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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노해연_여성, 가족, 이성에 관한 자료
 정책위  | 2008·02·27 11:35 | HIT : 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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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문제의 사회적 기초" 중에서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편집자 주>「여성문제의 사회적 기초」라는 본 글은 콜론타이가 1908년 전(全)러시아여성대회에 맞춰 작성한 글이다. 막심 고리키의 의견을 듣기 위해 고리키에게 원고를 보내던 중에 원고를 분실하여, 결국 이 책은 1909년에 출간된다. 총 400 페이지가 넘는 이 책에서 콜론타이는 여성들의 지위에 대한 상세한 정보와 러시아와 유럽의 다양한 여성 조직들의 강령과 활동을 소개한다. 당시 콜론타이는 여성의 해방은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의 일부이고, 전 인민들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통해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성들 또한 이 정당과 함께 싸워야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여성들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투쟁했던 예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콜론타이는 계속해서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여성노동자들의 가장 적극적인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그 역사적 맥락을 파악해야만 제대로 독해될 수 있다. 당시 수많은 부르주아 여권론자들[본문에서 콜론타이는 페미니스트, 부르주아 계급의 여성 등의 표현을 사용한다]은 여성들을 대표해서 의회에 진출해야 한다고, 여성의 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인 변혁의 문제는 고민하지 않았고, 여성문제는 사회주의와 동떨어진 것으로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도 완전한 해결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런 상황에서 클라라 제트킨이나 콜론타이는 부르주아 여권론자들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여성운동이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과 분리되지 않도록 노력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페미니즘의 한계를 지적하고,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옹호해야 했던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리고 당시 사회에서 여성의 상황을 계급의 시각으로 분석하려는 찾아보기 힘든 시도였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 글이 가지는 의미는 충분하다 할 것이다. 콜론타이의 이런 시도는 엥겔스나 베벨이 추상적인 수준에서 여성문제를 사회주의 이후에 해결될 문제로 보았던 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었다. 본 글은 「여성 문제의 사회적 기초」에서 발췌한 것이며, 출처는 이다. 글 중간의 말줄임표는 원래의 책에서 홀트가 발췌할 때 생략을 표시한 것이다.


    <여성 문제의 사회적 기초> 중에서

    부르주아 학자들이 한 성(性)의 다른 성(性)에 대한 우월성의 문제를 논쟁하거나 지력(知力)을 재고 남성과 여성의 심리구조를 비교하는데 열중하도록 놔둔 채, 역사적 유물론의 계승자들은 각각의 성들의 자연적 특성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들은 남성이건 여성이건 각각의 개인들이 자기-결정에 있어서 가장 완전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실질적 기회와 모든 자연적인 성향들을 발전시키고 적용할 수 있는 가장 넓은 여지를 가져야한다는 것만을 요구하고 있다. 역사적 유물론의 계승자들은 일반적인 사회적 의제로부터 분리된 여성들만의 의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거부한다. 특정한 경제적 요인들이 여성종속의 원인이었다; 이 과정에서 자연적인 특성은 부차적인 요인이 되어왔다. 이러한 요소들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 즉 과거에 여성들을 종속시켜왔던 권력관계를 전화시키는 것만이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에 영향을 미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여성들은 새로운 사회관계 및 생산관계에 맞춰 조직되는 세계에서만 진정 자유롭고 평등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현재 체계 안에서 여성의 삶을 부분적으로나마 개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노동자 계급 의제에 대한 급진적인 해결은 생산관계를 완전히 재구조화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프롤레타리아트의 가장 급박한 이해를 만족시키는데 복무하는 개혁들을 위해 일하지 못하는가? 반대로 노동자 계급의 새로운 성과들 하나하나는 인류가 자유와 사회적 평등의 왕국을 향해서 나아가는 발걸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성이 획득한 권리들은 그녀를 완전한 해방이라는 명확한 목표에 더 가까이 데려다 줄 것이다.
    사회민주주의는 제일 먼저 여성들의 권리를 남성들의 권리와 평등하게 해달라는 요구를 강령에 포함시켰다; 연설과 인쇄매체에서 당은 언제 어디서나 여성에게 영향을 미치는 제한들을 철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다른 정당들과 정부들이 여성에게 우호적인 개혁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제해 온 것은 바로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영향력 덕분이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이 정당은 스스로의 이론적인 입장에 있어서 여성들을 방어할 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여성 평등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 경우 "평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equal righters)"들이 이렇게 강력하고 능숙한 당의 지지를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진실은 그들이 아무리 급진적일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부르주아 계급에 충실하다는 점에 있다. 정치적 자유는 러시아 부르주아의 성장과 권력을 위해서 바로 지금 핵심적인 필요조건이다: 그것이 없다면, 부르주아의 모든 경제적 복지는 사상누각이라는 점이 판명될 것이다. 정치적 평등을 요구하는 것은 여성들에게 있어서 삶 그 자체로부터 나온 요구이다.
    "직업으로의 접근"이라는 슬로건은 이제 충분하지 않다; 오직 정부에 직접 참여하는 것만이 여성들의 경제적 지위를 상승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약속해줄 수 있다. 투표권을 얻고자하는 중산계급 여성들의 정열적인 열망과 현대 관료체계에 대한 적의는 여기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중산계급 여성들의 정치적 평등 요구에 있어서 러시아의 페미니스트들은 중산계급 여성들에겐 외국 자매와 같이 친밀한 존재이다; 사회민주주의적인 배움이 열어준 넓은 시야는 러시아 페미니스트들에겐 이질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남아있다. 페미니스트들은 현존하는 계급 사회의 틀 안에서 평등을 구한다; 어떤 방식으로도 그들은 이 사회의 기초를 공격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존재하는 특권들에 도전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특권을 위해 싸운다. 우리는 부르주아 여성운동의 대표들이 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그들의 관점은 불가피하게 그들의 사회적 지위로부터 나온 것이므로...

    경제적 독립을 위한 투쟁
    무엇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계급 모순에 기초한 사회 내에서 단일한 여성운동이 존재할 수 있는가의 여부를 물어야 한다. 여성해방운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이 하나의 균질한 대중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은 편파적인 시각을 갖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남성들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세계는 두 개의 진영으로 분할되어있다; 한 여성 진영의 이해와 염원은 부르주아 계급에 가까운 반면, 다른 진영은 프롤레타리아의 그것과 관련이 깊고, 그들이 요구하는 해방은 여성 의제에 대한 완전한 해결책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두 진영이 비록 일반적인 "여성 해방"의 슬로건을 따른다 할지라도 그들의 목표와 이해는 다르다. 각각의 진영은 무의식적으로 그들 계급의 이해에 근거한 운동의 출발점을 세우고, 그리고 이것은 다시 각각의 진영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목표와 임무에 영향을 미치는 특정한 계급을 낳는다....
    페미니스트들의 요구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리 급진적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페미니스트들이 그들의 계급적 지위 때문에 여성해방에 필수적인 현재의 경제와 사회적인 구조의 근본적인 변형을 위해 싸울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비록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모든 계급의 여성들의 단기적인 과제가 일치할지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운동의 방향과 사용될 전술을 결정하는 두 진영의 최종적인 목표는 첨예하게 다르다. 페미니스트들에게 있어서 현행 자본주의 세계의 틀 안에서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획득하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히 구체적인 결론인 반면에,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에게 있어서 현 시대의 평등한 권리는 노동자 계급의 경제적 종속에 맞선 투쟁을 전진시키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을 적으로 간주하는데, 그 이유는 남성들이 여성에게는 오직 구속과 의무만을 지우면서 남성들만을 위한 모든 권력과 특권을 향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들에게 승리는 이전에 남성이 배타적으로 향유했던 특권이 "공평한 성"에게 용인될 때 얻어진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의 태도는 다르다. 그녀들은 남성을 적이나 압제자로 간주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녀들은 남성을 그들의 동료로, 일상의 고역을 함께 나누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싸우는 동지로 생각한다. 여성과 그녀의 남성 동료는 동일한 사회적 조건에 의해 노예화되어있다; 증오스러운 자본주의의 사슬이 그들의 의지를 짓밟고 그들로부터 삶의 기쁨과 활력을 앗아간다. 여성들이 현재의 체제의 여러 가지 특정한 상황에서 이중의 부담을 지는 것은 사실이며, 고용 노동의 조건이 때때로 여성 노동자들을 남성들의 경쟁자로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원하지 않는 상황이 누구의 잘못인지 노동자 계급은 알고 있다.
    여성 노동자들은 불행한 그녀들의 남자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번뜩거리는 입을 가진 탐욕스러운 괴물을 증오한다. 이 괴물은 오로지 희생양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쥐어짜고 수백만 인간의 삶을 대가로 성장하는 것만을 바라기 때문에, 남성, 여성, 아이 상관없이 누구에게든 똑같은 탐욕스러움을 드러내며 맹렬하게 돌진한다. 수천의 실들이 남성 노동자를 가까이로 데려온다. 다른 한 편으로 부르주아 여성들의 염원은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들의 마음에 호의적이지 않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에게 현재 착취당하는 인류의 시선이 바라보아야 할 밝은 미래를 약속할 수 없다.
    물론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의 최종 목표가 현행 부르주아 체제의 틀 내에서라도 지위 개선을 바라는 페미니스트들의 열망을 막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본성에서 유래하는 장애물들은 언제나 이런 열망을 실현하는 과정을 저지했다. 여성은 오직 사회화된 노동의 세계, 즉 조화와 정의의 세계에서만 평등한 권리를 소유하고, 진정 자유로울 수 있다. 페미니스트들은 이것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들에게는 법 조항에 공식적으로 평등이 포함될 때, 그들이 압제와 노예화 그리고 구속의 낡은 세계, 그래서 눈물과 고난으로 얼룩진 낡은 세계에서 자신들만을 위한 안락한 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그리고 이것이 어느 정도까지는 사실이기도 하다.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의 대부분에게 남성과 동등한 권리는 단지 불평등을 동등하게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지만, "선택받은 소수", 즉 부르주아 여성들에게는 지금까지 부르주아 계급의 남성들만이 향유해왔던 권리와 특권에 새롭고 전례 없는 문이 열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부르주아 여성들이 획득한 특권은 그녀의 어린 자매들을 착취할 수 있는 또 다른 무기가 될 것이며, 사회적으로 반대되는 두 진영의 여성들 사이의 분할은 더욱 가속될 것이다. 그들의 이해는 더욱 첨예하게 충돌할 것이며, 그들의 염원은 더욱 명백하게 모순을 드러낼 것이다.
    그렇다면 보편적인 "여성 의제"는 어디에 있을까? 페미니스트들이 그렇게 외쳐댔던 임무와 염원의 단일함은 어디에 있을까? 냉정하게 현실을 돌아보면 그런 단일함은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의제"는 정치적 정당의 의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고, "여성 의제의 해결은 오직 모든 정당과 모든 여성들의 참여로만 가능하다"는 점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려 애쓰겠지만, 모두 헛된 일이다. 어떤 급진적인 독일 페미니스트가 말했던 것처럼, 드러나는 사실들은 우리가 페미니스트들의 이런 안일한 환상을 거부하도록 만들고 있다...
    인류의 역사 내내 생산의 조건과 형태는 여성들을 종속시켰고, 점차 그녀들을 압제와 복종의 지위로 내쫓았으며, 여성들의 대부분이 지금까지도 그 지위에 머무르고 있다.
    여성들이 그녀들의 잃어버린 중요성과 독립성을 되찾을 수 있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사회, 경제적 구조의 거대한 격변이 필요하다. 한 때 대부분의 탁월한 사상가들에게 너무 어려워 보였던 문제들을 이제는 생명체는 아니지만 전능한 생산의 조건이 풀어가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여성을 노예로 만들어왔던 바로 그 힘이 지금, 즉 발전의 국면에서는 자유와 독립의 길로 그녀들을 이끌고 있다...
    여성 의제는 대략 19세기 중반―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이 노동의 영역에 진입한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때―에 부르주아 계급의 여성들에게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다. 자본주의의 포악스러운 성공의 영향 때문에 중간 계급은 난국의 파도에 휩쓸렸다. 경제적 변화는 쁘띠 부르주아들과 중간 부르주아들의 재정상황을 불안정하게 했고, 부르주아 여성들은 위협적인 상황의 딜레마에 직면했다; 가난을 받아들이거나 일할 권리를 얻거나. 이러한 사회계층의 부인과 딸들은 대학, 예술 살롱, 편집학교, 사무실 등의 문을 두드리면서 그들에게 열려진 직업의 세계로 쏟아져 나왔다. 과학과 더 높은 문화적 이득에 대한 접근권을 얻고자 했던 부르주아 여성들의 열망은 그들이 갑자기 자신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려고 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일용의 양식"을 해결하는 문제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러나 부르주아 여성들은 처음부터 남성들의 견고한 저항에 부딪혔다. 완고한 전쟁은 "편안한 소일거리"를 고수하는 전문 직업 남성들과 일용할 빵 값을 버는 일에 풋내기인 여성들 사이에서 벌여졌다. 이 싸움은 "페미니즘"―함께 모여서 자신들의 적인 남성들에게 대항하여 공동의 힘을 모으고자 했던 부르주아 여성들의 시도―의 열기를 드높였다. 이 여성들은 노동 영역에 들어가게 되자 자신들을 '여성운동의 전위부대'라고 자랑스럽게 일컫기 시작했다. 이 여성들은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독립을 달성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그들이 그들의 어린 자매들의 선례를 따르고 있고, 그 자매들이 물집 잡힌 손으로 빚어낸 결과물을 따먹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부르주아 여성운동이 태어나기도 전에 세계 모든 나라에서 수십만의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이 공장과 상점에 내몰려 산업의 이 분야 저 분야를 떠맡아왔는데, 페미니스트들이 여성들이 노동에 진출하는 길을 선구적으로 개척했다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는가?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이 세계 시장에서 인정되고 있었다는 사실 덕분에 부르주아 여성들은 페미니스트들이 그렇게 자랑해마지 않는 사회에서의 독립적 지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의 투쟁의 역사 속에서 일반적인 페미니스트 운동이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의 물질적인 조건을 향상시키는데 유의미한 공헌을 했다는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이 자신들의 삶의 질 향상에 있어서 얻은 것은 모두가 노동자 계급의 노력, 그 중에서도 특히 프롤레타리아 여성들 스스로 노력한 결과이다. 더 나은 노동조건과 더욱 풍족한 삶을 위한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의 역사는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을 위한 투쟁의 역사이다.
    프롤레타리아들의 불만이 폭발할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아니라면 왜 공장 사업주가 임금을 올리고, 노동시간을 줄이고, 더 나은 노동조건을 만들겠는가? "노동 불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정부가 자본에 의한 노동 착취를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겠는가?...
    사회민주주의가 해온 것처럼 여성을 방어해주는 정당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무엇보다도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자 계급의 구성원이다. 프롤레타리아 가족 구성원들 각각의 지위와 일반적 복지가 만족스러워질수록, 전체 노동자 계급의 최종적인 이익도 더욱 커질 것이다....
