 더 견딜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커졌으며, 특히 산업생산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반영했다. 투기 거품이 부풀어 오르면 오를수록,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사건이 공황을 촉발할 위험성도 더 커졌다.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한 번 운동이 시작되자, ‘콜 론’ 시스템은 판매량을 늘려 투기꾼의 손실을 증가시키는 자동적인 메카니즘을 만들었다. 똑같은 시스템이 과거에 자신들의 이윤을 자동적으로 늘렸던 것처럼 말이다.

    많은 은행들과 회사들이 직접 나서든지 아니면 투기꾼한테 자금을 빌려줌으로써 주식 투기에 큰 돈을 걸었기 때문에, 공황의 충격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많은 중개인들과 투기꾼들이 자신들이 입은 손실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손실은 그들에게 투기 자금을 대준 사람들한테로 이전됐다. 회사들은 자신이 쓸 수 있는 현금이 없다는 걸 알았다. 자기 자신의 손실과 자신의 주식시장 고객들의 손실을 메우기 위해 처분 가능한 모든 유동성을 다 사용해야 했던 은행들은 곤란에 처한 회사들한테 새롭게 자금 지원을 할 수 없었다. 심지어는 기존에 해왔던 자금 지원도 더는 유지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전국에 걸쳐 거의 즉시 파산 행렬이 이어졌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건 노동자계급과 농민들이었다. 농촌에서 고객들의 돈으로 주식시장에서 재미를 봐온 지역 은행들은 파산지경으로 내몰렸다. 농부들은 종자를 사거나 농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금조차 구할 수 없었다. 노동자계급의 경우 공장 폐쇄에 따라 즉시 대규모로 정리해고당했다. 실업률이 공황 몇 달 만에 1/3이나 치솟았다. 실업자는 1931년에 8백만에 이르렀고, 1932년에는 1,250만이나 됐다. 그 당시에는 미국 전체 가구[약 4,000만 가구]의 1/4에 임금소득자가 없었다. 남아 있던 노동자들도 대부분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었고, 그들 가운데 90%는 임금이 깎였다.

    하지만 공황이 훨씬 더 깊어졌던 것은 주식시장 공황으로부터 금융 부문의 유동성 위기로 곧바로 나아갔기 때문이다.15) 그것은 1930년 중반부터 시작해 일련의 지역 금융공황을 낳았다. 거대 은행들은 연방준비은행16)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한, 하나도 심각한 위험에 처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1,300개나 되는 지방 은행들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일부는 몇 달 동안 문을 닫고, 다른 일부는 영원히 문을 닫았다. 어느 쪽이든 많은 예금자들이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주식시장 붕괴 그 자체보다도 이 금융 위기가 훨씬 더 미국에서 유동성을 마르게 함으로써 미국의 해외 투자를 무자비하게 철회시키고, 그럼으로써 공황을 세계로 확산시켰다.



    독일: 금융공황에서 파시즘으로

    독일은 대공황으로 가장 크게 타격받은 나라일 것이다. 여러 측면에서 미국보다 훨씬 더 그랬다. 월스트리트 공황에 따른 직접적 결과는 미국에서처럼 끔찍한 생산 감축이었다. 그것은 주문이 줄어드는 한편, 사장들이 더 심한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해 스스로 생산을 줄인 결과였다. 하지만 독일은 거기에다 아주 빠르게 통화 문제에 직면했다.

    1929년에 독일 마르크의 환율은 영국 파운드의 환율과 마찬가지로 금의 고정량에 따라 규정됐다(이른바 ‘금 태환제’). 그런 시스템의 주요 이점은 독일 화폐의 변동을 좀 더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세계 시장을 상대하는 독일 회사들한테 도움이 됐다. 하지만 영국과 달리, 독일한테는 자신의 경제적 고통을 떠넘길 수 있는 식민지들이 없었다(비록 결국에는 그런 상황일지라도 영국 또한 금 태환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게다가, 독일이 보유한 금액의 큰 부분(1929년에는 18%)은 단기 외화 예금이었다. 독일 마르크를 금에 고정시킨 것은 이 외화 예금의 인출이 독일의 금 보유고를 감축시킬 수 있다는 걸 뜻했다.

