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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자운동 : 노해연-22호] 19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의 함성
 정책위  | 2008·05·12 17:40 | HIT : 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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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의 함성

      2003년 7월 또다시 지도부의 배신적 타협으로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은 투쟁의 깃발을 내렸다. 자신의 힘을 믿고 투쟁했다면, 그리고 민주노총의 연대총파업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면 분명 승리로 전진했을 투쟁이었다. 철도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을 벌벌 떨게 할 위력적인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투쟁은 바리케이드 너머의 적이 아닌 내부의 적에 의해 가로막혔다. 승리를 향한 파업의 진군을 가로막은 지도부의 타협과 배신, 이후 자본의 거침없는 현장탄압. 불과 1년 반 사이에 세 번이나 이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철도의 선진노동자들은 낡고 불철저한 지도부를 대체할 새로운 지도력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과제와 또다시 마주치고 있다. 이제는 “새로운 지도력을 만들자!”라는 선언을 반드시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답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과거 선배노동자들의 투쟁 속에서 쉽게 문제의 해답을 얻어낼 수 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골리앗투쟁”은 오늘날 민주노조운동에 많은 영감을 던져준다.

    골리앗투쟁. 첫번째 장애물
      87년 노동자대투쟁의 거대한 불길에 겁먹고 동요했던 자본가들은 민주노조운동의 불꽃을 꺼뜨리기 위해 전열을 정비하고 반격을 시작했다. 공격의 초점은 당시 민주노조운동의 주력부대 중 하나인 현대중공업이었다. 대낮의 식칼테러, 노조사무실 습격, 직권조인 무효와 어용노조 퇴진을 요구하며 벌였던 88년 128일 파업과 가두투쟁의 무력진압 등 탄압은 강도를 더해갔다. 숨막히는 공안정국 속에서 누군가 앞장서 저지선을 구축하고 재반격의 계기를 만들어야 함을 모든 노동자들이 느끼고 있을 때, 현중노동자들은 자신이 그 “누군가”가 되겠다고 선포했다.
      90년 4월 25일 단체협상 이행, 구속동지 석방, 노태우 타도를 내걸고 1만 7천여 현중노동자들은 법률적 제약 따위를 단호히 거부하며 쟁의발생신고 없이 과감하게 파업에 돌입했다. 그간의 패배를 겪으며, 승리를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힘을 남김없이 모두 동원해야 함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법”이라는 자본가의 족쇄에 묶이기를 거부했다. 공장의 장비와 재료로 무기가 만들어지고 바리케이드가 세워졌다. 128일 파업에서는 겁이 나서 쓰지 못했던 민주박격포에도 볼트와 너트를 가득 집어넣었다. 우유부단과 머뭇거림은 패배를 의미할 뿐임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타오르는 현중노동자들의 투쟁을 가로막은 첫번째 장애물은 끝까지 이 싸움을 책임질 지도부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대중의 뜨거운 투쟁열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간 진민복 비대위장의 뒤를 이어 총파업의 총대를 메겠다고 나섰던 김영환 비대위장 역시 “정치파업은 못하겠다”며 적들에게 투항해버렸다. 그러나 대중들은 첫번째 장애물을 멋지게 뛰어넘었다. 위원장의 잇따른 투항에도 대중의 투쟁열기는 조금도 식지 않았고, 곧바로 전투적인 지도부를 탄생시켰다. 새롭게 구성된 이갑용 집행부는 무장한 사수대로 둘러싸였다. 자신들의 지도부를 자본의 회유뿐만 아니라 공권력으로부터 스스로 지켜내겠다는 현중노동자들의 적극적인 행동이었다. 지도부의 직권조인과 파업철회에 단순히 분노하거나 풀죽어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수동적인 모습을 거부하며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지도부를 만들어내고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지도부를 포섭하여 파업을 꺾으려는 시도가 실패하자 정부는 직접적인 공격으로 전환한다. 28일 새벽 73개 중대 1만명이 지상, 해상, 공중으로 동시에 들이닥쳤다. 총파업전선을 사수하고 전국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곧바로 150여명이 골리앗 크레인으로 올랐다. 중공업 진입로에서는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을 시작으로 격렬한 가두투쟁이 시작되었다. 민주노조운동의 후퇴를 막아내려는 현중노동자들의 헌신적인 투쟁은 전국노동자들의 연대를 끌어냈다. 전노협 선봉대가 울산으로 모여들었고, 5월에는 전국 127개 노조 25만명이 현대중공업 골리앗투사들을 엄호하기 위해 연대총파업에 나섰다!

