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노동자연합
연합소개 문서고 주장과 쟁점 투쟁의 현장
 
항목별 검색
자본주의는 어디로
투쟁의 방향타
혁명당을 건설하자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문화도 투쟁이다
한국노동자운동
세계노동자운동
기타

Category
문화도 투쟁이다 : 노해연-28호] (번역) 트로츠키의 ≪전파,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
 정책위  | 2008·05·28 09:10 | HIT : 2,492
 FILE 
  • 노해연_28호]_(번역)_트로츠키의_≪전파,_과학,_기술_그리고_사회≫.hwp (22.0 KB), Down : 467
  • [번역] 트로츠키의 ≪전파,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



    [이 글은 맑스주의자가 과학기술과 사회가 맺고 있는 관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파악하는 데 무척 도움이 된다. 과학기술은 ‘자연의 법칙을 인식해 인간을 위해 자연을 활용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준다. 따라서 과학과 기술은 그 자체로는 결코 나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과학기술은 ‘진공 속’에서가 아니라 ‘계급사회 속’에서 생산되고 사용되기 때문에 항상 계급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자본가들이 CCTV, RF카드 등을 노동자 감시통제에 사용하는 것도, 노동자들이 투쟁과 연대를 위해 인터넷 등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도 과학기술의 ‘계급적 사용’에 해당하는 사례들이다. 물론 전자는 과학기술의 ‘자본가적 사용’이고 후자는 ‘노동자적 사용’이다.
      이처럼 과학기술은 어떤 계급에 의해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진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항상 과학기술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계급적으로 사용하려고 한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도 잘못이며, 그렇다고 노동자들이 과학기술을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있고, 또 사용하려 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도 잘못이다. 둘 다 과학기술과 사회 사이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류들이다. 트로츠키의 이 글은 이런 오류를 교정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가들이 신기술, 자동화를 도입하려 할 때 노동자들은 그것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신기술, 자동화는 그 자체로는 나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에 반대할 필요는 전혀 없다. 오히려 만일 노동자의 투쟁력이 뒷받침된다면, 그리고 노동자가 그것의 소유권자이자 통제권자가 되는 노동해방 사회라면 신기술과 자동화는 노동자 해방의 가장 결정적인 수단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신기술, 자동화를 항상 자기에게 유리하게, 즉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 통제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려 할 것이므로 ‘노동자에 대한 착취, 통제의 강화’ 즉 신기술, 자동화의 자본주의적 혹은 자본가적 사용에 대해서는 정확히 반대해야 한다.
      그런데 신기술, 자동화가 자본가를 위해 사용되느냐 노동자를 위해 사용되느냐는 선험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노동의 힘 관계와 투쟁에 달려 있다. 따라서 신기술, 자동화를 노동자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이 있다면 ‘신기술, 자동화 무조건 반대’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건을 악화하고, 고용불안을 야기하는 신기술, 자동화는 반대!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강도를 완화하며 고용불안의 위협이 없는 신기술, 자동화는 찬성, 적극 추진!’ 입장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 여기서 노동자는 신기술, 자동화 자체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자본가적 이용, 즉 해고와 노동강도 증대에 맞서 투쟁한다.
      가령 자본가가 대량 정리해고를 시킬 계획으로 노조와 어떤 대화도,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신기술을 도입한다면 ‘고용불안 유도하는 신기술 도입반대’, ‘정리해고 결사 저지’를 내걸고 강력히 투쟁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신기술 도입반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용불안과 정리해고에 대한 단호한 반대’에 있다. 신기술 도입을 반대한다면 그것은 순전히 ‘고용불안과 정리해고에 맞서기 위한 전술적 카드’로서일 뿐이다. 반대로 노동자들의 힘이 강하거나 필요할 때는 자본가들에게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거나 운반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장비나 지겨운 단순노동을 대체해주고 산재가 빈발하는 위해작업으로부터 노동자를 해방시킬 수 있는 자동화 프로그램 등을 ‘노동자들에게 어떤 불이익도 주지 않는다’는 전제 조건 아래 빨리 도입하라고 촉구하고 투쟁할 수 있다.
      이렇게 새로운 기술, 기계를 활용해 노동의 고통을 덜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면서, 노동자들은 사회, 정치, 문화예술 등의 제반 활동에 노동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객관적 수단으로 기술과 기계를 적극 활용하는 노동해방적 전망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런 점들을 검토하고 해결하는 데에도 맑스주의 기술관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트로츠키의 이 글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이런 구체적인 문제로 씨름하면서 과학기술의 노동자적 사용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제한적으로만, 불완전하게만 실현될 수 있으며 노동해방 사회에 가서야 전면적으로 실현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게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글은 과학기술이 노동해방 사회에서 도시와 농촌의 분리를 극복하고, 전세계 노동자 민중을 하나로 단결시키는 데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가르쳐준다. 한마디로 노동자 해방 사회로 전진함으로써 우리는 과학기술을 노동자 자신을 위한 수단으로 격상시켜야 하며, 바로 이것이 노동자들이 과학기술에 대해 취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관점이라는 점을 가르쳐준다. 뛰어난 신기술을 활용해 전세계 노동자가 하나가 되고, 노동해방의 밝은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는 점은 상상만 해도 노동자들에게 큰 기쁨을 줄 것이다. 본문 중 꺽쇠괄호는 옮긴이의 것이다. - 옮긴이 주]

