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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의 방향타 : 3호_세계대공황과 자본의 공격에 맞선 노동자 행동강령의 원리와 방법
 정책위  | 2009·07·27 01:00 | HIT : 2,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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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노련에서 발행한 <사회주의자> 3호에 실린 글입니다.)

    [정치노선]

    세계대공황과 자본의 공격에 맞선 노동자 행동강령의 원리와 방법

    양효식

    1930년대 세계대공황 이후 자본주의가 최대 최악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자본은 이 위기를 노동자계급에게 전가함으로써 자본주의를 되살리기 위해 발악적 공세를 취하고 있다. 또한 계급투쟁의 폭발에 대비하여 온갖 탄압 조치들을 강화하고 있다.

    노동자들도 경제 살리기에 포로가 되어 공황의 모든 고통을 뒤집어쓰고 파멸의 길을 가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고자 한다면 전면적인 투쟁으로 나서야만 하는 상황이다. 고용과 생존권을 방어하는 부분적이고 국지적인 투쟁으로 시작해서 계급 대 계급의 전면적인 투쟁으로 발전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급진전될 수 있는 객관적인 가능성을 안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일상 시기와 혁명적 정세 사이의 간극을 급속히 메울 수 있는 정세다. 당면의 생존권 사수투쟁과 공세적 투쟁(자본주의 그 자체에 도전하는 투쟁, 정치권력 투쟁) 사이에 그 어떤 만리장성도 존재하지 않는 정세다.

    이러한 객관적 가능성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 자본주의 철폐/ 노동자 권력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향한 “이행의 가교가 되어줄” 행동강령이 필요하다. ▲모든 형태의 해고 금지 ▲노동조건 저하 없는 노동시간 단축(주30시간)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노동조합의 전투적 재편/ 노동자 정방대 구성 ▲노동자 산업통제 도입 ▲은행, 재벌대기업 몰수 국유화 ▲노동자 정부 수립 등으로 이루어진 사노련의 대중행동강령은 그러한 이행적 행동강령을 구체화한 것이다.

    이러한 대중행동강령 없이 공황기 계급투쟁의 전략 ․ 전술을 내온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대중행동강령의 모태인 트로츠키 <이행강령>도 1930년대 세계대공황의 한가운데서 제출된 것이었다. 대중행동강령이 공황기 계급투쟁을 승리로 이끌 올바른 전략전술로 사용될 수 있기 위해서는 이 강령의 원리와 방법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애초 <이행강령>이 제기된 역사적 맥락에 대한 검토와 함께 그것이 어떤 원리와 방법을 담고서 작성되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                         *                         *

    혁명적 맑스주의 정당은 의회의 법 ․ 제도 개혁 조치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노동자계급 자신의 대중행동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 그래서 이 혁명정당의 강령은 미래에 착수할 공약들의 목록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수백만 노동자들이 돌입할 “행동의 지침”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70여 년 전 제2차 세계대전 전야인 1938년에 제4 인터내셔널 창립대회에서 채택된 강령에 잘 나타나 있다. 트로츠키가 초안을 작성한 “자본주의의 단말마적 고통과 제4 인터내셔널”이 바로 그 강령이다. 흔히 <이행강령>으로 알려져 있는 이 강령은 <공산당 선언>과 함께 사회주의운동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들 중 하나다. 그 내용과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1938년 이전에 사회주의운동이 채택했던 이행적 강령들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행강령> 이전의 이행강령들 : <임박한 파국>, <전술에 관한 테제>

    제2 인터내셔널이 창건된 시기는 자본주의 체제가 장기간의 경제적 상승과 상대적 평온기를 누리고 있던 시기였다. 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 단계에 이르면서 성립한 제국주의 체제가 아직 전 세계를 지배하지 못한 시기다. 노동자계급은 노동조합과 대중적인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조직되어 나가는 속에서 꾸준히 전진하였다. 이 시기는 미래의 일대결전에 대비해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시기, 즉 준비기였다.

    이 시기에 사회민주주의가 채택한 강령은 뚜렷이 구분되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최소강령과 최대강령이 그것이다. 최소강령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달성할 수 있는 일련의 요구들이었다. 최소강령은 노동자계급과 피착취 대중의 절실한 당면 필요 사항들을 다루었다. 8시간 노동제, 만인을 위한 의료, 교육, 주택, 복지, 그리고 최저임금제 등.

