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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의 방향타 : 2호_비정규직 투쟁의 전진을 위하여
 정책위  | 2008·06·08 16:44 | HIT : 6,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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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호20_비정규직투쟁의전진을위하여.hwp (45.0 KB), Down : 312
  • (사노련에서 발행한 <사회주의자> 2호에 실린 글입니다.)

    [투쟁과제]

    비정규직 투쟁의 전진을 위하여



    오민규



    1. "아흔아홉 번 패배할지라도 단 한번 승리를 위하여~♩♬"


    우리가 흔히 집회장에서 부르는 노래의 한 대목이다. 아니, 투쟁 사업장의 집회에 가면 마이크를 잡고 선동하는 연설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무심결에 지나가는 구호나 노래가사 뿐만 아니라, 술자리에서도 힘겨워하는 동료들을 다독이기 위해 우리들 스스로 많이 쓰는 문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운동의 현실은 이 문구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어렵다. 특히 노조결성과 동시에 투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고, 그 투쟁도 대다수가 장기투쟁으로 이어지기 마련인 비정규직투쟁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도대체 그 한번의 승리가 언제 온다는 것인지, 언제까지 우리는 패배를 지속해야 하는지, 이 투쟁의 전망이란 무엇이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떤 싸움을 해야 하는지 ……

    “이 투쟁은 민주노총의 깃발을 내리느냐 이랜드 사측이 항복하느냐의 싸움이다”라는 말까지 쓰면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투쟁 승리를 책임지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이랜드·뉴코아 투쟁도 어느새 파업 1년째를 바라보는 장기투쟁이 되어가고 있다.


    “모든 장기투쟁 사업장들이 빨리 해결이 되어서 현장으로 돌아가야 하는 바람이지만, 너무 투쟁이 길어지다보니 공황상태에 있는 것 같고, 아무 생각도 없다. 빡센 투쟁을 해야 한다지만 안해본 투쟁이 없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자신도 없고, 이걸 하면 자본이 손을 들까라는 의구심만 든다. 앞에 나서서 하는 것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해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도 있다.” (이랜드일반노조 조합원)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한다. 예전 80년대 투쟁처럼 강하게 싸워야 하나 그러기에는 사람들의 생각도 틀리고 현재의 노동운동 속에서는 힘들다는걸 느꼈다. 비정규투쟁이 중심이 되는 현 시점에서 노동자들의 결합은 쉽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코스콤비정규지부 조합원)


    민주노총과 산별연맹 등 이른바 노조운동의 상급단체들이 무책임하게 방치하고 있는 비정규 장기투쟁사업장들이 최근 스스로 결성한 ‘비정규·투쟁사업장 공동투쟁단’ 내에서 투쟁의 전망을 묻는 질문에 적지 않은 조합원들이 이렇게 답변하고 있다.

    물론 우리가 항상 100점짜리 싸움만 골라서 할 수는 없다. 이기는 싸움도 있고 지는 싸움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투쟁의 영역으로 오면 승전보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적다. 그나마 그 ‘승리’라고 하는 것도 겉포장만 그렇게 했을 뿐, 실제로는 노조 지도부가 상당한 양보를 전제로 조직을 근근이 유지하기 위한 타협을 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2. 비정규직 투쟁이 서있는 위치


    IMF 경제위기를 전후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또한 비정규직에 대한 극심한 차별과 억압이 진행되자 대중적인 분노와 요구가 밑바닥부터 들끓기 시작했다. 특히 2003~2005년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 노동조합을 결성하며 격렬한 대중투쟁을 전개하는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진출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되었다.

    그러나 2003년 화물연대의 물류를 멈추는 파업을 통한 노정합의서 쟁취, 2005년 덤프연대의 3차례에 걸친 총파업을 통한 도로법 개정 쟁취 등의 사례를 제외하면, 공세적인 요구를 내건 투쟁으로 승리를 이끌어낸 역사가 거의 없다. 또한 해고자 복직 등 개별 사안에서 일정하게 승리를 쟁취했다 하더라도, 자본의 2차 3차 반격으로 인해 그 승리를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 이유는 물론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 자체가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단결하여 투쟁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도록 설계된 것이라는 점,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3권 자체를 부정하는 자본가들의 법·제도, 그리고 정규직 중심의 기존 민주노조운동의 관료화·개량화로 인해 비정규직투쟁을 받아안지 못할 뿐 아니라 대중투쟁의 진출을 방해하고 파괴하는 역할도 서슴지 않는 현실 등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악조건이 많다 하더라도 주체들이 튼튼하게 서있고 끈질긴 싸움을 벌인다면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관료화·개량화의 첨단을 걷고 있는 민주노총 대기업노조 소속 조합원들도, 87년 이전에는 군사독재라는 암흑의 시대상황, 노동악법, 어용 한국노총의 방해공작과 탄압이라는 악조건을 뚫고 일어선 노동자들 아니던가.


    ① 비정규직 노동자 대중들이 서있는 위치


    비정규직 노동자 집단은 87년 노동자 대투쟁, 96~97년 총파업투쟁의 경험 및 영향력과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지 않다.

    물론 개중에는 이런 거대한 투쟁들과 개별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집단적인 경험으로 보았을 때는 그러하다. 비정규노동자들이 경험해본 총파업이란, 기껏해야 민주노총과 대기업노조가 ‘선언’하여 집회 한번 하고 나면 끝나는 연례행사 수준의 것들이었다.

    쉽게 말해 “단결하여 투쟁하면 쟁취할 수 있다”는 비정규노동자 스스로의 힘을 행사해보지도 못했고, 따라서 자신의 힘을 확신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미조직 비정규노동자들의 경우, 집단적인 경험은 주변에 있는 비정규노조들의 투쟁을 바라보는 것을 통해서만 겪어왔고, “그 범위 안에서만” 힘을 느끼고 계급의식의 성장을 가져왔다.

    2003년 이후 수많은 비정규노조들이 결성되고 투쟁을 전개해 왔지만, 이미 900만에 육박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로 보았을 때에는 매우 미미한 경험일 수밖에 없다. 여전히 비정규노동자 조직률은 1%에도 못미칠 뿐 아니라, 조직된 비정규노조들이 미조직 비정규노동자들과 맺고 있는 관계 역시 전혀 공고하지 못하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정규직 노동자와 비교했을 때 다양한 사회적 구성을 갖고 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온 학생 비정규직, 정규직 취업기회가 처음부터 봉쇄된 청년 비정규직, 구조조정으로 밀려나 일자리를 찾아 들어온 장년 비정규직, 정년퇴직 후 다시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노년 비정규직, 남편 월급으로는 도저히 생활이 안되어 취업한 여성 비정규직, 농사가 망하거나 자영업을 하다 몰락한 노동자들, 먼나라에서 돈 벌러 들어온 이주노동자들 … 다양한 사회적 구성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단일한 요구로 모아내고 대중적으로 조직하는데 만만치 않은 장애요소로 등장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정규직 노동자집단이 87년 대투쟁, 96~97년 총파업투쟁의 경험과 단절되어 있다는 사실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 또한 87년 이전에는 다양한 사회적 구성을 갖고 있었지만, 87년 대투쟁과 90년대 초반까지 도도하게 전진했던 초기 민주노조운동의 경험이 이들을 비교적 단일한 집단으로 형성시켜준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극심한 차별과 억압이라는 고통을 공유하고 있다.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복지혜택과 사회보장으로부터도 배제되어 있다. 비록 사회적 구성이 다양하다 할지라도 고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집단적인 불만이 터져나올 계기점이 만들어지면 역동적인 조직화와 투쟁이 조직되기도 한다.

