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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노해연-46호] 패배한 사업장에서 선진투사의 과제
 정책위  | 2008·05·12 11:58 | HIT :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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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배한 사업장에서 선진투사의 과제





    “자본에 맞선 투쟁들 속에서의 사건들과 우여곡절들이, 승리뿐 아니라 오히려 패배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애용하는 갖가지 엉터리 약들의 불충분함을 깨닫도록 할 것이다(≪공산당선언≫, 1888년 영어판 서문).”

    한국의 노동운동이 전반적으로 침체돼있는 속에서도, 여러 사업장에서 소중한 투쟁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 투쟁들이 노동운동의 정체된 분위기를 하루아침에 변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투쟁들이 없다면, 자본가들에 대한 굽힘 없는 저항정신을 유지하면서 내일을 준비하는 것은 아주 어려워질 것이다. 물론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 투쟁을 조직하고 이끌어나가는 것은 종종 큰 희생을 동반한다. 지금처럼 쇠퇴하는 자본주의가 노동자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반면, 노동자운동의 힘은 회복되지 못하고 가라앉아 있는 상황에서는 오랜 기간에 걸쳐 격렬하고 완강한 투쟁을 전개하더라도 성과라 할 만한 것을 쟁취하는 경우를 거의 볼 수 없다.
      물론 자본가들에 대한 공포심을 떨쳐버리고 투쟁에 나섰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를 가진다. 그것만큼 중요한 성과도 없을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하는 노동자들이라면 당장 손에 쥐어지는 성과가 없더라도 크게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노동자 대중이 손쉽게 이런 결론에 도달하지는 않는다. 아직 투쟁의 계급적 의의를 이해하는 데 도달하지 못한 상당수의 대중에게는, 투쟁 과정에서 치러야 하는 커다란 희생과 손실이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만리장성처럼 다가온다. 특히 투쟁이 끝난 이후에는 그간의 희생과 손실에 비해 손에 쥐어지는 것이 거의 없는 냉혹한 현실에 직면하면서 깊은 좌절감을 느낀다.
      대중 속에서 작동하는 이러한 심리 때문에 정작 그 투쟁이 가졌던 중요한 의의와 진정한 성과는 망각되곤 한다. 투쟁 시기에는 아주 작거나 거의 신경 쓰지 않았던 손실과 피해가 투쟁이 끝난 이후에는 거대한 장벽처럼 다가온다. 투쟁 시기에는 동지들과 함께 단결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이 가장 소중하게 느껴졌을 것이지만, 투쟁이 마무리된 다음에는 오직 자신의 문제만이 가장 절박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와 나란히 대중 속에서 단결력과 투쟁력은 일시적으로 약화되기도 한다. 투쟁의 기억, 투쟁 시기의 열정, 단호한 용기, 동지들 간의 굳건한 신뢰, 이 모든 것들이 점차 사라져가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는 자본가들에게 돌려져야 할 비난과 책임을 함께 투쟁했던 동지들에게 서로 떠넘기는 분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때에는, 앞장서서 투철하게 싸워나갔던 동지들도 적잖이 영향을 받게 된다. 전면적으로 투쟁이 진행될 때 선진적인 동지들은 최선두에서 대열을 이끌어간다. 이들은 가장 확고하고 전투적인 기운을 투쟁대열 전체에 불어넣으면서 그 투쟁이 더욱 멀리, 곧게 전진해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투쟁이 비타협적인 형태로 진행되고 대중의 사기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이 선진적인 동지들 역시 전투적 정신과 확고한 신념을 지켜나갈 수 있다. 