    최소강령은 또한 노동자들의 결사의 권리와 투표권 등의 민주적 권리들도 제시하였다. 이들 요구들에 대해 당연히 자본가들은 비토를 놓고 거부하려 하였지만, 그렇다고 그 요구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침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요구들이 수용된다 하더라도 자본가들은 여전히 자본가들이고, 그들의 소유권과 경영권은 아무 타격도 없다. 세상의 주인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최대강령은 사회주의와 노동자권력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것은 운동의 궁극 목표를 밝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최대강령은 강령의 다른 부분, 즉 최소강령과 실천적인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제2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 조류는 사회주의의 목표를 먼 훗날의 전망으로, 노동자들과 노동자당의 현실 투쟁에 아무 실천적 연관도 갖지 않는 박제화된 문구로 취급해 버릴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당 강령을 최소강령과 최대강령으로 분할함에 따라 사회민주주의의 우파는 사실상 혁명을 기각하고 오직 개량 운동에만 집중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제국주의 전쟁을 맞아 파산한 제2 인터내셔널을 대신하여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을 창설한 러시아 혁명가들이 제일 먼저 착수한 일은 바로 이러한 강령을 극복하는 작업이었다. 그 전에 이미 레닌은 <임박한 파국, 그것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서 노동자계급의 당면한 필요사항들을 다루면서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와의 즉각적인 단절(그 필요사항들이 투쟁 속에서 획득될 경우)을 내포하는 일련의 요구들을 제출하였다.

    혁명적 위기와 자본주의 사회의 해체 한가운데서 레닌의 이 요구들/프로그램은 당장 충족되어야 할 절실한 것들이었지만, 그러나 부자들과 자본가들의 사적 소유를 몰수하지 않고서는, 그리고 또한 정치권력을 노동자들 자신의 수중으로 가져오지 않고서는 실행될 수가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즉 당면의 필요사항들과 노동자들의 혁명적 과제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강령이었던 것이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이러한 방법을 1차 세계대전 후 각국 공산당들의 강령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기본 토대로 사용하였다. 코민테른 3차 대회는 <전술에 관한 테제>를 채택하여 개량주의자들의 낡은 최소강령을 “반혁명적 사기”로 규정하였다. 그러면서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의 당면 이해가 아무리 부분적인 것일지라도 그것을 위해 철저히 투쟁해야 하는데, 다만 해체되어 가는 자본주의 체제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파괴하기 위해서 그러한 투쟁을 해야 한다고 <테제>는 지시하고 있다.

    <테제>의 전술은 부분적 투쟁이 권력을 위한 투쟁인 것처럼 과장함이 없이 부분적 투쟁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었다. 이행기, 특히 공황기에는 사회주의자들에게 매우 불균등한 투쟁들을 던져서 이와 씨름하게 만든다. 불균등한 투쟁이 무엇인가?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방어하는 초보적 과제[이를테면 생존권 사수]가 권력 투쟁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를 객관적으로 제기하는 투쟁들과 결합하게 되는, 이 같은 양상을 띠는 투쟁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IMF 때 현대자동차나 대우자동차에서 구조조정에 맞서 고용 등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이 기초적인 투쟁 과제가 [‘기업 살리기’ 노사협조 캠페인이 아니라] 기업의 몰수/국유화를 위한 투쟁으로, 이어서 정치권력을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도록 제기하는 상황이 이러한 경우일 것이다.) 부분적 투쟁이 혁명적 투쟁으로 성장할 수 있지만, 혁명적 투쟁과 같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요구들이다. 이 결합된 요인들을 실제로 반영, 표현해낼 수 있는 요구들, 권력 투쟁을 노동자계급에게 최후통첩 형식으로 제기하는 것을 피하면서도 동시에 정확히 이 권력 투쟁을 위해 노동자계급을 조직하는 요구들을 정식화해야 한다. 이행(기) 요구들이 그 답이다. <테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공산당이 비틀거리는 자본주의 구조를 강화하고 개선하는 최소강령을 내세워야 할 것인가? 아니다. 공산당은 그 같은 최소강령을 내세우지 않는다. 자본주의 구조의 파괴는 여전히 공산당의 주 목표이며 당면한 임무이다. 그러나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공산당은 노동자계급에게 지체 없이 즉각 충족되어야 할 요구들을 내걸어야 하며, 그것이 자본가계급의 이윤경제와 양립할 수 있느냐[자본가들의 지불 능력이 되느냐] 여부와 관계없이 대중투쟁을 통해 이러한 요구들을 옹호해야 한다.”

