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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어디로 : 장석준_신자유주의와 사민주의, 케인스주의 간의 관계
 정책위  | 2008·02·25 16:30 | HIT : 2,891

소위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무엇이고, 그것에 대항해 세계의 노동자·민중은 어떻게 싸우고 있나? (04년 1월 작성)


1. 소위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무엇인가?

IMF 사태가 있고 나서 우리 노동조합운동에는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말이 구호 수준에까지 널리 퍼지게 됐다. “정리해고 반대”라는 말이 조합원들의 이해를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면, “신자유주의 반대”는 그것을 좀 더 거시적이고 정치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과연 ‘신자유주의’(영어로는 neo-liberalism)가 무엇인지 이야기해보면, 의견이 분분하다. 활동가들 사이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분분할 뿐만 아니라 진보적 학자들 사이에서도 그렇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말은 결코 한국 사회에 대한 나름의 진중한 성찰에서 나온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부터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에서 노동자·민중운동의 당면 극복 대상으로 지목되던 말이 97년 IMF 사태 터지면서 한국의 운동 세력에게 황급히 수입됐던 것이다.
신자유주의란 도대체 무엇인가?
초국적 금융 자본의 전횡?
IMF·세계은행이 권장하는 정리해고와 독점자본 살리기 중심의 구조조정 정책?
공공부문 민영화(정확히 말하면, 사유화)와 해외매각?
복지정책의 축소?
긴축재정과 감세정책?
노동의 유연화?
이 모두가 신자유주의라 불리지만, 이것을 하나로 꿰뚫는 것이 무엇인지는 우리 운동 내에서 아직도 그리 분명하지는 않다. 이 때문에 “○○○ 정권이 신자유주의다, 아니다” 혹은 “몇 % 신자유주의냐” 등등의 논쟁까지도 나오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선불교의 유명한 화두 중 하나를 떠올리게 된다. “손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왜 그 가리키는 손에 집착하는가?”라는 말. 외국의 동지들이 ‘신자유주의’, 혹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말을 즐겨 쓴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별다른 생각 없이 따르는 것으로 만사형통은 아니다. 그들이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즐겨 쓰는 것은 다름아니라 그들의 맥락에서는 바로 그 말로 전 세계 자본주의의 현 상황이 가장 잘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라는 말 자체가 아니라 그것으로 표현하려 하는 바, 즉 전 세계적인 자본주의의 현 상황 그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상황은 어떠한가?
그것은 한 마디로, 1914년 1차 세계대전의 발발부터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까지의 인류의 30년 대격변 끝에 이뤄진, 세계 자본주의의 일정한 진보적 변화를 다시 되돌이키려는 전 세계적인 반동의 시대라고 요약될 수 있다.
제국주의 전쟁인 1차 세계대전, 러시아 10월 혁명, 1920년대 초까지 서유럽에서 계속된 혁명적 격동, 1929년의 세계대공황, 파시즘과 일국사회주의 그리고 뉴딜형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등장, 반파쇼 인민전선운동, 제국주의 전쟁과 반파쇼 민주주의 전쟁의 성격이 혼재된 2차 세계대전, 미-소 진영 체제의 등장 ...
이러한 격동기를 거치면서 세계 자본주의는 1차 대전 이전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 형태로 그 꼴을 바꾸었다. 이전의 자본주의-제국주의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사적 자본가의 고삐 풀린 ‘자유’를 옹호하는 고전적인 자유주의를 이념으로 한 데 반해, 2차 대전 후의 그것은 ‘인민’의 이름으로 사적 자본의 자유를 일정하게 제약함으로써 세계 자본주의의 운명을 지탱하려는 전략을 취했다.
비록 자본주의-제국주의 체제는 지속됐지만, 전쟁 직후부터 1970년대까지의 그것은 분명 맑스·레닌의 시대와 꼭 같은 것은 아니었다. 서유럽과 북미 등에는 복지국가가 등장했다. 제국주의 전쟁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면 결코 영국·미국과 같은 반열에 오를 수 없었던 독일과 일본이 평화적으로 제국주의 최상류 클럽의 일원으로 승격됐다. 과거 식민지였던 나라들 중 일부(특히 동아시아)는 국가 주도 방식으로 경제발전을 추진하는 게 허용됐다. 그 덕분이었을까? 선진 자본주의는 1960년대 말까지 20년 넘게 장기호황, 소위 ‘황금기’를 누렸다. 불과 30년 전에 “자본주의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고 절감했던 선진 자본주의 나라 민중들은 이제 그러한 과거를 까맣게 잊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한국·대만 같은 일부 후진국들은 자본주의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모범 사례로 칭찬받았다. 자본주의 사슬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발전은 도대체 불가능하다는 좌파의 신조를 한껏 비웃으면서 말이다.
돌이켜보면, 이러한 변화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힘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몰고 온 자본주의-제국주의에 대한 깊은 환멸, 러시아 10월 혁명이 열어 제친 희망의 가능성, 대공황이 보여준 세계 자본주의의 부정할 수 없는 모순, 인류 최대의 야만인 파시즘과 민주주의 세력 사이의 일대 결전, 인류의 대다수를 이루던 식민지 세계에서의 반제국주의 민족해방투쟁 등등은 전 세계 노동자·민중들로 하여금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유례없이 각성된 의식과 조직적 힘으로 대항하게 만들었다. 누구에게나, 미국의 노동조합원과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투사, 중국의 농민 게릴라가 하나의 전선 위에 서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거대한 물결 앞에서 세계 자본주의의 새로운 강자 미국을 정점으로 한 국제 자본가 세력은 “한 발 양보함으로써 두 걸음 나아가는” 전략을 취했다. 노동자·민중의 강력한 저항과 대안 제시가 자본가들로 하여금 양보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그와 함께 고전적인 자유주의 이념도 수정을 요구받았다. “국가가 경제에 깊숙이 개입할 수 있다” “전면적인 사회복지정책이 자본 축적에 기여할 수 있다” “19세기말식의 제국주의적 개방경제보다는 내수 중심의 발전을 꾀해야 한다” 등등의 신념이 소위 ‘케인즈주의’ 혹은 ‘수정 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널리 퍼졌다.

