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투쟁의 시대를 준비하는 ‘유통업계 지각변동’
지난 14일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사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랜드 홈에버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2년 전 이랜드 자본가들은 1조7천억이라는 막대한 빚을 끌어모아 야심차게 대형마트 사업에 진출했다. 당시만 해도 이랜드는 “우리는 충분히 까르푸를 감당할 수 있다”면서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결국 실패했고, 이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다. 포화상태를 향해 치닫던 유통시장에서 충분한 이윤을 끌어내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고, 결국 이자조차 제대로 갚지 못하면서 위기에 부딪힐 것이라는 진단이 이미 2년 전에 내려졌다. 우리에게는 아주 간단한 객관적 현실이었지만, 이윤에 눈 먼 자본가들은 그것을 볼 수 없었다.
홈플러스는 다를까?
외관상 홈플러스는 홈에버를 인수함으로써 업계 1위인 이마트를 위협할만한 위치로 도약했다. 홈플러스 66개 점포와 홈에버 36개 점포를 합하면, 112개 점포를 갖고 있는 이마트에 필적할만하다. 한 홈플러스 관계자는 “홈에버 인수 결정으로 회사 내부 분위기가 매우 고취됐다”고 말한다. 2년 전의 이랜드처럼 이들 역시 자신만만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 자신감 역시 ‘이윤에 눈 먼 자들의 허황된 자신감’에 불과하다. 인수를 위해 홈플러스는 홈에버 부채를 100% 떠안기로 했다. 게다가 당장 현금으로 지급하기 위해 5천억을 차입하기로 했는데, 이랜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연간 이자비용이 막대하게 소요될 것이다. 매장 리뉴얼 비용도 수천억 원에 이를 것이다. 그 비용을 감당하려면 충분한 이윤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데 현재 홈플러스의 영업이익률은 3.4%에 불과하다(이마트는 8.1%). 홈에버는 적자가 나서 망했다(지난 해 순손실이 1,939억 원). 더욱이 대형마트를 주로 이용하는 서민들은 물가폭탄에 맞아 소비규모가 점점 줄어들 전망이다.
이 상황에서, 홈플러스 자본가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명백하다. 유통자본가들 간의 경쟁 도박판에서 패망하지 않기 위해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윤을 쥐어짜내는 것이다. 어디에서? 노동자들에게서! 대형마트의 특성상 가격인하 경쟁이 불가피할 것이고, 가격인하에 따른 손실을 메우기 위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삭감과 비정규직·외주화 확대가 불 보듯 빤하다. 까르푸를 인수한 이랜드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새로운 투쟁을 부른다
이는 또 다른 투쟁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홈플러스가 바짝 추격함에 따라 이마트 역시 긴장감을 느끼고 착취강화 계획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랜드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투쟁의 불꽃은 홈플러스로, 더 나아가 이마트로 확산될 수밖에 없는 객관적 조건이 형성되고 있다. 업계 3위로 밀리면서 더욱 발버둥 치게 될 롯데마트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로 롯데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마트가 싼 이유는 우리를 싼 값에 부려먹기 때문이야.” “이랜드 파업은 어떻게 되고 있나? 거기가 이겨야 할 텐데···.” 이처럼 전혀 조직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노동자들은 숨죽인 채 투쟁의 승리를 염원하고, ‘무언가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므로 유통노동자의 투쟁은 자본가들의 바람처럼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당장에 전면적인 승리는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투쟁 속에서 자본가들에 맞서 싸우는 법을 배우고, 단련하며, 인내심을 갖고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투쟁의 불씨를 가져다주는 작업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 마치 85년 구로동맹파업을 거친 노동자들이 수많은 사업장으로 흩어져 87년 대투쟁의 불씨가 됐던 것처럼 - 다음 시기는 유통노동자 대투쟁의 시대가 될 것이다!
오연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