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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어디로 : 미상_북한 국가자본주의의 역사와 전망
 정책위  | 2008·02·11 15:31 | HIT :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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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국가자본주의의 역사와 전망


    2000년 남북정상 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고, 김정일의 서울방문이 추진되고 있다.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 금강산 관광에 이어 또 다른 자유무역지대 건설과 관광 산업 투자 확대가 준비되고 있다. 남북 자본가계급 사이의 협력과 교류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서 남북 지배자들은 “통일한국”의 꿈을 유포하면서 남북 노동자들의 비판의식을 흐리고 민족주의의 열풍을 불러일으키려 하고 있다. 한편, 이런 남북 자본가계급의 행보에 충실히 발을 맞추는 세력들이 있다. 민주노총 상층의 관료들과 민주노동당의 출세주의자들, 북한 지배자들을 추종하는 민족주의 세력들은 북한 지배계급의 노동통제 기관인 직업총동맹과 남북노동자 축구대회를 전개하는 것 따위에 집중하며 노동자들의 시선을 절박한 현실의 계급투쟁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려 왔다. 또한 김대중의 견해를 뒤따르며, 노동자들에게 자본가계급과 손잡고 “통일운동”에 매진할 것을 은근히 부추겨 왔다.
    여전히 북한을 ‘사회주의’, ‘노동자들의 천국’으로 바라보고 동경하는 골수 주사파들을 제외한다면, 남한 노동자들 안에 북한을 우리가 건설할 대안사회로 보는 이는 없다. 평범한 노동자들조차 북한엔 마음대로 직업을 선택하고 이동할 기본적 자유조차 없고,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가 자신들을 우상화하면서 수십 년 동안 노동자들 위에 군림해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남한 노동자들은 북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노동자들의 시각과 정서를 반영해 많은 노동운동 세력들이 북한에 거리를 두고 있으며, 일정하게 비판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여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남북 관계의 빠른 변화와 북한의 개방 가속화, 북한 내 급격한 변화(군사 쿠데타나 노동자폭동)의 가능성 등은 남한 노동자계급이 북한 체제를 더욱 날카로운 계급적 관점에서 볼 것을 요구하며, 북한에 대한 반감과 소극적 비판을 넘어서서 남북 노동자계급의 강철같은 계급적 단결에 입각해 남북 자본가계급 모두에 맞서 단호하게 투쟁할 것을 요구한다.
    자본가계급은 노동자들에게 북한은 남한보다 훨씬 더 후진적인 사회인데, 그 원인은 “사회주의”가 원래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없으며 자본주의보다 못한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선전한다. 이런 선전을 통해 자본가계급은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믿거나 적어도 노동해방을 적극적으로 추구할 수 없게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이 남한보다 더 낙후한 것은 북한이 사회주의 사회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한 변종이며, 후진적인 자본주의 사회”이기 때문임을 밝혀냄으로써 북한은 우리가 건설해야 할 노동해방 사회가 아니라 우리가 타도해야 할 자본주의 사회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더불어 우리가 건설할 노동해방 사회는 북한 자본주의 체제와 어떻게 다른가를 확연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럴 때만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정신은 갖고 있지만, “사회주의는 실패한 것이 아니냐. 우리는 북한 같은 사회를 만들고 싶지 않다”며 노동해방에 대해 주저하는 노동자들에게 노동해방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념을 줄 수 있다. 북한에서 노동자혁명이 있었는가, 북한에서 노동자계급은 세상의 주인인가 아니면 자본가들의 노예인가, 북한에서 노동자계급은 김정일 권력을 사수해야 하는가 아니면 타도해야 하는가, 남한 노동자계급은 북한 김정일 권력과 협력할 것인가 아니면 적대할 것인가 등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것은 계급의식적 선진노동자들은 물론이고 현장에서 가열차게 투쟁하고 있는 모든 노동자 투사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남북관계가 정세에서 중요하게 부각되면 될수록 남한 노동자계급이 이상의 문제들에 대한 태도를 칼날같이 정립할 필요성은 그만큼 커진다. 일상의 경제투쟁에서 작은 승리를 쟁취했다 하더라도 이 거대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전투에서 아무런 무기도 갖지 못한 채 패배한다면 노동자운동은 전반적으로 후퇴할 것이다. 반면, 일상적인 경제투쟁만이 아니라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투쟁에서도 불꽃같은 치열함을 보인다면 자본가계급이 노동해방을 향해 뻗어나가는 노동자운동을 꺾을 수단은 없을 것이다.
    남한 노동자계급은 이제 북한 노동자계급과 어떻게 연대할 것인지까지를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남한 노동자계급이 계급투쟁에서 승리하고 노동해방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북한 노동자계급과 반드시 혁명적 연대를 이뤄야 한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고양되면 남북한 자본가계급은 서로 협력하여 한반도 전쟁설을 터뜨리고 실제 군사적 충돌을 만들어 투쟁의 맥을 끊으려 하거나 아니면 통일 국면을 조성해 이를 가지고 투쟁의 기세를 누그러뜨리려 할 것이다. 남북 자본가계급이 협력하여 혁명을 분쇄하려 한다면, 남한 노동자계급은 북한 노동자계급과의 계급적 연대를 통해 적들의 도발을 꺾어버려야 한다. 남한에서 노동자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통일이 된다면 통일국가에서 남북 노동자들은 강고하게 단결해야만 강화된 자본가계급을 쓰러뜨릴 수 있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노동해방을 향해 거세게 전진하면 할수록 북한 노동자계급과 무쇠처럼 단단하게 연대할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가 승패를 결정할 핵심변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노동해방을 기필코 쟁취하고자 하는 노동자투사라면 멀리 내다보고 남북 노동자연대의 사활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위한 체계적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남한 노동자계급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남한 노동자계급 해방”만이 아니라 “북한 노동자계급의 해방”까지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며, 더 나아가서는 전세계 노동자계급의 해방과 국제주의적 단결이 궁극적 목표임을 명심해야 한다. 남한 노동자계급은 전세계 노동자계급의 일부라는 자각을 갖고 착취 받고 억압당하는 세계 노동자계급 모두의 해방투쟁을 지원하고 연대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특히 북한 노동자계급은 전세계 노동자계급 가운데에서도 지리적으로 가깝고,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역사를 갖고 있으며, 남북 자본가계급에 맞서 싸우는 데 일차적으로 연대해야 할 남한 노동자계급의 형제들이다. 남한 노동자계급은 북한의 형제들이 극악한 착취와 감시, 통제 속에서 신음하는 것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노동자계급에게 먼저 연대의 손길을 내밀고 그들이 노동자의식을 획득하고 단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해주어야 한다. 남한 자본가계급은 북한 노동자들을 어떻게 쥐어짜서 돈을 많이 벌 것인가만을 사고하지만, 남한 노동자계급은 오직 “전세계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대의를 위해 어떻게 북한 노동자들의 각성과 투쟁, 해방에 헌신적으로 복무할 것인가만을 사고해야 한다.
    남한 자본가계급이 북한 노동자들을 “북한 지배자들을 위해 묵묵히 일만 하는 노예들”로 바라본다면, 남한 노동자계급은 그들을 “아직 일어서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나 북한 지배자들을 쓰러뜨리고, 남한과 전세계 자본가계급에게 공포감을 안겨주고 전세계 노동자계급에게 희망을 던져 줄 혁명적 계급”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남한 자본가계급이 북한 노동자들의 분노와 불만이 폭발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몰두해 있다면, 남한 노동자계급은 북한 노동자들의 분노와 불만을 어떻게 의식적이고 조직적인 계급투쟁의 핵폭풍으로 발전시킬 것인가를 집중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남한 노동자계급은 이런 방식으로 계급투쟁의 영역을 남한 땅에서 한반도 전체로 확장시켜야 하며, 한반도에서 피워올린 계급투쟁의 불꽃을 전세계로 전파해야 한다.
    이 글은 이런 문제의식 아래 먼저 북한에서는 노동자혁명이 없었고, 소련과 동유럽의 뒤를 이어 국가자본주의가 들어섰다는 것을 밝힐 것이다. 여기에서는 북한이 노동해방 사회가 아니라 또 다른 자본주의 사회임을 증명할 것이다. 북한의 현재 위기는 50년 동안 싹트고 자라왔던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한계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이 과정을 검토하면서 우리는 북한 자본주의의 위기가 얼마나 뿌리깊은지, 계급적 착취와 억압이 얼마가 강화됐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북한 노동자계급의 처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여기서는 북한 지배자들의 거짓 선전과 반대로 북한 노동자계급이 비참할 정도로 빼앗기고 짓눌리고 있음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북한에서도 주인은 오직 한줌도 안 되는 자본가계급일 뿐이며 사회의 압도적 다수를 이루는 노동자계급은 가차없이 희생당하는 임금노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 뒤에는 남한 노동자계급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밝힐 것이다. 북한 자본가계급에 맞서 어떤 요구를 내걸고 싸워야 하는지, 주체사상의 계급적 본질은 무엇이며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남북 노동자 연대를 어떻게 추구할 것인지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실의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김정일의 서울답방 국면에서 노동자 투쟁의 방도를 다룰 것이다. 이처럼 이 글은 노동자투사들이 노동해방에 이르는 길에서 모든 난관을 뚫고 전진하기 위해서 남북 문제에서 의지해야 할 노동자의 계급적 원칙을 제시하고자 하는 목적을 담고 있다.

