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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의 방향타 : 교양도서 1권_법과 국가는 누구 편인가
 사노련  | 2009·11·11 22:04 | HIT : 3,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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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노련에서 발행한 <일하며 배우는 노동자 교양도서> 1권 '역사의 주인, 노동자'에 실린 글입니다.)

    법과 국가는 누구 편인가?

    오민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투쟁에 나선다. 사장은 노조를 인정하지 않아 교섭에도 응하지 않고 조합원 탈퇴공작 등 온갖 부당노동행위를 일삼는다. 참다못한 노조가 사장실 앞 집회를 열자 고소고발을 하고, 결국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자 사장은 관리자와 용역깡패를 동원해 충돌을 야기해 이를 빌미로 업무방해 고소고발과 가처분신청, 손배가압류를 진행한다.

    천막농성장을 오밤중에 침탈해놓고도 사측은 오리발을 내밀고, 112 신고를 해도 경찰들은 출동하지 않는다. 다음날 침탈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면 경찰은 사장의 ‘시설보호요청’에 따라 중무장한 전투경찰들을 집회장에 배치해, 노동자들이 사장을 향해 항의하는 행동 일체를 불법이라며 협박한다.

    경찰과 검찰은 노동자들이 사장을 고소고발한 사건에 대해 대다수 무혐의처분을 내리고, 사장이 노조와 조합원을 상대로 고소고발한 사건에 대해 무더기로 벌금형과 징역형을 부과하려 한다. 법원은 사장이 신청한 가처분신청과 가압류신청을 받아들이고, 사장에게는 무죄나 솜방망이 처벌을, 노동자들에게는 가혹한 처벌을 선고한다.

    아마도 위와 같은 상황전개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싸워본 경험이 있는 노동자라면 한번쯤 겪었거나 지켜보았을 보편적인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겪어보았다면 당연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법·질서 지키라고 하는데, 과연 법·질서는 평등하게 적용되는 것인가? 법·질서를 관리하는 국가는 공평한가?”

    1.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한가?

    구체적인 사례를 갖고 얘기를 시작해 보자.

    [사례 ①] 1000:10의 사회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수많은 투쟁 과정에서 구속된 노동자 수는 1,037명(2007년 12월 3일 현재)에 이르는데, 자본가들은 ‘불법파견’ ‘부당노동행위’ ‘부당해고’ 등의 불법행위로 구속된 수가 얼마나 될까? 놀라지 마시라. 노무현 정권 5년간 구속된 자본가는 채 10명을 넘지 않는다.

    그 중 언론에 소개된 한 가지 사례를 들여다보자. 2007년 5월, 대구 달성공단 내 ECS코리아에서 관리자로 일하던 박모 씨가 회사의 지시로 노조와해 공작의 임무를 받고 조합원 탈퇴공작을 벌이던 중, 동료 노조원들과의 마찰과 사측의 외면으로 심한 스트레스 끝에 인화물질인 아세톤을 뒤집어쓰고 분신해, 끝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람이 죽고 나서야, 그것도 관리자가 회사의 불법행위 사주로 양심을 속일 수 없다는 고백을 자결로 표현한 후에야, 노동부와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어 2007년 6월에 사업주가 구속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만일 박 씨가 자결이라는 극단적 형태로 사업주의 부당노동행위를 고발하지 않았다면, 노조탈퇴와 와해공작은 지속되고 사업주도 처벌되지 않았을 것이다.

    채 10건이 되지 않는 자본가들의 구속 사례 모두 이 정도로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사고가 발생해야만 비로소 수사가 시작된 사건들이었다. 반대로 노동자들의 집회가 있는 현장에는 어김없이 경찰들이 출동하여 “불법 엄단” 운운하며 사진을 찍어대고, 사장들이 고소·고발한 사건에 대해서는 충실하게 소환장과 체포영장을 발부하며 노동자들을 5년간 1천명 넘게 감옥으로 보냈다.

    [사례 ②] 재벌 범죄의 방패막이, 사법부와 검찰

    2007년 9월 6일, 사법부는 무려 1,034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계열사에 2,100억 원대의 손실을 끼치는 등 ‘배임’ ‘횡령’ 혐의로 이미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언도받고도 불구속 상태에서 항소심을 받고 있던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에 대해 실형 대신 집행유예를 선고하여 면죄부를 발행해 주었다.

