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성폭력 사태 - 조합주의 운동에서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태가 언론에서 보도된 후 조합원들은 “도대체 이게 무슨 망신이냐? 쪽팔려서 못 살겠다”, “더 이상 위원장 해먹기 힘들다는 소리 말라. 조합원 하기가 더 힘들다”는 반응들을 보였다. 민주노조라는 자부심으로 현장에서 처절하게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은 실망과 좌절감이라는 커다란 바윗돌에 짓눌리고 있다.
가부장성 문제로 축소하기
이번 사태에 대하여 민주노총 지도부는 초기에 “이명박과 맞서 싸워야 하는 시기에 오히려 역공을 당할 수 있다”는 핑계를 들먹이며, 조직보존 논리를 앞세워 은폐하려 했다. 하지만 이 은폐시도가 언론에 공개되고, 조직 내부의 문제제기가 거세지면서 결국 지도부가 총사퇴하기에 이르렀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이번 사태의 원인이 “사회, 조직 내 뿌리 깊게 잔존하는 남성 중심적 가부장제 문화와 인식이 함께 활동하는 여성을 어느 순간 성적 대상의 노리개로 전락시켰다”고 보고 있다. 가부장적 전통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이와 연관된 민주노총 외부의 비판 역시 주로 페미니즘적 문제의식 속에서 제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한국사회에 뿌리 깊은 성별 불평등을 당연시하는 문화적이고 전통적인 가부장제의 한계가 노동운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런 문제의식은 ‘노동자계급의 분열’에 맞서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쟁취해야만 한다는 관점 속에서만 의의를 다할 수 있다. 노동자조직 속에는 남성과 여성 간의 불평등만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의 불평등이 퍼져있다. 그래서 가부장성의 문제로만 접근하면 또 다른 차별들에 총체적 대응의 고리를 놓치고 파편적으로 대응하게 되는 약점을 낳게 된다.
계급적 관점을 지워서는 안 된다
성폭력 사태와 같이, 노동자조직 안에서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노동운동이 조합주의 전망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전망 아래 세상을 바꾸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원대한 시야를 가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기 위한 힘을 최대한 끌어 모으기 위해 전체 노동자의 굳건한 단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노동자계급 내에 분열과 차별이 있다면 결코 새로운 사회의 건설자로 나설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전망을 대신하고 있는 조합주의 전망 속에서는 당장 눈앞에 있는 조직 노동자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데 급급하게 된다.
이는 암암리에 일부 노동자의 이익만을 특권적이고 배타적으로 옹호하려는 태도로 이어진다. 정규직 노동자가 자신의 고용안정을 지키기 위해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터에서 쫓겨나는 것을 묵인한다. 한국인 노동자들이 훨씬 더 비인간적인 노동환경 속에서 저임금으로 착취당하는 이주노동자들을 외면한다. 원하청 노동자들 간의 연대는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대립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성폭력 사태로 비화된 남녀 노동자 간의 분열은 이러한 여러 분열의 모습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임시방편에서 벗어나자
결국 이 사태로부터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배워야 할 것, 진정한 해결책은 다름 아니라 계급적 단결 정신을 조직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이는 단지 민주노총 지도부가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방식처럼 강력한 처벌을 내리는 것, 사퇴하는 것, 교육을 받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조직 내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계급적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정신이 뿌리내리지 못한다면, 그리고 지금 당장 바로 그러한 투쟁에 즉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단결투쟁, 원하청 노동자 단결투쟁, 이주노동자와의 단결투쟁, 미조직 노동자와의 단결투쟁에 나서지 못한다면, 결국 또 다른 영역에서 또 다른 시기에 또 다른 모습으로 문제는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민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