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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42호][청탁기고]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 활동을 돌아보며
| 2009·11·25 21:43 | HIT : 2,124

[청탁기고]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 활동을 돌아보며


[편집자 주 :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 2기 활동을 맡게 된 이자영 동지가 그간의 가대위 활동을 돌아보며 소중한 원고를 보내주셨다. 더 많은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내용 일부를 여기에 발췌, 소개한다. 원문 전체는 사노련의 이론지 ≪사회주의자≫ 5호에 실려 있다.]

지금 현장은 담배 한 대 피는 것조차 눈치 보일 정도고, 쉬는 시간에 앉도록 놓아둔 의자마저 치워져 버렸습니다. 말단 관리직의 손끝 하나에도 벌벌 기게 되고, 잔업·특근·월차도 못쓰고 노동강도는 배로 늘어나 노동자들을 쓰러뜨리고 있습니다. 노동강도가 너무 세고 숨 막히는 분위기에 그만두겠다고 해도, 위로금 없이 맨손으로 나가라는 관리직의 한마디에 그저 참을 뿐입니다. 파업 이후 공장엔 이처럼 유치하지만 견디기 힘든 군대체제가 안착돼버렸습니다.

쌍용차투쟁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쌍용차투쟁에 대한 평가 역시 진행 중입니다. 농성을 풀고 나온 이후에도 악랄하게 진행되는 국가기관과 자본권력의 횡포는 세상에도 알려지지 않고 이렇게 조합원들과 가족의 목을 조르고 있습니다.

가족대책위의 시작과 활동

4월 말, 평택 내 동별 모임이 한두 차례 열리고, 쌍용차 상황에 대한 설명회를 가진 뒤, 5월 9일 쌍용차 정리해고 분쇄를 위한 가족대책위원회(이하 가대위)가 출범했습니다. 바로 이틀 뒤 5월 11일 월요일 눈물의 기자회견으로 왕성한 활동을 시작합니다. 5월 12일 공장 정문 바로 안쪽에 가대위 천막을 치고, 매일 평택 시내를 다니며 가두방송을 하고 홍보물을 나눠줬습니다. 저녁마다 공장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언론사 인터뷰에도 부지런히 응했습니다. 주말마다 서울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고, 산업은행, 평택역 등 주요 거점에서 1인시위도 했습니다.

어쩌면 평화롭게 느껴지기까지 했던 첫 한 달이 지나자, 국면이 달라졌습니다. 법정관리인들과 임직원들의 반격이 시작된 것입니다. 급기야 6월 26일, 법정관리인이 최종안을 던진 2시간 뒤, 구사대와 용역업체 직원들을 앞세워 임직원들이 공장을 침탈해 들어왔습니다. 정문 안 10개 남짓한 천막은 무참히 철거돼버리고, 농성 조합원들은 수적인 열세로 정문과 본관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밤새 간헐적인 위협이 있었고, 처음 있는 무력충돌에 조합원은 물론 가족들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다음날, 공장침탈을 규탄하는 집회가 공장 앞에서 열리고 임직원과 가족들은 1m 앞에서 얼굴을 마주하며 하루 종일 으르렁거렸습니다.

농성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은 농성자와 가대위를 향한 증오와 원망을 드러냈습니다. 농성을 푸는 마지막 날까지 손에 막대기를 놓지 않고 가까이에만 있으면 잡아 죽일 듯이 으르렁거렸습니다. 내가 죽지 않으려면 동료를 죽일 수밖에 없는 약육강식 자본주의가 빚어낸 참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파산, 청산이란 소문에 앞뒤 살필 여유도, 동료애도, 상식적 판단력도 상실한 채 임직원들이 시키는 대로 진압작전의 꼭두각시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던 비해고자들을 보았습니다. 노노갈등이라는 단어로는 도무지 담아내지 못할 잔혹함과 슬픔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정권과 회사의 악랄한 탄압

이런 참상이 벌어진 것을 보며 한 신문사 기자가 노동조합이 비폭력저항을 할 수는 없었느냐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공장 앞에서 미사를 집전해 온 강정근 신부님의 답변을 옮깁니다. 용산참사 현장에서도 미사를 집전해 온 분입니다. “비폭력저항은 많은 시간과 인내를 요구하지요. 용산참사 문제로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이 있어요. 참 기특한 일이지만, 용산 문제가 그들의 생명을 직접 압박하지는 않지요. 시간을 두고 인내를 가지고 주장할 수 있어요. 비폭력저항을 펼칠 자유가 있는 셈이에요. 하지만 쌍용차 노조원들을 보세요. 해고되면 그냥 죽는 겁니다. 가족의 목숨이 걸린 문제 앞에서 비폭력저항으로 인내할 ‘자유’가 그들에게 있었을까요? 노조원들은 도장공장을 농성장으로 택했어요. 그곳에서 일이 생기면 죽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경찰일까요? 아니요, 바로 노조원들이에요. 목숨을 지키려고 목숨을 내건 거죠. 그걸 폭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연대

공장 문이 막히고 쌍용차지부가 외곽에서 활동할 수 없게 되자, 우리 가대위는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이를 어찌 다 보답할까 하는 고민을 할 정도였습니다. 장맛비를 다 맞도록 싸움이 끝나지 않았고, 뙤약볕 가릴 길 없이 맨바닥에 앉아있는 수백 명의 동지들을 보며 고마웠고, 나라면 이렇게 달려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자주 했습니다.

