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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자운동 : 노해연-20호] 광주, 해방의 기억
 정책위  | 2008·05·27 11:04 | HIT : 2,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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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쟁의 기억
    광주, 해방의 기억

    누가 5·18 광주정신을 계승할 것인가?
      도처에서 추모제가 열렸다. 노무현정부를 비롯하여 여야 국회의원 모두가, 광주정신을 이어받고 있는 것은 바로 자신들이며 광주정신으로 개혁과 통합을 이루겠다고 목청을 높인다. 5·18 추모식은 착취와 억압에 맞서 목숨을 내걸고 투쟁한 광주 노동대중의 단결, 투쟁, 해방의 정신을 되살리고 계승하는 자리가 아니라, 자본가정치인들이 자신을 내세우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광주의 투쟁정신을 자본가 패거리들로부터 되찾아와야 한다. 기존 자본가질서를 유지하려는 “개혁”, 노동자에게 자본가의 세계관을 주입시키는 “통합”이 아니라 천대받고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이 떨쳐 일어나 이 사회의 주인으로 발돋움하는 “해방”의 정신으로 광주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5월 광주의 도청사수투쟁을 통해 광주정신은 무엇이며, 이를 진정으로 계승할 자들은 누구인지 확인하자!

    도청사수투쟁
      80년 5월. 총과 장갑차로 밀어붙이는 무장 공수부대의 살육에 투석전만으로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시민들은 스스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총을 움켜쥔 시민군은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으로 몸을 던졌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결사적으로 전투에 임하는 시민군을 상대로 계엄군은 더이상 버티지 못했고, 도청에서 철수하여 외곽으로 도망치지 않을 수 없었다. 광주는 투쟁하는 노동대중에 의해 해방되었다! 노동대중들이 광주를 움직였고, 스스로 치안과 행정을 떠맡았다.
      그러나 피흘려 쟁취한 해방광주는 지도부에 의해 붕괴되어갔다. 부시장을 주축으로 신부, 교수, 변호사, 정치인, 지역유지 등 행정관료와 지역자본가들로 구성된 수습대책위는 계엄군과 협상에 들어갔고, 시민군의 무기를 회수하여 계엄군에 반납할 것을 결정한다. 일부 시민들은 반납을 시작했지만, 기층 노동자들은 단호히 거부했다. 투쟁을 파탄내려는 수습위원회의 본질이 대낮처럼 밝게 드러났다. 자본가, 행정관료, 자본가정치인들은 군부독재를 반대했지만, 기존 자본가질서를 뛰어넘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나가기 시작할 정도로 성장한 노동대중의 힘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반면 광주 노동대중들은 “세상을 바꾸자”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이들과 당시 지도부의 이해관계와 의지가 전혀 달랐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무장해제는 곧 투쟁의 패배를 뜻했다. 계엄군의 또다른 살육이 시작될 것을 의미했다. 이 점을 알고 있었던 시민군은 수습대책위에 총부리를 돌리며 완강하게 무기반납을 거부했고, 새로운 지도부 건설에 나섰다.
      하지만 새로운 지도부를 구축했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절반 이상의 무기가 반납되었고, 시민들의 자신감과 투쟁력은 상당히 위축되었으며, 계엄군은 진압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26일 새벽 5시, 새로운 지도부에 의해 투쟁동력이 살아날 것을 우려한 계엄군은 탱크를 앞세우고 광주 외곽에 진입하기 시작한다. 자정을 기점으로 계엄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끝까지 항전했던 200여명의 시민군 투사들은 곧 다가올 죽음을 예감했다. 공수부대 3개 여단을 비롯해 2만여명의 자본가군대에 200여명이 맞서 싸울 결과는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죽음이 두려워 무릎을 꿇을 수는 없었다. 무기를 내놓고 항복한다는 것은 적들에게 우리의 생사여탈권을 쥐어주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또한 지금까지 흘린 노동자들의 피를 저버리는 것이었다. 도청의 투사들은 “폭력과 탄압으로 우리의 목숨을 강제로 빼앗을 수는 있어도, 우리의 정신을 짓밟을 수는 없다!”고 당당하게 외쳤다.
      이들은 광주투쟁의 해방정신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역사의 제단에 바쳤다. 200여명의 시민군의 죽음으로 도청은 완전 진압되었다.

