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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노해연-55호] (교육자료) 노동강도 완화투쟁의 원칙
 정책위  | 2008·06·23 12:50 | HIT : 2,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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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자료] 노동강도 완화투쟁의 원칙



    노동강도를 둘러싼 투쟁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자가 임금인상 투쟁과 노동시간 단축투쟁을 전개하면, 자본가들은 그 투쟁의 성과를 ‘노동강도 증대’로 보상하고 빼앗으려 더욱 발악하게 된다. 예컨대, 노동시간이 하루 9시간에서 8시간으로 단축되더라도 만약 노동강도가 20% 강화되었다면, 노동시간 단축의 성과는 유명무실하게 된다. 이 경우 8시간 노동으로 1시간이 줄어들었지만, 실제로는 과거의 9.6시간에 해당하는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렇게 하루에 수행하는 노동이 증대하면 약간의 임금 상승이 있더라도 자본가의 이윤은 늘어난다. 가령 노동강도의 대폭 증대로 하루 10시간의 노동이 과거의 12시간 노동에 해당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과거 10시간 노동을 통해 노동자가 받았던 임금이 200만원이고 자본가가 가져가는 이윤이 100만원이라고 치자. 이제 노동강도가 증대해서 10시간 노동으로도 과거의 12시간에 해당하는 노동을 해야 한다면 임금이 220만원으로 인상되더라도 자본가의 이윤은 140만원으로 훨씬 더 증대하게 된다. 60만원에 해당하는 2시간분의 노동이 늘어나므로, 노동자들에게 20만원의 추가 임금을 지급하더라도 자본가가 획득하는 추가 이윤이 40만원에 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도는 100만원/200만원 곱하기 100%인 50%에서, 140만원/220만원 곱하기 100%인 62%로 훨씬 더 증가한다. 노동자는 상대적으로 더 많이 쥐어 짜이는 것이다. 노동자의 임금이 증가하는 것에 비해 자본가들의 이윤은 더 크게 늘어나며, 이에 따라 불평등은 심화된다. 또한 노동자의 노동력 지출이 엄청나게 늘어나므로 ‘노동력 재생산 비용’ 또한 늘어나게 된다. 임금인상은 이러한 노동력 재생산 비용의 증대에 비한다면 덜 이뤄지며, 따라서 임금은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셈이 된다. 또한 이런 식으로 노동강도가 증대하면 자본가는 노동자를 덜 고용해도 주문량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으므로, (노동자 수 곱하기 평균임금)인 임금비용을 낮출 수 있게 된다. 반대로 노동자들은 취업노동자의 과도노동(노동강도 증대)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들어 확대되는 실업문제와 마주치게 된다. 그런 이유로 지금처럼 실업률이 높은 상황에서도 자본가들은 고용을 늘리는 대신, 시설 자동화를 통해 노동강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이윤을 뽑아내는 데 더 집착하고 있다.
    이처럼 노동조합 투쟁의 활성화에 따른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은 반드시 ‘노동강도 증대’라는 자본가의 반격과 맞닥뜨리게 된다.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의 성과를 무력화시키면서 이윤을 보호하고 더 확대하기 위해 자본가들은 노동강도 증대를 통해 착취도를 높이고, 최소 인원으로 공장을 가동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강도 증대에 맞선 투쟁을 전개하지 않는다면 노동자는 투쟁으로 획득한 성과물을 사실상 잃어버리게 된다.
    첫째, 노동강도 증대에 맞선 투쟁이 없다면, 노동자는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으로 얻은 성과를 노동강도 증대 때문에 고스란히 다시 빼앗기고 만다. 또한 강도 높은 노동 때문에 노동력이 빠르게 마모되어 ‘노동력 재생산 비용’은 높아지며, 이에 따라 임금인상의 성과는 무력화된다. 만성적인 피로 때문에 노동자들은 병원치료와 약값으로 많은 돈을 지출해야 한다. 심지어는 몸이 망가져 노동력을 판매할 수 없게 됨으로써 해고당하거나 산재 수당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비참한 처지로 내몰린다.