    사회적인 어려움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원인을 밝히려는 순진한 투사는 비통한 당황스러움에 빠져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 순진한 투사는 일반적인 여성운동이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으며,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과 생활의 조건을 향상시킬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평등을 위해 싸우지만 프롤레타리아의 세계관을 채택하지 않거나 좀 더 완벽한 사회 체제가 도래할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발전시키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인류의 미래는 우울하고, 암울하고, 불확실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현재의 자본주의 세계가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동안, 그들에게 해방은 불완전하지만 공평한 것처럼 보이는 것에 틀림없다. 오직 노동자 계급만이 사회적 관계가 왜곡된 현대 사회에서 도의를 유지할 수 있다. 노동자 계급은 확고하고 신중한 발걸음으로 최종의 목표를 향해 꾸준히 전진하고 있다. 노동자 계급은 여성 노동자들을 노동자 계급의 일원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은 용감하게 가시밭길 같은 노동을 시작하였다. 그녀의 다리는 처지고, 몸은 찢겨진다. 길을 따라 위험한 절벽이 있고 먹이를 노리는 사나운 짐승이 손에 닿을 듯 가까이 있다.
    그러나 이 길을 갈 때만이 여성은 멀지만 매혹적인 목적지―새로운 노동의 세계에서 얻을 그녀의 진정한 해방―에 도달할 수 있다. 밝은 미래를 향한 이 어려운 여정동안 최근까지 아무런 권리도 없이 굴욕적으로 짓밟히는 노예였던 프롤레타리아 여성은 그녀에게 달라 붙어있는 노예근성을 물리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녀는 조금씩 스스로를 사랑에 자유로운 독립적인 노동자, 즉 독립적인 개인으로 변화시키게 된다. 여성들의 일할 권리를 쟁취하는 사람은 바로 노동자의 지위에서 싸우는 그녀요; 미래의 "자유롭고" 동시에 "평등한" 여성들을 위해 토대를 준비하는 사람도 바로 그녀 자신, "어린 자매들"이다.
    이 때, 무슨 이유로 여성노동자들이 부르주아 페미니스트와 단결해야 하는가? 만일 그런 동맹관계가 있더라도 실제로 그 동맹의 이득을 지키려는 사람은 누구이겠는가? 여성노동자는 결코 아니다. 그녀가 그녀의 구세주일 뿐이다; 그녀의 미래는 그녀의 손안에 있다. 여성노동자는 그녀의 계급적 이해를 수호할 것이고, "모든 여성이 공유하는 세계"라는 거창한 연설 따위에 속지 않는다. 여성노동자는 부르주아 여성의 목표가 우리에게 적대적인 사회의 틀 내에서 그들만의 복지를 보호하는 것인데 반해 우리의 목표는 낡고 오래된 세계에서 보편적인 노동과 동료들 간의 연대, 기쁨 넘치는 자유의 새로운 사원을 건설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되고, 잊지 않을 것이다.

    결혼과 가족 문제
    이제 우리의 주의를 여성문제의 다른 측면인 가족문제로 돌려보자. 우리는 여성의 진정한 해방에 있어서 이 급박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함을 잘 알고 있다. 정치적 권리를 위한 투쟁, 박사나 학사 학위를 받을 권리를 위한 투쟁, 동일한 노동에 동일한 임금을 받을 권리를 위한 투쟁이 평등을 위한 투쟁의 전부가 아니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여성이 되기 위해서는 진부하고 억압적인 현재의 가족 형태라는 무거운 사슬을 벗어 던져야 한다. 여성에게 있어서 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치적 평등과 경제적 독립을 얻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관습과 법에 의해 굳게 다져진 오늘날의 가족 구조 안에서 여성은 인간으로서 뿐만 아니라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억압받고 있다. 대부분의 문명화된 나라에서 민법은 여성들을 남편에게 의존하는 존재로 보고 남편에게 그녀의 재산을 처분할 권리뿐만 아니라 그녀를 도덕적이고 육체적으로 지배할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공식적이고 법률적 예속이 끝나는 곳에서 "여론"이라는 힘이 작용하기 시작된다. "신성한 재산 제도"를 보존하려는 부르주아들이 이 여론을 창조하고 지지한다. "이중규범"이라는 위선은 또 다른 무기이다. 부르주아 사회는 여성의 노동에 아주 낮은 임금을 지불하면서 야만적인 경제적 악덕으로 그녀를 짓밟아 뭉개고 있다. 여성은 스스로의 이해를 방어하기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민의 권리를 박탈당했다: 대신에 그녀에게는 결혼이라는 굴종을 자비로운 대안으로 삼거나 성매매―사람들이 공적으로는 멸시하고 박해하지만 사적으로는 고무하고 지원하는―를 받아들이는 것만이 주어져있다. 결혼생활의 어두운 면과 현존하는 가족 구조에서 여성의 지위 때문에 여성들이 겪는 고통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이 주제에 대해서는 이미 너무도 많은 글들이 벌써 쓰여져 있다. 문학작품들은 결혼과 가족생활의 올가미에 대한 우울한 묘사들로 가득 차있다. 얼마나 많은 심리극들이 상연되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삶들이 불구가 되었는가! 다소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현대의 가족구조가 모든 계급과 계층의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관습과 전통은 그녀가 어느 계층에 속하든지 젊은 엄마들을 박해한다; 법은 부르주아 여성, 프롤레타리아 여성, 농민 여성, 이 모두를 그들의 남편의 감시 아래 둔다.
    우리는 마침내 모든 계급의 여성들이 단결할 수 있는 여성 문제의 한 측면을 발견하지 않았는가? 그녀들을 억압하는 조건에 맞서 함께 투쟁할 수 없겠는가? 지금 이 순간에 여성들이 공유하고 있는 슬픔과 고통이 계급 적대의 발톱을 완화하고 서로 다른 진영의 여성들에게 공동의 염원과 공동의 행동을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한가? 공동의 열망과 목적에 기초한 부르주아 여성들과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의 협동이 가능해질 수 있지 않을까? 페미니스트들은 결혼의 자유로운 형태와 "모성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그들은 매춘부를 보호하는 일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관계의 새로운 형태를 모색하고 양성간의 "도덕적 평등"을 열정적으로 요구하는 페미니스트 문학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아라. 경제적 해방의 영역에 있어서 부르주아 여성들은 "신여성"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의 거대하고 강력한 부대에 뒤떨어져있지만, 가족문제를 해결하는 싸움에서 승리는 페미니스트들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사실 아닌가?
    이 곳 러시아에서 중산 부르주아 계급의 여성―이 독립적인 임금수입자들은 1860년대에 노동시장에 뛰어들었다―들은 오래 전부터 결혼문제의 혼란스러운 부분들을 실제적으로 해결해왔다. 그들은 용감하게 "고립된" 전통적 기독교 결혼의 가족을 그 사회계층의 요구에 부합하는 좀 더 유연한 유형의 관계들로 교체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개별 여성 차원의 주관적인 해결은 상황을 바꾸지도, 가족생활의 우울한 상을 전반적으로 완화시키지도 못했다. 만약 어떤 힘이 가족의 현대적 형태를 파괴하고 있다면, 그 힘은 다른 여성들보다 좀 더 강한 여성들 개개인의 엄청난 노력이 아니라 생명체는 아니지만 강력한 생산의 힘이고, 이것이 단호하게 새로운 토대 위의 삶을 건설하고 있다.
    긴 장갑을 벗어 던지고 어떠한 요구나 구속 없이 "감히 사랑할" 권리를 사회에 요구하는 부르주아 젊은 여성 개개인의 영웅적인 투쟁은 가족의 굴레 속에서 지쳐가는 모든 여성들에게 본보기로 작용해야만 한다 ― 이것이 외국의 좀 더 해방된 페미니스트들과 국내에서 진보적이라는 평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equal righters)이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즉, 결혼 문제는 외적인 상황과 무관하게 자신의 관점에서만 해결되는 것이다; 결혼문제는 사회의 경제적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과는 무관하게 해결된다. 개인들의 고립되고 영웅적인 노력은 충분하다. 이제 여성이 "감히 할 수 있도록"하자. 그러면 결혼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덜 영웅적인 여성들은 불신에 머리를 흔들었다. "현명한 작가에 의해 그려진 독립심이 강하고, 이타적인 친구들과 특출난 매력을 지닌 축복받은 소설의 여주인공들이 긴 장갑을 벗어 던지는 것은 매우 잘 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들의 경우엔 어떠한가? 자본도, 충분한 임금도, 친구도 없으며 매력적이지도 않은 여성들 말이다." 모성에 대한 문제는 자유를 위해 노력하는 여성들을 괴롭힌다. "자유로운 사랑"은 가능한가? 현재 우리 사회의 경제적 구조 속에서 자유로운 사랑이 평범한 현상으로, 개인적인 예외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규범으로 실현될 수 있는가? 현행의 결혼에서 사적 재산이라는 요소를 무시할 수 있는가? 개인주의적인 세계에서 여성의 이익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형식적인 결혼 계약을 무시하는 것이 가능한가? 결혼계약은 모성의 모든 어려움을 여성에게만 부과하지 않겠다는 유일한 보증서이다. 예전에 남성 노동자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이제 여성에게 생기지 않겠는가? 도제의 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지 않고 길드 규제를 없앤 것은 자본에게 노동자들을 지배할 수 있는 완전한 권력을 주었다. "노동과 자본에게 계약의 자유를"이라는 슬로건은 자본에 의한 노동 착취의 수단이 되었다. 현재의 계급 사회에 시종일관 소개되고 있는 "자유로운 사랑"은 가족생활이라는 고역으로부터 여성을 해방시키는 대신 그녀의 어깨에 새로운 짐―아무런 도움 없이 혼자서 아이를 돌봐야하는 일―을 지울 것이 분명하다.
    오직 사회적 관계라는 영역에서의 근본적이고 전체적인 변혁―의무가 가족에서 사회와 국가로 이행되는 변혁―이 있을 때에만 "자유로운 사랑"의 원칙이 어느 정도 충족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계급 국가가 아무리 민주적이 된다 할지라도 오늘날 개인주의적 단위인 가족이 수행해 온 엄마와 아이에 대한 책임을 국가에게 지우도록 할 수 있을까? 오직 모든 생산 관계가 변혁될 때만이 "자유로운 사랑" 공식의 부정적인 면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필요조건을 창조할 수 있다. 우리는 현재의 조건에서 자유로운 사랑이라는 편리한 딱지를 붙이고 슬쩍 넘어가려는 타락과 기형에 대해 인식하고 있지 않은가? 회사를 소유하거나 관리하면서 그들의 여성 노동자나 사무직 여성들이 자신의 성적 변덕을 만족시키도록 강요하는, 이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해고라는 위협까지 사용하는 그런 남성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그들의 방식으로 "자유로운 사랑"을 실행하고 있는 것 아닌가? 집 안의 하녀들을 강간하고, 임신한 그들을 길거리로 내쫓아버리는 "집주인"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자유로운 사랑"이라는 공식에 충실한 것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그런 종류의 '자유'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유결혼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반대로 우리는 두 성을 평등하게 묶어줄 수 있는 '단일한 도덕'을 수용하라고 요구한다. 우리는 현재의 섹스 면허증(sexual license)[역주 - 성관계를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결혼을 빗대어 한 말]을 반대하고, 오직 진정한 사랑에 기반한 자유로운 결합만을 도덕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친애하는 친구여, 당신은 "자유로운 결혼"이라는 당신의 이상이 현재의 사회에서 실현된다면 성적 자유라는 왜곡된 관습과 별 차이가 없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을 모르는가? 오직 여성이 자본과 남편이라는 이중의 의존을 만들어내는 모든 물질적 짐을 덜 수 있을 때에만, "자유로운 사랑"이라는 원리는 그 사랑의 결과로 여성이 새로운 슬픔을 느끼게 되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면서 실행될 수 있을 것이다. 여성들이 일하러 나가고 경제적인 독립을 얻을 때, "자유로운 사랑"은 어느 정도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좀 더 좋은 보수를 받는 지식인 여성인 경우에. 그러나 자본에 대한 여성의 의존은 여전히 남아있고, 더욱 더 많은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이 자신의 노동력을 팔게 됨에 따라 이러한 의존은 증가한다. "자유로운 사랑"이라는 슬로건이 혼자 먹고살 수 있는 정도밖에 벌지 못하는 이런 여성들의 슬픈 생활을 개선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쨌든 "자유로운 사랑"은 이미 노동자 계급 사이에서 실행되고 있는 것 아닌가? 너무나 광범위하게 실현되고 있어서 부르주아들이 몇 차례나 경각을 울려대고 프롤레타리아의 "타락"과 "부도덕"을 퇴치하려고 캠페인을 벌여댔던 것 아닌가? 해방된 부르주아 여성들이 주목하는 결혼 이외의 동거라는 새로운 형태에 페미니스트들이 열광하면 그것은 "자유로운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이 되지만, 노동자 계급의 경우가 되면 이런 동거는 "난잡한 육체관계"라고 경멸한다는 사실을 지적해야만 한다. 이것은 그들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프롤레타리아 여성에겐 그녀가 기독교에 독실하건 아니건 상관없이 모든 관계가 결과에 있어서는 똑같이 가혹하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부인과 어머니에게 가족과 결혼 문제의 핵심은 그 외형적인 형태가 신성한가 세속적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 여성들에게 복잡한 책임을 지우는 사회적 경제적 조건에 있다. 물론 그녀의 남편이 그녀의 벌이를 처분할 권리를 가지는가의 여부, 그녀가 원치 않는 경우에도 남편과 함께 살아야하는 법적 권리가 남편에게 있는지의 여부, 그녀로부터 강제적으로 그녀의 아이를 데려갈 수 있는지의 여부 등은 그녀에게 몹시도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가족 안에서 여성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은 그런 민법상의 문구가 아니다. 가족문제를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이런 문구들이 아니다. 단지 사회가 사소하지만 (개별적으로 흩어져있는 가족 경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지금은 어쩔 수 없는 가사 일을 여성들에게서 덜어줄 수만 있어도, 어린 세대를 돌보는 책임을 떠맡아줄 수만 있어도, 모성을 보호해줄 수만 있어도, 적어도 생후 1개월의 아이들에게 어머니를 돌려줄 수만 있어도, 관계의 문제가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은 아닐텐데.
    합법적이고 성스러운 기독교 결혼 계약에 반대해야 하므로 페미니스트들은 광신적인 믿음에 맞서 싸우고 있다. 반면에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은 결혼과 가족의 현대적 형태 배후에 있는 요소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은 삶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바꾸려고 애쓰는 동안 그들이 양성간의 관계를 변혁하는데도 일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가족이라는 어려운 문제에 대한 부르주아적 접근과 프롤레타리아적 접근의 주요한 차이를 발견한다.