이러한 전후 체제에 결정적으로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1974년 전 세계적으로 공황이 다시 등장하면서였다. 그 전에 잠깐 이야기해야 할 것은 1960년대의 세계적 혁명운동이다. 흔히 말하길 2차 대전 후 자본주의의 양보가 이뤄지면서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의 노동자·민중이 여기에 쉽게 포섭됐다고 하지만, 이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저들의 양보를 발판으로 더욱 더 앞으로 나아가려는 세력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이러한 세력들이 대중적이고 공세적인 운동을 벌인 것이 바로 1960년대 무렵이다.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해진 선진국 노동자·민중은 오히려 그 힘을 바탕으로 체제에 새로이 도전했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을 통해 자본주의-제국주의 세력의 기만성이 속살을 드러내자 이러한 움직임은 마치 작은 불씨에 신나를 끼얹듯이 활활 타올랐다.
그런데, 이러한 도전이 채 성숙하기 전인 1974년에 ‘석유위기’라는 형태로 세계공황이 다시 등장했다. 공황의 이유는 물론, 자본주의가 어떤 모습을 취하든 결국 피할 수 없는 근본적인 모순들 때문이었다. 경제위기가 도래하자 그 무렵 새로이 기세를 올리던 선진국 노동운동 세력 일부에서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방향으로 한 발자국 나아감으로써 이와 대결하려고 했다. 이 경제위기는 자본주의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노동자·민중세력이 소유권과 통제권을 확보함으로써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우리에게도 익히 잘 알려져 있는 스웨덴의 임노동자기금 제안이나 이것과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영국·독일·프랑스 등의 국공유화(‘사회화’) 주장들이 그러한 예이다.
자본가 세력이 이러한 주장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을까? 물론 아니다. 오히려 노동운동 세력보다 더 전투적이고 운동적인 방식으로 이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오히려 역공을 취했다. “지금의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전후의 자본주의가 너무 ‘비자본주의적인 모습’을 취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본령인 ‘시장경제’로 돌아가야 한다” “사적 자본가가 다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전후에 이뤄진 모든 개혁이 재평가되고 과거의 모습으로 회복돼야 한다” “세계경제를 다시 전면 개방하고 자본가들이 마음대로 투자하게 해야 한다” 등등. 말하자면, 고전적인 자유주의가 새로운 모습으로, 그것도 아주 급진적이고 전투적인 형태로 다시 등장한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것은 이런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의’ 자유주의(‘수정 자유주의’가 이에 해당했었다)가 아니라 ‘새로 다시 등장한’ 자유주의를 의미한다. 신자유주의라는 것은 전혀 ‘새로운’ 무엇이 아니고 19세기식의 벌거벗은 자본주의, 자유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경제위기를 놓고 좌-우대결이 벌어지던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좌파 내부의 투항주의 세력이 쉽게 꼬리를 내리고 오히려 이러한 초자유주의에 굴복함으로써 전 세계적인 자유주의 반동은 최초의 거점을 확보했다. 대표적인 것이 영국의 대처 보수당 정권이다.
