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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노해연-42호] 노동자 조직과 명망성
 정책위  | 2008·05·12 13:45 | HIT :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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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자 조직과 명망성



    명망성, 그것은 두 가지의 상호 모순된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한편으로는 무언가 관료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모습을,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운동에서의 무언가 결정적인 역할을. 전자에만 착목하는 사람에게 명망성은 두려운 그 무엇이다. 반면 후자에만 착목하는 사람에게 명망성이란 무조건 깜빡 죽어야만 하는 강력한 권위다.

    문제를 옳게 설정해야 한다. 명망성이란 이중의 칼날을 갖고 있다. 만일 명망성이라고 일컬어지는 ‘대중적 인지도’가 기회주의자들에 의해 사용된다면, 그것은 대중을 기만하고 활동가들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왜곡수단이 된다. 반면 투쟁하고 대의에 충성하는 노동자들에 의해 사용된다면, 그것은 대중에게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활동가들에게 더 폭넓은 대중 장악력을 보장하는 수단이 된다. 노동해방 투사들은 후자의 ‘노동자적 명망성’에 대해 찬성한다.





    그렇다면 노동자적인 명망성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첫째, 노동자적 명망성은 ‘과거의 권위’에 맹목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만약 과거에는 대중을 대변하고 전투적이었지만 지금은 지치고 병들어 기회주의적으로 변질한 자라면, 그의 명망성이란 대중을 기만하는 아주 세련된 수단일 뿐이다. 이것은 그럴듯한 인물을 내세워 썩어빠진 실체를 감추는 자본가 정당들의 행위에 비유될 것이다.

    노동해방 투사들은 ‘과거’에는 투쟁과 헌신을 통해 명망성을 획득했지만, 이제는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하는 명망가들의 ‘현재의 한계’를 대중들 앞에 폭로해 대중이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하도록 안내하는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 노동자적 명망성은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에도 그가 진정 투쟁과 현장성, 대의에 대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을 때만 그 의미가 있음을 노동자 조직은 정확히 승인한다. 그것도 어떤 인물의 주관적 약속이 아니라 그의 ‘매 시간의 실천’을 통해서 날카롭게 검증함으로써 승인한다.

    둘째, 노동자적 명망성은 ‘오늘 우리는 투쟁을 이끌 수 없다. 우리는 아직 영향력 있는 간부 자리를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그 대신 노동자적 명망성은 다음의 관점을 승인한다. “오늘 조합원 대중과 함께 투쟁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내일도 투쟁하지 못할 것이다. 오직 바로 오늘부터 우리가 아무리 작더라도 대중적 실천을 철저하게 전개할 때만, 내일 우리의 손에 더 영향력 있는 지위가 장악되는 경우 우리는 비로소 대중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노동자적 명망성은 엘리트주의를 거부하며, ‘대중주의’를 대변한다. 부르주아 엘리트적 명망성에 감염된 사람들은 몇 사람의 명망가들의 결정적 역할에 노동운동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굳게 믿는다. 이들은 대중의 집단적 각성에 혼신의 힘을 쏟는 대신 몇 사람의 뛰어난 명망가가 간부직을 차지하는 것에 과도한 가치를 부여한다.

    그래서 대중의 투쟁력과 현장 활동가들의 힘을 강화시키는 데 힘을 모으는 것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몇몇 명망가들이 영향력 있는 지위를 차지하는 데 집착한다. 여기서 선거주의와 같은 온갖 병폐들이 자라난다. 그런데 우리는 영향력 있는 지위 획득에만 초점을 맞추는 이 명망가 집단들이 수행했던 실천의 참혹한 결과를 눈이 아프도록 보고 있다. 그들은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못했고, 단지 약속만을 남발했을 뿐이었다.