    현재 계급 사회의 우울한 배경에 맞선 새로운 유형의 가족과 새로운 결혼 관계가 가능하다고 순진하게 믿고 있는 부르주아 진영의 페미니스트와 사회 개혁론자들은 이러한 새로운 형태를 찾는데 곤경을 겪고 있다. 그들은 삶 자체가 이 형태들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 대가가 무엇이건 상관없이 새로운 형태를 발견해야 한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의 사회 체제 하에서도 복잡한 가족 문제를 풀 수 있는 성적 관계의 현대적 형태는 분명 존재한다고 그들은 믿는다. 부르주아 세계의 이데올로그들―저널리스트, 작가, 해방을 위해 싸우는 저명한 여성 투사들―은 번갈아 가며 "가족 만병통치약", 즉 새로운 "가족 형태"를 내놓는다.
    이러한 결혼 형태는 얼마나 유토피아적으로 들리는가. 그러나 현대 가족 형태의 우울한 현실을 조명해볼 때, 이 완화제는 얼마나 나약한 것인가. "자유로운 관계"와 "자유로운 사랑"이라는 이러한 공식들이 실행되기 전에,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사회적 관계의 근본적인 개조가 일어나야만 한다; 더욱이, 도덕적인 규범 및 성적 규범과 인류의 심리상태 전체가 철저한 진화를 겪어야 한다. 현대의 사람이 "자유로운 사랑"에 심리적으로 잘 대처할 수 있는가? 가장 훌륭한 인간의 영혼마저도 삼켜버리는 질투는 어떠한가? 그리고 타인의 신체뿐만 아니라 영혼마저도 소유하길 원하는 저 뿌리깊은 소유욕은? 타인의 인격을 제대로 존중하지 못하는 무능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종속시키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에게 종속시키려는 습관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을 때 느끼는 끝도 없는 외로움이라는 쓰디쓴 절망적인 황폐한 느낌은? 외로운 사람, 존재의 근본에서부터 개인주의자인 그는 어디서 위안을 찾을 수 있을까? 기쁨과 실망, 염원을 함께 하는 공동체는 개개인의 감정적인 에너지와 지적인 에너지를 배출하는 가장 좋은 장소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이 상호간에 작용하는 영향력을 느끼는 방식으로 이런 공동체와 더불어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오늘날 공동체의 삶이 정말로 개인들의 소소한 기쁨을 되돌려 놓을 수 있을까? 현재의 적대적인 세계에서는 "단일하고" "유일한" 두 영혼이 없다면 공동체주의자인 사회주의자조차 외로울 뿐이다; 우리는 오직 노동자 계급 안에서만 미래의 좀 더 조화롭고 좀 더 사회적인 관계를 희미하게 볼 수 있다. 가족문제는 삶 그 자체만큼이나 복잡하고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다. 현재의 사회 체제는 그것을 해결할 수 없다.
    다른 결혼 형태도 제기되고 있다. 결혼결합을 자손 생산 방법으로만 간주하는 진보적인 여성과 사회 사상가들이 꽤 있다. 그들은 결혼 그 자체로는 여성에게 어떤 특별한 가치도 부여해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 어머니가 되는 것만이 그녀에게 삶의 목적이고, 신성한 목표이며 부여받은 임무이다. 루스 브레이(Ruth Bray)와 엘렌 키(Ellen Key)와 같이 고무된 주창자들 덕택에 여성을 인간이라기보다 어머니가 되는 여성으로 인식하는 부르주아의 이상(理想)이 진보적인 것이 되는 후광을 얻었다. 외국의 문학은 열정 넘치는 이 "진보적 여성들"이 제기한 슬로건을 붙들었다. 그리고 심지어 이 곳 러시아에서조차 〔1905년의〕정치적 격변 이전, 사회적 가치들이 변화하기 이전의 시기에는 모성의 문제가 일간지의 주목을 받았었다. "모성의 권리"라는 슬로건은 가장 넓은 범위의 여성들에게서 생생한 반응을 이끌어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와 관련된 페미니스트들의 모든 제안이 비현실적으로 다양하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는 너무나 중요하고 화제인 문제라 여성들의 주의를 끌지 않을 수 없다.
    "모성의 권리"는 부르주아 계급의 여성들뿐만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프롤레타리아 여성들도 감동시키는 그런 종류의 문제이다.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권리 ― 이것은 "어떤 여성의 마음"에도 바로 꽂혀서 그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황금의 언어이다. "자기 자신의" 아이에게 자신의 모유를 먹이고 아이가 깨어나는 첫 신호를 지켜볼 수 있는 권리, 그 작은 몸을 보살피고 그 연약한 영혼을 삶의 첫 단계에서 겪게 되는 괴로움과 고통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권리 ― 어떤 여성이 이러한 요구들을 지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다시 한번 각기 다른 계층의 여성들 사이의 단결의 순간을 만들 수 있는 이슈를 발견한 것만 같다; 마침내 우리는 두 개의 적대적인 세계에 사는 여성들이 단결할 수 있는 다리를 찾아낸 것만 같다. 급진적인 부르주아 여성들이 "모성의 권리"로 이해하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그러면 우리는 평등한 권리를 위해 싸우는 부르주아 여성 투사들이 그리는 모성 문제 해결책에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이 실제로 동의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열정적으로 변명하는 사람들의 눈에 모성은 대체로 신성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투사들은 아이를 낳는 활동이 법률상에서는 신성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을 자연적인 활동―아이를 낳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낙인찍는 잘못된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 애쓰면서 막대기를 다른 방향으로 구부린다; 그들에게 있어서 모성은 여성들의 삶에 있어서 목표가 되었다...
    모성의 의무와 가족에 대한 엘렌 키의 강한 애착은 그녀에게 사회주의 노선에 따라 변혁된 사회에서조차 고립된 가족단위는 계속 남아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그녀가 보기에 유일한 변화는 편리함이나 물질적 이득이라는 결혼의 부수적인 요소들이 결혼결합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결혼은 의식이나 형식이 아니라 서로의 기호에 맞추는 것일 뿐이다―사랑과 결혼은 진짜 동의어가 될 것이다. 고립된 가족 단위는 과다경쟁과 압박, 외로움으로 점철된 현대 개인주의 사회의 결과이다; 고립된 가족은 포악한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키는 가족을 사회주의 사회에 남겨주고 싶어한다! 오늘날 혈연과 혈족의 유대가 삶의 유일한 의지로, 고난과 불운의 시기에 찾는 유일한 피난처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래에도 도덕적인 차원에서나 사회적인 차원에서 이런 유대가 필요할까? 키는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상적인 가족", 즉 부르주아 사회 구조의 열렬한 신봉자들이 경의를 표하며 바라보는 중간계층 부르주아들의 이기적인 가족 단위를 너무나 소중히 여기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모순 속에서 길을 잃었던 사람은 엉뚱하지만 재능 있었던 엘렌 키만은 아니다. 결혼과 가족 문제만큼 사회주의자들이 서로 합의를 만들어내지 못한 문제는 아마 없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한다면, 그 결과는 참으로 흥미진진할 것이다. 가족이 사라질까? 아니면 현재의 가족의 무질서가 일시적인 위기일 뿐이라고 믿을 수 있는 근거가 있을까? 현재의 가족 형태가 미래 사회에서도 그대로 보존될 것인가, 아니면 현대 자본주의 체제와 함께 매장될 것인가? 이런 질문들에 매우 다른 답들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교육 기능이 가족에서 사회로 이전되면 현대의 고립된 가족을 지탱하던 끈끈한 유대는 느슨해질 것이다; 분해과정은 점점 그 속도가 빨라질 것이고, 미래의 결혼 관계의 희미한 윤곽이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다. 현재 사회의 여러 영향 때문에 이 희미한 윤곽이 드러나지 않고 있을 때 우리는 이 윤곽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현재의 의무적인 결혼 형태가 사랑하는 개인들의 자유로운 결합으로 대체될 것이라는 말만을 반복하고 있어야만 하는가? 자신들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여성들의 빈곤한 상상력에서 나온 자유로운 사랑이라는 이상(理想)이 양성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사회가 세우게 될 규범에 어느 정도는 부합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러나 사회적인 영향은 매우 복잡하고 그 영향력의 상호작용 또한 매우 다양하여, 체제 전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했을 때 관계들이 어떤 모습일까를 예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천천히 완성되고 있는 양성 관계의 진화는 결혼 의식이나 의무적인 개별 가족은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치적 권리를 위한 투쟁
    페미니스트들은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비평에 답한다: 비록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옹호하려는 우리의 논거가 당신들에게는 잘못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페미니스트들과 노동 계급의 대표들에게 똑같이 긴급한 요구 자체의 중요성이 감소되는가? 사회적으로 다른 두 진영의 여성들이 공동의 정치적 염원을 위해 그들을 갈라놓는 계급 적대의 장벽을 극복할 수는 없는가? 그러나 정말로 그녀들을 둘러싸고 있는 적대적 힘에 맞서 공동으로 투쟁할 수 있는가? 다른 여러 문제들이 관련되어 있는 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분열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특수한 문제의 경우에는 다양한 사회적 계급에 속해있는 여성들이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위한 투쟁에 힘을 모으자는 페미니스트들의 제안을 노동자 계급의 대표들이 거절했을 때 페미니스트들은 그 속에서 노동자 계급의 당파적 충성심을 발견하고는 안타깝고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위와 같은 논거를 계속 들이댄다. 이것이 진짜 사실인가? 진정으로 완벽하게 일치하는 정치적 염원이 있는가, 혹은 다른 모든 경우들처럼 이 경우에서도 계급적대가 계급을 뛰어넘은 단일한 여성 군대를 조직하는 것을 막게 되는가?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달성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이 사용할 전술의 윤곽을 그리기 전에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답해야만 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자신들이 사회주의적 개혁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일부는 사회주의―물론 먼 미래에 실행될―를 옹호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노동자 계급의 지위에서 싸우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들 대다수는 지금의 사회적 질병은 태생적으로 이기적인 남성들이 상황을 주도해왔기 때문에 깊어진 것이라 보고, 일단 자신들이 대의원 자리를 얻기만 하면 그런 질병들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고 있다.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페미니스트 진영들 각각의 의도가 아무리 선하다 할지라도, 그들은 계급투쟁의 문제가 제기될 때면 언제나 화들짝 놀라 전쟁터를 떠났다. 그들은 이질적인 원인 때문에 방해받고 싶어 하지 않으며, 그들에게 보다 친근한 부르주아 자유주의로 되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부르주아 페미니스트들이 그들의 정치적 열망 속의 본심을 억누르려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이 정치적 영역에 개입하는 것이 노동자 계급의 여성에게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득을 가져다준다고 어린 자매들에게 아무리 확신한다 할지라도, 페미니스트 운동 전체에 침투해있는 부르주아 정신은 평등한 정치적 권리 요구에까지 부르주아적인 색체를 입힐 것이다. 물론 겉으로는 보편적인 여성들의 요구로 보일 테지만... 정치적 권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상이한 목표와 이해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여성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깊은 골을 만들었다. 이것이 두 여성 진영의 긴급한 임무가 어느 정도까지는 일치할 수도 있다는 사실과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정치적 권력에 가까이 간 모든 계급의 대표자들은 무엇보다도 모든 나라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성에 대한 차별을 담고 있는 민법을 개정하려고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자신들에게 좀 더 유리한 노동 조건을 만드는 법적 변화를 촉구한다; 그녀들이 성매매를 합법화하는 규제에 모두 함께 맞선 일 등. 그러나 이러한 긴급한 임무가 일치한 것은 순전히 형식적일 뿐이다. 왜냐하면 계급적 이해에 따라 이런 개혁에 대한 두 진영의 태도가 매우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들이 무어라 말하건 간에 계급적 본능은 언제나 "계급을 초월한" 정치라는 고상한 열망보다도 더 강력하게 스스로를 드러내곤 했다. 부르주아 여성들과 "어린 자매들"이 똑같이 불평등한 동안은 부르주아 여성들이 여성들의 보편적인 이익을 옹호하려고 진심으로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장벽이 사라지고 부르주아 여성들이 정치활동의 권리를 얻게 되면, "모든 여성의 권리"를 수호하던 그들은 자신들의 계급이 향유하고 있는 특권을 열광적으로 수호하게 될 것이다. 어린 자매들이 아무런 권리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에 오히려 만족하면서 말이다. 그러므로 페미니스트들이 여성노동자들에게 "보편적인 여성들"의 원리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공동투쟁이 필요하다고 말할 때,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불신을 갖게 된다.












    공산주의와 가족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편집자 주>
    가족의 변화에 대한 콜론타이의 생각을 담은 이 팜플렛은 1918년에 쓰여 졌다. 전쟁과 혁명의 혼란을 맞이한 소비에트의 당시 상황은 가족을 비롯한 사회 전반의 토대를 새롭게 구성해야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러시아에서 지배적인 결혼 형태는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종교에 기초한 결혼이었다. 이 결혼은 죽을 때까지 깨질 수 없는 것이었고, 글에 나타난 것처럼 여성들에게 가혹한 것이었다. 콜론타이는 러시아 혁명의 과정에서 이러한 전통적인 결혼이 유지될 수 없는 조건들이 출현하고, 실제 전통적인 결혼이 해체되고 있는 상황에 주목했다. 콜론타이는 이러한 상황을 공산주의 사회에서 새롭게 구성될 남녀의 관계와 그에 부합하는 가족의 형태를 발전시켜야하는 상황으로 보았다. 콜론타이는 새로운 남녀 관계는 소비에트의 동등한 두 구성원이 자유로운 사랑과 상호존중으로 결합하는 것이어야 함을 주장했다. 이러한 결합은 여성의 억압과 종속을 기초로 한 전통적인 가족을 전화시켜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여성이 가사와 양육의 부담에서 벗어나 자신의 일을 통해 경제적 독립을 달성해야하고,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언제든 그것이 자신에게 종속과 속박을 요구할 때 철수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가족은 이러한 방향에 부합할 수 있도록 전화되어야 했다. 이 글은 콜론타이의 이러한 생각을 담은 글이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전통적인 가족이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어떻게 바뀔 것인가, 그것이 여성의 해방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주로 다루고 있다.
    그 당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1918년 소비에트의 가족법이 개정되었다. 이 가족법이 교회와 종교에 의한 결혼을 시민법에 의한 결혼으로 대체하는 등 그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아버지가 자녀를 부양하고, 가족이 미성년자들의 교육과 양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강조되었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종교와 관습에 의존한 결혼이 다수였던 농민들의 결혼은 단지 사실혼으로 남게 되었다. 결국 새로운 노동자들의 국가 속에서 가족의 ‘전화’를 역설했던 콜론타이의 생각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사회 속에서 최소한의 생계단위, 상호의존적인 집단으로서 가족을 ‘강화’하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콜론타이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국가라는 공동체가 가사와 양육의 책임져야 함을 주장하면서, 전시 공산주의에서의 의무노동법안이나 그 후 신경제정책(NEP), 그리고 1926년 또 한 번의 가족법 개정과 같은 계기 속에서 여성들의 조건과 권리에 입각한 주장을 펼쳤다. 이와 동시에 남녀 노동자의 새로운 관계에 대한 대답도 계속해서 발전시켜갔으며, ‘자유결합’이라고 일컬어지는 새로운 관계를 모색했다.