    유동성이 필요한 미국 금융기관들이 독일 은행들에서 예금을 인출해가기 시작했을 때, 정확히 그런 일이 일어났다. 이런 인출 사태는 독일이 1차 세계대전의 채무 상환 일정을 조정하는 데 실패한 다음 공황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1931년 봄 오스트리아 [최대은행인] 크레디트안슈탈트가 무너져 독일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에 의심을 품게 만든 뒤에는 공황이 훨씬 더 심해졌다. 곧바로 영국 투자자들도 미국 투자자들처럼 독일에서 자금을 철수했다.

    1931년 7월 13일, 수많은 거대 독일 은행들은 자기 고객들에 대한 모든 지불을 중단해야 했다. 다른 은행들은 광란적인 인출 사태를 막기 위해 경찰을 불러야만 했다. 그날 저녁, 정부는 금융시스템의 완전한 붕괴를 막기 위해 모든 은행과 주식시장은 문을 닫으라고 지시했다. 은행들은 몇 주 또는 몇 달 안에 서서히 다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주식시장은 1932년 4월에야 겨우 개장했다. 그러는 동안 독일 마르크화를 위협하는 흐름이 이어졌다. 독일 중앙은행은 금과 외화를 너무 많이 잃어버렸기 때문에 모든 저항을 포기하고, 금 태환제에서 벗어나 독일 통화가 무너지도록 놔둘 수밖에 없었다.

    독일 통화와 금융시스템의 붕괴는 수백 개 회사를 파산시켰다. 그래서 6개월 뒤 독일의 산업 생산은 1929년 수준에 비해 50%로 떨어졌다. 동시에 우파 수상인 브륑이 취하고, 사회민주당이 지지한 긴축 조치는 노동자계급의 생활수준을 끔찍하게 떨어뜨렸다. 1932년까지 노동자계급의 1/3이 일자리를 잃었다. 여전히 일하고 있던 노동자들의 명목 임금은 35%나 줄었다. 소부르주아의 전 부문도 공황 때문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금융 붕괴로 모든 걸 잃은 자들이 특히 더 그랬다.

    수많은 요소들이 히틀러의 파시스트 운동이 1년 뒤에 승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공황에 따른 사회적 재앙이 소부르주아의 전 부문을 노동자계급 가운데 절망적인 사람들과 함께 히틀러의 부대로 몰아넣는 데에서 훨씬 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물론 다른 중요한 정치적 요인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가령 사회민주당이 정부의 계속적인 친기업 정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것, 그리고 공산당이 자본가계급의 공격에 맞선 공동전선으로 노동자계급을 이끄는 걸 거부한 것 등이 그런 정치적 요인들이었다.

    보호무역주의와 2차 세계대전

    주식시장이 붕괴하자마자 거의 곧바로, 무역 장벽들이 설치됐다. 그리고 이것은 공황이 그랬던 것보다 더 세계 무역에 타격을 줘 1928년 수치의 1/3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1930년 6월에, 스무트 홀리 관세법(수입 관세법)이 미국에서 도입됐다. 공식적으로는 미국 농부들을 보호하려는 것이었지만, 수입 관세를 가장 극적으로 올린 것은 오히려 산업 생산물에 대해서였다. 몇몇 경우에는 자기 가치의 90%까지 관세를 올렸다.

    프랑스가 1931년에 관세를 올리고, 많은 수입 제품들에 대해 [수입 할당량을 정하는] 수입 쿼터제를 도입함으로써 그 뒤를 따랐다. 마침내 영국도 과거의 ‘제국 특혜’ 제도를 복구했다. ‘제국 특혜’ 제도란 19세기 초에 영국의 식민지에서 수입하는 제품에 특혜를 주는 한편, 농산물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수입품에 대해 20~33% 사이의 수입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였다.