하지만 투쟁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거나 패배로 끝난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투쟁의 과정에서 대중을 계급적 단결투쟁의 정신으로 단련시키는 데 실패한 선진적인 동지들은 외딴 섬처럼 고립되고 무기력해진다. 경우에 따라 현장의 다른 노동자들로부터 심하게 고립될 수도 있다. 그래서 대중이 의기소침해지는 것 이상으로 선진투사들이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대중의 의식 속에서 단결투쟁 정신이 희미해지는 것만큼 선진투사들의 의식 속에서도 단결투쟁 정신이 약해질 수 있다. 이 경우 선진투사들이 엄청난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투쟁이 성공적으로 전개된 경우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가령 자본가들이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동자들이 먼저 기선을 제압하고 파업을 확산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일시적이나마 중요한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경우 투쟁에 나선 대중 속에서는 ‘단결하여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정당한 자신감과 낙관의 분위기가 자라난다. 선진투사들은 이 자신감이 더욱 강하게 자라나고 조직적 단결력과 투쟁력의 강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체계적인 후속 작업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시기에 자그마한 승리에 도취되어 단지 낙관적 분위기에만 빠져든다면 또 다른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승리감에 도취된 채 침착함을 잃어버리고,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다가올 것인지 냉철하게 계산하면서 대비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투쟁을 통해서 어렵게 자라난 계급의식의 단초를 더욱 명료한 수준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작업 역시 방치될 수 있다. 대중 속에서 선진노동자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넓히기 위한 집요한 활동이 이루어지기는커녕, 노동조합 수준의 활동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식이 퍼져나간다.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선진투사들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선진투사의 과제

    선진투사, 선진노동자들은 어느 시기에나 ‘선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파업과 같은 전면적 투쟁 시기이든, 파업이 끝난 이후의 일상적 시기이든, 심지어는 심각한 패배가 휩쓸고 지나간 가혹한 시기이든 다를 바 없다. 전면적 투쟁 시기에 가장 앞장서서 비타협적인 방식으로 대중을 이끌어가며 대중 속에서 계급의식이 자라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상적 시기에는 일상적이고 규칙적인 활동을 통해 대중 속에서 계급의식이 자라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 지점에서 진정한 선진투사, 선진노동자와 통상적인 ‘전투적 노동자’와의 차이가 발생한다. 통상적인 전투적 노동자는 투쟁 시기에는 밝은 빛을 내뿜는다. 파업이나 시위가 전개될 때 전투적 노동자들은 그 투쟁이 완강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에너지를 불어넣는 원동력 역할을 한다. 자본가들의 공격을 격퇴하고 투쟁대열의 때 이른 후퇴를 저지하는 데서도 전투적 노동자들의 역할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 전투적 노동자들의 상당수는 투쟁이 전면적으로 전개되는 시점에서는 대중을 이끌어가며 훌륭한 전투성을 발휘하지만, 패배의 기운이 짙어지거나 결국 패배해서 현장이 얼어붙기 시작하면 더 이상 대중과 함께 호흡하지 못하고 돌출적 행동 또는 무기력에 빠져들게 된다. 가장 좋은 경우라 할지라도 단지 자기 자신의 전투적 의지를 유지하는 정도에 머무르곤 한다.