    생산에서 여성의 역할; 그것이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
    공산주의 하에서도 가족은 계속 존재할 것인가? 가족은 같은 형태로 유지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은 많은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을 곤란하게 하고 남자들 또한 걱정하게 만들고 있다. 삶은 바로 눈앞에서 변화하고 있다; 오랜 습관과 관행들은 사라져가고 있으며, 프롤레타리아 가족의 삶은 새롭고 친숙하지 않은, 또 어떤 이들의 눈에는 "괴기한"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여성노동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주의를 끄는 또 다른 사실은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이혼이 더 쉬워진 것이다. 1917년 12월 18일 발포된 인민위원의회의 법령은 이혼이 더 이상 부자들만 할 수 있는 사치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여성노동자는 그녀를 때리고 술주정과 거친 행동으로 그녀의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남편과 떨어져 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몇 달 심지어 몇 년 동안 청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제 상호 동의에 의한 이혼은 1~2주 이상 걸리지 않는다. 결혼한 삶이 행복하지 않았던 여성들은 이 쉬운 이혼을 환영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 특히 남편을 “생계수단”으로 여기는데 익숙해진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그들은 여성이 개별적인 남성이 아니라 공동체와 사회 안에서 지원을 요구하고 찾는 것에 스스로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진실을 회피하려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남자가 모든 것이고 여자는 아무것도 아닌 오래된 가족, 여성의 의지, 그녀를 위한 돈과 시간은 어디에도 없는 전통적인 가족은 바로 눈앞에서 변하고 있다. 그러나 놀랄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결코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단지 우리의 무지일 뿐이다. “늘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는 속담만큼 진실이 아닌 것도 없다. 모든 것은 바뀔 수 있고, 어떤 관습이나 정치적인 조직들, 도덕적인 원칙들도 고정되거나 신성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단지 과거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 역사의 과정에서 가족의 구조는 여러 번 변했다; 한때 가족은 오늘날의 가족과 상당히 달랐다. 친족가족이 표준으로 사고되던 때도 있었다: 어머니가 그녀의 자녀들과 손자․손녀, 증손자․증손녀로 구성된 가족을 이끌었고, 그들은 함께 살고, 함께 일했다. 다른 시기에는 가부장적인 가족이 규칙이었다. 이 경우에 아버지의 의지는 가족의 다른 구성원 모두에게 법이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러시아 시골의 소농계급 사이에서 이런 가족들이 발견될 수 있다. 여기서 가족생활의 도덕과 관습은 도시지역 프롤레타리아의 그것과는 다르다. 시골에서 그들은 노동자들이 이미 오래 전에 잊어버린 규범을 지키고 있다. 게다가 가족의 구조와 가족생활의 관습은 나라마다 다르다. 터키나 아랍 또는 페르시아 같은 나라들에서는 한 남자가 여러 명의 아내들을 가지는 일이 허용된다. 우리는 어린 소녀가 결혼할 때까지는 처녀로 남아있을 거라는 기대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많은 연인을 가졌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여자들이 그 수만큼의 팔찌를 팔과 다리에 장식하는 종족들도 있다. 우리를 깜짝 놀라게 만들고 심지어 비도덕적인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 많은 관습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상적인 것으로 사고되며, 그들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법과 관습들이 ‘죄스러운’ 것으로 사고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가족이 변화의 과정에 있다는 사실에, 낡고 필요 없는 것들은 사라지고 새로운 남녀 관계가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우리의 일은 가족 체계의 어떤 측면이 시효가 만료된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고, 노동자․농민 계급 남녀 사이의 어떤 관계가 그리고 어떤 권리와 의무가 새롭게 형성된 노동자들의 러시아의 생활조건들과 가장 잘 조화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새로운 삶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들은 유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오래되고 낡은 모든 것, 지배와 예속의 저주받은 시대, 지주와 자본가들의 시대로부터 유래한 모든 것들은 착취하는 계급 그 자체와 프롤레타리아와 빈민의 다른 적들과 함께 사라져야만 한다.
    도시와 시골의 프롤레타리아에게 익숙했던 가족 형태는 이러한 과거의 유산들 중 하나이다. 교회 결혼에 기초한 고립되고 견고하게 짜여진 가족이 가족구성원들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만약 가족이 없었다면 누가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길렀겠는가? 누가 아이들에게 충고를 해주었겠는가? 지난날, 고아가 되는 것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운명이었다. 예전의 가족에서 남편은 돈을 벌고 아내와 아이들을 부양했다. 아내로서 그녀의 역할은 그녀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집안을 돌보고 아이를 양육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백년 동안 이런 관습적인 가족 구조는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모든 나라에서, 고용주가 노동자를 고용하는 공장과 다른 기업들의 수가 증가하는 모든 나라에서 점차 쇠약해졌다. 삶의 일반적인 조건들이 변화함에 따라 가족생활의 관습들과 도덕적 원칙들도 변화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족생활의 급진적인 변화에 기여했던 것은 보편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여성 노동이다. 이전에는 오직 남자만을 생계부양자로 여겼었다. 그러나 지난 50~60년 동안(그리고 다른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약간 더 긴 기간 동안) 러시아 여성들은 가족과 가정 밖에서 유급의 일을 찾도록 강요받았다. “생계부양자”의 임금이 가족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게 되면서, 여성들은 스스로가 임금을 찾아 공장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게 되었음을 발견했다. 일용노동자로, 판매원으로, 혹은 점원으로, 그리고 세탁부, 하녀로 가정 밖에서 일하기 시작하는 노동자 계급 여성들의 수는 매년 증가했다. 통계는 1차 세계대전 발발 전인 1914년에 유럽과 미국에서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들이 약 6천만 명이었고, 전쟁동안 이 수는 상당히 증가하였음을 보여준다. 이 여성들의 거의 절반은 기혼이었다. 그들의 가족생활이 어떤 형태였을 것인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만약 아내와 어머니가 최소한 8시간을 일하러 나가고, 이동의 시간까지 합쳐서 하루에 10시간 동안 집을 비운다면, 어떤 종류의 “가족생활”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녀의 가정은 고려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거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이런 환경의 모든 위험에 노출된 채 어머니의 보살핌 없이 자란다. 아내이면서 어머니이고 노동자인 여성은 이런 역할들을 완수하기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짜내야만 한다. 그녀는 공장과 인쇄소 또는 상업적 시설에서 그녀의 남편과 같은 시간을 일해야만 하고, 그것에 더하여 가사노동에 종사하고 아이들을 돌볼 시간을 찾아야만 한다. 자본주의는 여성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있다: 어머니 또는 주부로서 보살핌을 감소시키지 않은 채 그녀를 임금노동자로 만들고 있다. 여성은 3중 부담의 무게 아래에서 비틀거린다. 그녀는 고통을 겪고, 그녀의 얼굴은 항상 눈물로 젖어있다. 여성에게 삶이 쉬웠던 적은 결코 없었다. 하지만 수백만 여성노동자들의 운명이 자본주의의 멍에 아래 놓여있는, 이 공장생산의 절정기만큼이나 여성들의 삶이 어렵고 절망적인 적은 없었다.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일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감에 따라 가족은 부서진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시간에 교대로 일할 때 그리고 아내가 그녀의 자식들을 위해 적절한 식사를 준비할 시간조차 없을 때, 어떻게 서로 가족생활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고 있고 그들의 아이들과 잠시도 시간을 보낼 수 없다면, 누가 부모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옛날과 아주 다르다. 어머니는 집에 남아있었고 가정주부로서의 의무에 종사했다; 그녀의 아이들은 그녀의 곁에, 그녀의 감시망 아래 있었다. 요즘에 여성노동자는 공장의 호각소리를 듣자마자 이른 아침 서둘러 집밖으로 나간다. 저녁이 되어 다시 호각소리가 들리면 그녀는 가사 임무 중에 가장 긴요한 일들을 해치우기 위해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그 일을 마치고 나서야 그녀는 다음 날 아침 다시 일하기 위해 쉴 수 있다. 그녀는 잠이 부족해 지쳐간다. 기혼 여성노동자에게 생활은 노역장(勞役場)처럼 힘들다. 그런 까닭에 가족의 끈이 느슨해지고 가족이 시들어 가는 것은 놀랍지 않다. 가족을 결합시켰던 환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은 그 구성원들에게 또는 국가 전체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를 그만두고 있다. 이제 과거의 가족구조는 단지 장애물일 뿐이다. 예전의 가족이 그렇게 강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로 남편과 아버지가 가족의 생계를 부양했기 때문이다; 둘째로 가족 경제가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아이들이 그들의 부모에 의해 키워졌기 때문이다. 이전의 이런 가족 형태에서 현재 남아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남편은 유일한 생계부양자가 되는 것을 그만뒀다. 일하러 가는 아내는 임금을 번다. 그녀는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는 것, 아이들을 부양하고 종종 남편까지도 부양하는 것을 배웠다. 이제 가족은 단지 사회의 기초적인 경제단위로서 그리고 어린 아이들의 부양자이며 교육자로서만 기능할 뿐이다. 가족이 이런 임무들로부터 벗어날 것인지 아닌지를 살펴보는 것을 포함하여 좀 더 세세한 문제들을 검토해보자.

    가사가 필수적이기를 그만두다.
    도시와 시골의 더 빈곤한 계급 여성들이 가정의 네 벽안에서 삶 전체를 보냈던 때가 있었다. 여성들은 자신의 문지방을 넘어선 일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고, 대부분의 경우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집 안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고, 이 일은 가족들뿐만 아니라 국가에게도 필수적이고 유용했다. 여성은 현대의 여성노동자, 여성농민이 해야 하는 모든 것을 했다; 그러나 요리, 빨래, 청소, 수선 외에도 양털과 베를 잣고, 옷을 짜고, 양말을 뜨고, 레이스를 만들고, 겨울을 위해 -그녀에게 허락되는 재료의 한도 내에서- 모든 종류의 피클, 잼을 준비하고, 양초를 만들었다. 그녀의 모든 의무를 완벽한 목록으로 만드는 것은 어렵다. 이것이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살아온 방식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우리들은 시골에서도 더 깊이 들어가고 철로와 큰 강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마을에서 이런 방식의 생활이 여전히 지속되고, 큰 도시와 인구가 많은 산업지역의 여성노동자들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모든 종류의 허드렛일이 집 안의 여주인에게 과중하게 맡겨지고 있는 현실을 만날 수 있다.
    우리 할머니들의 시대에, 이런 모든 가사 노동은 필수적이었고 이익을 주었다; 그것은 가족의 안녕을 보장했다. 주부가 가사에 전념하면 할수록 농민과 숙련공의 가족들은 더 잘 살았다. 심지어 국가 경제는 가정주부들의 활동으로부터 이익을 얻었는데, 그것은 여성이 국을 끓이고 감자를 요리하는(즉, 가족의 일차적인 요구들을 충족시키는) 활동에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상품으로서 가치를 가진 옷, 실, 버터 등을 생산했기 때문이다. 농민과 노동자를 불문하고 모든 남자들은 “황금의 손”을 가진 여성을 찾으려 노력했다. 왜냐하면 그는 이 “가사 노동”이 없이는 가족이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가사노동은〕국가 전체의 이익에도 연관이 되었는데, 여성과 가족의 다른 구성원들이 옷, 가죽 그리고 양모(근처의 시장에서 팔리는 것 이상)를 만드는데 더 많은 노동을 투여하면 할수록, 전체적으로 국가의 번영은 더 커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이전에 가족 안에서 생산되던 모든 것들이 지금은 작업장과 공장에서 대규모로 제조되고 있다. 기계는 아내의 자리를 대체했다. 지금은 어떤 가정주부가 귀찮게 양초를 만들고, 털실을 잣고, 옷을 뜨는 일을 하는가? 이 모든 생산품들은 문 옆 가게에서 살 수 있다. 이전에 모든 소녀들은 양말 뜨는 것을 배웠다. 오늘날 어떤 여성노동자가 그녀 자신의 물건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는가? 우선 그녀는 시간이 없다. 시간은 돈이고, 아무도 비생산적이고 쓸모없는 방법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을 가게에서 살 수 있을 때, 오이 피클을 담그거나 다른 저장 식품을 만들려는 여성노동자들은 거의 없다. 심지어 가게에서 파는 생산품이 질이 낮고 집에서 만든 것과 같은 정성으로 준비되지 않더라도, 여성노동자는 이런 가사 노동을 하는데 필요한 시간도 없고, 돈도 없다. 무엇보다 그녀는 고용된 노동자다. 그러므로 가족 경제는 우리 할머니들이 가족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가사 노동을 점차 박탈당하고 있다. 이전에 가족 내에서 생산되던 것들이 지금은 공장에서 일하는 남녀의 집단적인 노동에 의해 생산된다.
    가족은 더 이상 생산하지 않는다; 단지 소비할 뿐이다. 남겨진 집안일은 청소(바닥을 닦고, 먼지를 치우고, 물을 데우고, 전기를 살피는 등), 요리(오찬과 저녁식사 준비), 세탁 그리고 가족의 옷을 살피는 것(수선과 꿰메기)으로 구성된다. 이것들은 어렵고 지치는 일들이다. 게다가 그것들은 공장에서 시간을 보내야하는 여성노동자의 남는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아 간다. 그러나 이 일은 우리의 할머니들이 했던 일과 한 가지 중요한 점이 다르다; 가족이 함께 유지되기 위해 제공되어야 하는 위의 네 가지 일은 국가와 국가 경제에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나라의 번영에 어떤 기여를 하거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부는 집을 청소를 하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을 보낼 것이다. 그녀는 매일 설거지를 하고 천을 다릴 것이다. 옷을 잘 정돈된 상태로 유지하고, 그녀가 원하고 재료가 허락하는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어떤 가치를 창조하지 못한 채 하루를 끝낼 것이다. 그녀의 성실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상품이라고 여겨지는 어떤 것을 만들지 못한다. 심지어 여성노동자가 천년을 산다할지라도, 그녀는 매일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할 것이다. 벽난로에는 항상 제거해야할 먼지가 새롭게 쌓여있을 것이고, 남편은 항상 배가 고프다며 집에 들어올 것이며, 아이들은 신발에 진흙을 묻혀올 것이다.
    여성들의 일은 공동체 전체에 점점 덜 유용한 것이 되어 가고 있다. 그것은 비생산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개개의 가족은 죽어가고 있다. 여성들의 일은 우리 사회에서 집단적인 가사노동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여성노동자가 바닥을 청소하는 대신에 공산주의 사회는 아침에 방을 청소하는 일에 남자와 여자들을 배치할 수 있다. 부자의 아내들은 오래 전부터 이 짜증나고 피곤한 가사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웠다. 왜 여성노동자들은 그 부담을 계속 짊어져야 하는가?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이전에는 매우 부유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안락함과 밝음, 청결함과 아름다움에 둘러싸여야만 한다. 여성노동자들이 요리를 하느라 애를 쓰고, 저녁과 식사를 준비하느라 마지막 자유시간을 부엌에서 쓰는 대신에, 공산주의 사회는 공공식당과 공동부엌을 조직할 것이다.