가대위를 조직하는 데서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가대위에 참여했던 가족들은 일상이 완전히 파괴됐습니다. 아이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었고, 집안일은 손 놓은 지 오래입니다. 애타는 마음, 남편을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맨몸으로 싸워야했던 아내들 뒤로, 방치된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엄마, 아빠의 정상적인 돌봄을 받지 못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은 얼마나 상처 입었을까요.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미안할 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투쟁을 시작하며 기대하고 희망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투쟁에 소극적이고 형식적이었던 쌍용차 노조운동이, 당면한 자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꼭 얻었으면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연대의식’이었습니다. 비단 투쟁이 있는 곳에 함께 하는 연대를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의식 자체가 달라지는 차원의 연대 말입니다. 나와 남, 나와 자연, 나와 우주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가치로 삼고 살아갈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나와 남을 비교해서 무리한 사교육, 신분상승, 집 마련 등으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기를, 자연의 소중함을 알기를, 그래서 모든 이와 자연이 공존하며 평화롭게 살아갈 방도를 모색하며 살기를 바랐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총파업에 관해서는 평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파업이 공장을 거점으로 고립돼버리고, 정권과 자본가 권력의 파상공세가 연일 계속되는 가운데, 이 국면을 돌파할 카드가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권의 완강한 의지로 분명 ‘정치적 파업’이 되어버린 이 상황을 대통령, 지식경제부, 경기도지사는 ‘당사자들이 알아서 하라’는 역설만 강변했습니다. 이 때 총파업 지침이 나왔습니다. ‘공권력이 투입되는 즉시 총파업에 돌입한다’는 지침이었습니다. 다른 카드가 전혀 먹히지 않고 있을 그 당시, 총파업이 위력적으로만 진행된다면 정부가 움찔하며 태도를 바꾸지 않을까하는 마지막 희망을 가졌습니다. 공장 안 노동자들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지부들이 정권과 자본권력에 위협이 될 만큼의 파업을 벌여준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그러나 총파업은 실망스럽다 못해 비참할 정도로 시시했습니다. 쌍용차 사태를 바꿀 위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수천이 모여 공장 문을 열어젖힐 생각이 없다면, 공장 앞에 모일 이유도 없었습니다. 쌍용차 문제가 일개 사업장의 사안이 아니라, 전체 사업장을 자본이 잠식해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한 파업임을 알고 있을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지도부는, 총파업을 일으키기 위해, 회의에서 단위 대표들에게 총파업 지침을 내리는 것으로 끝날 게 아니었습니다. 각 사업장을 직접 돌며 총파업을 일구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총파업’입니다. 결국 안팎의 모든 노력도 파업 노동자들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경찰특공대의 투입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절박한 순간까지 이르자, 울며 겨자 먹기로 노사협의를 노조 측에서 먼저 요청하게 되었고, 노조가 내내 반대했던 바로 그 인력 구조조정 안을 노조 측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오며

남편이 구속된 사이에 동생 결혼식, 시아버지 제사, 시댁 장례식, 추석이 있었습니다. 조만간 친정아버지 생신과 시어머니 생신을 앞두고 있습니다. 4살 된 아이를 데리고 단 둘이 집안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1기 가대위를 마무리하고 2기 가대위를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일상 회복이 안 됩니다. 잠을 청해도 1시간에서 3시간은 뒤척여야 겨우 잠이 듭니다. 아이는 경찰 진압 장면에 놀란 뒤로 수시로 배앓이를 합니다. 아이의 장래희망이 군인과 경찰이 되었습니다. 현실에서 자신과 아빠를 가로막은 경찰을 지독히도 무서워하면서도, 그 공포와 무력감을 보상하기 위해서인지 집에서는 경찰 놀이만 합니다.
글을 쓰는 내내 저는 잠을 못 자고 짜증이 나고 아팠습니다. 폭력에 노출된 당시에는 그 상황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젠 아픕니다. 너무도 무섭고 슬픕니다. 우리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당했는지 이제야 조금씩 인식하게 됩니다.

조합원들은 크게 위축되어 있고, 가족들은 일상을 회복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가다 꿈틀대보지도 못하고 밟혀 죽을 순 없습니다. 놀란 가슴, 상처 입은 가슴 추스르며 다시 일어서렵니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길의 어제가 빛났듯이 오늘도 내일도 빛을 내기 위해 날갯짓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지금이 끝이 아니고, 지금 상황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기에 오늘도 충실히 살아가며 희망을 품습니다.
그동안 보내주신 응원과 격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가족을 잊지 말아주시길 바라며, 우리 아이들이 보다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열심히 일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자영 /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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