    공황이 곧바로 보호무역주의 조치를 낳지는 않았다. 공황은 제국주의 간 적대를 심화시켰는데, 주요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하나가 다른 제국주의 강대국들에 맞서 자기 종속국들의 패거리를 만들었다. 그래서 1931년에 런던은 이른바 ‘영국 파운드권(圈)’17)을 만들었다. 그것은 자기 통화 가치를 파운드화에 고정시키려 하고, 자신들의 중앙 은행 보유고 일부를 금 대신 영국 파운드화로 채우려고 하는 모든 나라들을 묶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영국의 식민지들이 대부분 참가했다(캐나다, 영국령 온두라스18)는 제외). 뿐만 아니라 대개 영국과 무역을 해왔던 나라들도 거기에 참여했다. 스칸디나비아, 발칸 지역 나라들, 포르투갈, 아일랜드, 아르헨티나, 이라크 그리고 오늘날의 태국이 그런 나라들이다.

    그 시기에 만들어진 통화 블록에 ‘영국 파운드권’만 있는 건 아니다. 미국과 중남미 나라들 대부분이 달러에 기초해 다른 걸 만들었다. 이른바 ‘금 블록’도 있었다. 그것은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가 1933년에 만들었다. 그것은 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상호 합의에 기초한 것이다. 하지만 ‘금 블록’은 참가국 대부분이 자기 통화를 동시에 평가절하할 수밖에 없었던 1936년에 붕괴했다.

    다음으로 독일이 중남부 유럽의 위성국가들과 함께 만든 블록이 등장했다. 그것은 철저한 무역 장벽과 통화, 자본 통제에 기초해 만들어졌다. 일본은 ‘영국 파운드권’ 뒤를 한 발짝 떨어져 따라가면서, 동남아시아에서 세력권을 확장해갔다. 국제연맹을 소극적으로 인정하면서, 1931년에는 만주를 합병했고, 1933년에는 중국 북부를 침공했다.

    따라서 세계는 사실상 5대 주요 제국 중심으로 형성된 5대 주요 세력권으로 나뉘었다. 그 가운데 4개는 통화 블록이었지만, 당연히 단순한 통화 블록은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통화 변동과 신용 부족 때문에, 그들은 실제로 무역 블록이기도 했다. 그래서 대공황에 따른 국제 거래의 제한은 더욱 커졌다. 결국 자본주의 체제가 공황을 흡수하는 다음 단계로 나아갔는데, 그건 바로 2차 세계대전이었다.

    정말로 1933년이 훨씬 지난 다음에도, 공황은 모든 곳에서 멈추지 않았다. 1936년과 1937년에 미국과 유럽 일부에서 공황이 부활했다. 영국이나 독일 같은 다른 곳에서는, 정부가 새로운 전시 산업 전체를 발전시켜 경제에 다시 시동을 걸었을 때에야 공황이 남긴 파편들을 치우기 시작했을 뿐이다. 하지만 무기들, 특히 1935년부터 영국에서 만들기 시작한 신형 전투 비행기 같은 중무기들은 생산되자마자 사용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자본가계급이 그것이 이윤을 늘리고, 야심적인 경쟁자를 제거할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판단했을 때 그랬다.19)

    이 측면에서 2차 세계대전은 전쟁 중에 도처에서 일어난 끔찍한 잔악 행위들과 함께 대공황의 직접적인 부산물이었다. 전쟁은 사실 자본주의 체제가 이전 시기에 생산했던 썩어가는 찌꺼기들 없이, 백지에서 다시 출발할 수 있기 위해 겨우 발견했던 유일한 방법이었다.