    1. 북한 자본주의의 역사

    1) 북한에서는 노동자혁명이 없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자 소련군은 8월 21일, 원산에 진입했고, 3일 후 함흥과 평양에 입성했다. 안타깝게도 일제 식민지의 극복은 조선 노동자계급과 피착취 근로인민의 자주적 투쟁에 의해 쟁취한 것이 아니었다. 소련 제국주의 군대는 동유럽에서 자신들의 ‘위성국가’를 수립한 것처럼, 북한에서도 김일성을 앞세워 자신들의 위성국가를 수립해갔다. 실제로 얄타회담에서 스탈린은 영국, 미국 제국주의 지배자들과 협력하여 여러 나라들에 “분할의 선”을 그었고(가령 조선이나 독일), 각자의 세력에 맞게 나라들을 서로 분할 점령했다. 이런 작업은 승전국의 이 세 나라 지배자들이 책상 위에서 세계 지도 위에 연필로 세력권을 긋는 간단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민족해방과 자주권에 대한 승인’이라는 사회주의의 오랜 원칙 중의 하나는 스탈린에 의해 간단히 무시되었고, 소련은 영국이나 미국과 마찬가지의 제국주의 국가로 자신을 드러냈다.
    소련 탱크들이 밀고 들어와 건설한 동유럽 국가는 결코 노동자국가가 아니었다. 특히 동유럽 국가의 건설을 주도한 당시 소련은 이미 노동자국가가 아니라 자본가국가로 변질했기 때문에 소련의 군사적 역할은 동유럽에서 노동자혁명을 일으키는 것을 돕는 것이 아니라 가로막는 것이었다. 러시아 자본가계급은 정치적, 군사적 전장에서는 노동자계급에게 패배했으나 그 뒤 행정적, 문화적 전장에서 관료주의를 전파하고 반혁명을 성공시켰다. 스탈린은 부르주아 반혁명의 화신이 되어 러시아 노동자혁명이 일구어놓았던 너무나도 소중한 성과들을 하나씩 허물어뜨렸다. 소비에트는 노동자들의 혁명투쟁 기관에서 혁명성을 잃은 껍데기뿐인 조직으로 전락하고, 소련 공산당은 혁명적이고 계급의식적인 노동자들의 당이 아니라 관료들과 부르주아들의 당이 되어 버렸다.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억압, 농민들에 대한 강제 집산화, 남녀간 불평등, 민족적 억압이 부활하거나 새로 추진되었다. 코민테른과 각국 공산당은, 국제 및 각국 노동자계급의 혁명투쟁 사령부에서 러시아 국가자본주의를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수호하기 위한 “소련의 친위부대”(위성국가)로 전락해 버렸다. 이런 작업은 1920년대 후반부터 3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45년에 소련은 아주 뚜렷하게 ‘제국주의’의 특성을 갖추고 있었다.
    소련은 동유럽에서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혁명투쟁을 옹호하고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이를 억누르면서 북한 김일성처럼 자신들이 쉽게 통제할 수 있는 세력에게 권력을 쥐어주었다. 오히려 유고의 티토처럼 국내에 독자적인 기반을 갖고 있는 토착 운동세력은 이런 목적에 적합하지 않았기에 그 영향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노력했다. 상비군과 경찰,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와 같은 자본가 국가기구들은 노동자들의 힘으로 타도된 것이 아니라 새로 들어선 친소련 자본가권력에 의해 그대로 유지되거나 형태만 바뀐 또 다른 기관으로 대체됐다. 많은 노동자들이 친소련 권력에 대해 ‘노동자들을 위한 권력’이라는 환상을 가졌기에 초기에는 투쟁을 자제했으나,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착취와 억압의 밧줄이 더욱 노동자들의 목을 조여왔다. 결국 동유럽 노동자들은 45년 이전의 자본가정부에 대해서처럼 45년 이후의 친소련 자본가정부에 대해서도 투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을 반영하는 것이 56년 동독, 헝가리 노동자투쟁이며, 68년 체코 ‘프라하의 봄’이며, 80-81년 폴란드 연대노조의 혁명적 투쟁이었다. 생존권과 정치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에 일어선 노동자들을 동유럽과 소련의 자본가군대가 무참히 짓밟자,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은 소련이 노동자의 권력이 아니라 노동자를 억압하는 권력임을 치떨리게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을 반영해서, 서유럽 공산당의 일부는 생존을 위해 소련 공산당과는 별도 노선을 고수하고 등거리 관계를 고수할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그것이 유로꼬뮤니즘으로 불리는 유럽 공산당들이었다.
    유럽과 전세계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소련, 동유럽 자본가정권에 등을 돌렸지만, 남한에서는 자본가 군사정권의 극심한 ‘반공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발감 때문에 오히려 북한 자본가정권에 막연한 호감을 갖거나 적어도 비판적 태도를 유보하는 모습들이 오랫동안 만연해 있었다. 하지만 진실은 정확히 밝혀져야만 한다. 러시아의 위대한 볼셰비키 혁명가들과 노동자들을 수없이 처형하고, 동유럽에서 진정한 노동해방을 갈망하는 노동자들을 탱크로 쓸어버린 소련 제국주의가 북한에서 “노동자국가”를 세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소련은 동유럽에서 했던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북한에서도 자신의 모습을 본뜬 위성 국가를 건설해갔다. 소련은 이 임무의 주역을 김일성에게 맡겼다. 김일성은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긴 했지만,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던 수많은 세력 중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으며, 45년 당시의 나이가 20대였다는 점에서 쉽게 알 수 있듯이 잘 알려지지 않은 미미한 존재에 불과했다. 김일성 부대 외에도 중국, 만주, 러시아 등 곳곳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훨씬 더 강력한 세력들(연안파로 불리는 이 세력은 중국 공산당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이 있으며, 시퍼런 일제통치 하에 있는 한반도의 공장과 농촌에서 혁명적 투쟁을 전개했던 세력들(토착 공산주의 세력)이 존재했다. 김일성은 이런 수많은 세력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기에 결코 해방된 국가에서 지배권을 장악할 수 없는 존재였다. 김일성이 북한에서 완전히 권력을 독점한 것은 10년 이상 남로당계, 소련파, 연안파 등 수많은 세력의 지도자들과 치열하게 싸우고 그들을 숙청한 뒤에야 가능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그만큼 해방 직후에 김일성의 영향력은 결코 크지 않았는데, 바로 그 점이 소련 제국주의가 김일성의 손에 권력을 쥐어준 이유였다. 소련 제국주의 군대는 자신들에게 충성하지 않고는 권력을 획득할 수 없기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김일성을 내세워 북한을 위성 국가로 확고히 장악하고자 했던 것이다. 소련 지배자들의 후원 아래 김일성은 갑작스럽게 지도적 인물로 부상됐고, 급기야 1946년 2월에는 북조선 과도인민위원회 의장이 되었다.
    북한은 토지개혁을 실시했는데, 이것은 러시아에서 10월 혁명 이후 전개된 토지개혁과 달리 “노동자혁명 없는 개혁”, 즉 순수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개혁일 뿐이었다. 이것은 봉건 잔재를 철폐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노동해방 사회 건설의 첫걸음이 아니라 국가자본주의를 확립하기 위한 첫 번째 조치였다. 그리고 북한은 공장, 건물 등 자본을 국유화했으며, 이것을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으로부터 사회주의 혁명으로의 전화”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에서 시행된 국유화 조치는 노동해방 국유화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국유화에 불과했는데, 그것은 북한 김일성 권력이 소비에트, 파리꼬뮌과 같은 노동자계급의 자주적이며 대중적인 혁명권력이 아니라 급진적인 민족주의자의 권력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국유화는 스탈린 강제 농업 집산화와 마찬가지로, 김일성 권력을 안정화하고, 노동자대중에 대한 착취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1871년 파리꼬뮌에서 반짝 빛을 내고,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대략 10여년간 존속했던 노동자권력은 무엇보다 노동자대중들 자신의 직접민주주의 권력이다. 노동자들은 꼬뮌, 소비에트(노동자평의회) 등을 공장, 직장별로 건설하고, 이를 지역과 전국으로 확대하여 직접 대표자들을 선출하고 언제든지 소환하면서 정치에 주체적으로 참가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분리되어 상호 견제하면서 민주적 정치를 하는 것처럼 탈을 쓰지만 전체로서 보자면 이 모든 기관들은 자본가들을 위한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집행하며, 자본가들을 위한 사회 운영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노동해방 사회에서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평의회가 사회 다수의 의사를 대변하여 의결하고 이를 집행하는 활동을 동시에 수행한다. 국가가 노동자들과 항상 긴밀히 결합하며, 노동자들의 의사를 정확히 대변하고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대표자들이 언제든지 통제되고 소환․탄핵될 수 있는 체제가 바로 노동자권력인 것이다. 이 사회에서 생산하는 노동자들 모두가 무장하여 사회의 치안, 국내외 부르주아 반혁명에 대한 예방 및 격퇴에 복무한다. 노동해방 공동체에서는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한줌밖에 안 되는 자본가들의 이익을 수호하고 노동자들의 혁명을 분쇄할 훈련을 받는 상비군 제도는 철폐되어 전체 노동자들이 참가하는 노동자민병대로 대체된다. 이 모든 것에서 핵심은 노동자권력이란 노동자 대중과 결코 분리되지 않은, 노동자 대중 자신의 권력이라는 것이며, 노동자대중 위에 군림하며 특권을 누리는 관료주의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스탈린 지배 하의 소련, 동유럽, 그리고 북한은 이런 노동자권력이 아니었다. 노동자계급이 그토록 타도하고자 했던 관료제가 소련에서는 부활했으며, 동유럽과 북한에서는 처음부터 명백하게 나타났다. 북한에서 김일성은 박헌영 등 정치적 반대파들을 대거 숙청하면서 당과 정부 안에서 비판을 원천 봉쇄했고 절대적 권력을 세워갔다. 러시아 소비에트와 비슷한 형식의 인민위원회가 있었지만, 인민위원회는 노동자들의 권력이 아니라 노동자들과 여타 소부르주아 세력들이 뭉뚱그려져 있는 계급연합권력이었고, 여기서 존재했던 민주주의는 극히 제한적인 것이었다. 게다가 노동자들의 아래로부터의 소환, 선출, 탄핵의 권리가 점차 유명무실화해졌으며, 북한 김일성 지배분파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단순 집행기관으로 전락해갔다. 북한에서 정치의 주인은 김일성과 그를 추종하는 소수 관료들이었으며, 다수 노동자들과 피착취 근로인민들은 정치에서 소외되고 대상화됐다. 제국주의의 침략 위협을 핑계로 상비군을 항구적으로 존속시켰으며, 군대 안에서 관료적 통제를 심화시켜갔다.
