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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노동자운동 : 1호_2007년 미국자동차노조의 역사적 배신과 이에 맞선 현장투쟁
 정책위  | 2008·02·21 19:24 | HIT : 3,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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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노련에서 발행한 <사회주의자>1호에 실린 글입니다.)

    The Course of the Fight against the 2007 Contracts

    [번역글 모음] 2007년 미국자동차노조의 역사적 배신과 이에 맞선 현장투쟁



    양준석



    지난해 미국자동차노조(UAW)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역사적인 배신이라 할 만한 협약을 GM․포드․크라이슬러와 체결했다. 이를 두고 한국의 자본가들은 “강성 UAW”도 노사상생의 길을 택했다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UAW가 ‘강성’에서 ‘어용’으로 전락한 것은 이미 몇 십 년 전의 일이다. 2007년 UAW 협약은 노동자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자본가들의 끝없는 탐욕 앞에 고스란히 갖다 바치는 노조관료들의 추악한 배신을 보여줄 뿐이다. “노사상생”을 택한 노조가 노동자들에게 어떤 고통을 안겨주는지 너무나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미국 노동자운동에 노조관료들의 배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소개하는 세 개의 번역글 속에서 우리는 참으로 암담해 보이는 조건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미국 자동차산업의 현장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UAW 노조관료들을 하수인으로 거느린 GM․포드․크라이슬러의 거대 자본가들에게 맞서 여전히 또는 새롭게 투쟁에 나서고 있다. 머나먼 미국 땅에 사는 얼굴도 모르는 동지들이지만, 그들이 서 있는 현실과 고민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느낄 수 있다.

    우리보다 훨씬 암담한 조건에서도 당당하게 투쟁하고 있는 미국 노동자 투사들의 치열한 숨결을 함께 느껴보자.




    미국자동차노조 2007 협약에 맞선 투쟁의 과정



    SPARK 그룹 (2007년 11월 13일)1)



    지난 35년 동안 자본가계급은 노동자계급에 대해 끊임없는 공격을 펼쳐 왔다. 자본가들은 미국에서 생산된 부의 점점 더 거대한 몫을 취하여, 세계대공황으로 이어졌던 주가대폭락 직전인 1928년처럼, 오늘날 부의 거대한 몫을 움켜쥐게 되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대가를 치렀던 노동자들은 노조가 없는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었다. 노조가 있는 경우에도 철강이나 항공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이미 거센 공격을 받아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자동차산업 노동자들, 또는 적어도 빅쓰리(GM·포드·크라이슬러)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몇 십 년에 걸친 투쟁으로 획득했던 성과의 대부분을 유지해 왔다. 노동자계급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가장 조직화된 부분으로 늘 여겨 왔던 그들을 직접 상대하는 것에 거대 자본가들은 주저함을 갖고 있었다.

    대신에 이른바 “빅쓰리”는 철강과 유리부터 시작해서 대부분의 부품을 생산하고 모든 부품들을 최종 조립하면서 자동차 전체를 생산했던 회사의 여러 부분을 꾸준히 조각내서 팔아치우거나 분사시켰다. 그리고 그들은 “빅쓰리” 공장에 남은 노동자들에게 여기서는 약간의 양보를 얻어내고 저기서는 좀 더 큰 양보를 얻어내면서 조금씩 야금야금 우려먹었다. 어떤 자동차산업 분석가는 이것을 “천 번의 작은 칼질로 천천히 죽이기”라고 표현했다.

    이와 달리, 2007년 자동차산업 협상은 정말로 대학살이었다. 이번 협상으로 맺어진 협약은 몇 십 년 동안 자동차산업에서 유지되어 왔던 기본적인 임금 체계, 복지, 노동조건을 드러내놓고 뒤집어엎었다.

    노동자들에게 이처럼 거대한 양보를 강요하는 데서 사측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미국자동차노조(UAW) 지도부의 도움이 필요했고 도움을 얻었다. 1년 전 협상이 시작될 때 UAW 부위원장은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적대적인 접근을 피하기 위해 의식적인 선택을 했다. 과거의 실천과 과거의 전략에 매달려 어떤 절대적인 원칙을 고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밥 킹, 2006년 4월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후원으로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자동차산업 대회에서의 연설)

    UAW 지도부는 오래 전에 사측과 “적대적인” 관계를 갖는다는 어떤 생각도 포기했다. [2007년] GM에서 이틀, 크라이슬러에서 6시간 파업이 벌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회사 전반에 걸친 파업이 일어난 것은 31년 전이었다. UAW 지도부는 투쟁하는 대신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면서 사측과의 협력에 몰두해 왔다. 실제로는 이러한 협력은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에 맞서서 수행될 수 있을 뿐이었다. 그 점은 이미 오래 전에 분명한 것이었으나, 이번 협약으로 비참할 정도로 명확해졌다.


    구세대를 배신한 협약


    퇴직자들은 필요한 햇수 동안 퇴직연금을 납부했던 노동자들과 산업재해로 영구적인 장애를 갖게 된 노동자들에게 약속되었던 종신 의료보상에 대한 보장을 잃었다. 또한 사측은 2010년부터 시작되는 퇴직 의료보상을 관리할 모든 책임을 노동조합으로 넘겼다. 사측은 소요 자금의 일부만을 노조가 관리하는 퇴직자의료비펀드(VEBA)에 주면 된다. 시티그룹의 애널리스트(분석가)에 따르면 퇴직자의료비펀드(VEBA)에 조성될 기금은 의료비 인플레이션을 감안할 때 GM에서 요구되는 금액의 57% 정도, 포드에서 요구되는 금액의 46% 정도에 해당된다.

    노조 관료들은 퇴직자의료비펀드(VEBA)가 “80년 동안 안전”하며 회사가 파산하더라도 퇴직자의료비펀드(VEBA)가 퇴직자들을 지켜줄 것이라는 넋 나간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세 회사는 모두 “거래 금지 예외”를 적용해 달라고 신청하고 있다. “거래 금지”는 회사가 파산하더라도 퇴직자들의 연금이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몇 십 년 전에 연방법으로 정한 것이다. 덕분에 현행대로라면 퇴직자의료비펀드(VEBA)가 사측의 유가증권과 부동산의 10% 이상을 묶어둘 수 있지만, 예외조항이 적용되면 그렇지 못하게 된다.

    GM 퇴직자의료비펀드(VEBA)의 최소한 25%에서 절반이 사장들의 어음, 주식, 차용증 속에 있는데, 그 가운데 일부는 2020년까지 지불기일이 돌아오지 않는 것도 있다. 포드의 경우 확실하게는 55%, 아마도 75% 정도가 회사 어음 속에 있다. 파산될 경우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것인데 말이다! 심지어 크라이슬러의 새 소유주 서버러스는 퇴직자의료비펀드(VEBA) 기금에 밀어 넣으려고 새 주식을 발행하고 있다. 그것은 공허한 행동이다. 갖고 있는 증권이 가치 없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서버러스 같은 개인 소유 기업의 “주식”에 어떤 가치가 덧붙여지리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퇴직자의료비펀드(VEBA) 신탁 합의문의 세부사항에는 매년 퇴직자들에게 더 많은 의료비 지출을 하도록 요구한다는 조항이 숨겨져 있다. 그들의 연금은 동결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숨겨진 조항이 또 있는데, 퇴직자의료비펀드(VEBA) 수탁자들은 필요할 경우 연금수당을 줄이거나, 매년 증가분 이상으로 퇴직자들의 의료비 지출을 늘리며, 현역 노동자들이 기금에 추가 납입을 하게끔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그러나 가장 나쁜 점은 이러한 세부사항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들의 생명 에너지를 30년 남짓 다 뽑아먹고서 그동안 했던 약속을 깨고 노동자들을 문밖으로 내던질 수 있다고 세 거대기업의 사측이 생각했다는 점이다.


    다음 세대를 희생하기


    노조가 각 기업과 개별 교섭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빅쓰리 사측은 노동자들을 영구적인 이중임금제로 고용할 수 있도록 동의를 받아냈다. 신규 노동자들은 현재 노동자들보다 절반 이하의 임금을 받게 되며 수당은 거의 받지 못하게 된다. 신규 노동자들이 받게 될 임금과 수당의 총액은 지금까지 사측이 지불했던 금액의 1/3밖에 안 된다. 협약이 가결된 지 나흘 후에 GM 회장은 월가에서 “전화 회의”를 하면서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떠들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시간당 14달러 정도 되는 새 임금은 배우자와 두 아이를 부양가족으로 둔 노동자에게는 너무 낮아서 식량지원을 받을 자격을 갖게 만들지도 모른다. 앞으로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은 임금을 보충하려고 사회복지센터에 몰려다니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크라이슬러에 있는 몇몇 노조관료들은 떠든다. “나는 시간당 14달러를 받고도 행복해 할 사람들을 알고 있다.” 저렇게 떠드는 놈들을 시간당 14달러에 살게 하라!

    그런데 시간당 14달러가 사태의 끝이 아니다. 자동차산업에서든 다른 곳에서든. 자동차산업의 임금이 28달러에서 14달러로 삭감되면, 현재 시간당 14달러를 주고 있는 다른 산업의 사장들은 앞으로 8달러나 9달러로 임금을 삭감하려고 할 것이다.