    코민테른은 이렇게 부분적 과제를 전략적 과제와 결합시킴으로써 공산당과 프롤레타리아트―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 아직은 그 다수가 공산당의 지도를 받아들이지 않는―를 연결할 다리를 발견하려고 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이 제출한 그 결합된 이행 요구들은 상호 연결되어 총체적으로는 하나의 전략―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향한 진군 노선―을 이룬다는 점에서 구식의 부분적 요구들과는 구별되는 것이었다.

    “만약 그 요구들이 광범한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절실한 필요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또한 이 대중들이 그러한 요구를 실현시키지 못할 경우 자신들이 생존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그러한 요구 투쟁은 권력 투쟁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코민테른]이 개량주의자나 중도주의자의 최소강령 대신 제기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구체적 필요를 위한 투쟁이다. 일련의 요구들, 즉 그 요구들 총체로서는 부르주아지의 권력을 분해시키고 프롤레타리아트를 조직하며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위한 투쟁 단계들을 대표하는, 또 그 요구들 각각으로서는 그 자체로서 가장 광범한 대중―그들이 아직 의식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찬성하지 않을지라도―의 필요를 표현하고 있는, 그러한 일련의 요구들을 위한 투쟁이다.”

    이 초기 이행요구들의 주 특징은 무엇이었는가? 레닌의 <임박한 파국...>에 제출되어 있는 요구들처럼 이 초기 이행요구들 각각은 자본가들에 대한 노동자의 통제를 확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대(對)자본가 직접 행동 쪽으로 노동자계급을 조직하려 했다. 경제 영역에서 이것은 생산에 대한 통제권 쟁취투쟁의 형태를 취했다. 이 투쟁은 경영참가나 노사공동결정제, 산업민주주의(여전히 좌파 개량주의자들이 유포하고 있는) 등등의 계급 협조주의적 공상에 대당하는 것이었다. 이 생산 통제권은 노 ․ 자가 공유, 분점하는 통제권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제어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반대를 조직하는 통제권이었다. 생산 통제권 쟁취투쟁은 노동강도, 노동시간, 고용과 해고 등에 대한 자본가들의 계획(案)에 대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들의 공장폐쇄 권한에 대한 체계적인 거부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그 투쟁은 노동자계급의 긴급한 필요를 충족시켰다. 정리해고는 수백만 노동자들에게 당면한 문제였다. 자본가들이 해고를 자행하는 것에 대해 통제를 하기 위한 투쟁이 이 당면 문제에 대한 답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이러한 통제를 위한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적 토대 자체에 대한, 경영권과 소유권에 대한 도전으로 나아갔다. 더욱이, 공산주의자들은 현장 노동자들에 바탕을 둔 제도 ․ 기구―공장위원회―를 만들어내기 위한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기관과 정치권력 장악을 지향하는 경제권력(노동자 경영체제) 기관 둘 다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전체 경제에서의 (노동자 국가에서의) 노동자 경영체제로 가는 길은 어떻게 닦였는가? 공장과 산업에서의 (자본가 국가에서의) 통제권 쟁취를 위한 항상적이고 부단한 싸움들에 의해 닦였다.