왜 우파 세력이 궁극적으로 승리했는가? 서유럽의 주류 좌파정당과 노동조합들이 전후 계급타협의 틀 안에서 ‘신사적인 방식으로’ 뭔가 해보려 했던 데 반해 우파들이 더 ‘악으로 깡으로’ 맞붙고 나섰기 때문이다. 좌파들 중 일부가 더 이상 ‘사회주의’를 말하는 것을 꺼릴 때, 우파들은 자신의 근본으로 돌아가길 주저하지 않았다. 다시 등장한 자유주의는 우파의 근본주의이고 급진주의였다. 좌파들이 의회 안에서 논쟁을 벌이는 데 만족할 때, 우파들은 생활 현장 곳곳에서 운동을 벌였다. 말하자면, ‘계급투쟁’을 벌였다. 좌파들이 내부 투항주의자들과 급진파들 사이의 적전분열에 시달릴 때, 우파들은 씽크탱크를 만들고 언론을 포섭했다. 즉, 자신들의 ‘진지전’을 벌였다.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신중간계급과 노동계급 상층이 저들에게 넘어갔다. 최초의 싸움은 자본주의의 중심부에서 노동자·민중의 결정적 패배로 끝났다.
이후 패배는 걷잡을 수 없이 전 세계로 파급됐다. GATT·IMF·세계은행 등의 국제기구들이 자유주의 반동의 국제적 거점으로 새 생명을 얻었고, 이를 기반으로 다시 전 세계의 재편이 시작됐다. 경제위기의 여파 속에 허우적대던 아시아·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외환위기에 대한 구제금융의 대가로 자본주의 복고 운동의 물결에 강제로 합류해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은 사실 이 대열의 맨 끝에서 급류에 내던져진 것이다. 자본주의 복고 운동은 이제 제국주의 복고 운동으로 발전·확장되었다. 정확히 100년 전의 선배들처럼 자본가들은 세계를 종횡무진했다(현실 공간에서든 가상 공간에서든).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인데, 말이 좋아 ‘세계화’이지 사실은 신자유주의가 ‘새로 다시 등장한’ 자유주의인 것처럼 ‘새로 다시 등장한’ 제국주의, 즉 ‘신제국주의’일 뿐이다.
자유주의 반동혁명(반혁명 Counter-revolution)이 완전히 대세를 휘어잡은 것은 현실사회주의 나라들이 위기에 몰리고 결국 1989년 동유럽 인민혁명과 1991년 소연방 붕괴로 현실사회주의권이 해체되면서였다. 러시아와 동유럽을 비롯해서, 이제까지 세계 자본주의의 특별 실험장으로 예외적인 대접을 받던 동아시아의 국가 주도 자본주의 나라들(한국 등)까지 자유주의 반동의 흐름에 내몰린 것이 바로 이 때부터였다. IMF 사태를 너무 충격으로 겪어서 그렇지 우리에게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그 이전에 이미 김영삼이 “국제화”니 “세계화”니 떠들어댈 때부터였다.
전 지구인에게 9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한 마디로 자유주의의 반동이 지배하는 시대, 즉, 20세기 초반의 전 세계 노동자·민중 투쟁의 성과를 되돌려 놓으려는 ‘위로부터의 계급투쟁’의 시대인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바로 이러한 ‘반혁명의 시대’를 표현하는 서구 세계의 용어다.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우리의 풍토에 그렇게 쉽게 와닿지 않는 것은 우리 노동자·민중운동이 한번도 국내의 자유주의 흐름과 정면으로 대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서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의 노동자·민중은 사회주의를 내세우면서 자유주의와 대결한 역사적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새로 다시 등장한’ 자유주의란 것은 가슴이 철렁 하는 느낌을 주고도 남는다.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이 보다 쉽게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노동자·민중운동에게 자유주의란 것은 외부의 제국주의 세력으로 나타나든가 아니면 수정 자유주의의 세계적 흐름 속에서 예외적으로 그 존재를 인정받았던 국가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하나의 그림자 정도로만 나타났을 뿐이다. 사람들은 민중들의 ‘민주주의’ 투쟁과 재벌들의 ‘자유주의’ 담론들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라는 만국공통어에 익숙해지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말해주는 ‘현재의 세계사적 상황’, 즉 전 세계적인 위로부터의 계급투쟁 공세라는 정세를 대중적으로 뼈저리게 공감하는 것이다.