    협약 내용을 요약한 선전물에는 각 회사별로 저임금 일자리로 고용할 수 있는 노동자들의 수가 제한된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협약의 실제 문구를 보면 GM과 크라이슬러의 경우 사측과 노조 최고 지도부가 동의하면 언제든 저임금 일자리를 늘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포드의 경우 수천 개의 일자리를 저임금으로 쓰게 되어 있으며 어떤 경우엔 심지어 공장 전체를 저임금 일자리로 쓰도록 되어 있다.

    이처럼 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들에 덧붙여, 각 회사는 실제로는 영구적인 일자리에 “임시직” 노동자를 고용하고 실제로는 풀타임 일자리에 “파트타임”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금보다 더 낮은 새로운 임금체계를 적용받는다.

    마지막으로 협약에는 몇몇 노동자들이 현 임금체계를 적용받아 고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는데, 이 경우에도 수당은 적용받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협약이 다음 세대에게 갖는 의미는 명확하다. 노동자들의 아들, 딸, 손자, 손녀들은 지금 노동자들보다 훨씬 열악한 삶의 수준을 갖게 될 것이다.


    노동자 연대를 파괴하기


    2007년 협약은 현재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 즉 협약에 투표할 권리를 갖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임금과 일자리를 지켜주는 것이라고 선전되었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임금은 4년 동안 동결될 것이다. 대부분의 생계비 보전금이 사측으로 넘어가는데, 아마도 퇴직자의료비펀드(VEBA)를 위한 지출에 사용될 것이다. 의료 플랜에 많은 변화가 있는데, 그 때문에 더 많은 지출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협약이 투표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은 노동자들, 즉 퇴직한 노동자들과 아직 고용되지 않은 노동자들로부터 최악의 양보를 취하려고 만들어졌다는 것은 명확하다. 투표하는 노동자들이 그들 자신의 급여만을 생각하고 그 이상은 보지 않기를 바라는 기대 속에서 말이다.

    UAW가 가진 하나의 강점은 연대에 대한 노동자들의 강력한 믿음이었다. 1930년대 점거파업 이래로 UAW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고수해 왔다. 생산과정 속에서 노동자들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한다 해도 임금이 늘 서로 몇 센트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이는 다양한 직무 사이에 다소 폭넓은 차이를 가진 숙련 노동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사실상 처음부터 UAW는 현직 노동자들이 가진 것은 과거 노동자들의 덕택이며 현직 노동자들은 과거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지켜야 할 책무를 갖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노동자 연대는 그토록 “신성한 것”이었으나, UAW 부위원장 킹은 내던지려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다.

    노조관료들은 “연대”를 내버릴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다른 노동자들에게 등을 돌릴 때, 연대의 결여는 자주 뒤끝에서 그들을 물어뜯으려고 되돌아온다. 사실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GM과 크라이슬러에서 저임금이 적용되게 된 일자리는 노동자들이 나이가 들면 라인 작업에서 벗어나면서 맡고 싶었던 바로 그 일자리들이다. 이제 그들은 임금이 절반으로 깎이길 원하지 않는다면 라인에 말뚝처럼 박혀야 한다.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다수가 되면, 누가 지금 노동자들의 임금과 연금을 지키려고 할 것인가? 부품전문기업 델파이에서 신규 노동자들에게 저임금을 적용하기로 2003년에 협약을 체결한 이후 전체 노동자들에게 저임금을 강요하기까지 고작 3년이 걸렸을 뿐이다.


    “고용안정”이라는 거짓 약속


    아마 2007년 협약에 관해 떠드는 최고의 거짓말은 그것이 “고용안정”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번 협약은 1982년 이후 맺어진 모든 협약들보다 전혀 나을 게 없거나 아마도 더 못한 고용안정을 제공할 것이다. 1982년 이후 맺어진 모든 협약은 “고용안정”이라는 바로 그 약속을 했지만 오로지 일자리가 사라지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지난 협약 이후 4년 동안에도 GM·포드·크라이슬러에서 104,000개의 일자리가 영구적으로 사라졌다.

    일자리들은 어디로 갔을까? 흔히 말하듯이 해외로 나간 것이 아니다. 저임금 하도급 업체로 갔다. 그 업체들 가운데는 심지어 GM·포드·크라이슬러 공장 내부에서 운영되는 것들도 있고, 아예 전체 부서가 하도급 업체로 넘어가 있기도 하다. 톨레도에 있는 크라이슬러 지프 공장에서는 바디·도장·섀시 부서가 몽땅 세 개의 하도급 업체로 “아웃소싱”되어 있다. 이 업체들은 같은 공장 안에서 바로 그 일을 하고 있지만, 저임금을 지불한다.

    일자리들은 임시직이나 파트타임 노동자들에게도 넘어가 있다. 이들은 같은 공장에서 일하지만 낮은 임금을 받고 수당과 복지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다.

    그리고 일자리들은 공장에서 지금 일하는 노동자들의 땀 속으로도 사라졌다. 기업들은 노동강도를 높이도록 밀어붙였다. 기업들은 “새로운 노동 시간표”를 세워서 노동자들에게 10시간 또는 심지어 12시간 교대 근무를 하도록 강요한다. 기업들은 한층 가혹한 결근자 정책을 만들어서 노동자들이 아프더라도 일을 하도록 효과적으로 강요한다. 기업들은 생산 부문을 결합시키고 숙련 직무 사이의 경계선을 허물어뜨렸다.

    이번 협약 아래서 이러한 모든 방안들이 한층 확대될 것이다. 일자리를 더 줄여 생산성을 높이게 될 다른 방안들도 추가될 것이다. 이를테면 이제 일자리 기준은 아직 근속 년수가 없는 노동자들, 즉 노동의 속도를 높이려는 시도에 감히 저항하지 않는 노동자들에 기초하여 세워질 것이다.

    GM은 협약이 가결되자 불과 나흘 후에 크리스마스에 맞춰 5,000명의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하겠다고 선언했다. 크라이슬러는 협약 가결 엿새 후에 2008년 말까지 11,000개의 일자리를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포드는 심지어 협약 가결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구조조정 계획”을 “조정”해야 할 것 같다고 무심결에 언급했다.

    이전에는 자동차 기업들이 더 신중했다. 이전에 그들은 “고용안정”을 요구하는 협약에 일단 서명한 다음, 나중에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고, 유지하기로 약속했던 공장들을 폐쇄했다. 그러나 그들은 일자리 삭감을 선언하려고 그렇게 빨리 달려들지는 않았다. 이번에 그들은 UAW 파트너들의 눈치를 볼 것이라 걱정하는 월가에 이번 협약에서 발목이 묶이지 않은 것을 보여주려고 너무나 열심이었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들은 이제 막 협약에 투표한 노동자들에게 더 큰 희생은 아직 오지 않았다며 위협하였다. 그들은 조기퇴직이나 매각에 관한 소문을 던지면서 노동자들의 저항력을 약화시켰다. 노동자들을 훨씬 더 낮은 임금으로 내몰 길을 닦기 위해서.


    거대한 양보의 전조 : 2003년과 2005년


    이중임금제를 도입했던 2003년 델파이-UAW 협약 이래로 GM․포드․크라이슬러가 비슷한 임금체계를 UAW와의 협약에서 밀어붙이려고 한다는 것은 늘 명백했다. 그래서 지난 UAW 대의원대회에서는 상당수 지부장들이 지도부에게 이중임금제가 빅쓰리 공장들 안으로 밀려오는 것을 허용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기도 했다.

    UAW가 2005년에 GM․포드와 보충협약을 맺은 이후, 퇴직자 의료보험을 겨냥하는 직접적인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점 또한 분명했다. 2005년 보충협약에서 UAW가 한 양보는 2007년 협약에서 한 양보에 비하자면 상대적으로 작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몇 가지 중요한 선례를 만들었다. 그들은 사측이 퇴직자들에게 “평생” 지급할 것이라고 약속했던 퇴직수당을 거두어들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또한 그들은 노조와 사측이 함께 법적 승인을 요청할 경우 법원이 이러한 도둑질을 뒷받침해 주리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보충협약에서의 양보는 노조와 사측이 현직 노동자들에게 퇴직자들의 의료보험 상실을 막을 책임을 지게 함으로써 현직 노동자들의 임금 일부를 회사에 되돌리도록 강요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델파이와 GM․포드에서 이루어진 양보 추진에는 두드러진 것이 또 하나 있다. 사측의 요구가 있기 전에 노동자들이 먼저 그렇게 굴종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2003년에 UAW 관료들은 델파이 협약 가결을 위해 교묘한 술책을 썼다. 훨씬 적은 수인 델파이 노동자들의 표를 훨씬 많은 수이며 델파이 협약이 적용되지 않는 GM 노동자들의 표에 섞어 버린 것이다. 모든 델파이 노동자들이 반대표를 던진다 하더라도 GM 노동자들의 표를 이겨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05년 보충협약에서 사측들과 UAW 관료들이 양보를 강요하려고 내린 결정은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다. GM에서도 61% 찬성에 그쳤지만, 특히 포드에서는 50.1% 찬성으로 간신히 통과되었다. 당시 UAW 전 위원장 더그 프레이저는 그렇게 말했다. “포드에서의 찬반투표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물론 그의 말은 노사협조주의 관점에서 볼 때 무시무시했다는 뜻이다. 어쨌든 당시 그들은 크라이슬러에 대해서는 같은 협약을 체결하려고 감히 시도하지 않았다.