    심지어 자본주의 하에서도 이런 시설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실 지난 반세기 동안 유럽의 모든 대도시들에서 식당과 카페의 수는 매일 증가하고 있다; 그들은 가을비가 내린 후에 자라는 버섯처럼 솟아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하에서는 두둑한 지갑을 가진 사람들만이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반면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모두가 공동부엌과 공공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여성노동자는 더 이상 빨래통의 노예가 되거나 양말을 꿰매고 옷을 수선하느라 눈을 버릴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그녀는 매주 중앙 세탁실에 이것들을 가져다주고, 나중에 세탁되고 다려진 옷을 모아오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것은 덜 중요한 다른 일이 될 것이다. 특별한 수선센터가 여성노동자들을 수선에 사용하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것이고, 그녀에게 책을 읽거나 회합과 콘서트에 참석하는데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그러므로 집안일의 네 가지 범주는 공산주의의 승리와 함께 소멸의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여성노동자들은 이것을 서운해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공산주의는 여성을 가정의 노예에서 해방시켜주고 그녀의 삶을 더 부유하고 행복하게 만든다.

    국가는 아이들을 양육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당신은 주장할 수도 있다. 비록 집안 일이 사라질지라도 여전히 아이를 돌보는 일이 있다고. 하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도 노동자들의 국가는 가족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혁명이 개별 부모들을 없애기 전에 이미 사회는 점차 이 모든 일들을 책임질 것이다. 심지어 혁명 이전에 아이의 교육은 부모의 의무가 되기를 멈추었다. 일단 아이가 학교에 가야할 나이가 되면, 부모들은 좀 더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 이상 아이들의 지적인 계발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수행해야 할 많은 의무가 있었다. 여전히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는 문제가 있었다. 여전히 아이들이 자라서 때가 되면 스스로의 생계를 벌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정직한 노동자가 될 수 있는지 그래서 나이든 부모를 부양할 수 있는지를 살펴야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이 의무를 만족시킬 수 있는 노동자 가족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낮은 임금 때문에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충분히 줄 수 없었고, 여가 시간이 부족해서 자라나는 세대의 교육에 꼭 필요한 관심을 쏟을 수가 없었다. 가족이 아이들을 양육할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프롤레타리아의 아이들은 거리에서 자란다. 우리의 조상들은 일정한 가족생활을 알았지만, 프롤레타리아의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게다가 부모의 적은 수입과 가족이 놓여있는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지위 때문에 종종 아이들은 겨우 열 살의 나이에 독립적인 노동자가 되도록 강요받는다. 아이들이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스스로를 가장이라고 여기며, 부모의 말과 조언은 더 이상 법이 아니다; 부모의 권위는 약해지고 복종은 끝이 난다.
    집안 일이 사라지는 것처럼 그렇게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의무도 사회가 마침내 완전한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해질 때까지 점차 사라져간다. 자본주의 하에서 아이들은 프롤레타리아 가족에게 자주, 너무 자주 무거워서 견디기 힘든 짐이었다. 공산주의 사회는 부모의 조력자가 될 것이다.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공교육위원회와 사회복지위원회는 이미 가족들에 대한 많은 보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영아들을 위한 시설과 탁아소, 유치원, 아이들의 집단 시설, 아픈 아이들을 위한 병원과 요양원, 식당, 학교의 무료 급식과 무료로 제공된 교과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위한 따뜻한 옷과 신발을 가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아이들에 대한 책임이 가족에서 집단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가족에서 아이들에 대한 부모의 보살핌은 세 부분으로 나눠질 수 있다: (a) 영아에 대한 보살핌, (b) 아이의 양육, (c) 아이의 교육. 심지어 자본주의 사회에서조차 초등학교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 중등과 고등의 교육기관에서 아이를 교육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 되었다. 심지어 자본주의 사회에서조차 노동자들의 요구는 운동장, 유치원, 놀이 집단 등을 제공하는 것을 통해 어느 정도까지 충족되었다. 노동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자각하면 할수록 그리고 그들이 더 잘 조직화되면 될수록 사회는 가족에게서 아이를 돌보는 일을 덜어주어야만 했다. 그러나 부르주아 사회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너무 많이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것이 계속되면 가족이 파괴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왜냐하면 여자는 노예였고 남편이 아내와 아이들의 행복을 책임져야 했던 가족의 옛 형태가 투쟁에 있어서 자유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욕구를 억누르고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의 혁명정신을 약하게 하는 최고의 무기임을 자본가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을 보살펴야하는 것은 노동자를 압박하고, 따라서 어쩔 수 없이 노동자는 자본과 타협을 하게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들의 아이들이 배고플 때면 어떤 조건에도 동의할 준비가 되어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교육을 사회와 국가의 문제로 바꿀 수 없다. 왜냐하면 자산가, 즉 부르주아들이 이것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사회는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사회적 교육을 새로운 생활의 근본적인 측면들 중 하나로 간주한다. 부모들이 말다툼을 하고 자신의 후손에게만 관심이 있는 협소한 구래의 가족은 “새로운 사람”을 교육할 수 없다. 반면에 아이들이 자격을 갖춘 교육자의 지도하에 하루의 대부분을 보낼 수 있는 운동장, 정원, 시설과 다른 오락시설들은 아이들이 연대, 동지애, 상호간의 도움, 공동체에 대한 충성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사려 깊은 공산주의자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것이다. 부모가 더 이상 교육과 양육을 책임지지 않아도 될 때, 그들에게 남겨진 책임은 무엇인가? 당신은 대답할지도 모른다. 아주 작은 아기가 걷는 것을 배우려 어머니의 치맛자락에 매달리는 동안에는 여전히 어머니의 관심을 필요로 한다고. 여기에서도 공산주의 국가는 일하는 어머니를 돕는데 주저함이 없다. 더 이상 홀로 남겨진 여성들은 없다. 노동자의 국가는 아이에게 젓을 먹여야하는 시기동안 결혼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어머니를 지원하는 것과 여성들에게 사회적인 노동을 모성에 결합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모든 도시와 마을에 산부인과와 탁아소를 비롯한 여타의 시설들을 설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일하는 어머니들은 경계할 필요가 없다; 공산주의 사회는 그들의 부모로부터 아이들을 가져가거나 어머니의 품에서 아이를 뺏어가려는 것이 아니며 폭력적인 조치들로 가족을 파괴하려는 것도 아니다.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다! 공산주의 사회의 목적은 아주 다르다. 공산주의 사회는 가족의 옛 형태가 파괴되고 있음을 그리고 사회적 단위로서 가족을 지탱하고 있던 오랜 기둥들이 제거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가족경제는 죽어가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돌볼 수 없거나 아이들에게 양식(糧食)과 교육을 제공할 수 없다. 부모와 아이들은 이런 상황 때문에 똑같이 고통받고 있다. 공산주의 사회는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은 젊고, 서로 사랑하고 있다. 모두가 행복해질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당신의 삶을 살아라. 행복을 놓치지 말아라. 비록 자본주의 하에서 결혼이 슬픔의 사슬이었을지라도 결혼을 두려워하지 마라. 아이를 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사회는 더 많은 노동자를 필요로 하며 모든 아이의 출생을 기뻐한다. 당신은 아이의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당신의 아이는 굶주림도 추위도 알지 못할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는 모든 아이들을 돌보고, 아이와 어머니 둘 다에게 물질적, 정신적 지원을 보장할 것이다. 사회가 아이들을 먹이고, 양육하고, 교육할 것이다. 동시에 아이들의 교육에 참여하고 싶은 부모들이 교육에 참여하는 것은 결코 금지되지 않을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는 아이들의 교육과 관련된 모든 의무를 사회가 질 것이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의 교육으로부터 오는〕부모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그 기쁨을 빼앗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공산주의 사회의 계획이며, 이것은 가족을 강제적으로 파괴하고 어머니로부터 아이를 강제적으로 떼어놓는 것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
    진실을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족의 옛 형태는 전성기를 누렸었다. 그런 가족은 사라지고 있는데, 국가가 강제적으로 가족을 파괴하기 때문이 아니라 가족이 필수 불가결한 것이기를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국가는 가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가족경제가 더 이상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은 노동자가 더 유용하고 생산적인 노동에 집중할 수 없게 한다. 가족의 구성원도 가족이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가족의 일이었던 아이를 양육하는 일이 점점 더 공동체의 손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남녀 사이의 예전 관계 대신에 새로운 관계가 발전하고 있다; 애정과 동지애의 결합, 즉 남녀 둘 다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노동자인, 공산주의 사회의 동등한 두 구성원의 결합. 더 이상 여성에게 가사의 굴레는 없다. 더 이상 가족 안에서의 불평등은 없다. 더 이상 여성이 아무런 지원 없이 남아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여성은 더 이상 남편에게 의존하지 않고 그녀의 일에 의존한다. 그녀가 지원을 찾는 곳은 남편이 아니라 노동에서의 그녀의 재능이다. 그녀는 아이들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당연히 노동자의 국가가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맡을 것이다. 결혼에서 가족생활을 불구로 만들었던 모든 물질적 타산의 요소는 없어질 것이다. 결혼은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두 사람의 결합이 될 것이다. 그런 결합은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는 남성노동자들과 여성노동자들에게 가장 완벽한 행복과 최고의 만족을 약속한다. 과거의 혼인 노예제 대신에 공산주의 사회는 여성과 남성에게 동지애 속에서 굳건한 자유결합을 제공한다. 그리고 동지애는 그런 자유결합을 고무한다. 일단 노동의 조건이 변화하고, 여성노동자의 물질적인 안정이 증가하면 그리고 일단 교회에서 행해졌던 그런 결혼―근본적으로는 사기에 불과하지만 흔히 깨질 수 없다고 말하는 결혼―이 연인이자 동지인 남녀의 자유롭고 정직한 결합으로 대체된다면, 매춘은 사라질 것이다. 인류의 오점이자 굶주린 여성노동자의 재앙인 이 해악은 상품생산과 사적소유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일단 이런 경제적인 형태가 폐기되면, 여성들을 거래하는 것도 자동적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 계급의 여성들은 가족이 사라질 운명이라는 사실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반대로 그들은 여성들이 가사 노역으로부터 해방되고 어머니의 부담을 가볍게 하며 매춘이라는 끔찍한 저주를 끝장낼 새로운 사회가 밝아오는 것을 환영해야만 한다.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여성은 예전의 사적소유권에 입각한 사고방식은 더 이상 있을 자리가 없음을 이해하는 것을 배워야한다. 예전의 사고방식은 이렇게 말한다; “이들은 나의 아이들이고, 나는 그들에게 어머니로서의 염려와 애정을 전부 쏟는다; 저들은 너의 아이들이고, 그들은 내 관심사가 아니며, 그들이 굶주리고 추위에 떨어도 나는 상관없다. - 나는 다른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 없다.” 노동자-어머니는 남의 아이와 나의 아이를 차별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한다; 그녀는 오직 우리의 아이들, 러시아의 공산주의 노동자들의 아이들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노동자의 국가는 남녀 간의 새로운 관계를 필요로 한다.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협소하고 배타적인 사랑이 위대한 프롤레타리아 가족의 모든 아이들에게 베풀어질 때까지 확장되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의 종속에 기초한 깨질 수 없는 가족도 사랑과 상호 존중으로 결합된 노동자 국가의 동등한 두 성의 자유로운 결합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개별적이고 이기적인 가족 대신에 노동자들의 위대한 보편 가족이 발전할 것이며, 그 속에서 모든 노동자들, 남성들과 여성들은 무엇보다도 동지가 될 것이다. 이것이 공산주의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의 관계가 보여줄 모습이다. 이런 새로운 관계는 인류에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사랑, 즉 자신의 감정과 애정으로부터 자유롭고 행복한 젊은이들의 진정한 사회적 평등에 기초한 자유로운 사랑이 주는 온갖 기쁨을 보증할 것이다.
    평등, 자유 그리고 새로운 결혼의 동지적인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노동자와 농민 남녀에게 용감하게 그리고 신념을 가지고 인간 사회를 좀 더 완벽하고, 좀 더 정의롭고, 개개인에게 그 또는 그녀가 마땅히 가져야할 행복을 보장해줄 수 있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 인간 사회를 재건하는 과업에 스스로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러시아에서 펄럭이고 있는 그리고 전 세계의 다른 나라에서 높이 올라가고 있는 사회혁명의 붉은 깃발은 인류가 수세기 동안 열망해왔던 지상 위의 천국을 선언하고 있다.























    날개달린 에로스의 길을 열자
    젊은 노동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편집자주> 1920년대 초반 콜론타이는 가족과 성적 관계라는 여성문제에 관한 몇 편의 가장 흥미로운 기사와 수필을 집필했다. 그러나 그녀는 소비에트 현실에서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그녀의 견해를 발달시키기보다는 초기 역사들에까지 사고를 확대시켰다. 그리고 그녀는 증가하는 당면 공격들에 대항하여 그녀가 내세우는 생각들을 수호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많은 저작들은, 사실, 전시 공산주의에 출간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이 소비에트가 후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주의 건설이 직면한 어려움과 장애들에 무지하다는 것을 입증시켜 준다면 그것은 그것들이 모두 볼세비키 저작들과 공유되었기 때문이다. 볼세비키는 여전히도 세계변혁의 승리에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콜론타이는 NEP에 적대적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계속해서 공산주의를 향한 진군과 지름길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처럼 보일 때, 그 시대를 공식화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러한 작업 때문에 새로운 정부 정책에서 여성의 요구를 통합시켜 내거나 당이 여성을 억압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이해시키기 위해 효과적으로 싸우질 못했다. 그녀는 당이 몰두하는 자본 축적과 산업화에 대해 정치적 논쟁을 위하여 쓴 이슈의 중요성을 보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따라서 그녀는 여성과 가족의 문제가 응당 차지해야할 중심적인 지위로 격상시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녀의 적수는 그녀의 여성권리 옹호를 그녀가 정부의 경제 정책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탓하거나, 의도는 좋지만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많은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없는 일이라고 탓했다; 그리고 사실, 많은 당원들에게 명령이나 함구령으로 간청하면서 그들은 그녀가 여성문제의 대변인으로서 당내에서 확장시키고자 했던 영향들을 쉽게 파괴시키곤 하였다.
    한 서구 논평가는 공통의 견해를 표하면서 "그녀의 자유로운 사랑에 대한 사고는, 여지껏 자본가 사회로부터 그 후대로 이식되었다는 추상적인 부정에 제한되어있었던 한계를 벗어나, 보수적인 견해뿐만 아니라 혁명당원 일세대로부터 조차 방탕하다고 간주되어온 규범들을 긍정적으로 발달시켜왔다"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콜론타이의 사고는 점점 더 불합리해 보였고, 당원들은 분별 있게 단호한 태도를 취할 수 있었다. 실제적으로는 사실은 이와 완전히 달랐다. 왜냐하면 그녀의 생각은 전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떠한 제기들도 없이 받아들여졌던 것들에 반대하면서 변화한 것은 당 내․외부에 존재했던 남성과 여성들의 태도였다.
