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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 투쟁이다 : 노해연-29호] ‘웰빙’을 현실화할 단 하나의 길
 정책위  | 2008·05·29 07:47 | HIT :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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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웰빙’을 현실화할 단 하나의 길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몸과 마음의 유기적인 건강을 추구하며 삶의 질을 높이려는 이른바 ‘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Well-Being) 바람이 불고 있다. 승마장, 수영장, 찜질방과 스파 시설을 갖춘 아파트에 고가의 공기청정기와 자연소재의 내장재로 실내를 꾸미고, 유기농 음식만을 먹고, 요가로 몸을 다듬으며, 친구들과 함께 동남아로 스파 여행을 떠나 화려하고 세련된 리조트에서 맘껏 휴식을 즐기거나 유럽의 낡은 농가를 빌려 목가적인 나날을 즐기는 삶이 바로 ‘웰빙족’의 생활이라고 한다. 자본가 언론들은 모두가 웰빙의 윤택함을 누릴 수 있다며 웰빙족의 삶을 홍보하느라 분주하다. 최근에 웰빙 바람이 이렇게 불어 닥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웰빙의 등장배경
      우선 웰빙 바람은 충분한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을 전제로 한다. 과거에는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 빈곤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비만이 빈곤의 상징이 되고 있다. 게놈지도가 완성되고 과학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체의 신비가 조금씩 밝혀지면서 건강한 삶의 방법들이 끊임없이 소개되고 있다. 과거에는 오직 자본가들만이 누릴 수 있었던 이런 혜택을 이제는 중산층도  어느 정도 누릴 수 있게 되었고 노동자들도 아주 조금은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즉 사회적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충분한 휴식과 여가생활을 누리고, 건강하게 생활할 정도의 객관적 물질적 조건이 이미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웰빙 바람은 우회적으로나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단, 여전히 노동자는 이것을 만들어낸 주체이지만 그럼에도 그것의 이용에서는 거의 소외되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웰빙 바람은 또 다른 원동력, 은폐된 뿌리를 갖고 있다. 자본가들의 이윤욕이다. 대부분의 상품시장이 흘러넘치고 있는 상황에서, 격심한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는 자본가들은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고 신규수요를 창출해야만 한다. 그 와중에 웰빙 바람은 포화상태에 놓인 자본에 숨통을 틔워주는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다른 한편, 웰빙을 추구해야 할 사회적 필요성이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을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심각한 환경위기다. 대기오염, 성인병의 만연, 광우병파동, 사스에 이은 조류독감과 같은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유기농 건강식품, 웰빙 가전제품 등 건강과 관련된 상품들을 구매할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황사현상이 극심해지면서 공기청정기 판매량이 늘어나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제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살림에 부담이 되더라도 웰빙 상품을 구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물가인상 속에서 임금인상은커녕 오히려 실질적으로는 삭감되고 있는데, 노동자들의 생활비는 증가하게 되었다. 노동자는 웰빙의 혜택으로 환경오염의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거의 없다. 대개 가진 자들이나 중산층 정도가, 그리고 호황기라면 일시적으로 노동자의 상층 일부 정도가 웰빙이라는 피난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반면 환경파괴의 진짜 범인 자본가들은 비겁하게도 자신들의 전지구적 범죄에 대해 한 푼도 보상하지 않고 오히려 웰빙 상품 판매로 얻을 이윤에 침을 흘리고 있다. 피해자인 노동자에게는 몸이 망가지면 해고할테니, 건강관리에 힘쓰라며 모든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있다.
      나아가 자본가 언론은 웰빙 상품을 구매할 여력이 없는 노동자들에게 ‘실망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자본가 언론은 고가의 웰빙 상품을 소비하는 것만이 웰빙이 아니며, 작은 생활습관의 변화로도 마음의 평안과 체력 재충전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음을 강조한다. 저녁을 먹고 동네를 뛰는 노동자들에게 당신이 바로 웰빙족이라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펴며 노동자들에게 불만스러운 현실에 만족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즉 자본주의 질서에서도 노동자가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환상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요구하는 바로 그것, 죽어라고 일할 수 있는 능력(노동력)을 환경파괴와 오염 속에서도 마음의 평안과 조깅, 운동 따위로 스스로 가꾸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웰빙을 실현하는 방법
      모두가 웰빙의 윤택함을 누릴 수 있다는 자본가 언론의 말에서 ‘모두’란 노동자를 제외한 나머지를 말할 뿐이다. 한 달 100만원이 겨우 넘는 임금으로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웰빙을 누릴 금전적, 시간적 여유란 있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에게 건강하고 여유로운 생활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건강식품을 먹고 체력단련을 하더라도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공장에서 강도 높은 노동과 위험한 작업환경으로 노동자의 심신은 황폐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노동으로 기력이 빠져 갖가지 질병과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은 문화생활을 할 여유가 없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내야만 다음날 일터로 나갈 수 있다. 더군다나 한해 평균 2,500명에서 3,000명이 산재로 사망하고 그 숫자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에게 더욱 절실한 것은, 웰빙은커녕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온갖 질병과 노동력 고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에게 진정한 웰빙의 시작은 작업장 안전시설의 확대와 노동강도 완화를 쟁취하는 것이다. 더불어 오늘날 사회발전에 걸맞는 생활임금과 노동시간 단축을 쟁취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웰빙이 가능해질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웰빙을 지껄이는 자본가들은 충분한 안전시설과 쾌적한 노동환경을 위한 비용에 대해서는 인색하기 그지없다. 산재사망이 발생해도 산재처리비용이 안전시설 설치비용보다 적다면 자본가들은 전자를 택한다.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확대가 자본가들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강과 목숨을 지키려는 노동자와 노동자를 쥐어짜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는 자본가 사이에서 건강권 쟁취투쟁은 격렬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건강과 목숨을 담보로 이윤을 짜내는 자본가들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야말로, 노동자의 웰빙을 실현하는 유일한 길이다!

