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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자운동 : 노해연-34호] 한국노동운동의 위대한 기억 - 원산총파업
 정책위  | 2008·05·13 21:51 | HIT : 2,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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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해연_34호]_한국노동운동의_위대한_기억___원산총파업.hwp (23.0 KB), Down : 278
  • 한국노동운동의 위대한 기억 - 원산총파업



    “그렇게 헛고상 안되게 끝꺼정 버티고 나갔어야제. 우리가 없는 돈에 동정금 걷어 보낸 것도 그런 뜻 아니었능감.”

    “그야 일러 멀혀. 산지사방서 동정금얼 보냈응게 그리 석 달씩이나 버틴 것 아니겄능가. 근디 왜놈덜이 얼매나 독허니 잡도리혔으면 그리 오래 버티고도 빈손 털었을 것잉가.”

    “허기사 그렇제. 그나저나 거그서 일이 씨언허니 풀렸어야 우리도 한바탕 뒤집고 나섰을 것인디···.”

    “보소, 왜놈덜이 그런 눈치 색경 딜에다보디끼 다 알고 거그 일얼 몰악시럽게 막아낸 것 아니겄능가.”

    “그려, 그렇기도 헐 것이여. 거그서 못 막아내먼 사방천지서 들고 일어날 판이었응게.”

    “다 잊어불소. 그 사람덜언 우리보담 얼매나 더 심 파허고 속상허겄능가.”

    “그야 말혀 멀혀. 그리 빈손으로 주저앉자고 시작헌 일이 아닐 것잉게.”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의 한 부분이다. 이 대화를 통해서 소설은 군산 부두노동자들이 원산총파업의 패배를 아쉬워하면서, 원산총파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동정금’, 즉 파업 연대기금을 모아 보내면서 이 투쟁이 승리하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만약 이 투쟁이 승리한다면 자신들도, 그리고 다른 모든 지역의 노동자들도 자신감과 투지를 얻어 과감하게 투쟁에 돌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들은 기대했다. 이들에게 원산총파업의 패배는 곧 자신들의 패배였다.

    일본자본가들 역시 원산총파업의 승리가 어떤 결과를 야기할 것인가에 대해 재빠르게 냄새 맡았다. 그래서 그들은 총력을 다해 필사적으로 파업을 분쇄하려 했다. 당시 이 나라 모든 노동자들의 희망의 횃불이었던 투쟁, 모든 자본가들의 두려움과 적개심의 대상이 되었던 투쟁, 그것이 1929년 1월 원산총파업이다.





    라이징선(Rising Sun)에서 떠오른 투쟁의 태양


    영국인 자본가가 소유한 한 석유회사가 있었다. 그 회사는 라이징선, 즉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자본가는 그곳에서 이윤의 태양을 띄워 올리기를 학수고대했을 것이다. 그 태양 아래 피땀 흘리며 착취당하던 노동자들은 바로 그곳에서 투쟁의 태양을 띄워 올렸다. 이제 진땀을 흘려야 하는 것은 너희들, 자본가들이라고 선포한 것이다.

    원산총파업의 발단은 어찌 보면 통상적인 것이었다. 영국인 자본가 소유였던 이 석유회사의 간부들과 관리자들은 전부 일본인이었는데, 그중 한 일본인 관리자가 조선인 노동자를 구타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문제를 일으킨 현장감독 해고와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이 파업은 노동자들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가들의 기만에 의한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본가들은 모든 협정을 간단히 파기해버렸다. 동시에 모든 노동단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며 더욱 거만하고 공격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 이전부터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조직화 활동과 투쟁을 전개해왔던 원산노련(원산노동연합회)은 라이징선 석유회사와 연관된 문평제유노조와 문평운송노조의 동맹파업을 조직했다. 이에 맞선 자본가들의 선봉대 역할은 원산상의(원산상공회의소)가 맡았다. 지역자본가 연합단체인 원산상의는, 원산노동자들의 지지를 확고하게 끌어 모으고 있던 원산노련에 대한 적개심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들은 이참에 원산노련을 무너뜨리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원산상의는 파업을 파괴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파업파괴자들을 모집했을 뿐더러, 중국노동자들과 일본노동자들까지 파업파괴자로 동원했다. 원산노련에 가입한 노동자들의 취업을 제한하겠다는 위협과 더불어, 투쟁에 적극적인 노동자들을 현장대중과 떼어놓기 위해 비열한 해고조치를 대대적으로 진행했다. 조직폭력배들을 동원해서 노동자들을 괴롭히는 깡패 같은 수법 또한 빼놓지 않았다.

