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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 투쟁이다 : 노해연-28호] ≪칠레전투≫
 정책위  | 2008·05·28 09:08 | HIT :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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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해연_28호]_≪칠레전투≫.hwp (24.0 KB), Down : 353
  • ≪칠레전투≫



      영혼을 뒤흔드는 감동과 함께 세계관의 변화를 일으킬만한 영화를 만날 수는 없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런 영화를 만나는 것은 결코 흔치 않은 일일 것이다. 만약 그런 영화를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은 대단한 행운이 될 것이다. 그런데 동지가 ≪칠레전투≫를 보게 된다면, 동지는 이 흔치 않은 일을 경험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특히 동지가 이 세상은 바뀌어야 하며, 더 나아져야 한다고 굳게 믿는 노동자라면, ≪칠레전투≫는 동지에게 가장 위대하고 감동적인 영화의 하나로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진실의 힘
      이 영화는 이름 있는 배우 하나 등장하지 않으며, 기껏해야 흑백필름으로 당시 있었던 사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일 뿐이다. 이 영화는 주목할 만한 ‘볼거리’도 없다. 현란한 기교도 사용하지 않는다.  3부로 이루어진, 전체가 4시간 30분에 달하는 이 영화의 가장 흔하고 비중 있는 장면은 토론과 논쟁, 인터뷰 장면이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영화제작 경험이라고는 전무한 아마추어들이며, 이 영화의 가장 주요한 촬영기법은 흔히 ‘길게 찍기(롱테이크)’라 불리는 것으로 일어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오랜 시간에 걸쳐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정적인 화면구성은 자칫 관객을 지루하게 만들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자칫 영화를 무미건조한 사실의 기록물로 전락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러한 점들은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다가서기에는 부적합하다고 판단할만한 증거들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칠레전투≫는 분명 영화, 그것도 우리의 영혼을 꿰뚫을 만큼 감동적인 영화이다. 관객들은 등장인물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살아있는 힘을 느끼며, 곧 무언가가 일어날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을 갖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무미건조해 보이는 이 창작기법이 이 영화의 감동을 배가시킨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된 셈이다.
      그러나 결코 ‘무미건조한 형식’ 그 자체가 감동을 낳은 것은 아니다. 진정한 감동의 원천은 당시의 상황 그 자체다. 상황 그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긴장과 역동성이 이 영화에서 생동감과 긴장감을 느끼는 진정한 이유이며, 자신의 임무를 분명히 자각하고 시대가 부여한 과제를 위해 헌신하는 위대한 노동자들, 그들의 치열한 행동과 발언이 이 영화가 전하는 감동의 진정한 실체다. 그렇기 때문에 ‘무미건조할 만큼 객관적인 태도로 있는 것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이 영화의 다큐멘터리 형식은 성장하고 있던 사회세력들 간의 대립 양상, 나아가 역동적으로 성장해나가는 노동자계급의 힘과 한계를 가장 진실하게 기록할 수 있었으며, 더 나은 세계를 꿈꾸며 투쟁해 나갔던 칠레노동자들의 열망과 투쟁을 과장 없이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칠레전투≫는 실제의 역사가 안고 있는 긴장과 역동성, 살아 있는 노동자 영웅들의 생생한 모습을 왜곡 없이 담아낼 수 있었으며, 우리에게 영혼을 뒤흔드는 감동을 선사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진실의 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진실보다 강할 수는 없다. 조악한 흑백필름도, 열악한 제작 환경도, 심지어는 피노체트라는 강력한 독재자도 진실의 힘을 막지 못했다. 진실은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여 이 시대 가장 위대한 예술의 하나로 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영화의 진정한 힘은 진실이었다고, 가장 위대한 예술은 진실을 충실히 담는 것에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진실을 드러내는 조건
      그러나 이 영화의 성공이 단지 ‘상황 그 자체의 재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과제를 기꺼이 짊어졌으며, 당시 상황을 전진하는 노동자계급의 눈으로 바라볼 줄 알고,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 탁월한 안목을 가졌던 노동자적 예술가들의 불굴의 헌신이 결합되어 있다. 만일 이런 노동자적 안목과 세계관이 없었다면, 다큐멘터리 형식은 그야말로 파편적인 취재의 나열에 불과했을 것이고 예술적 메시지를 전혀 담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현실의 진실을 ‘의식적’으로 포착할 수 있었기에 이 영화의 제작자들은 진실을 영화라는 그릇 속에 훌륭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 현실과 진실은 오직 이것을 인식할 수 있는 현명한 사람들에게만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던 시기는 군부쿠데타에 의해 아옌데정권이 무너지기 7개월 전인 1973년 2월이었다. 이 시기는 각 사회세력들이 자신의 실체를 유감없이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현재의 계급 간 균형 상태를 더 이상 인정할 수 없다’는 의식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던 시기였다. 중산층의 반정부 시위를 이용하면서 자본가들의 대대적인 반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가운데 칠레에서는 내전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자본가들은 의도적인 폐업과 사보타주를 단행하고, 자신들이 보유한 모든 종류의 무장력을 본격적으로 동원하기 시작했으며, 제국주의 자본의 재정적 후원을 기초로 아옌데의 민중연합정부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그들의 대중매체를 통해 공공연하게 선포했다.