    당시 재판부는 법정에서 “저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실형 선고로) 우리나라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는 도박을 하기 꺼려졌다” “화이트칼라 범죄에 관대하고 재벌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것에 대해 많은 비판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재판부로서) 달게 받겠다”라고까지 말했다.

    만약 정몽구가 아니라 노동자가 회사에서 1천억 원을 빼돌리고 2천억 원의 손실을 끼쳤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 2007년 9월 6일 항소심에 출두하는 정몽구 회장(왼쪽). 그날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지 채 한달도 되지 않은 10월 초, 노무현 대통령은 정몽구 회장과 함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는 방북 길에 올라 개성공단 사업설명회에 참석했다(오른쪽).

    2007년 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단숨에 전국적인 이슈가 되었던 삼성 비자금 사건. 그러나 그해 12월 20일 조준웅 특별검사가 임명되어 4개월간 수사를 별인 결과, 2008년 4월 17일 특검팀은 무려 1,128억 원의 세금을 포탈하고, 1,199개 차명계좌에 2조 2,254억 원의 차명주식과 자금을 운용하고, 회사에 수천억대의 막대한 손해를 끼친 삼성 이건희 회장 등에 대해 모두 불구속 기소 결정을 내렸다.

    특검팀은 이 회장 등의 혐의가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피의자들이 혐의를 시인하는 점 등을 불구속 사유로 밝혔다. 만약에 이건희가 아니라 노동자가 1천억 대, 아니 단 1억 원의 세금포탈이라도 저질렀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 2007년 12월 28일, 대통령에 당선된 지 10일 만에 이명박 당선인은 재벌들과 회동하여 규제완화를 비롯한 선물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이날은 삼성비자금 사건으로 특별검사가 임명된 지 8일만이었다(왼쪽). 2008년 4월 11일 조준웅 특검팀의 소환에 이건희 회장이 출두하는 모습(오른쪽). 6일 뒤인 4월 17일, 특검팀은 대다수 의혹에 대해 면죄부를 준 채 이건희 회장을 ‘불구속’ 기소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위의 사례들을 보았을 때, 과연 법 앞에 모든 국민은 평등한가 하는 것은 답이 너무 뻔한 질문이 되어버린다.

    왜냐하면, 노동조합 만들고 사장에 맞서 싸워본 적이 한번이라도 있다면,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법은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에게는 너무나 관대하고,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조금도 자비롭지 않다.

    2. 법과 국가는 누구의 편인가?

    여러분의 이번 파업은 법률상 위법이다. 그러나 사람을 위해 법이 있는 것이지 법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권력 있고 돈 많은 몇 사람만을 위한 법은 법이 아니다. 저 산동네 철거민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법에 위반됐다고 집을 뜯는다. 노점상들을 도로교통법에 걸어 목판을 차버린다. 이렇게 밥을 못 먹게 하는 법은 법이 아니다.

    노동3권, 노동3권 하면서도 ‘여러분에게 방위산업체니까 일방적으로 불법이다’라고 하는 경향이 있다. 노동3권이 우리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이상 여러분의 파업은 일어나야 한다. 헌법에만 명시해놓고 하지 못하게 하는 법은 있으나 마나다. 방위산업체의 사업주가 폐업을 해도 잡아넣어야지 왜 그런 것은 놔두는가. 법은 정당할 땐 지키고 정당하지 않을 때에는 지키지 않아야 한다. 악법은 국민 스스로의 손으로 철폐시켜야 한다.

    여러분이 이 싸움에서 돈 한 푼 못 받더라도 인간답게 살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다면, 여러분 모두가 배신자가 되지 않겠다는 확고한 결의만 있다면, 10명을 잡아넣으면 1백 명을 잡아가라 하고 1백 명을 잡아가면 1천명이 가고 그렇게 하면 대한민국 노동자가 모두 달라질 것이다.1)

    위 얘기는 누가, 언제, 어디서 한 것일까? 놀라지 마시라. 얼마 전까지 청와대에 앉아 노동자들 때려잡는데 앞장섰던 노무현 씨가, 초선 국회의원 시절이던 1988년 현대중공업 파업 현장에서 파업 노동자들 앞에서 했던 연설이다.