    웰빙의 근본 실현수단, 노동해방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자본가들의 착취질서와 노동자의 건강은 한 사회 안에서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우선 일시적인 힘의 대결에서 노동자들이 승리하여 노동환경과 노동조건 개선을 일정하게 쟁취하더라도, 생산수단과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권이 자본가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는 한 건강권은 결코 완전하게 실현될 수 없다. 자본가들은 일시적으로 패배하더라도 생산수단과 노동과정에 대한 통제권만 갖고 있다면 언제든지 노동자의 단결을 파괴하고 다시금 착취를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제적인 자본주의 경쟁 속에서 자본가가 살아남는 것은 노동자의 건강권을 짓밟고 그 대가로 이윤을 짜내는 방법 외에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노동강도가 완화되고 노동환경 개선비용이 증가하면 자본가들에게 이윤은 적게 남게 된다. 이것은 그들의 투자를 제약한다. 결국 경쟁력을 잃은 자본은 격화되는 경쟁에서 불리한 처지에 떨어져 장기적으로 볼 때 도산의 위협에 직면하거나 파산하게 된다. 이런 상황은 대량해고로 이어지게 되고, 노동자들이 쟁취했던 성과는 거대한 실업의 압력 앞에 일시에 사라진다.
      한편에서는 장애인 부부가 전기세를 내지 못해 단전조치를 당하고, 아기 분유값 마련을 위해 아버지가 은행을 털고, 신용불량자가 되어 아이들과 함께 13층 아래로 몸을 던지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수입자동차가 불티나게 팔리고, 홈쇼핑에서 수백만 원하는 건강식품이 순식간에 매진되고 있다. 현실은 이와 같은데 모두가 웰빙족이 되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자본가 언론의 달콤한 속삭임은 얼마나 모순적인가? 자본가들은 이와 같은 모순을 해결할 의지가 없고 오히려 빈부격차를 확대하여 모순의 폭을 넓힌다. 자본주의 사회가 조장하는 웰빙 열풍은 신기루처럼 노동자들을 홀리는 사막의 열풍일 뿐이다. 현실은 사막처럼 황폐하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노동자의 건강권을 쟁취하는 수단은 이윤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자본가 사회가 아니라 인간의 필요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사회, 노동해방 사회를 쟁취하는 것뿐이다. 생산수단이 노동하는 전체 사회구성원들의 공동재산이 되어 공동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고, 노동과정을 노동자들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 때 노동자의 건강권은 완전하게 보호될 수 있다. 노동과 생산의 목표가 이윤증대가 아닌 전체 노동자의 삶의 개선이 될 것이기에 위험시설은 즉각 개선될 것이고, 노동과정은 작업자에게 적합하게 재조직될 것이며,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은 노동강도를 완화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방향으로 사용될 것이다. 또한 노동의 전체 대가를 노동자들이 받게 될 수 있을 때, 노동자들은 여가 시간을 다양한 취미 생활과 여행, 운동으로 사용할 수 있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주기적으로 훌륭한 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웰빙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이런 근본 해결책은 한 나라만의 문제로 국한될 수 없다.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이미 국제적인 수준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와 유전자 조작식품, 사스 및 조류독감 등의 국제적 전염병과 같은 환경위기는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환경과 미래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이윤에만 몰두하는 전세계 자본가들의 질서는 환경위기를 해결할 의지가 없을 뿐 아니라 해결할 능력도 없다. 그들은 오히려 이 세계를 파괴하고 있을 뿐이다.
      국제적인 전망 하에서 전세계 노동자들과의 단결과 연대를 통해 건설되는 전세계인 노동해방 사회만이 모든 인간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한 근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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