    둘째, 노동강도 증대에 맞선 투쟁이 없다면, ‘계급’으로서 노동자는 한편으로는 과도한 노동에 신음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실업자로 전락하고 만다. 취업노동자들이 강도 높은 노동에 신음하는 바로 그만큼, 이들의 과도노동에 의해 불필요하게 된 노동자들은 실업노동자로 전락한다. 취업노동자 한 사람이 과거 두 사람이 했던 노동을 담당하면 한 사람 분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계급적’으로 볼 때, ‘자본가계급’은 한 손으로 지불한 임금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을 노동강도 증대를 통해 다른 한 손으로 ‘노동자계급’으로부터 회수해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떤 것인가? 취업노동자들은 약간의 임금인상에도 불구하고 뼈 빠지게 노동하면서 더 많이 착취당하고 병들고 다치게 되며, 더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로 전락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노동강도 증대 저지투쟁, 나아가서 노동강도 완화투쟁이 없다면 노동자가 투쟁으로 얻어낸 모든 성과들은 물거품이 되기 십상이다. 또한 이 투쟁이 없다면 전체로서 ‘노동자계급’은 악화되는 실업문제에 직면해 단결력과 투쟁력이 약화되고 만다. 취업노동자의 과도노동은 실업노동자의 수를 늘리고, 역으로 늘어나는 실업노동자의 압력 때문에 취업노동자의 과도노동은 더욱 심해지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공장 문 밖에서 아무리 낮은 임금으로라도 취업해 먹고살려는 실업자들이 넘쳐나는 상황에서는 취업노동자들 또한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 노동강도 증대를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취업노동자들의 ‘노동강도 완화투쟁’은 단순히 취업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일자리를 늘리는 투쟁이기도 하며, 따라서 ‘노동자계급’적인 행동이다. 노동강도 완화투쟁과 노동시간 단축투쟁은 만약 취업노동자들이 옳게 제기하고 단호하게 밀어붙인다면, ‘일자리 나누기’와 합류하게 되며 노동자계급의 일원으로서의 영웅적 행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단 이 경우 ‘신규 일자리’는 절대로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충원하도록 만드는 강력한 투쟁이 결합되어야 할 것이다.
    그 반대도 사실이다. 노동강도 완화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가 늘어나고, 그 결과 실업자들이 줄어든다면 이제 실업자들이 취업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압력도 떨어지게 되므로 취업노동자들은 더욱 과감하게 임금투쟁을 전개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취업노동자들의 노동강도 완화투쟁 및 노동시간 단축투쟁과 실업노동자들의 일자리 보장 투쟁은 하나로 합쳐지면서 서로를 고무해야 하는 것이다.

    노동강도 완화투쟁 어떻게 할 것인가?
    노동조합이 없어서 노동자들의 저항 능력이 부족하다면, 자본가들은 상대적으로 노동강도 증대 압력을 덜 가한다. 왜냐하면 이 경우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도 자본가들은 이윤을 충분히 늘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있고 임금투쟁과 노동시간 단축투쟁을 강화한다면, 자본가들의 탈출구는 노동강도 증대와 함께 노동의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생산성 향상 작업)으로 집중된다. 노동강도를 높여서 고용하는 노동자 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임금비용을 낮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직된 사업장의 가장 주요한 투쟁은 바로 이 노동강도를 둘러싼 투쟁으로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노동조합운동이 주로 임금문제에만 관심을 집중한 결과, 노동시간과 노동강도 측면에서 성과를 도둑맞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가령 잔업과 특근, 야간노동 등을 통해 임금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 경우 노동시간 단축은 껍데기뿐이며, 실제로는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된다. 심지어는 더 많은 임금을 위해 잔업과 특근, 야간노동을 보장하라는 어처구니없는 요구까지 등장하게 된다. 이것은 임금투쟁과 노동시간 단축투쟁이 나란히 전진해야 함을 가르친다. 임금투쟁이 기본급 인상 중심으로 단호하게 진행되면 노동자들은 자연스럽게 잔업과 특근, 야간노동의 철폐를 지지할 것이다. 반대로 잔업과 특근, 야간노동 등의 장시간 노동을 철폐하기 위한 투쟁이 본격화되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기본급 중심의 임금인상 투쟁의 필요성과 마주치게 된다. 어느 한 분야에서만 허점이 발생해도, 두 투쟁 모두 약화된다.
