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급 전체의 요구를 내걸고 노동자살리기 대중투쟁으로!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야만과 자본가들의 탐욕이 낳은 세계대공황의 초입부를 지나고 있다.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래 언제나 그랬듯이, 공황의 책임과 대가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려는 자본가들의 적반하장 공세가 노동자들의 목줄을 죄어오고 있다. 노동자들은 길거리에 내몰리고 있고 호주머니는 빈털터리가 되어간다.
온갖 조작으로 가득한 정부의 공식 실업률은 3%대이지만, 취업포기자 · 실망실업자 · 초단시간노동자들을 포함하면 이미 실업 또는 반실업 상태에 빠진 노동자들이 전체 임금노동자의 20%를 넘는 300만 명대에 이른다. 실질 국내총소득은 지난해 3분기에 이미 3.1% 하락한 데 이어 4분기에는 2.9% 하락했다.
달라진 자본가들의 공격양상
그러나 아직 어떤 산업에서건 대규모 정리해고나 희망퇴직 등 눈에 보이는 구조조정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다. 자동차산업의 예를 들어보자면, 공격은 가장 밑바닥 노동자들에게 먼저 시작되었다. 완성차 회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하청공단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부터 쫓겨나기 시작해, 그 다음으로 부품사 비정규노동자들이 공격의 대상이 되었고, 점차 완성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쫓겨나고 있다.
자본가들 공격의 특징은, 노동조합의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가장 약한 부위, 즉 미조직 부문을 먼저 내쫓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사내하청노조가 조직되어 있는 곳에서는 비정규직 조합원들에 대한 공격도 미루고 있다. 지금 쫓겨나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한시하청·단기계약직 ․ 산재 대체직 · 아르바이트생 등 초단기 계약직 노동자들을 비롯,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비조합원들이 대부분이다.
IMF 위기 당시에는 현대차노조라고 하는 한국 최대 노동조합과 일전을 불사하며 정리해고를 밀어붙였던 자본가들의 공격양상이 분명히 달라진 것이다. 자본 측이 흘리는 소문 중 하나는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건드리지 않겠다”는 얘기도 있다. 물론 여기엔 “당분간은”이라는 단서가 생략된 것이지만, 자본가들의 공격양상이 달라진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대중투쟁의 전염성을 두려워하는 자본가들
먼저, 자본가들은 조직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너무 일찍 단행할 경우 치러야 할 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물론 현재 대기업 조직노동자들의 경우 자본의 공격에 과감하게 맞서지 못한 채 얼어붙어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고용에 대한 전면적 공격이 들어오면 결사항전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식만큼은 뚜렷하게 유지하고 있다.
다음으로 이것이 더욱 결정적인 이유인데, 자본가들은 어느 한 부문에서라도 노동자들이 대중투쟁으로 솟구칠 경우, 그것이 더 큰 부문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지금이야 현장이 너무 얼어 있어서 활동가들조차 뭘 해야 할지 엄두를 못 내고 있지만, 어느 부문의 노동자들이 대중투쟁으로 치고 올라오면, 그 투쟁을 바라보는 현장 노동자들이 다시 한 번 자신감을 회복하고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해 어깨를 걷어붙이고 나설 것이라는 사실을, 자본가들은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
최근 신정과 구정 시즌에 다수의 투쟁사업장이 교섭 타결을 이루고 있는 것도 연관이 있다. 신정을 전후하여 코스콤비정규지부와 신용보증기금비정규지부가 타결되었고, 구정을 앞두고 현대미포조선·강남성모병원·철도비정규직투쟁에서 자본가들은 거의 동시에 (타결을 목표로) 교섭을 실시했다. 물론 교섭안·타결안의 수준은 애초 노동자들의 요구에는 많이 모자라는 것이었지만, 자본가들의 입장에서는 일정한 양보를 담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투쟁사업장의 조직력과 파괴력은 무서운 것이 아니었지만, 그들의 투쟁이 지속될 경우 불씨가 미조직 부문으로 옮겨 붙을 수 있다는 점이 두려웠던 것이다.