    이러한 탄압조치들은 원산노동자들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다. 1929년 1월 29일, 자본가들의 공세가 원산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의 구심인 원산노련의 목줄기를 완전히 뜯어내기 위한 것임을 직시하고, 원산노련은 총파업을 선포했다. 조직력은 막강했다. 자본가들이 파업파괴자를 모집하기 위해 원산시내에 3,000장의 광고지를 뿌렸지만, 원산노련의 투쟁을 거스르며 모집에 응하는 노동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경찰병력이 추가로 투입되고, 일본군의 무력시위도 이어졌다. 투쟁의 수위는 점차 전면적 대결의 국면으로 치달았다. 원산노련은 이미 보유하고 있던 2개월분의 식량에 더하여 3개월분의 식량을 주문했다. 결판을 볼 때까지 완강하게 싸워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들은 식량과 기금을 아끼기 위해 하루 두 끼만의 식사를 하고, 술과 담배를 끊었다. ‘한 잔의 술, 한 개비의 담배, 한 푼의 낭비도 반동’이라는 단호한 구호가 내걸렸다.





    전면전으로


    이처럼 처절한 투쟁의 소식은 원산을 넘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자본주의의 지배에다 식민지 지배까지 덧붙여 신음하고 있던 조선노동자들은 원산의 투쟁이 곧 자신의 투쟁임을 직감했다. 원산노동자들이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면, 일본 제국주의와 자본가계급의 억압에 짓눌려있던 전국 각지의 노동자들이 자신감을 되찾고 과감한 투쟁을 펼쳐나갈 수 있었을 것이었다. 다른 지역의 노동자들은 단지 가슴 졸이며 결과를 기다리는 수동적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매일같이 원산으로 지지의 격문이 날아들었다. 당장 지역에서 연대투쟁을 조직할 수 없었던 노동자들은 우선 연대 기금을 모아 원산노동자들에 전했다. 행동이 가능한 곳에서는 노동자들이 연대집회를 열었다. 전국 각지에서 전해지는 동지적 격려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원산노동자들은 더욱더 굽힘없이 싸워나갈 수 있었다.

    이 위대한 투쟁의 나날이 지속되는 동안 원산노동자들은 전체 조선노동자의 선봉대에 다름 아니었다. 식민지 조선의 노동자계급 전체가 원산을 지켜보고 있었으며, 힘닿는 한 이 투쟁을 힘껏 지원하기 위해 애썼다. “거그서 못 막아내먼 사방천지서 들고 일어날 판”임을 깨달은 제국주의 지배자들은 온 힘을 다해 투쟁을 파탄내려 했다. 싸움은 장기화되었고, 긴장된 순간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1월 23일의 원산은 바람도 몹시 불거니와 일기도 매우 쌀쌀한데 시가의 골목골목에서는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파업노동자 떼와 이들의 뒤를 따라다니는 순사 떼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자못 험악한 분위기 속에 빠져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돌발할런지 모른다.”(≪동아일보≫ 1929년 1월 26일자)

    “25일의 원산 일대는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노동자의 규찰대와 경계하는 경관 사이에 때때로 충돌이 일어났다.”(≪동아일보≫ 1929년 1월 27일자)

    “길가에 숫불 피우고 밤을 새는 경관들의 불꽃은 쓸쓸한 거리에 유일한 더운 김을 내는 대신 불빛에 비치는 경관대의 칼자루는 한층 더 빛나 원산은 완전히 계엄상태에 빠져있는 듯 했다.”(≪동아일보≫ 1929년 2월 10일자)





    파업 만세!