    북한 노동당은 처음 출발에서부터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정치로 무장하고 노동자계급의 최우량 분자들을 결집시킨 노동자 혁명정당이 아니었다. 김일성 유격대는 주로 소부르주아 농민들에 기초한 급진적 항일 민족해방 투쟁부대였다. 그리고 이후 건설된 북한 노동당 또한 이런 소부르주아 농민들, 지식인들 등이 잡다하게 참가한 급진적 소부르주아 민족정당이었다. 일제 식민지 하에서 제국주의적 침략에 맞서 싸우며 민족해방을 쟁취하고자 했던 것은 당시로서는 일정한 진보성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피억압 민족의 민족해방 투쟁도 노동자계급의 해방이라는 원대한 목표에 종속되고, 노동계급 해방 투쟁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배치될 때에만, 그리고 민족해방 투쟁에서도 급진적 부르주아나 소부르주아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주도성이 관철될 때 일관되게 전진하고 승리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민족 민주 권력은 노동자 혁명을 통해 노동해방 권력으로 전진할 것인가 아니면 통상적인 부르주아 권력으로 퇴보할 것인가의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는 점에 있다. 소부르주아 세력은 계급적 본성에 따라 필연적으로 동요할 수밖에 없으며 노동자계급에 이끌리거나 자본가계급에 이끌리는 두 가지 운명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다.
    김일성 유격대와 초기 북한 노동당 같은 급진적 소부르주아 정당을 노동자계급 쪽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세계 노동자계급에게 깊게 뿌리내린 세계적 혁명투쟁 지도부가 있거나 적어도 한반도에서 노동자계급의 혁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할 수 있는 전략 사령부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트로츠키가 건설한 제4 인터내셔널이 있었으나 이 조직은 제3 인터내셔널처럼 전세계 혁명투쟁에 실제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이며 위력적인 힘을 갖고 있는 조직이 아니었다. 그리고 국내 혁명운동에서도 스탈린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진정 노동계급적이고 혁명적인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북한 노동당은 민족해방의 과제가 달성된 다음에는 일정한 진보성까지 마감하고 부르주아 정당으로 전화해갔다. 시간이 갈수록 이 당은 더욱 더 자본가국가 관료들과 사회 전체에 포진한 지배 엘리트들의 당으로 확실하게 전락했다. 이런 김일성 자본가권력이 수행한 국유화 조치가 노동자들의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는 노동해방 사회 건설의 첫걸음이 결코 아니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남한에서 해방 직후 주도권을 쥐고 있던 남로당은 스탈린주의의 영향을 받으면서 당시 혁명을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 단계로 규정했고, 미 제국주의를 “민주주의 국가”로 바라보면서 수많은 전술적 오류를 범했다. 가장 결정적으로는 미 점령군에 환상을 갖고 철저하게 투쟁하지 않았으며, 결국 미 점령군으로부터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 한국전쟁은 남북한의 노동자계급, 피착취 근로인민의 투쟁역량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북한에서는 관료적인 국가자본주의가 노동자, 인민에 대한 가혹한 착취를 바탕으로 더욱 분명하게 형성되어갔고, 남한에서는 수십년 동안 혁명투쟁이 단절되는 쓰라린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해방 전후 노동계급 운동의 좌절과 북한에서 국가자본주의의 등장은 명확한 정치의식과 철의 규율을 갖춘 혁명적 지도부의 건설과 노동자계급의 독자적이며 혁명적인 정치세력화, 그리고 이를 통한 노동자권력의 건설이 사활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당시 경험은 러시아 반혁명과 코민테른의 변질이 한반도 혁명운동에 얼마나 큰 해악을 미쳤는지, 세계 노동자계급이 혁명의 깃발 아래 단결해 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교훈으로 남겨주고 있다.

    2) 북한에서는 소련을 모방한 국가 자본주의가 들어섰다

    북한은 한국전쟁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8,700여 개의 공장과 70만 호의 가옥, 5,000여 개의 학교건물이 파괴됐다. 인력 손실도 막대했으며 산업생산량도 격감했다. 예를 들어 1953년의 공업생산량은 전쟁 전에 비해 40% 이상 감소됐으며, 농업생산량도 25% 이상 줄어들었다. 이런 손실을 극복하기 위해 북한은 ‘전후 경제복구’에 집중했다. 여기에서 소련, 중국의 원조와 북한 노동자계급에 대한 초과착취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런 노선은 전쟁복구를 넘어서 북한 체제의 기본적 특징으로 자리잡았다. 북한은 ‘중공업을 우선 발전시키면서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킨다’는 기본노선을 채택했는데, 실제로는 중공업을 아주 편향되게 강조한 것이었다. 북한 지배계급은 북한 노동자의 의식주 생활을 극도로 피폐한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심각하게 제약하면서 중공업 발전을 추진했다. 이들의 계획은 실제로 그만큼 실행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계획한 중공업화 정도는 “자본주의 축적”의 전형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높은 것이었다.
    진정한 노동해방 사회에서도 때로는 중공업에 더 비중을 둘 수도 있지만, 이때 엄격한 전제는 가장 중요한 생산력인 노동자들의 생활수준과 권리를 가혹할 정도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에게 극도로 착취당하면서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만을 임금으로 받는 데 반해, 노동해방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전체 노동자들의 공동재산인 생산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공공기금 납부’를 하더라도 문화를 향유하고, 건강을 돌보며, 정치사회활동에 참여하면서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물질적, 사회적 조건을 반드시 보장받아야 한다. 노동자들의 소비를 가차없이 희생시키면서, 노동자들의 노동의욕을 제거하면서 이루어지는 생산력 발전이란 “생산자들을 위한 생산력 발전”이 아니라 “생산력 자체에 생산자들을 종속시키는 것”, 즉 “축적을 위한 축적”일 뿐이다. 러시아 노동자혁명과 반혁명의 경험은 이를 잘 보여준다. 1913년의 노동생산성 지수와 노동자 생활수준 지수를 모두 100으로 놓았을 때, 노동자권력의 막바지에 해당했던 1928년에는 노동자생산성이 106.6이고 노동자 생활수준이 151.4였던 반면, 스탈린 반혁명이 완전히 마무리된 다음인 1936년에 노동생산성은 331.9였는데 노동자 생활수준은 64.9로 확 떨어졌다.(토니 클리프, ꡔ소련 국가자본주의ꡕ, 59쪽) 여기에서 우리는 노동자권력일는 때 “노동자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생산을 발전”시키는 반면, 국가자본주의일 때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동자의 생활을 희생시킨다”는 것을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이 점에서 본다면 북한의 경제발전 과정은 노동해방과 거리가 멀었으며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이루어진 “자본축적”과 동일한 것이었다.
    북한 지배계급 내 김일성 분파는 자신들의 독재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른 계파 간부들을 과감히 숙청했다. 53년에는 이승엽, 이강국, 임화 등 전(前) 남로당 지도부를 “미제의 간첩”으로 몰아 숙청했으며, 55년에는 박헌영을 동일한 죄목으로 재판하고 처형했다. 그 다음 지배계급 내 두 번째 갈등과 숙청은 53년부터 61년까지 전후 경제복구 계획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연안파와 소련파는 “전쟁으로 피폐해진 인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것이 급선무이며 그렇기 때문에 소비재 공급을 해줄 수 있는 경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김일성 분파에게 제압당했다. 그리고 김일성 분파는 북한을 사회주의로 변화시켜야 한다며 당시 전체 인구의 60%가 넘는 농업 부문과 부분적으로 남아 있던 개인 상공업 부문을 강제로 국유화시켜갔다. 이것 또한 스탈린이 밀어붙였던 농촌 강제집산화를 모방한 것인데, 반대파들로부터 “현대적 농기계 없이는 농업을 협동화할 수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김일성 분파는 이런 반대에 피의 숙청으로 답했다. 58년 김두봉 숙청을 마지막으로 권력 독점을 위한 김일성의 투쟁은 끝난다. 스탈린이 지노비에프, 부하린, 트로츠키를 숙청하고 암살했던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김일성은 자신의 철의 독재를 관철시켜갔다. 김일성 분파가 “사회주의가 완전히 승리했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시점은 북한에서 일정하게 진보성을 지녔던 민족해방 혁명 요소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관료적인 국가자본가들의 독재체제가 공고화됐던 때와 정확히 일치한다.