    그러나 고통이 곧바로 투쟁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지만, 자본가들은 마치 이것이 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 비롯된 것인양 호도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나은 조건에 처해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과 관료적 노동조합의 행태를 보며, 비정규직 노동자들 상당수는 자본의 거짓선동에 넘어가고 있다. 자본가들이 정규직-비정규직 분할을 노동자 통제의 최우선 정책으로 사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② 비정규직 노조운동(및 조직된 비정규노동자들)이 서있는 위치


    2003년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결성과 대중투쟁이 활발하게 진행되기 시작했지만,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전반적인 의식성장 속에서 이뤄진 성과가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전히 다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포획당한 상태로 남아 있다.

    물론 비정규직 노조운동에 전혀 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외형적으로만 보더라도 2003년 이전 비정규직노조의 결성과 투쟁의 패배가 곧 조직의 해산으로 귀결되는 역사였다면, 2003년 이후에는 패배하더라도 최소한의 조직 유지와 재반격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노조의 진출이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를 포괄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10~20% 정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호흡하는 수준으로 성장해왔다.


    2003년부터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전개되어온 사내하청노조들을 예로 들어보자. 현재 민주노총에 조직되어있는 사내하청노조들의 대다수는 민주노총 소속 정규직노조가 있는 대기업 사업장에 존재한다.

    소수 사업장에서 아주 잠깐 동안 양심적인 정규직 집행부가 들어서서 사내하청노조와의 연대를 조직한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대다수 사업장에서 정규직노조 집행부는 사내하청노조의 투쟁에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가로막고 방해하는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대다수 사내하청노조들은 독자적인 힘으로 조직화와 투쟁을 전개해야 했는데, 원청사용자성 불인정과 자본의 노조탄압, 정규직노조의 무관심 속에서도 대략 조직대상의 20%를 노동조합으로 조직해내는데 성공해왔다.

    예외적으로 정규직 집행부의 상당한 지원이 이뤄질 경우에는 50%의 조직률을 달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러한 집행부가 물러나고 노사협조적 집행부가 들어설 경우, 자본의 노조탈퇴공작으로 인해 조합원이 다시 줄어들긴 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20% 안팎의 조직률은 유지되어왔다.

    상대적으로 높은 조직률을 유지하고 있는 비정규노조들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조합원 규모가 가장 최대일 때 홈에버 노동자들 또한 직접고용된 전체 노동자 6천명 중 1천여명, 코스콤비정규지부 역시 조직대상 5백명 중 1백여명, 덤프연대의 경우도 조직대상 5만명 중 1만여명의 조합원을 조직한 바 있어 대략 20% 안팎의 조직률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조직률’ 통계치가 아니라 “노동조합이 함께 호흡하고 노조를 자신의 대표라 생각하며 호응하는 비정규직 대중들의 규모”이다. 2003년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와 투쟁은 전체 비정규직의 10~20% 대중들과 호흡하는 수준의 운동으로 전진했다. 그러나 여전히 80~90%의 비정규직 대중들은 노동조합 내지 노동운동과 전혀 호흡하지 못한 채 ‘국민’ 수준에서 여러 쟁점을 해석하고 있다.


    또한 2003년 이후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 역사(부록 참조)를 살펴볼 때, 새로운 부문의 비정규노동자들의 대거 조직화가 이뤄질 때 비정규노조운동만이 아니라 전체 민주노조운동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주며 노동자투쟁의 진출이 활발하게 벌어졌고, 반대로 신규조직화가 주춤하게 될 때에는 어김없이 운동 자체가 하강하고 패배주의에 휩싸이며 비리와 퇴폐적 행위가 폭로되고 위상 전체가 실추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를테면 2003년~2005년에 비정규투쟁이 성장·상승할 수 있었던 여러 계기들 중 하나는, 새롭게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미조직 노동자들의 대중투쟁이 전체 운동에 - 비정규노조운동 뿐 아니라 전체 민주노조운동진영에도 - 활력소가 되어준 것이었다. ‘03년 화물연대의 투쟁이 전체 비정규운동 성장의 신호탄을 예고했다면, 같은 해 전국 곳곳에서 만들어진 사내하청노조의 출현은 ’04년부터 전개될 불법파견 철폐를 위한 전국투쟁을 예고했고, ‘04년부터 결성을 준비해온 덤프연대는 ’05년에 진행된 특수고용 노동자 조직화 및 총력투쟁을 예고한 것이었다.

    반대로 2006년의 경우 예년(’03~‘05년)과 달리 신규 비정규노조 조직화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고, 기존 조직된 비정규노조들의 처절한 투쟁이 이어졌다. ‘05년 말 강승규씨 독직사건으로 인한 민주노조운동의 위상 전반적 추락도 한몫을 했다. 또한 민주노조운동의 상승과 하강에 신규 민주노조의 조직화가 하나의 척도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06년 투쟁 초기부터 전체 전선은 밀려가고 있었으며, 결국 2006년 말 비정규악법과 노사관계 로드맵의 법제화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비정규노조운동의 일정한 성장은 조직화·투쟁의 어려움과 한계에 맞물려 ‘조합주의’의 문제를 낳았다. 한편으로 비정규노조들이 일정 규모의 대중적 토대를 갖추며 노동조합으로서의 대중적 활동이 가능해졌지만, 자기 사업장의 문제에 너무 몰입하면서 비슷한 영역 노조들과의 공동투쟁 이상으로 단결과 연대가 확장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사업장 문제에 매몰되는 현상은 비정규직노조운동의 조건과 처지가 너무나 열악하기 때문에 자본의 공격에 맞서 조직을 지키기 위해 벌어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열악하다는 이유로 이를 극복하려는 자기노력이 전개되지 않으면서, 대부분의 비정규노조들이 속속 조합주의의 포로가 되어가고 있다.

    전체 운동의 발전 속에 자신의 문제 해결의 전망이 열린다는 관점보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자신의 문제만 해결되면 언제라도 타협할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가, 상당수 비정규노조들의 현주소이다.

    그런데 비정규노조들의 열악한 상태로 인해 이러한 타협조차도 적지 않은 희생을 감수하며 투쟁을 전개해야만 가능하다. 노동계급 전체의 요구가 아니라 자신 문제 해결을 위한 타협을 향해, 전체 운동의 발전이 아니라 사업장의 좁은 이해관계 속으로 투쟁하는 비정규노동자들의 열망을 가둬놓다보니, 각각의 비정규직 투쟁에 들어가는 노력과 희생에 비해 대중들이 활동가로 성장하는 속도와 숫자가 너무나도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③ 비정규직 투쟁의 현재 상황


    현재 객관적인 계급 간의 역관계를 고려할 때, 조직력과 투쟁력이 취약한 비정규노조들의 투쟁이 승리를 쟁취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워낙 중요한 의제와 쟁점으로 떠오르다보니 유의미한 비정규직 투쟁이 벌어지면 사회적 주목을 받으며 자본을 압박하기도 한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기껏해야 10~20%라는 조직적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기에, 사회적 압박을 제외하면 자본이 결정적으로 양보해야 할 만큼의 투쟁력과 조직력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상대하는 자본의 각종 비리 등 특별한 도덕적 결함이 폭로된다거나, 노조를 겪어본 경험이 일천해서 실수를 한다거나 하는 우연적 요소가 발생하지 않는 한, 노동자들 스스로의 조직력·투쟁력이 아닌 사회적 압박만으로 자본이 굴복하는 경우는 없다. (우연적 요소를 바라보고 싸우는 바보들은 없다. 그것이야말로 ‘승리의 조건을 만들어가는 자세’가 아니라 일단 싸워보고 요행을 바라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비정규직 투쟁이 장기화를 겪게 된다. 그러나 장기투쟁이란, 그 자체로만 보면 다양한 경험과 연대를 겪으면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성장을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장기투쟁의 과정에서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라는 힘을 깨닫기보다, 관료화된 상급단체의 모습 등 민주노조운동의 병들어 있는 상태를 확인하고 온갖 관료적 행태를 겪으면서 실망하고 패배의식을 키우는 경우가 더 많다.