    이렇게 원산총파업의 기세가 전면적으로 확대되면서, 일부에서는 이 투쟁의 의의를 ‘민족해방운동의 정점’ 정도로 규정하기도 했다. 일본 제국주의 자본에 의한 식민지 지배를 배경으로 일어난 투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런 판단이 전혀 근거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원산총파업의 진정한 의의를 그렇게 협소하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원산노련은 1929년 총파업에 돌입하기 이전부터 지역에서 체계적으로 조직화 활동을 전개해왔으며, 거듭 승리하는 투쟁을 펼쳐왔다. 원산지역 노동자들에 대한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노동현장에서의 투쟁을 통해 대중의 신뢰를 획득해나갔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소비조합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값싸게 생활물품을 제공함으로써 대중의 열악한 삶을 개선해나가는 주도세력으로서 권위를 다져나갔다. 심지어 이곳에서는 원산노련이 직접 운영하는 노동병원까지 설립되어 노동자들의 건강을 보살폈다. 제국주의 지배자들의 눈초리가 날카롭게 내리꽂히는 바로 그곳 원산에서 노동자들은 자주적 단결과 자치의 기운을 틔워내고 있었다.

    일본자본가들의 공격은 이처럼 제국주의 자본에 맞서 노동자대중의 자주적 단결을 성취해가던 이 나라 노동운동의 성장을 차단하는 데 표적이 맞춰져 있었다. 원산노련이 전면적인 투쟁에 돌입했던 것 역시 이러한 자주적 단결과 전진을 가로막고 파탄 내려는 자본가들의 공세에 맞선 한판 승부로서의 성격이 분명했다. 반면 조선자본가들은 기회주의적 행태를 되풀이하면서, 일본 제국주의 자본에 맞서 가장 선두에서 투쟁하던 노동자들을 차갑게 외면했다. 이로서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민족해방운동의 시기에조차 결정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두 발로 서지도 못하는 허약한 ‘민족자본가’와의 공조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확고한 단결과 과감한 투쟁임이 입증되었다.

    원산총파업이 진행되는 동안 국내 ‘민족자본가’들의 기여는 찾아볼 수 없었던 반면, 오히려 국경을 넘어선 노동자들의 뜨거운 연대정신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원산과 일본을 오가는 화물선의 일본노동자들은 원산노동자들의 총파업을 열렬히 환영하면서, 일본경찰이 코앞에서 쳐다보고 있는데도 대담하게 ‘파업 만세!’를 외쳤다. 이 행동을 통해 우리의 적은 일본인 모두가 아니라 일본자본가들이며, 일본노동자들은 우리의 굳건한 동지들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중국과 프랑스, 러시아의 노동자들 역시 원산총파업에 아낌없는 지지를 보냈다.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이 제국주의 약탈자에 맞선 원산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며 환호했다. 이처럼 투쟁은 ‘조선 대 일본’이라는 민족대립보다는 ‘노동 대 자본’이라는 계급대립의 성격을 더욱 강하게 표출했다.

    투쟁의 이러한 국제적이고도 계급적인 성격은 일본 제국주의 지배자들을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 등 대륙세력과도 일전을 불사할 태세를 갖추고 있던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게 원산은 군대와 전쟁물자를 실어나를 수 있는 중요한 전진기지로 간주되었다. 바로 그러한 의미를 갖고 있는 곳에서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발발했다는 것은 곧 제국주의 자본의 심장을 향해 날카로운 검을 들이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원산총파업은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 쟁탈전에 작지만 심각한 타격을 가하면서, 노동자 연대를 확대할 수 있는 중대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원산노동자들의 투쟁은 제국주의 약탈전쟁에 저항하는 여러 나라 노동자들의 광범한 호응과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갑작스런 투쟁의 붕괴


    하지만 대단한 기세를 갖고 뻗어나가던 원산총파업은 갑작스럽게 수그러들고, 패배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문제는 지도부로부터 발생했다.