    한편, 노동자대중에 대한 착취도 강화해 갔다. 1956년 시작된 ‘천리마 운동’은, 58년말에 ‘천리마 작업반 운동’으로 발전되어 광공업뿐만 아니라 농업 등 모든 산업으로 확대되었다. 이것은 ‘북한판 스타하노프 운동’, ‘북한판 대약진 운동’으로서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현격하게 증대시키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 시행된 ‘청산리 방법’은 당, 국가 간부에게 목표량을 달성하지 못하면 숙청하는 것으로, 간부들의 노동자착취를 독려하는 위로부터의 운동이었다.
    북한 자본가계급은 이에 따른 대중적 저항을 무마하고 지배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김일성, 김정일 우상숭배를 추진했다. 이것은 김일성, 김정일을 신격화함으로써 역사의 발전에 대한 관념론적 사고를 주입하고, 대중의 자주성, 창조성을 철저히 억누르는 역할을 했다. 사회주의는 노동자 대중 자신의 창조적 운동의 산물이기에 우상숭배와는 정면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대중이 자연과 사회, 역사의 법칙을 정확히 과학적으로 이해해 이를 자신의 이익과 요구를 위해 의식적으로 이용하고,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를 비롯한 온갖 분업을 폐지하면서 사회와 역사의 주인으로 일어설 수 있는데, 숭배해야 할 그 무엇이 남아있겠는가? 우상숭배는, 노동자들이 말하는 기계부품으로 지시에 무조건 따르기를 바라는 자본가계급이 항상 조장하는 수동화 논리를 확대시킨 것이다. 따라서, 우상숭배는 북한이 진짜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가장 분명한 증거 가운데 하나이다. 게다가 우상숭배는 엄청난 생산수단과 노동력을 동상 및 기념관 건립, 호화찬란하고 거대한 숭배 행사에 쏟아붓게 함으로써 북한경제를 위기로 몰아가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북한 지배계급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라고 떠벌였지만, 거기에서 “계획”은 국가 자본가들의 종이 위에서만 존재했고 실제로는 무계획상태가 지배했다. 전사회적인 “계획화”는 직장과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대표들이 국가업무를 보고, 언제나 노동자들이 국가 관리들을 선출, 소환, 탄핵할 수 있을 정도로 노동자 민주주의가 발전해있고, 국가 관리들의 임금이 숙련노동자의 평균임금을 넘지 않을 정도로 관료적이지 않으며, 모든 작업장 노동자들이 생산의 계획화에 참여하고 이들의 소비욕구를 반영해 생산을 계획하는 노동해방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생각해 보라. 노동해방 사회에서 국가 관리들은 노동자들의 친근한 벗으로서 노동자들과 항상 대화하고 그들로부터 항상 통제된다. 노동자 국가의 공무원들은 어떤 커다란 물질적 보상이나 특권 때문이 아니라 전체 사회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점 때문에 자기 업무에 애착을 갖고 헌신적으로 활동한다. 또한 작업장 단위에서 노동자들이 생산을 계획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체 생산이 조절되는 사회만이 전체 사회의 필요를 정확하게 측정하고, 필요에 맞게 계획을 세울 수 있고, 각 요소 요소에 필요한 자재들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공급할 수 있으며, 성실하게 보고하고 계획하여 집행할 수 있다. 이런 노동계급적 공무원들과 작업장 자주관리를 토대로 국가는 생산과 분배의 전사회적 계획과 통제를 훌륭히 해낼 수 있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질적인 무정부적 낭비, 자재의 부족, 공황, 생산의 정체, 일거리 부족에 따른 강요된 게으름을 말끔히 없앨 수 있다. 그리하여 노동자권력은 오케스트라 연주자처럼 거시적으로 조망하고 힘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면서 놀라운 조화로움과 마르지 않는 활력으로 전체 사회를 계획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남한 공무원 사회에서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 사회의 공무원들은 자리, 권력을 이용해 특혜, 특권을 얻고자 하며, 다른 사람들을 억누르고 자신이 출세하려는 이기주의에 흠뻑 물들어 있는데다, 잘못을 시인하고 책임지려는 진지한 태도는 없고 잘못을 감추고 남에게 떠넘기려는 무책임한 태도가 만연해 있다. 이런 병폐가 북한에서는 훨씬 더 심각하게 나타났다. 위에서는 현실불가능한 목표치를 “계획”이란 이름 아래 강요했고, 아래에서는 사실과 다른 과장 보고로 대답했다.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극도로 경직된 사회이기에 문제가 발생해도 덮어버리기 일쑤였다. “집단주의”를 그토록 강조하는 사회이지만,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을 제외하고 어떤 개인도 집단 속에서 자유를 누릴 수 없기 때문에 개인주의, 이기주의적 태도가 은밀한 형태로 널리 퍼져있다. 관리들이나 작업장 지배인들은 자신의 지위, 권한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이런 결과 북한에서는 “계획”이 난무하지만 어떤 것도 엄밀한 사업타당성에 기초해 있지 않기에 결국 실패하고 만다.
    문제는 자본가들이 흔히 주장하듯 “계획경제” 자체에 있지 않다. 북한 “경제”의 한계는 전혀 계획적이지 않은, 완전히 무정부적인 자본주의 경제라는 점에 있다. 이런 점에서 자본가들은 북한 “계획경제”를 무정부적이라고 비난하면서 노동해방은 불가능하다고 비웃고 있는데, 사실은 자신들의 얼굴에 침을 뱉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가들은 “계획경제”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이미 자신들도 공장 내부에서는 생산 “계획”에 따라 생산하고 있으며, 일국 또는 전세계적으로도 과잉 생산을 막기 위한 “생산의 계획적 조절”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경제의 위기는 “계획의 과잉” 때문이 아니라 “진정한 계획의 결핍”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남한과 세계 경제의 위기 또한 동일한 문제 때문에 계속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공장 내에서 수행하고 있는 “계획화”는 찬미하면서도 노동자들이 이 “계획화”를 전사회적으로 확대시키려 하면 극구 반대한다. 이 얼마나 위선적인가! 그리고 자본가계급은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서 노동자들의 시체더미가 쌓여가더라도 자기 주머니가 두둑하게 되기를 갈망하지만, 노동자들이 한줌밖에 안 되는 자신들을 통제하겠다는 생각만 가져도 소스라치게 놀란다. 자본가들이 북한 국가자본주의의 한계를 “계획경제” 일반의 한계로 몰아붙이는 데 열심인 것은 그것을 반영한다. 북한과 남한, 전세계에서 노동자들의 혁명이 일어나고 노동자들이 정치와 경제, 사회 모든 측면에서 주인으로 우뚝 설 때만 “진정한 계획경제”가 이루어질 것이다.
    관료들만이 주인이었던 북한에서 노동자들의 창의와 자발성을 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초기에는 “미제국주의가 다시 쳐들어올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 유포와 강압으로 북한 노동자들을 강도 높은 노동에 동원하면서 생산력을 발전시켰지만, 이런 사기와 강압만으로 생산력을 계속 발전시킬 수는 없었다. 특히 자신의 강도 높은 노동의 결과물이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게 되자, 노동자들의 생산열망은 형편없이 축소되었다. 그 결과 70년대 이후부터, 특히 80년대부터 생산성 향상률은 사적 자본주의에도 못 미칠 정도로 떨어졌으며 급기야 마이너스 경제로 전락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북한 자본가계급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더욱 강화해 갔다.

    2. 북한 노동자계급의 처지

    1) 북한 노동자계급의 처지

    북한 지배계급은 북한을 “계급적 불평등이 없는 사회주의 사회”로 묘사하면서 북한 노동자대중과 세계 노동자계급을 현혹하려 한다. 그러나 북한에서 “법 속의 평등”은 “실제적인 불평등” 앞에서 그 실체가 여지없이 폭로 당하고 만다.