      선진노동자라면 이 때 다른 면모를 보일 것이다. 선진노동자는 전면적인 투쟁의 시기에 두말할 나위 없이 최선두에서 대중을 이끌어나간다. 이들은 대중에 대한 가장 철저한 책임감으로 무장하고 투쟁을 가장 멀리 밀어가기 위해 분투한다. 선진노동자들은 전면전의 시기라고 해서 단지 투쟁의 기술적 측면에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들이 주목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투쟁이 대중들의 의식의 각성에 미치는 “정치적 효과”다. 함께 싸우고 있는 대중이 당면 투쟁의 의의와 과제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한 설명을 해주며, 투쟁 속에서 대중이 노동해방 정치를 향해 다가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데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그럼에도 투쟁이 패배로 끝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충분히 단련되지 못한 전투적 노동자라면, 투쟁이 패배로 끝났으니 이제 더 이상 할 것이 없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선진노동자들은 여전히 더 많은 것을 해야만 한다고 여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히 “계속 싸우자!”고 외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하나의 투쟁이 패배로 끝났다면, 거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단순히 운이 나빠서 투쟁이 패배하지는 않는다. 싸움에서 졌다는 것을 가장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우리의 힘이 아직 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투쟁에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힘을 강하게 끌어내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게 강한 힘을 끌어내는 데 실패한 것 역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투쟁을 널리 확산해야 한다는 점을 무시한 채 자기 단사만의 좁은 시야에 갇혀 있었을 수도 있다. 연대를 구해 투쟁대열을 확장하고자 노력했음에도 노동운동 전체가 해체되어 있어서 큰 힘을 얻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노동자들이 자본가들로부터 철저하게 독립적인 방식으로 자신들을 조직하고 싸워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본가들의 선처에 의지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누가 적이고 누가 동지인지 구별하지 못하면서 경찰이나 부르주아 정치인들에게 문제해결을 청원하는 경우도 있다. 지도부는 결전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지만 대중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기회를 날려버릴 수도 있고, 대중은 과감하게 싸울 태세가 되어 있음에 반해 지도부가 우유부단하게 눈치를 보고 있느라 투쟁이 실패했을 수도 있다.
      많은 경우에 대중은 도대체 왜 우리가 패배했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좌절과 낙담에 빠진다. 패배한 투쟁은 당장 손에 쥐어지는 즉각적 이익이라는 관점에서는 큰 의의를 갖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하루 빨리 잊고 싶은 고통스러운 기억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선진노동자들의 역할이 중요하게 떠오른다. 왜냐하면 “자본에 맞선 투쟁들 속에서의 사건들과 우여곡절들이, 승리뿐 아니라 오히려 패배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애용하는 갖가지 엉터리 약들의 불충분함을 깨닫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패배의 과정에서 확인된 “갖가지 엉터리 약들의 불충분함”을 깨닫는 것, 즉 투쟁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힘을 온전하게 조직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던 바로 그 취약성들을 이해하는 것, 바로 이것이 이 시기에 노동자대중이 배워야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자동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것을 대중들이 이해함으로써 다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더욱더 선진노동자들의 역할이 필수적인 것이다.
      투쟁의 패배라는 상황에 직면하면 다수의 대중은 침착함을 잃고 무질서하게 후퇴하곤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갈 길을 잃어버리고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시기에 일부 ‘활동가들’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즉흥적인 돌출행동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즉 객관적인 상황이 패배로 귀결된 것은 우리의 힘이 아직 충분히 육성되지 못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점, 따라서 그 힘을 육성하기 위해 침착하게 상황을 진단하고 새로운 과제를 설정하며 끈기 있게 세력을 준비해나가야 한다는 점을 일부 활동가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에 따라 그들은 새롭게 조성된 상황으로부터 요구되는 새롭고 중요한 과제에 충실히 부응하기보다는, 여전히 후퇴의 시기의 객관적 과제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돌격 앞으로!”라는 전면전 시기의 구호만을 움켜쥔다.
