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법 개악 기도에 맞설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로!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지난 7일 노동부에 ‘비정규법 관련 업계 의견 건의문’을 전달한 바 있는데, 그 내용의 참으로 가관이다.
△비정규직 사용기간 2년에서 4년으로 확대, △사용기간 제한 예외대상에 50세 이상 준고령자 포함, △차별금지 조항의 100인 미만 사업장 확대적용 2012년까지 유예, △파견업종을 네거티브리스트 방식으로 전환, △제조업 직접생산공정 업무에도 파견 허용
일간지들조차 “전국이 비정규직으로 넘쳐난다”고 떠들고 있지만, 자본가들의 끝없는 탐욕은 그칠줄 모른다. 여기에 우스꽝스러운 명분까지 덧붙여진다. “2년 만에 짤리는 비정규직보다 4년 정도는 일할 수 있도록 하는게 좋지 않겠냐?” 2년을 4년으로? 아니 왜 5년이나 10년이 아니고 고작 4년인가? 아예 한 1백년쯤으로 늘리지?
비정규법을 둘러싼 논점들
올해 7월1일이 비정규법 시행 1년차이고 이날부터 차별시정제도가 100~30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된다. 그러다보니 비정규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게 되고, Daum 아고라에서는 촛불시위 이래 처음으로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1년, 노동자들에게 더 불리해진다”는 토론주제가 1주일 이상 베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두해살이 풀, 비정규직”이라는 말처럼 비정규법(파견법·기간제법)은 2년 한도 내에서 비정규직을 마음대로 늘리고 짜를 수 있는 법이다. 1998년 7월1일부터 시행되어 올해로 10년차를 맞는 파견법으로 인해, 2년에 한번씩 파견노동자들은 ‘대학살’을 당하게 된다. 98년 시행과 동시에 파견업을 시작한 곳이 많아서인지, 특히 짝수해에 많은 파견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내몰리는 일이 많다. 바로 올해가 짝수년도이니, 곳곳에서 곡소리가 터져나올 것이다.
기간제법 역시 파견법과 똑같이 ‘2년 주기 해고’를 낳을 수밖에 없는데, 일각에서는 기간제법 시행 2년차인 2009년 7월1일이면 대란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그러나 자본가들과 정부는 여기에도 시근장치를 해두었다. 2년 기간의 출발지점을 7월1일로 한 것이 아니라 7월1일 이후 재계약하는 시점으로, 즉 2년 만에 해고되는 날짜를 365일로 분산시켜 놓은 것이다! 7월1일부터 적용하게 되면 2009년 7월1일 ‘민란’ 수준의 노동자투쟁이 터져나올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핵심은 미조직 노동자들 스스로의 조직화운동!
그러나 비정규법을 중심으로 잡히는 논점 밑으로 존재하는 주요한 핵심이 있다. 사실상 비정규직이나 다름없는 무기계약 전환으로 비정규직의 전체 규모는 약간 줄었으나 호출근로·시간제 등 더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늘었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관계없이 노동조건은 끝없이 하락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이 속에서 아주 미미하게나마 미조직 노동자들의 조직화가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 업무의 거점을 해외로 돌릴 수 없는 영역들, 특히 공공서비스와 사무금융서비스 등 서비스업종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직화되고 있는데, 이들은 지난 1년 사이 민주노총에만 약 1만명 가까이 신규로 노조에 가입했다(최근 투쟁으로 조직이 늘어난 화물·덤프 제외한 규모임). 그만큼 밀리고 억압당하는 현실에서 노동조합을 마지막 선택지로 찾고 있다는 얘기이다.
새롭게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의 주요한 불만은 비정규법에 있다기보다, 하루하루 자신의 삶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에 대한 공포에 있다. 실제로 비정규법에 의해 짤려나가는 숫자보다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는 관리자 말 한마디에 짤리는 노동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이러한 불만과 공포가, 최근 언론지상에 ‘비정규법에 대한 논점’ 형식으로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비정규법은 매개물일 뿐 법을 둘러싼 투쟁은 핵심이 아니다. 아무리 법이 노동자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지더라도, 자본가들이 스스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리는 없다! 그 법에 따라 현장에서 “나는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없는 산업의 업무에서 일하고 있으니 사장님이 법을 어겼소. 그러니 당장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시오”라며 해고를 각오하고 자본가들에게 요구하고, 그 요구를 중심으로 주변의 동료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노동조합 또는 자주적인 노동자 투쟁조직을 결성하여 싸우지 않는다면, 그 산업에 종사하는 단 한명의 노동자도 법안의 도입만으로 정규직화 되지는 않을 것임이 확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조직되어 있는 비정규직노조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대기업 사내하청노조, 특수고용직 노조, 공공·사무서비스 비정규노조들의 경우, 자신의 요구를 조금만 다듬으면 압도적 다수의 미조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포괄해낼 수 있다. 이들 비정규노조들이 밑바닥에 가장 가까이 있는 조직들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요구를 내걸고 용감하고 완강하게 투쟁을 전개한다면, 벼랑끝 삶을 사는 밑바닥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대안으로 삼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 철폐’는 국회 안에서 법을 고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 900만에 육박하는 미조직 비정규노동자들의 대대적인 조직화와 투쟁의 결과로, 전리품처럼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민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