    북한은 소련, 동유럽의 국가자본주의처럼 소수 당 관료, 노멘클라투라(전문가 관료)가 권력과 부를 독점하는 지배계급을 이루고 있다. 북한 노동당은 스탈린 시대 소련 공산당처럼 “노동자계급의 당”이 아니라 “노동자의 탈”을 쓴 국가 관료, 당 관료들의 정당이다. 당원은 보수, 승진, 자녀 교육 등 모든 측면에서 특권을 누리는데, 당원 충원이 당 관료들에 대한 충성도나 출신성분(관료들의 자녀 및 친인척 따위) 등을 기준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불평등이 신분적으로 고착되는 경향이 강하다. 북한 지배계급이 발표한 공식 통계만 따르더라도 공장과 직장에서 일하는 일반 노동자들이 70원에서 130원을 받는 반면, 당, 국가중앙기구, 군간부들의 임금 수준은 최저 200원에서 최고 490원에 이르고 있어 최대 7배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북한 지배 관료들이 지하시장 암거래, 부정부패, 뇌물 등 온갖 방식으로 거대한 부를 독자치하고 있기에 북한에서 노동자와 자본가의 차이는 공식통계보다 훨씬 클 것이 틀림없다. 파리꼬뮌과 러시아 혁명에서 “노동자국가 관리의 임금은 숙련노동자의 평균임금을 넘을 수 없다”고 못박았던 것과 비교해볼 때, 북한은 노동자국가와는 하늘과 땅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임금에서만이 아니라 의식주 모든 측면에서 심한 불평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당 간부 등 특권층은 정량(定量)의 흰쌀을 꼬박꼬박 배급받고 있다. 노동자를 비롯한 일반 주민들에게 식량 배급이 그나마 이루어졌을 때에도 “전쟁에 대비한다” 따위의 각종 식량 비축 명목으로 규정상의 배급량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으며, 잡곡 위주로 배급되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는 북한의 경제난, 식량난이 심각해지면서 이런 형편없는 배급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북한 지배계급은 주민들에게 30-50평 이내에서 텃밭을 일굴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에게도 식량을 구해오라고 휴가를 보내거나 산에서 소나무껍질을 벗기거나 풀뿌리를  캐오도록 요구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지금 아파트 베란다에 마늘이나 야채를 심는 경우가 많다. 농촌에 사는 농업 및 공업 노동자들은 합법적인 텃밭 외에도 산기슭 등에 불법적인 뙈기밭을 만들어 일군다. 북한 지배계급은 식량난이 심각해지자 중앙 정부에서 일괄적으로 식량을 배급하지 않고, 각 지방 기관별로 알아서 식량난을 해결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각 지방별로, 각 계층별로 식량난 해결에서 차이가 드러나는데 도시의 평범한 노동자들은 배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아파트 베란다를 이용할 수도 없고, 텃밭을 일구는 것도 어려워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노동자들은 직장에 휴가를 내고 시골에 사는 친척들에게 가서 식량을 구해오거나 중국이나 러시아로 넘어가 식량을 구해오기도 한다. 그런데 북한 국가자본가들은 당장 다른 곳에서 식량을 조달하지 않는다면 굶어죽을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과거처럼 이동, 여행 통제를 엄격하게 한다면 반란의 위험이 있다는 점을 알고서 어쩔 수 없이 이런 이동을 허용하고 있다. 그래서 먹고살기 위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유랑 노동자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 국가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최저생계조차 해결하지 못함에 따라,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쌓여가고 있으며 “국가 재산을 훔치면 사형한다”는 법을 무시하고 공장 물품을 빼돌려 지하시장에서 식량과 바꾸는 일도 허다하다. 그리고 이동․여행의 통제, 국경 통제, 공장 통제들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북한 지배계급은 아주 천천히 대외개방을 하고 ‘사유재산’을 법적으로 인정하면서 북한 노동자들을 계속 안정적으로 통제하려 할 것이다. 문제는 북한 노동자들이 어떻게 자본가계급에 대한 개인적 저항을 집단적 저항으로 끌어올리고, 국가자본주의를 거부하고 진정한 노동해방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계급투쟁의 역사적 무대에 위풍당당하게 등장할 것인가에, 그리고 이런 전진을 남한 노동자계급이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에 있다.
    북한에서는 또한 어떤 옷을 입었는가만 보더라도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신분별 옷 배급의 차이가 확연하다. 그리고 당 간부들은 평양의 고급주택이나 새로 지은 고층아파트에 사는 반면 노동자들은 낡은 공동주택, 아파트, 또는 농촌의 경우 초가집 등 구옥에 살 정도로 차이가 뚜렷하다. 교육도 마찬가지로서 당 관료, 노멘클라투라의 자식들은 김일성 종합대학, 평양외국어학원, 만경대유자녀학원 등에 진학하거나 해외로 나가 북한의 “새로운 지배 엘리트”로 성장할 수 있다. 얼마 전부터는 북한에서도 정보통신혁명에 높은 관심을 갖고 “대동강 밸리” 형성, 남한 및 미국 등과의 통신사업 협력 등을 추진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김정일의 아들은 인터넷에 전문가적 능력을 갖고 있다 한다. 이처럼 관료들의 자녀들은 영어, 인터넷 등을 충분히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어 국제화, 정보화 시대의 북한 지배엘리트들로 성장할 준비를 하고 있다. 반면, 일반 노동자들의 자녀는 고등중학교의 의무교육을 마친 다음 군대나 직장으로 바로 가서 “새로운 노동자부대”로 충원되어야 한다. 북한은 법문구 상으로는 남한보다 훨씬 더 과격하게 “사회주의”를 수천만 번 써 갈겨 놓았지만, 실제 현실을 들여다보면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간의 차별이 또렷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

    2) 현장통제

    북한 “사회주의 노동법”은 하루 8시간 노동제를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실제 노동시간만 해도 10시간에 이르며, 작업 준비 30분, 작업 총화 30분 등을 합하면 11시간이 된다. 작업총화 시간에는 그날의 작업 성과를 분석하고, 사상학습을 하며, 김일성 교시에 대한 충실도를 평가하고 자아비판 및 상호비판을 하는데, 이런 작업총화가 노동자들에게 현장 노동보다도 더 스트레스를 준다고 한다. 또한 북한에서는 개인이나 소속작업반이 중앙에서 지시한 계획량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기본임금을 다 받을 수 없는 반면, 책임량을 초과 달성할 경우 추가임금이 나오기 때문에 노동시간 연장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노동강도도 계속 강화되고 있다. 북한 노동법은 “노동정량의 초과달성과 단위시간 안에 더 많은 생산” 등을 규정하고 있으며, “480분(8시간) 노동시간의 완전한 이용” 등을 규정해놓고, 노동강도 강화를 부추기고 있다. 또한 북한 노동자들은 “속도전”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하루 계획을 100% 달성하면 수치(羞恥)이고, 500% 하면 수수하고, 1000% 하면 괜찮고, 3500%를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말하는 계획화가 얼마나 허공에 붕 뜬 비현실적인 것이며, 그들이 노동자들의 노동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지 못하는 관료들’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하루 계획 노동량의 35배를 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상황은 “마른 수건에서 물이 뚝뚝 떨어질 때까지 쥐어짠다”는 말처럼 이윤을 위해 무한대의 착취를 추구하는 자본가들의 본성은 어디에서나 변함이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차이는 남한 자본가들은 이런 가능한 착취 정도를 현실적으로 고려하면서 지속적으로 착취의 수위를 높이는 데 반해, 북한 자본가들은 아무런 현실적 준비도 생각도 없이 무한대로 착취를 늘리려는 욕심만을 갖고 있다는 점에 있을 뿐이다. 특히 북한 자본가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계획”이라고 내세울 정도로 천박하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노동해방 사회에서 “계획”이란 노동자들의 생산능력을 포함한 생산조건을 정확히 계산하여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더욱 더 중요하게는 모든 생산수단을 노동자권력의 소유, 즉 전체 노동자들의 소유로 전화한 상태에서 전체 사회에서 필요한 양을 계산하여 그에 맞게 생산하고 분배하는 것이며, 이런 생산과 분배의 계획과 통제에 노동자들의 자주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조직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루 계획의 3500% 달성을 요구하고, 노동자들의 참여 없이 위에서 일방적으로 계획을 내리꽂는 북한이 노동해방 사회와 닮은 데라곤 하나도 없다.
    북한 노동법은 노동자들에게 해마다 14일간의 정기휴가와 7-14일간의 보충휴가를 보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노력 경쟁운동”과 “책임량 완수운동” 등으로 인해 휴가를 반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또한 법 조항으로는 150일간의 산전휴가를 보장하고 있지만, “혁명적 열정”을 요구하며 거의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북한 노동자들이 법규정의 모든 혜택을 누리려 한다면 “혁명적 열정이 식었거나 자본주의적 개인주의에 물들었다”는 자아비판과 함께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북한 사회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북한 지배자들이 위선적으로 설치해놓은 가면(노동법의 많은 항목)들을 걷어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생생하게 보아야 한다.
