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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 투쟁이다 : 노해연-43호] 노동자와 여가문화
 정책위  | 2008·06·17 10:47 | HIT : 2,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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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자와 문화] 노동자와 여가문화

    주 5일제가 부분적으로 시행되면서 노동자의 여가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 주 5일제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설사 주 5일제가 실시되었다 하더라도 잔업, 특근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빠듯한 현실이다. 또한 일주일 내내 뼈 빠지는 노동 속에서 혹사당해 왔기 때문에 하루 이틀 여가가 주어진다 해도 잠으로 체력을 보충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 대다수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이다. “끊임없이 노동력을 재충전하여, 다음날 현장에서 착취당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것”이 자본주의가 노동자에게 강요하는 ‘여가의 정의’임을 고려할 때, 이것은 아주 당연해 보인다.
      노동자의 여가생활은 현장생활의 연장선에 있고, 임금노예제도의 철의 법칙에 좌우된다. 현장에서의 지루하고 단조롭고 괴로운 강제노동은 노동자들을 어느 정도 황폐화시켜 현장 바깥에서도 ‘술’ 문화와 같은 여가문화를 강요한다. 또한 잠으로 체력을 보충해서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견뎌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여가가 진행된다. 이것은 창조적이고 건강한 방향으로 노동자들의 여가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술을 통해 짧은 시간 내에 취해 괴로움을 잊은 뒤 바로 쓰러져 잠을 자고 내일 출근하는 식의 여가문화를 발생시킨다.  
      ‘일하지 않는 시간’을 노동자들이 얼마나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는 ‘일하는 시간’이 얼마나 창조적이고 긍정적이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긍정적이며 창조적인 노동은 다시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여가로 이어지며, 그와 반대되는 노동은 부정적인 여가를 되풀이하게 된다. 심지어는 여가 자체가 없어지고, 고통스런 노동과정의 연장선에서 나머지 시간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가령 도요타 노동자들은 집에 돌아와서도 제안제도, 불량제품 수정을 고민하느라 잠 잘 시간까지 줄인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주위에서도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해고의 위협, 그리고 도저히 정규 노동시간 내에 처리하기 힘든 과도한 업무 등이 그것을 강요한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여가시간을 줄이기 위해, 즉 노동시간을 여가시간으로까지 연장시키기 위해 발악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만일 자본의 통제정책으로 노동의 과정이 경쟁과정이 되고, 노동자들이 갈가리 찢기면서 분열되어버린다면, 여가시간 또한 ‘집단적’ 휴식시간으로 기능할 수 없다. 그 결과 여가문화는 철저히 개별적 문화로 전락할 뿐, 노동자의 집단적 노동에 걸맞는 공동체적 문화가 발전하고 이로부터 모든 노동자들이 기쁨을 느끼는 그러한 방향으로 전진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원자화시켜 통제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논리가 여가문화의 차원으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진정으로 여가를 맘껏 누리고, 여가를 통해 다양한 문화를 창조하면서 자신을 계발하기 위해서는 ‘임금삭감과 노동강도 강화 없는 노동시간 단축’과 ‘경쟁과 통제로 숨 막히는 일터가 아니라 노동자의 협동과 연대가 살아 숨 쉬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환경 개선을 빼 놓고 노동자들이 여가를 통해 정신적, 육체적 능력을 계발해 나갈 수 있다고 바라보는 것은 뿌리가 없는 나무가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조합주의가 퍼뜨리는 악영향

    노동시간 단축의 성과를 노동자의 투쟁과 의식 발전의 계기로 목적의식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그냥 방치해버리는 것은 조합주의의 속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노동조합의 간부들이 당장의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만을 추구하는 경향에 깊숙이 빠져 있다고 가정해보자. 사실 지금 대부분의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이러한 조합주의 경향에 물들어 있는데, 이들은 조합원들이 일시적 희생과 피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투쟁해 나감으로써 투사로 발전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조합원들이 스스로 투쟁을 통해 단련되고 성장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노동조합운동의 목표를 단순히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으로 바라볼 뿐 노동조합이 임금노예제도 자체를 철폐하기 위한 지렛대, 조직적 구심으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조합주의자들은 조합원들의 후진적 정서, 의식, 편견에 영합한다. 이들은 ‘조합원들의 피해와 희생을 바라지 않는다’는 논리로 자신들의 대리주의를 합리화한다. 이들은 조합원들을 대신하여 자신들이 희생한다고 생각하면서 조합원들을 수동적 존재로 격하시킨다. 이들은 조합원들의 역할이란 노동조합 간부들의 지시를 얼마나 잘 따랐는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들은 조합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고 성과를 따내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간주한다. 이러한 간부들의 대리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채 조합원들의 수동성이 발전한다면 노동조합은 갈수록 당장의 실리에 집착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조합원들의 능동성과 적극적인 참여, 단호한 전투의지를 통해서만 비로소 발휘될 수 있는 노동자계급의 힘이 그런 노동조합에서는 매장되고 만다는 점, 그 결과 노동조합이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는 허약한 수준으로 지속적으로 하강해버린다는 점에 있다.  