    거짓말, 조작, 사기로 점철된 두 해


    GM․포드․크라이슬러 사측과 UAW 노조관료들은 2007년 협약에서 훨씬 큰 양보를 관철시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선전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2년 동안 자동차 회사들은 재정 파탄에 관한 터무니없는 단언과 파산 위협으로 가득 찬 공포스러운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다. 이 캠페인은 언론이 부각시키고 노조관료들이 보강하면서 다음과 같은 점들로 귀결되었다.

    첫째, GM․포드․크라이슬러는 퇴직자 의료비라는 과중한 짐 때문에 자신들이 이른바 “현지공장”, 즉 미국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는 일본기업과 경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퇴직자를 거의 갖고 있지 않은 일본 기업들은 인건비에서 시간당 25달러의 유리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거짓말이다! 자동차 회사들은 퇴직자 의료보험을 처음 도입할 때, 노동자들이 그만큼 급여를 덜 받게 될 것이라고 노조와 협상을 체결했다. 다른 말로 하면, 노동자들이 30년 동안 덜 받은 임금으로 퇴직한 후에 수당 등을 지불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만일 노동자들이 30년 동안 덜 받은 돈이 사라졌다면, 그것은 회사가 도둑질한 것이다.

    둘째, GM․포드․크라이슬러는 의료보장 비용이 얼마나 많이 솟구쳐 오를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거짓말이다! 그들은 알 수밖에 없다. 그들은 의료산업을 운영하고 그로부터 막대한 이득을 얻는 거대 기업집단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보기를 들어, GM 이사회 구성원 가운데 세 명은 제약 산업과 연결되어 있다.

    셋째, GM․포드․크라이슬러는 인건비 때문에 일본 기업의 현지공장들에게 시장점유율을 빼앗기고 있다고 말한다.

    또 거짓말이다! 그들은 시장 점유율을 빼앗기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 포기했다. 그들은 트럭, 스포츠카, 밴, 대형차 생산에 초점을 맞추면서, 소형차 라인 대부분을 폐쇄했다. 더 최근에 그들은 심지어 중형차 라인의 주력마저 없애기로 결정했다. 왜? 이윤이 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만일 그들이 시장점유율을 회복하고 싶다면, 그들이 폐쇄한 그 공장들을 재가동하면 된다. 그 공장들은 여전히 이윤을 만들어 낼 것이다. 다만 그들이 최근에 뛰어든 금융투기의 몇몇 경우만큼 높은 수익률을 월가의 투자자들에게 보장해 주지 않을 뿐이다.

    넷째, GM․포드․크라이슬러는 모두 만일 인건비를 삭감시킬 수 없다면 공장을 해외로 옮길 것이라고 위협했다.

    정말 말똥 같은 소리다! 자동차 회사들, 특히 포드와 GM은 100년 이상 해외에 투자해 왔지만 미국에서의 생산을 중단하지 않았다. 그들은 미국 시장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시장에 팔 자동차를 생산하려고 다른 나라에 투자한 것이다. 그들이 상당수 공장을 갖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의 경우에도 그곳에서 수입하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을 미국에서 수출한다.

    일본의 자동차 회사들도 미국 시장에 팔려고 미국으로 공장을 이동했다. 여전히 미국 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이윤이 남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미국 회사들은 스스로 망할 생각이 아니라면 미국 시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을 위해 생산하는 노동자들로부터 여전히 더 많은 이윤을 쥐어짜내는 것이다. 또한 자동차 공장에 대한 투자비용을 낮춤으로써 주택담보대출이나 투자신탁 같은 다른 분야로 돈을 밀어 넣고 싶은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노동자들을 위협하여 노동자들이 싸우지 않고 스스로 삶의 수준을 낮추게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GM과 포드는 자신들이 파산해야 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이 캠페인을 보강하기 위하여, 그들은 거의 동시에 막대한 손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크라이슬러는 이 게임에 약간 늦게 뛰어들었고 그래서 지난해(2006년)까지는 손실을 선언하지 않았다.


    거짓과 사기!


    GM․포드․크라이슬러가 주장하는 바를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GM은 지난 분기에 389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세금 공제와 관련하여 386억 달러가 “회계 변동”함에 따라 단지 “서류상의 손실”이라고 설명했다. 386억 달러지만 단지 서류상이란다! 얼마나 많은 다른 금액이 단지 서류상으로 있을까?

    GM․포드․크라이슬러는 손실 또 손실을 발표하는 동안에도 해외에 있는 자동차 회사들과 미국에 있는 다른 산업 회사들을 사들였다. 지난 10년 동안 포드는 다른 나라에 있는 22개의 회사와 공장들을 사들이거나 투자를 늘리느라고 최소 300억 달러를 지출했다. 그 중에는 일본 최대의 수퍼마켓 체인의 금융부문도 들어있다. GM은 미국에 있는 주택담보금융회사를 20개 이상 사들였다. GM과 포드는 막대한 손실을 발표하는 와중에도 2006년 최고경영자 네 명에게 7천9백만 달러를 지급했다. 또한 GM․포드․크라이슬러 세 회사 모두 큰손 투자자들에게 척척 돈을 나눠 주었다. 서버러스는 크라이슬러를 빚더미에 올려놓은 채 자기 뒤에 있는 “큰손 투자자들”에게 “배당금”을 지불하려고 채권 발행을 시도하고 있다.

    그들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아야 한다! 그들은 언제 파산을 선언하기로 결정할지 모른다. 돈이 바닥나서가 아니라 그것이 노동자들에게 훨씬 큰 삭감을 받아들이도록 밀어붙이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그러나 그것은 단지 경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힘의 문제다. 사측의 끝없는 양보 요구를 중단시키기 위하여 노동자들은 스스로 조직된 힘을 사용할 것인가?

    한때 UAW는 기준의 상향을 이끈 적이 있었다.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위해 싸워 쟁취한 것은 노동자계급 내부의 다른 계층에게도 기준선을 올리는 역할을 했다. 사실 GM의 경쟁자인 도요타조차 GM․포드․크라이슬러의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수준에 맞추도록 강제 당했다.

    그러나 이제는 GM․포드․크라이슬러가 도요타와 혼다의 절반 수준으로 임금을 삭감하려 하고, 이것을 UAW 노조관료들이 돕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지공장”에 있는 어떤 노동자가 UAW에 가입하기를 원하겠는가? 시간당 28달러를 지불하지 않아도 노조를 막을 수 있게 된 지금 상황에서 현지공장 사측은 무엇을 할까? 그들은 GM․포드․크라이슬러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임금을 절반으로 삭감하려고 시도할까? 물론이다!

    오늘날 UAW 지도부는 “바닥으로 가는 경주”를 이끌고 있다.


    관료적 속박


    노동자들이 이와 같은 전국적 협약에 대해 자신들의 반대를 온전히 드러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이번에 그것을 했다. 특히 크라이슬러에서는 거의 드라이브를 중단시킬 뻔했다. 매카시 선풍이 노조에서 전투적인 투사들을 제거해 버린 이래 거의 60년 동안 볼 수 없었던 가장 큰 저항이 이번 협약을 놓고 있었다. 첫 번째로 찬반투표를 치른 GM에서는 협약안이 지금까지 주요한 자동차산업 협약안 가운데 가장 적은 표차로 통과되었다. 생산직의 34%, 숙련직의 36%가 반대표를 던졌다. 이 기록은 크라이슬러에서 곧 추월당했는데, 생산직의 44%, 숙련직의 49%가 반대표를 던졌다. 마지막으로 찬반투표를 치른 포드에서는 앞선 두 찬반투표 결과 때문에 노동자들이 드라이브를 중단시킬 가능성을 보지 못하면서 반대표가 22%로 줄어들었다.

    이 반대표들이 갖는 중요성은 반대표가 10%에서 15%를 넘지 않았던 역대 찬반투표와 비교해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협약에 맞서기를 원하는 노동자들은 협약 교섭을 둘러싼 매우 분할되고 여전히 강력하게 통제되는 관료적 틀을 깨고 나와야만 한다.

    2007년 협약은 GM에서 7만 3천, 포드에서 5만 4천, 크라이슬러에서 4만 6천 노동자들에게 적용된다. 해당 노동자들은 공장과 부품정비소, 그밖에 여러 시설에서 일하는데 미국 전역에 넓게 퍼져 있다. UAW가 첫 번째 협약체결 대상으로 전통적으로 다른 모든 곳에 “전형”으로 작용해 온 GM을 고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GM은 27개 주에 73개 공장 또는 시설을 갖고 있는데, 미국 남서쪽의 캘리포니아 주에서 북동쪽의 뉴욕 주까지 걸쳐 있다. GM을 고른 데에는 틀림없이 다른 이유들도 있었다. 2005년 양보를 놓고 포드에서 벌어진 투쟁과 크라이슬러에서 일어난 잘 알려진 저항 때문에 GM이 먼저 전형을 세울 대상으로 선택된 것이다.

    어쨌든 저항을 조직하려는 노동자들에게 이것은 결코 간단치 않은 문제다. 만일 같은 길을 가려는 다른 노동자들이 있다 해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다른 노동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여러 세력들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현장 노동자들은 서로 단절된 채 고도로 집중된 사측과 고도로 집중되고 통제되는 노조관료들에 도전하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은 폭넓게 소통되는 정보가 거의 없다는 점 때문에 가중되고 있다. 이번 협약이 분명해지기 전에, 현장 노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지도부가 퇴직자의료비펀드(VEBA)나 이중임금제를 교섭하겠다는 의도를 밝히는 공식적인 노조회합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심지어 단체교섭 대회에서도 없었고, 지부 회합에서도 없었다.

