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부는 준비 됐습니까? 현장은 준비 됐습니다!
-금속노조 23차 임시대의원대회 참관기-
2월 16일 2009년 금속노조 23차 임시대의원대회가 열렸다. 기획재정부 장관조차 신규취업자수 목표치를 마이너스 20만으로 잡고 있을 정도의 본격적 위기 속에 금속노조 09년 투쟁방침의 기조와 계획을 결정하는 자리였다. 위기의 책임과 고통이 고스란히 노동계급에게 전가되고 있는 지금, 경제위기의 책임을 자본에게 묻는 공세적 투쟁 없이 정세를 돌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휴업, 감산, 폐업에 뒤따르는 정리해고에도 불구하고 09년 1월 신규파업건수는 ‘0’이었다. ‘0’이라는 숫자가 말해주듯, 노동계급은 자본가들의 구조조정 공세를 맨몸으로 맞으며 버티고 있다.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의 구조조정 상황은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자본의 위기를 노동의 기회로 만들어 내기 위한 구체적 전술이 절실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공허한 정갑득 위원장의 투쟁사
그러나 엄중한 상황에 대해 제출된 금속노조의 투쟁방침은 안이했다. 금속노조 5대 요구 및 임금요구 확정, 2월26일 전사업장 공동요구안 및 임금요구안 발송, 교섭 진행 후 요구안 관철이 되지 않을 경우 4월말까지 쟁의조정신청과 찬반투표를 거쳐 5월부터 총력투쟁을 전개한다는 것이다.
그저 일반적인 쟁의양식과 내용일 뿐, 경제위기에 대한 비상한 위기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고, 그렇기에 “98년처럼 내줄 것 다 내주고 당하지 말자”는 정갑득 위원장의 첫 투쟁사는 너무나 공허했다. 아니나 다를까, “눈 올 때까지 싸워서라도 중앙교섭을 쟁취하겠다는 공언은 어디 갔는가”는 대의원들의 질타에 대해 정갑득 위원장은 거듭 “싸움은 어차피 내가 아니라 야전사령관들이 하는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현장에 책임을 돌리기 시작했다.
비정규투본을 중심으로 한 동지들이 제출한 <임단협이 진행되는 240개 사업장이 4월말까지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하지 않을 경우 쟁의절차를 거쳐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투쟁방침 수정동의안에 대해 “그러니까 240개 중에 하나라도 체결 안 되면 바로 총파업가자는 것인가?”라는 식의 반문으로 현장의 준비상황을 조롱했다. 정갑득 위원장의 투쟁회피를 위한 회의 진행술은 이제는 달인을 넘어 입신의 경지에 오른 듯 했다.
대놓고 09년 중앙교섭은 없다는 금속노조의 방침
금속노조는 사실상 ‘고용을 위해’ 중앙교섭을 포기한다는 기조를 내걸었다. “산별교섭에 목숨 바칠 수 있는 조건은 아니다” 정갑득 위원장의 발언과 “15만이 한 테이블에서 교섭하겠다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기조변화는 명확하다”는 교섭실장의 발언에서 거듭 확인되듯, 금속노조 집행부는 09년 중앙교섭을 끌고 갈 계획도 의지도 없다. 심지어 299번 대의원의 “중앙교섭 1년차에는(07년) 교두보를 마련하겠다고 했고, 2년차에는(08년) 눈 올 때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3년차에는 중앙교섭이 없다한다,
이게 산별노조가 맞는가? 산별노조의 상이 없다.”라는 제기에 정갑득 위원장은 “산별노조의 상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돌파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중앙교섭으로 돌파하기에는 정세가 엄혹하다.”라는 말장난으로 답했을 정도이다.
결국 ‘고용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겠다’는 금속집행부의 방침은 실상 ‘고용유지를 위해 모든 것을 양보할 수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미 정갑득 위원장은 08년 11월 3일 기자회견에서 고용보장을 위해서라면 “임금동결 결단도 가능하다”고 밝힌바 있다. 지난 1월 문제가 되었던 ‘공생협약’문건 역시 노골적으로 임금삭감이 가능함을 명시하고 있었다.
