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확대- 뉴딜정책'은 노동자의 경제위기 대안일 수 없다!
세상을 휘감고 있는 공황의 압박 속에서 노동자의 의식은 점차 급진적으로 바뀌고 있다. 그 한 단면을 지난 호 기사 <금속노조 23차 임시대의원대회 참관기>가 잘 보여주었다. 이런 시기에는 투쟁 지도부가 대중에게 어떤 정치적 전망을 보여주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대중 스스로 ‘이 체제에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기 시작했을 때, 자본주의의 파멸적 한계와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점에서 현재 노동조합 공식 지도부들의 상황 판단과 전망은 상당한 위험을 안고 있다. 우선 민주노총에서 세 달 전 발표한 <이명박 정부의 경제위기대책 비판과 노동자의 요구>를 보면, “위기에 맞선 경제위기 대안의 기본방향은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출로 국민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고용기회를 제공하고, 고용기회가 제한된 국민에게는 사회보장제도를 통하여 생계를 보장하는 것”, “이것이 바로 미국이 대공황 시기를 맞이하여 뉴딜정책으로 구체화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뉴딜에 대한 환상
“대공황시기 루즈벨트 정부가 취한 공황 대책으로 미국은 이를 통해 공황을 극복”했다는 것이다(같은 자료). 2009년 민주노총의 정세분석과 계획을 담은 <반이명박 투쟁, 노동자 민중 승리의 2009년!>에서도 “‘고용창출-내수확대’의 선순환 경제구조 수립”을 11대 요구 중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이 주장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즉 공황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데 반대하고, 임금을 비롯한 노동조건 개선을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거기에서 반드시 밝혀져야 할 자본주의의 근본 한계와 야만성이 감춰지고 있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우선, 미국이 뉴딜정책을 통해 ‘공황을 극복’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뉴딜정책을 시행한 1933년 이래 경기회복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1935년 이후 약간의 회복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였으나, 1937년에 다시 산업이 붕괴했다. 1938년에 실업자 수는 1,800만 명으로까지 늘어났다.
야만
실제로 자본주의가 대공황으로부터 탈출한 수단은 뉴딜이 표방한 ‘합리적 재정정책과 복지제도, 규제’가 아니었다. 전 세계를 통틀어 5,000만 명을 죽게 한 참혹한 2차 세계대전이 바로 자본주의의 회생 수단이었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과 함께 미국의 군비지출이 비약적으로 급증했다. 1940년에 150억 달러였던 미 연방정부 지출이 1943년까지 3년 간 무려 885%나 늘어났다.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공장과 연관 산업체들이 정신없이 돌아갔다. 피를 마시며 살을 찌우는 전쟁사업 덕분에 자본가들은 이윤을 다시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었다. 이것이 전후 호황의 토대가 되었다.
또한 미국에서 실업문제가 ‘해결’된 것 역시 뉴딜정책이 아니라 전쟁 때문이었다. “실직자의 수가 1940년에서 1943년까지 705만 명이 줄었을 때, 군복무자의 수는 반대로 859만 명까지 증가했다. 이후 1945년까지 군복무자의 수는 1,212만 명에 이르렀고, 이들은 대부분이 징병된 자들이었다.(진 스마일리, ≪세계대공황≫)” 그들 중 상당수가 전투 중 사망했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가장 비참하고 끔찍한 결과를 노동자들에게 안겨주면서 공황에서 벗어난다. 결국에는 우리를 전쟁터로 몰아갈 뿐이다. 자본가정부의 ‘합리적인 정책과 제도’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유포하는 것은, 그래서 더욱 위험하다. 공황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있다면, 오직 노동자의 주검 위에서만 생존을 영위하는 자본가체제를 끝장내지 않고서는 노동자에게 그 어떤 미래도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뉴딜이 아니라 사회주의
우리는 분명 실질임금 삭감반대와 생활임금 쟁취, 모든 해고 금지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현재 이 요구를 받아들일 능력도 의지도 없다. 이 요구의 완전한 쟁취는 내수를 확대해 비틀거리는 자본주의를 원상회복시키자는 전망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목을 움켜쥐고 노동자가 산업을 통제하는 투쟁 전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모든 투쟁은 표적이 명확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들이 자신감과 확신을 갖고 싸울 수 있다. 우리의 표적에는 ‘자본주의를 죽여야 노동자가 살 수 있다!’고 적어야 한다.
오연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