    노동자들은 투표하기 전까지 협약의 “하이라이트”(Highlights)만 보았을 뿐 실제 협약은 볼 수 없었다. 2007년 협약의 “하이라이트”는 이번 협약에 담긴 양보의 중대성과 정도를 적당히 얼버무렸다. 노동자들이 이것을 “로우라이트”(Lowlights)라고 부른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지부장들과 몇몇 대의원들은 협약안의 사본을 갖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협약안 문서들은 현장 노동자들의 호기심 많은 눈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안전하게 보관된다. 현장 노동자가 어떤 경로를 통해 사본을 하나 구하게 되더라도 그것을 세밀히 조사해서 정보를 모으기에는 시간이 거의 없다. 이를테면 GM에서는 지부장들이 협약안을 받아든 날로부터 겨우 사흘 후에 찬반투표가 시작되었다. 156쪽의 “공개되지 않은 문서들”은 놔두더라도 1,000쪽이 넘는 협약안을 자세히 조사한 후에 정보가 소통되는 데 주어진 시간이 사흘이다.


    노동자 연대를 향한 투쟁


    2007년 협약에 맞선 조직화는 사실 이전의 투쟁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것은 과거 활동의 결과로 자신의 공장이나 영역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갖고 있는 투사들이 이미 존재했다는 점에 의지하고 있다.


    델파이에서는 미시건 주 서부구역의 대의원으로 잘 알려진 그렉 숏웰을 비롯한 몇몇 노동자들이 2003년과 2006년 협약, 델파이의 가짜 파산, 노동자들의 연대를 깨려는 이중임금제 공격에 저항했다. 이 활동에 참여했던 토드 조단은 이미 인디애나 주 코코모에서 몇몇 활동가들을 자기 주위로 조직했다. 그들은 델파이 공장 또는 크라이슬러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연결선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조직화는 부분적으로 조단이 세운 웹사이트 “노동조합의 미래”(Future of the Union)2)를 통해 이루어졌다. 언젠가 숏웰과 조단은 델파이 공장이 있는 도시들을 찾아 여행을 다닌 적이 있었다. 델파이 CEO 스티브 밀러의 가짜 파산 술책에 분개하고 있는 다른 노동자들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뉴욕 주 버펄로와 같은 먼 곳의 델파이 지부들에서 활동가들과 접촉했다.

    UAW가 2005년 보충협약을 처음에는 GM에서 나중에는 포드에서 끝까지 밀어붙이려 했을 때, 사측과 노조관료들은 깜짝 놀랐다. 두 회사에서 공히, 몇몇 잘 알려진 활동가들이 양보에 맞서려고 자기 공장에서 일련의 활동을 펼쳤다. 그들은 회합을 조직하고, 정보를 소통시키고, 리플렛을 발행하고, 노동자들에게 반대표를 찍으라고 선동하였다. 서로 잘 아는 여러 공장 활동가들은 조금이나마 공동의 운동을 만들려고 공장 간의 연계를 활용했다. 특히 포드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좀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진 이점이 있었다. GM에서 먼저 양보가 이루어져, 포드 노동자들은 그에 관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으며 GM에서의 양보가 포드에도 곧 들이닥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 모든 투사들이 자기 공장이나 또는 기껏해야 자기 회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델파이와 GM과 포드에 있는 활동가들은 서로 접촉하게 되었다. 그리고 델파이가 일부 남아있던 정상 임금 노동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매각 조치를 취한 후 모든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은 임금으로 통일시키는 새로운 협약을 체결하고 나서자, 이 문제를 둘러싸고 새로 모임을 갖고 디트로이트 또는 몇몇 델파이 공장 근처에서 작은 시위를 벌였다.

    이러한 활동들 덕택에 이전에 서로 알지 못했던 활동가들이 서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활동가들은 “노동조합의 미래”(Future of the Union)는 말할 것도 없고 “저임금 공장 노동자”(Factory Rat)3)와 “연대하는 전사들”(Soldiers of Solidarity)4)까지 처음에 델파이 활동가들이 만들었던 여러 웹사이트들을 즐겨 사용하기 시작했다. 활동가들은 정보를 얻어 널리 알리려고 이 사이트들을 이용했다. 그 덕분에 활동가들은 분노를 갖고 자신의 작업장에서 양보압력에 맞서 대응하려고 노력 중인 여러 노동자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UAW 대의원대회가 2006년 6월, 단체교섭 대회가 2007년 3월 열렸다. 몇몇 활동가들은 자기 공장에서 대의원으로 활동할 기회를 얻어 문제제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대회장에 간 어떤 투사도 그들이 UAW의 정책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은 전혀 갖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발언 기회를 활용해서 양보에 맞서려고 준비 중인 노동자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쓰비시 활동가 저스틴 웨스트는 선언했다. “나는 1998년 대회에 참석했다. 그 때 전 위원장 스티브 요기치는 캐터필러 트랙터에서 맺은 양보로 가득 찬 협정을 ‘승리’라고 불렀다. 캐터필러는 수당도 없고 근속도 없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풀타임 임시직 형태로 고용하고 있다. GM, 포드, 크라이슬러, 아메리칸 액슬, 델파이, 비스테온, 미쓰비시, NUMMI, 그리고 다른 곳에서 하고 있는 양보가 무슨 승리란 말인가.”

    포드 활동가 게리 월코비츠는 이렇게 경고했다. “지부협약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사측은 전국협약에서 또 다른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양보를 하면 할수록 사측을 더욱 거세고 탐욕스럽게 만들 뿐이다.”

    디트로이트에 있는 아메리칸 액슬 지부의 지부장으로서 양보에 맞선 투쟁을 이끌었던 웬디 톰슨은 비꼬면서 물었다. “누구와 연대한다는 말입니까? 사측입니까? 노동자들입니까?”

    더 많은 이들이 있었다. 이처럼 분노에 찬 연설들은 언론에도 실렸다. 그 때문에 더 많은 만남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2007년 3월 단체교섭 대회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몇몇 활동가들은 도입되려고 하는 양보들에 대해 경고하면서 자기 지부 노동자들에게 돌아가 보고하려고 대의원대회 때 했던 방식을 사용했다.


    확실히 공장마다 사정이 많이 달랐다. 많은 공장에서는 문제를 제기하거나 다른 노동자들이 관심 갖게 만드는 노동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른 공장에서는, 보기를 들어 포드의 루즈 트럭공장에서는, 투사들이 회합을 조직하고, 라인의 위아래를 훑으며 성명서를 배포하였으며, 노동자들에게 이번 양보에 대한 반대의사를 선언하도록 요청하여 그것을 다른 공장 활동가들과 단체교섭 대회에 보냈다. 선언에는 트럭공장 노동자들의 절반 이상이 서명했다. 여기서 활동한 노동자들의 대다수는 2005년 협약에 맞서 반대표를 조직했던 바로 그들이었다. 전 공장 의장 월코비츠가 주도적으로 조직했던 트럭공장에서는 반대표가 92%를 넘었다. 오랜 활동가 론 레어와 쥬디 레이트가 비슷한 운동을 펼친 금형부서에서는 반대표가 59%를 넘었다.

    같은 시기에, 일리노이 주 벨비데르에서 임시직 노동자들이 그들의 공장에서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UAW 최고 지도자들은 크라이슬러와 벨비데르 조립공장에 관한 비밀 합의문을 만들고 서명했다. 합의문에 따르면 크라이슬러는 2천 명의 임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이 될 수 있는 어떤 기회도 주지 않고 2년까지 사용할 수 있다. 합의내용은 모든 이들에게, 심지어 2006년에 고용된 임시직 노동자들에게조차 비밀로 붙여졌다. 그들은 오리엔테이션에서 정규직 전 시간 노동자가 되는 과정으로 들었다. 많은 이들이 크라이슬러에서 “좋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다른 정규직 일자리를 버리고 왔다. 일하는 첫날, 또는 몇몇 경우에는 이미 일을 시작한 뒤에, 크라이슬러 인사부 직원이 그들에게 서명하라고 고용계약서를 들고 왔다. 그걸 보고서야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단지 임시직일 뿐임을 알았다. 새로 고용된 노동자들은 “이건 사기야!” 하고 외쳤다. 그로부터 노동자들은 크라이슬러를 상대로 소송을 걸고 일련의 행동을 시작했다. 그들은 또한 다른 작업장에서 활동하는 투사들과도 접촉을 갖기 시작했다. 일리노이 주 페오리아에 있는 “연대하는 전사들”(SOS) 활동가들과 만난 것이 처음이었다.

    이 모든 것이 진행되는 동안, 사측의 선전 캠페인이 공장에 일정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파산과 재정적 어려움에 관한 몇몇 이야기들이 공장 안에서 되풀이 되었다. 2007년에 양보에 직면하게 될 많은 공장들에서 두려움이 넓게 퍼졌다. 그 두려움은 협약이 너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희망과 뒤섞여 있었다. 노조가 끝내 그러한 극약처방을 강요하겠는가 하는 의구심과도 뒤섞여 있었다. 노동자들은 사측이 마지막 순간에 최악의 요구들을 철회하리란 기대를 갖고 사측의 선전 캠페인을 견디고 있었다.


