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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노해연-25호] 선진노동자가 실천하는 방식 - 미래를 내다보며 꽁무니주의를 배격하자!
 정책위  | 2008·05·12 18:05 | HIT :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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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진노동자가 실천하는 방식  -  미래를 내다보며 꽁무니주의를 배격하자!


      노동자계급이 하나의 동일한 생존 조건을 갖고 있음은 분명 진실이다. 이로부터 모든 노동자가 단결할 수 있는 조건이 태동하고 단결할 필요성 또한 제기된다. 그러나 주어진 특정한 시기에 모든 노동자가 이 단결에 충실한 것은 아니다. 많은 노동자들은 집단주의적 본능을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기주의나 자본가들에 대한 굴종으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이들은 전체 노동자들 중 후진적 노동자층을 이룬다.
      간혹 이들은 투쟁에 나서기도 하지만, 그 투쟁은 아직 상당히 제한적인 수준에 머문다. 많은 경우 이들은 ‘나에게 당장 직접적 이익이 제공되느냐’ 하는 관점에서만 문제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이른바 실리주의라 불리는 이 경향이 압도적으로 팽배해지면, 비록 투쟁을 통해 약간의 개선이 이루어지더라도 노동자의 가치관과 세계관 즉 노동자의 마음 속 깊은 근본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직 아니다. 또한 상황이 어려워지고, 그래서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희생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순간 이들은 개별화되고 분열되어 자본가에게 굴종할 수 있다. 판단의 기준이 ‘나에게 당장 이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에 있다면 이런 비극은 상황이 불리해지면 언제든지 우리를 덮칠 수 있다. 노동운동이란 이들 후진적 노동자들을 노동자의 집단주의적 세계관에 충실한 선진노동자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선진노동자의 태도
      선진노동자란 노동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먼저 보여주는 안내자로 규정할 수 있다. 이것은 투쟁 하나하나에서, 일상적인 현장활동 하나하나에서 선진노동자들이 노동자의 대의에 충실한 노동자로서의 면모를 입증해야 함을 뜻한다.
      물론 선진노동자들은 후진적 노동자들의 현실적 상태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가령 가난에 몸부림치는 노동대중에게 임금인상이란 대단히 소중한 문제다. 따라서 임금인상투쟁은 광범위한 노동대중을 투쟁으로 이끌고, 이 투쟁을 통해 노동자의 대의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유력한 수단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임금인상투쟁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어떤 임금인상투쟁은 후진적 노동자들의 편견과 한계를 고스란히 반영하면서 진행된다. 이 경우 투쟁은 단지 실리주의적 관점에서 전개되고 평가된다. 반면 임금인상투쟁은 착취자에 맞선 노동자의 자부심에 입각한 투쟁, 그리고 전체 노동자들과 단결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투쟁은 노동자의 대의를 위해 최선을 다했느냐의 관점에서 전개되고 평가될 것이다.
      투쟁의 결과에서도 아주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실리주의적 투쟁의 경우 노동자들은 자기 자동차를 더 좋은 것으로 바꾸고, 휴일에 가족들과 외식하며, 자식들을 좋은 학원에 보내는 등의 개인적 개선의 수단으로만 임금인상의 성과를 활용할 것이다. 이때 노동자들은 상당 부분 보수화되고 가족주의에 사로잡혀 분할되고 만다. 반면 노동자의 대의와 자부심에 입각해 투쟁이 전개되었다면 결과는 다를 것이다.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의 성과들을 노동자가 가야할 방향을 토론하고 노동자의 관점을 학습하며 노동자의 문화를 향유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것이다. 이를 통해 노동자들의 의식은 높아지고, 그들은 세계에 대한 더욱 명확한 관점을 획득할 것이다.
      또한 이들은 임금인상 성과의 일부를 투쟁하는 타 사업장 노동자 동료들을 지원하는 데 사용할 것이다. 이를 통해 노동운동은 더욱 확대될 것이고, 더 많은 노동자들 속에 뿌리내려 갈 것이다. 가족 문제에서도 이 노동자들은 노동운동의 가지를 아내와 아이들에게까지 확대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임금투쟁의 성과를 적극 활용할 것이다. 가령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노동자 가족들이 함께 교류하는 특별 프로그램을 계발해나갈 수 있다.