    물론 이러한 궤변이 가능할 수도 있다. 비정규직 투쟁의 요구수준을 좀 낮추어 비정규직 철폐, 정규직화가 아니라 노조 유지(인정) 정도로 간다면 승리할 수 있는 투쟁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이는 궤변이 아니라 민주노총, 각급 산별연맹과 대기업노조의 관료적 지도부들이 실제로 갖고 있는 입장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사내하청노조들이 원청을 상대로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전개하기보다 하청업체를 상대로 교섭을 쟁취하여 노조인정과 조직력을 안정화시킨 후, 준비를 철저히 하여 원청 상대로 큰 투쟁을 전개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이미 경험적으로 옳지 않다는 점이 드러났다. 우선 요구수준을 낮춘다고 해서 요구의 쟁취가 쉬워지거나 자본의 탄압이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것인데, 요구수준을 낮췄을 때 대중들 스스로가 호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사내하청노조들이 일정하게나마 대중적 규모로 조직화가 가능했던 것은, 불법파견 정규직화라는 요구가 사내하청 노동자 대중의 가슴에 불을 질렀기 때문이었다. 현재 이랜드·뉴코아·코스콤 비정규투쟁이 내건 요구들 또한, 관료적 지도부들은 대단히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 정도의 요구를 내걸지 않았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결집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10~20%의 비정규직 대중들과 호흡하는 수준에서, 자본을 상대로 (관료적 지도부가 생각하는 ‘양보적 요구’가 아니라) 대중적 요구를 쟁취한다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거의 불가능하다. 예외적으로 자본 자체가 취약하거나 커다란 결함이 있는 우연적 요소가 있지 않는 한 말이다. 이를테면, 정규직과 공동으로 투쟁해도 쟁취될까 말까한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사내하청노조 단독으로, 그것도 10~20%의 대중들을 조직하여 싸워서 단박에 해결한다는 것은 꿈에 가까울 것이다.

    주의할 것은 위에서 말한 10~20%는 조직률 수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비정규직 투쟁이 비정규직 대중들과 호흡하는 비율’을 일컫는다. 조직률과 ‘호흡하는 비율’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조직률이 10% 미만일지라도 노동자 다수가 노조를 자신들의 대변자라고 느끼는 경우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과거 전노협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은 전체 노동자에 비교하자면 불과 3%도 되지 않았으나 전노협을 자신의 대표라고 생각하고 느끼는 노동자들의 규모는 조직률의 10~20배를 상회했다.


    ④ 비정규직 투쟁이 서있는 역사적 지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진출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되어 있지만, 비정규직투쟁의 진전은 비정규직 노동자 전반의 의식성장에 기반해 있지는 못하며, 비정규직노조운동은 아직 대중적 요구를 쟁취할 수 있는 수준의 조직력과 투쟁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지금 비정규직 투쟁을 전개한다는 것은, 뻔한 패배가 예정된 싸움을 하는 것이란 얘기인가?

    적어도 현재 비정규직 투쟁의 역량으로 (관료적 지도부가 생각하는 ‘양보적 요구’가 아니라) 대중적 요구를 쟁취하는 수준에서 얘기하자면, 그렇다. 이것이 현재 비정규직 투쟁이 서있는 역사적 지점이다.


    기존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를 돌이켜 본다면, 87년 대투쟁이 일어나기 전에 70년대와 80년대 초까지 수많은 ‘패배’의 역사가 축적되면서 거대한 투쟁을 예비해왔다. 청계피복노조 투쟁, 동일방직 투쟁, 원풍모방 투쟁, YH 투쟁, 사북 투쟁 등 격렬하게 타올랐지만 결국은 장렬한 패배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투쟁의 패배가 있어왔다. 이러한 투쟁들뿐만 아니라 역사책에 등장하지도 못하는 수많은 노동조합 결성시도와 눈물겨운 실패들이 수도없이 반복되었다.

    노동자 활동가들의 이름이 블랙리스트로 작성되어 이들은 사업장에 취업하여 노조결성을 시도하다 반복적으로 해고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수많은 실패와 패배 속에 민주노조운동의 흐름은 1985년 대중투쟁의 공고화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1985년 4월, 당시 굴지의 재벌기업인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갔다. 4월 25일 새벽, 열흘 만에 김우중 회장과 노동자대표 홍영표의 단독협상을 통해 요구조건이 거의 받아들여지면서 노동자들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특히 푸른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대표 홍영표가 재벌총수 김우중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교섭장을 걸어 나오는 모습이 TV와 신문지상에 실리면서, 이 투쟁은 합의내용 자체보다 더 큰 파장을 불러왔다.

    두달 후인 1985년 6월, 40여 일간의 임금인상투쟁을 마무리 지은 대우어패럴 노조간부 3명이 경찰에 연행, 구속되자 구로지역 10개 노조 간부들은 민주노조들에 대한 각개격파가 시작됐다고 인식하고 동맹파업에 들어갔다. 총 2천 5백여 명의 조합원이 참가한 ‘구로동맹파업’에 당시 한국사회의 모든 노동운동단체와 사회운동역량이 집중지원 했다.

    구로동맹파업을 비롯한 그해 노동자투쟁으로 구로에서만 약 2천5백명, 수도권에서 대략 3천명 정도로 추산되는 노동자들이 해고당했다. 그러나 이 투쟁의 과정에서 단결의 힘을 경험한 해고노동자들은 다양한 사업장으로 흘러들어가 87년 대투쟁의 씨앗이 되었다.


    현재 비정규직 투쟁은 민주노조운동의 태동기인 1985년 언저리 어딘가에 서있다. 민주노조운동의 씨앗이 되었던 노동자들이 당시에 그러했던 것처럼,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전체적으로 1987년 대투쟁과 같은 “단결하여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경험과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곳곳에서 깨지고 밀리고 해고되고 조직이 해산되는 패배를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노조를 결성하여 싸우다 해고된 수많은 노동자들은, 부족하나마 단결의 힘을 경험한 상태에서 또다른 비정규직 사업장에 생계를 위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노동자들은 이전의 패배 경험으로 인해 선뜻 새로운 사업장에서 노조 결성이나 투쟁을 시작하지는 못하지만, 자본가들이 또다시 파렴치한 임금갈취와 탄압을 가해올 경우 과거 투쟁의 경험을 발휘하게 된다. 비록 이전 투쟁에서 깨지고 패배했지만, 최소한 불의와 부조리를 보고 참아서는 안된다는 노동자의 진리만큼은 소중하게 몸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포장마차 같은걸 하고 싶어요. 또다시 누구한테 월급받는 노동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노조같은걸 몰랐다면 그냥 묵묵히 일하겠지만, 노조도 해보고 파업도 해봤는데 다른 사업장에서 또 사장들이 퇴직금 떼어먹고 그러면, 이제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또 질 것만 같아서 선뜻 나서기도 그렇고 말이에요 ...”