    비록 팔팔하던 국회의원 초짜 시절에 한 연설이긴 하지만, 그도 한때는 자본가의 불법은 가만히 두면서 노동자에게만 법 지키라고 하는 것은 옳지 못하며, 게다가 그 법이 악법일 경우에는 지키지 않아도 되며 악법 철폐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20여년이 지난 지금에는 그런 악법들이 사라졌는가? 법 적용의 불평등은 과거보다 나아졌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여전히 법의 적용은 언제나 자본가들의 편이다. 현장에서 대표적으로 불법 시비가 붙는 사례를 가지고 살펴보도록 하자.

    자본가들은 여전히 노동조합 활동에 가장 앞장서는 활동가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핑계와 빌미만 생기면 해고하려 한다. 보통 이러한 해고는 ‘부당해고’로서 현행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불법행위’이다. 민주노조가 있는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부당해고를 철회하라는 투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부당해고’ 문제는 노동자들이 자본가의 불법을 고발하며 싸우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 최근에는 제조업 사내하청의 경우 거의 예외없이 파견법 위반으로서 ‘불법파견’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노동조합이 불법파견 진정과 고발에 나서서 노동부가 현장조사를 거쳐 불법파견으로 판정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본가들이 ‘불법파견’을 했으니 합당한 처벌을 하고 불법파견된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투쟁이 수많은 제조업 대공장에서 벌어진 바 있다.

    자, 그럼 자본가들이 벌이는 대표적인 불법행위인 ‘부당해고’와 ‘불법파견’ 문제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우선 자본가들이 해고를 하면 그것이 정당한가 아닌가를 묻지 않고 곧바로 해고의 효력(임금지급 중단, 현장출입 금지 등)이 발생한다. 대법원에서 부당해고라고 판정하기 전까지, 자본가들은 절대로 해고를 철회하지 않는다.

    지방노동위원회→중앙노동위원회→지방법원→고등법원→대법원, 다섯 차례의 절차를 다 거치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4~5년씩이나 된다. (실제로 현대미포조선 김석진 해고자의 경우 대법원 판결까지 무려 8년 3개월이 걸렸다.)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부당해고’ 판결이 나는 4~5년 동안 해고된 노동자는 생계비 한푼 지급받지 못하며 현장 출입도 할 수 없어서, 자본가들은 해고의 칼날을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설령 대법원에서 부당해고라고 판정이 나도 자본가들은 전혀 처벌받지 않으며 해고기간 임금을 지급하고 원직에 복직시키면 된다. 최근에는 형식적으로 복직만 시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해고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그럼 불법파견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국가기관인 노동부가 ‘불법파견’을 판정해도 자본가들은 아무런 방해없이 영업과 사업을 지속할 수 있다. 자본가들은 언제나 “우리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날 때까지는 불법파견을 인정할 수 없다”며 버틴다. 마찬가지로 4~5년 걸려 대법원이 불법파견 확정판결을 해도 영업과 사업이 방해받는 것이 아니며, 벌금 몇 푼 내고 면죄부 받으면 그만이다.

    ‘부당해고’나 ‘불법파견’ 등 노동자들이 제기하는 자본가의 불법에 대해 정부나 법원은 항상 이렇게 얘기한다. “최종적으로 법원에서 유죄 확정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무죄가 추정되므로(헌법 제27조 4항), 그때까지는 자본가들을 처벌하거나 조치를 취할 수 없다” - 이러한 이유로 대법원 판결 때까지 부당해고도, 불법파견도 자본가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확정판결 때까지 무죄가 추정된다’는 원칙은 자본가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뿐,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하면 정부와 자본가들은 예외없이 ‘불법파업’ 시비를 건다. 물론 현행법상 모든 절차를 거쳐 합법적인 파업에 들어가기가 워낙 어렵기도 하지만, 그 절차를 모조리 거쳤다 하더라도 갖은 핑계를 대며 불법이라고 우겨댄다.

    행정부와 검찰이 ‘불법파업’으로 규정하는 순간 그들은 ‘공권력 투입’ ‘지도부 검거’ 등으로 협박해댄다. 협박으로도 통하지 않으면 끝내 파업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하여 파업을 강제로 해산시킨다. 이 나라 권력은 한번 불법이라 판단하면 무조건 노동자들에게 몽둥이를 휘두른다.

