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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자운동 : 노해연-24호] 계급적 연대의 깃발, 85년 구로동맹파업
 정책위  | 2008·05·12 17:59 | HIT :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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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급적 연대의 깃발, 85년 구로동맹파업
    대투쟁의 패배는 민주노조운동의 조합주의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 반면 계급적 연대정신이 얼마나 퇴색했는지 선명하게 보여주는 창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미조직노동자의 임금삭감과 휴일축소를 통해 더 많이 쥐어짜내는 노동법 개악에 저항다운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민주노조들의 단결된 힘으로 90%의 미조직노동자를 겨냥한 착취강화 법안을 막아냄으로써 민주노총이 전체노동자를 행동으로 대표한다는 점을 증명하기보다는, 10%의 조직된 노동자들의 이익만을 보호하는데 급급했다. 철도와 화물연대투쟁에서도 민주노총은 마찬가지로 연대투쟁에서 무기력과 책임방기로 일관하였다. 결국 철도와 화물연대는 자본가계급의 단결된 공격 앞에 홀로 방치되어 피를 흘리고
      올해 노동법투쟁과 화물연 있다.  
      당장의 실리에 집착하면서 노동자의 대의, 투쟁, 연대를 내팽개치는 경향인 조합주의의 결과는 착취강화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패배다. 단사별, 업종별로 갈가리 찢어져 무기력하게 각개격파 당하는 현 상황은 민주노조운동이 과거 전노협이 보여주었던 계급적 단결과 연대의 정신을 되살릴 것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87년 대투쟁과 전노협 투쟁에 계급적 단결의 정신을 불어넣었던 85년 구로동맹파업은 허약해져가는 민주노조운동을 깨우는 채찍과 같다.  

    구로동맹파업의 시작과 끝
      12ㆍ12 군사쿠데타로 등장한 전두환 정권의 임금가이드라인정책, 노조결성 금지 등 강압적 노동통제정책은 80~83년까지 노동자들의 노조결성과 투쟁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83년 말 유화국면 이후 일시적으로 활동공간이 열리자 저임금과 높은 노동강도에 고통받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최저생계비 확보와 노동악법 문제에 맞선 투쟁에 활발히 나서기 시작한다.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했던 대우어패럴, 효성물산, 선일섬유, 가리봉전자노조도 이 시기에 건설되었다.
      85년 4월 대우자동차투쟁의 승리를 기점으로 다른 사업장 역시 평균 15~20%의 임금인상 성과를 거두어 정부의 5.2% 임금동결정책을 투쟁으로 분쇄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투쟁이 거세어지자 위기를 느낀 자본가 세력은 곧 반격을 시작한다. 자본가언론은 현장의 학생출신 노동자와 선진노동자들을 위장취업자, 불순세력이라며 현장노동자들로부터 고립시키려 하였고, 더불어 정부는 단체행동의 주동자를 무조건 구속시키는 등 탄압을 가했다. 특히 구로지역에서 퍼져가는 투쟁의 열기를 막기 위한 공격이 거세졌다.
      85년 6월 22일, 정부는 4월의 임금인상투쟁을 문제삼아 대우어패럴 지도부 3인을 구속한다. 그러자 22일 밤 구로공단 내 민주노조 조합간부들과 지역 해고자 등 선진투사들은 대책회의를 열고, 대우어패럴에 대한 탄압은 민주노조탄압의 첫 신호이기 때문에, 이번 탄압에 지역노동자들이 막아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침묵한다면 간격을 두고 차례차례 각개격파당할 것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효성물산, 선일섬유, 가리봉전자 등 3개 노조는 24일 월요일을 기해 연대파업에 들어가기로 결의하고 연대투쟁위원회를 구성한다.
      각 사업장 노조들은 조합원들과의 토론에서 “가만히 앉아서 민주노조가 차례로 깨져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노동자의 대의를 위해 당당히 연대투쟁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조합원들은 “대우어패럴 투쟁은 우리 자신의 문제이며, 싸우다 깨질지언정 비굴하게 무릎꿇지 않겠다”라고 답했고 임시총회에서 연대파업을 결의했다.
      24일 대우어패럴이 먼저 파업에 돌입했다. 이어서 효성, 선일, 가리봉 노조가 구속자 석방과 노동운동 탄압 중지를 요구하며 일제히 연대파업에 돌입했고, 구로공단은 삽시간에 투쟁의 불길에 휩싸였다. 동맹파업은 구로지역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자극했고, 다음날 세진전자, 남성전기, 롬코리아 노조가 동맹파업지지 농성 대열에 합류했다. 26일에는 민통련, 민청련, 청계피복노조 등 22개 운동단체, 노조대표들이 연대파업을 지지하는 농성을 시작했다. 27일 효성과 청계피복노조 조합원들이 노동부 중부사무소를 점거하고 이튿날 부흥사노조가 연대파업에 합류했다.
      그러나 연대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투쟁에도 불구하고, 총자본의 계급적 힘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9일 닷새 동안 굶주리며 농성을 계속하던 대우어패럴 노동자들은 벽과 출입문을 부수고 들이닥친 구사대와 경찰에 의해 진압되었고, 연대파업은 막을 내렸다.