    가령 현장조직의 예를 들어보자. 이들 명망가를 영향력 있는 지위에 세워내는 데만 집착하면서 현장의 대중투쟁력 강화라는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한 결과, 몇 명의 명망가들과 함께 여러 현장조직들이 선거주의의 늪으로 빨려 들어가곤 했다. 그 의도가 아무리 선하더라도 이렇게 소수 명망가들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현장조직은 아무 것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비극적인 그러나 명백한 현실 앞에 그들은 스스로 파산했다. 현장조직의 도움으로 노조에서 영향력 있는 지위(가령 위원장)를 획득한 소수 명망가들이 실책과 오류, 명백한 한계를 드러낼 때, 이것을 합리화해주다가 결국 현장조직의 원칙까지도 완전히 포기하게 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배신에 분노한 조합원들로부터 현장조직마저 버림받으면서 현장조직의 권위는 계속 추락했다. 현장의 대중투쟁력을 일궈내는 본연의 임무에 제대로 착수해보지도 못한 가운데, 자신이 의존했던 명망가들의 실책과 오류 때문에 현장조직은 파산하곤 했던 셈이다.

    그 이름에 부합하는 진정한 현장조직은 소수 엘리트적 명명가들의 힘에 의지하지 않는다. 현장조직은 대중적인 현장투쟁력의 성장에 모든 것이 좌우된다고 확신하며 실천하는 지도자들이 조합원 대중과 활동가들 속에서 실제 투쟁과 실천을 통해 획득하는 ‘노동자적 명망성’에만 오직 의지한다. 이 노동자적 명망성은 ‘우리 몇 명의 명망가들이 노동조합의 영향력 있는 지위를 획득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노동자적 명망성은 이렇게 주장한다. “현장의 대중투쟁력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변화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대중과 함께 작은 현장투쟁에서부터 승리를 일궈내는 것만이 전진을 보장할 수 있다. 이것만 살아 있으면 동요하는 간부들도 투쟁할 수밖에 없으며, 어용 간부들은 타도될 것이다.”

    노동해방 투사들의 본연의 임무는 소수 간부들이 자신을 대리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치 부르주아 선거에서처럼 몇 명의 엘리트들에게 표를 던져 국회의원으로 추대하는 것에만 자신을 제한하는 수동주의를 대중 속에서 타파하고 스스로 투쟁과 노동조합의 주체로 우뚝 서도록 돕는 것에 있다. 이것은 모든 노동자 조직의 출발점이자, 그 점에 대해 정확히 승인하지 않는다면 노동자 조직이라 말할 수 없는 근본 정체성이다. 때문에 노동해방 투사들이 승인하는 ‘노동자적 명망가’는 바로 그 근본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다시 말해 소수 명망가들에 단순히 의지하지 말고 현장의 대중투쟁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라고 호소하는 사람들이다!

    넷째, 노동자적 명망성은 부르주아 엘리트적 명망성과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추구되고 쟁취된다. 엘리트적 명망성은 속삭인다. “저기 저 사람은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다. 그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면 현장이 확 바뀔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자적 명망성은 주장한다. “활동가들이 힘차게 움직이고 조합원 대중의 투쟁력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한 다스의 명망가들이 아무리 결정적 지위를 차지하더라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오. 그러므로 어떤 ‘중요한’ 자리를 ‘누가’ 차지하면 상황이 완전히 바뀔 것이라고 속삭이는 사람을 조심하시오. 그는 아마 어떤 ‘영향력’ 있는 자리를 노리는 출세주의 분자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객관적으로 볼 때) 환상으로 자신과 현장조직, 조합원들을 기만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소.”

    노동자적 명망가는 조합원들과 활동가들로부터 소수 명망가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환상을 말끔히 지우고 ‘당신들이 투쟁과 노동조합의 주인이자 주체로 도약하지 않는다면 획기적인 전진은 절대 없을 것이요’라고 솔직하게 말하면서, 바로 이 힘을 강화하기 위해 현장의 한복판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조합원 대중의 투쟁과 함께, 그 ‘위’가 아니라 그 ‘한복판’에서 전진한다.

    이들이 노동조합의 영향력 있는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대중투쟁력이 밑에서 튼튼히 떠받치고 있는 경우로 한정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방식의 ‘간부 배출’에 완전히 찬성한다. 여기서 주인공은 ‘소수의 훌륭한 명망가들’이 아니라 ‘현장 활동가들과 조합원 대중’이다. 이들은 주체적 태도로 간부들과 나란히 설 것이고 동지적으로 굳게 결속함으로써 전투적 지도자의 투쟁 호소를 살아 움직이는 강력한 현장투쟁으로 현실화시킬 것이다. 또한 이들은 이 지도자들이 기회주의적, 관료주의적으로 타락한다면 언제든 소환해버림으로써 투쟁의 기초를 굳건히 사수할 것이다. 이것이 살아 있는 민주노조이고 노동조합 민주주의다.

