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투쟁사업장 공동투쟁의 닻이 올랐다!
3월25일 오후2시, 용산 철도웨딩홀에 400여명의 비정규노조와 투쟁사업장 조합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10개월째 파업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이랜드·뉴코아노조, 무자비한 폭력침탈을 받았지만 당당히 천막을 재건한 코스콤비정규지부, 4년째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기륭전자분회, 여전히 고공농성을 전개 중인 GM대우비정규지회, 마찬가지로 천막침탈에 굴하지 않고 싸우는 학습지노조 재능지부, 이름만 들어도 숙연해지는 코오롱, 한국합섬, 테트라펙 등 장기투쟁사업장들 …….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공동총회
소속과 연맹이 다르고 다양한 색의 투쟁조끼를 입은 이들이 모인 이유는, 이명박 정권의 노동탄압 분쇄와 투쟁사업장 승리를 위한 공동투쟁을 결의하는 공동총회를 위해서였다.
“수년간 투쟁하면서 몇차례 공동투쟁을 해봤지만, 공동총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자리에 와보니 많은 사업장이 장기투쟁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오히려 처음보다 더 힘찬 의지와 기세가 느껴진다.”(기륭전자 조합원)
그랬다. 이날 총회에서는 공동투쟁의 내용을 논의하면서 많은 평조합원들이 직접 자신의 의사를 개진하며, “공동투쟁은 아래로부터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하나를 하더라도 정성을 다하면 그것이 바로 결사투쟁이다” “천 마디 말보다 한번의 실천이 중요하다. 말보다 실천으로 움직이는 공동투쟁을 만들어보자” “많은 투쟁을 배치하기보다 하나라도 제대로 된 싸움을 전개하자”
민주노총도, 각급 산별연맹도, 모두 관심을 놓아버린 장기투쟁사업장 문제에 대해, 이제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스스로 공동투쟁의 문제를 제기하고 싸움을 결의한 것이다.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은 이날 총회에서 공동투쟁 주체의 이름을 ‘비정규·투쟁사업장 공동투쟁단’이라 명명하고, 이명박의 노동탄압 분쇄와 투쟁사업장 승리를 위한 공동투쟁을 전개할 것을 결의했다.
또한 이날 공동총회에는 공동투쟁을 지지하는 수많은 노동·사회단체 회원들도 참여해, 평조합원들의 열띤 토론이 진행되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고 이 싸움에 함께 할 것을 결의했다. 다가올 4.9 총선 관련 바쁜 일정이 있다며 잠시 앉았다 나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인사들은 예외였지만.
이명박의 노동탄압에 맞선 투쟁이 공동투쟁의 기운을 높여주다
취임한지 보름만인 3월11일 새벽, 이명박은 6개 중대병력과 수백 명의 용역깡패를 투입, 182일째 파업농성을 전개하던 코스콤 농성장을 피로 물들이며 짓밟았다. 3월19일에는 임금삭감에 항의하며 90일차 농성을 전개하던 학습지노조 재능지부 천막이 구사대에 의해 철거되었다.
만약 농성장 파괴를 당한 사업장만의 개별 대응이 이어졌다면 ‘공동투쟁’의 필요성은 투쟁하는 대중들의 가슴 속에 새겨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코스콤과 재능의 농성장 침탈에 대해, 수도권 투쟁사업장들은 모두가 “저들에 대한 공격은 바로 우리에 대한 공격”이라는 연대의식을 갖고, 3월18일과 21일 각각 코스콤과 재능 앞에서 경찰과 맞서 당당하게 농성장 재설치투쟁을 전개했다.
“정말로 통쾌합니다. 동지들의 집요한 투쟁이 많은 힘이 됩니다. 끝까지 연대하겠습니다.” 지부의 농성장 설치 소식을 들은 한 이랜드 여성노동자는 이렇게 메시지를 전해왔다. 천막재건은 단순히 우리의 힘만으로 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 바탕에는 지난 18일 비정규투쟁사업장의 엄호아래 함께 천막을 치려던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코스콤비정규지부 ‘희망통신’)
“우리들은 3월11일 코스콤 침탈, 19일 재능 침탈 되었을 때 막연한 분노만 하고 있지 않았다. 몸으로 막아내면서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연대나 품앗이가 아니라 공동투쟁이라고 생각했다. 내 사업장보다 더 힘내서 싸우고자 했던 동지들의 자세가 있었다!”(공동총회에서 이랜드일반노조 조합원)
따라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공동투쟁’ 기운을 높여준 것은 바로 이러한 이명박의 폭력탄압이었다. 탄압에 맞서 투쟁사업장 모두가 “코스콤·재능에 대한 탄압은 우리 모두에 대한 탄압”이라는 인식을 가슴에 새기며, 무너진 농성장을 경찰병력을 뚫고 다시 세웠을 때 ‘공동투쟁’은 대중적 요구가 되어있었다.
