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노동자연합
연합소개 문서고 주장과 쟁점 투쟁의 현장
 
항목별 검색
자본주의는 어디로
투쟁의 방향타
혁명당을 건설하자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문화도 투쟁이다
한국노동자운동
세계노동자운동
기타

Category
투쟁의 방향타 : 교양도서 1권_구조조정과 고용불안에 맞선 노동자 투쟁
 사노련  | 2009·11·11 21:50 | HIT : 2,866
 FILE 
  • 1권20_구조조정과고용불안에맞선노동자투쟁.pdf (751.2 KB), Down : 199
  • 1권20_구조조정과고용불안에맞선노동자투쟁.hwp (847.5 KB), Down : 209
  • (사노련에서 발행한 <일하며 배우는 노동자 교양도서> 1권 '역사의 주인, 노동자'에 실린 글입니다.)

    구조조정과 고용불안에 맞선 노동자 투쟁

    양준석

    1. 구조조정은 왜 발생하는가?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이란 말만 들어도 마음을 졸인다. 정리해고, 비정규직화, 임금삭감, 노동강도 강화 등등 온갖 나쁜 일들이 바로 머리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0년대 중후반 IMF 공황 무렵부터 한국의 자본가들은 합병, 매각, 분할, 부서통폐합, 고용조정, 외주화 등 구조조정을 끊임없이 추진하면서 노동자들의 고용·임금·노동조건을 쉴 새 없이 공격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구조조정은 늘 있어 왔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 속에서 구조조정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이 되면서 이전과 또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다. 구조조정은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지만 발생하는 원인에 따라 크게 네 가지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사양산업화로 인한 산업 구조조정

    첫째, 특정한 산업이 사양산업이 되면서 발생하는 산업 구조조정이다. 그런데 사회 변화와 기술 발전에 따라 사회적 필요가 사라지면서 사양산업이 되기도 하지만, 사회적 필요는 여전한데 자본가들에게 이윤이 남지 않기 때문에 사양산업이 되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산업 자체가 사라지는 것으로 구조조정이 귀결되는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값싼 노동력을 향한 국내외 공장이동으로 귀결된다.

    이를테면 고무신 제조업이 전자에 해당한다면, 운동화 제조업은 후자에 해당한다. 고무신은 한 때 모든 이의 필수품이었지만 운동화가 등장한 이후 특별한 경우를 빼면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되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고무신 공장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운동화는 여전히 널리 사용되지만 중국에서 값싼 노동력으로 만드는 운동화와 경쟁을 하게 되자 더 이상 높은 이윤을 내기 어렵게 된 한국의 운동화 공장들이 거의 문을 닫게 되었다. 그런데 이 공장들은 대부분 중국으로 옮겨가 그곳에서 생산을 계속하고 있다.

    사회적 필요가 사라짐에 따라 사양산업이 된 산업은 사라질 수밖에 없으며, 사라지는 게 바람직하다. 다만 해당 산업에서 일해 온 노동자들이 실업의 고통을 겪지 않고 좋은 조건의 새로운 일자리를 얻을 수 있으면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양산업 소멸로 인한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실업 등의 고통으로 그대로 전가한다.

    자본가들의 이윤을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에 억지로 사양산업이 되는 경우는 사실 구조조정의 네 번째 유형, 즉 자본가들의 이윤 확대만을 목적으로 하는 인위적 구조조정의 한 형태에 해당한다.

    경쟁 격화로 인한 인수합병 구조조정

    둘째, 격화되는 경쟁 속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기업들이 쓰러지면서 발생하는 인수합병 구조조정이다. 인수합병은 공황을 거치면서 대대적으로 일어나지만, 공황이 아니더라도 발생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 원리상 인수합병은 늘 벌어질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쥐어짠 이윤으로 막대한 부를 챙기면서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끝없이 생산을 늘리려 한다. 그런데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늘어나는 생산만큼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가지 않으므로 생산품이 다 소비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사회가 필요한 수준으로 생산 품목과 양을 미리 조절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상 필요 이상의 과잉생산이 곳곳에서 이루어진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팔리지 않는 과잉생산물이 곳곳에 엄청나게 쌓이게 되고 늘어나는 재고를 감당하지 못해 생산을 중단하거나 아예 파산하는 기업들이 하나둘 늘어간다.

    기업의 파산은 돈을 대준 은행의 파산을 낳고 고용된 노동자들의 실업을 낳으면서 그만큼 사회 전반의 생산과 소비를 위축시킨다. 그러다 파장이 커지면 갑자기 기업들의 연쇄 파산과 대규모 실업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진다. 공황이 시작되는 것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곳곳에 쓰러져 과잉생산이 해소되면 공황은 막을 내리고 다시 생산과 투자가 늘어나는 호황으로 접어든다.

    그런데 공황을 지나는 동안 공황을 버텨낼 힘을 가진 자본가들은 쓰러진 기업들을 헐값에 사들인 후 호황을 맞아 다시 생산을 시작한다. 이것이 공황을 거치면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인수합병이다.

    꼭 공황이 아니더라도 경쟁이 격화되면 쓰러지는 기업들이 생겨난다. 특히 오늘날처럼 세계적 수준에서 끝없는 경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는 멀쩡해 보이던 기업이 순식간에 쓰러져 인수합병 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경쟁이 격화되다 보니 쓰러질 정도가 아니더라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 합병에 나서기도 한다. 공동 기술개발, 생산 노하우 공유, 부품업체나 영업시스템 공동이용 등을 통해 상당한 추가이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인수합병은 많은 경우 정리해고나 임금·노동조건의 악화로 이어진다. 인수합병한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공격해서 이윤을 극대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어수선한 상황과 불안감 고조로 노동자들의 단결력과 저항력이 약해지기 쉽다는 점도 자본가들의 공격이 집중되는 이유가 된다.

    신기술 도입으로 인한 기업 내부 구조조정

    셋째, 신기술 도입으로 인한 기업 내부 구조조정이다. 가령 자동차 공장이라면 플랫폼 통합이나 자동화 로봇 도입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플랫폼을 통합하면 한 라인에서 여러 종류의 차를 동시에 생산할 수 있으므로 시장 상황 변동에 맞추어 차종별로 생산량을 조절하기가 쉬워진다. 신차가 개발되어 양산체제에 돌입하는 시간도 줄일 수 있다. 자동화 로봇이 도입되면 생산효율이 높아지고 생산속도도 빨라질 수 있다. 그밖에도 생산성 향상을 위해 라인재배치나 연구소통합을 추진할 수도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격화되는 경쟁 때문에 자본가들은 새로운 기술이 개발될 경우 이를 앞 다투어 도입하게 된다. 그러지 않으면 바로 도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술 도입의 성과가 노동시간 단축이나 노동강도 완화와 같은 혜택으로 노동자들에게 돌아간다면 얼마든지 좋은 일이지만, 일반적으로 자본가들은 신기술을 도입하면서 오로지 이윤을 확대하려고만 한다. 심지어 신기술 도입과 관련된 노동력 재배치 과정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고용·임금·노동조건을 악화시켜 추가적인 이득마저 얻으려 한다.