    이때 국가권력과 사법부가 취하는 태도는 자본가들의 불법을 대할 때와 180° 달라진다. 최소한 “법 앞의 평등”이란 말을 입에 올리려면,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서도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불법’임을 확정판결할 때까지는 ‘불법 엄단’, ‘공권력 투입’을 말하지 말아야 한다. 실제로 검찰은 불법이라 우기지만 나중에 법원에서 ‘합법파업’으로 인정받은 사례들(만도기계 등)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서는 법원의 판결 없이 무조건 공권력을 투입하여 파업을 파괴하고 노동자들을 검거한다. 불법파견과 부당노동행위, 부당해고에 대해서는 자본가들에게 무한한 자유를 부여하면서 말이다.

    파업에 대해서 이렇게 나올 거라면 애초에 불법파견과 부당해고에 대해서도 공권력을 투입하여 자본가들을 검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에 대해서도 대법원에서 ‘정당한 해고’라는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효력을 정지시켜야 옳은 것 아닌가? 그러나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그러한 일은 단 한번도 벌어진 적이 없다.

    왜 이렇게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 답은 간단하다. 이 나라 권력이 자본가들의 권력이며, 이 나라 법률이 자본가들의 법률이라는 전제를 깐다면, 너무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현상들이 아닌가?

    그렇다. 우리가 한국 사회를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것처럼, 애시당초 자본주의 국가들은 모조리 자본가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가의 모든 것들을 설계해왔다. 자본가들의 지배에 저항하는 노동계급과 하층 민중들의 투쟁을 무력화시키고, 그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법’과 ‘질서’라는 것들을 만들었다. 공정한 법이 미리 존재해서 그 법에 따라 권력을 장악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권력을 잡아서 그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만든 것이 법이라는 얘기이다. ‘법’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따라서 ‘법과 질서’란 지배하는 계급이 분명한 우위를 갖고 타 계급을 지배하기 위해 만든 것이기에, 당연히 지배계급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종종 ‘법치국가’, 즉 권력자가 법에 따라 통치한다는 말에 속아넘어가곤 하는데, 이미 자본가들에게 유리한 형태로 법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그들은 ‘법치’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노동계급이 자본가들의 지배를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대규모 총파업과 투쟁으로 떨쳐일어설 때, 자본가들은 더 이상 스스로 만든 ‘법과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법과 질서’가 존재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역사 속에서도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린 4.19 혁명 직후에 민중들의 정치적 진출이 가속화되자 박정희의 5.16 쿠데타로 군사독재가 자본가권력을 연장시켰고, 마찬가지로 박정희 암살 직후 부마항쟁을 비롯한 노동자·민중의 대대적 투쟁이 벌어지자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세력이 12.12 쿠데타로 자본가권력을 연장시키며 80년 광주항쟁을 무력으로 짓밟고 피의 학살을 단행한 바 있다.

    앞서 인용한 노무현 씨의 “법은 정당할 땐 지키고 정당하지 않을 때에는 지키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가장 잘 실천하는 쪽이 바로 자본가계급이다. 쿠데타가 벌어진 지 10년, 20년이 지난 후에, 그것도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벌어진 후에야 그들은 쿠데타가 불법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자본가들은 쿠데타가 벌어지던 당시에는 자신들의 지배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만들었던 ‘법과 질서’를 파괴하는 데 앞장선 장본인들이었다.

    3. 자본가들의 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양한 투쟁들

    법과 국가가 자본가의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의문점들이 생기게 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해마다 법·제도 개선투쟁을 벌이는가?” “근로기준법 준수하라거나 최저임금법 지키라고 투쟁하는 경우도 많은데, 근로기준법도 자본가의 법이라면 그러한 투쟁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인가?” “무슨무슨 법 개정하라고 투쟁을 벌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 실제 법 개정이 되더라도 결국 자본가의 법이라는 말인가?”

    실제로 민주노조운동은 꾸준히 법·제도 개선투쟁을 벌여왔고, 정치활동금지·제3자개입금지 같은 악법조항을 철폐하거나 무력화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법·제도 개선투쟁이 잘 조직되기만 한다면 실제로 투쟁의 과정에서, 그리고 투쟁의 결과로 더 많은 노동자의 단결과 조직화를 촉진하기도 한다. 중소영세사업장에서는 여전히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이라도 지켜라!”는 요구가 매우 중요한 투쟁의 슬로건이 된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어김없이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넣거나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종종 소송에서 승리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악법으로 꼽히는 파견법에 대해서도, 파견법을 위반한 사업주를 (불법파견으로) 고발하며 정규직화 투쟁을 전개하는 등 심지어 악법을 활용하는 전술을 구사하기도 한다.