“조직노동자와 미조직노동자를 분열시켜라!”
자본가들 공격양상의 변화는 한편으로는 그들의 두려움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장기적인 계획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조직노동자와 미조직노동자를 분열시켜 분할통치를 시도하는 것이다. 저항능력이 부족한 미조직노동자들을 먼저 공격함으로써, 그들의 분노가 정권과 자본이 아니라 조직노동자를 향하도록 만들려는 것이다.
만일 조직노동자들이 당장 자신에게 공격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조직 부문에 대한 방어를 하지 않고 조합원 고용에만 치중한다면, 길거리로 내몰린 미조직노동자들의 분노는 실제로 조직노동자를 향하게 될 것이다. 정규직이건 비정규직이건 그나마 노동조합의 힘으로 일자리를 유지하는 취업노동자들로부터 실업노동자들이 분리되고 말 것이다.
그 다음 수순은 뻔하다. 자본가들은 아마도 지금쯤 조직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대대적인 이데올로기 공세를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조합원 고용에만 치중하는 천박한 조합주의, 미조직노동자들의 고용에 대한 공격이 결합되면, 노동조합과 조직노동자들은 집단이기주의로 몰리며 고립을 면치 못할 것임에 틀림없다. 자본가들이 조직노동자에 대한 공격을 늦추며 준비하고 있는 공세가 바로 이것이다.
전체 노동계급의 요구를 내건 노동자 살리기 투쟁으로!
자본가들의 전략이 무엇인지를 간파했다면 노동계급이 가야할 길은 명확하다. 그들이 가장 두려운 방식으로 싸우는 길이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조직노동자와 미조직노동자, 취업노동자와 실업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할을 넘어 노동계급 전체를 단결시킬 수 있는 요구를 내걸고, 대중투쟁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자세로 투쟁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신문을 통해 그러한 요구들로 “▲모든 형태의 해고 금지 ▲임금삭감 반대, 생활임금 쟁취 ▲노동시간단축으로 일자리 늘리기 ▲파산기업 국유화 및 노동자통제 ▲모든 대기업의 회계장부 공개 ▲무상주거·무상의료·무상주거 실현 ▲투기자금 몰수 ▲은행 및 국가기간산업 국유화와 노동자통제” 등의 목록을 제시한 바 있다.
물론 아직 대중투쟁의 가능성은 조직노동자들 쪽에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조직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얻어낸 성과를 미조직 부문으로까지 확산시킬 수 있도록 대중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미조직 부문까지를 포괄하는 계급적 요구를 내걸고, 투쟁과정에서 미조직노동자들에게 함께 투쟁할 것을 호소하며 조직화에 나서는 것은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러한 방식의 대중투쟁이 솟구쳐야만, 자본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중투쟁의 확산’이 이뤄질 것이다.
대중투쟁의 가능성이 도대체 어디에 있냐고? 자본가들이 조직노동자에 대한 공격을 미루고 있는 반면, 공황과 글로벌 경제위기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청와대는 연일 노동자에 대한 공격과 구조조정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이명박 정권 입장에서는 자본가들의 현재 공격수준으로는 자본주의체제와 질서를 지켜낼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정권과 자본가들 사이의 일정한 균열이 존재하는데, 자본가들이 보이는 조직노동자에 대한 느슨한 공격과 달리, 이명박 정권의 막가파식 탄압과 공격이 역으로 대중투쟁의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다. 정권과 자본은 전지전능하지 않으며, 그들도 실수를 저지른다. 특히 노동계급의 역량을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여 공격의 수위를 잘못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그 균열의 지점에서 터져 나오는 대중투쟁이야말로 노동계급의 더 넓은 부위로 투쟁의 기운을 확산시키는 촉매제가 되어줄 것이다.
오민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