      이것은 겉으로 보기에 매우 전투적인 것처럼 비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투성은 ‘현실’을 기반으로 한 전투성이 아니라 ‘관념’을 기반으로 한 전투성이기 때문에 사실 매우 허약한 것이다. “돌격 앞으로!”라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다는 현실에 직면하는 순간, 이들의 심리 속에서는 이제 대중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자라난다. 그렇게 해서 이들은 대중 속에서 분란과 분열을 일으키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며, 그 다음 단계는 환멸과 무기력에 빠져 스스로 꼬꾸라지는 것이다. 또는 이들은 지금 직면하고 있는 열악한 현실을 몇 명의 지도자들의 책임으로 돌려버리면서, 책임을 전가하는 데 급급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패배 속에서 약점을 발견하고, 이 약점을 극복하는 배가된 분투를 통해 미래를 준비해나가야만 하는 노동운동의 역사적 발걸음을 가로막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

    앞에서 인용한 ≪공산당선언≫의 등장 직후에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 1848년 혁명의 물결이 유럽을 흔들었다. 이 시기에는 ≪공산당선언≫의 필자들인 맑스와 엥겔스도 가장 적극적으로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들뿐만 아니라 무수한 ‘혁명가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1848년 혁명은 패배로 끝났으며, 당시의 유럽 노동자계급은 아직 자신의 역사적 과제를 수행할 준비가 안 되었음이 입증되었다. 혁명의 물결이 빠져나가고, 새롭게 조성된 상황에서 새로운 과제가 부여되었다. 즉 1848년 유럽혁명이 패배로 끝난 원인을 과학적이고 계급적인 시각에서 분석함으로써 중요한 교훈을 끌어내고, 그것을 중심으로 선진노동자들의 대열을 체계적으로 강화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패배로부터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면 다음을 기약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었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했다. 그것으로부터 노동해방 투쟁의 필연성과 정당성을 끌어낼 수 있을 때에만 강력한 투쟁대열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1848년 혁명의 패배 이후 맑스와 엥겔스는 더 이상 주관적 관념과 환상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이들은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독일에서의 혁명과 반혁명≫,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 등의 저작을 통해 지난 운동의 성격과 전개과정, 그것의 계급적 의의와 교훈을 치밀하게 분석했다. 또한 맑스는 ≪자본론≫을 집필하기 위한 작업에 몰두함으로써 노동해방으로 나아가는 노동운동의 과학적 토대를 다지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후 1871년 프랑스의 파리꼬뮌 투쟁이 장렬한 패배로 끝났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이들은 그 투쟁의 위대한 의의와 교훈을 명료하게 정리하여 다음 세대의 선진노동자들이 배울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그들은 패배에도 불구하고, 패배가 보여준 약점들을 바탕으로 노동자계급의 힘을 더 강력하게 조직하면서 다음 시기의 투쟁을 책임질 중핵을 육성하고 노동해방 세력을 건설해나갈 수 있었다.
      반면 같은 시기에 일부 자칭 혁명가들은 상황이 새롭게 바뀌었음을 보지 않으려 했다. 그들은 여전히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계속 폭탄을 터뜨려야 한다고 떠들고 다녔다. 이런 행동은 현실적 기반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누구에게도 설득력을 가질 수 없었다. 그것은 단순히 소란스럽게 떠들고 다니는 것 이상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때로는 비극적 결과를 낳기도 했다. 즉 전면적인 투쟁의 시기와는 너무나 달라져버린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동기의 압력을 견뎌내지 못한 채 정신이 이상해지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기도 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과거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그리고 전국적인 운동뿐만 아니라 개별 사업장 운동에서도 되풀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처럼 어려운 조건에서 현장으로부터 투쟁을 일궈낸다는 것은 무척 소중한 일이다. 그런 만큼 하나의 투쟁이 전개될 때마다 그것으로부터 최대한의 성과를 끌어내고 노동운동의 지속적 발전과 전진을 위한 자양분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그런데 그 성과란 분명 ‘손에 쥐어지는 물질적 성과’와는 다른 것이어야 한다. 사실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쇠퇴기 즉 자본가들조차 경제위기의 낭떠러지 앞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시기에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손에 쥐어지는 물질적 성과’를 얻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설사 그런 종류의 성과를 쟁취하는 데 성공했을지라도 조만간 자본가들은 가공할 만한 반격을 가하여 그 성과를 ‘일시적’ 성과로 만들어버린다. 결국 당장 손에 쥐어지는 성과 정도로 시야가 갇히게 된다면 우리의 투쟁대열은 아주 동요하면서 수시로 휘청거릴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패배로부터 얻어내야 할 교훈들을 추출하지 못함으로써 다음 번 고양을 진지하게 준비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사람을 남기는 것

