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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자운동 : 노해연-41호] ≪경성트로이카≫ - 도대체 혁명운동에 중앙조직이 없어도 되는 시기란 어떻게 존재하는가
 정책위  | 2008·05·12 14:14 | HIT :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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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성트로이카≫


    도대체 혁명운동에 중앙조직이 없어도 되는 시기란  어떻게 존재하는가?




    조각난 운동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투쟁하지 않는다면 노동자계급은 자본과 싸워 결코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노동해방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통일된 지도를 통해서만 곧게 전진할 수 있다. 탄압이 거세지고 활동 조건이 어려워진다고 해서 지도조직의 건설을 포기하고 각개전투에만 매몰된다면 우리 운동은 자본에 의해 간단히 파괴당하고 말 것이다. 이재유는, 현장대중과의 결합을 통해, 실질적인 투쟁을 통해 분파로 나뉜 운동을 통일시키고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권력에 맞설 수 있는 저항의 힘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1930년대 일제시대 조선 사회주의 운동의 대표적 인물 이재유. 그는 어려서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운동을 배우며 자연스럽게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수차례의 체포를 겪은 뒤 조선으로 돌아와서는 30년대 경성을 중심으로 이현상, 이관술, 김삼룡 등과 함께 ‘트로이카 방식’의 운동을 했다. 그는 대부분의 사회주의 운동이 지식인 중심이고, 현장 기반보다도 코민테른의 승인, 지시를 중시하며 위로부터의 권위적인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을 때 철저하게 현장에 기반을 둔 전위조직 건설을 통해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분투한 진정한 투사이다.

    ≪파업≫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안재성이 쓴 ≪경성트로이카≫(사회평론 펴냄)에는, 일제시대 경성 일대의 사회주의 운동, 그 당시 이재유 등 운동가들의 관계와 활약상 등이 사실을 기반으로 소설적 장치를 통해 극적이면서도 상세하게 담겨 있다. 이 글은 안재성이 경성트로이카 운동을 했던 이효정을 우연한 기회에 직접 만나, 당시에 대한 회상을 듣고 쓴 것이다. 물론 이 글은 작가가 근본적으로 노동해방주의자가 아니고 이미 노동운동에서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작성되었다는 점과, 이효정이 경성트로이카 운동에서 핵심이 아니었고 도중에 운동을 포기한 탈락자이며 이제는 ‘민주주의를 이상으로 생각하는’ 90이 넘은 할머니라는 점에서 경성트로이카 운동과 이재유의 사상을 다루는 데서는 뚜렷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소설가로서의 안재성은, 당시 운동가들 사이의 연애담을 낭만적으로 그리는 데 공을 들인 듯해 아쉬움을 준다. 한마디로 이 책은 ‘안재성의 눈에 비친 이재유’로 실제의 이재유와 결코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한계보다 장점이 더 많다. 이 책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경성트로이카 운동에 대해서 상당히 자세하게 그리고 있고, 무엇보다 운동가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인간적인 점까지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1930년대 경성 거리를 누비던 그들이 되살아온다”는 표지 글처럼, 수십 년 전에 식민지 상황에서 민족해방과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과제를 위해 체포와 투옥, 모진 고문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조직을 결성하고 대중을 투쟁 속에서 단련시키기 위해 분투한 과거 선배 운동가들의 진실한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90년대 초에 나온 김경일 교수의 ≪이재유연구≫라는 책은 이재유의 각종 재판자료, 진술서 등을 기초로 이재유 그룹만이 아니라 당시 다양한 조직들의 노선이나 활동상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지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연구논문 느낌이 강한 반면, 안재성의 글은 소설적 재미까지 더해져 읽기에 훨씬 쉽다.

    그리고 이 책은 이재유 개인의 뛰어남을 미화하고 영웅시하기보다, 그와 함께 활동한 여러 인물들의 관계나 특징, 해방 이후 북한에서 맡은 역할 등까지를 다뤄줌으로써 개인의 일대기가 아니라 일제시대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를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제 새롭게 노동해방운동을 결의하는 선진노동자들뿐 아니라 운동의 역사로부터 더 많은 교훈을 얻고자 하는 진지한 노동해방주의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운동조직들은 지식인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현장의 대중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 없이 전위조직이라 이름 붙여진 조직들을 자의적으로 만들고 권위적으로 활동하려는 경향에 물들어 있었다. 이들은 서로 국제선(상부선)의 인정을 받으려는 데만 신경 쓸 뿐, 어떻게 운동의 주체인 노동자 농민의 의식을 실제로 향상시키고 대중투쟁을 조직, 지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채 파벌 싸움을 벌이는 등 파벌주의, 운동의 종파성이 심각했다.