    공황 -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규제

    대공황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측면 중 하나는 모든 부유한 나라들에서 여당의 정치적 색깔에 관계없이, 정부가 생산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금융 영역에서도 거대한 집중 과정을 관장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 공황의 초기 국면인 오늘날에도 이미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모두에서, 거대 은행들은 자신들보다 약한 경쟁사들을 합병하느라 바쁘다. 더구나 두 나라 모두에서 이른바 금융 시스템에 대한 ‘구제 금융’은 가장 약한 은행들을 인수하는 데 필요한 재정을 가장 강한 은행들한테 공적자금으로 제공하는 데 공공연하게 맞춰져 있다.

    국가의 직접적 개입이 있든 없든, 자본주의 체제는 혹독한 공황을 거치지 않고서는 자본주의 경쟁시장의 혼란을 결코 해결하지 못했다. 더 많은 투기꾼들이 시장에 나설 수 있는 여지가 있던 호황기에, 투기꾼들의 수는 시장이 실제로 소화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선다. 이것은 자본주의 시장의 무정부성에 대한 또 하나의 표현이다. 투기 거품의 증가는 너무 많은 경쟁자들이 경쟁을 격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할 뿐이다. 그런 거품은 실물 경제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야 계속 커질 수 있다. 작은 충격으로도 거품을 터트릴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그 시점에서 자본주의 정글의 법칙이 적용된다. 가장 약한 기업은 쓰러져 죽는 반면, 가장 강한 기업은 남아 있는 모든 걸 집어 삼킨다. 그리고 질서가 결국 자본주의 시장에 기초해 복구된다.

    자기 눈앞에서 펼쳐지는 걸 보고서도, 자본주의가 몇 가지 숨은 합리성 덕분에 유지될 수 있다는 환상에 여전히 매달리는 사람들은 마이런 숄즈의 이야기를 기억해야 한다. 숄즈는 동료인 로버트 머턴과 함께 1997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사람이다. 이것은 이론상으로 금융시장에서 무인(無人) 투기를 할 컴퓨터 프로그램을 짤 수 있는 일련의 수학 방정식을 발견해낸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마치 투기꾼들의 행동에 합리적이거나 과학적인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분명히 숄즈는 예상치 못한 탐욕의 효과나 시장 투기꾼들의 행동에 대한 두려움을 계산에 넣지 않았고, 넣을 수도 없었다. 또한 그는 주식시장 변화가 더 넓은 범위의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나 이런 충격이 어떻게 금융권에 반작용을 하는지도 고려할 수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노벨상을 탄 지 꼭 1년 만에 마이런 숄즈는 그가 공동 설립한 투기 펀드회사 중 하나인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사(LTCM)가 파산하기 약 넉 달 전에 46억 달러를 잃어버리는 걸 보았다. 정말 ‘합리적인 시스템이다’!

    진실은 결국 정글의 법칙이 사상자를 내게 만드는 방식으로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규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도 자본주의의 작동을 감독하기로 한 감독자와 관계없이 그런 일이 일어난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요즘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나쁜’ 규제나 ‘불충분한’ 규제의 결과가 아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자본주의의 ‘과도함’ 때문도 아니다. 그 주장은 그런 ‘과도함’이 우연적이며, 따라서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 하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실체다! 그건 무엇으로도 감출 수 없다.

    이 체제는 가만 놔두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만약 자본가들이 자신들 사이의 시장 문제를 현실 세계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 폐쇄된 공간에서 해결하려 한다면, 누가 그걸 신경이나 쓰겠는가? 그들은 서로를 마음대로 쓰러뜨릴 수 있는데, 그건 그들의 문제이며, 그들만의 문제다.

    하지만 핵심은 매시간 그들의 체제가 그런 공황을 통해 시장을 ‘규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끔찍한 재앙으로 전체 인구를, 수십억은 아닐지라도 수백만 인구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대공황으로부터 기억해야 할 교훈이 있다면, 정확히 다음 한 가지다. 이 공황이 인류에게 엄청난 비용을 요구했으며, 이겨서 자신만만한 강대국들이 전쟁이 끝난 다음, 빈국들에서 특히 중동에서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 혼란 때문에 우리가 여전히 비용을 갚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공황과 관련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노동자계급은 자본가들과 그 정치인들이 위기의 고통을 떠넘기기 위해 반드시 펼칠 공격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자본가들과 그 정치인들은 수많은 방법으로 계속 공격해올 것이다.