2. 세계의 노동자·민중은 어떻게 싸우고 있나? 그리고 어떻게 싸울 것인가?

1) 유럽의 경우

1997년 5월, 자유주의 반혁명의 세계적 진앙지인 영국에서 보수당 18년 통치가 끝장나고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신노동당New Labour’을 표방하고 있음) 정부가 들어서면서 좌파 정당들이 속속 서유럽 나라들의 권좌에 복귀했다. 프랑스에 사회당-공산당-녹색당 연립정부가 들어서고, 독일에 사회민주당-녹색당 연립정부가 등장했다. 이탈리아에서는 공산당의 후신인 ‘민주좌파’가 주도하는 올리브동맹이 2차 대전 후 50여년만에 좌파 정부를 출범시켰다. <한겨레 21> 등은 이를 두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마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서유럽 주류 좌파정당들의 집권으로 자유주의의 반동 공세는 끝장난 것인가?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70년대 말 ~ 80년대 초에 흔히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라고 불리는 주류 좌파정당들 내에서는 급진적 세력들이 주변으로 밀려나고 투항주의 세력이 주도권을 잡았다. 이들은 “대안은 없다”는 초자유주의자들의 구호를 그대로 현실로 인정하면서 패배주의를 체질화했다.
예전에 맑스-레닌주의자들은 주로,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데 선거와 의회라는 수단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을 비판했었다. 그런데, 지금 서유럽 좌파정당들의 문제는 그런 고전적 비판의 과녁에서도 한참 벗어난 것이다. 과거에는 ‘개량주의’라고 불리면서도 어쨌든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것을 자신의 목표로 했었다. 그리고 당내 좌파의 경우는 실제로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실천들을 주장하고 감행했다. 이것이 또한 이들 정당이 백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국 노동자·민중의 지지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최소한의 생명력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지금 이들 정당의 문제는 이제 아예 사회주의라는 목표, 자본주의를 넘어선다는 목표 자체를 내던져 버렸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보다 적극적인 운동을 벌이려는 세력들을 당 내에서 솎아내 버렸다. 한 마디로 이제는 내부의 자정 능력마저도 고갈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영국 노동당 지도부가 30여년 동안 당내 좌파의 지도자로 활동하던 켄 리빙스턴의 런던 시장 출마를 가로막아 결국 리빙스턴이 무소속 후보로 런던 시장에 당선되는 사태를 낳았던 것이나, 독일 사회민주당의 좌파 지도자 오스카 라퐁텐이 내각 내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무력감을 느끼고 결국 당을 떠난 데서 쉽게 알 수 있다.
영국 노동당의 ‘제 3의 길’이든 독일 사회민주당의 ‘새로운 중도’든 모두 80년대~90년대 초의 패배주의의 유산이다. 자유주의 반동공세에 대항하기 위해 다시 거리에 나서기 시작한 현재의 노동자·민중이 아니라 한 동안 무력감과 패배감에 휩싸여 꼼짝 않고 있던 지난 10~20년 동안의 노동자·민중의 상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다소 예외적인 사례가 프랑스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프랑스 사회당은 ‘신사회주의’를 내걸면서 과거 사회민주주의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통해 자유주의적인 경제·노동 정책에 정면으로 대항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커다란 한계도 있다. 과거 우파 정권에서도 손을 대지 못했던 프랑스통신의 사유화에 나서고 있는 것은 좋은 예이다. 하지만, 어쨌든 영국이나 독일·이탈리아에 비하면 다른 바가 있다.
그 이유는 한 가지다. 프랑스 노동자·민중이 서유럽의 다른 나라 노동자·민중보다 훨씬 빨리 반격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프랑스 노동조합운동은 90년대 초반부터 파업투쟁을 다시 활발히 벌이기 시작하다가 95년 공공부문 총파업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반격의 국면에 들어섰다. 노동조합운동뿐만 아니라 실업자운동·학생운동·여성운동·인종주의 반대운동 등이 불붙었다. 이와 함께 이념의 추도 왼쪽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프랑스 사회의 이념적 시계는 다른 나라와는 5년 이상의 시차를 보여주었다. 바로 이 때문에 프랑스 사회당이 그 나마 다른 주류 좌파정당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회당이 특히 원칙있고 생명력있는 당이거나 조스팽이 잘나서 그런 것은 아니다.

만약 현재 집권하고 있는 서유럽 주요 국가들의 좌파 정당들이 과거 60년대 수준만이라도 제 역할을 한다면 세계 정치 지형은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라퐁텐이 주장했던 독일 연방은행의 저금리 정책 같은 것은 김만제식으로 봐도 결코 ‘사회주의적’인 것은 아니지만, 선진국에서 이러한 정책이 일단 실행되면 세계 다른 나라들의 진보세력들이 정부의 자유주의 일변도의 정책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자신있게 주장할 여지가 확 열릴 것이다.
하지만, 서유럽 좌파정당들은 바로 이런 걸 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할 마음이 별로 없다. 프랑스의 노동시간 단축 정책이 보다 적극적인 사회주의 공세로 발전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보다 적극적인 사회주의 공세란 무엇인가? 곧 사회주의 이념의 핵심인 경제 활동의 소유권과 통제권의 사회화다.
현재 집권하고 있는 좌파 정부 중 유일하게 여기까지 손을 대고 있는 것은 뉴질랜드의 노동당-동맹(Alliance, 노동당의 우경화에 반대해 탈당했던 노동당 좌파, 녹색당, 마오리 원주민 세력들이 연합해 만든 정당) 연립정부 정도다. 뉴질랜드 좌파 정부는 사유화됐던 철도를 재국유화하려 하고 있고, 금융영역에 공공부문을 확장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뉴질랜드만 해도 전 세계에서 변두리에 해당한다. 이런 움직임이 보다 대규모로, 세계 체제의 중심에서 추진되어야만 ‘반동의 시대’에 결정타를 날릴 수 있다.
프랑스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주류 좌파정당들의 상태는 오직 아래로부터의 분위기 변화로써만, 즉 노동자·민중의 사회운동이 다시 불붙음으로써만 변화될 수 있다. 과거에 노동조합운동의 열정이 현재의 주류 좌파정당의 뿌리인 노동자 정당들을 건설했던 것처럼, 새로운 노동자·민중의 사회운동들을 통해 진보정치세력을 재편하고 새로운 당, 혹은 새롭게 거듭난 당을 건설해야 한다.