      당장의 실리에 집착하면 할수록 대중의 의식화, 단결력의 고양 등은 말 뿐이고 실제 실천에서는 중요시되지 않는다. 대중의 의식화, 단결력의 향상이 중요하다는 것을 망각하면 할수록 조합원들의 후진적 정서와 편견, 개인주의 등을 극복하기 위해 분투해야 할 필요성이 사라지고 만다. 단순하게 정리했지만 사실 노동조합주의에 빠져든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모습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조합원들이 아직 극복하지 못한 후진적 정서와 편견에 영합하거나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단지 현장 안의 문제만이 아니라 현장 바깥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여가시간의 문제를 개인적인 휴식의 차원으로 방치해버리며, 노동자의 삶을 재조직하기 위한 치열한 실천을 방기하거나 포기한다. 물론 휴식과 자기 계발은 노동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이것을 뛰어넘어 연대와 투쟁을 조직하고 노동자의 의식을 배우기 위한 노력, 가령 집단적 훈련과 학습, 그리고 투쟁하는 노동자들과의 연대는 조합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 대해 조합주의 지도자들은 이것이 조합원들에게 피곤과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 간주한다. 예를 들어 올해 많은 지역에서 노동절 행사를 축소하거나 마라톤으로 대체했다. 어떤 경우에는 조합원들이 연휴를 즐겨야 하기 때문에 집회를 일찍 끝내야 한다면서 노동절 집회를 아침 11시부터 형식적으로 개최하기도 했다.
      전 세계 노동자들의 연대를 축하하고 연대투쟁을 결의하며 노동자의 정신을 가다듬는 자리가 되어야 할 노동절은 노동자계급에게는 가장 소중한 ‘여가활동’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이런 노동절 행사가 맥 빠진 행사, 빨리 끝내야 하는 행사로 전락했다. 요즘에는 연휴나 휴가가 있으면 그 이유만으로 투쟁이 축소되거나 종결되는 경우가 많다. 대공장 노동조합의 경우, 연휴나 휴가는 투쟁을 중단시킬 수 있을 만큼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되고 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일 년 열두 달도 두려워하지 않고 줄기차게 투쟁하고 있는 반면, 조합주의에 감염된 이 노동조합들은 며칠간의 휴가를 이유로 투쟁을 중단하는 것을 정당화시키곤 한다.
      이에 따라 노동시간 단축의 성과로 늘어난 여가시간을 학습과 단련, 투쟁의 기회와 공간, 노동자다운 의식을 확보하기 위한 문화적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창조적 시도도 사라진다. 대신 ‘조합원들이 쉬어야 한다’는 정서에 푹 빠져들어 자신들의 게으름과 후진성을 합리화하며 대중에 대해 불평한다. 대중의 개인주의는 어쩔 수 없는 대세쯤으로 인정된다. 조합원들의 수동성과 무기력을 조장하며 그것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노동조합 관료주의로서는, 사실 그것은 단순히 대세가 아니라 적극 조장하고 보호해야 할 그 무엇이다. 조합주의 관료들은 자신들의 보수적 성향, 편견을 대중의 후진성이라는 핑계로 위장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노동조합주의 영향력 하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의 성과가 해체될 수밖에 없다. 단축된 노동시간을 노동자들은 쇼핑몰에서 소비하고, TV 등의 대중매체를 통해 주입되는 환상과 정신적 마약, 자본주의 의식을 주입받는 시간으로 허비하고 만다.
