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사회주의자들의 목소리>
사회주의적 관점 없이 비정규직 문제, 해법 없다!
[편집자] 사노련 사건으로 사회주의 대중화 문제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가자! 노동해방>은 현장의 사회주의자 동지들이 어떻게 사회주의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동료 현장노동자들에게 편하게 전하는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현장노동자들에게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과 사회주의자 되는 것이 그렇게 큰 거리가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글이 될 것입니다.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는 구권서 동지가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앞으로도 몇 차례 계속 릴레이 기고 형식으로 글을 싣습니다. 많은 현장 동지들의 기고를 기다립니다.
며칠 전, ‘나는, 왜 사회주의자가 되었나’는 내용의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막연하긴 하지만 두 가지 느낌이 들었다. 역시 공개적으로 뭔가 밝히는 것은 술자리에서 떠벌이는 것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는 부담 하나, 또 하나는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커밍아웃’이라고 아끼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니 의식으로 깨우쳐 사회주의자가 된 것이 아니라, 그냥 예전부터 사회주의자 성향이 늘 존재해 온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 그냥 틔어 날 런지, 아닐런 지도 모르는 씨앗을 오래 품고 있었을 것이다.
지난 90년대 초 무렵, 노조활동을 시작했던 동우공영 노조사무실 풍경의 기억을 되살려 봤다. 책꽂이에는 ‘태백산맥’, ‘녹슬은 해방구’류의 소설과 월간지 ‘새벽’, ‘말’, 그리고 석탑에서 나온 ‘노동법 해설’, 그리고 ‘노동자 철학’ 따위의 팜플렛이나 간단한 사회과학 단행본, 그리고 광주항쟁 비디오 등이 늘 꽂혀 있었다. 지금도 이들 중 한, 두 가지 쯤은 지금도 웬만한 노조사무실의 책꽂이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한 켠을 아직도 차지하고 있을 법하다. 그 때의 그 지도부들은 어디서 거친 숨이 식었을까.
가난 속에 오랜 지병으로 어머니는 당뇨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고 돈이 없으면 누구나 살 수 있는 목숨도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닌 신분격차도 극복하지 못한 채, 예정된 실패를 꽤나 고통스럽게 이어갈 수 에 없었던 늦깎이 스물일곱 지독한 첫사랑도 어쩌면 나의 사회주의 성향을 더욱 북돋는 배경으로 작용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의 20대는 그냥 우울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이런 저런 개인사를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는 걸까. ‘개인의 불행(또는 행복)’은 그 사회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를 누군가 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불만은 20년 전의 그 때나 지금이나 아무 것도 해소할 수 없었다. 가뜩이나 지적허영심도 많았던 시절, 현장에서 노조를 알게 되었던 나는 학생출신 활동가들의 해박한 사회과학 지식을 은근히 부러워도 했고 이런 저런 책을 탐독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리고 전노협 탄압과 더불어 노조가 와해되면서 전망을 잃고 90년대 중반 들어서면서 한 때는 동굴 속 같은 고립과 무력감에 빠져 지냈던 때도 있었다. 글쎄, 소련이 무너졌단다. 그런데 그게 당시의 현장에 있었던 나는 현실운동의 위기와 무슨 연관이 있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오늘부터 사회주의자다’하는 식의 거창한 선언이나 전환점이 없었던 듯 하다.
어쩌면 잘난(돈 많은) 것도 노력한 개인의 몫이고, 못난(가난한) 것도 게으른 개인의 몫일 뿐이라고 간단히 정리가능한 그런 허위와 억지, 그리고 제도화한 ‘개인주의’가 싫었을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게 주어진 겨우 그 만큼의 몫을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살인마 전두환 정권 타도하자’고 꽃병을 들었고, 87년 항쟁을 통해 ‘보통사람’ 노태우가 들어서니 ‘군부독재 물러가라’고 짱돌을 들었다.
문민정권 김영삼이 들어서니 그 놈도 안 되겠다 퇴진하라고 했더니 이번엔 ‘정의가 강물처럼, 평화가 들풀처럼 일어서게 한다’며 호기 좋게 들어선 김대중도 물러가라고 했으며 노무현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대했던 것이다. 소위 사회과학이라는 것을 알 리가 없었던 한 때의 나는 정의감 하나로 노조활동을 시작 했지만 반대, 반대만을 외치며 대체 그 반대의 끝은 어디일까 궁금한 운동권 논리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쟤들은 뭘, 어쩌자는 건데???
어느 현장이든지 노조를 처음 만들게 되면 소위 발기인 대회라는 걸 여는데 거기에는 정작 그 주체들은 온갖 불평불만 분자들이 모이게 되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하지만 그 들 의 열정만으로 지도부를 구성할 수 없는 이유는 부정의 행위만으로 긍정의 결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96년판 민주노총의 모범교안에 나오는 ‘간부의 자세’ 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안’을 내오는 간부가 되라는 것!”. 그런데 사회문제로 의식을 넓혀 보면 정작 ’쇠고기 반대, 비정규직 반대, FTA반대, 민영화 반대, 반대, 반대...’ 뿐이지 않는가. 반대만을 외치는 목소리는 마음의 공감을 얻을 순 있어도 과연 실천의 행동으로 따라오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촛불의 대중은 우리에게 이렇게 지금도 되묻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건데??? 낡았으며 고리타분하고, 융통성 없고 유연하지 못하며, 고집스럽고, 때론 억압적이고 집단적이고, 권위적이고 윽박지르고..,
그렇다. 길고도 파란만장한 역사적 검증을 통한 사회주의에는 벼라 별 부정적 형용사를 갖다 붙일 수 있고 나 조차도 가끔은 그렇게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럴 정도가 아니라, 지금의 끔찍한 자본주의는 분명히 아니되, 그렇다고 사회주의가 아닌 다른 대안은 없는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아직도 난,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십 년 전에도 그랬지만 난, 여전히 ‘가난’한데...
사실 사회주의라는 말도 깊이와 넓이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많은 내용을 담고 있기에 사회주의자라는 규정도 그 만한 스펙트럼이 존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은 그 스펙트럼중에 난 어디쯤 끼여 있는지 아직도 헤아려 보질 못하고 있지만 도저히 개인주의로 살아갈 수 없는 나는 사회주의자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이런 저런 나의 상념에 의외로 이 나라 노동부 장관 이영희가 명쾌하게 일갈하고 있지 않은가. “요즘 보면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는 식의 극단적 얘기가 나오는데 전부 다 정규직화하자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하다(8/25, 한국경제신문, 현대경제연구원이 주최한 밀레니엄 포럼에서)”. 아무렴..!
그렇다. 반자본주의 네거티브도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포지티브 캠페인을 할 차례도 되지 않았나.
구권서 동지(공공서비스노조 서울본부장, 전비역초대의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