    이것을 막기 위해 선진노동자들의 의식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이 요구된다. 흔히 ‘사람을 남기는 것’의 중요성을 말한다. 하지만 ‘사람을 남기는 것’에 대해 이해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일부 활동가들은 빈번한 술자리를 가지며 친목을 도모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남길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그런 방식으로도 사람을 남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사람이란 술친구, 또는 친목관계 이상이 아닐 것이다. 이런 관계조차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겠지만, 노동자들이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돌파해나가는 데에서는 사실 큰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자본주의란 사람들 간의 우정과 친목조차도 공포감을 조장함으로써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을 남기는 것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이른바 ‘인간적 접근’, ‘포근한 배려’ 등과는 다른 것이다. 우선 지난 투쟁의 의의와 교훈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것을 둘러싼 충분한 대화를 조직해야 한다. 물질적 패배를 피할 수 없었다면, 정신적 승리를 통해 내일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패배로부터 교훈을 배우고, 그것을 통해 ‘승리를 위해 반드시 준비해야 할 것’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투쟁의 패배 이후에 이러한 의식적 작업을 진행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다. 투쟁에서 패배한 노동조합들은 많은 경우 패배감 자체에 사로잡혀, 지난 투쟁을 평가해야 할 필요성으로까지 시야를 확장하지 못한다. 오히려 싸움에서 졌는데 그따위 평가를 해서 뭐하겠느냐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 때문에 일부 활동가들은 ‘인간적 접근’과 ‘포근한 배려’가 가장 절실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즉 일단 인간적 배려를 통해 상처받은 마음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돕고 평가는 나중에 하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아직 현실을 직시하고 냉철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대중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일정하게 호흡을 조절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을 일반화하면 더욱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그나마 투쟁의 기억과 정서가 가장 생생하게 남아있는 시기에 지난 투쟁의 의의와 교훈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공유하는 작업을 통해 선진적 중핵을 조직해놓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을 놓친다면 끈기 있게 대중과 호흡하면서 대중을 다시 일으켜 세울 주체가 사라지게 된다. 투쟁을 통해 잠재적으로 형성된 이 주체를 지속적으로 단련시키고 의식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인간적 배려’를 이유로 방기한다면, 결국 이 잠재적 주체조차 붕괴되면서 흐물흐물한 관계만이 남는 것이다.
      따라서 소수일지라도 가장 단호한 투쟁의 정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직하고, 가장 의식적인 방식으로 지난 투쟁의 교훈을 분석하며 선진노동자로 발돋움시키기 위한 노력을 필사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단 한 명이라도 이렇게 장래를 의식적으로 준비하는 동지가 있다면, 그 동지는 투쟁의 패배라는 척박한 토양 위에서 차분하게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동지들이 단 한 명조차도 없다면, 패배한 투쟁은 아무런 교훈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갈 것이다. 거기에서는 오직 끔찍한 패배감과 비관, 무기력만이 사람들의 어깨를 짓누를 것이며, 오랜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완전히 바뀌고 나서야 과거의 어두운 기억과 관계가 없는 노동자들이 다시 투쟁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단절만큼 큰 손실이 있을까? 어떠한 ‘경제적’ 손실도 투쟁의 정신과 전통의 단절이라는 거대한 손실을 뛰어넘을 수는 없을 것이다. 투쟁 시기에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던 것만큼, 투쟁 이후에는 운동의 연속성이 쟁취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이 연속성은 처음에는 단 한 명의 의식적인 선진투사로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단 한 명이라도 과거 투쟁으로부터 교훈을 추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노동자 대열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분투하는 동지가 있다면, 그를 중심으로 소수의 선진투사들이 모일 수 있다. 그리고 적더라도 응집된 힘을 가질 수 있는 이 동지들의 분투를 통해서만 대중을 향한 진지하고 일관된 활동을 해나갈 수 있다. 오직 그렇게 했을 때에만 우리는 패배 속에서 미래의 승리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며, 패배와 후퇴를 더 멀리 도약하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역전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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