    투쟁에 패배하고 해고되어 생계를 위해 가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다수가 이러한 심정을 토로한다. 그러나 한국 자본주의는 이들이 포장마차 같은거 하면서 싫은 꼴 보지 않으며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을 결코 제공해주지 않는다. 또다시 이들을 더 열악한 비정규직의 삶으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고, 노조활동과 파업투쟁을 경험해본 비정규직 해고자들은, 과거 민주노조운동의 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새롭고 거대한 투쟁의 씨앗이 되어가고 있다.


    “안되면 다 때려치우고 노가다나 하지 뭐” 우리가 일이 안풀리면 흔히 쓰는 말처럼, 건설현장의 ‘노가다’는 마치 막장인생처럼 여겨지는 직업이다. 또한 이곳저곳에서 비정규노조 결성과 해고를 반복적으로 당해온 노동자들이 마지막으로 (생계를 위해서건 활동을 위해서건) 선택하는 곳이 건설현장이다.

    실제로 파업투쟁이 벌어지는 건설현장에 가보면 과거 다른 사업장에서 비정규직투쟁에 앞장섰던 해고자 출신 노동자들을 상당히 발견할 수 있다. 또한 40대 이상의 연령층으로 가보면 87년 대투쟁의 경험을 갖고 있는 건설노동자들도 적지 않다.

    그러다보니 건설현장은 비정규직 투쟁이 배출한 가장 고급의 역량이 흘러가는 곳이 되고 있다. 과거 80년대 초반 노조결성과 해고를 밥먹듯이 하던 수백의 해고자들이 (누구의 지시가 아니라 매우 자연스럽게) 구로공단으로 흘러들어가 구로동맹파업의 씨앗이 되었던 것처럼, 건설현장의 ‘노가다’로 흘러간 노동자들은 현재 비정규노조들 중 가장 조직력과 투쟁력이 강한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있다.


    “패배할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중적 요구를 무시하고 관료적 지도부가 제시하는 요구안을 내밀던지, 아니면 일체의 비정규직 투쟁을 전개하지 않아야만 한다. 그러나 이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진출은 시대의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있는 상황에서, 몇몇 활동가들이 비정규직 투쟁의 발발을 억누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현재 비정규직 투쟁이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나면, 개별 투쟁에서 사용가능한 투쟁전술의 폭이 오히려 넓어지게 된다. 이 글의 서두에서 인용한 노래가사처럼 우리 운동이 “아흔아홉 번 패배할지라도 단 한번 승리를 위하여” 가는 것이라면, 현재 비정규직 투쟁이 무엇을 남기고 가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실제로 우리가 기억하는 주요한 비정규직 투쟁들의 다수가 - 한국통신계약직 투쟁, 캐리어 사내하청투쟁 등 - 사실은 장렬한 패배를 기록한 투쟁들이다. 비정규직 투쟁은 이러한 패배로부터 교훈을 끌어내고 새로운 대중적 분출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현장 속에서 조직화 작업들을 진행하며 성장해왔으며 그렇게 또 성장해가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 서게 되었을 때 현재 비정규직노조들 다수를 포획하고 있는 ‘조합주의’와의 투쟁이 가능해진다. 자신의 사업장 문제가 전체 비정규직, 나아가 전체 노동자의 문제와 어떻게 결합되어 있고, 다른 부문의 노동자투쟁이 우리 사업장 투쟁과 어떤 연관을 맺으며 발전하는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투쟁에 결합한 노동자들의 시야가 넓어지고 활동가로서의 성장의 길이 열리게 된다.

    민주노조운동의 1985년은, 70년대와 80년대 초반의 수많은 패배 속에서 성장한 활동가들이 혁명적·변혁적 관점에서 노동자투쟁과 조직화를 전개하기 위해 서노련을 비롯해 다수의 투사조직들을 건설하는 시기였다. 사실 지금 비정규직투쟁이 보여주고 있는 대중투쟁의 규모로 보자면 1985년보다 좀 넓어보이지만, 활동가들의 성장과 혁명적·변혁적 투사조직의 건설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훨씬 미달해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비정규직 투쟁은 ‘민주노조운동의 1985년 언저리 어딘가’에 서있다.



    3. 비정규투쟁의 성과는 어떻게 남았는가


    흔히 노조운동의 성과를 얘기하는 잣대로 임금인상률이나 단체협약 문구를 들이미는데, 그러한 잣대를 놓고 말하자면 2003년 이후 비정규직투쟁은 이렇다할 성과를 거의 내지 못했다. 심지어 노조결성 이전보다 더 열악한 노동조건에 빠지는 사례들도 많았다. 노조결성 이전의 수준으로 노동조건을 복원시키기 위해 죽을 힘 다해 싸워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주요 비정규투쟁은 - 장렬한 패배를 기록한 투쟁을 제외하면 - 거의 모두가 투쟁과정에서 조직을 확대하고 자본의 십자포화에 맞서 확대된 조직으로 재반격에 나선 것들이다.

    즉, 주요한 비정규투쟁의 성과는 임금인상률이나 단체협약의 문구가 아니라 신규 조직화 또는 조직의 확대로 남았다. 2003년 화물연대의 5월 파업투쟁이 그러했고, 2005년 덤프연대의 3차례에 걸친 파업투쟁이 그러했으며, 2005년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철폐를 위한 파업농성이 그러했고, 2007년 이랜드·뉴코아 총파업투쟁이 그러했다.


    비정규투쟁의 성과는 ‘조직화’ 뿐 아니라 ‘단결과 연대의 확장’으로도 남는다. 단결과 연대의 확장은 때로는 정규직 노동자 대중들과 이뤄지기도 하고 때로는 같은 지역의 노동자 대중들과 이뤄지기도 하며 때로는 정치운동·사회운동과 이뤄지기도 한다.

    우리는 오늘 “모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내걸고 투쟁할 수 있으며 또한 그러한 요구를 걸고 싸워야만 한다. 그러나 그 요구를 100% 관철시키지 못했다고 해서 투쟁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100% 정규직화가 아니라 단 1%의 정규직화도 쟁취하지 못했을지라도, 그 투쟁의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말 잘 듣는 비정규직 우선채용”이라는 자본의 함정에 빠져들지 않고 투쟁으로 정규직화를 쟁취하기 위해, 비정규직노조로 대거 가입하여 비정규직 스스로 단결하는 모범을 만들었다면 그 투쟁은 분명 성과를 남긴 것이다. 비록 올해에는 정규직화를 전혀 이룩하지 못했더라도 올해의 큰 단결을 밑바탕으로 내년에는 더욱 큰 투쟁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투쟁의 과정에서 원하청노조 공동투쟁 등 정규직과의 단결과 연대를 확장해 냈다면, 그 투쟁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와 상관없이 투쟁은 상당한 성과를 쟁취한 것이다. 올해 비록 쟁취한 성과물은 그리 크지 않더라도 정규직과의 더 큰 단결을 통해 내년에는 요구를 관철시킬 조직력과 투쟁력을 확보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비정규투쟁의 성과는 ‘조직화’와 ‘단결과 연대의 확장’ 뿐만 아니라 투쟁에 동참하거나 투쟁을 지켜본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기억’으로 남는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비록 패배하고 해고되더라도 투쟁에 동참한 노동자들은 그 경험을 집단적으로 공유한다. 1987년 대투쟁을 가까이에서 경험하고 지켜본 노동자들과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비정규직 투쟁을 직접 경험해본 노동자들과 그렇지 못한 노동자들 사이에도 상당한 계급의식의 편차가 존재한다.