    이는 노동강도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우선 노동강도는 노동시간 문제와 아주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노동시간이 늘어나면 노동자가 피부로 느끼는 노동강도는 엄청나게 커지기 때문이다. 가령 똑같은 1시간의 노동일지라도, 잔업이나 연장 근무 때 느끼는 1시간의 노동강도는 정상적인 8시간 노동의 1시간에 비해 훨씬 더 크다. 그렇기에 노동시간 단축 투쟁은 노동강도 완화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노동시간 단축투쟁이 성공하면 자본가들은 노동강도 증대로 반격하므로, 만일 노동강도 완화투쟁이 결부되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은 투쟁성과의 상당 부분을 잃게 된다. 따라서 노동강도를 둘러싼 투쟁 또한 철저하게 진행되어야 하며, 그럴 때만 단결하여 투쟁한 성과들을 도둑맞지 않고 ‘전체로서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다. 만약 노동강도 완화를 둘러싼 투쟁을 결합시키지 않는다면, 노동시간 단축투쟁이 성공하더라도 자본가들의 반격에 의해 노동강도 증대가 조만간 뒤따름으로써 일자리가 늘어나지 못한 채 오히려 실업문제가 악화되는 일이 빈번히 나타나고 만다. 그러므로 취업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강도 완화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의 깃발을 높이 올림으로써 노동자계급으로서 동료들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

    노동강도 완화투쟁의 원칙
    노동강도를 둘러싼 투쟁의 원칙은 간단하다. 어떠한 형태든 노동강도 증대에 반대하는 것이며,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보호를 노동강도 증대와 맞바꾸지 않는 것이다. 또한 노동강도를 완화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받아들이라는 그 어떤 요구도 거부하면서, ‘노동강도 완화를 위한 정규직으로의 인력 충원’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다. 나머지는 노동조합 투쟁의 제반 원칙과 똑같다. 노동강도를 늘리려 한다면 강력한 현장투쟁으로 박살내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강도를 둘러싼 투쟁은 현장통제와 정면으로 부딪힌다. 대개 부서별로 편차가 있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노동강도 문제는 임단협투쟁의 사안과는 구별되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부서별, 직종별, 지회별로 들어오는 공격의 양상을 자주 취하는 것이다.
    또한 이 노동강도 문제는 관리자들의 노동통제와 마주친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관리자들이 강요하는 노동강도 증대에 맞서 ‘노동과정을 노동자에게 불리하지 않게 조직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현장통제 투쟁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노동강도 투쟁은 현장의 곳곳에 포진한 현장 활동가들의 일상적인 실천을 더욱 절실하게 요구한다.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 일어나건 노동강도를 둘러싼 제반 현장투쟁을 노동조합이 엄호하도록 강제하고 전체 현장투쟁으로 발전시켜 지지 엄호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음으로 노동강도를 둘러싼 투쟁은 ‘근골격계 질환을 비롯한 노동자의 건강권 쟁취투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산재판정과 요양투쟁을 통해 노동강도 증대가 노동자들에게 강요하는 질병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자의 건강권이 악화된 ‘결과’에 대항한 투쟁이지, ‘원인’에 대항한 투쟁은 아직 아니다. 노동자는 불구가 되고 질병에 고통 받기 전에, 그것을 야기하는 환경에 자체에 맞서 투쟁할 필요가 있다. ‘원인’에 대항한 투쟁은 다름 아닌 노동강도 완화투쟁이다. 이것은 곧장 ‘정규직으로 대폭 인력충원’을 내건 투쟁을 요구한다. 자본가들이 산재요양은 보내줄 수 있지만 인력충원은 해줄 수 없다고 한다면, 노동자들은 ‘산재의 원인은 인력 부족에 따른 높은 노동강도에 있다’고 정면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것은 곧장 ‘정규직으로의 인력충원’, 아니면 ‘작업물량과 속도감축 투쟁’으로 이어진다.
    또한 노동강도를 둘러싼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단지 노동강도증대 반대를 뛰어넘어 ‘인간다운 작업조건 쟁취를 위한 노동강도 완화’의 공세적 깃발을 들어야 한다. 그 연장선에서 노동자들은 자동화와 기계화 등 생산력 발전 성과를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강도 완화’의 수단으로 쟁취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강도 완화를 위한 인력충원 투쟁은 ‘고용문제’와 직접 마주친다. 노동조합의 투쟁력이 약화되고, 도산의 위협에 맞닥뜨린 조합원들은 ‘지금은 인력을 충원해서 좋지만, 이후 불황이나 공황기에 물량이 줄어들면 누군가 짤려야 하므로 인력이 늘어나면 결국 나중에 우리의 고용을 위협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인력 충원을 통한 노동강도 완화 투쟁의 대중적 확산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다.
