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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 휴버먼,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어느 곳의 어느 국민이나, 그렇게 할 의사와 힘이 있다면, 반란을 일으켜 기존 정부를 타도하고 자신들에게 더 적합한 새로운 정부를 조직할 권리가 있다. 이것은 가장 귀중하고 신성한 권리다. 우리는 이 권리가 인류를 해방할 수 있다고 믿으며, 해방하기를 바란다.”
구제불능의 극우세력 입장에서 본다면 위 발언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불온한 주장’으로 간주될 것이다. 우익언론은 ‘정부는 뭐하고 있는가!’ 하며 목소리를 높일 것이고, 공안기관들은 탐나는 먹잇감이 등장한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다. 과연 이 발언은 누구의 입에서 나온 것인가?
숨겨진 이야기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의 저자 리오 휴버먼은 이 질문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야수 같은 발톱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던 극우세력과 우익언론, 공안기관들은 자신의 앞에 링컨이라는 한 유명한 인물이 서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유명한 말과 함께 현대 민주주의의 위대한 대표자로 여겨지면서, 자본주의 사회가 존경스런 인물의 1순위에 놓고 있는 바로 그 링컨 말이다. 위 발언은 다름 아니라 에이브러햄 링컨이 1848년 1월 12일 하원에서 행한 연설의 일부다. 흑인 노예해방을 외친 훌륭한 대통령 정도로만 알려진 그는 여기서 인류의 해방을 위해 반란을 일으킬 것을 호소하는 급진적 정치가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이야기는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에 담겨진 흥미진진한 내용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이 책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가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형성되어 왔는지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리오 휴버먼은 저 멀리 중세 말기의 봉건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점에서 출발한 그는 독자들이 지치지 않고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올 수 있도록 친절한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각각의 중요한 지점들에 삽입된 도표와 그림이 주제에 대한 흥미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그러나 리오 휴버먼의 책이 단지 흥밋거리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저자 서문에서 이 책을 쓴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두 가지 목적이 있다. 그것은 경제이론으로 역사를 설명하는 것과 역사로 경제이론을 설명하는 것이다. ··· 이 책은 경제사도 아니고 경제사상사도 아니지만, 둘을 모두 조금씩 포함하고 있다.”
즉 그는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사실들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서로 연관되지 않고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단편적인 사실들을 수집하여 단지 보여주기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는 않았다. 그러한 단편적 사실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맥락을 추출하고, 법칙으로서 파악하며, 그럼으로써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논리적 경제이론을 하나로 결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따라서 리오 휴버먼의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역사적’으로 추적해나간다면, 동일한 자본주의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다른 저작들(가령 ≪자본론≫)을 읽고 이해하는 것 역시 한층 수월해질 것이다. 물론 동시에 읽거나 어느 하나를 나중에 읽거나 그 순서는 상관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대중성까지 갖추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1962년에 공식 출판된 이후 무려 30만 권이나 판매되었다고 한다. 판매부수가 책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대중소설이 아니면서도 그만큼의 폭넓은 호응을 받았다는 것은 이 책이 그만큼 유용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자본주의의 비밀을 이해하고 변화시키고자 했던 수많은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다음으로 이 책은 자본주의의 형성과 발전과정에 대한 구체적이고 풍부한 그림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와 관련된 여러 환상들을 깨뜨리는 역할도 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중심지인 미국은 한마디로 ‘기회의 나라’이며, 이곳에서는 모든 일들이 조화롭고 평화적이며 합리적인 방식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생각에 대해 이 책은 그것은 환상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이 책에 실린 여러 자료들이 이 환상의 어리석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령 그는 미국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서도 복면을 한 깡패들의 공격에 수시로 노출되었다고 지적한다. 자본가들과 결탁한 갱단은 조합원에게 폭력을 휘둘렀으며, 이 폭력의 희생자가 되어 생명을 잃는 노동자들이 부지기수였다. 깡패들은 노동자의 시신을 아무데나 내팽개쳤다. 그간 한국에서 볼 수 있었고 지금도 볼 수 있는 자본가들의 끝없이 추악한 행태가 단지 한국에서만 일어났던 일이 아니었음을, 한마디로 자본주의의 논리 자체가 노동자들에게 적대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타고난 이야기꾼, 리오 휴버먼
이 책의 진가 중에서 놓칠 수 없는 대목은 저자의 탁월한 설명 능력이다. 타고난 이야기꾼 같은 재능을 가진 리오 휴버먼은 이 책에서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과정에 대한 고찰을 쉽게 풀어나가고 있다. 이 재능은 이론을 설명하는 데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그는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직면하는 심대한 경제적 위기의 표현인 공황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명쾌한 정식화를 시도한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역설에 직면한 자본주의 국가들은 그 문제를 다루기 위한 계획을 고안해냈다. 그 계획이란 ‘풍요를 폐지하는 것’이었다.”
물론 엄밀하게 이론적으로 따지고 들어간다면 리오 휴버먼의 이야기에서 결함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적 효용성’이라는 가치를 우선 염두에 둔다면 그 정도의 결함은 누구라도 너그럽게 받아들일 만 하다. 아마도 이 주제에 관한 한 어느 누구도 리오 휴버먼보다 잘 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리오 휴버먼의 책이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척 할 수는 없다. 이 책이 출판된 것은 1936년이다. 그래서 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바로 그 시점에서 멈춘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한 크고 작은 전쟁들이 끊이지 않았다. 1945년 이후 자본주의는 상당 기간의 ‘황금기’를 누렸다. 68년 운동의 급진적 외침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메아리를 울렸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세계는 이윤을 향한 추악한 전쟁으로 얼룩져 있으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경제위기를 경고하는 비상벨이 귓전을 때린다. 한편으로는 유럽 전역에서 극우 파시즘의 부활을 목도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더디지만 국제노동운동의 부활을 예견케 하는 수많은 사건들을 접하고 있다.
리오 휴버먼이 이런 일들을 전부 다룰 수 없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는 1968년에 사망했다.
계속되는 이야기
리오 휴버먼의 뒤를 이어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은 우리 세대의 일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책은 우리가 과거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과거를 이해하는 데서 성공한다면,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데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과거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분간 우리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 점에서 리오 휴버먼의 책은 자본주의의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예견하고, 이 자본주의에 대항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친절하고도 좋은 동반자가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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