    원산노동자들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일제에 의해 체포되는 간부들의 숫자도 늘어났다. 파업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간부들을 충원하면서 지배자들의 탄압으로 생긴 공백을 메워나갔다. 그러던 중 원산노련 위원장 김경식이 체포되고, 변호사 출신의 운동가 김태영이 새로운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새로 위원장이 된 김태영은 노동자대중의 비타협적인 투쟁의지를 저버린 채 지배자들의 협박에 동요하기 시작했다.

    제국주의 일본은 원산총파업에 대해 공산주의 운동이라고 규정하며 노동조합 지도부를 위협했다. 그들이 불러낸 공산주의 운동이라는 유령은 이 유약한 노동조합 위원장을 겁먹게 하는 데 충분했다. 이와 동시에 원산노련 간부들을 지속적으로 검거해 들임으로써 원산노련 지도부에 압박을 가했다. 부담과 압박을 느낀 김태영 위원장은 타협과 굴종의 길로 빠른 걸음을 내딛었다. “노동운동의 통일과 노동자의 세계적 제휴를 도모하며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기”한다는 기존 원산노련 강령을 폐기하고 그 대신 “생활향상을 위한 노동자의 수양을 본위로 함”이라는 비굴한 강령을 채택했다. 아래로부터 투쟁의지를 퍼 올리고 있던 간부들도 전원 교체되어버렸다. 이렇게 원산노련의 운영체제를 자기 입맛대로 바꾼 뒤, 위원장은 파업노동자들에게 ‘무조건 복귀’를 선동했다.

    이번에도, 노동조합 지도부보다는 대중의 비타협성이 더 강하게 살아났다. 무조건 복귀를 명령하는 위원장의 배신에 맞서 기층 조합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일부는 위원장의 배신적 지침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행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파업을 파괴하기 위해 자본가들이 조직한 어용노조와 어용간부들을 공격하고, 원산 곳곳에서 자본의 하수인들과 격돌을 일으켰다.

    그러나 1월에 시작한 파업이 4월에 이르기까지 장기화되고, 쟁의기금은 바닥나며, 주요 간부들이 대대적으로 검거되는 상황에서 지도부마저 배신을 저지르자 대중의 저항은 더 오래 완강하게 지속될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원산노동자들의 정치적 훈련의 정도가 아직은 부족했다. 피폐해진 생활 속에서도 강인하게 싸웠던 원산노동자들은 이제 하나둘씩 작업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산총파업의 의의가 삭감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현대적 산업체계와 투쟁 속에서 단련되지 못했던 당시의 부두노동자들이 그 정도로 장기간 총파업을 지속하고 파업대열의 규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대단한 의의를 갖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얼마나 자랑스런 우리의 선배 노동자들인가!





