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노동자연합
연합소개 문서고 주장과 쟁점 투쟁의 현장
 
항목별 검색
자본주의는 어디로
투쟁의 방향타
혁명당을 건설하자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문화도 투쟁이다
한국노동자운동
세계노동자운동
기타

Category
문화도 투쟁이다 : 노해연-30호] ≪로자 룩셈부르크≫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의 1986년 영화
 정책위  | 2008·05·29 07:51 | HIT : 3,095
 FILE 
  • 노해연_30호]_≪로자_룩셈부르크≫_마가레테_폰_트로타_감독의_1986년_영화.hwp (21.0 KB), Down : 412
  • ≪로자 룩셈부르크≫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의 1986년 영화



    “내 기억으로 1968년은 우리 모두가 정치적으로 긴장했을 때였다. 나는 그 때 로자의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그 글 뒤에 숨어있는 여성을 생각하며 언젠가 그녀의 일생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 몇몇 역사가들은 내 영화가 매우 부족하다고 말한다. 나는 역사물을 만들거나 로자의 완벽한 초상을 그리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 나의 영화로 인해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 마가레테 폰 트로타

      ≪로자 룩셈부르크≫라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마가레테 폰 트로타라는 감독은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다. 지난 4월 2일에서 9일까지 펼쳐진 제6회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이 영화는 상영되었다. 여성영화제라는 이름에서 왠지 모르게 풍기는 분위기처럼, 이 행사 자체도, 그리고 로자 룩셈부르크에 관한 영화가 상영된다는 사실도 노동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우리 역시 운 좋게 아주 우연한 기회에 영화를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대중적으로 출시된 작품도 아니어서, 여기서 이 영화를 소개하더라도 정작 독자들이 이 영화를 구해서 보기란 쉽지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충분히 소개될 가치를 갖고 있다. 함께 로자 룩셈부르크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감독의 말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로자의 완벽한 초상을 그리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역사적 구체성 또는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불충분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영화는 그랬다. 당시 독일의 노동운동이나 사회민주당 내 여러 경향 간의 투쟁, 정치적 격변의 순간들, 독일뿐만 아니라 폴란드와 러시아 등 주변 나라 노동운동과의 관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은 경우 그 의미가 구체적으로 이해되기 힘든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로자가 “기회주의자에게 기회를 줘서는 안 된다”며 베른슈타인에게 냉담한 태도를 취하는 모습, 러시아의 1905년 혁명을 경험한 로자가 독일사회민주당 내에서 열변을 토하며 노쇠한 베벨과 논쟁을 벌이는 장면, 정치적 대립의 격화 속에서 카우츠키의 중도파적 본질이 드러나는 과정,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채 즉흥적이고 갑작스럽게 조직된 스파르타쿠스동맹의 봉기가 갖는 교훈적 의미 등은 당시의 정황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을 때에야 그 색채가 분명하게 눈에 들어올 수 있다.
      하지만 두 시간짜리 영화가 그 모든 것을 충족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통해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희망했다. 그 점에서만 본다면 감독은 충분히 희망사항을 달성했다. 물론 독일사회민주당의 변천과 타락의 과정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실망감(“더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그려져야만 했다!”)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관객들의 경우라면 당시 주도적으로 국제노동운동을 이끌어가고 있던 독일사회민주당의 수치스러운 역사를 통해 우리 운동의 장래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로자 룩셈부르크가 표현하고자 했던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사상을 오늘날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로자는 불굴의 투사다운 모습으로 우리의 나태함에 채찍질을 가하고 있다. 핍박받는 폴란드 출신의 유태인이며, 150센티미터의 작은 체구에, 한쪽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으로서, 또한 이중 삼중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그는 반동우익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할 때까지 어느 누구보다 대담하고 당당하며 활력 있는 삶을 보여주었다. 또한 로자 룩셈부르크는 열여섯 살 때부터 고향인 폴란드에서 노동해방 투쟁을 시작했으나 곧 ‘가장 거대한 노동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독일로 기꺼이 거처를 옮겨 독일사회민주당 운동에 뛰어들었고, 1905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보다 가까운 곳에서 그 투쟁을 접하기 위해 바르샤바로 달려갈 정도로 역동적이며 국제주의적인 활동을 펼쳤다.
      영화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처럼 파란만장한 ‘그녀의 일생’을 속도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 영화는 좀 더 널리 보급될 필요가 있다.