    9월에는 제리 터커, 워렌 데이비스, 폴 쉬레드 등 퇴직한 지역본부장 세 명이 UAW 위원장 게텔핑거에게 퇴직자의료비펀드(VEBA)에 대한 반대의사를 밝히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 서한은 “연대하는 전사들”(SOS) 웹사이트에 올라갔고, 거기서 서한을 본 노동자들이 몇몇 공장에 배포했다. “연대하는 전사들” 웹사이트는 점점 더 예상되는 양보에 관한 믿을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원천이 되었다. 또한 여러 투사들이 자기 공장에서 돌리고 있는 내용들을 올려놓았다. 정보를 주는 활동가들을 알지 못하지만 자기 공장에서 활용할 자료를 원하는 노동자들은 글들을 골라 내려받았다.

    여름에 터커는 세인트루이스에서 몇 십 명의 노동자들과 모임을 가졌다. 그들은 그가 1980년대 후반에 지역본부장으로서 그리고 “새로운 방향”의 한 조직가로서 구축했던 기반이었다. “새로운 방향”은 1980년부터 1987년까지 양보의 첫 번째 라운드가 펼쳐질 때 그에 맞서 UAW 안에서 성장했던 반대파 그룹이었다.

    데이비스 또한 다가오는 양보에 관한 정보를 소통시키기 위해 자신이 지역본부장으로 활동하던 현역 시절에 오하이오에 갖고 있던 관계들을 활용하고 나섰다.

    여러 공장에서, GM의 전 지부장 프랭크 해머, 크라이슬러의 전 현장위원 샘 존슨과 래리 크리스텐슨처럼 과거에 활동한 적이 있는 퇴직자들이 현직 노동자들에게 호소하고 나섰다. 해머가 속했던 지부의 퇴직자 집회는 협약안에 대한 “자문 투표”를 했다. 거의 만장일치로 반대표가 나왔는데, 그들은 이 결과를 그 지부에 그들의 “조언”으로 보냈다.


    협약안이 나오기 전에, 활동가들은 협약안 전문의 사본을 구할 준비를 하였다. 양보에 관한 문구를 찾아내서 쉽게 볼 수 있게 만들고 이것을 “연대하는 전사들”과 그밖의 웹사이트에 올렸다. GM·크라이슬러·포드 세 경우 모두 노사대표교섭이 있은 다음 날 일찍 양보 내용의 모든 실제 문구가 웹사이트에 올랐다. 협약안의 실제 문구가 그렇게 널리 활용될 수 있었던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덕분에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활동가들도 자기 공장에서 노동자들에게 보여줄 뭔가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 다음 날로 몇몇 공장에서 활용된 리플렛이 웹사이트에 올랐고 다른 노동자들이 그것을 내려받아 자기 공장에서 활용할 수 있었다.


    협약안이 GM에서 먼저 나왔기 때문에, 크라이슬러 투사들은 정보를 소통할 보다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크라이슬러에서 벌어진 일을 열어젖힌 또 하나의 사건은 전국교섭위원 가운데 하나이자 오랫동안 크라이슬러 디트로이트 지부장을 지내 온 빌 파커가 협약안에 반대하는 “소수파 의견서”를 낸 것이다. 비록 퇴직자의료비펀드(VEBA) 문제에 관해서는 침묵했지만 말이다. 지도부는 전국교섭위원들이 8 대 1로 협약안을 지지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사실은 좀 더 복잡했다. 인디애나 주 코코모에 있는 크라이슬러 지부 출신의 숙련직 교섭위원인 숀 페인은 제1166지부 웹사이트에 크라이슬러 전국교섭위원 투표에 관해 다음과 같이 상세한 글을 올렸다.

    “처음에는 전국교섭위원 9명 모두 합의안에 반대했다. 약간의 압력이 가해진 후에 두 번째 투표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찬성 3, 반대 6이었다. 다시 좀 더 압력이 가해진 후에 세 번째 투표가 있었는데 찬성 4, 반대 5가 나왔다. 그리고 노조 중앙으로부터 좀 더 강력한 압력이 가해진 후에 치러진 마지막 투표의 결과는 찬성 8, 반대 1이었다.”

    반대표를 던지고 “소수파 의견서”를 낸 그 전국교섭위원 때문에 크라이슬러 노사 대표 교섭은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실제로 약간의 토론이 있었다. 이 때문에 언론은 협약안에 대한 찬성표가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첫 투표결과가 나왔다. 세인트루이스 가까이 있는 두 개의 큰 조립공장에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들의 표였는데, 각각 81%와 79%가 협약안에 반대했다. GM에서 65%에서 35%까지 반대표가 나왔을 때 언론은 그것이 평소보다 얼마나 많은 것인지를 무시하며 과소평가했다. 그러나 이제 언론은 크라이슬러에서 협약안이 부결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나면서 부결 가능성은 훨씬 더 분명해졌다. 디트로이트 지역에 있는 두 개의 큰 공장인 디트로이트 차체공장과 제퍼슨 조립공장 또한 노동조합 최고 지도부와 밀접히 관련된 곳인데도 협약 반대가 더 많았다. 오하이오 주 트윈스버그 공장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후에 투표를 하게 된 네 개의 코코모 지역 공장들도 반대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었는데, 숀 페인과 그가 속한 지부가 취한 입장 덕분에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조합원 전체가 임시직 노동자로서 분노로 가득 차 있는 벨비데르 공장 또한 반대가 더 많을 것이라는 게 매우 확실해 보였다.

    그러자 UAW 최고 지도부가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그들은 “하이라이트”에 담긴 거짓말에 의지하고 있었는데 언론은 그것을 되풀이하여 과장해 주고 있었다. 또한 GM에서 이틀, 크라이슬러에서 6시간 동안 벌인 “할리우드 파업”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 파업은 노조 지도부가 사측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놓치지 않은 것처럼 현장 노동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많은 부르주아 해설가들은 그 점을 정확히 짚어냈다. 나아가 UAW 지도부는 이미 협약안이 GM에서 통과된 만큼 일단 만들어진 선례대로 모든 것이 결정되어 온 전통에 기대고 있었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들 속에서 역동적인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UAW 최고 지도부는 불이 더 커지기 전에 꺼뜨리려고 노조간부들을 현장으로 보냈다. 공장마다 노조 중앙 간부들과 지부 간부들, 그리고 그 측근들로 북적댔다. 현장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풀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총동원되었다. 만일 부결시킨다면 당신네 공장은 폐쇄될 것이라는 협박을 늘어놓았다. 만일 가결시킨다면 당신네 공장은 좀 더 오래 유지될 것이라는 약속도 했다. 만일 부결시킨다면 앞으로 여섯 달 동안 파업을 해야 할 것이라는 협박도 했다. “노조를 살려 달라”고 애원도 했다. 선례를 깨뜨릴 수 없다는 경고도 했다.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삶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채 오랫동안 노조 관료기구에서 생활해 온 노조간부들이 [노동자 연대를 조직하고 있는 현장 활동가들을] “제3자”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크라이슬러 워렌 트럭공장에서 일어난 일은 하나의 전형이었다. 분위기가 날마다 바뀌었다. 월요일에 노동자들은 반대표를 던진 다른 공장들에 합세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화요일이 되자 노조 중앙의 두들겨 패기가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수요일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주장으로 노동자들을 폭격한 회합이 있고서 투표 흐름이 바뀌고 말았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자 선택에 관한 의문이 표면 위로 나오기 시작했다. 일주일이 더 지나서 크라이슬러가 1만 1천명의 감원을 발표하자 속았다는 것을 알고서 분노가 다시 솟구쳤다.

    크라이슬러의 몇몇 지부 노조관료들은 수치를 올리려고 찬성 투표지를 몰래 더 넣은 것이 틀림없었다. 몇몇 공장에서 투표자 총수가 조합원 총수와 거의 같았는데, 이는 명백히 불합리한 것이었다.


    노조관료들은 여전히 현장 노동자들이 처음 드러낸 반응을 차단하기에 충분히 강한 게 현실이다. 현장 노동자들은 양보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무엇이든 하겠다는 절대적 확신을 갖고 이번 교섭에 임하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장 노동자들 속에서 신뢰를 얻고 있으며 현장 노동자들이 노조관료들에 맞서 당당하게 일어서도록 이끌 활동가들이 거대한 회사를 포괄할 만큼 충분하지 않았다.


    포드에서는 협약이 다 끝난 일처럼 보였기 때문에 반대표가 크라이슬러만큼 많이 나오지는 않았다. 노조 지도부는 더 주의 깊게 투표 일정을 잡았다. 그들이 통제할 수 있는 지부들이 먼저 투표에 들어가서 초반에 찬성표가 쏟아져 나왔다. “의문스러운” 지부들의 투표 일정은 끝에 배치되었다. 몇몇 핵심 지부에서 투표자 수가 꽤 낮았던 것은 포드에서 일어난 일의 진실을 보여준다. 보기를 들어 제600지부에서는 조합원 8천 가운데 투표자가 3천 5백도 되지 않았다. 현장 노동자들은 노조관료들에 맞서 일어설 태세가 되어 있지 못했지만, 자기 목을 자르는 데 열심이지도 않았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이처럼 맹렬한 공격은 자본가들이 얼마나 오만해졌는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또한 하나의 경고다.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끌어내린 자본가들은 다른 노동자들의 임금을 훨씬 더 끌어내리려고 재빨리 움직일 것이다. 이번 협약은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을 비롯한 모든 노동자들에게 새롭고 훨씬 더 급하게 곤두박질치는 소용돌이의 시작일 따름이다.

