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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자운동 : 노해연-17호] 전평의 1946년 9월총파업과 자주관리운동(上)
 정책위  | 2008·05·26 09:32 | HIT : 2,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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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평의 1946년 9월총파업과 자주관리운동

    1946년 전평의 9월총파업
      1946년 9월 24일, 4만 철도노동자들의 투쟁이 전개되었다. 미군정 운수부의 25% 감원방침이 그 계기였다. 철도노조와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은 미군정의 탄압에 맞서 “쌀을 달라! 물가인상에 따라 임금을 인상하라! 실업자에게 일과 집과 쌀을 달라! 공장폐쇄․해고 절대반대! 민주주의운동 지도자에 대한 체포령 철회와 즉각석방! 언론․출판․결사․시위․파업의 자유를 보장하라! ≪해방일보≫ 등 탄압받고 있는 신문을 즉시 복간시키고 직원들을 석방하라!” 등의 요구를 내걸고 총파업에 돌입했다. 경제적 요구뿐 아니라 정치적 요구까지 포함하는 총파업투쟁이었다. 전화국, 우체국 노동자들이 이 파업에 합세하고 더욱 확대되어 전국적으로 25만 이상이 참여했다.
      한국노동운동 최초의 위력적인 총파업이었으며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전평의 9월총파업은 결국 미군정과 경찰, 우익세력의 물리력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 패배로 타격을 입은 전평은 이후 다시 한번 조직화에 나섰으나, 미군정과 우익세력은 기세를 몰아 탄압의 고삐를 더욱 조였다. 전평은 급속히 쇠약해졌다.
      오늘날 전평은 “먼 과거의 기록”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뛰어난 계급의식으로 새로운 세계를 향해 전진해나가던 전평노동자들의 위대한 업적과 의의를 계승해야 한다. 또한 그토록 강력했던 전평노동운동의 패배의 원인을 규명하고, 우리 운동의 자양분으로 삼는 것은 보다 더 중요할 것이다. 전평노동자들이 넘어서지 못했던 “벽”은 지금의 민주노조운동이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벽”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직 전평운동만큼의 역량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전평노동운동의 전진과 패배를 검토하며 미래의 승리를 준비해야 한다. 그것이 “먼 과거”의 기록을 들여다보는 이유다.

    전평 건설과 공장위원회
      일제 패망 후 이 나라 산업의 80%가량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자본가들이 대대적으로 철수하자 경제 또한 극심한 침체와 혼란을 맞게 된다. 친일자본가들은 공장폐쇄와 사보타지를 통해 공장가동을 중단시켰다. 많은 노동자들이 실업자가 되었다. 공장이 멈추면서 심각한 물자부족과 물가폭등으로 노동대중의 생활수준은 급격히 하락했다. 노동자들은 일본자본가들과 친일자본가들이 운영했던 공장들의 공백을 메꾸고, 마비된 산업을 재건하며, 심각한 물자부족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시급한 과제를 안게 되었다.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만 했다. 생존을 위한 투쟁 자체가 노동운동을 한층 고도한 수준으로 밀어올리고 있었다. 우리는 이 시기 노동운동의 역사 속에서 “자주관리운동”을 만나게 된다.
      해방 후 전국 각지에서 산업별로 노동조합 혹은 공장위원회가 조직되었다. 1945년 11월 5일, 전국 단일노동조합인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즉 전평이 건설된다. 노동자들은 공장위원회나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야근철폐, 8시간노동제 실시, 차별배급 철폐” 등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투쟁에 나섰다. 동시에 폐쇄된 공장, 경우에 따라서는 폐쇄되지 않은 공장에서도 “공장관리를 공장위원회에 맡길 것”을 요구하는 공장 자주관리운동을 벌였다. “자본가 없이” 노동자들이 스스로 공장을 가동하고 생산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성방직의 경우, 김연직이라는 한국인사장은 노동자들의 요구에 맞서 공장 문을 닫고 투쟁지도자 5인을 해고했지만, 노동자들은 공장위원회 지도 하에 조업을 계속했으며 오히려 생산액을 증가시키기도 했다.