    비록 레닌이 1919년에 통과한 가족을 통합시키는 당의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해 폐지를 요구하는 콜론타이의 제안을 명백히 반대하기는 하였으나, 콜론타이는 여성위원회와 여성부를 통해, 해결책들에 관한 그녀의 견해를 기사나 팜플렛에서 표현해왔다. "젊은 노동자에게 쓰는 편지"라는 이 기사는 1922년 후반기에서 23년 초에 등장한 글로서 새로운 사회에서의 노동자의 이해에 적합한 사랑과 도덕이 재정의 되어야 함을 밝히고 있는 글이다.


    사회심리학적인 요소로서의 사랑
    젊은 동지인 당신은 나에게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가 사랑에 어떠한 공간을 주었는지 물었는가? 당신은 현시기에 젊은 노동자들이 노동자공화국을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기보다는 사랑이나 그와 관련된 문제들에 전념한다는 사실에 관심이 갈 것이다. 내가 거리를 두고 사건을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해답을 찾도록 시도해보자. 그러면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 안에서 사랑이 어떠한 공간을 차지하는지에 관한 첫 번째 질문에 답하기가 다소 수월해질 것이다.
    소비에트 러시아가 내전의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투쟁의 주요 전역(戰域)은 지금 두 개의 이데올로기와 두개의 문화-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전방이다. 이 두 개의 이데올로기의 양립불가능성은 점점 명확해지고 있으며, 이 두 개의 근본적으로 다른 문화들 사이의 모순은 점점 더 격렬해지고 있다. 정치학과 경제학의 영역에서 공산주의자의 원칙과 이상이 승리함에 따라 노동자 계급의 감정과 내면세계에서의 혁명도 불가피하게 발생하고 있다. 삶, 사회, 노동, 예술, 삶의 규범(도덕)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성적인 관계에 있어서의 합의는 이러한 삶의 규범들의 한 양상이다. 우리의 노동공화국이 5년 넘게 실현되는 동안, 이러한 비군사적인 최전방에서의 혁명은 남성과 여성이 생각하는 방식을 크게 변화시켜왔다. 두 이데올로기 사이의 전쟁이 더 강해질수록 격렬할수록, 오로지 노동자 계급의 이데올로기만이 만족스러운 답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삶의 수수께끼”와 새로운 문제들이 불가피하게 대두되고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진다.
    여기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사랑의 수수께끼"가 바로 그런 문제이다. 성별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은 인간사회 그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미스테리이다. 역사상 발전의 각각 다른 단계에서 인류는 다른 방법으로 이런 문제의 해결에 다가갔다. 문제는 이전과 같이 남아있다; 해결의 열쇠도 변한다. 해결의 열쇠는 다른 획기적 사건들과 권력 있는 계급, 특정한 시대(다른 말로 문화에 의해)의 "정신"에 의해 주어진다.
    러시아에서 최근 몇 년 동안의 격렬한 시민전쟁과 막연한 혼란 속에서 그 수수께끼의 근원에 관한 흥미는 거의 없었다. 노동계급의 남성과 여성은 다른 감정과 열정과 표현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난해 동안은 모든 사람들은 죽음의 그늘을 걸어 다니고, 승리가 혁명과 진보로 귀결될지 반혁명과 반동으로 끝날지가 결정될 시기였다. 혁명의 위협에 직면하여, 미묘한 날개달린 에로스는 삶의 현장으로부터 달아나고 있었다. 시간도 없었고 사랑의 "기쁨과 고통"을 향한 내적 힘의 여분도 없었다. 이것이 인류의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에너지의 보존의 법칙이다. 전체적으로 힘은 항상 역사적 순간의 가장 긴급한 목표를 향하게 된다. 이 때, 러시아에서는 재생산의 생물학적인 본능과 본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목소리 우세했다. 남성과 여성은 결합했고, 남성과 여성은 이전보다 더 쉽고 더 간단히 헤어졌다. 그들에게 엄청난 계약 같은 건 없었고, 눈물이나 후회도 없이 헤어졌다.
    성매매는 사라졌고, 파트너들이 서로에게 복종하지 않고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꾸미지 않은 채 재생산의 본능에 충실할 수 있는 수많은 성적인 관계들이 증가했다. 이러한 사실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당시에 이러한 발전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미 존재하고 있던 관계들이 지속되고, 동지애와 지속적인 우정을 통해 남성과 여성은 결합하고 그것들이 순간의 진지함으로 관계를 좀 더 귀중하게 되기도 했지만, 순수한 생물학적인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시작되거나, 두 파트너들이 업무를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거나 등한시해서 혁명을 위한 그들의 일이 방해되기도 했다.
    이 꾸밈없는 성적인 충동들은 쉽게 자극되었지만 곧 소모되었다; 그래서 "날개 없는 에로스"는 "날개달린 에로스"보다 조금 덜 내부적인 힘을 소모했다. 날개달린 에로스의 사랑은 모든 종류의 감정들의 미묘한 요소들로 짜여져 있다. “날개 없는 에로스”는 잠 못 드는 밤으로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다. 의지를 약화시키지도 않고, 마음의 이성적인 작동을 뒤얽히게 하지도 않는다. 혁명의 클라리온이 울려 퍼졌을 때 투쟁하는 계급은 "날개달린 에로스"의 힘 아래로 떨어질 수 없었다. 그런 시기에 혁명에 직접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험에 공동체 구성원들의 내적인 힘을 낭비해야 하는 것이 적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인 사랑은 그들의 마음을 결혼에 두게 하는 데, 이는 크나큰 내적인 에너지의 지출을 요구한다. 노동계급은 경제적으로 물질적인 부유함뿐만 아니라 각자의 지적이고 감정적인 힘을 보존하는 데에도 관심을 갖는다. 이런 이유로 혁명적인 투쟁이 고조되는 시기에는 별다른 요구는 지니지 않는 재생산 본능이 모든 것을 포용하는 “날개달린 에로스”를 대체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변했다. 소비에트 공화국과 전진하는 인류 전체는 일시적이고 상대적인 침묵의 시기에 들어서고 있다. 이제껏 이루어졌던 성과와 목표물들을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복잡한 업무가 시작되고 있다. 삶의 새로운 형식의 창조자인 프롤레타리아는 반드시 사회적 심리적인 현상들로부터 배울 수 있어야만하고, 이러한 현상들의 중요성을 움켜잡아야 하며 계급적 자기방어를 위해 무장할 수 있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물질적인 부의 창조를 가져오는 법뿐만 아니라 내적인 심리적인 세계의 법을 이해할 때, 부패한 부르주아 세계를 깨트려버리게 무장할 수 있다. 그럴 때만이 전진을 위해 노력하는 인류는 군대와 노동의 최전선에서뿐만 아니라 심리적-문화적인 최전선에의 승리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혁명은 승리가 입증되었고, 더욱 강력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혁명적 돌진의 기운은 남성과 여성에게 조금의 여유를 허용하기 시작했다. 부드러운-날개달린 에로스가 어둠 속에서 출현하여 정당한 자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날개 없는 에로스”는 심리적인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게 되었다. 감정적 에너지가 축적되기 시작하였으나, 남성과 여성은 심지어 노동자계급까지도 아직 이러한 에너지를 집단의 내적 삶을 위해 어떻게 사용해야하는지 배우지 못했다. 이러한 여분의 에너지는 사랑의 경험에 있어 출구를 필요로 한다. 사랑의 신의 현이 많은 수금은 단조로운 “날개 없는 에로스”의 목소리를 대신했다. 남성과 여성들은 이제 성적 본능을 순간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해서 결합할 뿐만 아니라 “러브 어페어”를 다시금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랑의 고통과 사랑이라는 행복한 기쁨에 대해서도 모두 알게 되었다.
    소비에트 공화국에서는 지적이고 감정적인 욕구, 지식에 대한 욕망, 과학적인 문제와 예술 및 문학에서의 흥미가 의심할 여지없이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변혁을 향한 이러한 움직임은 불가피하게 사랑을 경험하는 것 또한 포괄하고 있다. 사랑의 신비인 성에 대한 심리학적인 질문들이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까지는 사생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사람들은 몇 년 전까지는 오직 Pravda 사설이나 보고서들만 읽는데 시간을 할애했던 당원들이 날개달린 에로스를 찬미하는 소설들을 읽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이 반동적인 단계인가? 혁명적 창조성이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징후인가? 그 어느 것도 아니다! 지금은 우리가 부르주아들의 위선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사랑은 강력한 자연적인 본성, 생물학적인 힘으로서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요소라는 것을 솔직히 인식해야할 때이다. 본질적으로 사랑은 뿌리깊은 사회적인 감정이다. 인류 발전의 각 단계들에서 사랑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문화의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부분이었다. 사랑을 “사적인 문제”라고 보는 부르주아들조차도 계급적인 관심사로 사랑을 연결시켜왔다. 노동계급 이데올로기는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더욱 큰 주의를 기울여야만 하는데, 사랑은 다른 심리적이거나 사회적인 현상들처럼 집단적인 이익으로 연결될 수 있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절대 사랑하는 두 당사자들만의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 사랑은 한 집단에 가치 있는 요소들을 결합하게 해준다. 역사적인 발전의 각각 단계들에서 사회는 어떠한 조건 하에서 사랑이 “적합한지”(주어진 사회의 집단적 이익에 부합하는) 죄악시되거나 범죄화 되는지를(주어진 사회의 업무에 반하는) 정의하는 규범들을 마련했었다는 사실로부터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역사상의 기록
    인류는 역사가 시작되고서부터 성적 관계 뿐 아니라 사랑 자체를 통제하기를 추구했다.
    친족 공동체에서는, 혈연관계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겼다. 친족 공동체는 여성이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대신 형제자매에 대한 애정이야말로 최고의 감정이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빠의 시신을 매장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 안티고네는 당대에 영웅이었다. 근대 부르주아 사회는 누이동생이 이런 행동을 한다면 매우 이상하게 바라볼 것이다. 아직 국가가 발달되지 않은 단계인 부족 사회에서 가장 존중받는 사랑의 형태는 같은 부족의 두 구성원간의 사랑이었다. 사회집단이 막 친족 공동체에서 진화했지만 아직 새로운 형태로 출현되지 않았을 시점에는, 구성원간에 정신적, 감정적 유대를 형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우애’가 유대의 가장 적합한 형태였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결혼한 쌍 사이에서가 아니라 부족 구성원 사이에서, 국가의 조직자와 방어자 사이의 접촉의 확대와 축적이 집단의 이해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는 부족 남성들에게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물론 여성들은 당시 사회적 생활에 있어서 맡은 역할이 없었고, 여성간의 우정에 대해서도 이야기되지 않았다.) 남성과 여성의 사랑보다도 남성간의 “우정”이 훨씬 칭송되고 중요했다. Castor와 Pollux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수행했던 공로라기보다는 서로에 대한 충성심과 흔들리지 않는 우정으로 명성이 깊었다. 우정 혹은 그와 유사한 것을 위해 남성은 자신의 아내라도 지인 혹은 손님들에게 바쳤다.
    고대 세계는 우정과 “무덤까지 가는 충성심”을 시민적인 덕목으로 여겼다. 근대적 개념에서의 ‘사랑’이 차지할 공간은 없었고, 시인 혹은 작가들도 사랑에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당시의 지배 이데올로기는 사랑을 협소한 분야, 혹은 사회와는 관련 없는 개인적 경험으로 격하시켰다; 결혼은 편의에 근거한 것이었지 사랑에 근거한 것은 아니었다. 사랑은 단지 여러 오락거리 중 하나였다; 그것은 국가에 대해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시민들이나 누릴 수 있는 사치한 것이었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부르주아 도덕이 허용하는 선에서 한계 지우지만, 고대 사회는 이러한 감정을 미덕 혹은 긍정적인 인간 자질의 범주 안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위업을 달성하고 친구를 위해 그의 목숨을 희생한 사람들은 영웅으로 여겨졌고, 그의 행동은 “최고의 미덕”으로 칭송된 반면 사랑하는 여성을 위해 희생하는 남성은 멸시와 비난을 면치 못했다.
    고대의 도덕은, 따라서, 남성으로 하여금 선행을 고무시켰던 사랑-봉건제 하에서는 칭송되었던-은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고대에는 남성 구성원을 서로 가깝게 만들고 사회 구조를 더욱 안정하게 하는 감정만을 인식했다. 그러나 문명 발전의 다음단계에서는 우정이 더 이상 미덕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부르주아 사회는 개인주의와 경쟁을 기반으로 세워졌다. 그래서 우정이 미덕으로 여겨질 여지가 없었다. 우정은 어떤 점에서도 도움이 안되고, 부르주아의 계급적 이해를 달성하는 것을 방해할 지도 모른다; 이것은 불필요한 “감성”과 약함의 징후로 여겨진다. 우정은 조롱의 대상이 된다. 오늘날 뉴욕과 런던이라는 공간에서의 Castor와 Pollux는 비웃음만을 자아낼 뿐이다. 우정이 자질로서 교육되고 고무되었던 봉건제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봉건제는 귀족의 이해를 방어했다. 사회의 구성원 사이의 관계보다 가족과 전통에 대한 개인의 의무에 근거하여 미덕을 정의하였다. 결혼은 가족의 이해에 따른 계약이었다. 어느 소년이라도 (소녀는 아무런 권리가 없다)이러한 이해에 반하여 아내를 선택할 시에는 매우 비난받았다. 봉건시대에 가족의 이해보다 우위를 점하는 개인적 감정과 기질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랬다가는 ‘죄인’이라는 딱지를 면치 못했다. 도덕은 사랑과 결혼의 조화 따위는 요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간의 성적 관계는 무시되지는 않았다. 사실, 인류 역사 초기에도 이러한 인식은 있었다. 이 엄격한 금욕의 시대에, 조잡하고 잔인한 도덕의 시대에, 폭력과 폭력에 의한 지배의 시대에 사랑이 최초로 수용되었다는 것이 다소 이상해 보일런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속내를 좀 더 살핀다면 그렇게 수용할 수밖에 없는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있다. 특정한 상황과 환경에서 사랑은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지렛대로 작용하기도 한다. 기사도는 전장에서 구성원들에게 순수함과 용맹, 인내와 위업을 달성할 수 있는 힘을 요구했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군대의 조직력보다는 개인적인 참여자들의 자질에 의해 좌우되었다.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마음속의 숙녀’와 사랑에 빠진 기사는 더욱 쉽게 기적적인 용기를 보여주었고, 승리를 얻을 수도, 자신의 삶을 희생할 수도 있었다. 사랑에 빠진 기사는 빛을 발하여 자신의 사랑에게 주목을 끌고 싶은 욕망에 고무되었다.