    투쟁에 직접 참여한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그 투쟁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노동자들 또한 비슷한 의미에서 ‘집단적인 기억’을 남긴다. 비록 아직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비정규직노조에 가입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은 비정규직노조들의 활동에 정확히 꽂혀 있다.

    실제로 사내하청노조들이 건설되면, 그 노조의 홈페이지에 방문하는 주요 그룹 중 하나가 그 지역의 다른 대기업 노무관리 담당자와 사내하청업체 관리자들이다. 사내하청노조의 투쟁으로 임금과 노동조건이 올라가면, 이 힘이 새로운 조직화로 이어지지 못하게 하기 위해 다른 사내하청업체들도 일정하게 노동조건 개선에 나서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잘 알고 있기에 미조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조직된 사내하청노조의 활동과 투쟁에 집중된다.

    길거리에서 투쟁을 전개하는 경우가 많은 비정규노조운동이기에, 미조직 노동자들의 시선은 다양한 방식으로 비정규직 투쟁에 꽂히게 된다. 2006년 대우센터빌딩 시설관리·보안·청소미화 용역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고용승계투쟁을 처절하게 벌일 때, 주변 건물의 용역 노동자들은 많은 관심을 갖고 그 투쟁을 지켜보고 있었다. 몇몇 비정규투쟁에서는 실제로 미조직 비정규노동자들이 각종 성금을 모으거나 지지의사를 표현하기도 한다.

    비록 자신은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현재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노조들이 몰락하는 것만큼은 반대한다. 조직된 비정규노조들의 투쟁이 자신의 생존권과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집단적인 기억’을 공유하는 이들이 바로 현재 수준에서 비정규노조들이 함께 호흡하는 대중들의 규모이다.


    “이러한 성과를 남긴 투쟁을 승리한 투쟁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렇다. 어째서 요구안의 쟁취 정도를 가지고 승리와 패배를 나눌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투쟁현장에서 흔히 사용하는 ‘승리’라는 단어에 담긴 철학이 무엇인가를, 활동가의 수준에서 충분히 토론해볼 수 있는 문제이며 앞으로 대중적 수준으로 논의를 확장시키기 위해 노력해볼 문제이기도 하다.

    대중적 요구의 100%를 다 쟁취하고도 현장에 복귀해서 조직이 모조리 깨지는 경우가 있다. 지금 장기투쟁사업장들 다수가, 복직을 쟁취하더라도 현장에서 다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투쟁을 요구받고 있다. 따라서 요구안의 쟁취가 과연 '승리'인가 하는 것도 다시 생각해볼 문제이다.

    다만 여전히 투쟁현장에서 사용되는 ‘승리’라는 단어가 ‘대중적 요구의 쟁취’ 여부에 기준이 맞춰져 있기에, 대중적 논의 또한 “승리란 과연 무엇인가?” “투쟁의 성패를 떠나 우리는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라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4. 비정규직투쟁의 전진을 위하여


    손자병법에 이런 구절이 있다. “勝兵 先勝而後求戰 敗兵 先戰而後求勝”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이겨놓고 난 다음에 싸우며, 패배하는 군대는 먼저 싸우고 나서 승리를 구한다)

    조금 과장이 섞여있긴 하지만 위 구절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승리의 조건을 만들어놓고 싸워야만 이길 수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비정규직 투쟁이 ‘승리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떠한 길로 전진해야 하는가?


    1987년 대투쟁과 같은 거대한 투쟁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물론 앞서 지적한 것과 같이,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의 의식성장에 기반한 비정규직 투쟁의 전진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러한 투쟁의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1987년 대투쟁과 같은 대격변은, 활동가들이 혹은 운동진영 전체가 목적의식적으로 만들려 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계급투쟁의 진전 속에서 대중들 스스로 때가 왔다고 느낄 때 아래로부터 거대하게 밀고 올라오는 것이 이러한 대격변의 속성이다. 한국 자본주의가 노동자 전체를 비정규직화하고 구조조정·정리해고 등으로 노동자의 고혈을 더욱 쥐어짜는 길로 갈 수밖에 없기에, 언젠가 이러한 대격변이 오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한 대격변이 올라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것이 언제일지 예측하거나 조정할 수는 없는 법이다.


    따라서 더욱 중요한 문제는 그러한 대격변을 예비하고 준비하는 세력의 존재이다.

    현재 비정규직 투쟁이 대중적 요구를 쟁취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대중과 호흡하고 있지 못한 점이 운동의 객관적 한계라면, 수많은 패배 속에서도 교훈을 이끌어내며 운동을 전진시키려 하는 활동가들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한 점은 운동의 주체적 한계이다.

    “전체 운동의 발전 속에 자신의 사업장 투쟁 전망이 있다” “편협하게 사업장 노동자들의 요구가 아니라 전체 노동계급의 요구를 움켜쥐어야 한다”는 관점을 현장투쟁과 조직화사업에서 일관되게 밀어붙일 활동가들이 대중투쟁 속에서 성장해야 하는데, 조합주의적 한계에 비정규직노조운동이 갇히기 시작하면서 들이는 노력과 희생에 비해 이러한 성장은 매우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비정규직 투쟁 영역에서 1985년처럼 노동자투쟁을 혁명적·변혁적 관점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투사조직의 결성은, 몇몇 지식인 출신 활동가들이 늘어나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과거를 돌아보더라도, 비정규직 투쟁 속에는 전체 노동계급의 요구를 단호히 움켜쥘 수 있는 조건이 충분히 존재한다.

    홈에버 상암점과 뉴코아 강남점 점거농성으로 이랜드·뉴코아투쟁이 전국적 관심을 획득하였을 때, 모든 사람들이 이 투쟁에 대해 ‘비정규악법을 둘러싼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리전’이라고 불렀다. 코스콤 비정규투쟁이 터져나올 때에도 ‘전국의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대표하는 투쟁’이라고 평가했다.

    각각의 비정규투쟁은 850만 비정규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어깨 위에 짊어지고 갈 것을 요구받았다. 그리고 투쟁의 초기에 노동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억울하게 여기기보다 오히려 영광으로 여기며 “우리가 밀리면 850만 비정규직 전체가 밀린다”는 사명감을 갖고 투쟁을 밀어나갔다. 그 사명감이 전국의 노동자들 마음을 움직이며 연대가 조직되기 시작했다.

    확 트인 투쟁의 전망 속에서 노동자들의 의식이 자연스럽게 전체 노동자의 이해를 자신의 어깨에 짊어졌던 것과 반대로, 투쟁이 내리막길로 가기 시작하면서 편협한 조합주의적 이해관계, “빨리 끝내고 싶다” “이 싸움 끝내려면 뭘 해야 하는가”라는 의식으로 빨려들어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비정규직투쟁 속에 전체 운동을 발전시키기 위한 조건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노동계급 전체의 이해를 움켜쥐며 운동을 전진시키려는 활동가들을 형성하고 투사조직을 건설하는 가능성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의 투쟁은 패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어깨에 850만 비정규직, 1천5백만 노동자 전체의 생사가 걸려 있기에 밀어갈 수 있는 한계지점까지 투쟁을 밀어갈 것이다!” “우리가 밀리면 전체 노동자가 밀린다! 비정규직 철폐! 구조조정 분쇄! 투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하더라도 여기서 승부를 봐야만 이명박의 가장 약한 고리에서 파열구가 날 것이다. 약한 고리에서 파열구가 나면 제2, 제3의 파열구가 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 파열구를 뚫고 1천5백만 노동자가 전진하는 속에서만 우리 투쟁의 전망이 놓여 있다!”