실제로 프랑스의 95년 공공부문 총파업을 선두로 해서 세계 곳곳에서 대중투쟁이 부활하고 있다. 사회운동이라는 것은 전염성을 갖고 있어서 프랑스에서도 일단 노동조합운동이 깨어나자 실업자운동에 힘이 붙고 학생운동이 되살아났다. 자본이 만들어놓은 ‘세계화’의 상황 속에서 이러한 전염성은 또한 국경을 넘어서도 쉽게 확장될 수 있다. 프랑스에서 노동자·민중운동이 되살아나자 유럽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럽 전역의 이러한 움직임은 해마다 여름에 대륙의 한 도시를 종착지로 하여 벌어지는 유로마치(Euro-March) 행사로 모이고 있다. 유로마치에는 유럽 곳곳의 다양한 사회운동 세력들이 참여하여 자본가들의 자유주의적(liberal) 유럽이 아닌 ‘다른’ 유럽, 즉 노동자·민중의 사회적(social) 유럽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보여주는 대안 사회의 모습은 한 마디로 투쟁과 연대의 축제다.
이러한 사회운동의 부활은, 아직은 초보적인 형태이긴 하지만,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각각 실업자운동 같은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운동과 전통적인 산업 노동자층을 대변하는 두 트로츠키주의 조직, ‘혁명적공산주의동맹’(LCR)과 ‘노동자투쟁’(LO)의 선거연합이 유럽의회에 진출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독일에서는 흔히 구 동독 집권당의 후신으로 알려져 있는 민주사회주의당(PDS)이 구 서독지역의 노동조합으로부터도 일정한 지지를 얻기 시작하고 있다. 이탈리아에는 공산주의재건당(PRC)이, 스페인에서는 ‘통합좌파’(IU)가 주류 좌파정당에 도전하고 있다. 한 마디로 주류 좌파정당의 왼쪽에서 새로이 대안적인 좌파정당을 만들고 다지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2)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 특히 브라질을 중심으로

그러나 대중투쟁이 보다 활발히 벌어지고 있는 곳은 제3세계다. 세계은행과 IMF로부터 자유주의 정책들을 강요당하며 그 결과로 항구적인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제3세계에서는 대중투쟁이 보다 폭발적이면서 훨씬 광범위한 전염성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는 주로 브라질의 사례를 보자. 노동자당을 건설하는 데 앞장선 브라질의 민주노총은 ‘중앙노동자연맹’(CUT)이다. 1983년에 건설된 CUT는 외채 상환 중지, 금융·보건·교육·교통의 국유화, 노동자 통제하의 농지개혁, 공기업 민영화 반대 등을 강령으로 내건, 제 3세계 진보적 노동조합운동의 전위였다. 그러나, CUT는 우리의 민주노총보다 더 일찍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 싸우는 가운데 많은 부침을 겪었다.
그런 가운데, 민중운동의 주도권은 놀랍게도 도시의 조직 노동자에서 농촌 빈민층에게로 넘어갔다. 이미 1980년대부터 노동자당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토지개혁운동을 주도해오던 ‘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MST)이라는 조직이 카르도주 정권에 대항하는 전위로 나섰다.
80년대에 제정된 브라질 헌법에는 대지주의 미경작지를 정부가 수용해 땅 없는 농민들에게 분배하도록 하는 조항이 있다. 광활한 국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토지 소유의 모순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이농들이 도시 빈민가로 흘러들어오고 있는 브라질 현실이 이러한 헌법 조항이 제정된 배경이었다. 하지만, 보수세력은 이 헌법 조항을 실질적으로 사문화하려 하였고, IMF와 세계은행으로부터 농업 관련 예산의 삭감을 요구받고 있는 카르도주 정권은 더더욱 그러했다. 농업 지원 예산 삭감으로 이농은 더욱 늘고, 실업난의 악화로 일자리를 얻을 수도 없는 이들 이농이 대도시에 거대한 빈민층을 형성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MST는 이러한 헌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치고 들어가, 빈농과 도시 빈민들이 대지주의 광대한 미경작지를 무단 점거하는 운동을 벌였다. 일단 토지를 점거한 민중들은 그 곳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자신들의 생산협동조합을 건설하고 공동체를 일구었다. 그러면서 정부의 합법적인 토지 수용 및 재분배를 요구했다.
토지점거, 고속도로 봉쇄 같은 ‘비합법 투쟁’과 헌법 조항의 실현이라는 ‘합법성’을 결합한 MST의 전술은 브라질 사회 전체에 ‘신자유주의 대 민주주의’라는 대립구도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또한, 수많은 농촌 프롤레타리아트와 도시 빈민들이 스스로 생산과 생활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사회발전모델의 가능성을 실제로 보여주었다. 그 결과, MST는 한 동안 민중운동에 등을 돌리고 있던 중산층과 가톨릭 교회를 비롯해 광범한 민중의 지지(심지어는 일부 보수언론까지!)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는 92년의 대통령 탄핵 위기 이후 최초, 최대의 광범한 민중연합전선이었다.
이들의 운동에 고무되어, 일정한 농지를 소유하고 있으나 농가부채로 시달리고 있는 소농들도 자신들의 조직을 만들어 격렬한 투쟁에 나섰고, 1999년 11월에는 노동자당·CUT·MST를 중심으로 150여만명이 참여한 민영화 및 농산물 수입개방 반대 총파업이 있었다.