    이런 운동을 극복해야만 명실상부한 전위조직이 탄생할 수 있다고 확신한 이재유는 관념적 인텔리 중심의 파벌운동을 넘어서기 위해 전위가 직접 노동자가 되어 노동대중 속에 파고들어가야 하며, 그 속에서 동지를 획득하여 대중적 기반을 마련한 뒤 당을 조직해야 한다는 노선을 확고히 수립하게 된다.

    “현재 조선 노동자와 농민의 의식 수준이 매우 낮기 때문에 혁명적 의식과 실천의지가 있는 지식인들이 생산현장에 파고들어 그들의 의식을 배양한 후 전위를 조직해야 한다. 투쟁을 통해 단련된 노동자, 농민, 현장 활동에서 단련된 지식인들이 전국적으로 널리 퍼져나갈 때 비로소 조선의 당 조직은 진정한 혁명 조직으로 세워질 것이다.”

    여기서 그가 구상한 조직운영 방식은 ‘다소 느슨하고 자유로운 체계’였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명령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토론과 설득으로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식’이었다. 별도의 조직 대표를 두거나 먼저 조직의 형식적 체계를 완성하지 않고 지역 담당자 또는 공장, 학생 단위 등으로 책임자를 두고 이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각자의 영역에서 대중을 획득하고 네트워크 방식으로 조직을 확대해나가며, 이것의 결과로 전위당을 결성하는 식으로 그는 전위조직 건설의 방향을 잡아나갔다. 조직의 명칭도 따로 정하지 않는 등 이와 같은 조직 방식을, 말 세 마리가 끄는 삼두마차라는 의미로 ‘트로이카’라 칭했다고 한다. 당시 운동이 대단히 권위적이고 폐쇄적이며 현장성이 부족했었다는 구체적 상황을 볼 때 우리는 이재유의 문제의식을 알 수 있다. 민주주의가 결여된 일방적 상명하달식의 조직운영은, 운동의 주체인 노동자농민 대중을 획득하는 데서 오히려 장애가 되었을 것이고 진실로 전위적인 인자들을 배양하는 대신 위로부터의 명령을 기계적으로 따르는 로봇과 같은 관료적 인자들만을 만들어냈을 뿐이라는 점에 대해 그는 주목했다. 아무런 대중적 기반도 없이 머리로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인 지식인들이 모여 조직의 이름을 정하고 전위로 자임하며 대중에게 권위를 들이대는 것은 ‘노동해방은 노동자 자신의 과업이고 전위란 이런 과업을 안내하고 이끌 수 있을 때만 비로소 전위일 수 있다’는 기본적인 원칙에 위배되며, 아직 충분한 의식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대중을 오히려 운동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그는 판단했다.

    이재유의 운동은, 이렇듯 현장 대중과의 결합을 중시하고 민주집중제가 살아 숨 쉬는 방식으로 조직화에 힘썼다는 점과 함께 파벌성, 종파성을 타파하고 헌신적인 투쟁 속에서 운동을 통일해 나가고자 하는 노력을 지속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국제선을 자처하며 나타나 국내 상황도 잘 모르면서 무조건 자신들의 지도를 따르라고 하거나 어떠한 구체적인 투쟁 방침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해외의 지도부에만 의존하고 이를 거부하면 파벌주의라 낙인찍는 등 상해파, 화요파 등으로 불린 다른 운동 세력들은 대부분 코민테른의 국제적 명성에만 기댈 뿐 운동의 주인공인 노동자농민으로부터 어떻게 실질적인 권위와 신뢰를 획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반면 이재유는, 상층 중심의 논의를 통한 조직 통합이 아닌 실제 투쟁에서 연대하고 서로 힘을 모으는 방식의 공동투쟁위원회 등의 활동을 제안하고, 구체적인 투쟁방침 제시를 요구했다. 대중과 동떨어져 조직의 이합집산만을 일삼는 지식인적 조직놀음은 실제 일제의 억압과 자본의 착취에 맞서야만 했던 노동자농민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중없는 지도, 투쟁 없는 전위조직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재유는 종파주의에 반대했기에 종파주의자들에게는 파벌주의자라는 거듭된 악선동의 대상이 되었다. 실질적인 대중적 기반 위에 연대파업을 성공시키고 다양한 팸플릿 작업으로 경성 지역 노동운동을 이끌었던 이재유 조직은, 함경도의 이주하 조직과 더불어 일제시대를 통틀어 가장 활기차고 풍부한 운동을 전개했다. 그럼에도 코민테른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던 이른바 국제파들은 이 운동에 파벌주의라는 낙인을 찍기에 급급했다.