    전파, 군국주의, 미신
      이제 정치적, 실천적 문제들을 보다 면밀히 검토해 보자. 전파기술과 사회제도의 관계는 어떠한가? 사회주의적인 것인가 자본주의적인 것인가? 나는 며칠 전 마르코니라는 유명한 이탈리아인이 베를린에서 군국주의 시대의 빠른 종말을 예측하면서 헤르츠파[전자기파. 독일의 물리학자 헤르츠가 발견한 파동을 뜻한다]로 먼 곳에 사진을 전송하는 것은 평화주의를 위한 엄청난 선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제기한다. 그게 왜 그렇다는 것인가? 군국주의 시대의 종말은 너무 자주 선포됐기 때문에 평화주의자들은 언제가 시작이고 언제가 종말인지 완전히 갈팡질팡해왔다. 우리가 멀리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전쟁을 끝장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됐다! 확실히, 실물과 똑같은 이미지를 먼 곳으로 보내는 수단을 발명하는 것은 아주 매력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전쟁을 끝장낼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특별한 분야에서 전문가인 사람들의 대다수가 그렇듯이 (심지어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다) 마르코니처럼 훌륭한 사람의 경우에도 뇌 전체가 아니라 작은 일부만을 사용해 ‘과학적 사고’를 한다. 그래서 일을 거칠게 처리한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에도 배 전체가 한꺼번에 가라앉지 않도록 꿰뚫을 수 없는 부분이 증기선 선체 안에 존재한다. 그렇듯이 인간의 의식 속에도 꿰뚫을 수 없는 부분이 수없이 많이 있다 : 인간의식의 한 부분에서, 아니 심지어 12개 부분에서 가장 혁명적인 과학적 사고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부분을 넘어서면 최고의 속물근성이 있다는 것도 발견할 수 있다[자기가 맡고 있는 한 분야에서는 뛰어나지만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터무니없는 한계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을 ‘전문가바보’ 또는 ‘바보엘리트’라고 부른다. 현대사회에는 이런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여기에서 인간의 모든 경험을 일반화하는 사상인 맑스주의의 위대함을 알 수 있다. 그 사상은 세계관의 완전함을 통해 이런 의식 내부의 칸막이들을 없앨 수 있도록 돕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검토하고 있는 문제에 이것을 적용해보자. 사람이 [전파를 통해] 자신의 적을 볼 수 있다고 해서 그게 왜 정확히 전쟁의 종결로 귀결된다는 것인가? 옛날에 전쟁 당사자들이 서로 얼굴을 보고 싸우던 시절이 있었다. 나폴레옹 시절에도 그랬다. 장거리포 무기를 개발한 다음에야 전쟁 당사자들은 서서히 더 멀리 떨어져서 싸우게 됐고, 보이지 않는 목표물을 향해 발포하는 일이 일어났다. 만약 여기서 안 보이는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측면을 다룬다면, 그것은 헤겔의 정반합 변증법이 이 영역에서도 승리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전파기술의 발전은 얼굴을 맞대고 싸우는 전쟁 → 얼굴이 보이지 않는 멀리서 대포나 총기를 사용해 싸우는 전쟁 → 인공위성에 의해 작동하는 스크린을 통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이른바 전자전쟁으로 전쟁의 ‘형식’만 바꾸었을 뿐, 전쟁을 끝장내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전자기파기술의 도입으로 전쟁이 소멸하거나 약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전쟁의 양상은 더욱 격화되었다는 얘기다.]
      나는 비행기의 발전이 전 인구를 군사작전에 끌어들이고, 모든 나라의 경제, 문화생활을 피폐화할 것이기 때문에 전쟁을 끝장낼 것이라고 사람들이 얘기했던 때를 기억한다. 하지만 사실 공기보다 더 무거운 날아다니는 기계(비행기)의 발명은 군국주의의 역사에서 새롭고 더 끔직한 국면을 열었다. 지금 우리가 훨씬 더 공포스럽고 피비린내 나는 국면의 시작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과학과 기술은 자기 자신의 논리 - 인간을 위해 자연을 인식하고 지배하는 논리 - 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과학과 기술은 진공 속에서가 아니라 계급으로 나뉘어 있는 인간사회 속에서 발전한다. 지배계급, 유산자계급은 기술을 통제하고 그것을 통해 자연을 통제한다. 기술 그 자체는 군국주의적이라고도 평화주의적이라고도 말할 수 없다. 지배계급이 군국주의적인 사회 속에서는, 기술은 군국주의에 봉사한다.
      과학과 기술이 미신을 허물어뜨린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사회의 계급적 성격은 여기에도 근본 한계를 둔다. 미국을 예로 들어보자. 거기에서 교회 예배가 전파로 방송된다. 그것은 전파가 편견을 확산시키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 일은 여기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전파방송협회가 이것을 감시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러기를 희망한다. (웃음과 박수)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과학과 기술이 대체로 의심할 여지없이 종교적 편견과 미신(이것은 인간이나 자연 앞에서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반영한다)에 맞서는 방향으로 사용된다. 과학기술 박물관의 목소리가 방송을 타고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때 ‘하늘의 목소리’는 과연 어떻게 될까?(웃음. 이 연설은 과학기술 박물관에서 행해졌고, 방송됐다.)