    최근 맹렬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자동차 산업의 모듈화와 조선 산업의 블록화는 신기술 도입이 노동조건 악화와 뗄 수 없이 결합된 대표적인 사례다. 모듈화와 블록화라는 기술혁신을 통해 최종 조립공정으로 들어오는 부품의 크기를 키움으로써 같은 시간에 같은 설비를 갖고 훨씬 더 많은 자동차와 배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자본가들은 모듈과 블록의 제작 공정을 비정규직으로 가득한 부품업체로 외주화해 극도의 저임금과 엄청난 노동강도 속에서 생산하게 만들고 있다. 모듈화와 블록화에 따른 기술혁신으로 자본가들은 사상 최대의 이윤을 거둬들이고 있지만 노동자들은 급격한 비정규직 확산으로 오히려 더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이윤 확대만을 노리는 인위적 구조조정

    넷째, 자본가들의 이윤 확대만을 목적으로 하는 인위적 구조조정이다. 일반적으로 구조조정은 노동자에 대한 공격을 수반하게 되지만, 사회적 필요에 따른 조정이나 기술혁신과 같은 합리적 목적 또한 나름대로 포함하고 있다. 이 경우 노동자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구조조정 자체가 아니라 구조조정을 활용한 자본가들의 노동자 공격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는 나름의 합리적 목적조차 전혀 없이 오로지 자본가들의 이윤 확대만을 위하여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는 주식가치를 높이려고 멀쩡하게 흑자를 내고 있는 기업에서 일부러 정리해고를 단행한 뒤 주식을 팔아 큰돈을 챙기는 자본가들이 수도 없이 널려 있다. 세계 각국의 자본가 정부는 국유화된 국가기간산업이나 공공부문 기업들에 일부러 비효율 등의 온갖 딱지를 붙인 뒤 민영화(사유화)함으로써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사적 자본가들에게 먹잇감을 제공한다. 또한 오늘날 전 세계 자본가들은 만족스런 이윤을 얻지 못한다고 멀쩡한 공장을 폐쇄하고 저임금·무노조 상태의 노동력을 찾아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세계 곳곳으로 공장을 이동시키고 있다.

    2. 구조조정에 맞선 노동자투쟁의 방향

    ‘구조조정 반대’ 요구는 기본적으로 수세적이다. 여기에는 노동자의 조건과 권리를 ‘개선’하는 대신 현 상태를 단지 ‘방어’하는 데 급급한 수세적 심리가 반영되어 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구조조정 반대라는 추상적 요구 대신에 노동자의 구체적 요구를 정확히 내걸어야 한다. 또한 단지 방어적인 요구에 제한하지 않고 노동자의 삶과 노동조건을 개선하라는 요구를 과감하게 내걸면서 치고나가야 한다. 그렇게 공세적인 방향으로 전진하는 것만이 노동자들의 주도권을 보장할 수 있다.

    구조조정을 둘러싼 공방전에서 노동자들이 믿을 것은 오직 강력한 투쟁력과 폭넓은 단결, 단호한 노동자의식이다. 노동자들은 바로 그곳에 모든 고민과 활동,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1) 인수합병과 노동자투쟁 - '회사 살리기'인가, '노동자 살리기'인가

    사장들·주주들·은행가들, 즉 자본가들에게 기업의 합병이나 매각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들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재산을 사고파는 일이며, 나아가 경영권을 둘러싼 피 튀기는 전쟁을 수반하는 중대사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는 싸워야 할 대상이 바뀌는 것일 뿐 근본적으로 달라질 게 없다.

    이를테면 기아자동차가 현대자동차에 인수되었다고 해서 기아 노동자들의 처지가 크게 달라졌다고 말할 수 없다. 실제로 기아에서 현대로 소유주가 바뀌었지만, 그다지 좋아진 것도 그렇다고 특별히 나빠진 것도 없었다. 어차피 기아자동차가 노동자들의 것이 아닌 이상, 노동자들은 매각 이전과 똑같이 착취당하는 처지에 놓여 있을 뿐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 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맞서야 할 자본가가 바뀌었다는 점뿐이다.

    그런데 누가 기업의 소유자가 되든,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게 본업이다. 노동자들에게는 ‘단결하여 투쟁하는 것’ 말고는 탈출구가 없다. 회사가 누구에게 팔리든 누구와 합병하든 상관없이, 노동자들은 자본가에 맞선 투쟁력과 조직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노동자들에게 합병이나 매각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과정에서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더 높은 노동강도를 강요하며, 노조를 약화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노동자가 투쟁해야 할 지점이다.

    “자본가들끼리 회사를 사고팔든 합치든 우리에겐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노동자의 삶을 조금이라도 악화시키려 한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조금도 용납하지 않고 단호하게 투쟁할 것이다!”

    노동자가 내걸어야 할 요구는 ‘회사 살리기’가 아니라 ‘노동자 살리기’다. 노동자들은 ‘합병반대’나 ‘매각반대’가 아니라 ‘해고반대’, ‘노동조건 악화 반대’, ‘노조탄압 반대’와 같은 계급적 요구를 내걸어야 한다.

    ‘회사 지키기’, ‘해외매각 반대’와 같은 것은 노동자를 대변하는 계급적 요구가 될 수 없다. 여기서는 자본에 맞선 단호한 투쟁 대신에 ‘약간이라도 더 나은 자본가’를 선택하는 데 집착하는 타협적 모습, 그리고 그 연장선에 있는 노사협조주의가 자라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내 자본가와의 융합, 국내 자본에 대한 지지와 같은 몰계급적인 민족주의 늪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노동자의 희망은 해외매각 반대와 같은 요구를 통해서는 전혀 개척할 수 없다. 어떤 자본가가 소유하건 관계없이, 그리고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자본가에 대항한 단호한 투쟁만이 노동자에게 희망을 열어줄 수 있다.

    1997년 르노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은 소중한 예다. 다국적기업 르노자동차가 벨기에 공장 폐쇄를 결정하면서 해고를 통보하자 벨기에 르노자동차 노동자들이 공장점거투쟁에 들어갔다. 이에 프랑스·독일·스페인 르노자동차 노동자들이 적극 지지·연대하고 나서면서 공장 폐쇄 결정을 마침내 철회시켰다. 그리고 이 모범을 보면서 유럽의 전투적 노동자들 사이에서 ‘단호한 국제적 단결만이 대안’이라는 자각이 성장했다.

    1990년대 후반 기아자동차 노동자들은 한때 ‘기아 살리기, 김선홍 살리기’에 나섰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결국 기아노동자들은 해고·노조탄압·노동조건 악화에 맞선 투쟁만이 대안임을 뼈저리게 배우면서 ‘노동자 살리기’를 내걸게 되었다.

    2001년 대우자동차 투쟁에서도 이 점은 분명히 드러났다. 대우차노동조합이 늦게나마 투쟁에 나설 수 있었던 요구, 그리고 자본과 노동의 첨예한 대치 속에 인천 시내에서 맹렬하게 전개된 연대투쟁을 불러일으킨 요구는 ‘해외매각 반대’ 따위가 아니라 바로 ‘정리해고 철폐, 노동조합 탄압 분쇄’였다. 회사가 GM으로 넘어가든, 현대로 넘어가든, 법정관리로 남든 상관하지 않고 정리해고를 철폐하고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을 격퇴했다면 대우자동차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전국 모든 노동자들의 승리가 되었을 것이다.

    노동조합의 투쟁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현장 노동자들의 절실한 계급적 요구를 정면으로 내거는 것, 나아가 공동의 요구를 바탕으로 전국 노동자들이 하나로 단결하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임을 이처럼 노동운동의 생생한 경험이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2) 공장폐쇄와 노동자투쟁 - 계급적 요구와 단호한 투쟁만이 살 길

    공장폐쇄 앞에 선 노동자들에게는 가장 맹렬하고 단호한 투쟁이 요구된다. 자본가들 또한 물러서기 힘든 절박한 조건에서 노동자들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공장폐쇄 문제는 대개 산업 자체가 사양산업으로 되는 경우, 자본가들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공장을 이동하려는 경우, 산업 전반의 설비과잉이 너무 심각하여 경쟁에서 밀려난 기업이 인수합병 되지 않고 그냥 파산으로 치닫는 경우에 제기된다.

    그런데 많은 경우 자본가들은 공장폐쇄를 놓고 막판까지 저울질한다. 노동자들에게 대량해고, 임금삭감, 노동강도 강화와 같은 굴욕적 양보를 받아들이라고 파상적인 공세를 퍼붓는다. 자신들의 요구를 노동자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끝내 공장을 폐쇄할 것이라고 협박한다. 은행이나 채권단은 자금지원을 끊어 공장가동을 멈춰버림으로써 협박을 현실화한다.