    이에 대해 현장 활동가들은 고용안정은 노동조합의 단결투쟁력에 달려 있으며, 만일 계속 수세적으로 나가면서 현장의 주도권을 잃어버린다면 불황과 공황기에 생존을 위해 야수화되고 악랄해지는 자본은 무차별적으로 노동자들을 해고해버릴 것이며, 따라서 더욱 공세적으로 투쟁할 때만 이후에도 우리의 생존권을 지킬 수 있음을 반복해서 설득해야 한다. 고용은 오직 노동자의 단결투쟁을 통해서만 사수될 수 있으며, “한 발 물러나지 않으려면 세 발 앞으로 내딛어야 한다는 것, 만일 그냥 그 자리에 멈춰 있으려고 하면 세 발 후퇴하게 된다”는 노동자 투쟁의 진리를  끊임없이 강조해야 한다.
    나아가서 노동강도 증대에 따른 고통과 이후 정리해고에 대한 두려움을 ‘비정규직으로의 인력충원’으로 해결하려는 후진적 사고에 대해 철저하게 비판해야 한다. 자본가들은 불황과 공황기의 정규직 고용안정을 핑계로 비정규직 도입의 불가피성을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완전한 거짓말이다. 그동안 현대자동차와 대우자동차 모두 비정규직 해고 이후 정규직까지 정리해고했다. 게다가 정규직을 정리해고난 뒤, 그 자리를 다시 채웠던 것은 다름 아니라 비정규직이었다. 결과적으로 불황과 공황기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은 정규직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대체했던 것이다. 이처럼 노동자의 고용안정은 공세적인 투쟁, 그리고 정규직 비정규직을 하나로 통합시키고 부서별 분할을 뛰어넘는 전체 현장노동자들의 단결투쟁 말고는 지켜낼 수가 없다는 점을 투사들은 거듭 강조해야 한다.(끝)
    [독자투고] 그곳에 노동자계급의 지도부는 없었다! : 5월 9일 이젠텍 집회



    2005년 10월부터 시작한 금속 이젠텍분회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고 연대하기 위해 지난 5월 9일 전국의 금속노조 노동자들이 평택의 이젠텍 공장 앞에 집결했다. 바로 얼마 전 금속노조 관료들의 직권조인으로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동지들의 피맺힌 투쟁이 가로막혔던 것을 알고 있는 노동자들은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투쟁을 지원하고 연대함으로써 다시는 하이닉스-매그나칩과 같이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만들겠다는 자기반성과 결의를 가지고 집회에 참가했다. 이날 1,200여 명이나 되는 노동자들이 금속노조 지침에 따라 움직였고, 이젠텍 내부적으로도 투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도 투쟁하는 노동자의 진정한 지도부는 있지 않았다.

    20개월에 걸친 이젠텍 노동자들의 투쟁
    이날 집회는 이젠텍 동지들의 투쟁발언으로 시작되었다. 2005년 10월 노동조합을 건설할 때 이젠텍 노동자들의 요구는 정말로 아주 소박한 것이었다. ‘장갑과 안전화 지급하라, 작업 외에 화장실 청소시키지 말라, 관리자들 욕하지 말라, 그리고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설립한 금속노조 인정하라’는 것이었다. 20개월 동안 투쟁해오면서 80여 명이던 조합원은 장기파업으로 인한 생활고와 회사 측의 회유, 투쟁전망 부재 등으로 이탈하여 23명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소수 노조지만 1년 6개월 동안 피맺힌 투쟁을 전개했고 끝까지 노동자의 자존심을 지켜 현장으로 돌아가 다시 조직해서 투쟁하겠다는 이젠텍 노동자들의 결의는 집회에 참석한 1,200여 노동자들의 투쟁결의를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평화시위 방침 어기면 위원장으로서 엄벌하겠다!”