      선진노동자들만이 편협한 실리주의적 길로부터 후진층 노동자들을 이탈시켜 진정한 노동자의 길로 이끌 수 있다. 선진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 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임금투쟁이나 노동조건 개선투쟁 등에서 최선두에 서서 가장 철저하게 투쟁하지만, 그럼에도 실리주의 정신이 아니라 노동자의 세계관에 입각해 투쟁을 지도해야만 한다. 물론 이것은 여러 거대한 압력들과 맞설 것을 요구한다. 우선 이러한 선진노동자들에 대해 엄청난 두려움을 갖고 있는 자본가들은 바로 그 두려움 때문에 이들을 철저하게 탄압한다. 이런 노동자는 그 무엇으로도 회유하고 굴복시킬 수 없으며, 이런 노동자의 영향력이 뿌리를 내리면 장기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볼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압력은 후진적 노동자들의 편견과 낡은 잔재로부터 발생한다. 선진노동자들은 이 후진적 압력을 거스르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꽁무니주의를 배격해야 한다
      노동조합 간부가 모두 선진노동자인 것은 절대 아니다. 간부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일부 간부들은 후진노동자들의 정서와 편견에 영합하고 굴종한다. 하지만 다른 일부 간부들은 대중투쟁을 통해 후진적 정서와 편견의 벽을 무너뜨리면서 선진노동자의 수준으로 노동자들을 인도한다. 전자는 간부이지만 후진적 노동자다. 후자는 선진노동자로서 간부다. 노동조합의 생명력은 간부들을 후진적 노동자들이 장악하느냐 아니면 선진노동자들이 장악하느냐에 의해 상당 부분 좌우된다.
      때때로 다수 노동자들은 후진적 정서에 노출된다. 이때 단순히 조합원들이 당장에 갖고 있는 일반적 생각과 정서만을 반영하려 한다면, 그는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후진적 방향으로 노동조합을 끌어가는 셈이다. 이와 달리 선진노동자들은 노동자의 대의에 입각하여, 후진적 편견에 타협하지 않으면서 아닌 것에 대해서는 ‘아니다’라고 과감히 진실을 말해야 한다. 단순히 후진 대중의 정서에 영합하면서 구미를 맞추는 데만 급급한 후진적 활동가들의 행동은 꽁무니주의다. 꽁무니주의란 대중의 선두에서 앞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현재 상태에 영합하고 뒤따르는 경향을 말한다. 이 꽁무니주의의 정신적 기초는 바로 ‘출세주의’ 정치다. 대중을 대변한다는 이름으로, 실제로는 대중에게 영합해서 인기를 끌고 이 인기를 바탕으로 자기의 개인적 실속을 챙기면서 화려한 지위를 확보하기를 꿈꾸는 것이 바로 대중추수주의 즉 꽁무니주의의 본질이다. 따라서 대중추수주의가 선거주의로, 그리고 이 선거주의가 출세주의로 계속 이어지는 것, 그것은 그 정신적 기반에서 볼 때 하등 이상하지 않으며 필연적인 것이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모든 출세주의는 대중추수주의를 쌍둥이처럼 동반한다.
      ‘현재’의 대중의 의식과 상태란 아주 모호한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집단주의적 본능과 함께 이 사회가 부단히 주입하는 자본가적 개인주의가 서로 섞여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동운동이 아직 강력하지 않을 때, 자본가들의 개인주의는 노동대중의 후진층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상황에서 선진노동자들의 임무란 분명하다. 실리주의와 개인주의 등 자본가들이 주입하는 경향에 맞서 투쟁하면서, 노동자들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집단주의 본능을 해방시켜야 한다. 대중을 대변한다는 것은 대중의 ‘당장의 의식과 상태’에 영합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당장의 의식과 상태’는 때로는 분열적이고 굴종적이며 공포감에 사로잡힌 비열함일 수도 있다. 따라서 선진노동자들이 대변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대중이 당장에 갖고 있는 의식이 아니다. 대변해야 하는 것은 ‘대중이 당장에는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이 장기적이고 근본적으로 권리를 쟁취할 수 있고 해방될 수 있는 객관적 길’이다. 이 길은 투쟁과 단결, 연대, 노동해방으로 모아진다. 여기에 집중하는 노동자만이 진실로 노동대중을 대변하는 활동가며, 이들은 때때로 ‘당장’에는 지지를 받지 못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노동대중의 진정한 안내자이자 지도자로 승인받기 마련이다.