    이렇게 자본가들이 집요하게 협박을 해대면 노동자들은 위축되기 쉽다. 실업자가 되고, 심지어는 체불임금과 퇴직금까지 날아갈 가능성은 큰 두려움을 갖게 한다. 그러나 당장의 파국을 피해보려고 자본의 협박에 굴복하는 순간 노동자들에게는 더 비참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노동자들이 자본의 협박에 굴복한 가운데 다시 가동되는 공장은 이제 절망만이 판치는 죽음의 공장이 되어 버린다. 단결력과 투쟁력을 잃어버린 노동자들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 노예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연명하는 것조차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노동자들을 더 쥐어짠다 하더라도 격화되는 시장 경쟁은 다시 공장을 폐쇄할 수밖에 없도록 자본가들을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특히 경쟁하는 자본가들에게 고용된 노동자들이 서로 갈라져 경쟁적으로 굴욕적인 양보를 받아들일수록 상황은 더 빨리 진행된다.

    그러나 굴욕적인 양보로 꺾이면서 단결력과 투쟁력을 잃어버린 노동자들은 다시 공장폐쇄 위협 앞에 서더라도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자본가들의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가장 비참한 처지에 내몰리고 만다.

    이처럼 공장폐쇄라는 문제를 놓고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정면으로 공격해 오는 경우, 노동자들은 죽을 각오로 투쟁해서 이것을 격퇴시킬 것인가, 아니면 항복하고 비참한 임금노예로 추락할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죽을 각오로 투쟁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자본가와 채권단, 그리고 정부 모두와 맞서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자본가의 이윤 논리를 정면으로 거부하면서 노동자 계급의 요구를 갖고 단호하게 맞서는 것이다.

    “공장은 우리 노동자들이 일궈온 것이다. 기계, 라인, 기술 모든 것이 우리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졌다. 비록 지금은 자본가들의 소유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공짜노동이 축적된 것으로 당연히 우리를 위해 기능해야 한다. 또한 회사를 파산 위기로 내몬 책임은 자본가와 그 대표자인 정부에 있다. 나아가 만성적인 과잉생산을 낳는 자본주의 사회 자체에 있다.

    그러므로 공장이 돌아가는 한 우리는 어떤 양보도 할 수 없다. 한 명의 해고도, 한 푼의 임금삭감도, 한 치의 노동강도 강화도 허용할 수 없다. 노동조합의 권리에 대한 어떤 양보도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노동자의 자존심을 걸고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이 끝내 공장을 폐쇄하겠다면, 우리는 생존권과 일자리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공장을 털끝만큼도 건드릴 수 없게 지킬 것이다. 자본가와 채권단, 그리고 정부가 연대책임을 지고 우리의 생존권과 일자리를 해결하도록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이처럼 단호한 의지로 결사 투쟁하는 노동자들만이 공장폐쇄라는 상황 앞에서도 생존권을 지켜 내거나 최선의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공장을 폐쇄하더라도 자기 뜻대로 생산설비를 빼낼 수 없거나 재산이 거덜날 때까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책임질 수밖에 없다면, 자본가들은 공장폐쇄가 과연 유리한지 다시 계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지 노동자들을 공격하려는 협박용으로 공장폐쇄를 꺼내든 자본가들은 더욱 확실하게 물러설 것이다.

    만일 공장이 끝내 폐쇄되더라도 결사 투쟁하는 노동자들만이 자본가와 채권단, 그리고 정부로부터 최대한의 조치를 강제해 낼 수 있다. 물론 아무리 강력한 투쟁을 한다 하더라도 자본주의 사회 자체를 깨뜨리지 않는 한 공장을 폐쇄당한 노동자들이 생존권과 좋은 일자리를 온전하게 보장받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자본가들의 협박에 굴복하여 굴욕적으로 양보했다가 단결력과 투쟁력을 잃어버린 노동자들이 나중에 속수무책으로 공장폐쇄를 당하는 상황에 비교하자면, 결사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분명히 훨씬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단호한 의지로 결사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지켜내는 ‘노동자의 정신’이다. 이것은 당장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며, 또 다른 노동자투쟁이 떨쳐 올라올 수 있는 힘이 된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본가들의 협박과 공격에 꺾이지 않고 결사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여기저기에 자꾸 늘어날수록 자본가들의 사기는 꺾여가고 공세는 무디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단호한 의지로 결사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앞장서 지키는 노동자계급의 선봉대가 된다.

    역으로 모든 노동자들은 공장폐쇄 앞에 선 노동자들의 일이 바로 내 일이라는 생각으로 노동자들의 요구가 완전히 관철될 때까지 모든 힘을 총동원해 함께 파업에 돌입하고 함께 투쟁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현실화될 때만 노동자들은 자본가들 전체를 공포에 떨도록 만들 수 있으며, 자본가들이 강력한 노동운동에 놀라 물러설 수밖에 없도록 강제할 수 있는 힘을 손에 쥘 수 있다.

    이것은 꿈이고, 현실가능성 없는 이야기일까? 지금 당장은 꿈일 것이다. 그러나 꿈을 여러 노동자들이 함께 꾼다면, 그것은 살아 있는 현실이 된다.

    노동자들은 물러서지 않고,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실천해야 한다. 바로 지금부터 아무리 작은 사안이라도 노동자의 계급적 요구, 현장의 생생한 요구를 정면으로 내걸고 투쟁해야 한다. 모든 투쟁사업장에 힘차게 연대해야 한다. 나아가 수세적인 처지에만 머물지 말고 공격적인 요구로 전진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철저하게 투쟁하면 할수록, 공세적으로 전진하면 할수록, 힘차게 연대하면 할수록, 위기의 시기에도 노동자 생존권을 확실하게 지켜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3) 자동화 또는 신기술 도입과 노동자투쟁

    자동화 또는 신기술 도입은 그 자체로는 노동자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다. 투쟁의 결과에 따라 누구를 위해 이용될 것인지가 결정되는 사안이다.

    여기서 생산력 발전의 성과를 둘러싸고 노동과 자본은 첨예하게 대립한다. 자본가들은 자동화와 신기술 도입을 오로지 이윤을 늘리는 데 이용하려 한다. 노동자들을 해고시켜 임금비용을 줄이거나 노동강도를 높이는 데 활용하려 한다. 반대로 노동자들은 생산력 발전의 성과를 노동자 자신을 위해 이용하려 한다. 노동시간 단축이나 임금인상, 노동강도 완화 요구는 그것을 대표한다.

    이처럼 서로 대립하는 두 세력의 권리 가운데 무엇이 관철되느냐는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 결정된다. 노동자들은 정의와 인간성을 대표하지만, 자본가들은 인간을 기계와 자동화의 희생물로 전락시키는 비인간화와 착취를 대표한다.

    노동자는 기계화, 자동화, 신기술 도입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는 나쁜 것이 아니며, 생산력의 발전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것이 소수 자본가들의 이윤을 위해, 즉 노동자 착취를 위해 사용된다는 점에 있다. 노동자들이 반대하는 지점도 정리해고, 노동강도 강화, 비정규직 확대와 같은 문제로 집중되어야 한다. 투쟁의 대상과 목표를 분명히 해야 주도권을 움켜쥘 수 있다.

    노동자들은 자동화·기계화·플랫폼화 같은 새로운 생산방식 도입이 해고, 비정규직 도입, 일방적이고 노동자에게 불리한 전환배치, 노동조건 악화, 노동조합 공격 등과 관련되어 있다면 이것을 단호하게 격퇴해야 한다. 그것은 구조조정이라는 탈을 쓴 자본의 공격이며 강화된 착취이자 억압이다. 여기서는 단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대항해야 한다.