    투쟁사업장들 내부에서 이러한 의식으로 무장한 소수의 활동가들이라 할지라도 사업장을 넘어 묶어세워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은 좋은 출발점이다. 당장 그 활동가 네트워크가 대중투쟁에 연료를 제공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아주 자그마한 계기점에 의해 대중투쟁이 다시 전진하기 시작하면 활동가 네트워크는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네트워크를 반드시 투쟁사업장 활동가들만으로 한정지을 이유는 없다. 비정규직 사업장의 활동가라면 어느 업종이냐 어느 지역이냐를 떠나 함께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 운동의 발전 속에 우리 사업장 과제의 해결 전망이 놓여 있다는 점을 공유한다면, 투쟁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변화가 다른 사업장에도 연관을 맺고 발전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활동가 네트워크는 각각의 사업장 내에서 “노동계급 전체의 이해를 움켜쥐고 싸우려는 투사그룹”을 조직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공동의 토론과 학습을 통해 시야를 넓혀가고, 투쟁 속에서 원칙을 확인하는 시행착오를 거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 네트워크에 모여든 에너지가 (네트워크 소속 개별 활동가에 의해) 개별 사업장으로 흘러들어가기 마련이다. “노동계급 전체의 이해를 움켜쥐며 운동을 전진시키려는 활동가들을 형성하고 투사조직을 건설하는 과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의 매장점거 총파업투쟁으로 각 사업장들이 외주화와 계약해지 일정을 뒤로 늦추는 등, 이들 비정규투쟁이 전국의 사업장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듯이 비정규투쟁은 투쟁하지 않는 영역에도 크고작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의식적 활동가들은 전국의 투쟁상황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그 추이를 따라가면서 이 투쟁들을 확대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만약 활동가 네트워크가 구성된다면 이러한 분석을 체계화하기 위한 자신들의 수단(정세분석 문건, 소규모 소식지나 신문 발간과 배포 등)을 만들어갈 것이다.

    만약 커다란 비정규투쟁이 터져나왔을 때 그 투쟁을 중심으로 연대를 확장하고 전국적 영향을 미치기 위해 다양한 수준의 대중활동이 가능할 것이다. 최근 결성된 ‘비정규·투쟁사업장 공동투쟁단’의 사례처럼, 많은 투쟁사업장들을 하나로 모아 노동계급 전체의 이해관계를 걸고 공동투쟁을 전개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에 소속된 개별 사업장의 활동가들이 역할을 분담하여 밀어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투쟁이 활발하게 터져나오지 못하는 시점이라 하더라도 노동자 투쟁의 역사와 교훈을 학습하고 토론하며 활동가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사업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소규모 활동가 네트워크가 대중투쟁의 조직 자체를 만들어내기는 어렵겠지만, 중요한 비정규투쟁이 터져나왔을 때 이러한 네트워크가 존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은 많은 차이를 가져오게 된다. 중요한 비정규투쟁이 발발했을 때, 이 네트워크는 각각의 사업장에 투사그룹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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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직 투쟁의 전진을 위하여’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있긴 하지만, 엄밀히 얘기하면 이 글은 수년간 비정규직 투쟁을 해온 자신을 돌아보며 쓰는 ‘반성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장기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비정규노조의 집회 현장에서 이런 연설들을 흔히 접하거나, 또는 우리들 스스로가 이러한 연설을 하는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많이 힘들게 왔지만 이제 우리는 8부능선, 9부능선을 넘었습니다.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동지들, 힘냅시다!” “우리도 힘들지만 자본 또한 우리 못지않게 어렵습니다. 결정적인 일격만 가한다면 끝내 쓰러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기기 위해서는 ~~~ 투쟁이 필요합니다.” “#### 투쟁을 해야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투쟁이 1백일, 2백일을 넘어 장기투쟁으로 갈수록, 연설을 하는 나 스스로가 이 말이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낮은 목소리로 반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는가? 물론 지쳐있는 대중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승리의 전망’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대중들과 호흡하고 소통할 수 있는 내용이 거기에만 한정된다면, 그것은 다시한번 ‘조합주의’ 속으로 투쟁을 가두는데 일조하는 것에 다름없다.

    “우리 투쟁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나?” “도대체 뭘 해야 승리하나?” “제발 빨리 끝내고 싶다” 물론 이러한 고민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고 또 반드시 해야 하는 고민이지만, 문제는 기존 비정규직 투쟁의 모든 고민이 여기에만 집중되어 더 넓은 고민과 전망으로 발전하는 것이 가로막혀왔다는 데에 있다.


    또한 ‘비정규직 투쟁’에만 한정하여 논의를 전개했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민주노조운동 전체로 확장할 수 있는 문제이다. 87년 대투쟁 이후 90년대 초반까지 민주노조운동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전진해 갔지만, 지난 10년간은 지속적인 하강과 관료적 타락의 역사로 인해 제대로 싸워서 승리해본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난 10년간 주요한 투쟁들에 대해 “이겼다고 우겨왔거나” “이겼다고 포장했거나” “이겼다고 착각해온 것”은 아닐까? 이미 계급역관계는 밀릴대로 밀려서 다시 밑바닥에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인데 말이다.

    수많은 ‘패배’의 경험들이 1987년 대투쟁의 밑거름이 되었고, 다양한 사회적 구성을 보이던 노동자들을 ‘노동계급’으로 비교적 단일한 집단으로 형성시키며 낡은 관계를 휴지통에 쳐박아버린 역사가 있다. 문제는 ‘패배’하는 것 자체에 있다기보다, 패배를 패배로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교훈을 끌어내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단지 몇몇 장들을 제외하면 1848년에서 1849년까지의 혁명에 관한 연대기의 모든 중요한 부분은 ‘혁명의 패배’라는 제목으로 실린다. 이러한 패배들에 굴복한 것은 혁명이 아니었다. 굴복한 것은 그때까지는 아직도 첨예한 계급적 대립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던 사회적 관계들의 결과인 구래의 前 혁명적 부속물들이었다. 이것들은, 2월 이전의 혁명적 정당이 벗어나지 못한, 그리고 ‘2월의 승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련의 ‘패배’들에 의해서만 벗어날 수 있었던 인물, 환상, 관념, 계획들이었다.” (칼 맑스, “프랑스 계급투쟁” 맨 첫단락)



    [부록] 간략한 비정규직 투쟁 역사 개관


    ▲ 주목받지 못했던 노동자층의 등장과 진출 (1998~2001년) - 비정규직 투쟁의 태동


    1998년 한라중공업 사내하청노조 결성과 투쟁으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존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역사의 전면에 그 모습을 처음으로 드러내게 되었다. 다양한 형태로 조직되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99년 재능교사노조 투쟁, 2000년 호텔롯데 투쟁, 2001년 한국통신계약직노조, 건설운송노조, 이랜드노조, 캐리어사내하청노조, 방송사비정규노조의 투쟁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사회적 쟁점과 민주노조운동이 풀어나가야 할 중심과제로 만들었다.