    원산총파업은 무엇을 보여주었는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원산총파업은 국제적 패권을 노리는 제국주의 침략자들에 맞선 진정한 투쟁의 힘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식민지 조선의 이른바 민족 자본가들은, 그들 역시 억압당하는 처지였음에도 결코 완강하고 비타협적인 투쟁에 나서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소심하고 비겁하게 눈치를 살피며 교활하게 행동했다. 제국주의 지배에 맞선 저항운동이 강하게 일어날 때에는 그 물결에 올라타 지도자 행세를 하다가도, 상황이 곤란해지면 재빠르게 배를 바꿔타고 친일행각을 벌이곤 했다. 오직 노동자들과 가난한 농민들만이 강인하게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은 국경을 넘어선 강렬한 연대의 의지를 표출했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국제적 연대는 제국주의 지배자들에게 무엇보다 위협적인 것이었다. 조선노동자와 일본노동자가 함께 손잡고 제국주의 일본 지배자들에게 저항하려 했다면 일본 제국주의는 아래로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미 제국주의의 세계패권 장악시도에 맞선 반전운동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제국주의 지배자들의 전쟁책동을 끝장낼 수 있는 힘은 단지 ‘평화를 애호하는 시민운동’에 호소함으로써 생겨날 수는 없다. 미국 자본가정부와 대립하는 것처럼 비쳐지는 유럽의 몇몇 자본가정부에 의존하는 방법은 더더욱 그릇된 것이다. 오직 전세계 노동자들의 단결된 투쟁만이 제국주의 세력의 전쟁책동을 격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원산총파업의 패배를 통해서 우리는 파업을 비롯한 노동자투쟁의 기본원칙들을 다시 한 번 분명히 짚어볼 수 있다. 당장 손에 쥐어지는 성과보다 투쟁 속에서 단련되고 의식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성과라는 것, 그러한 훈련과 발전이 이루어질 때에만 노동조합 지도부가 배신적으로 타협하더라도 오히려 즉각 아래로부터 새로운 지도부를 밀어올리며 굽힘없이 투쟁을 전개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과 관련해서는 이미 당시에도 방향을 제시하는 입장이 소수의 입을 통해서나마 제기되었다. 3개월에 걸쳐 치열하게 전개된 총파업의 패배를 겪으면서 진정한 노동자투쟁이란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지 더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원산총파업의 가장 커다란 성과일 수 있을 것이다. 투쟁의 패배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배우면서 전진하는 그들 소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글을 마친다. 75년 전 한국 선배 선진노동자들의 이 평가는 얼마나 위대한가! 누가 우리 한국 노동자계급에게 위대한 전통이 없다고 말하는가!

    “노동자대중은 처음에는 경제적 개량의 요구(예컨대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 대우개선 등)를 관철하기 위해서 파업을 시작했다 하더라도, 이 파업을 통하여 오늘날의 사회조직 전체에 대한 의식을 높이고, 공장주에 대한 반감을 오늘날의 자본가적 사회제도 전체에 대한 반역으로까지 고양시키게 되는 것이며, 또 그렇게 될 때에만 비로소 파업은 그 계급적 의의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고 단순한 협정과 자본가의 기만적 호의에 의해서 요구조건이 통과되고, 노동자는 이 조그마한 수확에 기뻐하여 아무런 계급적 훈련도 얻는 것이 없다면 파업은 결코 계급투쟁의 전 과정의 일부분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파업의 승패도 이런 관점에서 규정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쟁의의 시작과 끝이 개량주의적 타협의 애원으로 일관되고 대중적 투쟁과 대중적 훈련을 거치지 못한 이상 아무리 요구조건이 자본가에 의해 승인되더라도 그 쟁의는 결코 승리했다거나 성공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요구조건이 전부 실패로 돌아가고 수많은 노동자가 희생되어 감옥에 갇히고 효수를 당할망정, 아무리 커다란 희생과 손실이 있을망정, 만일 그 쟁의를 통해서 노동자대중이 계급적으로 훈련되고, 우수한 노동자전위가 생겨나고, 노동자대중의 가슴속에 오늘의 자본가사회에 대한 증오와 투쟁의욕이 타오른다면 그것은 위대한 승리이며 성공일 것이다. 그야말로 확실히 고난에 가득찬 계급투쟁의 험로에서 빛나는 한 장면을 역사적으로 점령할 수 있을 것이다.”(1929년 4월 ≪현단계≫라는 잡지에 실린 <개량주의와 항쟁하라 - 원산쟁의에 대하여 전조선 노동자대중에게>에서)≪노동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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