    다만 ‘구조조정 반대’와 같은 추상적인 요구를 넘어서서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구체적인 공격 하나하나를 정확하게 응징해야 한다. 또한 노동자의 대안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가령 △희망퇴직·정리해고를 비롯한 모든 해고 금지 △외주화나 비정규직 투입 금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 △작업속도를 낮추고 인력을 충원할 것 △작업환경을 개선할 것 △지금의 평균임금을 기본급으로 돌리고 생활임금을 보장할 것 △한 시간의 잔업도 없는 주 40시간 노동제 쟁취 △주야2교대를 주간연속2교대로 전환할 것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만일 노동자에 대한 공격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이 도입된다면, 노동자들은 기계나 새로운 라인이 현장에 들어오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일단 그것이 들어온 뒤에 노동자의 구체적 요구를 제기하는 것은 전술적으로 무기력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단 한 대의 기계도, 새로운 라인을 도입하는 자그마한 공사도, 조금의 시범운전도 허용할 수 없다. 당신들이 그토록 절박하게 그것들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면, 우리 노동자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것의 도입을 허락할 수 없다.”

    이런 전술을 통해 우리는 반대하는 대상이 기술이나 기계, 새로운 생산방식이 아니라 노동자에 대한 공격임을 분명히 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자본과 맞설 수 있다. 이 경우 애가 타는 측은 자본가이지 결코 노동자가 아니다. 노동자는 주도권을 틀어쥐고 치고나갈 수 있다.

    결국 공을 받고 고민하는 것은 자본가들이 될 것이다. 자동화나 신기술을 도입하고자 한다면 그들은 노동자들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 만일 그것이 두려워서 도입을 꺼린다면 그들은 경쟁체제에서 몰락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항상 노동자들이 투쟁의 주도권을 쥐고, 자본가들은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도록 밀어붙여야 한다.

    나아가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에게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거나 운반하는 데 필요한 새로운 장비나 지겨운 단순노동을 대체해주고 산재가 빈발하는 위해작업으로부터 노동자를 해방시킬 수 있는 자동화 프로그램 등을 ‘노동자들에게 어떤 불이익도 주지 않는다’는 전제 조건 아래 빨리 도입하라고 요구하고 투쟁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새로운 기술·기계를 활용해 노동의 고통을 덜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면서, 노동자들은 사회·정치·문화예술 등의 제반 활동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수단으로 기술과 기계를 적극 활용하는 ‘노동해방’ 전망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3. 고용불안은 왜 일어나는가?

    1997 대 1이라는 엄청난 경쟁률. 얼마 전 치러진 9급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이다. 7명을 모집하는데 자그마치 14,000명 가까이 응시했다. 이렇게 공무원 시험에 열풍이 분 것은 극심한 취업난과 고용불안 탓이다. 공무원처럼 월급이 많지 않더라도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된 일자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노동자 2명 가운데 1명이 ‘고용불안’을 느낄 정도로 문제는 아주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서울에 있는 제조업체 노동자 500명을 대상으로 2005년 4월에 조사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46.2%가 ‘매우 심각한’(11.4%) 또는 ‘약간 심각한’(34.8%)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 때문에 최근 몇 년 동안 ‘일자리’가 큰 화두가 되어 왔다.

    그런데 고용불안은 단순히 고용만의 문제가 아니다. 실업자들은 생계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낙담하고 좌절하며, 가족 관계, 친구 관계까지 망가지기 쉽다. 半실업 상태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비인간적 대우, 더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조건 때문에 신음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임금을 좀 더 받고 일자리가 안정되어 있다는 정규직 노동자들 또한 전반적인 고용불안 시대에 자본으로부터 고용·임금·복지 등 다방면에서 끊임없이 공격받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고용불안은 ‘일단 일자리는 유지하고 보자’며 임금·복지 등에서 양보하는 수세적 태도, ‘일할 수 있을 때 많이 벌고 보자’는 편협한 실리주의,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내가 사는 게 중요하다’는 소심한 개인주의, ‘물량이 안정되고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는 자본가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다. 그리고 고용불안은 자본과 정부의 교활한 공작과 맞물려 비정규직과 정규직, 실업노동자와 취업노동자, 심지어는 같이 일하고 있는 노동자 사이를 갈가리 찢어 반목과 질시를 만들기도 한다. 한마디로 고용불안은 노동자들을 서로 경쟁하도록 만들고 모래알처럼 흩어진 가련한 임금노예들로 전락시키며, 노동자운동의 꿈과 패기를 모두 앗아가는 괴물이 되고 있다.

    하지만 극심한 고용불안은 노동자계급에게 위기이자 기회이기도 하다. 고용불안은 노동자계급에게 자본주의 사회가 왜 이토록 야만적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곱씹어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정규직만의 단결, 비정규직만의 투쟁을 넘어 정규직과 비정규직, 취업노동자와 실업노동자의 장벽을 넘어 모든 노동자들이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해서 자본주의 체제의 심장을 겨냥하며 투쟁할 수 있는 계기 또한 제공하고 있다.

    노동자계급은 고용불안의 늪에 빠져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는 대신, 고용불안이 불러일으키는 기회를 정확히 붙잡고 도대체 고용불안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그 원인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런 고용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전진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1) 고용불안, 얼마나 심각한가?

    일자리가 없다

    2007년 실업급여 수급자가 68만 5천명에 이르러 4년 연속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2004년 46만 8천명으로 IMF 공황 시기인 1998년 43만 명 기록을 깬 이후 2005년 56만 3천명, 2006년 61만 명으로 해마다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워 온 것이다.

    2008년 2월 현재 공식 실업자만 82만 명이다. 하지만 자본가정부의 공식 실업통계를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일주일에 한두 시간만 일해도 실업자로 분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구하려고 공단을 헤매다가 결국 포기한 ‘실망실업자’도 빼버린다. 일자리를 얻어 가정생계에 보탬도 되고 사회활동도 하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어 가사노동만 하고 있는 주부들도 수두룩하다. 이들을 모두 합치면 실제 실업자 수는 훨씬 더 불어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2월 현재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쉬고 있는 사람이 162만 8천명, 기업체 입사나 공무원 시험 등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자가 60만 명이다. 이들과 공식 실업자를 더하면 305만 명인데, 이것이 실질 실업자 수를 보여주는 최소 수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랜 동안의 경제침체로 새로운 일자리가 별로 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회사가 성장했는데도 일자리가 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가령 현대자동차는 10년 가까이 기록적인 흑자경영을 거듭하고 있지만 국내 정규직 고용을 거의 늘리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은 대규모 흑자로 전환하고 업종이 호황인데도 5년간 노동자 수를 계속 줄였다. 기아자동차는 5년 간 두 배 넘게 이익을 남기고도 고용은 9.9% 늘리는 데 그쳤다.

    이런 결과는 몇몇 기업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다. 1,000명 이상 대형사업체의 노동자 수가 96년 145만에서 2004년 80만으로, 8년 만에 절반 정도로 뚝 떨어졌다. 이것은 자본가들이 항상 늘어놓는 ‘성장이 일자리 늘린다’는 말이 새빨간 거짓말임을 잘 보여준다.

    신규 일자리는 대부분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

    비정규직은 자본주의 생리상 항상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자운동이 급성장하자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을 분할통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비정규직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IMF 공황을 맞아 자본가정부가 1998년 2월에 정리해고제·근로자파견제 등을 도입하자 비정규직이 대폭 늘어났다. 그리고 정규직은 빠르게 비정규직으로 대체됐다.

    1996년 이후 2005년까지 피고용자는 약 198만 명이 늘어났지만, 이 가운데 상용직은 41만 명에 불과한 반면 임시직과 일용직은 각각 약 115만 명과 42만 명 늘었다. 상용직은 전체 피고용자의 58.1%에서 52.1%로 줄었고, 임시직은 27.9%에서 33.3%로, 일용직은 14.0%에서 14.6%로 늘어났다.

    비정규직은 이제 850~900만 명에 이르러 1,500만 노동자의 절반을 훨씬 넘어섰다. 신규 고용의 70%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관리자들을 빼고는 90~100%를 비정규직으로 채우고 있는 공장들도 많다. 자동차산업의 현대모비스·현대파워텍·동희오토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조선산업의 블록공장들, 전자산업의 OEM 제조업체들도 거의 그렇다.