이미 넘쳐나는 실업자 속에서 소비급감과 사회불안을 우려한 이명박 정권 역시도 ‘임금삭감을 통한 잡 셰어링(일자리나누기)’를 적극권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속노조의 안과 정부의 잡셰어링은 도대체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
물론 고용문제는 핵심이다. 그러나 중앙교섭을 포기하고 고용을 지키는 것이 도대체 현실적으로 가능하기는 한가? 중앙교섭을 포기하고 나온다면 자본가들이 고용을 보장할 것 같은가? 정갑득 위원장이 말했듯 금속노조로 조직된 사업장의 80%정도가 자동차 산업에 속해있다. 중소사업장의 대부분은 완성차4사의 납품업체이다. 완성차4사 감산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부품사와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완성차4사를 중앙교섭 테이블에 앉히고 이들이 쌓아놓은 막대한 이윤을 몰수해 이를 전체 노동자들의 생존을 지켜내는데 사용해야 한다.
완성차4사를 중앙교섭 테이블에 앉히지도 못한 상태에서 어떻게 이윤의 환수가 가능하며 전체 노동자들의 총고용을 보장이 가능한가? 당장 08년 중앙교섭에 나오지 않았던 완성4사 내부에서마저도 정리해고와 계약해지가 난무하는 상황 아닌가? 지난 11월 24일 금속대의원대회에서 정갑득 위원장이 ‘하느님이 주신선물’이라고 치켜세웠던 <GM대우 의견접근안>마저도 GM대우 자본에 의해 ‘산별교섭과 관련한 협의에 응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라며 실천적으로 폐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속집행부 스스로가 중앙교섭을 통한 정세돌파 불가기조를 내건다면, ‘이럴 거면 산별노조 왜 만들었나?’라는 제기가 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금속집행부가 말끝마다 내뱉는 ‘15만이 하나되는 투쟁’은 언제 가능한가?
고조되는 현장의 정서는 분명히 감지되고 있다
금속노조 역시 <모든 해고금지>,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기업잉여금의 10% 사회환원을 통한 고용창출> 등을 금속노조 5대요구안 속에 명시하고 있다. 기존 <09년 투쟁방침 현장토론안>에 명시된 ‘노사의 통상급 0.5% 공동출연을 통한 산별고용안정기금 운영’과 같은 노사협조주의적 요구가 대의원대회 원안에서 삭제된 것은 다행이라고 판단한다. ‘노사가 공동으로 조성하는 고용안정기금’은 서유럽에서조차 실패한 사민주의를 09년의 남한자본주의에서 시행할 수 있다는 가당치도 않은 환상을 불어넣을 것이며 투쟁전선을 급격히 해체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2차대전 이후 1960년대 말까지의 자본주의의 유례없는 호황기에, 그것도 선진국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무장해제와 제3세계 노동자로부터의 초과착취를 통해 가능했던 사민주의적 전망을 2009년 남한에서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가망 없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격화되는 위기 속에 계급 대 계급의 전면전을 앞두고 있는 지금, 노동자는 임금을 양보하고 자본가는 고용을 유지하는 ‘산업평화’라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실업자 350만의 현실 자체가, 넘쳐나는 계약해지와 정리해고가 그것을 생생하게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모든 기업이윤은 전부 노동자의 피와 땀의 산물인데 왜 하필 사내유보금의 10%만을 환원해야하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지만, 금속노조 역시 잉여이윤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본과의 전면전을 우회하려는 금속노조 집행부조차 자본이 축적한 이윤의 환수를 내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몇 년 전만해도 자본의 이윤환수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공황으로 치달아가는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노동계급은 이런 요구가 가능하며, 또 이런 요구 없이 정세를 돌파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함을 하나 둘 인식하기 시작했다.
수정동의안의 선전
현대차비정규직 지회, 1공장 위원회, 전주위원회, 금호타이어, 경주지부 다스, 다스 아산지회 등 16명의 대의원들이 발의한 <금속노조 2009년 투쟁방침 수정안>이 ‘무리한 요구안’이라는 정갑득 위원장의 폄하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선전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이렇게 고조되고 있는 현장의 정서를 반영한다.