    붉은 로자
      로자 룩셈부르크를 가리키는 여러 별명 중 하나가 바로 ‘붉은 로자’다. 베벨이나 카우츠키 등 당시 독일노동운동의 가장 권위 있는 지도자들 앞에서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기세등등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며, 소심하고 굼뜨기 짝이 없는 사회민주당 지도부는 오히려 전진하는 대중에 의해 떠밀려야 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포하는 장면에서 ‘붉은 로자’의 당당함은 빛을 발한다. 그것은 근거 없는 자만심이나 허풍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1905년 러시아 노동자들의 거대한 대중파업과 그 속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대중의 자발적 역동성을 로자는 경험했다. 마치 행정 관료들이 탁상공론 끝에 관념적인 프로그램과 일정을 미리 짜놓고 현실을 거기에 꿰맞추려는 것과 마찬가지의 태도로 독일사회민주당이 노동운동을 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제 로자의 눈에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하게 들어왔다.
      관료적으로 똬리를 틀기 시작한 독일노동운동 지도자들에 맞서서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사상을 정열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노동해방의 정치적 양심을 지닌 운동가라면 응당 의무적으로 수행해야만 하는 과제가 되었다. 가망 없는 후진국으로만 간주되었던 러시아의 노동자들이 당시 가장 선진적이었던 독일노동운동보다 먼저 과감한 행군을 시작하고, 이제는 국제노동운동을 향해, 특히 당시 국제 노동운동의 전위였던 독일 노동운동을 향해 이 위대한 행군에 행동으로 합류할 것을 호소하기 시작한 국면!
      그러나 바로 그러한 국면에서 ‘가장 선진적’이라 일컬어지던 독일사회민주당의 지도자들은 백만 명의 총파업보다 선거를 통해 얻은 한 개의 의석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로자의 대중파업 사상을 비열하게 회피한다. 이제 더 이상 노쇠하고 낡은 지도부에 의존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누군가가 앞장서서 러시아 노동자들의 역사적 호소에 응답해야만 했다. 만약 그러한 시도를 어느 누구라도 하지 않는다면, 독일사회민주당과 노동운동은 암으로 점차 죽어가는 환자처럼 서서히 그러나 바로 그만큼 확실하게 죽어갈 것이 분명했다.
      로자의 단호한 외침은 바로 이러한 절박한 역사적 과제에 대한  열렬한 응답이었다. 1905년 대중파업과 혁명에서 표현된 러시아 노동자들의 투쟁정신은 로자 룩셈부르크라는 한 인격의 목소리를 통해 독일노동자들과 만나게 된다. 여기서 로자에 맞서야 했던 적은 단지 지배계급만이 아니었다. 의회와 선거를 통한 점진적 진보와 개량만을 추구하던 사회민주당 지도부 역시 집요하게 로자의 발목을 붙잡으려 했다. 이들과의 내부 투쟁은 1914년의 1차 세계대전이 다가오면서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독일사회민주당의 정치적 파산
      1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다가오자 각 나라의 지배계급 정부들은 노동자대중을 이 전쟁에 동원하려고 했다. 그것은 곧 여러 나라의 노동자들이 철천지원수가 되어 서로 총을 겨누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연하게도 국제노동운동은 그러한 지배자들 간의 전쟁에서 노동자들이 헛되이 피를 흘릴 수는 없다는 점을 결의했다. 독일사회민주당 또한 그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것은 오직 ‘평화시’의 결의였을 뿐이었다. 전쟁이 코앞에 닥치자, 의회에서 지배자들과 마주하고 있던 사회민주당 의원들은 슬슬 압력에 굴복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배계급 정부의 전쟁공채 발행 계획에 찬성표를 던지고, 사회민주당의 이론가들은 추악한 제국주의 약탈전쟁에서 자국 정부를 지지해야 함을 합리화하기 위한 글을 써냈다. 이들은 전시상황에서도 두려움 없이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옹호할 만큼 일관되지도, 대담하지도 못했다. 결국 그들은 지배자들 앞에 정치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이 치욕스런 사건은 단지 독일사회민주당의 정치적 파산만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그 순간 노동자들의 국제적 단결은 끝장나버린 것이었다. 격분한 로자는 사회민주당의 추악한 애국주의자들의 비겁을 한껏 비난했다. “노동자들이여, 평화로울 때에는 서로 단결하라,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서로 물어뜯고 죽여라!” 사회민주당의 의회주의 지도자들이 취한 입장이 바로 이러한 것임을 폭로하면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없는 당 지도부에 기대는 대신 직접 대중에게 다가가 호소하고 선동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노동자계급의 연대를 파괴한 사회민주당 지도부는 로자의 말처럼 ‘악취에 쌓인 송장’에 지나지 않았다. 로자의 열정적인 반전연설은 집회에 모인 모든 노동자들의 가슴을 파고들어갔다. 하지만 바로 그만큼 로자를 향한 지배계급 정부의 눈초리는 날카로워졌다. 이제 로자는 수시로 감옥을 드나들어야 했고, 사실상 중요한 시기의 대부분을 무덤과도 같은 감옥에 갇혀 있어야 했다.