    최근에는 단기계약직이 더욱 확대되고 있다. 11개월, 9개월, 6개월, 3개월 단기 계약직은 물론이고 1개월짜리 초단기 계약직까지 늘고 있다. 이들은 그야말로 파리 목숨이다. 자본가들이 ‘후’ 불면 꺼져버릴 수밖에 없는 바람 앞의 촛불 신세다. 그리고 계약을 여러 차례 갱신해 계속 고용이 된다 해도 정규직이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심각한 고용불안을 겪는 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현대판 노예’에 다름 아니다. 노동부는 2006년 1∼5월 장애인, 기혼 여성, 외국인, 비정규직 등 불안정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전국 3,786개 사업장을 지도 점검한 결과 46%가 넘는 1,753개 사업장에서 3,481건의 법 위반사항을 적발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에 적발된 기업들 중에는 최저임금 미만 지급, 임금 상습체불 등 생계를 위협하는 고용주들이 많았다. 울산 울주군의 한 의료용품 회사는 재직 노동자 8명의 4∼5개월 치 임금을 주지 않았고, 전남 순천의 한 업체는 노동자 9명에게 하루 2만 4,800원 미만의 급여를 지급하고 이를 시정해달라는 요구도 무시해 입건됐다. 이밖에 노동자들에게 야간노동을 시키고도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대전 서구의 한 업체도 입건 조치됐다.” (<문화일보> 2006년 6월 29일)

    끝을 모르는 자본가들의 무한탐욕이 모든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내몰아 비정규직의 삶을 밑바닥까지 추락시키려 하면 할수록 노동자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2) 왜 고용이 이토록 불안한가?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용불안은 필연이다

    노동자와 자본가는 적대적이다. 노동자의 임금이 오르면 자본가의 이윤은 줄어든다. 노동자의 임금을 깎을 때만 자본가는 이윤을 늘릴 수 있다. 이 점을 많은 노동자들은 날카로운 계급적 직관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적대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노동자와 자본가는 자본주의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다. 생산을 하려면 노동력과 기계·공장·원료 같은 생산수단을 결합시켜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의 소유자인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고용할 때만 생산할 수 있다. 노동력의 주인인 노동자들은 자본가들한테 고용될 때만 생산할 수 있다. 그리고 그때에만 노동자들은 먹고 살 수 있다. 전체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장악하는 노동해방 사회가 오기 전까지는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많은 노동자들이 작업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회사를 안정화해서 고용안정을 보장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량과 회사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안정이란 불가능하다.

    자본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한 자본가들이 사회적 필요가 아니라 사적 이익(돈벌이)을 위해 무한경쟁을 벌이며 생산하는 체제다. 그렇기 때문에 한 기업 차원에서는 완벽할 정도의 계획화가 가능하지만, 사회 전체 차원에서는 초보적인 계획화도 불가능하다. 가령 한 자동차 회사 안에서는 일일·주간·월간 생산계획이 세밀하게 수립되어 착착 진행되지만, 자동차산업의 과잉생산이 심해도 기아·현대, GM대우의 생산 물량을 사회적으로 조절하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자본주의 사회 전체는 본질적으로 무계획적이고 무정부적이며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은 호황·불황·공황을 반복하는 경기순환에서 잘 드러난다. 자본가들은 이윤을 극대화하고 시장을 좀 더 빼앗기 위해 맹렬하게 투자하고 생산에 열을 올린다. 하지만 이에 따른 호황은 곧 공황을 낳는다. 호황의 정점에서 발생하는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는 자본가들에게는 임금 부담을 높여 이윤율을 저하시키기 시작한다. 게다가 호황의 기회를 붙잡으려는 자본가들의 정열적인 투자는 전체 투자자본의 구성 비율이 기계와 원료 등의 불변자본 중심으로 급속도로 재편되도록 만들어, 이윤율을 저하시킨다. 이런 가운데, 사회 전체적으로 늘어나는 소비보다 더 큰 규모로 생산이 확대된다. 호황 시기에 지속적으로 투자된 자본은 생산의 효율성을 크게 높여 놓고, 호황기의 정점에는 공장 가동률이 최고치에 달해서 엄청난 양의 생산물을 토해놓기 때문이다. 그 결과 생산과 소비 사이의 격차가 극대화되고, 생산품을 제대로 팔지 못한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도산하면서 대부분의 기업들이 공장가동률을 급격하게 낮추기 시작한다. 결국 공황이 닥친다. 노동자들을 덮치는 해고와 임금하락은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소비능력을 급격하게 약화시킨다. 위험을 깨달은 은행들은 빌려준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하고, 금리는 높아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황이나 공황은 극히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일어날 수밖에 없는 기본 생리현상이다.

    이와 같은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은 고용불안으로 직결된다. 호황기에는 노동자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가 불황기·공황기에는 노동자들을 마구 토해낸다. 심각한 불황과 공황의 시기가 아닐지라도 자본가들 사이의 첨예한 경쟁은 항상 기업을 불안정하게 만들며, 그 결과 노동자들의 고용도 항상 불안정하다. 한쪽에서 잔업·특근을 밥 먹듯이 하며 과도노동에 시달릴 때, 다른 한쪽에서는 일자리가 없어 굶주림에 시달려야 하는 일이 흔하게 벌어진다. 자본주의 시장의 불안정성과 예측불가능성 때문에 얼마 전까지 장시간노동으로 혹사당했던 노동자들이 어느새 일거리가 부족해 생계가 위협당하고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노동자착취가 핵심인 자본주의에서 고용불안은 피할 수 없다

    사기업에 비해 일거리가 좀 더 안정적인 철도·통신·전력 같은 공기업에서는 고용이 안정적일까? 공기업을 선호하는 현상만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공기업도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기업이며 돈벌이(수익성)를 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노동자를 무자비하게 착취해야만 한다. 그래서 KT(구 한국통신)는 1997년부터 2001년까지 4년 동안 총인원의 25%에 해당하는 1만 5천 명을 잘랐다. 그 이후에는 공기업이라는 옷을 벗어던지고 아예 민영화되어 다른 통신업체들과 필사적인 이윤경쟁을 벌이고 있다. 철도공사 역시 KTX와 새마을호 승무업무의 외주화 정책에서 드러나듯이,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뒤흔들고 있다.

    휘청거리는 회사에서는 고용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면, 성장하는 회사에서는 고용이 안정적일까? 현실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노동자들이 정년퇴직해 숫자가 줄어도, 공장과 설비가 늘어나도, 인력은 결코 쉽게 늘어나지 않는다.

    자본가들이 말하는 ‘성장’이란 ‘이윤 극대화’일 뿐이며, 이윤은 노동자들을 더 강하게 쥐어짜고 노동자 숫자를 줄여 인건비를 줄이는 만큼 늘어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죽기 직전까지 노동강도를 높이고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 사장들의 이윤확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어쩔 수 없이 인력을 늘리더라도, 신규인력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인건비가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고용불안은 자본가들에게 짭짤한 ‘경제적 이익’만 가져다주는 게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들을 갈가리 찢어 무력화할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분할통치수단이다.

    “2005년 6월 기아차 광주공장 신규채용 때 취업원서를 받으려는 긴 줄이 1km를 넘어 장사진을 이뤘다. 이처럼 수많은 청년들이 ‘공장노동’을 원할 정도로 좋은 일자리를 둘러싼 노동자들의 경쟁은 격화되고 있다.” (<한겨레21>, 2006년 9월 19일)

    이렇게 실업노동자들이 공장 바깥에서 긴 줄을 형성하고 있을 때, 자본가들은 이들을 이용해 취업노동자들의 임금인상, 노동조건 개선투쟁을 억누른다. 자본과 정부는 대공장 정규직을 노동귀족이라고 매도하며 사회로부터 고립시킨다. 이렇게 해서 취업노동자와 실업노동자 사이의 대립이 강화된다.