    북한의 산업재해, 노동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들은 입수하기 어렵지만, 세계보건기구(WHO) 등에서 추정하는 것을 보면 직업병, 산업재해에 대한 관심부족과 투자부진에 따라서 북한의 노동자들은 극히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자본가들은 강추위로 인한 결빙으로 공사가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옷을 벗어 공사중인 기둥을 둘러싸 놓도록 강요하며, 이것을 “혁명적 열의에 의한 영웅적 행동”으로 칭송하기도 한다. 북한에서 산재가 발생하면 지배계급에 충성하는 열성 당원들은 산재보험료를 규정대로 받지만, 성분 불량자의 경우에는 산재가 ‘고의적인 사고’로 처리되어 불이익을 받는다. 북한의 대다수 노동자들은 남한의 밑바닥 노동자들이 당하는 고통 이상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 자본가계급이 끔찍이도 두려워하는 것은 노동자대중들의 자주적이고 집단적인 행동이다. 따라서 파업을 반혁명 범죄로 간주하여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자주적 행동을 철저히 가로막는다. 그리고 불만을 갖고 초보적인 저항이라도 조직하려는 노동자들에게는 “불순분자”, “반혁명분자”라는 딱지를 붙여 수용소나 아오지탄광, 산간벽지로 보내 버린다. 그러나 17년 10월 혁명 러시아 노동자권력은 “파업의 자유”를 인정했다. 그것은 자본가계급이 조종하는 반혁명책동을 인정한 것이 결코 아니다. 노동자권력이 들어섰지만 아직 여러 측면에서 불완전한 것이었기 때문에 노동자권력의 관료화를 막기 위해, 그리고 노동자권력 하에서도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노동자들에게 파업의 자유를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북한 권력은 노동자들로부터 올라오는 일체의 비판과 투쟁을 불허함으로써 노동자국가가 아니라 극도로 관료화된 자본가국가임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의 30세 이상의 남녀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직업총동맹(직총), 30세 이하의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김일성 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사로청)은 남한의 어용노총보다도 훨씬 더 어용적인 “자본의 노무관리 기관”이다. 이 기관에서는 자본의 착취와 억압에 맞서 싸우며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요소라고는 눈곱만큼도 찾기 어렵다. 이 기관은 북한 노동자들에게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국가, 특히 김일성-김정일 부자에게 충성할 것”을 강요하는 전형적인 어용 기관이다. 이 기관의 대표자들은 북한 지배집단의 핵심을 구성하며, 지배자들의 방침을 노동자들 속에 관철시키는 첨병의 역할을 담당한다. 남한의 전노협이나 폴란드 연대노조(솔리다리테)처럼 직업총동맹을 포함한 자본가국가 기관들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자조직이 얼마나 빨리 탄생하는가가 북한 노동자운동에서 관건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3) 북한 여성 노동자들의 처지

    북한에서 남녀 평등은 종이 위에만 존재한다. 김일성을 수장으로 한 북한 지배계급은 1945년 8.15 이후 여성들을 효과적으로 동원하기 위해 남녀 평등법을 제정하여 그 동안 가정에 예속되고 남존여비의 봉건적 관습 속에서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던 여성들에게 직장과 사회에서 평등을 약속했다. 그리고 탁아소, 유치원을 많이 만들어 여성들을 가정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사회생활에 적극적으로 동참시키려 했다. 또한 가부장제적인 호주제도를 폐지했으며, 동일노동 동일임금, 77일간의 산전산후 휴가, 산모의 야간노동 금지 등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는 노동법을 제정했다. 미 제국주의의 영향력 아래 있던 남한 지배계급과 경쟁해야 했고, 북한 및 남한 노동자, 농민들에게 북한 사회의 “우월성”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던 북한 지배계급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진보적이라 할 수 있는 여성정책을 실시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북한에서 김일성 권력독점이 정착되어갈 무렵부터는 여성정책들에서 심각한 후퇴가 계속되었다. 1956년 3월에는 “협의이혼 폐지, 재판절차를 거친 이혼만 허용”을 결정했는데, 지배계급은 체제 안정화를 위해 이혼을 제한하고 가정안정을 사회안정의 기초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북한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여성을 “사회주의 건설의 역군”, “혁명의 일꾼”이라고 칭송하면서 이용했다가 김일성-김정일 독재체제가 안정되면서, 가정을 충실히 지켜야 하는 “집안의 하녀”로 전락시켰다
    북한 자본가국가는 노동자착취를 극대화하여 이윤을 늘리고자 대다수 여성들을 직장에서 일하게 했다. 그 결과 북한에서 여성 노동력 비율은 1991년 현재 49%에 이른다. 그런데, 여성들은 섬유, 의류산업 같은 경노동이나 간호사, 교사, 사무원 등에 주로 배치되어(북한에서 직업선택의 자유는 사실상 없다), 주로 중공업에 배치되어 있는 남성 노동자들 임금의 60% 정도를 받고 있다. 여성들은 승진기회에서도 차별을 받고 있어서 고위직에 있는 여성의 비율이 아주 낮다. 북한에서는 남성은 물론 여성조차도 집안일을 “노동”으로 사고하지 않고 여성의 몫으로 당연하게 간주하여, 남성은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고 여성들은 직장에서 지친 몸으로 돌아와서도 쉴새 없이 가사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형편이다. 또한, 가정과 사회에서 남성 “우월의식”이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북한에서는 남자들이 여성들 앞에서 “여자도 사람인가”, “여자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쯤은 아무런 흠이 되지 않는다. 한국에 온 북한 이탈 주민들이 남자건 여자건 할 것 없이 한국 여성들을 “너무 드세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북한 사회의 지배적인 “여성관”이 어떠한가를 쉽게 짐작하게 해 준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직장생활에서도 대개 여성들은 선후배에 관계없이 남자들의 심부름을 해야 하며, 직장 청소 등 잡일도 떠맡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북한 여성들은 낮은 임금, 많은 가사노동, 남녀 불평등으로 이중삼중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북한 김일성은 여성정책에서 “자신의 정치적 선배”인 스탈린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러시아에서 1917년 10월 노동해방 혁명이 일어난 다음 레닌과 볼셰비키 당은 여성해방에 대해 아주 급진적인 정책들을 실시했다. 여성들이 가사노동의 족쇄에서 벗어나 새 사회 건설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탁아소, 세탁소를 늘리고, 밥공장, 반찬공장을 지어나갔다. 여성의 권리를 제약하는 모든 낡은 법, 제도를 철폐했다. 이혼은 아무런 재판도 없이 남녀 한쪽의 결정만으로도 가능했다 등등. 하지만 스탈린이 반혁명을 추진하던 자본가의 화신으로서 권력을 장악한 다음에는 이 모든 것이 뒤집어졌다. 여성들은 다시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북한 김일성은 여성들에게 권리를 러시아 노동자권력보다 훨씬 적게 준 다음, 다시 이것을 빼앗아가 버렸다. 한마디로 김일성은 “한반도의 스탈린”이었다. 북한 지배계급은 남한과 세계의 모든 자본가계급들처럼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을 위해 남녀불평등과 가부장제를 존속시켜 왔으며, 오히려 다른 나라들보다 남녀관계에 대한 봉건적 관습을 훨씬 더 많이 존속시키고 있다. 이런 점에서 북한 국가자본주의가 남한, 일본, 미국의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들보다도 훨씬 더 낙후한 자본주의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북한 국가자본주의는 여성들을 대거 노동현장에 끌어들임으로써 착취의 성을 높게 쌓을 뿐만 아니라, 그 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혁명적 계급 또한 거대하게 육성하고 있다. 북한 여성노동자들은 가사노동, 여성에 대한 편견만이 아니라 직장, 공장에서의 가혹한 경제적 착취라는 또 하나의 굴레를 쓰고 있지만, 이 굴레는 여성들을 “부엌데기”에서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여성들 또한 가정 생계를 공동으로 책임지고 남성들 못지 않게 사회활동, 학습을 하게 함으로써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힘으로 남녀 평등의 객관적 토대를 쌓아 나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을 겹겹이 둘러매고 있는 굴레들을 깨뜨리는 것은 오랜 기간의 지난한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겠지만, 기어이 그 길을 갈 것이라는 점은 틀림없다.

    4) 북한 자본주의 발전 및 개방에 따른 북한 노동자계급의 각성과 투쟁 가능성 증대

    위에서 보듯이 북한 노동자들은 “극도로 고통받는 계급”이다. 하지만, 북한 노동자계급은 단순히 “고통받는 계급”인 것만이 아니다. 그들은 거대한 계급투쟁을 밀어가고 해방을 쟁취할 수 있는 혁명적 잠재력을 가진 노동자계급이며, 나날이 반동화하고 있는 세계 자본가계급에 맞서 노동해방의 그날까지 끈질기게 싸울 세계 노동자계급의 일부이다. 북한 노동자들을 단지 “고통받는 계급”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북한 노동자들을 착취와 수탈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남한 자본가계급을 포함한 세계 자본가계급의 시각이며, 동시에 그들을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소부르주아의 시각일 뿐이다. 박정희, 스탈린, 차우세스크 전체주의적 자본가정부 등은 수십 년씩 지배하면서 철옹성처럼 보였다. 그러나 모든 것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북한 김일성-김정일의 “대를 이은” 자본가정부도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며, 북한 노동자계급은 그때 자신의 위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낙관이 단순한 “열망”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현실 속에서 점차 자라나는 낙관의 객관적 근거들을 발견해야 하며, 또한 아직까지 완강하게 버티면서 새로운 것을 억누르고 있는 낡은 것들에 대해 철저하게 밝혀내어 낡은 것을 무덤 속으로 집어넣고 새로운 것을 활짝 꽃피우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북한 노동자계급은 북한 사회의 “압도적 다수”이다. 북한 자본가계급은 자신들이 주도하는 사회를 “사회주의”로 가장하기 위해 공업과 농업에서 사적 소유를 제거해왔으며, 공업에서만이 아니라 농업에서도 대부분을 국영기업, 협동기업으로 재편해왔다(농업의 경우 국영농장, 협동농장). 북한 자본가계급이 자신들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취한 국유화 조치들은 북한에서 노동자의 비율을 남한 및 다른 선진 자본주의 나라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북한의 국유화 조치들은 “노동자 국가가 수행한 국유화와 그를 통한 전사회적 계획화”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지만, 북한 노동자들이 계급적으로 각성하고 조직적으로 단결하여 자본가들의 국가권력을 타도하고 진정한 노동자들의 권력을 수립한다면 전사회적 계획화를 보다 직선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형식적 조건을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북한의 생산력이 대단히 낮기 때문에 노동자권력이 국유화된 기업들을 통제하고 계획적으로 운영한다 하더라도, 전사회적 계획화에 이르는 것은 결코 간단치만은 않을 것이다. 노동해방은 (동일한 정도의 주체적 혁명역량을 전제로 한다면) 높은 생산력을 보유했을 때만 자신을 활짝 꽃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90년대부터 경제위기가 가속화되면서 북한 지배자들은 여전히 점진적이긴 하지만 대외개방의 폭을 넓혀 왔다. 그리고 50평 이내라는 아주 작은 규모이기는 하지만 텃밭을 법으로 보장했는데 이것은 북한이 ‘사적 소유’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북한은 지금까지 소유형태를 국유화로만 한정했는데, 얼마 전부터는 농업과 공업 모두에서 협동조합의 사적 소유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북한보다 앞서서 사적 자본주의로 전화했던 소련, 중국 등은 모두 국유화 중심에서 협동조합의 소유까지 보장하는 것으로, 그 다음에는 사적 소유를 인정하는 것으로 단계적으로 나아갔다. 이런 과정에서 국영기업에 강제적으로 묶여 있던 노동자들 중 일정 부분이 자기 땅과 상점, 소규모의 작업장을 지닌 소부르주아, 또는 소자본가로 전화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에서 텃밭을 일구는 노동자들은 국영농장에서는 쉬엄쉬엄 일하다가 저녁에 자기 텃밭에 돌아와서 맹렬히 일한다. 그리고 식량난 때문에 국영농장의 옥수수는 채 자라기도 전에 도난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도난을 막기 위해 군인이 농장을 지키는데 군인들도 배가 고파 몰래 훔쳐먹을 정도라고 한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큰 덩어리의 국영농장의 단위당 생산성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은 땅덩이인 개인 텃밭의 단위당 생산성보다 훨씬 낮다. 그래서 북한 농업노동자들 가운데는 “국영농장을 해체하여 개인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주면 좋겠다”는 소생산자적 열망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북한이 사적 자본주의로 이행할 경우 형식적으로만 본다면 노동자 수의 감소로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사적 자본주의로 이행한다면 노동과 자본 사이의 대립은 더욱 분명히 드러날 것이고 노동자들이 제한적이나마 일정한 자유를 누림으로써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은 확대될 가능성이 많다.