    전쟁은 끝나고
      전쟁은 끝났다. 독일 정부는 패배했고, 전쟁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투옥되었던 사람들은 자유를 되찾았다. 로자 역시 서둘러 정치활동으로 복귀한다. 하지만 로자 룩셈부르크에게 남겨진 시간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사회민주당의 기회주의적 타락에 맞서 노동자계급의 대의를 지키고자 했던 일부 동지들과 스파르타쿠스동맹을 조직하여 이미 활동을 시작한 터였지만, 스파르타쿠스동맹은 로자의 뜻과는 달리 노동자대중 속에서 일정 정도 충분한 지도력과 지지 기반을 구축하지 못한 상태에서 조급하게 ‘결전’을 향해 나아갔다. 영화 속의 로자는 더 많은 노동자들을 충분히 설득하여 세력을 형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인위적으로 결전을 치러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이것은 노동해방이란 노동자계급 자신의 행동으로 쟁취되어야 한다는 자기해방사상에 비추어볼 때 아주 당연한 원칙이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유로 이 원칙을 거스르려 할 때마다 노동운동은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그러나 이미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소수의 무장한 노동자들이 전투에 나섰다. 총탄이 빗발치는 거리, 어디론가 뛰어가는 대열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채 급조된 결전’이 승리를 거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국의 다수 노동대중을 조직적으로 결집시키지 못한 나머지 고립되고 말았던 봉기는 결국 진압된다.
      전쟁 종료 이후 정권을 잡았던 사회민주당은 그들의 ‘의석’과 ‘공식 선거활동’을 위협하는 스파르타쿠스동맹의 반란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제는 우익이나 다를 바 없게 된 사회민주당 정부는 마치 사냥개의 끈을 풀어주듯, 반동군대가 활개치고 다니면서 스파르타쿠스 반란자들을 진압하게 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잔인하게 살해당하고 어둠 속에서 강물에 내던져졌다. 로자의 육신을 집어삼킨 검은 강물은 파문을 일으키며 조용히 일렁거린다. 그리고 더 이상의 이야기는 없다. 정적만이 흐를 뿐이다.