    골리앗투쟁. 두번째 장애물
      대중의 자발성이 고양될수록 자신의 지위에 위협을 느끼는 조합주의적 지도부는 비틀거리기 마련이다. 현중골리앗투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중노동자들에 대한 자본가정부의 탄압을 보며 노동자투쟁은 승리하기 위해서 연대투쟁과 정치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운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을 향해 현자 이상범 집행부는 “임단협을 준비하기 위해 정상조업에 들어간다”고 배신 결정을 발표했다. 이 이탈을 기점으로 투쟁은 한풀 꺾이기 시작했다. 연대투쟁이 소강기로 접어들고 결국 싸움은 골리앗투사들의 외로운 투쟁으로 변해갔다. “골리앗의 외로운 늑대들”은 패배를 예감했다. 전체 자본에 맞서 전체 노동자의 힘을 충분히 동원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결국 점거 14일만인 5월 10일 골리앗투사들은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골리앗을 내려오게 된다.
      두번째 장애물은 이 시기에 등장한다. 투쟁이 일시적으로 난관에 봉착하거나 패배하면 대중은 일시적으로 사기저하에 빠진다. 그러나 모든 힘을 끌어내 싸운 노동자들은 패배주의에 빠지는 대신 “승리하기 위한 투쟁의 정확한 방향과 수단은 무엇인가?”라는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격렬한 투쟁을 통해 법, 의회, 정부, 언론 따위는 자본가의 권력기구이고, 노동자는 단사투쟁을 전체 노동자의 투쟁으로, 나아가 정치투쟁으로 발전시킬 때 비로소 진정한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배우며 자부심을 느낀다. 골리앗투사들은 자본가를 굴복시키고 더 높이 오르기 위한 전망을 갖고자했지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가진 노동해방 지도부를 만날 수 없었다. 결국 희망을 갖지 못한 노동자들은 패배주의만을 가질 수 있을 뿐이었다.
      이처럼 골리앗투쟁이 마주쳤던 두번째 장애물은 미래의 승리를 위한 투쟁의 방향과 수단의 부재, 노동해방 정신으로 무장한 지도력의 부재였다. 노동자투쟁은 성장하면서 더 거대한 과제를 선진투사들에게 던진다. 이때 선진투사들이 충분한 답을 쥐어주지 못할 경우 대중의 사기저하는 계속되고 투쟁이 아닌 굴종, 노동해방이 아닌 개량주의에서 대안을 찾는다. 조합간부보다 관리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당당히 투쟁하기보다 눈치보며 계산기를 두드리며, 단사의 울타리를 절대 뛰어넘지 않으려 하고, 정치문제에 무관심하게 된다. 전체 노동자의 공동의 이익을 사수하기 위한 투쟁에는 무관심해진다. 오직 자기사업장, 자기부서, 자기 가족의 이익을 지키는 데에만 편협하게 모든 관심을 쏟게 된다.
      반면 대중의 투쟁의지와 열망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수로를 여는 진정한 지도부를  발견했을 때 대중은 승리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굴하지 않고 행동하려 한다. 이것은 투쟁을 끈질기고 완강하게 만들뿐 아니라, 투쟁의 파고가 꺾이면서 동요가 생기는 상황에서도 그간의 투쟁의 성과를 보존하고 대중의 투쟁의지와 단결력을 보호하며 다음의 투쟁을 준비할 수 있게 한다.

    대중의 자발성과 선진노동자의 지도력
      골리앗투쟁은 노동자가 얼마나 멀리 나아갈 수 있는지 그리고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가르쳐준다. 골리앗투쟁은 대중의 열망을 현실화시키는데서 무능력한 지도부를 단호하게 갈아치우는 역동성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현중노동자들이 보여준 역동성은 전체 노동자에 대한 책임감에서 비롯되었다. 현중노동자들은 자본가정부의 대대적인 공세 속에서 질식해가던 민주노조운동의 활로를 뚫으려는 돌격대로 자신을 간주했고, 자신들의 투쟁이 정치투쟁임을 분명히 했다. 현중골리앗투쟁을 둘러싼 공방전은 총노동과 총자본의 이후 투쟁의 향방을 결정하는 대회전의 성격을 가졌다. 비장한 마음으로 골리앗 크레인에 올랐던 현중노동자들은 “전체 노동자의 공동의 이익”이라는 계급적 시야와 책임감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골리앗투쟁은 대중의 자발성에 걸맞는 지도력을 갖추지는 못했다. 마지막에 선출된 전투적 지도부는 대중이 이끌어간 투쟁에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함께 했지만, 대중들을 장기적인 승리의 방향으로 이끌 만큼 확고하지는 못했다. 투쟁과정에서 보여준 노동자들의 본능적인 힘을 의식적 투쟁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지도해내고, 전체 노동자를 하나의 투쟁대열로 결집시키는 더 강력한 지도력이 절실히 필요했다. 이 힘을 갖추지 못했기에 현중골리앗투쟁은 난관을 극복하지 못한 채 좌초하고 말았다.

    더 멀리 나아가자!!
      이제 과제는 더욱 분명해졌다. 조합주의적 지도력을 뛰어넘는 선진노동자다운 지도력을 획득할 것! 그 지도력을 바탕으로 아래로부터 활력있게 밀어나가고 지도부를 강제하는 현장노동자들의 힘을 고양시킬 수 있도록 대중 속에서 활동할 것! 대중의 잠재력과 열망이 현실화되는 정도는 선진노동자들의 분투에 달려있다. 이렇게 나아갈 때 골리앗투사들의 외침은 우리의 피와 살이 되어, 미래의 희망을 개척해나가기 위한 훌륭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90년 현중노동자들이 우리에게 던져준 교훈을 받아안고, “골리앗의 외로운 늑대들”보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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