      그 맞은편에서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현재의 합법적인 정부로는 더 이상 자본가들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으며, 생산현장을 기초로 아래로부터 조직된 새로운 대중적 투쟁조직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의식이 서서히 자라나기 시작했다. 갈수록 첨예해지는 계급대립 앞에서 중간계급들은 급격하게 분화되었는데, 한편에서는 자본가의 편에 선 파시즘적 경향이 대두하기 시작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빈농과 소농의 토지점거운동이나 기술자들의 공장점거운동에의 참여 등 노동자의 편에 선 흐름으로 표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선진노동자들의 임무는 이 시기의 정치적 특징을 노동대중에게 분명히 이해시키는 것, 다시 말해 노동대중에게 새로운 권력을 세우기 위한 대격돌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시킴으로써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지 생생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는 이들 선진노동자운동과 관계된 예술운동 역시 마찬가지로 요청받고 있는 핵심과제였다. 이 영화는 이 과제에 응답하고자 했던 노동자 예술운동의 헌신적 노력을 반영했다.
      구스만을 비롯한 영화제작팀은 “필연적으로 다가올 내전과 여기에서의 승리를 염두에 두고 노동자들의 혁명이 더 전진하기 위해 이 시기의 특징을 분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 작업에 임했다고 한다. 이것은 구스만을 비롯한 영화제작자들이 노동자계급과 대화할 수 있는 탁월한 안목의 소유자들이며, 자신들의 실천적 임무를 생생하게 자각하고 있는 당파적 예술가들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들은 이러한 뚜렷한 목표 하에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으로 ‘상황에 대한 객관적 묘사’라는 촬영전략을 선택했고, “나레이션은 유일하게 가장 핵심적인 배경을 알려주는 선에서 정보를 제한하고, 대부분의 정보는 영화가 기록하고 있는 사건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의해 주어지는 변증법적 스타일”을 편집에 적용했다. 이 점에서 이 영화의 성공을 ‘엄격한 객관성’ 때문이라고 일반화하여 말하는 일부 몰계급적 평론가들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스만과 그 동료들은 당시의 칠레사회를 의식적으로 분석했고, 당파적 관점에서 실천적으로 접근하면서 목적의식적으로 촬영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칠레전투≫에 적용된 방법상의 특징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시기가 혁명적 격변기였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구스만은 이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맑스와 레닌의 주요 사상과 개념, 그들이 예견한 모든 일들이 칠레에서 현실의 일로 벌어졌고, 노동자들은 이 사상의 실현자였다.” “1973년 칠레인들이 마주친 주요개념은 ≪국가와 혁명≫, ≪프랑스내전≫이라는 책에서 나왔다”고 술회한다.