    법과 국가가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복무한다는 사실이 곧 법·제도 개선투쟁이 필요없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법이 자본가들의 지배를 정당화시켜주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노동계급과 하층 민중들이 자본가들의 법·제도에 맞서 싸우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보통 자본가들의 법·제도가 노동계급의 단결과 투쟁을 가로막고 권리를 박탈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기에, 이러한 법·제도에 맞서 싸우는 것은 계급투쟁의 장애물을 제거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파업권을 제약하는 노동악법의 철폐와 함께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 교사·공무원의 파업권을 비롯한 ‘완전한 파업의 자유 쟁취’는 자본의 공격에 맞선 생존권 투쟁뿐만 아니라 노동해방을 위한 투쟁에 수반되는 필수 투쟁과제이다.

    자본가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미 권력을 수중에 넣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악법을 도입하거나 기존의 법을 개악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2006년 말에는 비정규직 확산시키는 비정규악법을 통과시켰고, 노동조합의 권리를 대폭 축소시키는 노사관계로드맵을 통과시켰다.

    이제 이명박 정권은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금융-산업 분리 완화, 법인세 인하 등 자본가들의 권리를 확장하고 이윤을 늘리는 법을 만들려 하고, 노사협상 최종 결렬 전에는 파업찬반투표를 하지 못하도록 노동조합의 손발을 꽁꽁 묶는 법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자본주의 탄생 이래(자본가들의 국가와 법이 만들어진 이래) 법·제도 영역에서 자본가와 노동자들은 치열한 계급투쟁을 벌여왔다. 여전히 자본가들이 힘관계에서 우세를 점하며 지배자의 위치에 서있다는 사실은 분명했지만, 노동자들의 투쟁이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법·제도를 개선시켜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되는 수준이 달라졌다. 현재의 법·제도가 어느 정도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현재 노동계급의 힘의 크기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국가권력이 자본가들의 수중에 있는 이상 법·제도의 개선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이다. 노동계급의 힘이 점점 증대하고 투쟁을 강화하여 악법을 철폐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확대하는 법·제도를 만들더라도, 자본가들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를 바꾸지 않는 이상 자본가들의 지배는 지속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자본가들의 지배를 위해 법과 질서가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투쟁이 거대하게 몰아쳐서 법·제도가 더 이상 자본가권력의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 오면, 자본가들은 언제든지 그것을 무시하고 폭력적으로 자신의 지배를 연장하려 하기 때문이다.

    1970년 칠레에서 사회주의자인 아옌데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집권했는데, 여전히 실질적인 권력은 자본가들의 수중에 있었다. 아옌데 정권 하에서 자본가들이 파업과 사보타쥬를 벌이며 아옌데의 항복을 받아내려 할 때, 노동자들은 활발하게 공장점거와 자주관리에 나섰고, 하층 민중들은 생산품의 분배와 유통을 위해 지역별로 협동조합을 건설하며 자본가권력에 정면으로 맞서기 시작했다.

    아래로부터 활발한 투쟁을 벌이던 노동자·민중들과 달리, 아옌데 정부는 자본가권력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기를 회피했고, 자본가들의 든든한 파수꾼이었던 군부와의 타협을 시도했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사주를 받은 군부가 1973년 대통령궁을 습격하며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 아옌데를 살해하고 수많은 노동자·민중을 학살하며 노골적인 자본가독재, 군사독재체제를 수립하기에 이른다.

    법·제도를 점진적으로 변화시켜 자본가들의 지배를 끝장낸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법·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분명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지만, 자본가들의 손에 장악되어 있는 국가권력을 노동계급이 되찾아옴으로써 자본가권력 자체를 끝장내지 않는 한 진정한 노동해방세상으로 나아갈 수 없다.

    4. 언제나 노동계급의 단결을 확대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현장에서 자본가들과의 투쟁을 경험한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그러한 투쟁을 지켜본 노동자들에게도, 이 사회의 법·제도가 자본가들을 위해 기능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 하지만 자본가들을 위한 법·제도일 뿐이니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하면 선뜻 나서거나 맞장구를 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노동자들이 법과 국가가 누구 편에 서 있는지를 몰라서가 아니라, 자본가들의 법·제도를 넘어서는 행동으로 치러야 할 대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행 노동조합법상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서 파업에 돌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선 노동조합을 설립하자마자 주동자부터 해고하고 노조탈퇴공작을 벌이는 자본가들의 탄압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 관문을 넘어 조합원들의 요구를 모아 교섭을 해야 하는데, 노조 만들어졌다고 선선히 교섭에 나오는 자본가들은 거의 없다. 숱한 투쟁과 갖은 압박으로 자본가를 교섭석상으로 끌어냈다 하더라도, 자본가들은 교섭요구를 거의 들어줄 의사가 없기 때문에 지리한 공방이 계속된다.