    다섯째, 노동자적 명망성은 언제든지 현장에 돌아가 용접대와 운전대를 잡는 명망성이다. 부르주아적 명망성과 노동자적 명망성을 구분 짓는 가장 쉬운 기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명망성이 사실은 출세주의의 도구 혹은 관료의 위장막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가장 쉽게 판별할 수 있는 수단은 화려한 상층 지위나 편안한 사무실의 지위에 얼마나 집착하느냐다. 출세주의 명망가들은 절대 현장으로 내려가려 하지 않는다. 이미 노동하기를 꺼려하고, 화려하고 편안한 것에 집착하는 관료적 정서에 감염되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이들은 현장조직을 이 지위를 계속 보존하는 수단 정도로 간주한다. 현장조직은 자기에게 위원장 자리나 노동조합 상근자 자리를 보장해주는 기구로 기능해야 한다. 이것은 선거주의와 곧장 직결된다. 현장조직 상층부에 이런 분위기가 자리 잡으면 현장조직은 최악의 상황으로 굴러 떨어진다. 상층부는 현장조직을 이용해 출세하려는 분자들의 집합소가 된다. 현장조직에는 이런 출세를 꿈꾸고 모여드는 불순한 분자들의 비중이 커진다. 위에서는 위원장 자리에 집착한다면, 아래에서는 대의원 자리에 집착한다. 출세주의의 거대한 커넥션이 형성된다. 현장조직은 자본가 정당들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타락한 ‘사조직’으로 전락한다. 소위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라고 하는 노동조합에서의 큰 분파들이 지금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모습들도 여기서 그리 멀리 벗어나 있지 않다.

    그러나 오직 투쟁의 확대 강화, 대중의 전진을 위한 수단으로서만 간부직을 바라보는 ‘노동자적 명망성’에게는 그런 타락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노동자적 명망성’은 노동자 대중의 민주적 선택을 존중한다. ‘만일 나보다 더 건강하고 철저한 동지가 있다면 그가 더 결정적인 지위에서 활동해야 한다.’가 이들의 원칙이다. 자신의 역할이 끝나면 이들은 아무런 주저 없이 현장으로 복귀해 대중과 함께 노동한다. 이런 노동자적 명망성의 관점에서 구성되는 조직에서는 출세주의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오히려 노동해방 조직은 여기에 가입하는 동지들에게 무한한 헌신과 희생을 요청한다. 투쟁에서는 최선두에 서야 한다. 대중의 당장의 후진적 정서에 영합하지 않도록 강제하므로, 이 조직의 성원들은 피나는 노력 없이는 인기 위주의 방식으로 대의원이 될 수도 없다. 위원장이 되고 집행간부가 되더라도, 그는 사무실이 아니라 현장 속으로 파고들어가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이것은 해고와 수배, 구속까지도 감수할 것을 요구한다. 여기에는 출세주의, 관료주의가 들어설 틈이 없다.

    정리하자. 노동자 조직이 채택해야 하는 노동자적 명망성은 ‘명망주의’ 자체를 ‘대중주의’로 대체하는 자기 부정으로서의 명망성이 마땅히 되어야 한다. 이 명망성은 오직 대중의 단결과 투쟁력, 노동자의식 강화라는 아래로부터의 견고한 힘을 바탕으로 솟구쳐 올라와야 한다. 또한 마땅히 이 명망성은 끊임없이 아래로 향하면서 대중의 자기 발전을 추동하는 견고한 수단으로 작동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대의에 무한히 충실하고, 바로 이 노선에 입각해 지도자를 배출, 통제하는 노동자조직만이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늙고 지친 기회주의자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면서 명실상부한 ‘현장권력’을 향해 견고하게 진격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명망성이라면 우리가 어찌 이 노동자적 명망성을 가볍게 여길 것인가! 또한 이런 노동자적 명망성을 갖춘 동지라면 얼마나 거대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점에서 노동해방 조직의 기능에 대해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적 명망성을 갖춘 동지들을 대량으로 배출하는 전진 기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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