    이런 분열과 대립에 길들여지게 되면, 정규직이 같은 공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을 ‘고용의 방패막이’로 이용하기도 한다. 현대차 노조가 사측과 2000년에 체결한 ‘완전고용합의서’는 비정규직 확대를 인정하고, 회사가 어려울 경우 비정규직을 우선 해고한다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다. 회사가 어려울 때 비정규직을 잘라서 정규직의 고용을 보장받겠다는 것이다. 정규직의 일거리가 없어질 때,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자리를 빼앗고 비정규직을 해고시키는 것을 합의해주는 경우도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비정규직은 정규직에게 강한 반감을 품을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분열과 대립이 강화된다.

    하나로 단결한 노동자는 더없이 강하지만, 여럿으로 쪼개진 노동자는 약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취업노동자와 실업노동자들은 모두 무기력해져 자본과 정부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수동적 존재로 전락한다. 그것이 바로 자본가계급이 고용불안을 통해 핵심적으로 노리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고용불안도 커진다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이것은 자본주의 초기 영국에서 면방직업의 발달로 양털의 수요가 증가했을 때, 양을 많이 길러 돈을 벌려고 지주들이 농민들을 쫓아냈던 것을 비꼬았던 말이다. 지금은 ‘로봇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공장자동화·사무자동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있다는 말이다.

    자본가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기계를 쓴다. 다른 자본가들보다 더 좋은 기계를 사용하면, 더 낮은 비용으로 물건을 생산할 수 있어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한 자본가가 사용했던 기계가 점차 보편적으로 사용됨에 따라 특별이윤은 사라진다. 계속되는 경쟁은 더 나은 새 기계를 사용하도록 자본가들을 밀어붙인다. 그에 따라 자본가들은 가령 과거에 10명이 했던 일을 5명에게 시키며, 나머지 5명을 ‘잉여인력’으로 간주해 정리해고하려 한다. 이런 일이 지금 많은 현장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다.

    선진자본주의일수록 고용불안이 심하다. 왜 그런가?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생산력이 발전해 생산수단 대비 노동력의 비율이 꽤 낮기 때문이다. 물론 자동화가 확대되면 로봇제조공장 같은 새로운 산업이 확대된다. 하지만 자동화로 인해 쫓겨나는 노동자가 새로운 산업에서 일자리를 얻는 노동자보다 더 많다. 왜냐하면 로봇제조공장 같은 새로운 산업일수록 높은 자동화로 생산수단 대비 노동력의 비율이 낮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독일 등 유럽 자본주의 국가들은 평균 10%대로 실업률이 아주 높다. 미국이 5~6%의 실업률로 상대적으로 낮다고 하지만, 그것은 해고가 아주 자유롭고 비정규직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사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생산성이 높을수록 노동자의 고용불안이 커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아주 반동적임을 뜻한다. 전체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장악해 사회적 필요를 위해 생산하는 노동해방 사회라면, 노동생산성이 높아져 과거에 8명이 8시간씩 하던 일을 4명이 8시간만 해도 될 때, 8명이 4시간씩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사회봉사를 하거나, 정치에 참여하고, 시를 쓰며 그림을 그리는 등 더 창조적이고 더 고차원적인 노동, 놀이와 결합된 즐거운 노동, 충분한 휴식과 여가를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할 것이다.

    결국 자동화 자체가 원인이 아니다. 자본주의 초기에 사람을 잡아먹었던 것은 양이 아니라 토지 주인들이었고, 더 나아가 새롭게 성장하고 있던 자본주의 사회였다. 지금도 노동자들을 차가운 길거리로 내모는 것은 기계(자동화) 자체가 아니라 기계를 오직 돈벌이만을 위해 사용하는 자본가들이다. 원인은 이 자동화의 성과를 노동자들의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가들의 이윤을 위해서만 이용하는 자본주의의 착취적 속성에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생산성이 높을수록 자본가들은 더 많은 노동자들을 실업자로 전락시킬 뿐이다.

    “향후 30년 이내에 세계 전체 수요에 필요한 모든 재화를 생산하는 데 현 세계 노동력의 단지 2%만 필요하게 될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 ≪노동의 종말≫)

    자본주의를 그대로 둔다면 좀 더 나이가 들었을 때 우리 노동자들은, 그리고 후손들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큰 고용불안의 덫에 걸려 고통 받게 될 것이다.

    해외공장 증설과 공장이전이 고용불안을 가중시킨다

    자본가들은 값싼 임금, 무노조에 고분고분한 노동자들, 현지 시장에 가까운 장소를 찾아 중국으로, 동남아로 공장을 이전한다. 특히 섬유·신발·가죽·완구·식품 등 노동집약형 산업의 이전이 두드러졌다. 2002년부터 2년 동안 노동자 300인 이상인 대규모 공장만 해도 1,930개에서 1,587개로 343개나 줄었다. 이틀에 한 개 꼴로 대규모 공장이 문을 닫은 셈이었다. 그에 따라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이들 대부분은 그냥 실업자로 머물거나 비정규직이 됐다.

    자본가들이 해외공장을 새로 짓거나 늘림에 따라 국내고용은 줄이고 해외고용을 확대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가령 현대자동차는 미국·인도·중국·터키 등 해외투자에 치중해 해외공장 인원이 2000년 약 3천 명에서 2006년 10월 현재 1만 3천 명으로 1만 명가량 더 늘어났다. 전자업계는 최근 몇 년 사이 해외공장이 빠르게 증설돼 전체 해외인력이 국내인력보다 많은 ‘고용 역전’ 현상도 일어났다. 가령 LG전자는 2003년에 전체 해외인력이 3만 3천 명에 이르러 2만 7천 명의 국내인력 규모를 앞지르게 되었다.

    4. 고용불안에 맞선 노동자투쟁의 방향

    '물량 확보' 또는 '회사 살리기'가 고용을 보장하는가?

    자본가들은 회사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일자리를 지키거나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회사의 경쟁력은 노동자들을 적게 쓰고, 많이 부려먹을 때 강화된다. 경쟁력을 강화해서 일자리를 늘리자는 주장은 ‘자본가의 이익’과 ‘노동자의 이익’은 함께 갈 수 없다는 점을 모르거나 무시한 것이다.

    지금 많은 노동자들이 회사에 일거리가 부족할 때 고용불안을 느낀다. ‘이러다 일자리 잃는 거 아니냐’라는 위기의식을 강하게 느낀다. 그래서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게 고용을 안정시키는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즉 ‘물량유지(확대)=고용안정’이라는 환상을 품는 것이다. 그 결과 물량을 잘 확보하는 노조 간부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물량을 놓고 다른 부서, 다른 공장 노동자들과 경쟁을 벌이며 분열하기도 한다. 하지만 물량이 고용을 보장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들이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가 산다’는 논리와 ‘물량=고용’이라는 등식에 사로잡혀 있을 때,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독립적 이해를 철저히 추구하지 못하고 노동자의 단결투쟁력이 무너져 있을 때, 자본가들은 이 빈틈을 이용해 외주화, 비정규직화, 전환배치, 정리해고 등으로 노동자들을 가차 없이 공격한다. 고용안정의 최대 보루는 노동자의 날카로운 계급의식과 강력한 단결투쟁력인데, ‘물량=고용’이라는 환상에 빠져 단결투쟁을 방기하는 것이야말로 노동자들을 더 심각한 고용불안의 수렁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두 가지 점에서 ‘물량=고용’이란 등식은 허구적이다. 하나는 ‘현재’ 물량이 풍부하더라도, ‘미래’에는 결코 그것을 장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끊임없이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되는 것이 철칙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다른 하나는 ‘풍부한 물량’을 기대하면서 신차종을 유치하더라도, 그것이 기대치를 충족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이유에서다. 자동차산업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신차종의 성공 여부는 누구도 모른다!’ 일부러 성공 가능성이 없는 신차종을 내놓는 기업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신차종 중 실제로 성공하는 모델은 손에 꼽히는 것이 현실이다.