    도청사수투쟁에서 자라난 노동자정신
      도청사수투쟁을 끝으로 광주항쟁은 패배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광주항쟁은 우리에게 “투쟁해도 바뀐 것은 없다”는 패배주의와 무력감을 남겨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다. 광주항쟁은 투쟁하는 노동대중의 역동성을 보여주었고, 노동자들이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특히 도청사수투쟁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우선 도청사수투쟁은 이 사회의 진정한 주인은 노동자임을 보여주었다. 공수부대의 마지막 공격이 있기 전 투쟁지휘자는 “죽어도 좋다는 사람만 남으시오! 오늘밤 계엄군이 들어오면 우리는 끝까지 항거할 것이오. 전멸할지도 모르오.”라고 목메어 외쳤다. 남아있던 200여명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자본가군대에 투항하느니 차라리 싸우다 죽기를 선택했다. 그들의 다수는 바로 공장노동자, 목공, 건설노동자, 구두닦이 등 그간 멸시와 천대를 받아왔던 노동자들이었다. 폭력의 위협 앞에 사회공동체를 지키려했던 사람들은 거만하게 주인행세하던 정치인, 자본가들이 아니었다. “공돌이, 공순이”로 놀림받던 이들, 바로 노동자들이었다!
      그리고 광주항쟁과 도청사수투쟁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힘”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드러났다. 광주항쟁을 통해 각성된 노동자들은 “전체 사회공동체의 이익”이라는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개인의 삶의 가치를 부여했다. 공동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개인의 삶조차 희생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의 삶과 투쟁에 대한 자긍심과 도덕적 우월성으로 똘똘 뭉친 진정한 해방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자본가들은 “일부 개인들의 이익”이라는 잣대로 세상을 바라본다.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임금삭감과 정리해고를 요구하고,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맞서면 용역깡패, 구사대, 군대, 경찰, 언론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노동자들을 제압한다. 비리, 부패, 뇌물수수, 착취, 억압은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 불가피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이들은 기존 사회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려 하며, 착취와 억압의 권리를 보호하고자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자본가들에게는 세상을 바꿀 힘도 능력도 의지도 없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오직 전체 사회의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있다. 그 힘의 원동력은 노동자다운 공동체정신에서 비롯됨을 도청사수투쟁의 노동자들은 뚜렷이 보여주었다.

    광주정신의 계승을 위하여!
      광주항쟁과 도청사수투쟁의 정신을 참되게 계승할 수 있는 세력은 오직 노동자계급뿐이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노조운동은 광주투사들의 해방정신을 계승하는데 많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 전체 노동자의 공동의 이익을 위해 단결하고 투쟁하는데는 머뭇거리는 반면, 개별사업장 또는 조직된 정규직의 이익을 위해서만 싸움에 나서는 경향이 발생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외면하는 정규직 이기주의, 대중의 이익에서 벗어난 상층 관료주의 등 일부의 부분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조합주의는 노동자의 단결을 무너뜨리고, 자본가의 각개격파에 부분적 이익조차 지킬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이 상황은 역설적으로 전체의 이익을 위해 투쟁했던 광주항쟁의 해방정신을 부활시키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다.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은 도청 투사들이 보여준 광주정신을 되살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조합주의, 관료주의와 같은 자본가 세계관은 이미 현장노동자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광주 해방정신의 계승은 “계승하자”는 말로써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조합주의를 뛰어넘어 정규직 비정규직의 단결과 노동자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모범을 만들어야만 한다. 자본가의 탄압에 맞서 비타협적으로 투쟁하고, 전체 노동자계급의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선진적인 노동자들만이 이러한 모범을 창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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