    적색노조 인터내셔널은 노동자 통제권 쟁취투쟁의 핵심적 중요성을 명확히 인식하였다. 이 투쟁이 노동자계급의 부분적 투쟁과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지를 또한 이해했다. 1921년 7월에 열린 적색노조 인터내셔널 제1차 대회에서 채택된 행동강령(Action Programme)은 직장폐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천명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직장폐쇄에 반대하는, 그리고 직장폐쇄 이유에 대한 노동자의 조사권 쟁취를 위한 행동을 이끌어야 한다. 이 목적을 위해 노동자들로 구성된 특별 통제위원회가 설립되어 원료와 주문에 대한 조사 감독권을 행사해야 한다. 특별 통제위원회는 생산에 필요한 원료의 분량이 얼마인지, 또한 은행에 예치된 회사 자금이 얼마인지를 확인, 검증해야 한다. 이 선출된 특별 통제위원회는 해당 기업과 다른 회사들 간의 자금 관계를 가장 철저한 방식으로 조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영업비밀 철폐를 당면의 실천 과제로 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같은 대회에서 통과된 노동자 통제권에 관한 결의안은 노동자 통제권의 이행강령적 내용을 명확히 하고 있다.

    “현실에서 힘에 의한 자본주의 체제 모순의 해결(즉 사회혁명의 길)로 가는 서막을 의미하는 이러한 대응은 실제로 생산에 대한 노동자 통제의 형태를 취한다.”

    노동자 생산 통제와 관련하여 사용된 키워드는 ‘서막’이다. 다시 말해서 노동자 생산 통제는 본 시합에 앞서 오는 것이지만, 그 본 시합과 뗄 수 없이 묶여 있고 그 본 게임을 여는 오픈 게임이다.

    그에 따라 제3차 대회에서는 이행요구들이 필요하다는 것이 명확히 확인되었다. 이행요구들 가운데서도 노동자 통제의 핵심적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실제로 3차 대회에서는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대중의 경제적 필요에서 비롯하는 모든 실천적 슬로건은 생산 통제권 쟁취 투쟁으로 그 방향이 모아져야 한다.”

    노동자계급 지도력의 위기와 이행강령

    1928년 코민테른 6차 대회에서는 스탈린주의의 득세와 함께 관료적 중도주의로 타락해 가는 경향이 완연히 나타났다. 스탈린의 지지를 업은 부하린은 완전히 추상적인 강령 초안을 제출했다. 혁명적 코민테른이 일소하려고 했던 최소-최대강령 분리가 다시 부활하였다. 트로츠키는 이 강령 초안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프롤레타리아 전위한테는 빤한 원리들의 카탈로그가 아니라 행동의 매뉴얼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1938년 제4 인터내셔널의 강령은 세계 노동자계급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 상황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어야 했다. 현재의 투쟁과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이행적 요구들이 필요했다. 트로츠키는 이제까지의 사회주의 운동과 노동자계급 운동의 전 역사로부터 교훈들을 끌어내서 검토하고, 특히 1919년에서 1924년 사이에 코민테른이 이룩한 성과들에 기초해서 강령 초안을 작성했다. 이런 의미에서 새로운 <이행강령>은 “당시까지의 집단적 작업을 총괄한 것”이었다.

    <이행강령>은 1914년 제2 인터내셔널 붕괴로 열려진 새로운 역사적 시기에 담긴 교훈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는 걸로 시작한다.

    “세계의 정치 정세는 전체적으로 볼 때 노동자계급 지도력의 역사적 위기로 특징지어진다.”

    자본주의는 이미 사회주의 사회가 건설될 수 있는 조건을 낳아 놓았다. 세계는 사회주의를 위한 조건으로 무르익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무르익은 것을 넘어 “썩어가기 시작할” 정도다.

    공황으로 짓눌려 있는 1920년대와 30년대의 시기에 자본주의를 구해낸 것은 한 가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지도력이 부재했다는 사실, 바로 이것이 자본주의를 다시 살아나게 만든 최대 원인이다.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잡지 못함으로 인해 세계는 파국―경제 붕괴, 파시즘, 전쟁―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혁명가들의 주된 과업은 사회주의를 위한 조건 성숙과 권력 장악을 위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준비 결여 사이의 간극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이를 푸는 열쇠가 “이행적 요구 체계이다. 이 요구들은 부르주아 체제의 토대 자체를 더욱 더 공공연하고 결정적으로 겨냥해 들어갈 것이다. 바로 이 사실에 이행강령의 핵심이 담겨 있다.” 이러한 이행강령이 사회민주주의의 낡은 최소강령을 대신할 것이다.