    우리는 뒤처져서는 안 된다!
      만약 우리가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다면 가난과 미신을 극복할 수 있다. 우리는 다른 나라들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 모든 전파방송협회원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첫 번째 슬로건은 “뒤처지지 말라”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 비해 엄청나게 뒤떨어져 있다. 이런 후진성은 우리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주요한 유산이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동지들, 만약 자본주의 국가들이 전쟁 이전처럼 꾸준히 발전을 계속한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되물어야 한다 : 우리가 따라잡을 수 있을까? 우리가 따라잡지 못한다면 분쇄당하는 것이 아닐까? 이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 우리는 경제적으로 자본주의 사회가 점점 더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고 쇠퇴하기 시작하고 있는 때에 과학기술적 사고가 그 발전의 최정점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다. 유럽 경제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 15년간 유럽은 더 가난해졌지, 더 부유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발명과 발견들은 엄청나게 많아졌다. 전쟁은 유럽을 짓밟고 대륙의 광대한 지역들을 황폐화했다. 하지만 동시에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질식당하고 있던 과학기술적 사고를 엄청나게 자극했다. 만약 우리가 기술을 물질적으로 축적할 수 있다면, 다시 말해 인간의 머리 속에 존재하는 기술이 아니라 기계, 공장, 철도, 전신, 전화 서비스 등으로 구현된 기술을 축적할 수 있다면, 무엇보다도 우리가 아주 후진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확인하게 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과학과 기술을 계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소비에트 조직의 거대한 이점을 이용하지 못한다면(유럽은 자체 모순 때문에 계속 질식당하고 있다), 이런 후진성은 우리에게 더 끔찍한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의 후진성을 모든 측면에서 감추어서는 안 되며, 엄격히 객관적인 잣대로 측정해야 한다. 또한 단 한 순간도 낙담하지 말아야 하며 자신을 속이지도 말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나라가 단일한 경제적, 문화적 총체로 바뀔 수 있는가? 그것은 교통통신수단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 철도, 증기선, 우편서비스, 전보, 전화 - 지금은 무선전보, 무선전화. 이 영역에서 지금 우리는 어떤 상태에 있는가? 우리는 끔찍하게도 뒤떨어져 있다. 미국 철도망은 40만 5천 킬로미터에 이르며, 영국 철도망은 거의 4만, 독일 철도망은 5만 4천 킬로미터에 이른다. 그런데 여기 러시아 철도망은 광대한 땅 위에 고작 6만 9천 킬로미터밖에 없다! (중략)
      이런 수치들은 우리의 후진성을 가차 없이 드러내준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가장 값싼 통신수단인 전파방송을 거대한 농민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가질 수 있고, 가져야 하는 중요성 또한 밝혀준다. 우리는 여러 통신수단을 통해 나라를 어떻게 서로 연결된 단일한 총체로 바꿀까를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사회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말할 수 없다. 전국의 모든 지점들과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통신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전파방송이다. 물론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전파방송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특권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도시 상류층을 위한 장난감이 아니라 도시와 농촌을 잇는 경제적, 문화적 통신수단이 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얘기다.

