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노동자연합
연합소개 문서고 주장과 쟁점 투쟁의 현장
 
항목별 검색
자본주의는 어디로
투쟁의 방향타
혁명당을 건설하자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문화도 투쟁이다
한국노동자운동
세계노동자운동
기타

Category
한국노동자운동 : 노해연-19호] 전평의 1946년 9월 총파업과 자주관리운동(下)
 정책위  | 2008·05·27 10:53 | HIT : 2,521
 FILE 
  • 노해연_19호]_전평의_1946년_9월_총파업과_자주관리운동(下).hwp (17.5 KB), Down : 305
  • 전평의 1946년 9월 총파업과 자주관리운동(下)

    전평의 정치적 한계
      급격히 성장해가던 전평의 자주관리운동은 두 가지 난관을 맞게 된다.
      우선 전평이 이른바 “양심적 민족자본”에 대해서는 파업을 자제하고 협력할 것을 하달한 것이다. 당시 전평은 “자주독립을 위한 견실한 통일전선 결성을 통한 민중권력 수립”이라는 목표를 위해 노동자, 농민, 도시 소자본가, 양심적 민족자본 등 모든 계급이 연합할 것을 제기해왔다. 민중권력의 수립을 위해서 “민족자본”과의 마찰은 피하려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이를 수긍할 수 없었다. 자주관리운동은 단순한 생존권 보장의 의미뿐 아니라 기존 자본가들을 몰아내어 착취를 없애기 위한 파업투쟁의 형식을 띠었다. 그리고 전평이 이야기한 “양심적이고 건전한 자본가”는 사실 존재하지도 않았다. 전평이 제시한 협력방침은 노동자들의 고유한 무기인 파업의 권리를 박탈하여 무장해제하는 것과 같았다. 그것은 공장 자주관리운동의 방향타를 망가뜨렸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전평의 이와 같은 조치에 반발하거나 혼란에 휩싸였다.
      두번째로, 전평은 “자주독립을 원조하는 미․소 양군에 협력”이라는 원칙하에 미군정에 대한 협조노선을 취하였다. 전평은 소련과 함께 미․영․중을 “진보적 민주주의 국가”로 규정하고 조선 해방의 은인으로 격상시켜 평화적 민중권력 수립을 기대한 조선공산당의 어리석은 주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협조노선이 성과를 가질 수는 없었다. 전평이 “협조”라는 이름으로 무장해제시킨 노동자들을 미군정이 짓밟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노동자들의 대중투쟁과 공장 자주관리운동은 탄압받기 시작한다.
      전평은 그릇된 지도방침으로 전평노동자들의 능동적인 공장 자주관리운동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공장 자주관리운동은 급격히 위축되었고, 노동자들은 미군정과 자본가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코민테른과 조선공산당의 그릇된 입장
      해방 후 공장위원회, 노동조합의 건설과 공장 자주관리운동의 확산은 노동대중의 자생적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노동대중의 폭발적 물줄기를 자주관리운동으로 이끌었던 것은 일제시대부터 현장과 밀접하게 결합해 왔던 노동해방 세력이었다. 공장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하여 노동대중의 광범한 지지를 받고 있었던 노동해방 세력이 없었다면 자주관리운동은 빠르고 강한 힘으로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제시대부터 활동하며 해방 후 노동운동에 커다란 역할을 담당했던 노동해방 세력 즉 조선공산당은 성장하는 노동운동을 억제하고 결국 패배하게 만든 근본원인이 되었다. 전평의 미군정에 대한 협조노선, 자본가 및 소자본가들과의 통일전선전술은 바로 조선공산당의 그릇된 입장을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노동운동의 발전방향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을 미리 획득하여 노동운동을 선두에서 이끌어 갈 선진노동자들 없이 노동운동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 반면, 현실과 어긋난 왜곡된 발전방향을 제시하는 세력이 노동운동을 주도한다면 그 운동은 패배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당시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의 하나로 자국의 이해를 위해 전쟁을 벌여나가고 있던 미국을 “진보적인 국가”로 인식하고 미소공동위원회에서의 교섭을 통해 평화적으로 국가권력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던 것, 그리고 일제자본이든 민족자본이든 노동자를 착취함에는 변함이 없음에도 “양심적 민족자본”으로서 노동자계급과 협력할 수 있다고 본 엉터리 정치노선은 전평노동운동을 패배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다.
      그러나 조선공산당에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다. 조선공산당의 그릇된 입장은 국제노동운동의 전반적 미성숙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1920년대 말을 통과하며 러시아 노동자국가가 관료들의 손아귀에 떨어지자, 러시아 즉 소련이 주도하고 있던 코민테른 (당시 노동자들의 국제연대기구) 역시 관료적 외교기구로, 국제노동운동 압살기구로 타락하기 시작했다. 세계노동자들의 공동이익을 도모해야 할 코민테른은 또다른 제국주의 국가로 변모한 소련의 일국적 이익만을 추구하게 된다. 코민테른은 노동자의 단결과 해방이라는 포장지를 덮어쓰고 세계노동운동을 주도한다. 때로는 극좌적으로 때로는 극우적으로 비틀거리며 코민테른은 세계노동운동을 위험에 빠뜨렸다. 1935년 7차대회에서는 이른바 “반파시즘 인민전선” 방침이 채택되는데, 이는 소련의 제국주의적 이익을 위해 미국, 영국 등과 동맹관계를 맺고, 조선공산당에 미군정과 협조할 것을 제기했던 것이다. 코민테른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조선공산당은 이 방침을 따르게 되었다. 당시 관료기구로 변질한 코민테른의 한계를 인식하고 극복하기에는 국제노동운동이 성장해 있지 못했고, 조선공산당 역시 이 한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처럼 그릇된 정치의식이 바로 전평노동운동을 패배로 이끈 핵심요인이다. 전평과 조선공산당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올바른 노동해방 정치를 획득하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당시 노동운동이 뛰어넘지 못한 커다란 “벽”이었다. 그리고 이 “벽”은 아직도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다시, 1946년 9월 총파업
      1946년 중반이 되자 미군정은 전평노동운동에 대해 대대적인 탄압에 돌입한다. 그리고 미소 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전평과 조선공산당은 미군정에 대한 협조노선을 폐기하고 전면적인 투쟁에 나선다. 9월 총파업은 이와 같은 배경에서 진행된 것이다.
      미군정의 탄압에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무기력한 처지에 놓여있던 노동자들은 재차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전평과 조선공산당의 정치적 오류로 노동자들의 힘은 약화되어 있었다. 반면 미군정은 우익세력의 힘을 결집하여 더욱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전평노동자들은 패배를 예감하면서도 정면으로 미군정에 맞선다. 패배를 직감하면서도 투쟁에 나섰다는 것이 어리석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9월 총파업은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전평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창이다.

