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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어디로 : 노해연_왜 노동자와 자본가는 끊임없이 대립하는가
 정책위  | 2008·02·27 11:36 | HIT : 2,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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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노동자와 자본가는 끊임없이 대립하는가


    파벌을 만드는 가장 보편적이고 영원한 뿌리는 재산의 분배가 다양하고 불평등한 점에 있었다. 재산을 가지는 것과 재산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결국 사회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만들었다.

    빈부와 강약을 묻지 않고, 국적과 인종을 따지지 않고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그 생활에 필요한 것을 생산하고 분배해야 한다. 그것은 대단히 명백한 사실이므로 우리는 그 점에 관해 생각해 볼 필요조차 없다. 단지 우리가 매일 필요로 하는 식량․의복․주택을 생산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천년 전이나 백년 전, 오늘날에도 항상 진실이었다. 물론 생산과 분배의 방식은 변화해 왔고 오늘날에는 그 나라가 크든 작든, 민주주의적이든 비민주주의적이든, 물건들을 생산하고 분배하는 몇 가지 종류의 제도가 있어야 했다.
    우리는 지금의 우리 나라를 자본주의 사회라고 부른다. 세계의 다른 많은 나라들도 똑같은 제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나라들은 백년 이상에 걸쳐 몇 가지 형태로 이 제도를 지속시켜 왔다.
    빵, 옷, 주택, 자동차, 배, 라디오, TV, 컴퓨터, 반도체, 신문, 약품, 학교 및 그밖의 이러저러한 것을 생산하고 분배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를 갖춰야만 한다.
    1. 토지, 원료, 기계, 도구, 공장 ─ 경제학자가 ‘생산수단’이라고 부르는 것.
    2. 노동력 ─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내기 위해 생산수단이 있는 장소에서 힘과 숙련을 사용하는 노동자
    생산수단만으로는 물건들을 생산할 수 없다. 예컨대 토지를 예로 들어보자. 토지가 아무리 기름지더라도 농부가 씨를 뿌리고 곡물을 거둬들이지 않으면 수확은 되지 않는다. 또 자동차공장을 예로 들어보자. 거기에 아무리 복잡하고 우수한 최첨단 시설을 갖다 놓았다 하더라도 노동자가 그 시설을 조작하지 않으면 자동차를 만들 수가 없다.
    다른 여러 자본주의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생산수단이 공유재산은 아니다. 토지, 원료, 공장, 기계는 개인 즉 자본가가 소유하고 있다.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다. 여러분이 생산수단을 소유하는가 하지 않는가는 사회에서의 여러분의 지위를 결정한다. 여러분이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그룹 즉 자본가계급에 속한다면, 여러분은 일하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다. 한마디로, 놀고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여러분이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은 커다란 그룹 즉 노동자계급에 속하다면, 여러분은 일하지 않고는 생활할 수 없다.
    하나의 계급은 소유함으로써 생활하고 또 다른 계급은 일함으로써 생활한다. 자본가계급은 다른 사람들을 고용해서 자신들을 위해 일을 시킴으로써 소득을 얻고, 노동자계급은 자신이 하는 노동에 대해 임금의 형태로 소득을 얻는다.
    우리가 생활하는 데에 필요한 물건들(이것을 보통 ‘재화’라고 부른다)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노동이 필요하다. 그래서 여러분은 노동하는 사람(즉, 노동자)이 좋은 보수를 받고 있다고 상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많은 소득을 얻는 사람은 가장 많이 노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많이 소유하는 사람이다.
    실제의 사정을 보면 생산수단의 소유자(자본가)가 일자리를 주지 않는 한 노동하는 사람은 어쨌든 일할 수조차 없다. 더구나 생산수단의 소유자에게 조건이 ‘정당’ 하지 않는 한, 그들은 비소유자(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 조건을 ‘정당’ 하게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자본가계급에게는 이윤을 얻을 기회가 있을 경우에만 또 이윤이 많으면 많을수록 조건이 ‘정당’하다. 몇 년 전 IMF 위기 때 사람들은 산업이라는 차가 왜 굴러가기 않는지 궁금해했고, 놀고 있는 사람과 놀고 있는 기계가 왜 결합되지 못하는지를 이상해 했다.