교착 상태에 빠진 노동자당의 발전에 한 가닥 빛으로 다가온 것은 남부 리우그란데 두 술(Rio Grande do Sul)주의 주도(州都)인 포르투 알레그레(Porto Alegre)시 노동자당 시정부의 성과였다. 노동자당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1989년에 당은 사웅파울로를 비롯한 주요 도시의 시정부를 장악했다. 그러나, 많은 도시에서 노동자당 시정부는 재선에 실패하는 등 부침을 거듭했다. 하지만, 포르투 알레그레만은 예외였다.
당 내 좌파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포르투 알레그레 노동자당 지부는 당시 막 지자체의 여당이 된 다른 노동자당 지부들과 비슷한 곤란에 직면했다. 비록 새 시장 라울 폰트(Raul Font)는 노동자당 소속이었지만, 시의회 다수파는 여전히 보수 우파였고, 노동자당 시정부가 제시한 많은 계획은 시의회에서 거부되기 일쑤였다.
그런데, 마침 사웅파울로의 노동자당 시정부에서는 봉급 인상을 놓고 교원노조와 노동자당의 시 교육담당관인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ꡔ페다고지 - 피억압자를 위한 교육학ꡕ(한마당)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저 진보적 교육학자 프레이리 말이다. 프레이리는 자신의 참여 교육 이론을 이 사례에 적용해, 교원노조가 시 교육예산 책정 작업에 직접 참여하게 했다. 교사들은 시의 제한된 예산을 광범한 민중의 이해를 위해 쓰는 데 책임있고 창조적인 제안들을 내놓았다.
포르투 알레그레의 PT 당원들은 ‘예산 입안 과정에서의 민중들의 참여’라는 아이디어를 일과적 사례 이상의 것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이들은 시의회에 대항해 ‘예산평의회’를 만들어 여기서 시 예산 사용의 우선 순위를 결정하도록 했다. 예산을 심사하는 평의원은 우리나라 반상회 정도의 규모(30~40명)에서 한 명씩 뽑혀 인구 120만의 포르투 알레그레시 전체에서 3만명 정도가 선출됐다. 이들 평의원은 각 구역의 주민총회에서 제기된 의견들을 검토하여 예산 사용의 우선 순위를 정했다. 일단 예산평의회에서 다듬어진 예산 사용안에 대해서는 시의회도 쉽게 거부할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 예산평의회가 단순한 선전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인 제도로 정착했다는 것이다. 사실 평의회나 주민 총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기대만큼 많지 않았다. 하지만, 노동자당 시정부는 이에 실망하지 않고, 주민들의 참여를 북돋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했다. 지구별·부문별로 따로 평의회를 만들어 되도록 다양한 주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했으며, 주민들 사이에 예산 입안 전문가들을 육성해 시정부와 시의회를 지속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시켰다.
‘참여예산제’라 이름 붙여진 이러한 예산안 작성 과정의 가장 커다란 성과는 참여와 토론의 과정에서 민중들 자신이 정치적으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자본의 공세 속에서 부문과 지역으로 나눠져 반목하던 시민들은 시의 자원 배분을 스스로 결정하는 가운데 브라질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이에 대해 민중은 어떻게 힘을 합쳐 대응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다.