    이행강령의 원리와 방법

    노동자들은 공황의 고통을 노동자계급에게 전가시키려는 자본가들의 공격에 맞서 고용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한다. 그러나 이러한 공황의 시기에 고용과 생존권을 온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정치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이행강령은 이러한 대중들이 왜 정치권력 쟁취투쟁으로까지 나아가야 하는지를 일깨워주고 권력 쟁취투쟁을 위한 훈련과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일련의 투쟁 요구안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 예로 ‘노동조건 저하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요구를 보자.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모든 노동자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노동시간을 대폭 낮춰서 그 만큼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달리 말하면, 모든 노동자들 사이에 일자리를 나눠가질 수 있도록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현 시기 취업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확실하게 해소하는 것과 동시에 모든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나아가 실업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요구되는 일자리 수에 연동시켜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해 현재 2천만 개의 안정적인 일자리가 필요하다면, 현행 노동시간을 대폭 단축시켜 1일 6시간, 주30시간 노동제로 전환해서 500만 개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임금 손실이나 노동강도 강화 없이 말이다. 또한 온전한 정규직화와 잔업 특근 없는 생활임금 보장을 분명히 한 전제 위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해야 한다.

    이것은 현 시기 실업, 해고와 불안정한 일자리, 비정규직 차별의 고통에서 벗어나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쟁취해야 할 요구다. 꿈같은 얘기가 아니라 현 시기 정리해고를 저지하고 넘쳐나는 실업을 해소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 요구를 실현하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 노동자에게 이는 분명하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실현 불가능’을 증명하려 할 것이다. 개량주의 노조관료들도 ‘자본가들의 지불 능력 없음’, ‘이 체제가 감당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며 ‘실천 가능한 계획이 될 수 없는, 단지 좋은 아이디어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스스로가 만들어내 실업과 해고, 비정규직 양산과 같은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이 같은 요구들을 충족시킬 능력이 자본주의에게 없다면 이 자본주의 체제는 멸망해야지, 생존의 위협에 내몰리고 있는 노동자가 체제의 감당 능력을 걱정해 줄 수는 없다. 노동대중이 고용불안과 해고의 압박, 불안정한 일자리와 실업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안정적인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는 것 말고는 어떤 다른 요구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행강령을 처음으로 체계화한 트로츠키가 말한 것처럼, “‘실현 가능성’이나 ‘실현 불가능성’은 계급 역관계의 문제로서,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 결정된다. 투쟁을 통해 얼마나 직접적인 성과가 달성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이 투쟁을 통해 자본주의 임금노예제를 청산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이러한 이행강령의 방법과 원리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의 가정을 해보자. 만약 노동대중들이 즉자적 반대 ․ 저지 투쟁에 머무르지 않고 근본 목표(노동자권력)를 위한 투쟁의 필요성을 받아들일 조건이 되어 있다면, 즉 중간에 가로놓인 인식상의 간극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매개적인 이행 요구는 불필요할 것이다. 이와 같이 다른 매개 없이 직접적인 권력 쟁취투쟁을 제기하는 대중선동을 통해 곧장 궁극 목표를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그러한 이행 요구는 오히려 후퇴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조건이라면 이행강령이 아니라 노동자국가가 취할 조치들, 즉 사회주의 혁명강령(‘최대강령’)만이 투쟁의 전진을 대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 국가를 대체하여 들어서는 노동자 국가는 같은 1일 6시간/ 주30시간 노동제를 실시하더라도 이것을 노동대중에게 단지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 공급하기 위한 목적에서가 아니라 필요노동을 모든 노동자들 사이에 나누고 그렇게 하여 노동대중이 사회를 통치하고 운영할 수 있기 위해 노동자의 여가시간을 확대하기 위한 목적에서 한다.