    자본가계급은 일자리를 줄이고, 임금을 깎으려고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노동자들이 더 많은 일자리 감축을 피하고 싶어 임금 삭감에 찬성 투표를 한 공장들에 대해 들을 수 있다. 가령 건설 장비 회사인 JCB가 그런 사례다. 보수언론과 노조 관료들은 찬성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되기에, 그런 사례들을 모두가 따라야 할 ‘책임성 있는 고통분담의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스스로와 다른 노동자들, 그리고 미래에 노동자가 될 자기 자녀들에게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 있다. 그것은 그런 공갈 협박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이다. 임금을 삭감당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회사 임원, 주주들 그리고 사태가 잘 나갈 때 노동자의 피땀을 쥐어짜 호화로운 생활을 해온 다른 모든 기생충들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주장해야 한다.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으므로, 지금이야말로 그들이 자기 몫을 내놓아야 할 때가 아닌가? 설사 주문이 없다 해도, 왜 노동자가 임금을 삭감당해야 하는가? 지금은 기생충들이 그동안 노동자들한테 훔쳐 간 것 일부를 되돌려줘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런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 노조 지도자,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있도록 단결하는 걸 도울 준비가 안 된 노조 지도자는 누구든지 ‘사장의 하수인’이라는 점을 폭로해야 한다.

    그렇다. 지금 공황에 대해 사장들이 위선적으로 우는 소리를 하는 것에 맞서 노동자들이 유일하게 ‘책임’지는 강령은 바로 다음이다. 단 한 명도 해고당해선 안 된다. 단 한 명도 임금을 삭감당하지 않은 채 모든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나누어야 한다. 만약 회사가 어렵다면, 다시 노동자들을 쥐어짜려 하지 말고, 주주들이 지난 수년 간 또는 수십 년간 쌓아올린 배당금의 일부를 내놓아라!

    마찬가지로, 공적 자금을 은행 주식의 40%를 사는 데 썼고, 달링 재무장관이 2명의 은행가를 임명했다는 이유로 은행을 ‘국유화’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때, 우리는 뭐라고 할 것인가? 국유화라고? 그거 좋다. 하지만 이 모든 공적 자금이 은행으로 흘러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그걸 완전히 국유화하면 어떤가? 즉 어쨌든 이미 자기 주식으로 충분히 돈을 벌어온 주주들한테 보상하지 않고 [몰수 방식으로] 국유화하는 게 어떤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어리석은 경쟁이 오늘날의 혼란을 촉발시켰으므로, 모든 은행을 국유화하는 게 어떤가?

    그리고 이것이 이루어진다면 그 다음의 합리적인 단계로 나아가는 건 어떤가? 다음 단계란 은행 노동자들의 직접 통제, 그리고 그들을 통한 노동자계급 전체의 통제 아래 모든 은행을 하나의 단일한 국영 은행으로 통합시켜, 우리 노동자들이 그 기금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을 갖는 것이다.

    자본가들이나 그 정치인들 모두 이 공황에 대한 어떤 해결책도 갖고 있지 않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유일한 ‘해결책’은 이 체제가 다시 굴러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극도로 비싼 구명 밧줄을 던지면서,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떠넘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해결책’이 뜻밖에 효력을 발휘할지라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얼마만한 희생을 치르게 할지라도, 우리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미래의 언젠가에 일어날 다른 공황으로 나아가는 초석을 놓는 것일 뿐이다. 왜 자본가들이 그 짓을 하도록 노동자계급이 도와야 한단 말인가?