    재능교사노조의 경우 ‘특수고용’, 즉 정부와 자본이 노동자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법외노조라는 악조건 속에서 1999년 32일간에 걸친 파업투쟁으로 노조 합법화, 임단협을 쟁취함으로써 ‘위장자영업자’를 노동자로 복원시키고 이후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대중적 조직화가 성공할 수 있다는 중요한 선례를 남겼다.

    호텔롯데노조와 이랜드 노조는 사용자의 탄압과 공권력투입, 구속자 양산, 장기투쟁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정규직노조의 비정규직 조직화와 정규직화 쟁취라는 성과와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부산지역일반노조를 중심으로 한 지역일반노조의 전국적 확산은 비정규직, 중소영세노동자 조직화의 새로운 실험을 가능하게 했으며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노동자들의 투쟁에 승리의 가능성을 높여 주었다.


    2001년에 이르면 비정규직 투쟁이 점점 전면화되기 시작하는데, 특히 대중적 조직화를 이뤄내며 불굴의 의지로 장기간의 투쟁을 전개한 한국통신계약직노조와 캐리아사내하청노조의 투쟁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겠다.

    한국통신계약직노조는 사측의 구조조정-간접고용화에 맞서 무려 517일간이나 목동전화국 점거, 국회점거 투쟁, 본사진격투쟁, 고공투쟁 등 사용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여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였고,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 투쟁을 전국화하며 비정규직 투쟁의 중요성과 의미를 다시한번 분명하게 각인시켰다. 캐리어사내하청노조 또한 초기에 생산라인 하청노동자 대부분을 조직하고 파업에 돌입함으로써 “하청노동자가 뭉치면 생산을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한국통신계약직노조와 캐리어사내하청노조의 결성과 투쟁은, 기존 정규직 중심 민주노조운동의 인식과 관성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았다. 한국통신(정규직)노조는 규약상 계약직 노동자들을 조직대상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정규직 노동자들의 정서상 안된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가입을 불허했으며, 독자노조 결성을 위해 한국통신노조의 규약을 변경해달라는 절박한 요구조차 시간을 질질 끎으로써 수천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위협 속에서 자신의 노동조합을 건설하여 투쟁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를 놓치게 만들기도 했다.

    캐리어사내하청노조는 결성 당시 정규직 캐리어노조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수백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집단가입을 실현시키기도 했으나, 자본의 고용불안 이데올로기 공세에 무너진 정규직 조합원들이 구사대로 돌변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파괴하는데 일조하기까지 하여 금속산업연맹으로부터 제명당하는 오명을 남기기도 했다.

    정규직 노조들이 보여준 배신행위를 보면서, 그간 조직된 정규직노조의 현장운동을 좀더 변혁적으로, 전투적으로 만드는데 힘을 쏟고 있던 대다수 활동가들 스스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심각하게 회의하기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랜드 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굳건한 연대를 과시하며 260일간 파업투쟁을 벌일 때 활동가들의 가슴 속에는 무언가 새로운 것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투쟁을 태동시켰던 치열한 투쟁들이 2001년경 대부분 장렬하게 패배한 가운데 2002년에는 이렇다 할 투쟁과 조직화의 흐름들이 거의 진행되지 않는 소강상태가 전개되었다. 비정규직 투쟁의 의미와 성과에도 불구하고 문제점과 한계가 점차 분명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투쟁을 전개하였지만, 상당수 노조는 투쟁과정에서 깨지거나 소수만이 남아 힘겨운 투쟁을 전개하게 되었다.

    그러나 2002년은 사회 전체적으로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되는 시기였다. 특히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 비정규직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한 논란이 주요한 정치적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기도 했다. 비록 조직적인 저항은 일시적으로 소강상태에 빠져들었지만, 비정규직이 급격히 확산된 가운데 극심한 차별과 억압이 진행되자 대중적인 분노와 요구가 밑바닥부터 들끓기 시작한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할퀴고 간 상처가 단지 노동자의 고통을 늘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존 대공장 정규직 남성 중심의 노동운동의 퇴조, 심지어 타락으로까지 몰고 온 한반도 남단에서, 계급투쟁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급속도로 노동계급으로 편입되고 있었다. 이렇게 새로운 대중들이 노동계급으로 충원되는 것은, 단지 기존 조직 노동자 수에 머릿수 몇 개 보태는 의미가 아니라 ‘진정한 새로운 힘의 원천’이라는 인식 변화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 한계를 딛고 다시 분출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 (2003년~)


    2003년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 권리보장 요구가 다시금 대규모적으로 표출되거나 조직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후 대중들의 능동성과 자발성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이는 수많은 활동가들의 내적 준비와 맞아떨어지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규모 진출이 시작된 것이다.

    가장 먼저 터져나온 투쟁은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 아래 전국의 물류를 마비시키며 떠오른 화물연대의 5월 파업투쟁이었다. 화물운송기사들은 화물연대로 결집하여 생존권보장, 권리보장 요구를 내걸고 2차례의 파업투쟁을 전개하며 정부와 직접교섭 및 합의서를 쟁취하였다.

    또한 화물연대의 거대한 투쟁에 영감을 받은 덤프트럭 기사들이 2004년부터 대중적 조직화를 시도하여 ‘덤프연대’를 결성하였고, 2005년에만 3차례 총파업을 벌이면서 파업 때마다 조직력을 2배, 3배로 키워 현재 1만여명 조합원을 조직하는 규모로 성장하게 되었다. 또한 3번의 총파업으로, 당시에 덤프트럭 노동자들의 숙원이었던 도로법(과적법) 개정을 이뤄내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또한 2003년은 대공장 사내하청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대중적인 노동조합 조직화가 시작된 시점이기도 하다. 식칼테러라는 극악한 자본의 공격이라는 계기가 있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가장 강력한 조직력을 확보하고 있는 민주노조가 서있는 자동차산업 내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대중적 폭발과 진출은 필연적인 현상이기도 했다.

    2003년 3월, 하청노동자가 월차 하나 쓰려다 식칼테러를 당한 사건이 벌어지자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원·하청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이틀간의 비공인파업을 벌인 직후 현대차 아산사내하청지회가 건설되었다. 이를 신호탄으로 현대차울산·전주/현대중공업/금호타이어/하이닉스매그나칩/동희오토/GM대우창원·부평/기아자동차/현대하이스코/기륭전자 사내하청노조 결성으로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과거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설립이 대중적 조직화에 실패하거나 혹은 성공하더라도 얼마 가지 않아 정권과 자본의 탄압으로 인해 사멸의 길에 들어섰다는 점을 감안하면, 2003년부터 시작된 대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대중적 노동조합 설립과 활력있는 대중투쟁은 비정규투쟁의 일보전진을 의미했다.


    2004년에는 비정규직에 대한 극심한 착취와 차별을 둘러싼 계급적 대립이 정치적 수준으로 확장되었다. 노무현 정부가 2004년 9월 파견법 개정과 기간제법 신설을 요지로 하는 <비정규직 보호입법>이라는 이름의 개악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이다.

    ‘전국비정규노조대표자연대회의’ 소속 비정규노조 15명의 대표자들은 집단적인 항의로 이 법에 대한 공청회를 무산시키고 기습적으로 열린우리당 의장실 점거농성과 단식농성에 돌입하게 되었다. 당시 비정규노조 대표자들이 벌인 7일간의 점거단식농성은 민주노조운동 내부에 엄청난 호소력을 발휘했고, 하반기 노동법 개악안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가장 핵심적으로 벌여야 한다는 인식의 확산을 가져왔다.