1998년 노동자당은 10년간 지속된 이 포르투 알레그레의 실험을 기반으로 소속주인 리우그란데 두 술에서 주정부를 장악했다. 마침 대선에서도 “포르투 알레그레를 전국으로!”가 룰라의 주요 구호 중 하나로 대두됐는데, 새 주지사로 당선된 당 내 좌파 올리비우 두트라(Olivio Dutra, 전 은행노조 지도자) 역시도 참여예산제를 주 전체에 실시하는 것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드넓은 국토를 자랑하는 브라질에서 주 정부들의 판도는 의회 의석 분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남부의 주요 주들에서 노동자당이 압승한 98년의 선거 결과는 오랜 침체로 고통받던 노동자당에게 새로운 활력을 안겨다 주었다. 두트라 주지사는 법정 다툼으로 비화한 보수세력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참여예산제 공약을 적극 추진했으며, GM·포드 같은 해외 투자기업들에 대해 다른 주정부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주체적인 태도를 취했고(이들 기업의 막무가내식 공적 자금 투입 요구를 거부했다), MST와 협력해서 농산물 메이저의 유전자조작 종자가 반입되는 것을 금지했다.
참여예산제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는 노동자당이 시장직을 상실했던 사웅파울로 등에서 당이 다시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됐다. 그 결과는 2000년 10월 1일의 지자체 선거에서 노동자당이 사웅파울로를 비롯한 주요 도시의 시정을 장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 결과에 고무된 룰라는 오랜만에 자신감을 되찾은 듯, “적어도 6년 안에 정권을 차지, 브라질리아의 대통령궁에 입성할 것”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90년대에 기존 조직노동자운동의 후퇴로 인해 침체에 빠져 있던 브라질 노동자당은 MST의 대중투쟁과 포르투 알레그레의 참여예산제라는 새로운 실험을 통해 반격의 태세로 전환할 수 있었다. 이것이 노동자당을 서유럽의 주류 좌파정당들과 구별시켜 주는 점이다. 노동자·민중의 사회운동과 직접 연관된 정치를 추구하면서 제도권 영역에 대중운동의 힘과 논리를 확장하는 실험들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2001년 2월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CUT·MST·노동자당 주최로 열린 ‘세계사회포럼’은 브라질의 이러한 성과와 프랑스의 새로운 노동자·민중운동들을 주된 기반으로 하여, 세계적인 반동공세에 대항하는 진보적 대안을 토론했다. 이 때도 MST의 활약과 참여예산제의 성과가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편집자 주 ― 세계사회포럼은 2003년까지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개최된 후, 2004년에는 1월 16일부터 21일까지 인도 뭄바이에서 제4차대회가 열린다.)

3. 우리의 동지들에게 무엇을 말할 것인가?

이제까지 많은 이들이 외국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에 대해 소개했지만, 막상 그것의 전략적 교훈이나 시사점이 제대로 정리된 적은 없는 것 같다. 필자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의미와 외국의 운동 사례에 대한 위와 같은 논의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교훈들을 정리해 본다. 이것에 대한 광범한 토론이 있었으면 한다.

1) 대안 이념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세계적 반혁명에 대항하는 노동자·민중운동의 대안 이념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여기서 우선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우리가 대항하는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자본가 계급의 근본주의·급진주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의 근본주의에 대항하는 우리의 이념적 무기 역시 근본주의적인 것이어야 한다. 저쪽에서 진검으로 나오는데, 이쪽에서 목검을 들어 될 일이 아니다. 자본가 계급의 진검이 ‘자유주의’라면, 노동자·민중의 그것은 무엇인가?