      그러나 맑스는 노동시간 단축의 가장 중요한 의의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서만 노동자계급은 육체적, 정신적 퇴화를 막아내면서 자신을 집단적으로 조직하고 노동자의식을 습득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것 말고는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다음의 예는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8시간 노동제투쟁과 관련된 사건들은 혁명의 전개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이제 노동자들은 몇 시간 자유를 얻어 신문이나 책을 읽고 회의에도 참가하고 사격연습도 했다. 노동자민병대가 수립되면서부터 사격연습은 일상화되었다.”(트로츠키, ≪러시아혁명사≫ 상권, 348쪽) 이것과 연결하여 우리가 여가시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고민해 보아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여가시간의 활용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삶의 질’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들이 집단적이고 공동체적인 문화를 만들어내며 학습과 단련으로 스스로의 저항력을 키우는 투쟁의 학교, 단련의 학교로 자리 잡아야 한다. 노동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프로그램과 문화공간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여가시간을 자본의 문화적 지배에 맞서 노동자계급의 시간으로 쟁취해야만 한다는 점을 분명히 자각하는 것, 그리고 조합원대중을 자본가계급의 문화적 공세에 무방비상태로 내맡기고 자본주의가 조장하는 여가에 대한 관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노동조합주의와 철저한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상업적이고 향락적인 자본주의 소비문화의 목적

    자본은 노동자들이 여가시간에 자본의 문화와 상품을 더 많이 소비하도록 유도한다. 자본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가정생활에 파고드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의 모든 욕구에 대해서 자본의 확대재생산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상품화시킨다. 자본의 문화와 상품을 소비하게 만듦으로써 자본은 이윤확보를 위한 상품판매의 도구로 노동자들을 전락시키려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살기 위해서 당연히 먹고, 자고, 입는 기본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물질적 재화들은 상품으로만 존재하고 있다. 때문에 그것에 필요한 상품을 구입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나아가 노동자들은 좀 더 풍족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당연히 누려야 한다.
      문제는 자본이 조장하고 유도하는 유행과 향락, 쾌락에 말려들면서 노동자의 주체성을 상실하고 자본주의 문화에 찌들어간다는 것이다. 많은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이 대중매체를 통해 조장하는 유행과 소비 조장 열풍에 영향을 받는다. 자본주의 상품문화에 무의식적으로 휩싸이게 되며 여가시간의 대부분은 “소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채워진다. 이 고민은 ‘소비할 수 있는 수단’인 돈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노동자들의 필요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을 가진 사람들만이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즉 소비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제한된 소비능력만을 갖춘 노동자들에게 ‘심리적 불만과 고통’을 던져준다.  
      그럼에도 만일 그냥 방치된다면 노동자들은 여가의 대부분을 소비에 집착하면서 보내게 된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소비의 즐거움에만 몰두하게 되며 그것을 통해 쾌락을 느끼게 된다. 수많은 상품광고는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필요한 것과 적절한 것만을 사야 한다는 판단은 흐려지며 소비 자체에 매몰된다. 결국 스스로의 판단과 정체성은 약화되고 광고와 소비에 길들여진다. 특히 자본은 상품판매를 위해서 상업적이고 향락적이며 가족주의적인 문화들을 만들어내는데, 이런 문화를 소비하게 되면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은 약화된다.
      자본주의 상품문화가 더욱 위험한 것은 이것이 노동자의 의식을 해체시키고 자본주의 의식을 주입하는 통로가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값비싼 상품들은 ‘사회적 지위’를 상징한다. 고가의 핸드폰을 비롯해 대형차, 대형 아파트는 ‘필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특권’을 상징한다. 더 비싼 제품을 사지 않으면, 재빠르게 변하는 유행을 따라잡지 못하면 낡고 고루한 사람,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능력 없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당신이 입는 옷이, 당신이 타는 차가, 당신이 사는 집이 당신의 지위를 규정한다.”로 요약되는 자본주의 광고는 이런 의식을 끊임없이 불어넣는다.