    자본주의 사회를 굴러가도록 만드는 것이 이윤이다. 수완이 좋은 사업가란 자기가 물건을 살 때에는 가능한 한 싸게 사고, 팔 때에는 가능한 한 비싸게 파는 사람이다. 높은 이윤을 올리는 길의 제 1단계는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생산에 필요한 여러 비용 중의 하나는 노동에 대한 임금이다. 따라서 가능한 한 낮은 임금을 지불하는 것은 고용주의 이해에 맞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그 노동자에게 가능한 한 많은 일을 시키는 것도 그 이해에 맞는 것이다.
    자본가들의 관심은 비용을 줄이고 이윤을 올리는 데에 있고 노동자의 관심은 임금을 올리고, 노동시간을 줄이며, 노동조건과 사회보장제도를 개선하는 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가 바라는 것에는 비용이 든다. 하지만 자본가는 그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자신의 이윤이 줄어드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가가 노동자의 임금을 결코 인상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그들은 임금을 인상한다. 예컨대 노동자가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노조를 통해 그 힘을 발휘하여 단체적으로 교섭할 경우 임금을 인상시킬 수밖에 없는 자본가는 임금을 인상한다. 그러나 문제는 자본가가 원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임금을 인상한다는 점이다.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투쟁이 일어나는 것은 비단 임금에 대해서만은 아니다. 노동자에게 이익이 되더라도 만약 돈이 들게되면 자본가는 절대 반대한다.
    노동자가 인격을 가진 사람이며 자신과 똑같은 인간이라는 점은,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가에게는 아무런 관심거리도 아니며 단지 노동자는 자신들이 지불해야 할 비용 중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생산수단의 소유자(자본가)의 이익과 그 소유자를 위해 일하는 사람(노동자)의 이익은 대립한다. 자본가에게는 재산이 인간보다 중요하고 노동자에게는 인간 즉 그 자신이 재산보다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두 계급 사이에 항상 투쟁이 일어나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가 개개인이 노동자보다도 훨씬 욕심이 많고, 마음이 더러우며, 속이 좁다는 것은 아니다. 자본가들이 그러한 인간은 아니다. 계급투쟁에서 쌍방이 취하는 행동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모습일 뿐이다. 자본가는 자본가로서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윤을 얻으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만약 어떤 자본가가 ‘돈벌이’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노동자에게 많은 양보를 할 경우 자본가는 자본가들간의 경쟁에서 무참히 패배하여 파산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자본가가 돈벌이에만 혈안이 되고, 노동자를 짐승부리듯이 혹사시키는 것은 그의 개인적 성격이 난폭하기 때문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윤을 증가시킬 때만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본의 본성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것은 개인으로서 자본가 개개인이 이기적인 인간인가 아닌가의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자본가의 계급적 이익이 노동자에 대해 조화적이거나 평화적이지 않고, 적대적이고 호전적인 태도와 행동을 어쩔 수 없이 취하게 만드는 데에 있다.
    노동자는 죽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임금을 더 많이 받으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따라서, 양측은 상대방을 희생으로 해서만 그 목적을 달성할수 있다. 노동자도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위해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본가계급에 대한 끝없는 투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자본과 노동 사이의 ‘조화’에 대해 논란이 많았지만 그것은 모두 부질없는 것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하나의 계급에게 좋은 것은 다른 계급에게는 나쁜 것이고, 하나의 계급에게 나쁜 것은 다른 계급에게 좋은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조화’는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결코 평화란 없다”는 유명한 노래 가사도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한 사람과 노동자 사이에 존재해야만 하는 관계는 칼을 목에 갖다 댄 관계와 같다. 이 관계를 뒤바꿔 놓고 보더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다. 계급투쟁은 선동자가 만들어 낸 것이며, 사람들이 이것을 믿지 않게 되면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그것은 마치 원자가 그것을 발견한 과학자가 만들어 낸 것이며, 사람들이 그것을 믿지 않게 되면 없어질 것이라는 것과 같이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다. 계급투쟁은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의지로 소멸시킬 수도 없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자신의 작은 작업장을 가지고 그 속에서 몸소 일하는 수공업자이거나, 구멍가게 주인이거나 혹은 자신의 땅을 갖고 있는 소농 또는 중농이라고 하자.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에 있는 중간계급의 일원으로서 여러분은 아마도 여러분의 사업이 커져서 돈을 많이 벌고 자본가들 패거리에 속하기를 바랄 것이다. 실제로 우리의 경제구조 속에서 여러분과 같은 지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그러한 현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적인 경향은 아니다. 수공업자가 재벌로 성장하고, 구멍가게 주인이 백화점 주인으로 출세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것이다.