      그런데 이런 혁명적 시기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말과 행동 사이의 간격이 그다지 넓지 않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는 말은 행동에 기반하며, 행동을 반영하고, 행동으로 연결된다. 지루할 정도로 수없이 반복되는 다양한 사회세력들의 인터뷰와 토론, 논쟁 상황의 생생한 묘사가 우리에게 그토록 긴박감과 팽팽한 긴장감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경우 이런 형식들은 상황의 전체상을 드러낼 수 있는 장치이며, 각 계급들의 세력배치를 역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다른 한편 ‘편협한 당파적 관점을 뛰어 넘어 가능한 다양하고, 많은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자’는 발상은 당시 상황의 진실을 드러내는 데서 효과적인 태도였다. 왜냐하면 당시의 칠레노동자들은 자신의 경험에 의해 계급투쟁의 이론을 발전시켰으며, 모든 이론적 표현은 자신들의 구체적 실천과 생생하게 연결된 높은 수준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노동자들 사이의 가능한 많은 토론을 보여주고 인터뷰를 따오는 것은 당시로서는 높은 수준의 계급의식을 제시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우리가 노동자들의 발언 장면 하나하나에서 힘을 느꼈던 것은 직접적으로 여기에서 연유한다. 이런 시기에는 이미 자신의 실천 하나하나에서 노동자정신을 드러내고 있는 광범위한 노동자들을 전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당파적인 태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편협한 당파적 관점을 뛰어넘자’는 전략이 가장 당파적일 수 있다는 역설이 성립했던 당시의 객관적인 상황이다. 그러므로 ≪칠레전투≫는 사실 그 자체에서 오는 진실의 힘을 계급적 안목 그리고 주어진 특정한 상황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과 결합시킬 수 있었던 노동자적 예술가들이 빚어낸 합작품이라고 정의해야 할 것이다.
      이 위대한 이야기는 1973년 9월 11일, 대통령궁이 쿠데타군의 폭격을 받는 저 유명한 장면에서 시작된다.

    자본가들의 야만성
      그러나 이 장면은 생각보다 충격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영화가 곧장 뒤이어서 도대체 왜 이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는가를 냉정하게 추적하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야만적인 사건이 일어나기 6개월 전으로 옮겨간 카메라는 주로 국내외 자본가들과 파시즘세력이 민중연합정부를 무너뜨리고 노동자들의 공세를 차단시키기 위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집회에서 그들이 쏟아내는 연설과 인터뷰를 통해 드러나는 민중연합정부와 노동자들에 대한 그들의 적대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며, 분명하고도 노골적이다. 인터뷰 내용, 자본가들의 집회에서 행해지는 연설과 토론의 반복적 배치, 그리고 그들의 격렬한 반정부 시위의 모습은 자본가들의 계급적 적대감이 폭발적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는 당시의 특징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를 통해 영화는 그들이 민중연합정부를 붕괴시키고 노동자들의 혁명을 봉쇄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점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이렇게 이 야만적인 사건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조건, 다름 아닌 치열한 계급적 대립을 면밀하게 추적함으로써 영화는 폭격이 결코 우연이 아니며,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사건이었음을 드러내준다. 그리하여 관객들은 1부가 끝나가는 막바지에 이르러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한순간의 야만성이 아님을 분명히 이해하게 된다. 이를 통해 다시 처음의 폭격장면이 갖는 진정한 성격에 치를 떨게 된다.
      “그것은 단지 우리가 지키고자 했던 아옌데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었다. 자본가들의 야만성은 단지 아옌데라는 한 개인의 생명을 무자비하게 박탈한 것에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패배였으며, 죽음이었다.”  “우리 모두가 자본주의의 야만적인 군홧발에 짓밟혔다.”
      그러나 아옌데궁의 폭격장면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더라도, 그것은 결코 패배주의적 정서는 아니다. 노동자들은 1부를 통해 계급투쟁이란 얼마나 무자비하며, 여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엄격해야 하는지를 효과적으로 이해한다. 제작자들이 1부에서 아직 자본가들에 맞선 노동자들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대비시키지 않으며, 단지 참조사항 정도로 다루는 것은 이 점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이는 2부와 3부에서 그려지는 노동자들의 생생한 모습을 통해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이것은 곧 칠레에서 벌어진 일련의 과정을 변증법적으로 종합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된다.

