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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을 읽자!
칼 맑스의 ≪자본론≫은 1867년에 출판되었다. 아주 오래된 책이다. 이미 21세기로 접어든 이 시기에 ‘낡아빠진’ 19세기의 저작을 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오늘날까지 ≪자본론≫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자. 맑스는 당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있던 영국에서 이 책을 썼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영국 노동자계급은 ≪자본론≫의 정신을 이해하는 데 매우 더딘 편이었다. 과거에 이론적으로 가장 잘 발달했던 독일 노동자계급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세기 독일노동운동의 대표적인 지도자였던 베벨은 언젠가 자신이 ≪자본론≫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독일사회민주당에 속해 있던 대학생이나 교수 출신의 인텔리들은 이 책을 많이 거론하기는 했지만, 매우 기계적이고 편협한 방식으로 맑스 사상을 이해했다. 이들은 ≪자본론≫을 능동적이고 활력 있는 실천을 선도하는 이론이 아니라, 수동적이고 대기적인 습성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려 했기 때문이다. 맑스주의를 ‘비판, 극복’하려 했던 베른슈타인 같은 수정주의자들은 이를테면 계급에 관한 기본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초등학생 수준의 논리로 맑스주의에 덤벼들었다.
자본가들 측을 보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맑스의 책에 대한 이런저런 비난, 조롱, 매도의 목소리는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었지만, 정작 맑스의 주장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비판하는 경우는 없었다. 케인즈 같은 일급 자본주의 경제학자조차 ≪자본론≫을 읽고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자본가적 통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맑스의 주장을 잘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자본가들의 이윤욕을 대변하고 자본주의를 합리화하려 했던 그들로서는 객관적 잣대로 자본가들의 착취구조를 밝히고 과학적으로 자본주의의 낡아빠진 성격을 폭로하는 ≪자본론≫을 절대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아니다. 자본가들이나 그들을 대변하는 지식인들로서는 그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문제는 노동자들이다.
한국노동운동의 경우를 보자. 과거 군사정부 시절에는 함부로 손댈 수 없는 ‘금서’로서, 그리고 지금은 시대에 뒤처지고 고리타분하며 온갖 난해한 공식들로 가득 찬 저작 정도로 ≪자본론≫은 받아들여지고 있다. 부분적으로 ≪자본론≫ 강좌 또는 좀 더 쉽게 ≪자본론≫의 내용을 전달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여전히 그 내용 자체보다는 근거 없는 ‘소문’만이 팽배한 현실이다. “어려운 책이다, 복잡하고 난해해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제 시대가 변해서 ≪자본론≫의 내용은 들어맞지 않는다, 기타 등등.” 두툼한 다섯 권짜리 양장본으로 나온 한글번역판의 육중한 겉모습 또한 그러한 소문과 잘 어울렸다.
그래서 한동안 맑스의 책은 무덤 속에 갇힌 셈이었다. ‘현실감각을 상실한 구제불능의 골수분자들’만이 ≪자본론≫을 붙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더욱이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라고 잘못 알려져 있던 소련과 동독이 무너지자, 자본주의 옹호론자들은 은근슬쩍 ≪자본론≫까지 쓰레기통에 내던지며 승리의 찬가를 부르려 했다. 그러나 그들의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자본주의는 줄곧 휘청거리며 지그재그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과거 월남전에서 낭패를 보았던 미국 제국주의는 최근 이라크에서 다시 한 번 불행을 재현하려 하고 있다. 일본경제의 거품붕괴, 유럽 나라들에서의 높은 실업률은 이제 너무나 익숙한 주제다.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아메리카 및 아시아와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의 빈곤과 정치적 혼란 역시 여전하다. 아니 그 이상이다. 20 대 80 사회라는 유행어가 단적으로 보여주듯이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자본주의 기본법칙은 더욱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자본론≫의 반대자들이 빈정거리며 거부했던 계급양극화 법칙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더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천정부지로 솟는 실업률은 모든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진정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의 증대, 빈부격차의 확대, 계급양극화, 이윤율의 하락, 세계화, 계급대립의 격화 등은 모두 ≪자본론≫에서 이미 다루어진 것들이다. ≪자본론≫의 몇몇 부분들을 잠깐 살펴보자.
“한쪽 끝에서의 부의 축적은 동시에 맞은 편 끝, 즉 자기 자신의 생산물을 자본으로서 생산하는 노동자계급 측에서의 빈궁, 노동의 고통, 노예상태, 무지, 야만화, 도덕적 타락의 축적이다.”
“소수 자본가에 의한 다수 자본가의 수탈과 병행하여 기타의 발전도 더욱더 대규모로 일어난다. 즉, 노동과정의 협업적 형태의 성장, 과학의 의식적 기술적 적용, 토지의 계획적 이용, 노동수단이 공동적으로만 사용될 수 있는 형태로 전환되는 것, 모든 생산수단이 결합된 사회적 노동의 생산수단으로 사용됨으로써 절약되는 것, 각국의 국민들이 세계시장의 그물에 얽히게 되는 것, 따라서 또 자본주의 체제의 국제적 성격의 증대 등등이 더욱더 대규모로 일어난다.”
“이 전환과정의 모든 이익을 가로채고 독점하는 대자본가의 수는 끊임없이 줄어가지만, 빈곤, 억압, 예속, 착취의 정도는 더욱더 증대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 수가 계속 증가하며 또 자본주의 생산과정의 메커니즘 그 자체에 의하여 훈련되고 통일되며 조직되는 계급인 노동자계급의 저항도 또한 증대해간다.”
≪자본론≫이 시대착오적이고 쓸모없다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내용들이 틀렸음을 입증해야만 한다.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오히려 맑스가 생존해 있던 시절보다 지금 ≪자본론≫의 생명력은 더욱 강하게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 대신 인간 자신의 필요 충족과 발전이 보장될 수 있는 사회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본론≫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것이 쉽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자본론≫을 읽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노력 끝에 보답이 있는 법이다. 최근 각고의 노력으로 ≪자본론≫을 독파한 한 노동자는 그 속에서 자신이 나아갈 길을 기쁘게 찾아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은 모든 노동자들이 반드시 읽어야만 한다. 이 책은 노동자계급의 성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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