    기사도의 이념은 사랑을 봉건 계급의 이익을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심리적인 상태로 인식하였지만, 그럼에도 엄격한 틀 내에서 이러한 감정을 제한하려 했다. 남성과 그 부인 사이의 사랑은 가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면 기사의 성 혹은 러시아 특권 귀족의 terem 안에서 사는 가족은 감정적인 유대로 묶여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사도적인 사랑의 사회적 요소는 여성을 사랑하는 감정에 의해 군사적 혹은 다른 영웅적 위업이 고무되는 가족 외부에서 작동되었다. 그 여성이 가까이 하기 어려울수록, 기사는 그녀의 호의를 얻고 그 계급 사회에서 가치 있는 미덕과 자질을 갖추어 위신을 세우는데 노력하였다. 기사들은 보통 가까이 하기 어려운 여성, 예를 들어 영주의 부인 혹은 여왕에게 접근하려 했다. 오직 “플라토닉한” 사랑만이 용감한 기적을 수행하는데 자극제가 될 수 있었고 그런 것만이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접근 가능성이 낮다하더라도, 사랑의 대상으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선택하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결혼 가능성과 앞서 언급한 지렛대가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봉건제의 도덕은 금욕주의-성적 억제-와 미덕으로서의 사랑이라는 관념을 결합시킬 수 있었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랑에 대한 그의 욕망은 속세적이라고 죄악시되었다. 그러한 욕망을 생물학적인 것에서 완전히 분리하여 추상적인 감정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 기사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성을 선택하거나 성모 마리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하기도 하였다. 그 이상을 그는 나아갈 수 없었다.
    봉건제 이데올로기는 사랑을 자극제, 사회적 결집을 지지하는 자질로 보았다; 정신적 사랑과 기사들의 동경은 귀족 계급의 이해에 봉사하였다. 기사의 아내가 다른 기사의 여성으로서 선택되었을 때 아내를 수도원에 보내거나 외도했다는 이유로 살해하려는 생각을 한다면 그 기사는 비아냥거림을 받게 될 것이다. 그는 그녀의 플라토닉한 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그러나 정신적인 사랑을 그렇게 강조하면서도 봉건적 도덕에서는 사랑을 법적인 결혼 관계와 동일하게 보지는 않았다. 사랑과 결혼은 봉건제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분리된 채 존재한다. 14, 15세기에 출현한 부르주아 계급에서만 사랑과 결혼은 결합되었다. 따라서 봉건제 사랑에 대한 고상한 궤변만이 형언할 수 없는 조잡한 규범들과 함께 남아있었다. 결혼 안에서든 밖에서든 성적 관계는 사랑을 부드럽게 하고 고무시키는 요소를 결핍한 채, 봉건제적 사랑은 순전히 심리적인 행위로서만 남아있었다.
    교회는 영성적인 사랑을 북돋우면서 “타락”과의 전쟁을 수행하는 척 했다. 그러나 이는 양성간의 조잡한 동물적인 관계를 북돋았다. 마음속에서 여성이라는 상징을 떼버리지 않은 기사는 그녀의 영예를 위해 시를 짓고 그녀의 미소를 얻기 위해 목숨을 바치면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도시에 사는 여성을 강간하거나 그의 집사로 하여금 그를 기쁘게 해줄 아름다운 소작농을 데려오게 시켰다. 기사의 부인들도 한편에서 음유시인들이나 봉건 기사 수행원들과 신선한 쾌락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봉건제가 약화되고 부르주아의 이해에 의해 좌우되는 새로운 삶의 조건이 출현하면서, 양성간의 새로운 관계가 발달했다. 플라토닉한 사랑을 거부하면서 부르주아는 육체에 대한 권리를 방어했고, 사랑이라는 개념에 정신적, 육체적인 조화를 주입했다. 부르주아 도덕은 사랑과 결혼을 분리하지 않았다; 결혼은 커플 상호간의 매력의 표현이었다. 부르주아지들의 실천 과정에서 편의라는 명목 때문에 이러한 도덕적인 가르침을 배반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반자적 결혼이라는 사랑에 대한 인식은 심대한 계급적 기반을 갖고 있다.
    봉건제 하에서는 가족은 귀족의 전통과 태생에 의해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교회의 권력에 의해 부부의 결혼은 성사되었고, 가장에게 무한한 권위가 부여되고, 가족의 전통과 영주의 입지가 확고해졌다; 이혼은 불가능했다. 부르주아 가족은 변화된 조건에 맞추어 진화되었다; 이때의 가족의 기반은 ‘부에 대한 공동소유’라기보다는 ‘자본의 축적’이었다. 가족은 이러한 자본의 수호자였다; 자본의 축적이 가능한 신속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남성의 재산이 조심스럽게, 그리고 기술적으로 다루어져야 했다; 다시 말해, 여성은 좋은 가정주부 뿐 아니라 남편의 친구이자 조력자가 되어야 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관계와 부르주아 사회 체계의 성립에 따라, 가족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비용을 경제적으로 고려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부의 축적에 공통의 이해가 달려있는 가족 구성원들의 협력이 구축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이러한 협력은 남편과 아내, 부모와 아이가 강력한 감정적․심리적 유대로 묶였을 때 더욱 큰 효력을 발휘하였다.
    14세기 말 15세기 초, 삶의 새로운 경제적 방식이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발생시켰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개념은 점차 변했다. 종교개혁가 루터, 다른 사상가들과 르네상스와 사회개혁의 공적 인물들은 사랑의 사회적 힘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가족의 안정성-부르주아 체계에서의 경제적 기본단위를 유지하는-을 인식하게 되자, 경제적인 연계 이상의 무엇으로 가족구성원을 결속하는 것이 필요해졌다. 부상하는 부르주아들의 혁명적인 이데올로기는 사랑에 대한 새로운 도덕적 이상-육체와 정신의 동시적 결합-을 선전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개혁가들은 성직자의 독신주의에 도전했고, 기사가 지속적인 염원하지만 그의 감각적 욕구 충족은 부정당했던 기사도의 ‘정신적 사랑’을 비웃었다. 부르주아와 개혁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육체적 욕구의 정당성을 인식했다. 그러므로 봉건제에서는 성적 행위로서의 사랑-결혼 내에서나 내연 관계에서-과 정신적, 플라토닉한 사랑-기사와의 관계와 그의 마음속의 여성- 이 분리되었지만, 부르주아 계급들은 육체적 매력과 감정적 애착을 모두 사랑이라는 개념 안에 포함하였다.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결혼과 사랑이 분리될 수 없었다. 물론 실제 부르주아 계급은 이러한 이상으로부터 언제나 패퇴해왔다; 그러나 파트너들 간의 의향에 대한 질문들이 봉건제도 하에서 제기되지 않았지만, 부르주아 도덕은 편의의 결혼에서조차 파트너들은 위선을 실행하고 애정을 가장해야만 함을 요구하였다.
    결혼과 사랑에 대한 봉건적 전통의 흔적과 태도가 수세기 동안 살아남아 부르주아 계급의 도덕에 순응한 채 우리에게도 남아있다. 귀족 가족과 상류 계급은 아직도 이 낡은 규범에 따라 살고 있다. 이 사회에서는 사랑에 기초하여 결혼하는 것은 “어색하기”보다는 “우스운” 것으로 간주된다. 이 세계의 왕자와 공주들은 아직도 그들과 관계없는 사람들을 위해 정치와 출산의 요구에 응해야만 한다.
    빈농 가족에서는 가족과 경제적 고려가 결혼이라는 합의에 커다란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농촌 가족에서는 결혼이 경제적인 한 노동 단위를 꾸리는 것이라는 점에서 도시 산업 부르주아의 결혼과 다르다; 구성원들은 경제적인 환경에 의해 단단히 결속되어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내적인 결속은 부차화된다. 중세 장인들에게 사랑 같은 건 결혼에 있어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거나, 길드체계에서 가족이란 한 생산 단위였기 때문에 이러한 경제적인 논리만이 안정성을 보증하였다. 결혼에 있어서 사랑에 대한 이상 (또는 관념)은 부르주아지의 등장과 함께, 가족이 그 생산적인 기능을 잃고 소비 단위로 전락하였을 때 나타나기 시작하여 결국 축적된 자본의 보존을 위한 전달매체로서만 기능하였다.
    비록 부르주아적 도덕이 전통에 반항하면서까지 “사랑하는 두 사람”이 결혼할 권리를 옹호하고, 또한 사랑을 결혼의 기초라고 주장하면서 “영적인 사랑”과 금욕주의를 비판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 도덕은 사랑을 매우 협소하게 정의하였다. 사랑은 결혼 내에서만 허용되었다. 합법적인 결혼 외의 사랑은 부도덕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한 생각들은 대개 경제적 고려 속에서 또 사생아에 대한 재산 분배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 구술되었다. 부르주아 도덕 전체는 자본 축적을 위한 것이었다. 복지향상을 위해, 각각의 가족 구성원의 부를 증가시키기 위해 함께 일하는, 사회로부터 분리된, 결혼한 커플이야말로 이상적이었다. 가족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이 충돌하는 곳에서 부르주아지 도덕은 가족의 이익을 지지했다. (cf.부르주아 도덕의 인정적인 태도-비록 법에 의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가족의 이탈자에게 그리고 그들 가족의 이익을 위해 주주들을 파산케 한 사람들에게 조차) 공리주의적인 경향을 띈 부르주아의 이러한 도덕은 사랑의 장점을 결혼의 주요한 구성인자로 만들어 가족을 강화하였다.
    사랑은, 물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론자들에 의해 규정된 테두리에 갇히지 않는다. 감정적인 갈등은 커지고 다층화되어,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발전된 문학의 새로운 형태-소설-안에서 감정적인 갈등은 존재한다. 사랑은 끊임없이 법적 혼인 관계라는 좁은 테두리로부터 자유로운 관계와 간통으로 나아간다. 그러한 관계는 비난을 받지만 지속되고 있다. 사랑에 대한 부르주아적 이상은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는 노동자 계급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한다. 그것은 또한 인텔리겐차 노동자의 삶의 양식에도 적합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자들이 성과 사랑의 문제에 대하여 그리고 해명되지 않는 미스테리의 열쇠를 찾는데 관심을 보이는 이유이다. 어떻게 개인적-사회적 행복의 총합을 증가시킬 수 있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발전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소비에트 러시아의 청년 노동자들은 지금 바로 이 순간 이러한 질문에 직면하고 있다. 연애-결혼의 관계에 관한 간결한 통찰을 진전시켜보면, 사랑이 처음 얼핏 보기에는 사적인 문제라고 보일 수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젊은 동지들이 깨달을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사랑은 중요한 사회적 경제적 요소이며 사회는 항상 본능적으로 이를 사회의 이익으로 조직해왔다. 마르크스주의 과학과 역사의 경험으로 무장한 남성과 여성 노동자들은 새로운 사회 질서에서 사랑이 차지할 공간을 발견하고, 그들의 계급적 이해에 부합하는 사랑의 이상을 결정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동지애적 사랑
    새로운 공산주의 사회는 동지애와 연대의 원리에 의해 구성되고 있다. 연대는 공통의 이해관계에 대한 자각뿐만 아니라 집합 구성원들의 지적이고 감성적인 관계들에 의해 구성된다. 사회체계가 연대와 협동에 의해 건설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사랑과 따뜻한 감정을 지니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는 노동자 계급으로 하여금 같은 계급내의 동료들이 가지는 고통과 요구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다른 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민감함 그리고 집단에서 개인간의 관계가 가지는 의식을 통찰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독려해야 한다. 이런 모든 “따뜻한 감정”-감성, 연민, 공감 그리고 책임감-은 한 가지 원천에서 파생된다; 이것은 사랑의 좁은 의미에서의 성적인 무엇이 아니라 단어의 넓은 의미에서의 사랑의 양상이다. 사랑은 결합되는 감정이고 따라서 조직될 수 있다는 성질을 지닌다. 부르주아는 이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고, 따라서 안정한 가족 제도를 창조하기 위하여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결혼하는 사랑”을 도덕적 미덕으로 확립했다; “좋은 가장”이 되는 것은 부르주아의 눈에는 상당히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었다. 프롤레타리아트 역시 사랑이, 광의의 의미와 양성간의 관계라는 두 가지 의미 모두에서, 가족-결혼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적 연대를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하고 반드시 그럴 수 있는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해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상적인 사랑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미 각 시대에는 그 고유한 이상이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각각의 계급은 그들의 이해에 적합한 도덕적 내용으로 사랑을 개념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각각의 시대의 문화적 발전에 따라, 더욱 풍부해진 지적이고 감정적인 경험들에 의한 문화적 발전에 따라, 에로스의 이미지는 재정의 되어 왔다. 경제적 사회적 삶의 발전의 성장기에 사랑의 이상이 변화했다; 감정의 그늘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갖기도 하고 오히려 소멸되기도 하였다.
    수천년의 인류사회의 역사의 과정에서, 사랑은 단순한 생물적 본능-고등동물부터 하등동물까지 모든 피조물들에게 고유한 재생산에 대한 압박-으로 부터 끊임없이 새로운 지적이고 감정적인 양상을 획득하여 가장 복잡한 감정으로까지 발전해왔다. 사랑은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요소가 되었다. 경제적, 사회적인 힘의 영향 아래에서, 재생산을 위한 생물학적 본능은 정반대의 대립된 방향으로 변화되었다. 한 편으로 건강한 성적 본능은 자본주의의 기괴한 사회 및 경제적 관계에 의해 건강치 못한 음욕으로 왜곡되어버렸다. 성적인 행위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되고 있다. -이를테면, 폭음이나 폭식 등에 의해 돋구어지는 욕망이라든지 왜곡된 음욕과 같은, 즐거움을 얻은 방식처럼 말이다. 남성은 건강한 성적 본능에 의해서라면 그를 이끌리게 하는 특정한 여성과 굳이 성관계를 갖지는 않는다; 남성은 비록 특정한 여성에 대하여 어떤 성적 욕망도 갖지 않더라도 그녀를 통해 그의 성적인 만족과 감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어떤 여성에게든지 접근한다. 매춘은 이렇게 왜곡된 성욕 충족의 조직화된 표현이다. 만약 여성과의 성교가 기대한 쾌락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면 남성은 모든 종류의 타락으로 빠져든다.