      때때로 대중들은 이 ‘객관적인 길’을 잃고 헤맨다. 여기에 자본가들의 사기술과 회유, 거짓 이데올로기 공작이 결합하면 대중들이 자기의 진정한 이익이 가리키는 길 대신 엉뚱하게 다른 길로 가려고 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선진노동자들이 ‘선진’ 노동자인 이유는 이처럼 노동대중이 헤매고 있을 때도, 이 ‘객관적인 길’을 흔들림 없이 지적하고 확신에 찬 어조로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의 대중들의 정서와 의식을 핑계로 그 길을 밝혀주고 앞장서서 가기를 포기하는 것, 그것은 꽁무니주의를 통해 간부로 출세하려는 불순한 짓이거나 아니면 그 자신이 노동자가 가야 할 길을 알지 못하고 헤매는 후진적 노동자에 불과함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므로 노동대중을 대변한다는 것은 노동대중의 ‘장기적 이익’, 그리고 노동자 전체의 ‘집단적 이익’을 수호하는 것으로 정확히 규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꽁무니주의자들이 혼동하는 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그들은 대중을 대변하는 것을 ‘당장 대중들이 원하는 것’에 단순히 영합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때 그들은 대중이 아직 떨쳐버리지 못한 부서별 직종별 분할의식, 사업장별 분할의식, 성별 분할의식, 고용형태(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별 분할의식을 무의식적으로 확대하는 역할을 하게 되고, 눈앞의 실리적 이익에만 집착하도록 대중을 방치하게 된다. 그런데 ‘눈앞의 실리적 이익’이라는 미끼를 통해 투쟁정신과 단결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면 어떤 자본가라도 그 편을 선택할 것이다. 당장 몇 푼의 돈을 미끼로 투입함으로써 장기적으로 노동조합 무력화나 파괴, 무자비한 착취강화 등 몇십 배의 성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꽁무니가 아니라 선두에서 대중을 노동자의 관점으로 이끄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무엇이 노동자가 가야하는 길인가’를 선진노동자들이 보여주고 안내하지 않는다면, 노동대중이 자본주의가 몸속에 심어놓은 오물들을 토해버리면서 세상의 주인공으로 도약할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 또한 당장 손에 쥐는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이익을 중심에 두고 투쟁력과 노동자 의식, 연대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을 선진노동자들이 반복해서 설득하지 않는다면, 노동대중은 자본가들이 들이미는 사악한 술책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어떤 선진노동자들은 이렇게 불평한다. “대중들이 실리주의에 빠져들고 개별화되고 있어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누가 이 상황을 초래했는가? 이런 결과는 대중의 후진적 수준과 정서를 선진노동자들이 계속 방치하면서, 노동자의 관점에서 투쟁과 실천을 지도하지 않아왔던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되고 확대된 불순물을 반영한다. 한마디로 그것은 선진노동자들이 자기가 있어야 할 지점에 있지 않아왔던 결과, 쓰디쓰더라도 진실을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았던 게으름의 결과, 분명하게 경고하고 지적해야 할 때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결과다. 따라서 이것은 불평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선진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의 정신으로 실천을 재조직하고, 바로 이것을 바탕으로 원자화되는 대중을 다시 하나로 결집시키고 노동자의 관점으로 무장시키지 않는다면 탈출구는 어디에도 없다. “꽁무니주의 배격, 노동자의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이익에 입각한 실천”이 선진노동자의 당면 실천방향이어야 한다.

    대중에 대한 진정한 책임성
      가장 열성적이고 철저한 노동자, 그리고 투사로서의 생명력이 긴 노동자를 보면 대중에 대한 그의 책임성이 분명하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이 책임성은 당장의 대중의 의식이 아니라 대중이 전진하고 권리를 사수하며 해방을 쟁취하는 데서 의지해야 할 객관적 수단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대중에 대한 이런 책임성으로 무장한 노동자만이 꽁무니주의 출세분자보다 만 배 이상 더 대중을 굳게 신뢰하는 진정한 대중지도자다. 그는 당장 대중의 의식이 높지 않더라도, 자신의 맹렬한 실천을 통해 대중들이 노동자의 관점을 받아들일 것임을 확신하고 있기에 멀리 내다보며 굽힘없이 전진할 수 있는 용기와 인내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는 당장 커다란 투쟁이 가능한가에 실천의 기준을 설정하지 않는다. 그는 당장 투쟁이 벌어지지 않을 수 있고, 심지어는 몇 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지만, 지금 당장부터 투쟁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단결과 노동자 의식을 확대시켜 나가지 않는다면 미래의 투쟁을 준비할 수 없다는 점에 실천의 기준을 설정한다. 당장 불꽃처럼 타오르는 맹렬한 투쟁이 없더라도, 심지어는 대중이 공포감에 굴복해 자신감을 갖지 못하면서 수동화 되더라도 그들은 묵묵히 최선을 다해 실천함으로써 대중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
      반대로 단순히 조합원 대중의 당장의 의사를 반영하는 데만 머무는 노동자들의 경우, 만일 이 ‘당장의 의사’가 자신감이 없고 수동화된 상태를 반영한다면 대개 채 몇 년도 지나지 않아 변질하고 역동성을 잃으며 사기가 꺾이고 만다. 또한 그들은 겉으로는 대중에 대한 고려를 말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고려란 사실 대중의 원대한 발전 가능성을 믿지 못하고 단순히 대중의 뒤에 숨어 자신의 후진성을 감추려 하는 변명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들은 ‘당장 대중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객관적 사실로부터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끈질기게 실천하면서 준비해야 한다’는 실천적 결론으로 나아가는 대신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한 결론을 끌어낸다. 이들은 ‘당장’ 대중이 투쟁으로 폭발할 수 있을 때는 기운차게 전진할 수 있지만, 오랜 기간의 집요한 준비작업을 통해서만 대중적 투쟁이 가능하다는 점이 분명해질 때는 대중을 핑계대면서 무기력해지고 만다.