    현장에 들어간 인자들이 대중적인 연쇄파업을 조직한 뒤 구속되고 모진 고문을 받아 많은 운동가들이 전선에서 떨어져나가는 등 어려움 속에서도 이재유는 해외로 가지 않고 경성 노동운동의 지속성 유지를 위해 노력한다. 이런 그에게 영웅주의니, 파벌주의니 하는 말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어려운 국내에 남아 커다란 인내가 필요한 비밀활동을 하는 것을 포기하고 해외로 나가 국제선의 명성을 업고 권위를 뽐내는 쉬운 길을 선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자기를 빛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운동의 연속성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자만이 전위로서의 자격이 있고 계급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다. 이런 진실한 운동가만이 노동해방을 위해 몸 바칠 수 있으며 대중을 해방의 주체로 조직할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재유를 비롯해 당시 트로이카 운동에 함께 한 이현상, 이관술, 김삼룡, 이순금, 박진홍, 미야케 등은 수차례의 체포와 고문, 옥살이를 겪으면서도, 그리고 다른 많은 동지들이 모두 압제에 못 이겨 운동을 포기할 때도 자신의 사상을 전혀 굽히지 않았다. 이들은 출옥하자마자 흩어진 동지들을 모으고 비밀 독서모임을 조직했으며, 다른 파벌에서 운동하는 동지들을 접촉하여 끊임없이 조직화를 모색하는 등 지치지 않는 투혼을 보여준다.

    하지만 생명을 내걸고 운동해야 하는 비합법 상황에서 많은 운동가들이 이탈했다. 일상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끊임없는 경찰의 추격과 감시를 이겨낼 수 있는 의지를 가진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한때 공장과 학교에서 명성을 떨치던 이들은 개인적인 사정과 집안 형편을 이유로 운동전선에서 탈락해 갔고 운동을 계속 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불안과 회의가 끊이지 않았다.

    이재유와 한 때 부부였던 박진홍은 여러 번 감옥을 드나들면서도 자신처럼 출옥하는 동지들을 맞아 운동을 포기하지 말고 지속할 것을 설득하는 등 ‘조직의 어머니’ 역할을 해냈다. 이 책에는 박진홍을 비롯해, 이순금 등 여성 사회주의자들의 면모도 잘 드러나 있다. 보호받아야 하는 나약한 여성이 아니라 강인함과 투철한 정신으로 고문을 버티고 지하활동을 하는 이들은, 노동해방운동 속에서 남녀구분 없이 동등한 주체로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신을 보여준다. 지식인 출신이지만 노동자성을 몸에 익히고 안락함을 버리고 운동을 위해 기꺼이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그녀는 운동가들이 어떻게 자기 단련을 해야 하는지도 느끼게 해 준다.

    형식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갖추어진 지금의 상황에서도 운동을 굴하지 않고 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비합법적인 상황에서 지하운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들은 감옥에서 두 세 번의 탈출을 하고 지하토굴에서 수십 일을 숨어 지내며, 농민으로, 계란행상으로, 막노동일꾼으로 변장하여 경성 일대만이 아니라 함흥, 대구 등 전국을 다니며 민족해방과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투사들을 모집하고 조직을 꾸려나갔다. 특히 이재유의 듬직한 동지가 된 교사 출신의 이관술은 전향서를 쓰고 풀려난 뒤 더욱 열심히 조직 활동을 펼친다. 김삼룡 또한 강한 눈빛과 사상적 투철함으로 흔들리지 않고 운동에 매진한다. 냉철한 빨치산으로 더 유명한 이현상 또한 이재유 등과 함께 사회주의 실현을 위해 목숨 바친 인물이다.

