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차 호전되는 정세, 무엇을 할 것인가!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가 지난 5월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명박의 지지율이 20%대로, 대선 지지율의 반토막 이상 추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영어몰입교육을 그토록 강조하던 이명박 정부 관료들이, 이번 ‘미친 소 수입’ 합의내용의 중요한 문구를 잘못 번역한 사건은 전국민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노동자계급다운 방식으로!
그러나 이명박의 추락이 현장 노동자들의 자신감 회복으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불과 취임 두달만에 거리에는 수만의 촛불이 ‘이명박 탄핵’을 밝히고 있지만, 현장탄압과 구조조정의 칼바람에 맞선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행동은 아직까지 활발하게 터져나오고 있지는 않다.
일부 노동자들은 촛불시위에 참여해보기도 하지만, 쇠고기 문제 외의 쟁점은 다뤄지지 않고 노동현장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아 소외감마저 강하게 느껴진다. 도대체 이 국면에서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노동자 때려잡겠다던 이명박이 저렇게 추락하고 있는 바로 이 상황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줄 수 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최근 운수노조의 ‘미친 소 운송거부’ 선언이 있은 직후, 시민들로부터 운수노조 사무실로 적지 않은 격려전화가 걸려온다고 한다. “운수노조가 결단해줘서 정말 고맙다. 내가 뭐 도울 일이 없겠는가?”
그렇다! 이들은 운수노동자들이 결단을 내리고 물류를 멈추면 그 파급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일과 후, 방과 후에 밝혀진 수만 개의 촛불이 이명박 지지율을 낮추기는 했지만, 오만한 정권에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힘은 바로 조직된 노동자들의 투쟁에 있음을 말이다.
이 사회의 모든 것을 생산하고 움직이는 노동자, 특히 투쟁의 무기와 경험을 갖고 있는 조직노동자들이 운송거부, 즉 파업투쟁이라는 ‘노동자계급다운’ 행동을 결의하고 나서자, 압도적 다수가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인 시민들의 지지가 조직되기 시작한 것이다. 운수노조가 ‘노동자적인’ 방식이 아니라 ‘촛불시위 전면결합’을 선언했다면, 과연 시민들에게서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었을까?
노동자계급의 이름과 요구를 내걸고!
‘광우병 쇠고기 반대’가 이명박의 지지율 거품을 걷어내는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쟁점은 노동자계급의 이해와 직결되어 있지는 않다. 쇠고기 겉포장을 한꺼풀 벗겨야만 드러나기 시작한다.
쇠고기 수입문제만 쟁점이 되자 마치 이것이 한미FTA라는 국익을 위한 양보조치인 것처럼 둔갑했다. 그러나 한미FTA 자체가 한국과 미국 노동자들을 경쟁시켜 밑바닥으로 추락시키는 사유화·구조조정·비정규직화를 몰고올 괴물이다. 쇠고기 문제로 인한 이명박의 추락으로 반사이익만 챙기고 나면, 언제든지 한미FTA에 도장을 찍고 노동자민중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데에는 이명박과 협력하겠다는 것이 통합민주당·친박연대·자유선진당의 입장 아닌가!
쇠고기 문제로 들끓고 있는 분노에는 ‘이대로는 도저히 못살겠다’는, 절망적인 노동자대중 삶의 현실이 있다. 치솟는 기름값과 운송비를 대느라 하루에도 두세 번씩 경부고속도로를 왕복하며 졸린 눈으로 도로의 무법자가 되어 과속딱지를 떼야 하는 화물노동자의 고통! 쇠고기 살 돈은커녕 분유값과 생활비가 부족해 365일 잔업특근으로 뺑이 쳐도 오르는 물가를 못 따라잡는 월급봉투! 청춘을 바쳐 뼈 빠지게 일했는데 이제 필요 없으니 나가라는 구조조정과 사유화(민영화)!
‘노동자계급다운’ 방식은 노동자계급 스스로의 이름과 요구를 내걸고 실행할 때에 찬란한 빛을 내는 법이다. 물가(유가)인상률을 넘는 임금인상과 생활임금 쟁취! 구조조정·사유화 저지와 생존권 사수!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밑바닥 노동자대중의 요구로 맞붙는 것만이 이명박을 비롯한 자본가 지배체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길이며, 이명박 지지의 거품을 빼는 투쟁이 아니라 그 토대를 직접 공격하는 투쟁이다.
관료적 지도부의 통제를 넘어
여전히 민주노총 지도부는 촛불시위에 동참하라는 지침을 내보내고 있다. 지난해 한미FTA 저지파업까지 벌였던 금속노조는 사내식당에 수입쇠고기 안 쓰기, 인터넷 탄핵서명, 조합원 교육, 릴레이 성명 등의 ‘긴급투쟁지침’을 결정했다. 당장 현장투쟁과 조직화의 가능성이 희박한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호소하는 지침이라면 모를까, 조직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파괴력을 사용하려는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렇듯 관료적 지도부가 현장투쟁의 분출을 막고 통제하는 현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중앙교섭만 성사되면 파업을 자제할 수도 있다는 금속노조 지도부는, 이미 요구안 자체에서 핵심쟁점이 될만한 사안들을 빼버린 상태이다. 그나마 자동차산업 전체 노동자를 하나로 묶어 싸울 수 있는 ‘주간연속 2교대 쟁취를 위한 정규직·사내하청·부품사 공동투쟁 요구’ 또한 관료적으로 누르려 하고 있다.