      이들은 선진노동자라면 ‘당장’의 관점이 아니라 ‘미래’의 관점에서 대중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결여하고 있다. 이것의 기초에는 그들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노동대중의 전진 가능성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왜냐하면, 이 전진 가능성을 믿는다면 ‘당장의 대중적 상태’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내다보면서 끈질기게 투쟁을 조직해나갈 수 있지만, 이것이 약화되면 스스로 미래를 낙관하지 못하면서 무기력과 수동주의의 늪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항상 ‘대중의 객관적 상태’를 입에 달고 다니지만, 사실 문제가 되는 것은 대중이라기보다는 그들 자신의 무기력한 객관적 상태와 자신감의 결여다. 심지어는 이런 핑계대기가 대중을 발판으로 간부직이나 국회의원, 시장, 구청장 따위의 화려한 지위를 획득하려는 출세주의의 표현인 경우도 있다. 보수 정치가들이 항상 말로는 ‘국민대중의 여론을 대변하는 활동’을 떠벌이지만 사실 대중을 발판으로 한 몫 차지하려는 출세분자들의 위선에 불과하듯, 출세주의에 감염된 노동자들이 내뱉는 ‘대중의 요구와 대중에 대한 책임성’이란 대중의 후진적 분위기를 이용해 타협하고 굴종하며 출세하려는 비겁한 핑계대기에 불과하다.
      노동대중에 대한 진정한 책임감으로 무장한 노동자만이 소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 노동자들은 마치 소금과도 같은 역할을 담당하며, 바로 이들에 의해 대중의 잠재력이 해방됨으로써 노동운동은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대중은 바로 이들을 통해 낡은 자본가적 허위의식과 후진적 편견을 목에서 토해내면서 노동자계급이 권리를 지키고 승리하는 길을 향해 전진해나간다. 노동조합의 힘과 가능성, 잠재력 또한 이러한 선진노동자들의 분투에 의해 장기적으로 결정된다.
      실제로 역동적이고 살아 움직이는 투쟁을 경험한 노동자라면 이런 투쟁은 노동자의 대의에 입각한 선진노동자들의 정신이 인도하고 있다는 점을 승인할 것이다. 반대로 단순히 실리주의 정신에 감염된 후진적 노동자들이 간부로서 주도하는 투쟁은 약간의 어려움만 있어도 곧장 그 사기와 역동성이 꺾이고 만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을 덮치는 어려움과 탄압 앞에서 곧장 대중을 방기하고 제 살 길만 찾는 관료로서의 본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태반이다.
      대중의 현재 상태를 핑계로 꽁무니주의적 실천을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노동대중의 잠재력을 불신하지 말자! ‘대중을 대변한다’는 명분으로 사실상 대중의 발전 가능성을 부정하면서, 대중이 단순히 당장의 실리에만 집착하고 자본과의 타협과 협조주의에 의존하도록 방치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자. 만일 동지가 단결과 전투정신, 연대의식에 노동자의 희망이 있음을 승인한다면 이 점을 명심하자. 노동대중은 실리주의를 뛰어넘어 노동자의 집단주의에 입각해 사고하고 실천하며 자신의 투쟁과 삶을 평가할 충분한 권리와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오늘 내일이 아니라 수년, 심지어는 수십 년간의 경험을 통해 “바로 그들이 우리 노동자가 살아남고 전진하며 해방세상을 일궈나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한 지도자다. 그들이 옳았다!”고 노동대중이 승인할 수 있는 바로 그러한 노동자가 진짜 지도자다.
      그렇다면 꽁무니주의 대신 노동자운동의 근본 대의에 충실한 실천을 펼쳐나가자! “대의에 입각한 긴 호흡, 그러나 모든 사안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힘찬 발걸음”, 그것이 우리 선진노동자의 구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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