    그러나 곧이어 무대에 올라온 정갑득 위원장의 발언은 이젠텍 노동자들은 물론 참여한 1,200여 노동자들의 투쟁결의와 사기를 꺾어버리는 데 모자람이 없었다. 정갑득은 “성과 있는 싸움을 하기 위해서 금속노조의 투쟁방침을 바꾸겠다”며 “앞에서는 열심히 싸우고 뒤에서는 노동부와 하나하나 풀어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집회는 평화적으로 끝나야 한다”, “총파업을 앞두고 사소한 것(!)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면서 “이 방침을 어기는 어떠한 집단에 대해서도 위원장으로서 엄벌하겠다”고 선언했다. 정갑득의 발언이 끝나자 집회 대오 안에서는 웅성거림이 시작되었다. “투쟁 안 하겠다는 것이냐?”, “이젠텍도 하이닉스-매그나칩과 같이 정리하겠다는 말이냐?”는 목소리가 들리고 거친 욕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바로 그 자리에서 조직적이고 즉각적인 항의는 만들어지지 못했다.

    금속노조의 방침은 교섭으로 구걸하는 것인가?
    정갑득이 위원장에 당선된 이후 제일 먼저 한 것은 15만 금속노조가 단결과 투쟁의 조직이 될 수 있도록 현장을 조직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현대차 자본과의 회동을 통해 산별교섭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요청했고, 노동부와 주1회 정례회의를 연 것이었다. 이날 집회에서 경찰과 대치하다가 면담을 요청해서 이젠텍 자본을 만나고 온 정갑득은 “이젠텍 사장님과 충분히 대화했다”고 보고했다. 자본에 구걸하기 위해서는 2년 가까이 투쟁하는 이젠텍 노동자들을 탄압한 자본을 ‘사장님’이라고 높일 수밖에 없고, 산별 중앙교섭을 성사시켜 관료들의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현대자본과 노동부에게 협조를 요청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말로, 노동자들의 강렬한 투쟁의지를 단단히 짓밟아놓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관료들은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의 힘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이해심과 합리주의(?)에 기대면서 노동자들의 자존심을 약화시키고 잠재력을 매장시킨다.

    적들은 자신의 계급에 충실하다!
    집회가 끝나고 이젠텍 정문 앞으로 행진이 시작되었다. 정갑득은 여기에서도 투쟁의 지도부가 아니라 자본에 구걸하는 배신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젠텍 자본은 수천 명의 경찰을 동원해서 공장을 지키고 있었다. 수십 대의 전경차로 공장 주변을 에워싸고, 수천 명의 전경을 풀어 정문 앞으로 진출하려는 노동자들의 앞길을 막았다. 맨 앞에서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던 정갑득은 가로막고 있는 적들 앞에서 구걸을 시작했다. “평화시위 할 겁니다. 저희는 폭력시위를 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길을 열어주세요~”를 두 번 세 번 반복했다. 그러나 적들의 태도는 분명했다. “해산하라. 지금 즉시 해산하지 않으면 전원 사법조치하겠다!” 여기에 두 계급이 부딪쳤지만 자본가계급은 단호하게 자기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했고, 노동자계급의 지도부는 구걸했다. 자기 계급의 단호한 입장을 견지한 적들이 이기는 것은 계급투쟁에서 당연한 것이다. 결국 자본과 면담을 했지만, 이젠텍 자본으로부터 “돈이 얼마가 들어도 좋다. 하지만 노조는 인정할 수 없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었고 6월 5일 다시 한 번 ‘교섭’을 끌어낸 것이 ‘성과’(물론 관료들 입장에서의 성과)의 전부다.  