7개 연맹을 묶어 민주노총 차원의 ‘공공부문 시장화저지 공투본’이 구성되어 6말7초 총력투쟁을 전개한다는 계획 또한 알맹이가 없다. 민주노총 전체의 투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미명 아래, 선봉에 서서 전선을 돌파할 주력부대인 공공운수연맹과 산하노조들의 투쟁결의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알맹이 없이 공중에 붕 뜬, ‘회의문서 상으로만 존재하는 총력투쟁’이 6말7초 투쟁의 실체이다.
물가인상으로 최소한의 삶의 조건조차 위협받는 밑바닥 노동자들의 절실한 요구인 최저임금 투쟁, 7월1일이면 확대적용되는 비정규악법으로 외주화·계약해지 위협 앞에 선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 공공부문 사유화·구조조정에 앞서 벌써부터 잘려나가는 노동자들의 투쟁, 수백일 수천일 처절하게 싸우는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은 여전히 방치되어 있는 상황이다. 민주노총의 6월 비정규노동자대회는 이들 밑바닥 노동자투쟁을 주체로 묶어세워 함께 만들어가는 투쟁이 아니라, 알맹이없는 6말7초 투쟁 중 하루를 장식해주는 관료적 지도부의 ‘일정 짜맞추기’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노동자투쟁의 역사는 관료적 지도부의 통제를 넘어서 발전해왔다. 2001년 효성 파업을 필두로 한 울산 화섬3사 공동총파업, 2002년 발전노조 총파업투쟁, 2003~2007년 비정규노동자투쟁의 분출 등 정세의 핵심을 관통하는 노동자투쟁들은, 관료적 지도부가 아무리 억누르려 해도 아래로부터 분출하는 에너지를 막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그러한 투쟁이 터져 나왔을 때 노동자계급 전체의 이익을 단호히 움켜쥐고 투쟁을 끝까지 밀어붙일 투사들의 결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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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의 씨앗은 곳곳에서 싹트고 있다
노동자 죽이기에 혈안인 이명박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고 있지만, 여전히 현장은 칼바람이 불고 있다. 관료적 지도부가 “먼저 나섰다간 작살난다”며 납작 엎드려버린 탓도 있지만, 수년간 밀리고 깨져온 투쟁 속에서 패배주의가 현장을 휘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 어느 것도 고정불변이 아니며 변화하기 마련이듯, 작지만 중요한 투쟁의 불씨들이 조금씩 점화되고 있다.
우선 <가자! 노동해방>에서 수차례 다뤄온 자동차산업의 “계급적 주간연속 2교대제 쟁취투쟁”과 공공부문의 “사유화·구조조정 저지투쟁”이 조직되고 있다. 이 두가지 투쟁은, 현재 이명박 정부와 자본가에 맞서 싸우는 조직노동자의 주력대오를 대표하고 있다.
또한 어느새 휘발유값을 넘볼 정도로 훌쩍 뛰어버린 경유가 상승으로 인해, 화물운송과 건설운송(레미콘·덤프트럭)노동자들의 생활은 바닥이 어디인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하고 있다. 5월10일 부산역에 6천여 화물노동자들이 대규모 집회를 갖고 서서히 투쟁을 향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건설노동자들 또한 6월에 대규모 상경집회를 예고해놓고 있다.
물론 모순의 한복판에 존재하는 중심, 즉 폭발의 뇌관이 어디인가를 미리 단정하기는 어렵다. 조직노동자들의 주력인 자동차산업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철벽같은 관료주의를 뚫고 전선을 돌파할 수도 있고, 유가인상·물가인상으로 ‘못살겠다 갈아엎자’며 일어설 화물과 건설노동자들이 주역이 될 수도 있으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문에서 미조직노동자들이 투쟁을 밀어올리는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
지난해의 경우 비정규악법의 시행일을 전후로 터져 나온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의 매장 점거파업이 뇌관의 역할을 해준 바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랜드·뉴코아 투쟁은 그들 혼자만의 노력이 아니라, 6월말에 전개된 금속노동자들의 한미FTA 반대파업, 6월18일에 있었던 1만 특수고용 노동자 상경과 마포대교 점거투쟁 등 여러 부문의 노동자투쟁과 함께 상승하면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5월10일 부산역에서 ‘경유가 인하! 운송료 인상!’을 내걸고 화물노동자 6천여 명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현장에서, 수백 명의 미조직노동자들이 노조가입원서를 작성한 사건은 중요한 신호이다. 조직노동자들이 노동자계급 전체의 요구를 걸고 힘찬 팔뚝을 치켜 올릴 때 미조직노동자들이 화답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의 예상보다 정세가 더욱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변화가 감지되기는커녕 비관적인 목소리가 팽배했던 점을 기억하자. 비정규·투쟁사업장 공동투쟁단의 투쟁만이 미미하게나마 홀로 전선을 지키고 있던 상황에 비춰보면 분명히 정세는 호전되고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주간연속 2교대 쟁취와 공공부문 사유화 저지를 위한 투쟁, 유가인상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화물·건설노동자의 투쟁에 주력하면서 정세의 진전을 면밀히 살피고, (누가 주역이 될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돌파구를 열어낼 투쟁에 대비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결합하여 발전하는 법이다. 주간연속 2교대, 공공부문 사유화, 화물·건설노동자투쟁이 겉보기에 자신의 현장과 별 관련이 없어보일지도 모르지만, 이 투쟁들의 조그마한 전진도 역동적인 상황전개로 전국적인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이명박의 추락이 예상보다 빨리 왔듯이 노동자투쟁의 진출 또한 혁명적 투사들의 준비상태보다 빠를 수 있다. 준비하지 않는 자에게 역사는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다!
오민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