    로자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영화는 이렇게 끝난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이야기가 끝난 것일까?
      로자가 직접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물론 끝났다. 그러나 조용히 일렁거릴 뿐인 검은 강물을 지켜보는 순간은 또한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수백만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행동보다는 일상적인 선거활동과 합법적으로 보장된 의원 직책을 훨씬 귀중한 것으로 여기던 독일사회민주당의 기회주의 지도자들. 노동자의 대중파업에 의해 공식적인 의회절차가 흔들리고, 의원으로서의 안정된 생활패턴이 깨지는 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했던 사회민주당 소속 의원들.
      이들은 결국 지배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투쟁이 정점을 향해 격렬하게 치닫는 국면에서 지배계급과 손을 맞잡았다. 이들은 노동자들의 모든 문제가 의회에 푹 파묻혀버린 진보정당의 의원들에 의해 대신 해결되어야 한다고 믿었고, 노동자들이 직접 행동함으로써 이런 헛된 믿음을 깨뜨리려 할 때마다 히스테리 반응을 보였다. 이들에게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가서는 안 될 일이었으며, 모든 일이 선거와 의회 내에서의 말다툼을 통해 해결되어야만 했다. 이런 태도가 독일사회민주당과 독일노동운동 전체의 숨통을 조여 갔다. 꽉 막힌 선거주의와 의회주의의 분위기가 독일 선진노동자들의 숨통을 조여 갔고, 끝내 로자 룩셈부르크를 비롯한 최상의 투사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우리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단지 과거의, 그리고 다른 나라의 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파업을 통한 단결과 연대의 성장, 그리고 그 속에서 정치활동의 기초를 닦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투쟁중심주의’라고 힐난하는 그러한 진보정당, 한 표를 얻기 위해서는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지만 연대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에서는 쉽게 얼굴조차 볼 수 없는 그러한 진보정당으로 점차 자리잡아가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우려스런 현실이 우리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낙후한 극우적인 정치현실에 비추어본다면, 민주노동당은 분명 진보정당이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열린우리당 따위의 지배계급 정당에 역겨움을 느끼는 노동자들은 민주노동당에서 대안을 찾으려 한다. 수십 년 동안 오로지 자본가 정당들에 표를 던지는 경험밖에 갖지 못했던 한국의 노동자들이 이제 더 왼쪽의 정당에 표를 던지려 한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진보적인 사건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갓 태어난 시점을 거치고 있을 뿐인 진보정당이지만, 그러나 이미 그 속에서 선거 및 의회만을 배타적으로 중시하는, 노쇠하고 부패해가던 과거 독일사회민주당의 모습이 엿보이고 있다. 독일사회민주당이 노동자계급에게 저지른 모든 극악한 범죄행위들을 우리는 비껴갈 수 있을까? 사회민주당 정권 하에서 로자가 살해당했던 것과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까?
      물론 그런 일은 절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노동운동 전체가 치명적인 패배를 겪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그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조건이 있다. 명망가들 중심의 관료적 대리주의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사상을 굳게 견지하는 것, 선거와 의회를 활용하는 것은 일상적인 시기에 아주 유용한 것이지만 언제 어디서나 노동자대중의 직접적인 행동과 투쟁이 무한히 더 가치 있다는 점을 절대 잊지 않는 것, 진보정당이란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에 깊이 뿌리내리고 바로 그 속에서 노동자정치를 펼쳐나가려 할 때에만 노동자계급 정당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정신으로 확고히 무장한 노동자 투쟁대열을 조직할 때에만 한국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 운동은 성공적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노동해방의 정신으로 무장한 새로운 노동운동의 중핵을 건설하는 데 실패한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악취에 쌓인 송장’을 만나게 될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가 로자 룩셈부르크의 배역을 맡아야 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영화 ≪로자 룩셈부르크≫가 우리에게 던진 결정적인 질문이다.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53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43호] 노동자와 여가문화 08·06·17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30호] ≪로자 룩셈부르크≫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의 1986년 영화 08·05·29
    51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30호] 프랜시스 윈의 ≪마르크스 평전≫ 08·05·29
    50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29호] ‘웰빙’을 현실화할 단 하나의 길 08·05·29
    49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29호] ≪레즈를 위하여≫ 황광우, 장석준의 새롭게 읽는 ≪공산당선언≫ 08·05·29
    48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29호] ≪태극기 휘날리며≫와 가족주의라는 괴물 08·05·29
    47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29호] 껍데기를 숭배하는 짱 신드롬 08·05·29
    46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28호] (번역) 트로츠키의 ≪전파,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 08·05·28
    45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28호] ≪자본론≫을 읽자 08·05·28
    44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28호] ≪칠레전투≫ 08·05·28
    43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28호] 실미도는 가르친다 08·05·28
    42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27호] 또 하나의 마약, ≪대장금≫ 신드롬 08·05·28
    41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27호] 리오 휴버먼,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08·05·28
    40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27호] 전사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김남주 시인 육성낭송시선≫에 대하여 08·05·28
    39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20호] 또다시 집단살인을 부른 종교인들 - 왜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가 08·05·27
    1234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GGAMBO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4동 241번지 2층ㅣ전화 02-794-1917ㅣ이메일 swl@jinbo.net
    No copyright, Just copyleft! 홈페이지에 공개된 모든 자료는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