    배신을 저질러도 전혀 겁내지 않는 관료의 오만함
    이날 집회 참가자들이나 이 얘기를 들은 노동자들은 “이제 금속노조도 맛 갔다”는 말을 많이 했다. 하지만 정갑득과 같은 관료의 모습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고, 단호했던 투사가 갑자기 180도 변절한 것도 아니다. 정갑득은 이미 현대차노조 위원장 시절에 ‘비정규직 투입비율’을 합의하면서 “정규직의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비정규직 투입을 허용해야 한다.”고 했던 경력의 소유자다. 하지만 이 때 정갑득은 현자에서 조직적인 저항에 부딪히지 않았고, 임원선거 과정에서도 노사협조주의를 충분히 드러냈음에도 당선되었다. 정갑득은 관료 짓거리를 해도 큰 저항에 직면하지 않았던 그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정한 자신감을 가진 것이다. “어느 정도 소동은 있겠지만 결국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관료주의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그 만큼 대중의 ‘통제’로부터 관료들이 멀리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즉 지도자들에 대한 대중의 아래로부터의 통제력이 약해졌고, 그런 토대 위에서 관료들은 거리낌 없이 노사협조 블루스를 추고 있다. 이처럼 그 근본에서 볼 때 관료주의라는 괴물은 대중의 패배주의와 수동성을 기반으로 해야만 살아 움직인다. 계급적 대의와 원칙을 받아들이고, 살아 움직이면서 앞으로 전진하려는 노동자들 앞에서 관료주의는 즉각 폭로되고 제거될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측면도 주목해야 한다. 굳건한 노동해방의 전망을 갖지 못한 조합주의 지도부들이 투쟁의 결정적 국면에 배신을 저지름으로써 대중이 패배의식을 갖게 되면 노동자들은 위축된다. 위축되어 있는 노동자들 속으로 패배주의와 수동성이 파고들면, 관료주의는 더 마음대로 활개치고 그렇게 되면 조합원들은 더더욱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따라서 관료주의, 조합주의 지도부를 비판하는 것만으론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노동해방주의자들이 대중의 힘과 단결, 의식을 발전시키고, 이런 대중적 힘을 기반으로 아래로부터 지도자들을 통제해내며 투쟁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실천을 조직하지 못하는 한, 그리고 관료들의 형편없는 대안에 맞서 노동해방의 대안을 대중의 가슴 속에 자라나지 못하게 하는 한, 관료주의는 더욱 확산될 것이다. 진실로 관료주의를 극복하는 길은 노동자대중의 아래로부터의 자주적인 운동을 건설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노동해방주의로 무장한 현장 활동가들이 노동자대중에게 진정한 지도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현장에서 실천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계급적 대의와 원칙을 일관되게 지키면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실현하고 책임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노동해방으로 전진하는 것만이 그동안의 패배를 딛고 승리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 노동자들의 계급적 이익을 쟁취하고 방어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투쟁의 원칙과 방법에 대해서 대중 스스로 알게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럴 때 노동자들은 지도부를 옳게 세우고 통제하면서 관료주의, 교섭주의가 존재할 수 있는 기반 자체를 허물어뜨리는 위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어려운 길이지만 노동자들의 힘을 성장시키고 노동해방을 열어젖히는 데 반드시 필요한 길이다. 노동해방이란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 과정’이며, 이 자기해방 과정은 오직 노동자의 확고한 계급의식, 노동자대중의 능동성과 자신감을 통해서만 촉진되고 자기 길을 개척할 수 있기 때문이다.(끝)
    34 기타  노해연-56호] [번역] 학생과 지식인에 대해(트로츠키, 1932년) 08·06·23
    33 기타  노해연-56호] ≪자동차 절망 공장≫ 최악의 노동지옥, 도요타 체험기(1995년, 우리일터기획) 08·06·23
    기타  노해연-55호] (교육자료) 노동강도 완화투쟁의 원칙 08·06·23
    31 기타  노해연-50호] ≪우리의 주장≫ 기사모음 (4월5일 ~ 5월31일) 08·06·23
    30 기타  노해연-43호] 줄기세포 연구, 노동자의 관점에서 어떻게 볼 것인가 08·06·17
    29 기타  노해연-30호] 학습하라, 선전하라, 조직하라 08·05·29
    28 기타  노해연-6호] 피를 흘리지 않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08·05·19
    27 기타  노해연-1호] 대표인사말 - 단결과 연대, 노동자의 미래를 위하여 08·05·16
    26 기타  노해연-1호] 소식지 미래연대를 발간하며 08·05·16
    25 기타  노해연-30호] (독자로부터) 탄핵반대 촛불시위가 노동운동에 던지는 과제 08·05·14
    24 기타  노해연-32호] (독자로부터) 근본원칙과 살아있는 노동자투쟁의 결합, ≪노동해방≫에 대한 반응들 08·05·14
    23 기타  노해연-33호] (독자로부터) 32호를 읽고 08·05·13
    22 기타  노해연-34호] (독자로부터) 노동자들이 새로운 것을 배우는 방식에도 관심을 기울여 주십시오. 33호를 읽고 08·05·13
    21 기타  노해연-36호] (독자로부터) 현실에서 요구되는 헤게모니 투쟁 08·05·13
    20 기타  노해연-36호] (독자로부터) 현장투사들과 소통하며 전진하는≪노동해방≫ 08·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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