    북한 자본가계급이 끊임없이 선전해대는 “지상낙원” 이데올로기와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쓰러져가고 있는 실제 현실 사이의 거대한 격차는 북한 노동자들이 자본가계급에 분노하며 저항할 수 있는 객관적 기초를 이루고 있다. 이미 북한 노동자들 사이에서 수령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은 약화되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처참한 삶을 천재지변이나 미제국주의 등 외부 압력 때문이 아니라 김일성, 김정일 지배계급의 수탈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간주하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앞으로 북한 자본가계급의 부와 특권, 비리는 커지는 반면 북한 노동자들은 생존의 벼랑으로 내몰릴수록 북한 노동자들의 가슴속에서 반란의 싹은 더욱 커질 것이다.
    북한은 “공산주의를 향해 전진한다”며 “인텔리의 노동자화”, “노동자의 인텔리화”를 줄곧 주창해왔다. 하지만 정신노동을 하는 인텔리와 육체노동을 하는 노동자간의 괴리는 북한에서도 심각하게 존재한다.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유기적 결합은 오직 노동자계급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향상시키는 것을 지고의 목표로 삼는 진정한 노동해방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북한과 같은 국가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결합”을 흉내낼 수는 있지만, 사회가 국가관료, 노멘클라투라와 지배당하는 다수 노동자들로 확연하게 분리되어 있기에 절대 그것을 실현할 수 없다. 남한에서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에게도 정신적 노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겠다며 내놓은 “제안제도”가 실제로는 하루 10시간 이상 혹사당한 노동자들에게 남아 있는 정신적 에너지까지도 모조리 강탈해가겠다는 강도 행위이듯이, 북한에서 “노동자의 인텔리화”는 북한 노동자의 정신적 에너지를 앗아가는 것이다. 북한이 “노동자의 인텔리화”라는 명목으로 김일성, 김정일의 저작을 강제로 학습시키는 것은 “노동자의 인텔리화”가 노동자계급의 지적, 창조적 능력의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지배계급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도록 끊임없이 세뇌하는 데 진정한 목적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북한 자본가계급이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불가피하게 채택하고 있는 “노동자의 인텔리화” 정책은 자체 안에 모순을 담고 있다. 자본가계급은 노동자들을 더 강하게 포섭하고 더 확실히 쥐어짜기 위해 “노동자의 인텔리화” 정책을 취하고 있지만, 그 정책은 아주 제한적이나마 노동자들의 기대수준을 상승시키며 비판적 사고능력을 키우는 “부메랑”이 되어 북한 자본가계급 앞에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나라의 자본주의 교육제도가 사회를 운영할 소수 엘리트들만을 육성하며, 다수 노동자 자녀들을 정신노동과 분리된 단순 육체노동에 복무하도록 준비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생산력 발전 자체의 요구에 따라 국민교육의 수준을 높이고, 노동자들의 문화적 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노동해방 사상이 좀더 쉽게 파고 들어갈 수 있는 대중적 토양을 쌓는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북한 지배계급은 부족한 원유, 생산재, 생필품들을 해외에서 지원받아 공장을 제대로 가동시키기 위해 “폐쇄적 일국 경제” 정책을 수정하면서 제한적이나마 “개방”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북한 노동자들은 다른 나라 노동자들이 누리고 있는 상대적 자유와 권리, 투쟁과 해방을 향한 전진을 알고 자신들도 일어서야 한다는 결의를 다지게 될 것이다. 북한의 경제위기는 허위 보고, 부패, 지하시장의 활성화 같은 관료적인 경제의 내적 모순 때문에 이미 70년대부터 싹을 드러냈으며 80년대에 와서는 치유할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90년 전후로 동유럽과 소련의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북한은 이들 나라들과의 무역에서 경화(현금)로 직접 결제해야 하는 힘겨운 처지에 놓이게 됐으며, 그때부터 원유, 생산재, 생필품의 심각한 부족상태는 격화되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북한은 적대시해왔던 미국, 일본, 남한과 같은 사적 자본주의 나라들에게 도움을 구걸하며 자신을 “개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개방”은 북한 체제가 세계 사적 자본주의 체제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되는 것을 의미하며, 더욱 중요하게는 북한 노동자계급이 북한 체제의 반동성을 좀 더 투명하게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가능성을 의미하기에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북한전문 국가관료가 얘기하듯이 북한 자본가계급은 “개방을 안 해도 무너질 위협에 처해 있고, 개방을 해도 무너질 위협에 처해 있다”. 개방을 안 할 경우 경제가 한없이 곤두박질침으로써 ‘이대로 굶어죽을 바에는 차라리 싸우다 죽겠다’며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많으며, 개방을 할 경우에도 ‘지금까지 속은 것도 분한데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날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북한 자본가계급은 “개방”을 하면서도 북한 노동자들의 눈과 귀를 막으려고 별의별 짓을 다하고 있다. 북한 자본가계급은 개방에 따른 통제력 약화를 우려하여 나진․선봉, 금강산, 남포 등 대중들과 격리된 외딴 지점으로 개방을 제한하고 있는 주도면밀함을 보이고 있다. 또한 개방 지역 전체를 철조망으로 둘러침으로써 북한 노동자들이 개방된 지역에 가볼 수 없도록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세상 누구도 “개방”을 하면서 “노동자들의 눈과 귀를 꼭꼭 틀어막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는 없다. “개방만 되면 북한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놀랄 만큼 각성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단순한 사고이지만, 폭과 시기의 문제가 있지만 개방이 북한 노동자들에게 ‘우물’ 밖의 객관적 세계를 좀 더 투명하게 보고 단결해서 저항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북한보다 먼저 “개방” 정책을 추진해왔던 중국에서 인터넷 사용자가 급증함에 따라 중국 자본가계급이 온갖 제재를 가하면서 중국 노동자들이 세계 노동자계급과 교류하는 것을 차단하려 하고 있지만, 중국 노동계급이 인터넷을 투쟁의 무기로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점은 이것을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는 북한과 세계의 자본가계급이 이런 가능성과 기회를 최소화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면, 북한과 세계의 노동자계급은 그것을 극대화하기 위해 결사적으로 투쟁해야 한다는 점에 있다.
    각 나라들마다 동일할 수는 없지만, 소련, 동유럽, 중국, 베트남 등 북한보다 먼저 “개방”의 길을 걸었던 국가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이 격렬하게 타올랐거나 예열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후발자 북한의 경우도 노동자들의 저항을 피할 수는 없을 것임을 예견하게 해준다. 러시아에서 노동자들은 91년 “공산당 쿠데타”를 맨몸으로 막아냈으며, 대량실업과 임금체불, 노동조건 악화에 분노하며 광산 노동자 등이 세계적으로 주목할만한 정치파업, 정치시위를 전개할 정도로 영웅적으로 투쟁해왔다. 러시아 노동자들은 투쟁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는 비록 능력 있고 대중적인 혁명적 정치세력의 부재로 성공하진 못했지만, 1917년에 견줄만한 “혁명적 분위기”를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중국 천안문 사건에서 학생들의 투쟁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거기에서는 노동자계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국 지배계급에게 공포감을 안겨주었던 것은 학생들의 상징적 시위가 아니라 바로 중국 노동계급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었다. 중국 지배계급의 잔인한 천안문 학살로 노동계급의 투쟁은 상승하지 못했지만, 천안문 사건 뒤에도 중국 노동계급은 대량실업, 빈곤을 경험하면서 지속적으로 투쟁을 전개해왔다. 이런 중국 노동계급의 경험은 이웃 북한 노동계급에게도 귀중한 교훈을 줄 것이다. 중국보다 뒤늦게 “개방”정책을 편 베트남에서도 투쟁경험이 거의 없는 젊은 노동자들로부터 새로운 투쟁흐름이 시작되고 있다. 베트남에 들어온 한국, 대만 등의 자본가들은 혹독한 착취를 자행했으나 오랫동안 베트남 노동자들은 저항을 제대로 조직하지 못했다. 그러나 2000년 9월 12-13일에 호치민시 후에퐁 신발공장에서 4천 명 이상이 파업을 벌였고, 회사의 배신과 거짓말, 무시 그리고 노조의 굴욕적 타협에 분노한 노동자들 500명 이상이 여러 시간 동안 거리 시위를 전개하여 교통을 마비시켰다. 베트남에서 노동계급 운동은 뼈아픈 단절기간이 있었기에 기운을 회복하여 힘차게 전진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베트남 노동자계급이 투쟁하는 세계 노동자계급 부대에 동참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명확하다. “사회주의”의 탈을 쓴 국가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노동자들이 환상을 극복하고 투쟁의 길에 들어서 왔다는 것은, 아무리 북한 및 남한 자본가계급이 북한 노동자계급을 우습게 보더라도 북한 노동자계급이 어디로 나아갈 것인지를 불을 보듯 훤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북한 노동자계급에게 원대한 역사적 견지에서 아무리 거대한 혁명적 잠재력이 있고, 김정일 자본가권력에 대한 분노와 불만이 가슴속에 많이 쌓여 있다 하더라도 이런 잠재력과 분노를 실질적이고 조직적인 투쟁으로 상승시킬 수 있는 혁명적 노동자 부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는 한 잠재력과 분노는 단지 그 수준에서만 멈출 뿐이다. 우리는 북한 노동자계급을 동아줄처럼 칭칭 감고 있는 자본가적 압력, 족쇄가 얼마나 강하고 질긴지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파악해야 하며, 그런 현실인식에 입각해 장기간에 걸친 집요한 투쟁을 벌여나갈 계획을 세워야 한다.