    이들은 엄혹한 탄압 상황에서, 그리고 인쇄작업을 하기에는 기술적으로 열악한 조건에서도 기관지 발간 사업을 통해 흩어진 운동가들을 모으고 다른 파벌들에게 자신의 노선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숱한 조직들 중 거의 유일하게 기관지를 지속적으로 발간한 조직은 이재유 조직뿐이었다. 운동의 파고가 가라앉고 활동의 조건이 더욱 어려워질수록, 운동의 정신과 원칙을 정립하고 자기운동의 정체성을 찾아 이것을 선진 활동가들에게 확대시키기 위해, 지나간 운동의 발자취를 정리하고 평가하면서 현재 투사들은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나아갈 길을 제시하기 위해 이재유 그룹은 손수 인쇄기를 만들기까지 한다. 감옥에서 보낸 시간이 활동기간보다 더 길었지만 출옥 즉시 조직의 재건을 위해 활동가를 모으고 기관지를 발간하는 작업에 매진했던 이재유와 그의 동지들은, 민주주의가 넘쳐나고 기술이 발달한 지금과 같은 ‘좋은 조건’에서도 그 당시보다 못한 운동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만을 가지고 있는 우리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계속된 투옥과 고문, 지병으로 이재유가 결국 젊은 나이에 옥사한 뒤에도 이관술이 중심이 되어 ‘경성꼼그룹’을 결성함으로써 그 운동의 명맥은 계속 유지되어 나갔다. ‘암흑의 시대에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살아 움직인 전국적 저항세력’이었던 경성꼼그룹은 1939년부터 41년 말까지 짧은 기간 활동했는데, 국내사회주의운동의 총결산이라 할만 했다. 김삼룡, 이현상은 물론이고 다른 계열 운동가들도 이 그룹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상해파, 화요파 활동가들, 함흥과 원산의 운동가들도 조직하여 ‘현장투쟁을 통해 검증된 이들로 전위조직을 구성하겠다던 이재유의 구상이 마침내 현실로 증명된 것’이었다. 이들은 조선공산당 창설 주역의 한 명이자 대표적 상징이었던 박헌영도 영입했다. 다른 세력으로부터 파벌주의라 매도되던 이재유 운동은, 비록 그는 죽었지만 그와 함께 했던 동지들이 낙오되지 않고 끝까지 남아 실천함으로써 운동의 실질적 통합을 이뤄냈던 것이다.

    탄압 속에서도 단 한 번도 운동을 회의하거나 나약해지지 않고 올곧게 자기 사상을 유지하면서 오직 계급 속에서 살아 숨 쉬고 그들로부터 인정받는 전위조직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한 선배 운동가들의 열정과 투지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더욱 분투할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들의 다수는 8·15 해방과 신탁통치 등을 겪으면서 남북한 정부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심지어 ‘미제의 프락치’로 매도당하며 고귀한 생을 마쳤지만 그들의 투쟁의 정신은 후대에까지 귀감이 될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 아무런 약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령 당시 식민지 치하에서 ‘미국과 영국은 자본주의 종주국이기에 앞서 파시즘으로부터 약소국을 지켜줄 동맹국’으로 보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단적인 예다. 이미 당시에 관료집단으로 고착화되었던 스탈린세력에 대한 명확한 비판적 입장도 견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젊음을 바쳐 현장투쟁을 일구고 사회주의 전위당 건설을 위해 헌신했다는 진실, 그리고 대중과 함께 하고 전위를 자임하지 않으며 실천 속에서 진정으로 검증된 전위투사들을 명확한 사상을 중심으로 결집해나갔다는 진실은 조금도 퇴색되지 않고 있다. 안재성이 의미 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과거 자신과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이효정은 이제 저 세상으로 갔지만, 그 또한 한 때 투사로서의 자기 삶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 사회주의 운동에 몸담았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거나 후회하지는 않는다. 민족주의자들이 이 나라의 정신을 살리고 경제 번영을 이뤄낸 것처럼, 인간 사이의 평등과 자유에 대해서 사회주의도 나름의 역할을 했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는다.”

    스스로 쟁취하지 못한 자유가 대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말처럼, 자본주의의 착취와 억압에 분노하기만 할 뿐 새로운 노동해방 사회 건설을 위해 자기 삶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자유와 평등, 해방을 가져다주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그는 ‘죽은 노동자’요 ‘죽은 지식인’일 것이다. 탄압과 고문 속에서도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노동운동의 발전과 당건설의 과제만을 가장 중요한 자기 인생의 목표로 살다 간 투사들. 이들은 단지 과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괴물이 노동자 다수를 비정규직으로, 실업자로 만들고 최소한의 권리조차도 보장하지 못한 채 고통스런 처지로 내몰고 있는 지금 21세기에도, 그런 투사들의 정신은 우리 노동자계급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30년대 경성에서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아니 그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노동해방을 위해 헌신하는 선진노동자가 되자! 이제는 운동을 포기한 관찰자, 평론가의 눈이 아니라 무너진 운동을 거대한 파도로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하는 행동하는 투사의 눈으로 ≪경성트로이카≫를 읽는다면 우리는 그들의 고귀한 정신과 지치지 않는 투혼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도 존경할 만한 위대한 선배 투사들이 있었다!” 삶의 길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지를 자신의 삶을 통해 진솔하게 보여준 그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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