    교섭으로 도저히 해결될 수 없다는 판단이 들면, 그때부터 교섭결렬 선언을 하고 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신청서’를 접수해야 한다. 그로부터 짧게는 열흘간 길게는 보름 이상 이른바 ‘냉각기간’(사실은 ‘파업불가능기간’)을 거쳐야 하고, 노동위원회에서 ‘조정중지’ 또는 ‘조정종료’ 통보가 나와야만 합법적인 파업이 가능하다. 여기에 ‘파업찬반투표’를 거쳐 재적 조합원(투표 조합원이 아님)의 과반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더 깊이 들어가면 쟁의의 목적·대상·방법 3가지 모두가 정당해야만 ‘합법파업’으로 인정받는다. 이를테면 해고자 복직을 위한 파업이나 법·제도 개선을 위한 파업은, 위의 절차를 모조리 거쳤다 하더라도 불법이 된다. 또한 회사의 시설물을 조금이라도 점거하거나 점유했다 해도 불법이다.

    이토록 파업을 어렵게 만들어놓은 법·제도와 절차는 분명히 자본가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자본가의 법에 규정된 절차를 거치지 말고 파업에 돌입하자는 제안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당장 그러한 제안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노동자의 수가 제한되어 있고, 자본가와 정부로부터 쏟아질 모진 탄압이 더해지면 더욱 줄어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에 규정된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 파업찬반투표장에 구사대를 투입하여 노골적으로 총회를 방해·침탈한다든지, 극심한 어려움을 뚫고 절차를 모두 거쳤는데도 자본가들의 논리를 받아들인 노동위원회나 법원이 이를 ‘불법파업’으로 내몬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노동자들은 그러한 상태에서 파업을 강행하는 것이 불법임을 뻔히 알면서도 결단을 내린다. 첫발을 뗄 때부터 불법을 감수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절차를 이행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 속에서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단결하는 경험을 겪게 되고, 파업권을 사수하기 위한 집단적 의지가 자본가들의 법·제도를 넘어서 행동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교훈 하나를 끌어내야 한다. 자본가들의 법·제도를 둘러싼 투쟁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법·제도를 넘어서 행동하는 것 자체라기보다 노동자들이 집단적인 경험을 통해 스스로 단결을 확대해가는 것이다. 스스로의 단결을 확대해가는 작업이 공고하게 진행된다면,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노동자들은 자본가의 법·제도를 넘어서 행동하기 시작한다.

    불법파견을 고발하는 방식으로 자본가들의 법이자 대표적인 악법으로 꼽히는 파견법 조문을 활용하여 정규직화 투쟁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파견법 자체의 철폐’를 투쟁강령으로 내걸고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불법파견을 문제삼는 것은 ‘파견법 철폐’와 모순되는 것이 아닌가?

    이 문제는 불법파견 문제를 어떠한 정신과 관점에서 제기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를테면 노동부와 법원의 판단에 의지하여 정규직화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파견법의 철폐가 아니라 파견법이 유지되기를 희망할 것이다. 반대로 불법파견 문제를 더 많은 노동자를 깨우치고 단결시키기 위한 투쟁의 수단으로 삼고자 하는 이들은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우리는 불법파견이라는 이유만으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모든 고용은 정규직으로 충원되어야 하기 때문에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싸우는 것이다. 백보 양보해 너희 자본가들 스스로 만들어놓은 ‘파견법’에 의거해 보더라도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우리의 주장이 정당하다고 하지 않는가!”

    전자의 경우에는 “불법파견으로 판정받은 사람들”만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자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는 불법파견 판정을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요구로 연결시키려 할 것이다.