    어느 때보다 더 큰 몫의 부를 움켜쥐려는 자본가들의 이러한 돌진이 자발적으로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일부가 다른 노동자들을 끌어들이며 반격에 나서기 시작할 때라야 멈출 것이다.

    이번 협약을 둘러싼 투쟁 전반은 미래에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 노동자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확신하게 될까? 아니면 싸우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결심을 하고서 노동자들이 함께 힘을 모아 나가는 전환점이 될까?

    부분적으로 그것은 이번 투쟁을 여기까지 끌고 온 투사들에게 달려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했던 일을 성과로 남길 수 있을까? 사실 그들은 상당한 일을 했다. 특히 크라이슬러에서, 아니 사실 세 회사 모두에서 투표 결과는 그것을 보여주었다. 크라이슬러에서 협약안이 부결될 것처럼 보이던 시점에, 며칠 동안 UAW 노조관료들과 부르주아 언론은 거의 공황 상태로 내몰렸다.

    이번 투쟁을 조직한 활동가들은 정보소통의 차단막을 깨뜨렸다. 물론 모든 곳에서 충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해냈다.

    협약안에 찬성한 노동자들조차 그들이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누군지 좀 더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투쟁의 과정은 사측의 요구에 맞서, 그리고 사측의 앞잡이이자 똘마니가 된 UAW 노조관료들의 역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진정한 이해관계를 볼 수 있고 그것을 위해 일어설 준비가 된 노동자들이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투사들 없이, 서로간의 연계를 수립하는 것 없이, 투쟁의 기반을 공동으로 찾는 것 없이,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저항을 표현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한 투사들의 존재는 그들이 지금 당장 깨닫고 있는 것보다 아마도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다.




    미국자동차노조의 양보가 어떻게 일자리를 없앴는가?



    리 서스타 (2007년 4월 6일)5)



    최강의 노조가 된 미국자동차노조(UAW)를 처음 건설하였던 대파업이 있은 지 70년이 지난 지금, UAW는 새로운 양보 요구에 직면해 있는데 그것은 수십 년간 노동자들이 획득했던 성과물들을 일거에 쓸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2007년 3월 27~28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UAW 단체교섭 대회는 문제를 잘 보여주었다. 여기서 UAW 위원장 론 게텔핑거는 만일 파산한 자동차 부품회사 델파이가 노동조합과의 협약을 무시하겠다는 협박을 끝내 실행에 옮긴다면 파업에 나설 것이라고 협박했다.

    GM의 부품 부문이었다가 1999년에 떨어져 나간 델파이는 2005년에 파산을 선언한 이후 UAW와 세간의 관심을 끄는 협상을 벌여 왔다. 델파이는 미국에 있는 29개 공장 가운데 21개를 팔아치우거나 폐쇄하기를 원하고 있는데, UAW가 일찌감치 던진 양보 즉 조기 희망퇴직하는 2만 명의 조합원들을 대체하는 새로운 노동자들에게는 시간당 14달러의 임금을 삭감한다는 것으로 이미 이득을 얻었다. (델파이에는 아직 1만 3천명의 UAW 조합원이 남아 있다.)

    델파이가 협약을 무시하려고 시도할 것인지, GM이 이전에 델파이의 연금 기금에 재정 지원을 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킬 것인지에 따라 문제가 남아 있다. “만일 그들이 협약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문을 닫아 버릴 거야”라고 게텔핑거가 기자에게 말했다.

    하지만 게텔핑커를 비롯한 UAW 지도자들은 높은 가스 가격 때문에 이윤이 많이 나는 스포츠차량, 밴, 트럭의 판매가 줄어들면서 수십억 달러를 잃은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에게 제시한 양보를 거두어들이지는 않았다.

    조합원 수가 150만 명에 이르렀던 1978년 이래로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에게 UAW가 기득권을 반환하는 일이 자주 있어 왔다. 그 결과 조합원 수는 이제 최근에 진행된 조기 희망퇴직이 마무리되면 대략 50만 명이 될 것이다.

    현 협약은 가을에 만료되는데, 그 도중에 최근의 양보 조치들이 시작되었다. 협약의 내용을 보면, GM에 10억 달러, 포드에 8억 5천만 달러에 달하는 퇴직자 의료수당을 삭감해 주는 것, 노동자들의 [퇴직자 연금 수당을 선택할 수도 있고 일시불 목돈 지급을 선택할 수도 있는] 조기 희망퇴직을 포함하고 있다. 대략 7만 명이 조기 희망퇴직을 받아들였다.


    한편 UAW 지부들은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작업규칙을 제거하는 데 동의하면서 공장 수준 협약을 재개하자는 요구에 굴복했다. 그 작업규칙은 UAW가 노동강도를 높이려는 경영자들의 항상적인 압력을 버틸 수 있는 힘을 갖게 해 주었고 노동조합의 일자리를 유지시켰다. <글로벌 인사이트> 뉴스 서비스에 따르면, 3월 현재 포드와 UAW는 41개 지부 가운데 34개에서 지부 협약을 재협상하였다.

    UAW 내 반대파 그룹인 <연대하는 전사들>(Soldiers of Solidarity)에 소속된 활동가인 그렉 숏웰은 “대회가 열리기 전에 이미 협약이 파기되고 재협상되었다”고 말했다.


    포드는 2008년까지 16개의 공장을 폐쇄할 계획이다. 회사가 공장 문을 닫을지 여부는 때때로 노동조합 지부가 양보를 받아들일 것인지에 달려 있다. 또한 회사는 한 공장의 노동자들이 다른 공장의 노동자들과 서로 싸우게끔 일상적으로 강요한다. 양쪽톱질하기로 알려진 이러한 술책은 UAW의 공식적인 반대에도 오랫동안 일상이 되어 왔다.

    그래서 포드는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기득권 반환을 끌어낼 수 있었다. 하나의 보기로, UAW 제900지부는 포드의 미시간 트럭 공장에서 잔업수당 지급을 줄이기 위해 하루 10시간 맞교대로 주 4일 일하기, UAW 일자리의 하청화, 작업규칙 변경 등을 승인하는 투표를 했다. <다우존스> 뉴스 서비스가 지적했듯이, 이 “경쟁력 있는 운영 협정”(COA)은 “몇 백만 달러의 경비절감을 낳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시 근처에 있는 포드의 샤론빌 변속기 공장에서도 사태가 비슷하게 벌어지고 있다. 2억 달러를 투자하는 대신, UAW 제893지부의 1,350명 조합원들은 COA 속에서 핵심적인 작업규칙을 빼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새로운 작업체제라는 건 보통 더 적은 일자리를 의미한다. <버팔로 뉴스>에 따르면, 포드는 뉴욕 주 우드론에 있는 압형 공장에 2억 1,400만 달러짜리 자동 프레스기를 설치했는데, 그 과정에서 1,800명이던 일자리 수가 희망퇴직을 통해 1,400명으로 줄어들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시간 주의 포드 본사 근처에 있는 데어본 트럭 조립 공장에서 COA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개괄했다. 보조 업무들이 하청화되고, 노동조합 없는 도급업체들이 이제 현장에서 작업하고 있다. 포드에 따르면 주 4일제 노동은 잔업수당을 없앰으로써 연간 3천만 달러의 경비를 줄이게 될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또 다음을 주목했다. “오하이오 주 리마에 있는 엔진 공장에서 포드는 다른 방식으로 경비를 절감했다. 그 곳의 노동자들은 엔진 작업이 멕시코로 내려가든지 아니면 다른 공장으로 이전될 수 있다는 위협에 직면했다. 그들은 작업의 하청화를 받아들이고 조합원에 대한 경영진의 의무를 대거 없애는 데 동의했다. 이로써 포드는 리마에서 비조합원 일자리 수를 280명에서 90명으로 줄이고, 조합원 일자리 수를 1,100명에서 800명으로 줄이는 새 협정을 맺었다.” “팀 리더”가 되는 노동자들은 사실상 동료 UAW 조합원의 사장이 되는 대가로 시간당 50센트를 추가로 받는다.


    GM에서는 방법이 조금 다르지만 결과는 같다. GM은 이미 어느 공장을 폐쇄할 것인지를 발표해 버렸기 때문에, 양쪽톱질하기가 그렇게 효과적이지 않다. GM은 뉴욕 주 토나완다 엔진 공장에서 새로운 V8 엔진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예상대로 지난 5년간 절반으로 줄어든 1,600명이라는 시간제 노동자들의 숫자를 늘리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 GM은 새로운 투자라는 당근을 여전히 전통적인 작업규칙을 전면적으로 제거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GM은 미시간 주 란징에 두 개의 새 조립공장을 세우면서 과거의 작업규칙 대신 “유연한” 노동협정을 갖고 문을 열었다.

    크라이슬러 공장들에 위치한 UAW 지부들도 비슷한 협정을 받아들였다. 일리노이 주 벨비데르 조립공장에서 크라이슬러는 지난해 1,000명의 임시직 노동자들을 2년 계약으로 고용했다. 임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최저임금의 70%를 받으며, 8개월 동안 아무런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톨레도에 있는 크라이슬러 지프 공장에서, UAW 제12지부는 처음으로 100개의 작업규칙들을 없애는 데 동의했다. 그리고 2003년에 그 지부는 경영진들이 새로운 공장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그 공장에는 노동조합 없는 도급업체들이 전체 노동자의 75%를 고용하게 되어 있었다.