    민주노조운동에 남겨둔 숙제
      노동자는 자본가와의 투쟁을 통해 성장해간다. 노동운동은 패배를 통해 더 많은 교훈을 얻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간다. 그리고 다시 자본가들에 맞선 투쟁, 패배, 보완을 통해 결국에는 자본가들보다 더욱 큰 존재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미래의 승리를 위해 현재의 희생을 감수하는 가장 선진적이고 헌신적인 노동자 없이 노동운동의 승리는 보장받을 수 없다. 전평노동자들은 미래의 승리를 위해 당장의 희생을 감수했다. 미군정의 힘에 눌려 자신의 힘을 최대한 동원하여 싸워보지 못하고, 노동운동의 생명인 단결, 연대, 투쟁의 무기를 빼앗겨 무기력한 존재로 떨어지게 된다면 결국 노동해방의 전망으로부터 더욱더 멀리 떨어지게 될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전평의 노동자들은 9월 총파업이라는 힘을 동원한 것이다.
      패배를 예측하면서도 미래의 승리를 위해 당장의 고통을 감수한 전평의 노동자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노동자들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배울 수 있다. 당장의 이익을 위해 미래의 승리를 포기하는 경향이 주류를 장악해가는 현재, 전평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희생을 잊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전평의 노동운동은 자신의 한계를 통해 민주노조운동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당시 전평과 조선공산당이 넘지 못했던 정치적 한계는 민주노조운동에 그대로 남아있다. 우리는 전평과 같이 강한 규율과 헌신성을 가진 선진노동자들을 충분히 배출하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해외자본과 국내자본을 다르게 바라보는 민족주의 관점, 개혁의 옷으로 갈아입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환상 등과 같은 정치적 한계 역시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이 가야 할 길은 멀다. 하지만 과거의 동지들이 개척해 놓은 길을 따라 끈질기게 전진해간다면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며 최대한 빠르게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전평노동자들이 넘지 못한 장벽! 이제 우리가 그 장벽을 무너뜨리고 전진할 차례다!■

    42 한국노동자운동  교양도서 1권_간추린 1987년 이후 한국노동운동사 09·11·11
    41 한국노동자운동  교양도서 1권_전태일에서 87년 6월 항쟁까지 09·11·11
    40 한국노동자운동  4호_이일재 선생 인터뷰 09·08·08
    39 한국노동자운동  2호_현대차 울산 1공장 비공인 파업 평가 08·06·08
    38 한국노동자운동  1호_현대자동차 공동투쟁위원회 제안서 08·02·21
    37 한국노동자운동  선노길_현대자동차 36일 파업의 교훈 08·06·04
    36 한국노동자운동  노해연-20호] 광주, 해방의 기억 08·05·27
    한국노동자운동  노해연-19호] 전평의 1946년 9월 총파업과 자주관리운동(下) 08·05·27
    34 한국노동자운동  노해연-17호] 전평의 1946년 9월총파업과 자주관리운동(上) 08·05·26
    33 한국노동자운동  노해연-26호] 투사의 삶과 죽음 - 80년의 불꽃, 윤상원 08·05·14
    32 한국노동자운동  노해연-33호] 1980년 4월의 나날들 - 사북을 기억해야 한다 08·05·13
    31 한국노동자운동  노해연-34호] 한국노동운동의 위대한 기억 - 원산총파업 08·05·13
    30 한국노동자운동  노해연-24호] 계급적 연대의 깃발, 85년 구로동맹파업 08·05·12
    29 한국노동자운동  노해연-22호] 1990년 현대중공업, 골리앗의 함성 08·05·12
    28 한국노동자운동  노해연-41호] ≪경성트로이카≫ - 도대체 혁명운동에 중앙조직이 없어도 되는 시기란 어떻게 존재하는가 08·05·12
    123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GGAMBO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4동 241번지 2층ㅣ전화 02-794-1917ㅣ이메일 swl@jinbo.net
    No copyright, Just copyleft! 홈페이지에 공개된 모든 자료는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