    비정규직노조의 대표자들이 단순히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라는 수준을 넘어서서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를 획책하는 개악안 저지'를 내걸고 1,400만 전체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앞세우며 점거농성에 돌입한 이 투쟁은, 민주노총이 점거농성 기간에 비정규악법 철회를 위한 총파업을 결의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2005년은 전국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투쟁의 진출이 두드러진 해였다.

    먼저 2003년부터 활발하게 조직화가 시작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경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월 울산공장의 파업·잔업거부 투쟁 이후 울산·아산·전주를 합하여 3천명에 이르는 조합원을 조직하여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내걸고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장기간의 대중투쟁을 전개했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들 1천여 명은 정규직 노조의 임단협 투쟁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수차례의 독자파업을 대중적으로 전개한 끝에 사내하청노조로서는 처음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해 냈다.

    현대하이스코 사내하청 노동자들 1백여 명은 노조 결성 이후 폐업을 빌미로 대량해고를 자행하자 집단 크레인 농성으로 처절하게 저항했다. 청주의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 노동자 1백여 명은 노조 결성 이후 집단해고를 당한 이후에도 불법파견 판정을 얻어내며 강고한 장외 파업투쟁을 전개하였다.

    울산의 건설플랜트 노동자 1천여 명은 전투적인 가두시위, 고공 점거농성, 집단 상경투쟁 등 강고한 파업투쟁을 두 달 이상 전개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덤프트럭을 운전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들 또한 최대 1만여 명이 참여한 3차례의 파업투쟁을 전개하여 “덤프트럭 운전기사도 노동자다”라고 세상에 선포하고 도로법 개정을 쟁취하며 조직력과 투쟁력을 과시했다. 공공부문의 산업인력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두 달 이상의 장기파업을 전개했다.


    이렇듯 2002년 소강 상태에 빠졌던 비정규투쟁은 2003년부터 다시 분출하기 시작하였는데, ‘03년~’05년에 비정규투쟁이 성장·상승할 수 있었던 여러 계기들 중 하나는, 새롭게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미조직 노동자들의 대중투쟁이 전체 운동에 - 비정규노조운동 뿐 아니라 전체 민주노조운동진영에도 - 활력소가 되어준 것이었다. ‘03년 화물연대의 투쟁이 비정규투쟁 부활의 신호탄이었다면, 같은 해 전국 곳곳에서 만들어진 사내하청노조의 출현은 ’04년부터 전개될 불법파견 철폐를 위한 전국투쟁을 예고했고, ‘04년부터 결성을 준비해온 덤프연대는 ’05년에 진행된 특수고용 노동자 조직화 및 총력투쟁을 예고한 것이었다.


    ▲ 다시 한계에 부딪힌 비정규 조직화와 투쟁 (2006년~)


    그러나 2006년의 경우 예년(’03~‘05년)과 달리 신규 비정규노조 조직화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고, 기존 조직된 비정규노조들(대구건설노조 총파업투쟁, 포항건설노조 총파업투쟁, 화물연대 사별투쟁, 현대·기아차 사내하청투쟁, 학습지 해고자복직투쟁 등)의 처절한 투쟁이 이어졌다. ‘06년 주요 투쟁을 살펴보면 거의 다수가 이미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2~3년 이상 활동해온 노조들의 투쟁임을 알 수 있으며, 이는 ’04년과 ‘05년 비정규투쟁과 많은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여기에는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03~’05년 비정규노조들의 분출과 치열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탄압과 피해를 입는 상황이 미조직 비정규노동자들을 위축시켜왔다는 점을 주요하게 들 수 있겠다. 물론 현장조직력을 일정하게 갖추고 있는 몇몇 노조들의 경우에는 과감한 대중투쟁으로 특수고용 노동자성과 원청사용자성을 개별 자본가로부터 인정받은 사례가 있긴 하지만, 미조직 비정규노동자들이 보기에는 전체 투쟁전선에서 그러한 성과보다 깨지고 밀리는 양상을 더 크게 보았던 것이다.

    2005년 말 강승규씨 독직사건으로 인한 민주노조운동의 위상 전반적 추락도 한몫을 하였다. 민주노조운동의 상승과 하강에 신규 조직화가 하나의 척도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2006년 투쟁 초기부터 전체 전선은 밀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2006년 11월 비정규법안 강행통과, 12월 노사관계 로드맵 강행통과, 2007년 1월 불법파견 무혐의 처분 등 ‘06년 말과 ’07년 초는 전선 후퇴와 패배의 시기였다. 제대로된 저항을 만들어내지 못하며 전선이 깨지고 수많은 패배를 경험하는 과정 속에 ’07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듯이, 패배 그 자체가 아니라 운동 전반을 옥죄기 시작한 패배주의가 가장 큰 문제였다. 싸운다 해도 이길 수 있을까? 수많은 회의 속에 비정규악법 시행일인 7월1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은, 비정규악법 시행을 앞두고 패배주의에 빠져있던 전체 민주노조운동의 흐름과 반대로, 오히려 악법 시행이 가져올 참혹한 결과를 현장에서 선전·선동하며 비정규노동자 조직화의 계기로 삼고자 했다. 여기에 이랜드그룹의 대대적인 비정규직 집단해고와 외주화 공격이 벌어지자, 이랜드·뉴코아 노동자들은 움츠러들지 않고 오히려 조직화의 확대와 총파업으로 맞받아칠 수 있었다.

    특히 비정규악법 시행일을 하루 앞두고 6월30일 전격적으로 단행된 홈에버 월드컵몰점 점거파업은, 비정규악법의 심장을 정면으로 겨누고 있었다는 점에서 다시한번 전국의 노동자들 가슴을 움직였다. 노무현 정부의 추악한 공권력 투입에도 불구하고 재점거로 맞서는 대담성과 끈질김은, 사업장 투쟁에 갇혀 잊혀지고 있었던 ‘역동성’과 ‘잠재력’에 불을 질렀다.

    이랜드·뉴코아 투쟁은 전체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에 커다란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코스콤 비정규노동자들이 조직된 직후 빠른 속도로 증권선물거래소 로비점거 파업이 조직되었고, 8월말에 전개된 기아차비정규직지회의 9일간의 흑도장공장 점거파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한때 전국 노동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이랜드·뉴코아·코스콤 비정규투쟁은 자신의 에너지를 모조리 발산하며 끈질기게 전개되고 있지만, 연대의 기운이 떨어지고 있으며 투쟁은 장기화되고 있다. 사실 이랜드·뉴코아·코스콤 뿐만아니라 거의 모든 비정규투쟁이 겪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지금의 한계는 비정규악법을 둘러싼 새로운 계기점을 둘러싸고 조직화와 투쟁을 일궈내는데 의식적 노력이 그만큼 부실했다는 점에 연유한다. 새로운 활력은 분명 비정규악법을 둘러싼 투쟁과 조직화에서 생겨났지만, 그 기세와 위력을 더욱 크게 하는 것은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식적 노력에 있다. 자생적으로 비정규노동자들의 분출이 올라왔지만 민주노조운동은 전반적으로 패배주의에 휩싸여 있었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새로운 조직화와 투쟁이 운동진영 전체의 객관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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