    구로동맹파업이 남긴 유산
      구로동맹파업의 결과 43명이 구속되었고 2,000여명이 해고되었다. 이와 같이 대규모로 피해를 입은 이유는 총자본이 사업장을 뛰어넘는 노동자들의 계급적 연대투쟁을 깨뜨림으로써 성장하는 노동운동이 이후 대중적 저항으로 번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 했기 때문이다. 총자본의 거센 탄압은 한편으로는 일부 노동자들의 패배의식을 조장하여 “성급한 투쟁으로 얻은 것 없이 큰 희생을 치뤘다”는 평가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구로동맹파업이 남겨준 유산은 패배의식이 아니라 패배를 통해 단련된 계급의식이었다. 구로동맹파업은 단위사업장의 독자적 투쟁만으로는 임금인상투쟁에서도 승리할 수 없음을 확인시켜주었고, 지역노동자들의 한층 굳센 연대, 나아가 전체노동자들의 단결된 투쟁만이 승리의 보증수표가 될 것임을 행동으로 깨닫게 했다. 투쟁 이후 해고자들을 중심으로 구로노동자 연대투쟁연합이라는 지역연대기구가 만들어지고, 동맹파업을 경험한 노동자들이 87년 노동자대투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은 구로동맹파업이 남겨준 것이 노동자들의 계급적 단결과 투쟁의식이었음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구로동맹파업은 “노동자들은 한 노동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한 노조의 고통을 모든 노조의 고통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노동자의 대의를 행동으로 가르쳤다. 이와 같은 계급적 연대정신은 87년 대투쟁과 전노협투쟁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놓았다.

    선진투사의 활동
      사업장을 뛰어넘는 연대투쟁의 모범을 보여준 구로동맹파업은 갑작스럽게 벌어진 투쟁이 아니었다. 이미 군부독재 하에서 저임금으로 고통받던 노동자들의 분노가 쌓여있었고 이는 노동자 연대투쟁의 토대가 되었다. 더불어 70년대 단위노조의 개별적 투쟁이 패배를 거듭하는 와중에도 굴하지 않고 성장한 선진노동자들과 80년대 광주항쟁에서 노동자들이 보여준 힘을 확인하고 현장으로 투신한 많은 학생활동가들이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호흡하며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투쟁을 현실화시킨 원동력은 노동자들의 분노를 대변하는 현장 선진투사들의 헌신적인 활동이었다. 유화국면을 활용하여 건설된 몇 개의 노동조합 역시 이들이 주축이 되었다.
      선진투사들은 70년대 민주노조의 패배의 원인을 기업별 투쟁의 한계로 보고 연대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상적인 연대활동과 더불어 분임토의와 총회를 통해 노동자민주주의를 훈련하고, 일상적 교육을 통해 조합원들의 의식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쌓아갔다. 조합원들은 일상적인 연대활동을 통해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사실을 직접 체험했고, 동료들과 토론하고 자신이 직접 투쟁을 결정하면서 투쟁에 대한 책임감도 가질 수 있었다. 노동자의 대의, 투쟁, 연대를 끊임없이 실어나르며 선두에서 투쟁하는 현장 선진투사들이 있었기에 조합원들은 굴종이 아니라 투쟁을 선택할 수 있었다.
      물론 당시는 노동운동이 태동하는 초기단계였기 때문에 선진투사들이 노동해방사회의 건설이라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활동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들은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이라는 깃발을 굳게 부여잡고, 단결의 원칙을 져버리지 않았다.

    계급적 연대를 되살리자!
      현 시기는 85년 당시보다 더 폭넓고 더 긴밀한 계급적 연대를 요구하고 있다. 화물연대투쟁에서 보듯이 노동자투쟁에 대한 이데올로기 공세, 경찰투입, 손배, 구속 등의 탄압으로부터 단사별 투쟁으로는 노동자의 생존을 제대로 보호할 수 없다. 전체 노동자들의 단결된 투쟁만이 단사별 투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길임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계급적 연대의 조직화에 모든 선진투사들이 전력을 다해야 한다. 구로동맹파업을 이끌어냈던 당시의 선진투사들과 같이 전체 노동자의 공동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계급적 연대를 일상적인 활동에서부터 당장 시작해야 한다. 아무리 작은 연대투쟁이더라도 책임감 있게 조직해 들어가야 한다.
      그럴 때 대중적인 연대투쟁은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구로동맹파업은 동지들에게 다른 무엇보다도 당장의 패배에 좌절하지 말고 연대의 조직화에 사활적으로 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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