    ‘회사가 있어야 노동자도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회사가 어려울 때 회사 살리기에 동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회사를 살린다는 것은 곧 노동자들 자신의 임금을 삭감하고, 복지를 축소하며, 비정규직을 자르고 더 나아가 정규직의 일부까지 자르는 데 동참한다는 것을 뜻한다. 회사 살리기는 자본가 살리기이지 노동자 살리기가 아닌 것이다. 설사 회사 살리기 캠페인을 통해 회사가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성장가도에 들어섰다고 해보자. 자본주의에서는 같은 업종의 회사들이 치열하게 경쟁한다. 따라서 한 회사의 노동자들이 팔을 걷어붙여 회사 살리기에 나서면 다른 회사의 노동자들도 위기의식을 느껴 경쟁력 강화에 나서야 한다는 압박을 강하게 받을 것이다. 자본가들은 “저 회사를 봐라. 이대로 가다간 우리 회사가 망하게 생겼다. 우리 공장 노동자들이 허리띠를 더 꽉 졸라매야 한다”며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기 손발을 묶고 고통을 떠안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모든 경쟁업체에서 생산이 확대되면, 과잉생산과 무정부성은 더욱 커져 팔리지 않는 물건들이 쌓이고 회사가 더 큰 위기에 부딪혀, 더 빨리 파산할 수 있다. 결국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이 극에 이르고 있는 지금과 같은 쇠퇴기 자본주의에서 회사를 살리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맹렬한 캠페인은 과잉생산에 따른 파국을 더 키우고, 더 빨리 앞당길 뿐이다. 회사를 살려 고용을 보장받겠다는 순진한 환상이 오히려 고용불안을 부채질하는 것이다.

    개인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대안인가?

    자본가들은 경쟁 이데올로기로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세뇌시킨다. 그래서 경쟁에서 살아남은 유능한 노동자만 고용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고, 경쟁에서 도태된 노동자들은 항상 고용불안에 시달리거나 언제든지 잘릴 수 있다고 얘기한다. 이런 자본가의 논리에 사로잡힌 노동자는 개인 경쟁력을 강화하는 게 고용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라고 믿는다.

    하지만 앞에서 보았듯이 고용불안은 자본주의에서 피할 수 없다. 고학력 실업자들이 수두룩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아무리 개인의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고용불안을 피할 수 없다. 설사 열심히 노력한 대가로 개인의 실력을 키워 상대적으로 고용불안을 덜 겪는다 해도, 그것은 아주 일시적일 뿐이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미쳐 날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 경쟁력으로 고용안정을 지속적으로 보장받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환상이다. 만약 그것이 조금이라도 가능하다면, 이는 다수의 동료 노동자들을 희생한 대가로 얻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노예의 길이지, 노동자의 길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이런 개인 경쟁력 강화 이데올로기는 노동자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림으로써 단결을 파괴하고, 그 결과 고용불안을 더욱 가중시킨다. 자본가들은 굳게 단결해 투쟁할 수 있는 노동자는 쉽게 공격하지 못하지만, 모래알처럼 흩어져 무기력한 노동자는 얼마든지 쳐내버릴 수 있다.

    창업은 더더욱 대안이 될 수 없다. 자본주의에서는 소기업이 거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산산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게 객관적 운명이다. 대기업에서 명예 퇴직한 다음 호프집이든 뭐든 창업을 한 수많은 노동자들의 쓰라린 경험담이 그 점을 잘 말해 준다.

    고용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개인적 탈출구는 없다.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해결책만 가능하다.

    고용불안에 맞서 무엇을 내걸고 어떻게 싸울 것인가?

    노동해방만이 고용불안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안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고용불안에 맞선 투쟁을 포기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 안에서일지라도 노동자계급은 고용안정을 위한 투쟁을 가열차게 전개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계급이 굶주림과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울 수 있고, 노동해방으로 전진하는 데 필수적인 계급적 각성과 단결투쟁력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계급적 요구를 내걸고 투쟁할 것인가?

    ‘비정규직 철폐’, ‘외주화(비정규직화) 저지’,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은 가장 기본적인 요구다. 이와 함께 ‘모든 형태의 해고 금지’를 전면에 제기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단결 투쟁을 가로막고, 그럼으로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끔찍한 노예의 처지에 머물게 만드는 위력적인 제도가 바로 ‘계약해지’다. ‘비정규직보호법’이란 이름의 비정규직 대량생산법이 만들어져 비정규직들이 2년마다 대거 길거리로 내몰리게 됐다. 앞으로 미국발이든 중국발이든 세계대공황이 닥치면, 아니 한국경제가 더 깊숙이 위기의 늪에 빠지면 정규직도 대량 정리해고의 칼날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정리해고에 맞선 투쟁은 사활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IMF 공황 때 정리해고를 직접 당해봤거나 두 눈 뜨고 지켜보았던 많은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몸을 잔뜩 움츠려 왔다. 이런 불안감을 확실히 떨쳐버려야 노동자들은 투쟁에 광범위하게 나설 수 있다.

    따라서 ‘단 한 명의 해고도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 약한 고리라고 할 수 있는 한시하청·단기계약직 등에 대한 해고(계약해지)에 분명히 반대하고 저지하는 투쟁부터 제대로 전개해야 한다. 만약 노동자들이 한시하청, 2·3차 하청노동자, 단기계약직, 아르바이트의 해고를 인정하면, 그 다음은 1차 하청노동자나 장기계약직이 해고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비정규직의 해고를 순순히 받아들이면 자본은 정규직 또한 거침없이 해고시켜 버릴 것이다. ‘단 한 명의 해고도 인정할 수 없다’, ‘모든 형태의 해고 금지’를 내걸고 싸워야 한다. 이것 또한 자본가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이기에 자본가와 정면충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노동자들을 무겁게 뒤덮고 있는 고용불안의 먹구름은 오로지 자본가들을 상대로 한 비타협적 계급투쟁을 통해서만 걷어낼 수 있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기본급으로 생활임금 쟁취’, ‘노동강도 완화’도 전면적으로 내걸어야 하는 투쟁 요구다. 한쪽에서는 하루 12시간, 주 60시간가량 중노동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일자리가 없어서 고통을 받는 상황에 맞서려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들이 진심으로 이런 요구를 내걸고 투쟁한다면, 일자리를 얻지 못해 신음하는 실업노동자들은 그 요구를 자신들을 향해 내미는 따뜻한 손길이라고 느낄 것이다. 하루 12시간 1,000명이 일했다면, 6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할 경우 2,000명으로 고용인원을 늘릴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인원은 모두 정규직으로 충원해야 한다.

    그런데, 이 경우 노동시간 단축에 따라 임금이 깎여 생계가 어렵게 되지 않을까? 이런 우려를 없애려면, 기본급만으로도 인간답게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생활임금을 쟁취해야 한다. 이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지만 노동자계급이 지속적으로 제기해야 할 요구다.

    또한 노동시간을 단축하더라도 그만큼 노동강도가 강화되면 새로 인력을 충원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강도 강화 반대, 더 나아가 노동강도 완화를 동시에 요구해야 한다. 그럴 때만 노동자들은 건강을 해치지 않으면서 일할 수 있고, 실업자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

    노동자들이 ‘물량=고용’의 관점을 갖고 물량 싸움을 벌이면 노동자의 단결은 철저히 파괴된다. 회사는 이 점을 잘 알기에 물량 문제로 장난을 치며 노동자들을 농간한다. 노동자들은 물량확보 대신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을 통한 고용안정이란 대안을 확고하게 움켜쥐어야 한다.

    그렇다면 해외공장을 증설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대자동차노조처럼 ‘불가피할 경우 해외공장 노동자들부터 정리해고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회사는 세계경제의 불황 등으로 국내외 자동차시장에서 판매부진이 계속되어 공장폐쇄가 불가피할 경우 해외공장의 우선 폐쇄를 원칙으로 한다. (금속노조현대자동차지부 단체협약 제42조 7항)

    그것은 정규직의 고용안정을 위해 비정규직을 우선 정리해고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노동자적인 요구다. GM·르노 등 다국적기업의 노동자들이 국경의 장벽을 넘어 계급적으로 단결해서 싸웠던 것에서 배워야 한다. 노동자들은 한 나라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국제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해야 한다. 민족적 이기주의, 일국적 조합주의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노동자 국제주의로 무장해야 한다.