    노동자계급의 힘
      2부와 3부에서는 1부에서 아직 암시적으로만 그려졌던 반혁명에 맞선 노동자들의 저항과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을 본격적으로 묘사한다. 이 생생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접하면서 우리는 비록 아옌데정부에 비해 압도적인 힘과 수단을 갖고 있음에도 자본가들이 왜 이 민중연합정부를 쉽게 무너뜨리지 못했는지, 그리고 왜 쿠데타에서 그토록 신중하고 조심스런 태도를 취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동시에 이를 통해 우리는 자본가들이 그토록 노골적으로 이 정부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열망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허약하고 우유부단했으며 심지어는 재앙적인 정책들을 구사했던 민중연합정부가 어떻게 그 오랜 시간을 견딜 수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그렇다. 사실 1973년 2월에 그들이 진정 두려워했던 것은 민중연합정부가 아니라 이제 막 자신의 잠재력을 드러내기 시작한 맹아적 노동자권력이었다. 1973년 9월 11일에 무너진 가장 중요한 것은 민중연합정부가 아니라 아직 채 개화하지 못한 노동자들의 혁명적 잠재력이었다. 민중연합이 집권했다고 하지만, 당시에 자본가들은 모든 영향력 있는 언론매체의 70%이상을 장악하고 있었다. 또한 실질적인 의미에서 모든 군부대, 의회권력의 55% , 미 제국주의 자본의 열렬한 후원, 여기에 아옌데정부가 국유화한 기업들에 형성되어 있던 노동귀족적 조합(당시 칠레의 가장 주요한 산업에 거점을 두고 있었으며, 자신의 노동귀족적 이해를 앞세워 민중연합권력에 맞서 반정부투쟁을 벌였던 엘 테니엔트 구리광산의 노동조합이나 운송사업 분야의 노동조합들)까지 사회의 결정적 힘들을 여전히 갖고 있었다.
      그러나 반대편에 있는 노동자들도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힘을 창조하고 있었다. 이미 식물로 전락하기 시작한 민중연합정부와는 달리 이 힘은 대단한 잠재력을 드러냈다. 실질적으로 노동대중의 생존을 조직했던 민중상점이나 자치조직들이 만들어지고 공장에서는 공장점거운동을 중심으로 자본가들의 사보타주에 맞선 새로운 생산시스템이 가동되었다.
      노동자들은 이런 공장위원회와 각종 자치적 지역조직들을 연결하고, 농촌지역에서의 토지점거운동과 자신의 운동을 연결하기 시작한다. 이런 영웅적인 조직화를 통해 그리고 국내외의 자본들이 마비시켜버린 경제를 헌신적이며 창의적인 추가노동을 통해 새롭게 작동시키면서 그들은 자본가들의 질서에 맞서는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새로운 질서에 대한 노동자들의 자부심과 긍지, 그리고 민중의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 이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실제적이었는지는 인터뷰와 토론장면을 통해 확인된다.
      예컨대, 반동적인 기독민주당을 지지하는 한 노동자가 이 새로운 노동자 질서로 편입되어가는 과정을 그리는 다음과 같은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자본가들의 반정부파업에 맞서 노동자들이 어떻게 투쟁하고 있는지를 취재하기 위해 제작팀이 한 공장을 찾았을 때, 여기에는 자신의 확고한 정치적 신념에 기초해서 일하는 노동자만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영화제작팀과 한 노동자가 대화를 나눈다. “ 당신은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가? - 기독민주당을 지지한다. 그런데 왜 여기에서 일하고 있는가? - 난 노동자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이 노동자는 정치적으로는 민중연합정부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이미 자라나기 시작한 새로운 노동자조직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지지하고 있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이 노동자조직을 신뢰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이미 아래로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이 노동자조직이 더욱 확산되어야 하며, 자본가들의 점증하는 공격과 군사적 행동에 맞서 노동자들이 무장할 필요성을 강하게 역설하면서 이에 미온적인 관료와 싸우는 현장노동자들의 모습은 이미 새로운 질서를 창출할 수 있는 위대한 노동자들이 칠레에서 탄생했음을 느끼게 해준다. 이런 장면들을 통해 우리는 노동자해방이란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혁명의 하루는 일상 시기의 수년에 맞먹는다고 했던 말이 진정으로 어떤 의미였는지를 여기서 깨닫게 된다.
      아마 모든 위대한 노동자들의 혁명이 이러했으리라. 우리 노동자들이 책 속에서 배워왔던 계급투쟁의 원리와 노동자혁명의 이론이 구체적이며 실제적인 경험 속에서 살아있는 목소리로 표출되고, 사태의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는 뛰어난 의식으로 평범한 노동자들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나날이 자기 운명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가는 노동자들, 민중연합정부가 직면한 모든 난관의 실체를 정확하게 깨닫고 있으며, 자본가들에게 맞서 자신이 수행해야 할 과제를 헌신적이고 실제적으로 수행해가는 노동자들, 이렇게 계급투쟁과정에서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노동자투사들이야말로 ≪칠레전투≫의 진정한 주인공들이다.