    공장 자주관리운동 : 노동자에 의한 생산의 통제
      전평은 전체 노동자의 단결을 위해 분투했다. 생산의 조직화는 기존에 조직되어 있는 조합원들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공장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사무직․생산직을 막론하고, 숙련공․미숙련공․관리직을 막론하고, 무엇보다 조합원․비조합원의 차이를 넘어 현장의 모든 노동자들이 단결 협력해야만 한다. 전평의 자주관리운동은 생산현장의 모든 노동자를 포괄해야만 한다는 과제를 이해하고 있었다. 가령 전평은 공장 내 노동자를 분열시키려는 시도에 정면으로 맞서 “직종간 물자 차별배급 철폐”를 주장하며 노동자의 단결을 외쳤다.
      더 나아가 전평은 “노동시간 단축, 인력 확충, 실업 방지, 실업노동자에게 일자리 보장”을 요구했다. 전평노동자들은 실업자 역시 노동자계급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동료임을 자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평은 “실업자 즉 산업예비군이 있다는 것은 끊임없이 현업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열악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실업자운동은 실업자뿐만 아니라 현업노동자가 선두에 서야 한다”고 선언하며 적극적으로 실업노동자들을 조직했다. 전체 노동자의 일부로서, 그리고 먼저 조직된 노동자로서 노동자계급 공동의 이익을 위해 선두에서 투쟁할 것을 꺼리지 않는 헌신적인 태도를 모범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전성기 전평의 55만 조합원 중 절반 이상이 실업노동자였다는 사실은 전평이 현업노동자인가 실업노동자인가를 떠나 모든 노동자들을 굳게 단결시키기 위해 분투했음을 잘 보여준다.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단결조차 두려워하는 현시기 정규직 노동조합운동(물론 전부 그렇지는 않다)과 크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처럼 전평노동자들의 선진적이고 헌신적인 활동으로 전평은 노동자 전체를 단일하게 결속했을 뿐만 아니라, 생산 자체를 자주적으로 통제하는 기관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었다.
      공장 자주관리운동은 노동대중의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한 자발적 행동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러나 자본가 없이 노동자 스스로 공장을 가동하고, 물자를 생산하기 시작하자 문제는 달라졌다. 공장위원회와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누가 공장의 주인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자주관리운동을 전개하던 노동자들은 자신의 실천 속에서 그 답을 찾아냈다. 지금까지 자본가들 밑에서 땀흘려 일해왔던 이 공장의 진정한 주인은 자본가가 아니라 바로 노동자라는 것, 노동자이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노동자들의 의식이 생산 전반의 통제와 계획이라는 단계에 도달하면 그것은 곧 국가의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이탈리아 공장평의회운동이 그랬던 것처럼, 전평의 자주관리운동 역시 국가의 문제에 직면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재화를 체계적으로 생산, 관리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개별공장에서의 생산통제를 전체 산업으로 확장시킨다면 그 통제기관은 낡은 지배자들의 국가를 대체하는 새로운 권력기관으로 등장할 수 있다. 전평의 자주관리운동은 바로 그와 같은 기관의 맹아였다. 해방 후 정치적 공백기에 펼쳐진 노동자계급의 역동적 운동이 새로운 사회의 씨앗이 되는 새로운 형식의 기관을 창조해갔던 것이다. 전평의 자주관리운동은 “새로운 역사의 창조자”로서 노동자계급의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조금씩 자신의 힘을 축적하며 성장해가던 전평의 자주관리운동은 커다란 “벽”에 부딪히게 된다. 그 “벽”을 넘는다면 전평의 자주관리운동은 승리할 것이고 노동자의 피땀을 한줌 자본가들에게 빼앗기지 않는 “새로운 사회”의 건설은 가능할 것이었다. 반면 그 “벽”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자주관리운동은 정체하게 되고, 미군정을 중심으로 전열을 정비한 자본가들의 공격에 괴멸될 것이었다. 유감스럽게도 그 “벽”은 전평노동자들에게 치명적 한계로 다가왔다(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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