    그것보다 훨씬 일어나기 쉬운 것은 아무리 오랜 시간을 사업에 매달려도,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결국 손해를 보고 마는 결과이다. 다른 작은 기업의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은 또한 여러분에게도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대사업은 여러분을 삼켜버릴 것이다. 여러분의 사업은 ‘합병’ 되거나 ‘흡수’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파산해서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이 달성하려고 그토록 바랬던 경제라는 사다리의 꼭대기가 아니라 밑바닥 즉 노동자의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이러한 수공업자, 소상인, 소농민 및 전문직업인 등 중간계급 그룹의 비중이 낮아지고 있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또한 중간계급이 우리 사회의 기본적 그룹인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계급투쟁에 관해 어떠한 지위를 차지하는가라는 문제도 중요하다.
    중간계급의 동정과 감정에 관한 한, 대체로 중간계급이 자본가계급 편에 서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점은 또한 중간계급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사실이다. 이들은 대공장의 지배인 및 감독, 기사, 봉급생활자의 상층부 등 임금이 아니라 ‘봉급’을 받는 사람들이다.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의 수는 줄지 않고 증가하고 있다. 그 경제적 지위에서 보면 이들은 생산수단을 갖지 않고 고용주에게 고용된다는 점에서 노동자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일반적으로 보다 많은 급여를 받고 보다 높은 교육을 받으며, 고용주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을 이익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들은 노동자보다 자본가를 사회적 정치적으로 지지한다.

    중간계급의 존재여부가 자본주의 제도를 움직이는 방법을 결정하지는 않으므로 중간계급에 관해 더 이상 얘기할 필요는 없다. 자본주의 사회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주요한 계급 즉 자본가라는 지배계급과 노동자라는 피지배계급, 그리고 그로부터 양자 사이의 끊이지 않는 투쟁에 우리의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확실히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소유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노동할 기회를 주느냐 마느냐, 또 어떠한 조건에서 노동하게 하는가를 결정하는 권력을 쥔다. 이러한 관계는 주인과 머슴, 지배자와 하인의 관계이다. 말하자면 지배자는 명령을 내리고, 비소유자는 이것에 따라야만 하는 관계이다.
    여러분이 자본가계급에 속하는지, 노동자계급에 속하는지의 여부는 여러분이 그러한 사실을 자각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관계가 없고 그것은 완전히 생산수단을 가지는가 여부에 달린 문제이다. 여러분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그것을 사용해서 이익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고용한다면, 여러분은 자본가계급의 일원이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은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고, 임금을 받기 위해 자본가에게 고용되어 혹사당해야 하는 노동자계급의 일원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 두 계급 사이의 투쟁이 “항상” 진행된다. 이 두 세력간의 투쟁은 염불을 외우고, 기도를 드린다고 해서 없어지지는 않는다. 노동자가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자각하고, 하나의 계급으로 굳게 단결하여 투쟁함으로써 커다란 승리를 쟁취할 때만 그 대립을 없앨 수 있다. 노동자들이 이 사실을 알고 적극적으로 투쟁에 나선다면 노동자는 세상을 바꾸는 주인으로 일어설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투쟁에 나서기를 꺼려한다면 그런 노동자는 언제까지나 자본이 주면 주는 대로 받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하는 비참한 임금노예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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