      이 광고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대중매체가 작동한다. 가령 최근 TV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최고의 소비 수준을 누리고 있는 부르주아 층이다. 정확히 말해서 자본가들이다. 이를 통해 간접 광고가 이뤄질 뿐만 아니라, ‘훌륭한 자들은 부유한 자들이고, 가난한 자들은 이들에게 픽업되어 장가 혹은 시집을 감으로써 구원된다’는 의식이 주입된다. 또한 계급투쟁을 무디게 만드는 효과도 발휘된다. 드라마에 나오는 자본가들은 현실의 자본가들과는 달리 의리와 동정심이 강하고 착취는커녕 가난한 사람들을 사심 없이 헌신적으로 돕는 인간들로 묘사된다. 반면 노동자들은 서로 분열되어 있고 무식하며 비겁한 존재로 묘사된다. 이것은 자본주의 소비문화가 ‘계급적 구별짓기’의 수단임과 동시에 자본가계급의 의식에 노동자계급을 포섭하는 수단이기도 하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를 통해서 자본가계급은 자신이 원하는 인간형을 제시해서 노동자의 가치관, 세계관, 생활방식을 무너뜨린다. 일상생활 속에서, 여가시간을 활용해서 노동자들이 노동자의 의식을 획득하고 집단적 관계들을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아니라 TV를 비롯한 대중매체에 장악되어 자본의 가치와 의식을 받아들이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 자본이 유도하는 소비문화에 빠져들고 자본이 매일 매일 퍼붓는 잘못된 가치관에 물들어간다면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은 약화된다. 이처럼 노동운동의 적극적인 실천이 없다면 노동시간 단축으로 늘어난 여가시간은 노동자의식을 약화시키는 통제 장치가 강화되는 것을 뜻할 수도 있게 된다.

    노동시간 단축의 성과,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해 사용하자!

    노동자문화는 노동문화예술을 보고 관람하는 수동적 행위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가치관, 행동양식, 생활방식, 노동예술, 투쟁과 조직문화 등을 아우르는 총체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의 총체적인 삶의 과정으로 노동자문화가 바로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 하에 많은 문화 활동가들이 “문예에서 문화로”라는 기치 아래 노동자들의 현장생활, 일상생활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문화를 실천하고 투쟁을 조직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모색과 시도가 노동문화를 단지 ‘생활문화’나 ‘시민 문화운동’의 영역으로 축소시킬 위험에 대해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노동자문화 영역의 확장이라는 긍정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 확장은 계급성과 주체성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노력은 이벤트성의 실험 위주로 흘러가고 현장과 분리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계속 겪어야 할 것이다.
      진지한 노동문화를 창조하기 위해 현장에서 활동하는 시간만이 아니라 여가시간까지도 적극 활용했던 시기가 있었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우리는 뛰어난 노동자문화의 성과들을 가지고 있었다. 노동자계급이 직면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그려내며 미래를 전망했던 수많은 노동문학, 노동미술, 노동가요, 노동연극, 노동풍물 등은 노동자 문화운동을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조직화와 의식향상에 크게 기여했고 우리 운동의 커다란 자산이 되었다.
      지금도 우리가 이러한 뛰어난 노동자문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여가시간을 적극 장악해 들어가고, 임금인상의 성과들을 거기에 투자한다면 크게 힘을 발휘하는 뛰어난 문화적 성과들을 창조해내면서 자본주의 문화의 영향력으로부터 노동자의 여가시간을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여가시간을 이용해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노동해방의 노선과 노동운동의 원칙에 대해 토론하며 학습하고, 가족들까지 포함한 여러 문화적 공간들을 열어간다면, 여가시간은 자본주의적 시간에서 노동자계급의 시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고, 또한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선진노동자들의 임무는 노동시간 단축의 성과를 노동운동의 더 힘찬 조직화를 위해 투자하고 활용하는 것이다. 여가시간을 자신의 단련의 계기로 철저히 활용해야 할 뿐 아니라 모든 계기를 활용해 집단적이고 공동체적인 문화를 만들어내고 조직화의 수단들을 발굴해내고 창조해내야 한다. 나아가서 먼저 각성된 노동자들이 아직 각성되지 않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향해 영향력을 미치고, 노동자 가족들과 고통 받는 민중들까지 노동운동으로 연결시키는 소중한 시간으로 여가시간을 변모시켜야 한다. 그것만이 노동시간 단축을 노동자해방을 위한 수단으로 옳게 쟁취하는 것이고, 바로 여기서만 노동시간 단축투쟁은 참된 의의를 획득할 수 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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