    아옌데의 최후 : 노동자계급이 해방을 위해 전진해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비장한 서사시
      2부의 내용은 노동자집회의 모습을 많이 비춘다. 여기에서 가장 많이 외쳐진 구호는 “아옌데! 우리가 당신을 지켜주리라!”와 “민중권력 수립!”이었다. 이 구호들은 단지 선언이 아니며 실제적이었다. 아옌데정부는 노동자들을 결코 방어하지 못했으나, 반대로 노동자들은 이 가련한 민중연합정부의 붕괴를 막고 있었다. 그러나 영원히 이 동요하는 아옌데정부의 붕괴를 늦출 수는 없을 것이었다. 문제는 당시 상황에서 불가피한 아옌데정부의 붕괴가 자본가의 승리를 의미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노동자정부의 창출을 의미할 것인가 하는 점뿐이다. 민중권력이라는 슬로건은 노동자정부로의 전진을 위해 노동자들이 막 내딛은 첫 걸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 위대한 노동자들의 전진은 안타깝게도 멈추고 말았다. 2부의 마지막은 다시 대통령궁의 폭격장면이다. 최후의 그날 아옌데는 대통령궁에서의 장엄한 최후를 선택했다. 이 점은 그가 노동해방의 지도자는 될 수 없었더라도 최소한 존경할 만한 영혼의 소유자이기는 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대통령궁에서 행한 최후의 라디오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노동자 여러분에게 저는, 절대로 굴복하지 않겠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 없습니다. 이 역사적 전환점에서 민중의 신뢰에 목숨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적들은 힘이 있고 나를 부술 수도 있지만 사회의 전진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민중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언젠가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나은 사회를 향해 위대한 길을 열 것이라고 여러분과 함께 믿습니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그러나 어떤 위대한 개인의 영혼도 전진하는 노동자계급의 대의,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의 영혼보다 위대하지는 못하리라. 아옌데는 죽음으로 노동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은 졌지만, 그럼에도 그가 민중연합정부를 이끌며 행한 상당수의 정책은 노동자들에게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기독민주당과의 제휴, 노동자들의 무장 요구 묵살, 군부가 중립을 지킬 것이라는 환상, 봉기 없는 평화로운 이행에 대한 환상 등은 노동자들이 진정한 노동해방 사회의 토대를 발전시키는 것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그가 패배자로 장렬히 전사할 수밖에 없게 된 진정한 이유다.
      이 점에서, 즉 노동자계급의 견지에서 볼 때는 그의 정신이 결코 위대하다고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최후는 정치적으로는 한 비극적 세계관의 종말로 기록되어야 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도 분명하다. 아옌데의 최후의 연설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그의 죽음이 결코 칠레노동자들의 위대한 꿈과 열정의 패배를 의미하지 않으리라. 쿠데타 이후 수천 명이 학살되고, 수만 명이 장애인이 되었으며, 무려 100만 명의 칠레인이 망명의 길에 오르고, 노동귀족적 노동조합을 제외하고는 모든 노동자조직들이 불법화되는 거대한 시련을 겪었지만, 그 위대했던 칠레노동자들의 행군은 다시 개시되고 있다.
      ≪칠레전투≫는 오늘날 후대의 노동자계급에게 칠레노동자들의 위대한 시도를 상기시키고 있다. ≪칠레전투≫를 보며, 그 위대했던 칠레노동자들의 열정을 우리는 공유할 것이다. 전세계 노동자들은 이 위대한 전진에서, 그리고 안타까운 패배에서 승리를 여는 열쇠를 발견할 것이다. 그리하여 ≪칠레전투≫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노동자계급의 위대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비장한 서사시로 기억될 것이며, 위대한 승리를 향한 ‘예포’로 기록될 것이다.

    ≪칠레전투≫는 계속될 것이다
      ≪칠레전투≫의 진실은 끊임없이 노동자들을 고무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적들을 두려움에 떨게 할 것이다. 이 영화는 노동자들에게 자기 자신의 시대적 과제를 인식시키며 위대한 승리자의 본능을 일깨울 것이다. 그리하여 칠레민중과 위대한 영화의 창조자들이 바랐던 것처럼 이 영화는 계급투쟁의 살아 있는 교본이 될 것이며, 마침내 노동해방의 승리를 준비하고 기록하는 작은 일부가 될 것이다.
      이 결정적 승리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이 영화와 함께 진지하게 탐색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뒤흔드는 최상의 영화를 만났다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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