    5. 노동해방만이 구조조정과 고용불안을 끝장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를 구조조정하자!

    자본주의 사회는 이윤의 원리가 시장경쟁을 통해 무한대로 관철되는 사회다. 이 사회는 자본가들을 서로 경쟁시킬 뿐만 아니라, 고용된 노동자들 또한 서로 경쟁시킨다. 회사가 망하면 동반 몰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는 그가 결코 바라지 않더라도 '경쟁의 정글'에 빨려 들어간다.

    어떤 자본가가 자동화, 기계화, 효율적 생산방식을 도입하면서 노동자를 해고하고 노동강도를 증대시켜 더 싼 값으로 시장에 제품을 내놓는다면, 그와 경쟁하는 자본가 또한 싼 값에 제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 자본가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경쟁하는 자본가와 마찬가지로 정리해고, 노동강도 강화, 비정규직 도입 등 노동자를 더 쥐어짜서 싼 제품을 만드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자본가 자신의 이윤을 줄여서 싼 제품을 만드는 길이다.

    자본가들은 기본적으로 이윤을 얻기 위해, 그것도 늘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움직인다. 따라서 노동자를 공격하지 않고 자기 이윤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싼 제품을 만들려는 자본가는 없다. 착한 심성을 가진, 아주 작은 기업의 개인 자본가들 가운데 간혹 그런 경우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자본을 키우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경쟁에서 내밀려 파산할 수밖에 없다. 기업이 어느 정도 이상의 규모가 되면, 자본가들은 경영진·주주·은행·채권단 등으로 집단을 이루게 된다. 그런 경우에는 특정 자본가 개인의 심성과 상관없이 자본가 집단은 철저히 이윤 논리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된다.

    주주들은 이윤이 줄어들어 배당을 받지 못하거나 주식 값이 떨어지게 되면, 경영진에게 노동자에 대한 공격을 강력히 주문하게 된다.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더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인물로 경영진을 갈아치우기도 한다. 은행이나 채권단 또한 이윤이 줄어들어 이자를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대출금 환수가 제때에 되지 않으면 경영진에게 강한 압박을 넣게 된다. 끝내 경영진이 이윤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법정관리나 파산을 통해 은행·채권단이 직접 경영에 나서면서, 자금지원 중단, 투자 포기, 매각, 청산 등 온갖 협박 수단으로 노동자들에게 항복을 강요한다.

    결국 노동자들이 자본가들로부터 오는 공격을 근본적으로 물리치려면, 자본가들로 하여금 노동자를 공격할 수밖에 없도록 밀어붙이는 이윤의 원리와 시장경쟁 자체를 무너뜨려야 한다. 그러려면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와 근본적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 노동해방으로 전진하지 않는 한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공격에 끝없이 시달릴 수밖에 없다.

    노동해방으로 전진하려면, 노동자들은 구조조정 문제에서 반드시 다음과 같은 근본적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 “누구를 위한 구조조정인가, 자본가인가 노동자인가?”

    ○ “구조조정 되어야 할 낭비적인 것들은 무엇인가, 이윤원리에 따른 경쟁과 과잉생산이 판치는 이 자본주의 사회인가 아니면 노동자인가?”

    ○ “그렇다면 과잉생산과 파산을 낳고, 주기적으로 생산을 갉아먹는 이 사회를 넘어서는 노동자의 대안은 무엇인가?”

    기계화, 자동화, 고도한 생산방식 도입 등과 같은 생산의 소중한 개선들을 노동자의 삶을 향상시키는 수단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것이 노동자의 목을 겨누는 칼이 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라도 이윤의 원리가 지배하고 경쟁에 의해 작동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해야 한다. 사회의 운영원리가 이윤 극대화에서 전체 노동자들의 삶의 개선으로 바뀌며, 경쟁 대신 전체 노동자들의 협동과 계획화가 사회를 이끌며, 노동자가 기술·기계를 운영하고 통제하는 주체로 서는 그런 사회로 전진해야 한다. 바로 그것이 노동해방이다.

    노동해방을 통해서만 비로소 구조조정은 두려운 이름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때 기계화, 자동화, 고도한 생산방식 도입 등의 구조조정은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탈바꿈할 것이기 때문이다.

    구조조정 되어야 할 대상은 자본가들이며, 낭비적인 낡은 자본주의 사회라고 노동자들은 당당하게 말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현실에서 달성하기 위한 노동자의 힘을 체계적으로 길러야 한다. 그것이 구조조정 문제에서 노동자가 도달해야 할 진정한 결론이다.

    노동해방만이 일자리를 확실히 보장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가들의 무한한 탐욕 때문에 ‘한편의 과도노동과 다른 한편의 강요된 나태’라는 바보짓을 계속 저지르고 있다. 노동해방 사회에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 노동해방 사회를 건설한다면, 모든 노동자가 (지금 당장) 하루 6시간씩 공평하게 일하면서 인간답게 생활할 수 있다.

    노동해방 사회는 ‘노동자 민주주의에 입각한 사회적 계획화’를 통해 이 문제를 간단히 해결할 것이다. 모든 실업노동자들이 안정되고 좋은 일자리를 얻는 대신 취업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게 된다. 노동자를 착취하며 놀고먹던 사회적 기생충들에게도 반드시 일을 시킬 것이다. 군비·사치향락·광고·중복투자 등 자본주의 사회에서 저질러지는 거대한 낭비를 말끔히 없애버릴 것이다.

    노동해방 사회에서만 노동자는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 노동해방 사회에서는 전체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장악해 사회적 필요를 위해 계획적으로 생산한다. 따라서 노동해방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의 과잉생산·무정부성·무한경쟁은 사라진다.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을 걱정하지 않고, 사회 발전과 자아실현을 위해 기쁘게 노동할 수 있다. 생산력 발전의 성과를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강도 완화로 연결시켜 노동자들이 바로 그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한다.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옮길 필요가 생길 경우 새로운 일자리 제공과 그에 따른 교육과 훈련도 사회가 책임질 것이다.

    382 투쟁의 방향타  교양도서 3권_파업은 노동자들의 전투학교다! 09·11·11
    381 투쟁의 방향타  교양도서 3권_일상적 현장활동, 어떻게 할 것인가? 09·11·11
    380 투쟁의 방향타  교양도서 3권_단결의 무기로 출발했으나 위기에 빠진 노동조합,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09·11·11
    379 투쟁의 방향타  교양도서 1권_법과 국가는 누구 편인가 09·11·11
    투쟁의 방향타  교양도서 1권_구조조정과 고용불안에 맞선 노동자 투쟁 09·11·11
    377 투쟁의 방향타  교양도서 1권_임금과 노동자투쟁 09·11·11
    376 투쟁의 방향타  5호_공황과 자본주의 쇠퇴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투쟁 전망과 정치조직들의 대응 09·11·05
    375 투쟁의 방향타  4호_현 시기 남한에서 이행강령 논쟁 - 노정협의 비판에 답하며 09·08·08
    374 투쟁의 방향타  3호_자동차산업 구조조정과 노동계급운동의 투쟁방향 09·07·27
    373 투쟁의 방향타  3호_세계대공황과 자본의 공격에 맞선 노동자 행동강령의 원리와 방법 09·07·27
    372 투쟁의 방향타  2호_현 정세와 사회주의자(선진노동자)의 임무 08·06·08
    371 투쟁의 방향타  2호_공공부문 사유화 반대 투쟁강령 08·06·08
    370 투쟁의 방향타  2호_공공부문 구조조정 저지 투쟁과 방향에 대해 08·06·08
    369 투쟁의 방향타  2호_비정규직 투쟁의 전진을 위하여 08·06·08
    368 투쟁의 방향타  1호_필수유지업무제도, 공장점거파업을 전면에 제기하다! 08·02·21
    1234567891026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GGAMBO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4동 241번지 2층ㅣ전화 02-794-1917ㅣ이메일 swl@jinbo.net
    No copyright, Just copyleft! 홈페이지에 공개된 모든 자료는 자유롭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