    이전에 델파이 노동자였다가 공장 폐쇄가 예정되면서 GM의 부품 창고로 옮긴 숏웰은 “그것은 도요타 모델”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자동차 제조업체 도요타를 따라서, 미국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가능한 어디서든 고용을 최소로 줄이고 외부 도급업체와 임시직 노동자들에 의지하기 위해서 작업규칙을 제거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도요타, 혼다, BMW 등 외국계 회사들의 미국 내 “현지공장”을 조직하는 데 UAW가 실패하면서, 노동조합 없는 공장들은 노동조합 있는 공장들이 맞추어야 할 기준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UAW에게 주어진 선택은 분명하다. 계속해서 노사협조 논리를 받아들이고 회사들이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이윤만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만들 것인가? 아니면 초창기 시절의 UAW가 보여주었던 계급투쟁 노동조합운동을 부활시킬 것인가?

    저스틴 웨스트는 일리노이 주 노말에 있는 미쓰비시 공장에 위치한 UAW 제2488지부의 전 지부장으로 단체교섭 대회에 대의원으로 왔다. 그는 대회장에서 더 많은 기득권 양보를 거부하는 노선을 도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UAW의 소수 현장 활동가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원장! 우리는 델파이에 GM 공장들을 주었다. 우리는 델파이에 이중임금제를 주었다. 우리는 델파이에 GM 노동자들의 연금도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양보들로도 바닥을 향한 경주에서 더 많은 피를 원하는 델파이의 갈증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파산을 선언한 델파이는 몇 세대의 조합원들이 싸우고 희생해서 성취한 존엄과 안전의 마지막 조각마저 체계적으로 파괴했다. 위원장! 양보로는 일자리 못 지킨다! 노동조합 지도자가 되어서 ‘양보’를 ‘승리’로 덮어씌우지 마라!




    미국자동차노조와 빅쓰리의 협상 : 패배에서 저항으로



    샘 긴딘 (2007년 11월 29일)6)



    미국자동차노조(UAW)는 디트로이트의 빅쓰리(GM, 포드, 크라이슬러)와 맺은 2007년 협약에서 (노조 안팎의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였듯이) 역사상 가장 큰 경제적 양보를 했다. 그러한 패배의 과정에 상당한 반대가 솟구쳐 올라왔으나, 그것을 주도한 소수 활동가들은 너무 늦게 시작했고 조직력도 취약했다. GM에서는 투표자 가운데 3분의 1이 협약에 반대했다. 크라이슬러에서는 디트로이트 밖에 있는 큰 공장들에서 협약 반대 투표가 꽤 일반적이었다. 이제 문제는 반대표를 던진 기반이 하나의 세력으로 결집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 세력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다.


    양보와 경쟁력


    양보가 일자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주장을 미국 노동자들이 믿지 못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GM의 경우 노조의 양보가 시작되던 1970년대 말에 45만 명의 UAW 조합원이 있었다. 이후 모든 협약에서, 노조는 ‘고용보장'의 댓가로 양보를 거듭했다. 하지만 2007년 교섭이 시작되었을 때, GM에 남아 있는 UAW 조합원은 고작 7만3천명이었다. 5분의 4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이러한 일자리 상실은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거나 생산성이 오르지 않아서 일자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1987년과 2005년 사이에 조립 분야에서 노동자 1인당 생산량은 두 배로 늘었다. 부품 분야에서는 약간 적어서 85%가 늘었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받은 돈은 (높은 의료연금 비용을 포함하더라도) 그러한 생산성 향상만큼도 오르지 않았다.

    열심히 일했는데도 일자리를 잃고 또 양보를 강요당하니 노동자들은 화가 날만하다. 하지만 이런 결과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기업은 설령 그들이 원한다 해도 진정으로 일자리를 지킬 수가 없다. 일자리를 지켜내려면 노동자들은 기업의 거짓 약속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자유무역과 기업 소유권의 불가침성이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일자리를 줄이는 것은 실제로 기업의 경쟁력 전략의 일부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진정으로 일자리를 지켜내려고 한다면 이는 기업과 한판 붙는 것을 뜻하며 나아가 폭넓은 정치적 전투에 뛰어드는 것을 뜻하게 된다. 하지만 약하고 양보하는 노동자들이 그러한 싸움을 움켜쥘 수는 없었다.

    양보교섭이 갖는 문제는 고용안정에는 아무 개선 없이 과거의 성과물들을 포기한다는 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러한 논리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이후의 투쟁에도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양보가 흔한 일이 되면 노동자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굴복하는 게 어쩔 수 없다고 여기게 된다. 굴복의 결과가 무엇인지 겪어 왔는데도 말이다.


    신규 노동자 차별임금제


    최근 UAW가 맺은 협약 속에 들어 있는 ‘신규 노동자 차별임금제’(New Hire Rate)는 노동자들의 잠재력을 갉아먹는 명확한 사례라는 점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것이다. 노동력은 ‘핵심’(대개 조립라인 일자리)과 ‘비핵심’(이를테면 서브조립, 가공, 자재취급, 트럭운전, 아직 협상중이지만 경비 등)으로 분할된다. 비핵심 일자리는 어느 곳이든 전체 노동력의 25%~40%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되는데, 외주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가에 따라 그 규모가 다르다. 비핵심 일자리로 투입되는 신규 노동자들은 현재 임금의 대략 절반을 받게 될 것이며, 각종 수당은 더 깎일 것이다. 자본의 부담을 대폭 줄인 새로운 퇴직자의료비펀드(VEBA)가 만들어졌지만, 신규 노동자들은 그 구조 안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그들은 빅쓰리가 운영하는 복지플랜에서도 배제될 것이다. GM에 따르면, 이 제도로 인해 GM이 신규 노동자들에게 들이는 전체 비용이 현재 노동자들에 비해 3분의 1로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이 제도는 그 자체로 충분히 나쁜 것이지만, 만일 회사가 이것을 잘 이용해 먹는다면 훨씬 나쁜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포드에서는 이미 이 제도를 교묘히 활용하고 있다. 포드는 전체 노동력의 20%를 ‘신규 노동자’로 쓰도록 허용 받았는데, 설령 핵심 일자리인 경우에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되었다.

    노동조합이 그저 노동자들을 분할시키는 구조의 수단 노릇이나 하고 있을 때, 노동자들은 미래의 투쟁을 위한 단결을 어떻게 건설할 수 있을까? 신규 노동자들이 첫 번째로 배우는 것이 노동조합이 자신들을 차별받는 조합원으로 만들었다는 점일 때, 노동조합은 운동의 재건을 위한 결정적 과제인 새로운 세대 활동가들을 육성해 낼 수 있을까?

    그런데 빅쓰리의 높은 의료연금 지출이 도요타나 혼다에 비해 경쟁력을 갉아먹었던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 빅쓰리의 임금은 그들의 경쟁자에 비해 훨씬 높았지 않은가? UAW 조합원들은 진정으로 선택권을 갖고 있었는가?


    신규 노동자 차별임금제와 경쟁력


    새로운 협약이 우스운 것은 심지어 경쟁력의 논리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신규 노동자 차별임금제가 노동자들을 위해 아무 것도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빅쓰리에게는 의료연금 비용이 정말로 문제가 되었다. 이것을 해결해 내지 못한다면 빅쓰리는 앞으로도 도요타나 혼다를 비롯한 다른 업체들에게 시장점유율을 꾸준히 침식당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반대파가 주장했던 것처럼 결국 문제는 노동조합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였다. 노동조합은 모든 노동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보편적인 전국적 의료보장 프로그램을 목표로 투쟁하지 않았다. 그 대신 UAW 지도부는 미국의 불평등하고 창피스러운 의료보장 체계를 유지하면서 그 비용과 위험을 자기 조합원들에게 전가하는 안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신규 노동자 차별임금제는 의료비용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면서 얻는 경쟁력 상승 효과 만큼도 얻지 못한다. 외국계 자동차 기업들이 미국에 설립한 현지공장의 임금은 노동조합 조직화를 회피할 수 있는 선에 맞춰지며 대체로 빅쓰리의 임금을 뒤쫓고 있다. 따라서 빅쓰리의 임금 삭감은 단지 일본 기업들에게도 임금 삭감의 여지를 주는 것일 뿐이다. 임금은 기업들을 가로지르며 낮춰지겠지만, 빅쓰리와 현지공장들 사이의 경제적 관계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월가[미국의 금융계]는 이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신규 노동자 차별임금제를 이번 협약에서 ‘뜻밖에 거둔 성공’으로 여기고 있다. 월가는 피냄새를 맡고 있는데, 위에서 말했듯이 신규 노동자 차별임금제의 영향이 작지 않을 것임을 알아차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줄일 때마다 빅쓰리의 주식 값이 오르지만 그들에게는 신규 노동자 차별임금제가 단지 일자리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더 많은 이윤을 얻고 더 많은 양보를 따내기 위하여 계속해서 일자리를 줄이고 그로 인한 불안정을 활용하는 것에 관한 문제다.

    우리는 빅쓰리와 월가가 그러는 것처럼 명확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빅쓰리 노동자들과 현지공장 노동자들의 임금을 더 낮추려는 것이다. 지금 시작되는 일은 각각의 자동차 기업들이 노동자들로부터 더 많은 이윤을 쥐어 짜내려는 것이다. 결국 빅쓰리와 현지공장 사이의 상대적 비용 차이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백 번 양보하여 ‘경쟁력’의 논리라는 관점에서 본다고 하더라도, 신규 노동자 차별임금제로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에게 좋아질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해외로부터의 경쟁


    제조업을 놓고 보자면, 미국은 어느덧 선진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저비용 생산지가 되었다. 그런데도 임금과 복지혜택을 더 낮추려는 압력이 계속되고 있다.