    다른 예를 또 들어보자. 비정규직 확산에 반대하는 투쟁을 통해 ‘몇몇 산업에서 비정규직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도입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그 산업에서는 비정규직 철폐라는 과제가 자동으로 해결되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자본가들이 제 손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리는 만무하지 않는가! 그 법에 따라 현장에서 비정규노동자들이 “나는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없는 산업의 업무에서 일하고 있으니 사장님이 법을 어겼소. 그러니 당장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시오”라며 해고를 각오하고 자본가들에게 요구하고, 그 요구를 중심으로 주변의 동료 비정규노동자들을 조직하여 노동조합 또는 자주적인 노동자 투쟁조직을 결성하여 싸우지 않는다면, 그 산업에 종사하는 단 한 명의 노동자도 법안의 도입만으로 정규직화 되지는 않을 것임이 확실하다.

    예를 들어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면 기업이 도산하고 경제가 절단날 것이라고 자본가들이 호들갑을 떨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 현장에서 남녀평등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기 때문에 조용한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투쟁으로 떨쳐 일어서지 않는 한, 수백 가지 좋은 법안이 만들어져도 절대로 현실은 개선되지 않는다.

    여기서도 법·제도 개선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법·제도 개선투쟁의 과정에서 노동자들 스스로가 조직되고 단결력과 투쟁력을 확대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을 때에만 올바른 의미를 갖게 됨을 알 수 있다.

    노동계급의 힘이 모자라서 악법 철폐나 법·제도 개선에 나서기보다 자본가들이 밀어붙이는 악법을 저지하는 방어투쟁을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우리는 노무현 정권 내내 주40시간 제도개악 저지투쟁, 비정규악법 저지투쟁, 노사관계로드맵 저지투쟁, 한미FTA 저지투쟁 등 악법 도입을 저지하는 투쟁을 주로 벌여왔다.

    물론 위의 과제들 모두 저지하는 데 실패하고 자본가들의 뜻대로 관철되었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실패하는 과정에서 ‘패배주의’가 민주노조운동 지도부를 지배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어용조직인 한국노총과의 뻔뻔한 공조, 악법의 도입과 별 다를 바 없는 각종 타협안(수정안) 제시, 악법 도입을 연장하기 위해 자본가 정당들과 대화 추진 등 민주노조운동 지도부는 투쟁보다 이런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극소수이긴 하지만 악법의 도입을 막아내지 못한 것을 한탄하기보다 오히려 이를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의 계기로 삼고자 했던 이들도 있었다. 비정규악법과 노사관계로드맵, 한미FTA 체결은 결국 밑바닥 노동자들의 삶을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 것이 확실했기에, 이들은 이제 믿을 것은 노동자들 스스로의 단결뿐이라고, 노동조합으로 뭉쳐서 함께 싸우자는 선전·선동을 꾸준히 했다. 그 노력의 결실 가운데 일부가 이랜드·뉴코아·코스콤 비정규투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자본가들이 악법을 밀어붙이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악법을 저지하는 투쟁과정 속에서 노동계급 사이에 ‘패배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함이다. 악법 도입을 막아내지 못한 패배 자체가 패배주의를 낳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악법 도입을 놓고 논란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 지도부 일부가 타협의 손을 내밀도록 유도하고, 단결이 아니라 분열의 정신을 퍼뜨림으로써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 때, 패배주의는 거침없이 노동자들의 정신을 휘감아버린다는 사실을 자본가들은 잘 알고 있다. 오히려 가진 실력을 온전히 쏟아붓고 패배하는 것이 더 큰 단결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노동해방 세상을 열어가기 위한 웅장한 길에서, 우리는 어쩌면 ‘승리’라는 글자보다 ‘패배’라는 글자를 더 많이 구경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패배하지 않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아니다. 패배하지 않기 위해 내가 가진 최선의 것을 쏟아부었다면, 그리고 패배로부터 배울 자세가 되어있다면, 패배는 우리를 병약하게 만드는 요소가 아니라 더욱 단련시키는 요소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패배로부터 배워야 할 중요한 핵심 가운데 하나는, 법·제도 개선 자체를 좇는 것이 아니라 투쟁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더 명확한 의식, 더 큰 단결, 더 강한 투쟁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법·제도 개선만으로 자본가들의 지배를 종식시킬 수 없듯이, 투쟁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더 명확한 의식, 더 큰 단결, 더 강한 투쟁력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자본가의 손에 장악되어 있는 국가권력을 노동계급의 손으로 이전시킬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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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출처 : <오마이뉴스> 2002년 3월 28일자, [현장과 분석] 노무현·이인제 TV토론 공방 2시간, 강성관·최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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