    이러한 건강하지 않은 음욕으로의 탈선은 관계를 생물적 본능이라는 원천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반면, 세기를 넘어 인류 사회적 생활과 문화가 변화함에 따라 감정적이고 지적인 경험들의 조합이 성에 대한 육체적 본능을 둘러싸게 되었다. 사랑의 현존하는 형태는 몸과 마음의 복합적인 상태이다; 이것은 본래의 원천인 재생산을 위한 생물학적 본능과 분리되어왔을 뿐 아니라 종종 첨예한 갈등을 일으켰다. 사랑은 우정, 정열, 모성적 따뜻함, 매혹, 모성적 포근함, 동정, 경애, 친밀함 그리고 다른 많은 감정의 면모들이 조합되어 얽혀있는 것이다. 감정이 관계한 범위가 넓어서 육체적 매력과 감정적 친밀함이 용해되어있는 속에서 본래의 “날개달린 에로스”와 “날개 없는 에로스”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해명하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육체적 매력의 요소는 결여하고 있는 동지애적 사랑, 한 사람의 일에 대한 애정 혹은 그것을 원인으로 하는 사랑, 그리고 집단에 대한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은 ‘영성화된’ 그리고 그 생물적인 기초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정도로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현대사회에서는 다양한 감정의 표현들 사이에 첨예한 모순과 충돌이 자주 발생한다. 인간의 노동에 있어서 지적, 감정적인 관여는 특정한 남성이나 여성에 대한 사랑과 조화되지 못할 수도 있고, 집단을 위한 사랑은 남편과 아내 또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분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한 개인에게 있어 동지애적 사랑(love-friendship)은 다른 사람의 열정과 조화를 이루기란 쉽지 않다; 한 경우는 우월하게 지적인 조화에 기초해 있다. 다른 경우는 육체적인 조화에 기초해 있다. “사랑”에는 다양한 측면과 양상이 있다. 시대를 거쳐 발전되어 오고 동시대인들에 의해 경험되고 있는, 감정의 드러나지 않는 다양한 측면들이 그러한 일반적이고 부정확한 용어에 의해 은폐될 수는 없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적 삶의 규칙 아래서 사랑의 복잡다단함은 갈등과 풀기 어려운 일련의 문제들을 낳는다. 19세기 말에는 작가들이 심리 묘사를 통해 사랑의 다양한 면을 흥미로운 주제로 다루곤 했다. 둘 혹은 심지어 세 명이 사랑에 관계하고 있었으며 이는 많은 부르주아 문화의 대표자들을 당혹케 했다. 지난 60년대에 우리 러시아의 사상가이자 작가였던 Alexander Herzen는 그의 소설 ‘누가 유죄인가?' (Who is guilty?)에서 이 내면 세계의 복잡함과 감정의 이중성을 폭로하려고 노력했고 Chernyshevsky는 같은 문제를 그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 (What is to be done?)에서 다루었다. Goethe와 Byron 같은 천재 시인 그리고 성별간의 관계라는 영역에서 대담한 선구자였던 George Sand는 그들의 생전에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었다; '누가 유죄인가’의 저자 역시 다른 위대한 사상가, 시인, 공적 인물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삶의 경험 속에서 이러한 문제를 발견했다. 이 때 많은 “소시민”들은 사랑의 어려움에 힘들어했고 부르주아 사고의 테두리 안에서 헛되이 해결책을 구하려 했다. 하지만 문제의 해결의 열쇠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손아귀에 있다. 새로운 노동자간의 유대라는 삶의 양식과 이데올로기만이 이 감정의 복잡한 문제를 해명할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사랑의 양면성 즉 "날개달린 에로스"의 복잡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이는 한 남자가 많은 여자와 혹은 한 여자가 많은 남자와 갖는 "에로스 없는" 성적 관계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개인적 감정이 관여되지 않은 관계는 불운하고 해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공동체를 피폐화하는 문제. 성적인 문제 기타 등등) 그러나 얼마나 그들이 얽혀있더라도 그들은 "감정적으로 극적인 상태“를 느끼지 않는다. 이러한 ”극적인 상태“와 갈등들은 다양한 그늘이나 사랑의 징후가 나타날 때 시작된다. 여성은 남자의 사고, 희망과 염원이 그녀의 것과 맞을 때 이끌리며 정신적으로 매혹된다; 그녀는 다른 이에게는 육체적으로 이끌린다. 한 남성이 한 여성에게서 공감과 보호해주고픈 부드러움을 느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여성에게서는 그의 지식 추구의 노력에 대한 지지와 이해를 발견할 지도 모른다. 그는 둘 중 어느 여성에게 그의 사랑을 주어야 하는가? 두 유형의 내적인 결합을 추구하기만 하면 삶의 충만함이 가득할 텐데, 왜 그는 그 자신을 갈라놓으며 내적으로 불구가 되어야 하는가?
    부르주아 체제 하에서 내적 감정 세계를 그렇게 분할하는 것은 필연적인 고통을 수반한다. 수천 년 동안 인류 문화 -소유제도에 바탕을 둔-는 사랑이 소유의 원칙들에 연관되어있다고 사람들에게 가르쳐왔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사랑, 상호간의 사랑이 연인에 대한 절대적이고 불가분한 소유권을 부여한다고 주장해왔다. 남편과 아내간의 “모든 포용하는 사랑”이라는 이상과 한 쌍의 결혼이라는 정형화된 형식의 자연스러운 결과는 그렇게 배타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이상이 노동자 계급의 이해에 부합할 수 있겠는가? 프롤레타리아의 관점에서 볼 때, 사람들의 감정이 넓고 풍부한 영역으로 발전하는 것이 중요하고도 바람직하지 않은가? 인간 내면의 복잡함과 감성적인 경험의 다양한 측면이, 공동체를 더욱 강화하려는 사람들 사이의 감성적이고 지적인 결합을 발달시키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하지 않는가? 사람들을 함께 묶어주는 내적 연결지점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연대감이 확고해지고 우애와 결속력이라는 노동자계급의 이상 실현이 더 수월해진다.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는 배타성과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을 수용할 수가 없다. “날개달린 에로스”의 다양한 형식과 측면에 위선적인 부르주아지 공포와 도덕적 분개를 느끼는 것과 달리,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 환경들의 복잡한 작동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이 감정들을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위해 투쟁하는 계급에게 유리하게 작동하게 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사랑의 복잡함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와 충돌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발전 중인 동지애의 이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을 용이하게 한다.
    부족사회시기에 사랑은 혈족 관계에서의 애착(형제자매간의 사랑, 부모에 대한 사랑)으로 간주되었다. 크리스트 이전 시기의 고대 문화에서는 사랑-우정을 다른 어떤 것보다도 상위에 뒀다. 봉건제 사회는 결혼 외부에서의 이성 사이의 플라토닉한 우아한 사랑을 이상화했다. 부르주아지는 일부일처제의 결혼관계에 있는 사랑을 이상적으로 간주하였다. 노동자계급은 노동에서의 협동과 남성 여성 모두의 프롤레타리아트를 묶어주는 내적인 연대에서 그것의 이상을 찾았다; 이러한 이상의 형식과 내용은 다른 시대에 존재하던 사랑의 개념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동지애에 대한 옹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투쟁의 시기에 노동자계급이 속박적인 이데올로기를 채택하여 이성간의 교제에서의 부드러운 감정의 흔적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는 “날개달린 에로스”를 파괴하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심리학적이고 사회적인 힘으로서의 사랑의 가치에 대해 명료히 인식한다.
    부르주아 문화의 위선적인 도덕은 에로스의 자유를 단호하게 제한하며, “법적으로 혼인한 부부”에게만 오직 협조적이다. 결혼 외부에서는 돈으로 사거나 (성매매의 경우) 은밀한 (간음의 경우) 일시적이며 기쁨이 없는 성적인 관계인 “날개 없는 에로스”의 여지만이 남는다. 노동자계급의 도덕은, 반면에, 이미 공식화되어있는 한에서 성적인 관계들의 외부의 형식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목표는, 사랑이 오랜 공식적인 결합을 취할지, 일시적인 관계를 취할 것인지에 의해 조금도 영향 받지 않는다.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는 사랑에 있어서의 어떤 형식적 제약도 두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자계급의 이데올로기에서는 이미 사랑의 내용적 측면과 감성적인 경험의 부분에 대한 사려 깊은 태도가 취해지고 있다. 이 점에서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는 부르주아의 도덕보다 엄격하고 단호한 방법으로 “날개 없는 에로스”를 추방할 것이다. “날개 없는 에로스”는 노동자계급의 이해에 모순된다. 우선 그것은 불가피하게 과잉을 포함하며 그로 인해 육체적 황폐함을 가져온다. 이는 사회에 유용한 노동 에너지 자원을 고갈시킨다. 둘째, 영혼을 피폐하게 해, 내적인 결속과 건강한 감성의 발전과 강화를 억누른다. 셋째, 그것은 항상 성적 관계에서의 권리 불평등,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 남성 자기만족과 무감각을 남겨두고 이는 의심할 바 없이 동지애의 발전을 방해한다. “날개달린 에로스”는 이와 완전히 다르다.
    분명히 성적인 매력은 역시 “날개달린 에로스”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점은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새로운 문화-민감성, 책임감과 타인을 돕길 바라는 욕구-의 생산자로서 필수적인 내면적 자질을 획득한다는 것이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한 사람의 파트너와의 관계에서만 그러한 자질을 드러낼 것을 요구한다.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의 목표는 남성과 여성이 선택된 한 사람 뿐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 관하여 이러한 자질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날개달린 에로스에서 우월한 감정의 그늘과 뉘앙스에는 관심이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러한 감정이 동지애의 발달과 강화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사랑-동지애라는 이상은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에 의해 끊임없이 진척되어오면서 부르주아 문명의 배타적인 전쟁과도 같은 사랑을 대체해왔다. 이것은 타인의 개성에 대한 고결함과 권리, 확고한 상호 지지와 감정적 공감, 타인의 욕구에 대한 책임성에 대한 인식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동지애적 이상은 절대 독재 타도를 위한 투쟁의 중요하고도 어려운 이 시기에 프롤레타리아에게 필수적이다. 그러나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하면서 사랑이 변화하고 선재하지 않았던 양상을 띠게 될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때가 되면 새로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 간의 “공감적 유대”는 더욱 성장하고 강화될 것이다. 사랑의 잠재력은 더욱 증가될 것이며, 사랑-연대는 부르주아 체계에서 경쟁과 자기애가 그러했던 것처럼 새로운 사회의 주축이 될 것이다. 정신적 집단화는 자본주의 체계에서 사람들을 사랑과 결혼으로 도피시키도록 유도했던 개인주의적 자족과 “내적 외로움이라는 고립”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남성과 여성을 더욱 친밀한 감정적, 지적인 접촉으로 이끌어줄 많은 연결선들이 발달할 것이며, 사적인 영역에서 발생한 감정들은 공적인 영역으로 이전될 것이다. 양성간의 불평등과 남성에 대한 여성의 의존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과거의 희미해져 가는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새로운 집단적 사회에서는 즐거운 조화와 동지애를 바탕으로 사람들 간의 관계가 발달할 것이고, 에로스는 인간의 행복을 다층화하는 감정적 경험들로서 영광스러운 지위를 자치하게 될 것이다. 이 변화된 에로스의 본성은 무엇이 될까? 제아무리 대담한 환상을 편다할지라도 이 질문에 답을 제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명확하다; 새로운 인간들의 지적, 감정적 유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현재의 세계에서의 사랑이라는 여지는 더욱 적어질 것이다. 현대의 사랑은 항상 죄악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랑하는 마음”의 사고와 느낌을 모조리 흡수해 버리고, 집단으로부터 사랑하는 이를 분리시키기 때문이다. 미래사회에서는 이러한 분리는 불필요한 것이 될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될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서 수용되는 성적 관계 규범은 (왜곡과 과장 없는) 자유롭고,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이끌림과 “변화된 에로스”에 기초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두 문화 사이에 서있다. 그리고 모든 최전방에서의 이 두 세계들의, 이데올로기적인 것을 포함하는, 전투에 참가하는 이 전환점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는 “공감적인 느낌”을 가능한 빨리 축적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데 있다. 이 시대에는 관계를 정의하는 도덕적 이상은 꾸밈없는 성적 본능이 아니라 동지애에 대한 다면적인 사랑 경험이다.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도덕에 의해 공식화된 요구에 답하기 위해서 이러한 경험들이 세 가지의 주요 원리에 합치해야만 한다; 1. 관계에 있어서의 평등 (남성이기주의와 여성 개인에 대한 노예적 억압의 종식) 2. 타인의 권리와 타인의 마음과 영혼을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 (부르주아 문화에 의해 고무되는 소유 관념) 3. 동지적 감성, 사랑하는 이의 내적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능력 (부르주아 문화는 오로지 여성에게만 이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날개달린 에로스”의 권리를 요구할 때, 동시에 노동 계급의 이상은 이러한 사랑을 집단에서의 사랑-의무라는 더욱 강력한 감정보다 중요시하지 않는다. 아무리 집단의 두 구성원간의 사랑이 위대할지라도, 두 개인을 집단에 결합시켜주는 유대가 항상 선행할 것이고, 더욱 강해지고, 더욱 복잡하고 유기적이게 될 것이다. 부르주아 도덕은 모든 이에게 사랑할 사람을 필요로 한다. 프롤레타리아 도덕은 모든 이에게 집단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젊은 동지인 당신이 동지애가 노동계급의 이상이 된다 할지라도, 이 새로운 감정의 “도덕적인 척도”가 성적 관계에 있어 새로운 압박이 되지 않겠는가 라며 반대한다고 들었다. 우리는 아직 부르주아 도덕이라는 족쇄로부터 사랑을 해방시키지 못하고 그것을 다시금 노예화시키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 나의 젊은 동지인 당신은 옳다.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는 부르주아 “도덕”을 사랑-결혼 관계에서 거부한다. 그럼에도 그것은 불가피하게 고유의 계급적 도덕과 행동규범을 발전시키게 된다. 그것은 노동계급의 업무에 더욱 긴밀하게 부합하고 특정한 방향으로 감정을 교육한다. 이런 방식이라면 감정이 다시금 속박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의심할 바 없이 부르주아 문화의 날개를 꺾어 버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 과정을 유감스럽게 하는 짧은 견해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새로운 계급은 선행하지 않았던 미, 힘, 광채를 지닌 감정의 다양한 측면들을 발전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사회의 문화적, 경제적 기초가 변하면 사랑도 변화할 것이다.
    맹목적이고, 모든 것을 포괄하고 요구하는 열정은 약해질 것이다; 소유 관념, 파트너를 “영원히” 눈멀게 하는 이기적인 욕망, 남성의 자기만족과 여성의 자기 단념은 사라질 것이다. 동시에, 사랑의 가치 있는 면과 요소는 발달할 것이다. 타인의 인격의 권리를 더욱 존경하게 될 것이고, 상호 감성은 교육을 통해 배우게 될 것이다; 남성과 여성은 키스와 포옹으로서 뿐만 아니라 공동의 창조와 활동에 의해서 그들의 사랑을 표현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의 임무는 사회적 생활로부터 에로스를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 형성에 따라 그를 재무장시키는 것, 그리고 동지애적인 연대라는 새롭고 위대한 심리적 힘을 지닌 영혼들의 관계로서 성적 관계를 교육시키는 것이다.
    나는 사랑이라는 문제에 직면해있는 젊은 노동자들의 관심이 “타락”의 증후는 아니라는 것을 당신이 명확하게 이해하길 바란다. 나는 젊은 노동자들간의 관계에서 사랑이 반드시 점유되어야 하는 공간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당신이 견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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