    2003년 9월에 있었던 지난 번 단체협약 이래로, 미국 달러화는 유로화, 영국 파운드화, 캐나다 달러화에 비해 30% 가량 가치가 떨어졌다. 주도적인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라 할 수 있는 G-7 국가들 사이에서, 미국 제조업의 시간당 급여 수준은 이제 독일에 비해 40%, 캐나다·영국·프랑스에 비해 20% 가량 낮다. 이탈리아보다도 약간 낮다. 미국보다 제조업 인건비가 낮은 G-7의 유일한 국가는 일본인데, 그 차이가 7%밖에 안 되며, 이마저도 미국 달러화에 대한 일본 엔화의 가치가 올라가면 바뀌게 될 것이다.

    달러화의 가치가 매우 빠르게 떨어지고 그래서 다른 나라들에 비해 미국의 인건비가 크게 낮아지고 있는 시점에, 엄청난 양보를 정당화하려고 ‘국제 경쟁력’이란 말을 쓴다는 것은 그야말로 웃기는 일이다.

    완성차와 부품 부문에서 상황은 조금 다르다. 미국의 전반적인 인건비는 대략 G-7의 중간쯤이다. 미국의 인건비는 (최근의 양보를 고려하지 않았을 때) 독일의 2/3 수준이고, 캐나다보다 약간 낮으며, 영국과 거의 비슷하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보다는 약간 높고, 일본보다는 30% 가량 높다.

    일본과의 차이와 관련해서 다음 세 가지 점이 중요하다.


    1. 일본은 1990년대에 커다란 경제위기를 겪었다. 자동차산업에서 미국의 인건비가 특별히 빠르게 오른 것이 아닌데도, 1992년 이후 지금까지 일본의 인건비 상승률은 미국의 절반에 그쳤다.

    2. 일본 엔화는 주요 통화 가운데 유일하게 달러에 대한 가치가 거의 오르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일본 정부의 환율 정책 때문에 자동차산업에 진입하는 노동자들이 차별받는 노동자들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3. 2011년까지 자동차 생산량에 대한 예측을 보면, 미국의 자동차 생산량은 약간 늘어나는 반면 일본의 생산량은 약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 이유는 일본 기업들이 [일본에서 생산하던] 자동차 수출 물량을 미국을 비롯한 해외 생산으로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빅쓰리에 대한 경쟁력 위협이 사실은 해외로부터가 아니라 미국 안에 있는 무노조 공장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로 조직되지 못한 채 개미처럼 일만 하는 노동자들 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신규 노동자 차별임금제는 [빅쓰리와 현지공장 사이의] 임금 격차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미국 자동차산업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임금을 하락시킬 뿐이다.

    우습게도 이제 도요타와 혼다 노동자들을 노조에 가입하게끔 설득하려는 새로운 주장이 있다. UAW는 [현지공장]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해야 하며 그러면 노동조건이 UAW 기준으로 끌어올려질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해 왔다. 이제 그 주장은 만일 UAW가 [현지공장의] 노동조건을 끌어내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현지공장] 노동자들은 지금 수준이나마 지키기 위해서라도 UAW에 가입해야 할 것이라는 주장이 되고 있다.


    양보와 부품 작업을 빅쓰리로 다시 가져오기


    노동조합 활동가가 양보를 통해서 부품 작업을 빅쓰리로 다시 가져오는 것에 대해 말한다면 그것은 다분히 정신 나간 주장이다. 산별노조 운동의 목적은 기업들 사이의 경쟁을 벗어나서 임금을 확보하는 데 있다. 이것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는 핵심 열쇠다. (부품 부문의 임금을 올림으로써 부품 부문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빅쓰리의 노동조건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빅쓰리의 임금을 낮추는 것이 부품 부문으로부터 일자리를 가져오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UAW 지도부가 노동조합의 근본을 얼마나 철저하게 잊어버렸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의 주장은 너무 설득력이 없다. 만일 빅쓰리가 임금을 삭감한다면 부품 노동자들은 훨씬 더 큰 임금삭감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어떤 노동자들도 승리할 수 없다는 점을 모든 부문의 노동자들은 알고 있다.


    저항할 때?


    아직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그것을 즉시 실행해야 한다. UAW 조합원들은 다음번 교섭에서 신규 노동자들의 조건이 2007년 협약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표준 임금 수준으로 끌어올려질 것을 요구하면서 스스로를 조직해야 한다. 이것은 할 수 있다. 2007년 협약 기간에 채용된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고, 다음 협약 기간에 채용되는 노동자들은 예전의 기준으로 되돌아가면 된다.

    이 운동은 즉시 시작할 수 있다.


    1. ‘조합원 차별 철폐위원회’를 모든 빅쓰리 작업장에서 만들어야 한다.

    2. 이 위원회들을 하나의 소통 네트워크로 연결해야 한다. 그래서 조직화의 진전을 공유하고, 주장을 날카롭게 하며, 지역별 포럼을 조직하고, 2011년 협상을 위해 필요한 전술들을 발전시켜 가야 한다.

    3. 내세우는 주장은 똑바로 나아가는 것이어야 하며, 새로운 조합원들에게 다가가는 데서 또한 그들을 체념에 맞선 저항 문화로 끌어들이는 데서 특별히 효과적이어야 한다.


    캐나다 자동차산업 노동자들과 캐나다자동차노조는 어떤가?


    캐나다자동차노조(CAW)는 신규 노동자 차별임금제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지금 상황은 1980년대 초반을 떠올리게 한다. 그 때 UAW가 양보 경향을 채택하자 캐나다 조합원들은 양보 경향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UAW를 떠나게 되었고 새로운 노조[CAW]를 설립했다.

    하지만 지금 캐나다 노동자들은 상당히 다른 위치에 서 있다. 캐나다 달러의 가치는 미국 달러에 비해 20~25% 낮았지만 지금은 거의 같은 수준이다. 캐나다의 명목 임금은 미국보다 높고 쉬는 날도 많다. 게다가 초창기에는 노동조합이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10년 동안 전투적인 투쟁을 만들어 냈고, 임금 통제에 맞선 1976년 1일 총파업을 주도했으며,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에 걸친 공장점거의 주역들을 고무했다. 또한 이미 로크웰의 한 공장에서 8개월에 걸친 파업을 벌여 부품 산업에서 양보를 획득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이들은 CAW가 교섭이나 조직화, 그리고 정치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CAW 위원장 버즈 하그로브는 신규 노동자 차별임금제를 캐나다에 적용하는 데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반갑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만일 미국 노동자들이 신규 노동자 차별임금제를 받아들인다면 캐나다 노동자들이 진정으로 그것을 거부할 수 있을까?

    길게 보자면, 미국 노동자들이 함께 가지 않는 상황에서 신규 노동자 차별임금제를 계속해서 거부하는 것은 아마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2008년 9월로 다가온 다음 협약에서 신규 노동자 차별임금제를 거부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만일 캐나다 노동자들이 신규 노동자 차별임금제를 어떤 형태로든 받아들인다면, 신규 노동자 차별임금제는 훨씬 견고해질 것이고, UAW 반대파들이 상황을 되돌리는 게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만일 캐나다 노동자들이 다음 3년 동안 신규 노동자 차별임금제를 거부한다면, UAW가 2011년에 협상을 할 때 내부의 저항을 강화하고 고무하게 될 것이다. (CAW 협약 또한 2011년에 예정되어 있다.)

    기업들은 협박을 해댈 것이다. 하지만 2011년 이후에도 신규 노동자 차별임금제가 남아 있을 것인지 불확실하다는 점 때문에 그들은 2008년 CAW와의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놓고 장기적인 결정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UAW로부터 CAW가 분리되었을 때에도 기업들은 협박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사태 전개를 지켜보며 기다렸고, 실제로 캐나다에 대한 투자를 극적으로 늘렸다. 그러므로 CAW 입장에서 보자면 UAW 지도부가 결코 하지 못했던 것을 함으로써 북미 지역을 이끌게 될 결정적인 기회다.


    결론


    미국 노동계급이 경제위기로부터 오는 짐을 받아들이는 정도는 미국이라는 제국이 지속되는 데에, 그리고 나머지 세계 노동계급의 노동조건을 약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 미국 노동자들의 경제적 정치적 ‘유연성’은 우리 모두에게 문제가 된다.

    신규 노동자 차별임금제를 올바르게 바라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만일 미국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이 이 투쟁에서 승리한다 해도 그들은 단지 2007년 협약 이전에 있었던 곳으로 되돌아갈 뿐이며, 그곳은 결코 유토피아라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만일 아래로부터 스스로 조직된 힘을 갖고 승리를 얻어 낸다면 그것은 눈부신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미국에서 계급, 민주주의, 사회변혁에 관한 보다 복잡한 문제들을 제기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1) 원문 : http://www.the-spark.net/csart574.html


    2) http://futureoftheunion.com/


    3) http://factoryrat.com


    4) http://www.soldiersofsolidarity.com/


    5) 원문 : http://www.socialistworker.org/2007-1/626/626_06_UAW.shtml


    6) 원문 : http://www.socialistproject.ca/bullet/bullet0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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