    도시와 농촌
      소련의 도시와 농촌 사이에는 우리가 대체로 자본주의로부터 물려받은 끔찍한 물질적 문화적 모순들이 있다. 도시가 농촌에서 위안을 얻고, 농촌이 오버코트, 못, 기타를 얻기 위해 도시에 빵을 제공하던 그런 어려운 시절에, 도시는 편안한 농촌과 비교해 꽤 비참해 보였다. 그러나 특히 산업에서 우리 경제의 기본 토대가 구축됨에 따라 도시는 농촌보다 거대한 기술적, 문화적 이익을 갖고 있음을 입증해 보였다. 우리는 도시와 농촌 사이의 격차를 완화하고 평준화하기 위해 정치적, 법적 영역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기술적 영역에서는 아직 거대한 일보를 내딛지 못했다. 하지만 농촌에 기술이 없고 농민들이 문화적으로 빈곤한 상태에서는 농촌과 함께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없다. 발전된 사회주의는 무엇보다 도시와 농촌 사이의 기술적, 문화적 수준을 균등하게 만드는 것, 즉 도시와 농촌에 동질적인 경제적, 문화적 조건을 형성하는 것을 뜻한다. 그것이 도시와 농촌을 밀접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에게 사활적인 이유다. (중략)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면화를 재배하는 투르크메니아 농민들은 이바노보-보즈네센스크와 모스크바의 섬유산업 노동자들과 연계를 맺어야 하며, 유럽의 혁명적 노동자들과도 연결돼야 한다. 전파방송국 네트워크가 만들어져서 러시아농민들로 하여금 매일 유럽과 세계의 노동자들의 삶에 접하면서 그 수준의 삶을 향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유럽노동자들이 방송국을 접수하고, 프랑스노동자들이 에펠탑을 장악해 그 꼭대기에서 유럽의 모든 언어로 자신들이 프랑스의 주인이라고 선언할 때(박수), 우리나라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외딴 시골의 농민들도 유럽노동자들의 부름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 “우리 얘기 들을 수 있소?”, “형제들이여, 우리는 당신들의 얘기를 듣고 있소. 우리가 당신들을 돕겠소!” (박수)
      시베리아에서는 곡물, 원료, 지방을 공급하고, 쿠반과 돈 지방에서는 곡물과 고기를 지원하며,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아 지방에서는 면화를 제공할 것이다. 이것은 전파통신이 유럽을 단일한 경제조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더 앞당겨 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파-전신망의 발달은 결국 다른 많은 것들과 함께 유럽과 아시아 민중이 단일한 노동해방 공동체로 통일할 날에 대한 대비가 될 것이다.■

    53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43호] 노동자와 여가문화 08·06·17
    52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30호] ≪로자 룩셈부르크≫ 마가레테 폰 트로타 감독의 1986년 영화 08·05·29
    51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30호] 프랜시스 윈의 ≪마르크스 평전≫ 08·05·29
    50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29호] ‘웰빙’을 현실화할 단 하나의 길 08·05·29
    49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29호] ≪레즈를 위하여≫ 황광우, 장석준의 새롭게 읽는 ≪공산당선언≫ 08·05·29
    48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29호] ≪태극기 휘날리며≫와 가족주의라는 괴물 08·05·29
    47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29호] 껍데기를 숭배하는 짱 신드롬 08·05·29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28호] (번역) 트로츠키의 ≪전파,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 08·05·28
    45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28호] ≪자본론≫을 읽자 08·05·28
    44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28호] ≪칠레전투≫ 08·05·28
    43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28호] 실미도는 가르친다 08·05·28
    42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27호] 또 하나의 마약, ≪대장금≫ 신드롬 08·05·28
    41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27호] 리오 휴버먼,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08·05·28
    40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27호] 전사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김남주 시인 육성낭송시선≫에 대하여 08·05·28
    39 문화도 투쟁이다  노해연-20호] 또다시 집단살인을 부른 종교인들 - 왜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가 08·05·27
    1234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GGAMBO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4동 241번지 2층ㅣ전화 02-794-1917ㅣ이메일 swl@jinbo.net
    No copyright, Just copyleft! 홈페이지에 공개된 모든 자료는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