현재 영국 노동당, 독일 사회민주당 등이 따르고 있는 ‘제 3의 길’ 류의 이념은 결코 그런 우리의 진검이 될 수 없다. ‘제 3의 길’이란 것은 원래 소련·동유럽의 스탈린주의도 아니고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도 아닌 대안적인 사회주의를 지향할 때 쓰이던 말이다.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보다 훨씬 좌익적인 지향을 부르는 말이었던 것이다. 예를 든다면 티토가 살아 있을 때, 노동자 자주관리를 실험하던 유고슬라비아 같은 경우다.
그런데, 현재의 ‘제 3의 길’은 그게 아니다. 이는 국가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사이의 ‘제 3의 길’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제 3의 길’도 아니다. 자본주의 중에서도 가장 오른쪽에 있는 자본주의인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중에서도 가장 오른쪽에 있는 사회주의인 우파 사회민주주의 사이의 ‘제 3의 길’이다. 그것이 아직도 무슨 좌파 이념이라고 불릴 수 있다면, 이는 역사적으로 가장 오른쪽에 있는 좌파 이념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는 경제 영역에서는 자유주의의 신조, 무엇보다도 시장경제의 지배에 대해 전면적으로 승인하는 것이다. 다만, 원조 자유주의자들에 비해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며 사회복지정책을 중요시하는데, 이들이 그렇는 이유 자체는 과거에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국가의 경제 개입과 사회복지정책의 목표로 생각했던 것과는 판이하다. 과거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시장경제의 모순을 교정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제 3의 길’론자들은 시장경제를 가일층 활발히 돌아가게 만드는 것을 절대절명의 목표로 삼는다. 그래서, 국가가 앞장서서 자본가들의 투자 상담사로 나서고, 노동자·민중의 생계를 보장하는 것보다는 그들을 어떻게 하면 보다 신속하게 새로운 일자리로 배치할 것인가를 더 고민한다.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제 3의 길’은 한 마디로 투항주의 이데올로기다. 우리가 이를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민주당 이데올로그들이 ‘제 3의 길’론에 대한 자신들의 독점 수입권을 제기함으로써 우리의 수고를 덜어주었다. 서유럽에서도 이를 미래의 이념으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풀뿌리 운동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보다 훨씬 진지한 이념적 흐름은 서유럽의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 체제를 복구하려는 시도들이다. 프랑스 사회당의 ‘신사회주의’가 그 대표적인 예이고, 한때 집권하기 전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가 채택했던 ‘이해관계자(stakeholder) 경제’론도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케인즈주의 시기의 미덕들, 즉 자본에 대한 정부의 일정한 규제 활동, 사회복지상의 성과, 자본과 노동 사이의 계급타협 등을 유지하려 한다.
과거의 사회민주주의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전 세계적으로 경제 개방이 이뤄지고 해외투자 및 수출경쟁이 지배하게 된 ‘신자유주의 이후의’ 경제 현실은 인정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제 3의 길’론들처럼 국가가 자국 기업들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애써야 한다는 점을 긍정한다. 다만, 그렇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전통적인 케인즈주의의 유산이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강변하는 점이 크게 다를 뿐이다.
이들은, 국제시장의 피 말리는 경쟁에 노동자·민중을 동원하는 대신, 노동자·주주·경영자·소비자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stakeholders)이 이익도 고통도 함께 나누는 그런 경제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영국 노동당처럼 영국 전체가 ‘주식회사 영국’이 될 것을 주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광범한 노동자·민중이 그런 ‘국가 주식회사’의 소액주주나 경영참여세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사회민주주의 이데올로그들은 지금 너무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는 자본가 중의 한 분파, 즉 금융자본을 최대한 억제할 것을 강조하며, 노동자 경영참가를 정력적으로 주창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진보적’ 경제학자들이 이러한 주장을 한다. 노동조합운동 역시도 국민경제의 부흥을 위해 새로이 산업역군으로 나서야 하되, 이를 위해서라도 재벌개혁, 노동자 경영참가, 종업원지주제 등 경제의 민주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돌아가신 박현채 선생의 ‘민족경제론’을 들고 나와 자신들의 주장이 박 선생의 ‘민족자립경제 수립’ 주장을 계승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이해관계자 경제’론류의 새로운 사회민주주의, 새로운 케인즈주의는 ‘제 3의 길’보다는 한 발 앞선 것임에 틀림없다. 도식적으로 말한다면, ‘제 3의 길’이 80년대의 패배주의를 직접 계승하고 있다면, 이들 이념은 90년대 중·후반 이후의 좌파측의 반격 국면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흐름 역시 자유주의의 반동 공세에 대한 일정한 후퇴를 체질화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에 의존하는 경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이 과정에서 노동자·민중에게 국물이 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더라도, 세계시장에서 자국 사기업들의 투자·수출 실적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운신의 폭이 협소해진다. 노동자 경영참가는 오히려 노동자 세력의 자발적인 노예화로 나타날 수도 있다. 실제로 1997년의 동아시아 경제위기 이후, 세계시장은 그것이 현재의 제국주의 나라들 사이의 경쟁을 위해서도 그렇게 넉넉한 것이 못됨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하물며 한국과 같은 소국(小國)이 안식을 찾을 곳이 과연 존재할까?

사실 20세기 초반에 미국을 정점으로 한 국제 자본가 세력이 케인즈주의 수준의 계급타협을 받아들였을 때 노동자·민중운동 세력은 그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사회주의’를 주장했었다. 노동자·민중이 줄기차게, 그리고 강력하게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높은 수준의 요구를 제기했기 때문에 자본가 세력이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것보다는 낮은 수준의 타협을 받아들인 것이다. 자본가들의 조상은 장사꾼들이고, 동서고금에 장사꾼들과의 흥정은 늘 그래야 하는 법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회민주주의의 복구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과연 바람직하냐 아니냐 여부를 떠나서, 그 정도의 타협이라도 가능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민중운동의 요구는 그것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것이어야 한다. 즉, 처음부터 어떤 잠정적 타협을 전제하고 전개되는 위와 같은 주장들은 어쩌면 노동과 자본 사이에서 부유하는 쁘띠 부르주아의 한가로운 공론일 수 있다.
애당초 현재의 자유주의가 자본가 계급 측의 근본주의이고 급진주의라면, 노동자·민중 세력이 이를 격퇴하기 위해 내세워야 할 것은 자신들의 근본주의·급진주의, 즉 사회주의뿐이다. 노동자·민중이 경제의 소유권과 통제권을 장악하며 민주주의를 급진적으로 확장함으로써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려 시도하는 그 사회주의 말이다. 이러한 사회주의는 ‘경쟁력 향상 이데올로기’를 결코 당연한 무엇으로 여기지 않는다. 시장경제라는 것 자체는 세계적 수준에서든 일국적 수준에서든 사회의 민주적·계획적 조절에 전적으로 종속돼야 한다.
보리스 까갈리쯔끼의 지적대로, 이 점에서 21세기의 대안 이념이란 것은 결코 ‘전혀 새로운’ 무엇이 아니다. 자본가들의 움직임이 고색창연하듯이 우리 역시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난 백년간의 경험을 슬기롭게 반영하되, “사회주의의 이상과 원칙”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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