공동투쟁이 넘어야 할 한계
물론 현재 결의된 공동투쟁은 적지 않은 한계를 갖고 있다. 우선 공동투쟁의 목표가 ‘이명박의 노동탄압에 대한 공동분쇄’ 수준으로 명시되고 있다. ‘비정규직 철폐’를 내걸고 사업장투쟁을 넘어 대정부투쟁으로, 수세에서 공세로 당당하게 나아가는 데까지는 아직 못 미치고 있다.
또한 공동투쟁으로 결집한 이유 역시 “혼자 싸워서는 아무것도 돌파하지 못 한다”는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여전히 ‘품앗이투쟁·연대투쟁’과 ‘공동투쟁’의 의미를 혼동하는 경향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승리하느냐 패배하느냐를 떠나, 내 사업장이냐 네 사업장이냐를 떠나, 비정규직 철폐라고 하는 1천5백만 노동자 전체의 요구를 걸고 과감한 공동투쟁을 전개하는 것만이 유일한 돌파구다”라는 인식이 대중적으로 공유되어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이 ‘한계’이지 ‘오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공동투쟁의 필요성을 느끼기까지 코스콤·재능 농성장 침탈과 재건 투쟁의 경험이 필요했던 것처럼,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현재 제기된 공동투쟁의 첫 단계 경험과 평가를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 앞에서 왜 우리는 주춤했던가”, “사업장 도는 것이 무슨 공동투쟁, 대정부투쟁인가”, “밋밋하게 집회나 기자회견만 할 것인가. 뭔가 승부를 보는 싸움이 필요하다.” 제기되는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투쟁의 경험과 공동의 평가 속에서 제출될 수 있을 것이며, ‘공동투쟁’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해답도 그 안에 들어있다. 1차적으로 3월31일 사무금융노동자 투쟁문화제 때까지 코스콤비정규투쟁을 중심으로 전선을 설치하는 공동투쟁을 전개한 것을 바탕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공동총회의 정신으로 공동투쟁을 전진시키자!
공동투쟁을 결의하기 위해 왜 공동총회를 열었는가 하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투쟁의 주체가 지도부나 몇몇 간부들이 아닌 조합원 전체라는 사실을 분명히 선언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지도부들 간의 논의보다 공동총회에서 쏟아져 나온 평조합원들의 얘기들 속에서 공동투쟁의 요구와 의미가 제대로 짚어질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도부와 간부들만이 아닌, 평조합원이 이 싸움을 주체가 되어 밀어붙일 수 있도록 체계를 짜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이다. 민주노조운동은 싸우고자 하는 평조합원, 열성조합원들을 ‘선봉대’나 ‘사수대’라는 형식으로 묶어세워온 전통을 갖고 있다.
‘선봉대’나 '사수대‘는 경찰병력을 상대하는 전투전문조직이나 별동대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끝까지 이 싸움을 밀고 가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가진 현장노동자들이, 스스로의 투쟁을 논의하고 밀어가기 위해 고안된 형태이다. 100명이 나가 싸우기 위해서도 10명의 선봉부대가 필요한 법이 아니던가! 공동총회에서 쏟아져나온 대중들의 열망을 ’선봉대‘나 ’사수대‘ - 이름이 무엇이 되든 관계없다 - 로 구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전국의 선진노동자들은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에 가능한 최대의 연대를 조직하자! 이명박의 끝 간 데 없는 탄압에도 두 눈 부릅뜨고 가장 선두에서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전선을 돌파하겠다고 나서고 있지 않는가! 공동투쟁이 얼마나 전진할 수 있는지, 이 싸움에 얼마나 많은 연대와 지원이 붙을 것인지, 그것이 08년 노동자투쟁의 가능성을 규정할 것이다.
오민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