    임금제도를 부정하는 사회주의 사회의 노동제 강령은 이와 같이 다른 원리, 즉 ‘능력에 따라 일하고 일한 만큼 받는, 나아가서는 필요한 만큼 받는’ 원리에 바탕을 둔다. 여기서는 자본에 고용되어 노동력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므로 임금과 노동시간을 견주어 ‘임금 저하 없는 노동시간 단축’ 같은 말 자체가 원리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

    이와는 달리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같은 이행 요구는, 예를 들어 30시간 노동에 40시간 임금의 보장을 요구하는(즉 “임금 저하 없는....”) 방식에서 보듯, 임금제도와 노동력 판매의 현실을 당연시하는 노동대중의 현재 의식을 고려하는 것이며, 이 현재 의식과 궁극 목표(즉 사회주의 노동제) 사이에 다리를 놓는 요구이다. 노동대중이 사회주의 노동제 같은 노동자국가 강령/ 사회주의혁명 강령을 위한 투쟁의 필요성을 곧바로 받아들인다면 부르주아 사회의 노동제 원리로 얼룩이 묻은 ‘임금 저하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요구 같은 거추장스러운 매개를 거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곧바로 사회주의 노동제 ‘요구’를 중심으로 투쟁을 조직하면 될 것을.

    그러나 현 시기에 사회주의자들과 선진노동자들이 모두 알다시피 대중의 현재 의식과 이 같은 사회주의혁명 프로그램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놓여 있다. 그 때문에 이 간극을 메울 이행요구들이 필요하다. 물론 자본가들은 사회주의적 요구가 아닌 이행적 요구라고 해서 들어주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부르주아 사회가 ‘임금 저하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같은 요구를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정리해고제 폐지!’나 ‘정규직화!’ 같은 부분적 요구(이행 요구가 아닌)는 현 시기 한국 자본주의가 절대로 들어줄 수 없는 요구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공황이 깊어지면서 자본가계급은 이런 부분적 요구도 결사적으로 거부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투쟁이 전면화하여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투쟁으로까지 상승한다면 노동자계급을 달래서 투쟁의 더 한층 고조를 막기 위해 들어줄 수 있는 요구들이다. 그리고 그 요구들은 그런 식으로 충족될 경우 그냥 개량으로, 즉 무매개적인 개량으로 그쳐버릴 한계를 안고 있다.

    반면에 이행요구들은 자본주의 체제가 결코 완전하게 들어줄 수 없다. 이행요구들이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요구안이 되고, 부분적으로라도 쟁취된다면, 그 즉시 이 이행요구들은 노동자계급으로 하여금 계급사회의 토대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더욱더 나아가게 할 것이며, 동시에 그에 대한 사회주의적 해결을 가능케 해 줄 의식과 조직을 창출하면서 계급전쟁을 질적으로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이행요구들은 통상적인 당면 요구들과 투쟁방법들로는 넘어설 수 없는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해결책이 되어준다. 즉 이행요구들은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자본가들의 통제와 운영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의 논리 자체에 노동자계급이 도전할 수 있도록 노동자계급의 힘을 조직해 줄 보다 효과적인 요구들과 투쟁방법들로 나아가는 전진의 길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행 요구를 이행적으로 만드는 것은 단지 부르주아 사회가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어서라기보다는 바로 이러한 공세적 투쟁으로 나아갈 길잡이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같은 이행 요구들을 이행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 요구들이 (부르주아 사회 원리의 얼룩이 묻어 있는 요구이면서도) 부르주아 체제의 토대 자체를 겨냥하고 있어서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요구는 노동자 통제의 요소들과 결합하여 자본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침해해 들어가는 투쟁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이행강령이 곧 사회주의 강령은 아니지만, 사회주의 강령을 반영한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같은 이행 요구는 사회주의 노동제 같은 노동자국가의 혁명적 조치들(즉 사회주의혁명 강령)을 흐릿하게라도 비쳐준다.

    사회주의혁명 강령은 자본가국가를 대체하고 들어서는 노동자국가가 사회주의 ․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도상에서 부르주아 사회관계(임노동제와 사적소유, 시장, 분업 등)를 제거해 나가기 위해 취하는 조치들을 총괄한 것이다. 이행강령은 이 사회주의 강령을 비쳐준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얼룩진 거울을 통해 비쳐준다.