“얼마 전 극우단체가 현대차 공장 앞에서 파업하지 말라는 집회를 했다. 비정규직 동지들이 상복을 입고 가서 막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싸우지 못한다면 해고당한 노동자들, 계약해지된 노동자들이 극우단체와 함께 조직된 노동자인 여러분에게 그 화살을 돌릴 것이다.
지금 노동자살리기 투쟁을 전개하지 못한다면 자본가가 아니라 실업자와 노숙자들이 여러분의 뒤통수를 돌로 찍을 것이다. 지금 전면적으로 투쟁하지 못한다면, 조만간 실업자와 노숙자들이 자본가가 아닌 조직되어 있는 노동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할 것이다”라는 김상록 수정동의안 대표발의자의 발언이 얻었던 깊은 공감 역시, 고조되어가는 현장의 정서를 대변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1.비정규직/미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대대적 노조가입운동과 조직화, 2.요구안 발송과 동시에 현장 거점 천막농성 돌입이 재석대의원 55.8%의 지지를 얻어 투쟁계획에 추가되었다. 또한 비록 원안을 극복하고 통과되지는 못했지만 원안에 비해 훨씬 원칙적인 결의를 담은 수정동의안의 <09년 투쟁기조와 목표>는 39%의 지지를 얻었고, <재벌의 투기자금 몰수와 기업 회계장부 공개와 원하청 거래내역 전면공개, 파산기업국유화와 노동자 통제> 등을 담은 <공황기에 맞선 노동자 살리기를 위한 금속노조 요구안>은 16.9%의 지지를 얻었다. 비록 전면적으로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현장의 계급적 요구를 대의원들과 집행부에게 각인시켰다는 점은 분명한 성과일 것이다.
비정규투본을 중심으로 한 30여명의 동지들이 발의한 <잉여금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특별기금 출연>, <총고용보장 및 기존근로조건 저하금지의 내용을 최우선적으로 중앙교섭에서 다룰 것>을 제안하는 <고용안정협약 요구안> 역시 32%의 지지를 얻었다.
현장의 투쟁력은 폭발의 촉매제를 원한다! 총단결전선을 세워내자!
언제까지 “현장에서 투쟁력이 없지 않는가”라는 금속지도부의 핑계를 듣고 있어야 하는가? 단순한 임단투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한 지금, 전국적 공동투쟁 전선이 요구된다. 전면전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최소한의 방어조차 불가능한 것이 현재의 정세라는 것을 명심하자. 현대자동차그룹의 사내유금만 31조5천이 넘는다. 이런 이윤을 쌓아놓고도 임금삭감과 계약해지를 남발하고 CR을 후려치는 것이 이 땅의 자본이다. 어차피 전체노동자의 고용을 보장하고 52만 명에 이르는 예상 신규대졸실업자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방법은 노동자 총단결전선을 통해 재벌의 재산을 몰수하는 수밖에 없다.
쌍용차 사례에서 상징적으로 알 수 있듯, 기업의 파산이 속출하는 지금 파산기업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방법은 파산기업 국유화를 통한 고용유지가 최선의 답이다. 09년, 노동자계급에게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것만큼 절실한 말이 있을까? 동지들이 알고 있듯, 이미 전투는 각 현장에서 시작되었다.
특히 현대차에 엔진의 부품을 생산하는 금속경주지부 인지컨트롤스 지회의 전투가 불붙고 있다. 경주지부 연대파업에 돌입할 경우 현대차 라인이 서게된다. 자본은 최고의 강수인 직장폐쇄까지 강행했으나, 결국 직장폐쇄를 풀고 28일까지 휴전을 선언했다. 그만큼 연대투쟁의 기세가 살아있다는 반증이다. 동지들, 이 투쟁을 알려내고 엄호해 가자. 자본이 초래한 위기의 책임을 자본에게 물어야 한다. 전체 노동자들의 생존권 쟁취를 위해 노동자 총단결전선으로 결집하자! 지도부의 수동성을 현장스스로의 활력으로 돌파하자! 지금의 작은 불씨하나가 거대한 화염으로 타오를 것이다!
백종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