    이 공황에 맞서는 데에서 노동자계급이 유일하게 ‘책임’을 지고,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은 첫째 우리가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보아 왔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런 공황에 맞서는 유일한 길은 노조 지도자들이 우리한테 원하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사태가 해결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고개를 들고, 우리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당당하게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존재할 권리를 오래 전에 잃은 이 기생충들의 사회를 끝장내는 임무로 스스로 무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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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것은 프랑스 LO(노동자투쟁)의 영국 자매 조직인 '노동자투쟁'(Workers' Fight) 그룹에서 2008년 11월에 작성한 글이다. 영국 사례 일부를 제외하고 전체를 번역했다. 옮긴이 주를 [  ]안에 포함시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1929년 세계대공황과 현재의 공황을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 글은 자본주의 경제와 공황을 이해하고, 그에 맞서 싸우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가령 ‘파생상품’처럼 복잡한 금융시스템을 다룬 부분은 약간 어려울 수 있는데, 그런 경우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읽으면 핵심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열심히 번역했으나, 전문 경제용어를 옮기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번역 상의 한계는 전적으로 옮긴이의 몫이다. (이 글의 각주는 모두 옮긴이가 붙인 것이다.)

    2) 대표적으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가 98년에 파산했다.

    3) 런던 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주식 가운데 시가총액 순서대로 100개 기업의 주가를 지수화한 종합주가지수다. 영국 주식시장의 대표지수.

    4) 영국의 일간 국제 비즈니스 신문

    5) 영국의 경제 주간지

    6)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파산 직전까지 갔던 노던 록 모기지 은행을 영국 정부가 2008년 2월 21일 전격 국유화했다.

    7) 대출자의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은행 직원이 직접 방문해 대출하는 서비스

    8) 당좌 예금의 거래자가 일정한 기간과 금액 한도 내에서 당좌 예금의 잔액 이상 수표를 발행했을 때에 은행이 그것을 지급하는 일

    9) 국제결제은행(BIS)은 일반은행에 위험자산(부실채권) 대비 자기자본비율 수치를 권고한다. BIS에서는 자기자본비율이 8% 이상이어야 안정, 합격권으로 본다.

    10) 포트폴리오란 위험을 줄이고 투자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식, 채권, 상품, 부동산, 현금 등 여러 종목에 분산투자하는 방법 및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투자자산을 뜻한다.

    11) GE는 미국 최대의 종합전기제조회사다.

    12) 소액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아 투자회사를 설립해 채권, 주식 등에 투자하고 그 수익을 나누어주는 미국형 투자신탁 회사

    13) 폰지 방식이란 말은 '90일 만에 원금의 2배 수익 보장'을 내세우며 미국 전역에서 8개월 만에 4만여 명으로부터 1,500만 달러를 끌어 모은 사기범 폰지의 이름을 딴 것이다. 1925년 폰지는 아무 사업도 벌이지 않으면서 투자자를 끌어 모아 투자금 일부는 자신이 착복하고, 투자자들에게 돌아갈 배당금은 다른 투자자의 납입금으로 지불하는 사기극을 연출했다.

    14) 단기 대부. 부르면 대답하는 식으로 빠르게 회수할 수 있는 대부

    15) 유동성이란 기업의 자산이나 채권을 손실 없이 현금화할 수 있는 정도를 뜻한다.

    16) 미국의 '중앙은행'으로서 흔히 줄여서 '연준'이라고 부른다.

    17) 영국 파운드 블록, 영국 파운드 지역이라고도 부른다.

    18) 중앙아메리카 동북부의 공화국

    19) 히틀러는 1933년에 집권하자마자 은밀히 독일 재무장에 나섰으며, 1935년에는 베르사유 조약 파기를 선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정부는 새 전투기를 주문해 단 석 달 만에 모든 걸 완성하고, 처녀비행까지 띄우는 초고속 업적을 달성했다. 결국 독일을 축으로 하는 한 편의 제국주의 강대국 자본가계급과 영국, 프랑스를 축으로 하는 또 다른 제국주의 강대국 자본가계급은 이윤을 늘리고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신무기들을 속속 생산하고, 곧바로 군사훈련에 사용했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 때는 5천만 명을 죽이는 대량 살육까지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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