    이행요구가 자본주의 조건 하에서 개량을 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은 그 이행요구의 사회주의적 원형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는 아무리 온전하게 쟁취, 실현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사회주의 강령(필요노동을 전체 노동자들 사이에 나누고, 그렇게 하여 노동자가 사회를 통치하는 목적을 위해 모든 노동자의 여가시간을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주의 노동제)에는 못 미친다. 그러나 그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는 대중들이 그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결국 권력 쟁취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면, 이행요구는 온전한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국가권력 장악의 필요성을 투쟁 속에서 인식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이행강령의 임무다.

    이행강령은, 변증법을 가리켜 ‘혁명의 대수학’이라고 말하는 의미에서 대수학적인 강령이다. 즉 이행요구를 쟁취하기 위한 각각의 모든 연속적인 투쟁들은 계급투쟁이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끊임없이 발전하는 과정 속에서의 단지 과도적 단계들일 뿐이며, 어떤 단계도 종착점일 수 없다. 오직 노동자권력 쟁취투쟁으로 이행하고 난 뒤에야 이행요구는 그 시효를 마친다.

    노동자국가의 필요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자국가의 프로그램(사회주의 강령)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즉 추상적인 공론으로만 다가온다. 이행요구들은 자본주의 거울을 통해 노동자국가의 프로그램을 눈에 들어오게 해주며, 따라서 그러한 노동자들에게 노동자국가의 프로그램을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해 준다. 그러한 노동자들은, 여전히 개량주의 지도부들을 따르면서, 그 이행요구들에 부문적인(단사적, 산별적)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그러나 투쟁 자체가 부문적으로 제한된 요구들의 부적합성을 드러내줄 것이고, 혁명가들이 말한 것이 옳다는 것을 입증시켜 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사용될 때 그 요구들은 노동자의 현재 의식과 사회주의에 이르기 위한 계급적 단결 및 전 계급적 투쟁의 객관적 필요성 사이에 놓인 간극을 이어주는 가교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행적 요구들이 된다.

    트로츠키가 말한 것처럼 이행요구들은 사회주의 투쟁 쪽으로 노동자들을 “유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의도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사활적인 필요들을 위해 노동자들을 행동에 나서게 하는 수단이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우리 요구 가운데 그 어느 하나도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이 요구들을 이행요구들이라 부른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의식구조에 이르는 다리를 놓은 다음, 사회주의 혁명에 이르는 물질적인 다리를 놓는다. 문제는 대중들을 어떻게 투쟁에 나서게 하느냐이다. … 혁명가들은 언제나 개량의 획득은 단지 혁명투쟁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만일 우리가 저들이 줄 수 있는 것만 요구할 것이라고 말한다면, 저들 지배계급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의 10분의 1 쯤만 줄 것이다. 우리가 더 많이 요구하고 우리의 요구 수준을 높여낼 수 있다면, 자본가들은 어쩔 수 없이 최대치를 줄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의 투지가 더 확대되고 더 전투적으로 될 수록[될수록]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더 많은 것을 쟁취한다. 이행요구들은 실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공허한 슬로건이 아니다. 이행요구들은 부르주아지를 압박하는 수단이며, 가능한 한 최대한의 물질적 성과를 즉각 가져다줄 것이다.”

    끝으로 이행강령은 무엇보다 정세적 강령이라는 점을 상기하는 것으로 논의를 마무리하자. 모든 강령은 구체적 상황에서 행동의 지침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강령이 새로운 조건에 대처하기 위해 조정될 필요성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강령이 아니라 무슨 성경 같은 것일 것이다. 강령이 구체적 상황과 무관하게 항구불변이어야 한다면 트로츠키는 <이행강령>을 작성하지 않고 구 볼셰비키 당 강령을 단지 재선포하는 것으로 대신했을 것이다.

    오늘날 혁명가들은 <이행강령>을 새로운 조건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버리지도, 또는 반대로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 어떠한 변용도 허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경전처럼 모시지도 않는다. 트로츠키 자신이 했던 것처럼 혁명가들은 <이행강령>의 방법을 적용하여 매 역사적 전환기에 강령을 새롭게 정비하기 위한 지침으로 삼는다. 오늘날 <이행강령>이 작성되었던 1930년대와 마찬가지로 세계대공황이 밀어닥치고 있다. 오늘 그 어느 때보다도 특히 <이행강령>의 방법이 그러한 지침으로 되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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