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혁신,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출발하자
민주노총 지도부의 성폭력 사건을 거치며 민주노총의 지도력은 붕괴일로로 치달았다. 이 틈을 타서 울산NCC, 인천지하철, 서울메트로 등에서 어용집행부들은 민주노총을 탈퇴하거나, 탈퇴를 추진하고 있다. 현대미포조선에서는 가장 헌신적으로 투쟁한 노동자들을 어용노조가 앞장서 징계하려 한다. 자칭 기아노조사수대책위는 금속노조로부터 기아노동자들을 떼어내기 위한 술책을 부리고 있다.
절망과 도전 사이
이런 상황이 되풀이되자, 현장노동자들은 ‘이제 민주노총은 글렀다’거나, ‘다 썩어 문드러졌다’는 절망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절망할 때가 아니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이 여론을 온통 도배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이었던, 2월 28일 민주노총 노동자대회에 구름처럼 몰려든 조합원들을 보라!
무엇보다도 민주노총은 ‘맛이 간’ 일부 지도부의 조직이 아니라 기층에서 일하고 투쟁하는 현장노동자들의 조직이다. 민주노총의 주인인 현장의 동지들과 함께, 민주노총이 진정한 대중적 단결투쟁기구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분투해야 한다.
현실의 변화
민주노조운동이 원래부터 무기력하지는 않았다. 대중행동으로서 민주노조들이 등장했던 80년대 말, 이 운동은 폭풍 같은 에너지를 발산했다. 똑같은 임금투쟁을 하더라도, 지금처럼 임금동결 따위가 아니라 25%, 30%의 임금인상을 쟁취해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물결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80년대 말 3저 호황 시기에 자본가들은 차라리 20~30%의 임금인상을 허용하고 공장을 계속 돌리는 것이 낫다고 여겼다. 그러나 호황이 끝나고 불황이 완연해지자 자본가들은 더 이상 지불능력을 과시할 수 없었다. 특히 한국경제의 취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97년 IMF 사태를 거치면서 자본가들은 매우 강경해졌다. 모든 노동자투쟁에 대해 미친 듯이 공격해왔고, 대기업 노조처럼 힘이 강한 곳에서는 배신적 지도자들을 육성하면서 노동조합을 갉아먹어왔다.
위기의 근원
그런 양상이 지금 더욱더 격렬해지고 있다.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목을 물어뜯기 위해 발광하고 있다. 이럴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침착하게 싸움을 준비하고 응전할 것인가, 아니면 괴물을 진정시키겠다고 스스로 제물이 될 것인가?
지금 노동조합 지도부가 대개 보여주는 양상은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깝다.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수백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잘려나가도 정규직 노조 지도부는 고분고분하다. 아니 더 나아가 현대중공업 오종쇄 집행부처럼 임금협상의 권리마저 포기하고, 서울메트로 정현수 집행부처럼 민주노총으로 단결할 권리를 포기하려 들면서, 자본가들에게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형국이다.
하지만 상대를 잘 못 봤다. 자본주의는 배부르면 사냥을 멈추는 짐승이 아니다. 노동자가 한 걸음 물러나면 열 걸음 더 물러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이다. 이것은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더욱 극렬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런데도 노동운동 지도부는 과거의 순탄한 시절의 관성, 개량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저하고, 멈춰서고, 기다려보라고 하며 투쟁에 나서려는 노동자들의 발목을 붙잡는 것이 그들의 모습이다. 여기에서 위기는 시작된다. 하지만 자본가들의 목을 쥘 태세로 단호하게 투쟁하지 않으면 노동자의 목을 물어뜯길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현실 직시’가 없으면 아무런 답을 내올 수 없다.
혁신의 전망
자본가들의 공격 앞에 어떠한 양보도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모든 위기의 책임을 자본가들이 져야 한다는 요구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는 투쟁 전망이 절실하다. 전체 노동자들을 하나로 단결시켜 “자본가계급 대 노동자계급”이라는 전면전을 치르겠다는 노동자계급의 투혼으로 무장한 노동운동이 절실하다. 가령 “양보교섭 반대, 노동자계급의 총단결, 자본가 정당과의 단절, 자본가의 이윤보다 노동자 생존권의 만 배 중요하다”는 원칙을 내건 <자본의 위기 전가에 맞서 싸우는 공동투쟁본부>가 모범이 될 것이다.
민주노총 전체가 이와 같은 전망 아래 투쟁대열을 정비해야 한다. 의지를 가진 동지들부터 기층에서 힘을 모아가자. 여성과 남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취업자와 실업자 모두를 대변하고 단결시키는 ‘노동자투쟁’의 단호한 조직자로 우뚝 서는 것, 바로 이것이 민주노총이 살 길이며 이것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해서 ‘이번에는 민주노총이 그냥 물러날 것 같지 않군. 그래 역시 민주노총이야’ 하는 믿음을 모든 노동자의 가슴 속에 심어주자. 그럴 때 민주노총은 조직, 미조직 노동자 전체의 신뢰와 지지를 받을 것이다. 그 때 ‘민주노총의 위기’란 말은 사라지고, ‘자본과 정부의 위기’가 세상을 장식할 것이다!
오연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