    북한 자본가계급 내부에서 심각한 동요가 일어난다면 북한 노동자계급이 투쟁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 형성될텐데 아직까지 이런 동요가 아주 커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국가 자본주의에서 사적 자본주의로 점차 이행하면서 지배엘리트들 간에 서로 이권을 더 빨리, 더 많이 챙기려 하는 피 튀기는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과거에도 이런 경쟁은 존재했지만 경제 위기가 심화되고 개방이 추진되면서 지배자들 내에서 불균등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국가, 당내 서열에 변동이 적었다면 지금은 누가 더 빨리 변화에 적응하는가에 따라 서열에 관계없이 큰 부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지배자들 내에서 힘 관계가 계속 변화할 것이다. 언제 자기의 동료, 부하가 자기를 함정에 빠뜨리고 자기보다 월등한 부를 독차지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지배자들 내의 알력과 갈등은 앞으로 더 첨예해질 것이다. 가령 황장엽은 비리, 수뇌 등으로 중국에 고급호텔을 사려 했을 정도로 돈을 많이 챙겼으며, 이런 과정에서 북한 자본가계급 내 주류와 갈등이 격화되어 망명했다고 한다. 이처럼 북한 내 지배자들간의 갈등이 성장하고 격화될 수 있는 조짐들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김정일 분파와 맞설만한 실질적인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단기간 안에 큰 정치적 격변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김정일은 20년 이상이나 권력승계를 준비해왔고, 김일성 사후에는 군, 정부, 당 등 모든 영역에서 자신들의 심복을 세우는 작업을 가속화했기 때문에 김일성과는 비교가 안 되는 카리스마로도 어느 정도 안정된 지배를 유지해가고 있다. 북한 자본가계급 내 동요가 언젠가는 폭발하여 노동자계급 투쟁에 좀 더 유리한 지형을 창출할 때, 이런 동요의 폭발을 앞당겨 내고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도 북한 노동자계급이 북한 자본가계급 내부의 작은 동요들까지 효과적으로 이용하면서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투쟁을 강화해야 한다.
    식량난이 심각해지면서 김정일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기도 했지만, 미국, 남한 등 제국주의 국가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지원은 김정일을 노동자폭동으로부터 일시적으로라도 구제하는 역할을 했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은 북한과 같은 나라에서 식량난으로 노동자폭동이 발발하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다. 아무리 자생적인 폭동이라 할지라도 노동자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폭풍처럼 일어서는 것은 세계 자본가계급의 심장에 꽂히는 하나의 불화살이 될 수밖에 없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북한 자본주의의 모순을 “노동자들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본가들의 위로부터의 개혁”을 통해 해결하기를 바라며, 그럼으로써 세계 노동계급 앞에 자본가계급의 힘과 권위를 보여주고자 한다. 북한을 안정적인 자본주의적 진지로 바꾸어낼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계급의 투쟁진지로 바꾸어낼 것인가 하는 투쟁에서 세계 자본가계급은 현재 세계 노동자계급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 있다. 북한 노동자들이 김정일 체제에 불만을 품고 변화를 갈망하더라도, 세계 자본가계급이 그 갈망을 가로채서 “위로부터의 자본주의적 개혁”으로 이끌 가능성이 더 많은 것이다.
    게다가, 북한 노동자들은 북한 지배계급이 설치해놓은 수많은 통제장치로 꽁꽁 묶여 있기 때문에 한번 일어서기가 더욱 쉽지 않다. 북한 노동자들의 가슴속에 불만의 싹이 자라고 있는 것은 틀림없지만, 동시에 지배자들이 심어준 “체제에 대한 복종심”, “수동성” 또한 무시 못할 만큼 존재한다. 북한의 경우 일제 식민지 시대에서 짧은 과도기(대략 1945-1950년까지)를 지나 국가자본주의로 이행했기 때문에 중국, 동독, 베트남 등 다른 나라들에 비해 투쟁의 전통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약점이 있다. 또한, 북한 자본가계급이 지금까지 거주 이전, 여행의 자유조차 보장하지 않고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기본적 자유조차 제한하며, 각종 감시와 통제를 하고, 작은 저항의 움직임조차 혹독하게 탄압해 왔다는 커다란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식량난이 심각해지면서 북한 노동자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원래는 배급소에 맡겨놓기로 되어 있는 배급카드를 “통행증” 대신으로 갖고 다니며 다른 지역이나 국경으로 과거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그들은 이런 이동을 통해, 노동자들은 어디에서나 똑같이 굶주리며, 지배자들은 수탈과 비리로 배를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확인할 경우, 그리고 어디에서나 노동자들은 불만을 느끼고 있으며 저항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자생적으로 투쟁이 분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현재는 복종심, 수동성, 감시통제가 분노, 저항의지를 능가하기 때문에 집단적이며 대규모적인 투쟁이 일어나지 않을 뿐이다. 문제는 북한과 남한의 노동자계급이 북한 자본가계급의 영향력이라는 부정적 요소를 분쇄하고, 노동자계급의 각성과 조직적 투쟁이라는 긍정적 요소를 강화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북한의 현재 상황은 새벽녘을 오래 남겨두지 않은 깜깜한 밤과 같다. 개방을 늦추든 앞당기든 어떤 경우에나 북한에서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간의 갈등은 쉽게 봉합될 수 없으며, 그리 멀지만은 않은 시기에 첨예한 계급투쟁으로 폭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은 깜깜한 밤이며, 북한과 세계의 자본가계급은 새벽이 오는 것을 늦추고 새벽이 오더라도 붉은 태양과 함께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뒤덮는 잿빛 구름과 함께 오기를 바라며, 개방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북한 노동자계급을 사적 자본주의로 길들이기 위한 만반의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 남한 노동자계급은 점차적으로라도 개방이 이루어지고 있는 북한 사회의 내적 모순을 정확히 간파하고 남북 노동자계급의 힘을 극대화하기 위한 철저한 준비작업을 전개해야 한다. 북한 ‘개방’으로 얻을 수 있는 선전선동, 교류의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여 북한 노동자계급에게 북한 국가자본주의의 본질을 설명하면서 국가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적 자본주의도 아닌 진정한 노동해방 사회의 대안을 제기해야 한다. 그리고 ‘개방’이 북한 자본가들과 초국적 자본의 힘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북한 노동자들의 힘과 투쟁을 강화하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개방’ 국면의 노동자의 요구, 전술을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본가들은 ‘개방’에 따라 북한 노동자들 사이에서 단결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텃밭 등 사적 이익을 늘리기 위한 이기주의가 팽배해지도록 유도할 것이다. 이런 자본가의 책동에 맞서 북한 노동자들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노동자운동의 기본원리를 체화할 수 있도록 생생하게 선동해야 한다. 그리고 남북 노동자계급과 전세계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연대만이 남북한과 세계 자본가계급에 맞선 투쟁에서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해방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북한에서 노동자투쟁을 밀어가는 것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만큼 투쟁의 잠재력이 풍부한 것으로 간주하고, 그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치밀하고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북한 자본의 엄혹한 감시와 탄압, 미국과 남한은 물론 중국과 소련을 비롯한 세계 자본가계급의 반동적 압력, 북한 다수 노동자들 속에 침투해 있는 수동성과 복종이라는 부르주아적 정신들에 맞서면서 기꺼이 목숨을 바쳐 싸울 수 있는 불굴의 혁명적 의지와 한치의 빈틈도 없는 비밀활동 능력, 고도의 조직화 능력과 대중사업 능력을 발휘하는 혁명적 노동자 대오가 필요하다. 이 대오를 북한에서 만들어내고 강화하며, 세계 노동자계급이 그 작업을 최대한 지원할 수 있다면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열악한 노동자의 지옥”에서 어둔 밤하늘에 찬란한 불꽃으로 타오르는 노동자투쟁의 소중한 진지로 바뀔 것이다.

    (전국회의 투쟁전술방에서 퍼왔습니다. 북한 정부에 반대하는 관점에서 우리와 일맥상통합니다. 카피를 허락해준 저자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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